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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과 - 사랑은 율법(律法)의 완성(完成)이라-(핵심 Q&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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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봉주 작성일25-03-24 01:04 조회56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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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과 사랑은 율법(律法)의 완성(完成)이라

        (03월 29일 (안) / 일몰: 오후 6시 51분) 


<기억절(記憶節)>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롬 13:8). 


<개요(槪要)>

◉.십계명은 하나님과 그의 백성(百姓) 사이의 개인적(個人的)이고 언약적(言約的)인 관계(關係)를 표현(表現)한 것이다.


1. 하나님의 법(法)은 추상적(抽象的)인 원칙(原則)이 아니라 관계(關係)를 말합니다. 

2. 십계명(十誡命)은 하나님과 다른 사람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올바르게 표현하는 것을 설명합니다.

3. 하나님의 법(法)은 사랑에서 성취(成就)됩니다. 


⑴.하나님의 법(法)은 추상적(抽象的)인 원칙(原則)의 집합(集合)이 아니라 관계(關係)의 표현(表現)입니다. (즉 하나님의 법(法)이 냉정(冷情)한 추상(抽象)이나 비인격적(非人格的)인 원칙으로 구성(構成)되어 있다는 생각은 십계명(十誡命)을 주신 하나님의 성경적(聖經的) 그림과 양립(兩立)할 수 없다.)


⑵.십계명(十誡命)에 대한 설명(說明)은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의 언약적관계(言約的關係)를 암시(暗示)합니다


⑶.모세와 하나님의 대화(對話)는 이 관계적 언어(關係的言語)를 강조(强調)하는데, 여기서 하나님은 독수리로 묘사(描寫)되어 애굽에서 구출(救出)하기 위해 그의 백성을 날개에 태워 나릅니다. (이 묘사(描寫)의 주요 아이디어는 백성이 하나님께로 인도(引導)되었다는 것입니다.)


⑷."하지 말아야 할 것" 목록(目錄) 이전(以前)에 십계명(十誡命)은 개인적인 사랑의 메모로 시작합니다.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이다"(출애굽기 20:2). 


⑸.십계명 목록은 이스라엘을 구원(救援)하신 하나님에 대한 관계적(關係的) 사랑의 응답(應答)입니다. 처음 네 계명(誡命)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보여야 할 충성(忠誠)스러운 사랑을 설명합니다. 


⑹.두 번째 여섯 계명(誡命)은 다른 사람에 대한 구체적(具體的)인 형태의 사랑을 표현하는데, 궁극적(窮極的)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⑺.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서 율법의 성취(成就) 즉 율법의 완성(完成)이라는 개념(槪念)은 사랑을 통해 서로를 섬기는 것과 관련(關聯)이 있다. 


⑻.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우리가 이웃을 사랑할 때 율법(律法)이 성취(완성)된다고 설명합니다. 로마서에서 서로 사랑하는 것은 율법의 성취(완성)입니다.


⑼.십계명의 마지막 여섯 계명(誡命)은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意味)하는지 설명(說明)합니다.


⑽.십계명(十誡命)은 단순한 규칙(規則)이 아니라 사랑의 표현이며, 하나님의 개인적(個人的)이고 사랑에 찬 관계(關係)에 대한 응답(應答)이다. 즉 하나님이 율법(律法)을 주신 것은 모두의 궁극적(窮極的)인 유익(有益)을 위한 은혜(恩惠)이다.


(03월 23일) (일) <사랑의 법(法)>

 

(Q)~하나님께서 십계명(十誡命)을 주신 목적은 어떤 약속이 담겨있으며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이라는 두 가지 원칙을 어떻게 드러내고 있는가? (출애굽기 20:1~17)


(A)~<십계명(十誡命)은 하나님과 인간(人間), 그리고 인간(人間)과 인간의 서로의 관계의 번영을 위한 언약(言約)이며, 율법(律法)의 이 두 부분은 예수께서 가장 큰 두 계명(誡命)이라고 밝히신 “네 마음을 다하 … 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마 22:37, 신 6:5)와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마 22:39; 레 19:18)라고 하신 말씀과 정확히 일치(一致)한다.>


⑴.“십계명(十誡命)은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고 그분의 손으로 친히 쓰셨다. 십계명은 근본적으로 신령한 것이며 인간의 작문으로 꾸며진 것이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진리들을 인간의 언어로 표현한 성경은 신성(神聖)과 인성(人性)의 연합(聯合)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⑵.십계명(十誡命)의 율법은 금제(禁制)의 면에서보다도 자비(慈悲)의 면에서 고찰(考察)되어야 한다. 율법(律法)의 금제성(禁制性)은 순종(順從)에 따르는 행복의 확실한 보장(保障)이다.


⑶.순종(順從)하는 이들에게 율법(律法)은 보호(保護)의 장벽(障壁)이 된다. 우리는 이 율법 안에서 인간에게 의(義)의 불변(不變)의 원칙(原則)을 나타내시고 범죄(犯罪)의 열매인 악(惡)에서 인간을 보호(保護)하시려고 노력하시는 하나님의 선(善)하심을 바라보게 된다. (1 SM 235)


⑷.여호와께서 시내 산에서 반포(頒布)하신 십계명(十誡命)은 무질서(無秩序)하고 더러운 습관(習慣)을 지닌 사람들의 마음에 거(居)할 수 없을 것이다.


⑸.십계명(十誡命)은 하나님께서 성문화(成文化)하신 것이요, 사람이 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진리(眞理)를 사람의 말로 표현(表現)한 성경(聖經)은 신성(神性)과 인성(人性)의 연합(聯合)을 나타낸다.


⑹.십계명(十誡命)의 바로 중심(中心)에는 그것이 맨 처음 반포(頒布)될 당시와 마찬가지로 넷째 계명(誡命)이 있다.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安息日)을 복(福)되게 하여 그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출 20:8~11). (GC 434)


⑺.십계명(十誡命) 중 넷째 계명(誡命)만이 율법(律法)을 주신 분의 이름과 직함(職銜)을 나타내고 있다. 이 넷째 계명(誡命)은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의 창조주(創造主)이심을 선포(宣布)하고 그 어느 사람보다도 가장 존경(尊敬)과 예배(禮拜)를 받을 권리(權利)가 그분에게 있음을 보여 준다.


⑻.십계명(十誡命)은 하나님과 다른 사람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올바르게 표현하는 방법을 설명한다.


⑼.주목(注目)할 점은 십계명에 있는 "하지 말라"의 목록보다 앞서, 하나님께서 (출애굽기 20:2절)에서 십계명을 개인적(個人的)인 의미(意味)("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이다")로 소개(紹介)하시고 이스라엘을 대신하여 행(行)하신 사랑의 구원행위(救援行爲)(애굽에서의 노예(奴隸) 상태(常態)에서의 구출(救出)) 를 강조(强調)하신다는 것이다. 


⑽.율법(律法)의 제정자(制定者)는 사랑이기에 하나님의 율법은 하나님의 사랑 표현(表現)이며 폐(廢)할 수 없는 거룩한 법(法)이다. 하나님께 신실(信實)한 것은 율법조문(律法條文)을 어기지 않는 것 이상(以上)이며, 사랑을 적극적(積極的)으로 실천(實踐)하는 것이다. 


(03월 24일) (월) <율법(律法)은 거룩하고 의(義)롭고 선(善)하다.>  

 

(Q)~율법(律法)은 거룩하고 의(義)롭고 선(善)하다는 말씀은 어떤 의미(意味)를 담고 있으며, 하나님께서 직접(直接) 십계명을 돌판에 기록한 것은 무엇을 의미(意味)한다고 생각합니까? (로마서 6:1~3, 로마서 7:7~12, 출애굽기 31:18)


(A)~<하나님의 율법(律法)은 악(惡)한 것이 아니며, 다른 무엇보다 죄(罪)와 우리의 죄(罪) 된 본성(本性)을 우리에게 분명하게 드러내 준다. 또한, 하나님은 폐(廢)할 수 없는 하나님의 거룩한 법이며, 변(變)하지 않는 하나님의 성품(性稟)과 사랑에 기초(基礎)한 그분의 도덕적(道德的) 통치(統治)에 대한 증거(證據)로서 율법(律法)을 돌에 새기셨다>


⑴.율법(律法)의 제정자(制定者)는 사랑이기에 하나님의 율법(律法)은 하나님의 사랑 표현(表現)이며 폐(廢)할 수 없는 거룩한 법(法)이다.


⑵.율법(律法)은 구속(救贖)의 과정(過程)을 통해 무효화(無效化)되지 않으며 오히려 더 확증(確證)된다.


⑶.사랑은 하나님의 율법(律法) 기초(基礎)이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지키실 때, 그분은 사랑을 지키시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예수께서 죄인(罪人)을 구원(救援)하시기 위해 죽으신 이유(理由)이며, 율법(律法)을 지키시면서 동시(同時)에 은혜(恩惠)를 베푸실 수 있었던 이유이다.


⑷.예수님은 “자기도 의(義)로우시며,” 또 “믿는 자를 의(義)롭다 하”실 수 있으시다. (롬 3:25~ 26). 


⑸.모든 원칙(原則)이 거룩하고 공정(公正)하며 선(善)하다. 율법(律法)은 인간에게 하나님께 대한 의무(義務)를 지운다.


⑹.율법(律法)은 사상(思想)과 감정(感情)에 호소(呼訴)하며 또한 율법(律法)의 요구(要求)를 범(犯)한 사실을 깨닫는 모든 사람에게 죄에 대한 회오(悔悟)를 일으킨다. 


⑺.만약 율법이 외형적(外形的)인 행위(行爲)에만 그 요구(要求)를 한정(限定)한다면 인간은 자신의 그릇된 사상(思想)이나 악(惡)한 욕망(欲望)과 음모(陰謀) 등에 대하여는 죄의식(罪意識)을 느끼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러나 율법(律法)은 영혼자체(靈魂自體)가 순결(純潔)하게 되고 정신이 거룩하게 되어 사상(思想)과 감정(感情)이 사랑과 의(義)의 원칙(原則)과 일치(一致)하게 되기를 요구(要求)한다. (1 SM 211)


⑻.하나님의 피조물(被造物) 중에서도 가장 걸작품(傑作品)인 인간에게만 거룩한 율법의 신성(神性)한 요구(要求)들을 인식(認識)할 수 있는 양심(良心)과 거룩하고 의(義)로우며 선(善)한 율법(律法)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주셨다. 


⑼.인간에게는 즉각적(卽刻的)이며 완전한 순종(順從)이 요구(要求)되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억지(抑止)로 순종하도록 강제(強制)하지 않으시며 자유로운 도덕적(道德的) 존재(存在)로 대우(待遇)하신다. (1 SM 216) 


⑽.하나님의 율법(律法)은 하나님의 거룩함, 곧 사랑, 의(義), 선(善), 진리(眞理)의 완전한 성품을 나타낸다. (레 19:2; 시 19:7, 8; 시 119:142, 172). 돌에 새겨진 이 율법은(출 31:18) 변(變)하지 않는 하나님의 성품(性稟)과 사랑에 기초(基礎)한 그분의 도덕적통치(道德的統治)에 대한 증거(證據)이며, 이것이 대쟁투(大爭鬪)의 중심 주제(中心主題)다.


(03월 25일) (화) <율법(律法)과 은혜(恩惠)>

 

(Q)~율법(律法)과 은혜(恩惠)란 무엇이며, 하나님이 우리에게 율법(律法)과 은혜(恩惠) 주신 목적(目的)과 이유(理由)는 무엇입니까? (예레미야 31:31~34, 요한복음 3:1~21, 히브리서 8:10) 


(A)~<율법(律法)을 지키는 것으로는 자신(自身)을 구원(救援)할 수 없다. 구원(救援)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恩惠)를 통해 믿음으로 받는 것이다. 이는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선물(膳物)이다. 우리는 구원(救援)받기 위해 율법(律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이미 구원(救援)받았기 때문에 율법(律法)을 지킨다.>


⑴.사전적 의미(辭典的意味)로 율법(律法)이란 = 보통은 십계명을 중심으로 한 모세 5경을 가리키나 때로는 구약성서(舊約聖書) 전체(全體)를 가리키기도 한다. 율법(律法)의 기조(基調)를 이루고 있는 것은 윤리적(倫理的)인 것으로서 십계명(출애굽기 20:1∼17, 신명기 5:6∼21)을 비롯한 출애굽기( 20:23∼23:19), 신명기(12∼26장), 레위기(1∼27장 전부) 등에서 이를 볼 수 있다.


⑵.율법(律法)은 죄를 드러내는 거울과 같은 역할(役割)을 할 뿐이지, 율법자체(律法自體)로는 죄를 도말(塗抹)할 수가 없다.


⑶.그러므로 “죄의 삯은 사망(死亡)이요 하나님의 은사(恩賜)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永生)이니라”(로마서 6:23)의 보장(保障)의 말씀에서와같이 죽을 인생에서 영생(永生)의 길인 은혜(恩惠)는 구원자(救援者) 예수그리스도를 구주(救主)와 주인(主人)으로 영접(迎接)하기만 하면 거저 얻는 축복(祝福)이랍니다.


⑷.은혜(恩惠) 아래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요구(要求)는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서 하신 요구(要求)만큼 광범위(廣範圍)한 것으로서 거룩하고 의(義)롭고 선(善)한 하나님의 율법과 일치하는 것이다


⑸.사람은 하나님의 율법과 본성에 완전히 조화를 이루었다. 의의 원칙이 그의 마음에 새겨져 있었다. 그러나 죄가 창조주와 사람을 분리시켰다. 그는 더 이상 하나님의 형상을 반사할 수 없게 되었다. 그의 마음은 하나님의 율법의 원칙과 반대되었다. 


⑹.십계명(十誡命)은 하나님께서 직접(直接) 돌판에 새겨 주셨지만(출 31:18), 하나님 백성의 마음에도 율법(律法)이 기록되어야 했다(시 37:30~31).


⑺.율법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救援)하거나 사람의 마음을 변화(變化)시킬 수 없다. 우리는 죄 된 본성을 타고났기 때문에 영적(靈的)으로 새 마음을 받아야 한다.


⑻.하나님의 사랑의 법(法)은 사람의 외부(外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격자체(人格自體)에 내재(內在)되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만이 인간의 마음에 하나님의 법을 새기실 수 있으며, 그분은 언약백성(言約百姓)을 위해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約束)하셨다. (히브리서 8:10). 


⑼.새 언약(言約)은 하나님의 법을 마음에 새기는 것이다. 그래서 백성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그들이 하나님이 되는 것이다. 


⑽.성경의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에게 그분을 기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매우 분명(分明)하게 가르치신다. 그리고 그분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바로 개인적(個人的)으로나 집단적(集團的)으로 하나님의 모든 백성의 궁극적(窮極的)인 유익(有益)을 위한 것이다. 


(03월 26일) (수) <사랑은 율법(律法)의 완성(完成)이라> 

 

(Q)~사랑은 율법(律法)의 완성(完成)이라는 말씀의 의미(意味)는 무엇이며, 하나님의 율법(律法)을 성취(成就)하는 것은 우리의 삶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겠습니까? (이사야 58:6, 마태복음 23:23~24, 로마서 13:8~10)


(A)~<2천 년 전, 한 율법사(律法司)가 예수님께 '가장 큰 계명(誡命)'이 무엇인지 여쭈었다. 예수님께서는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이웃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즉 모든 율법의 완성은 사랑이라는 의미였다>


⑴.사랑과 율법(律法)의 관계(關係)는 아무리 강조(强調)해도 지나치지 않다. 실제로 성경은 사랑하는 것이 율법을 이루는 것이라고 말한다.


⑵.“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로마서 13:8)” 그리스도인은 빚진 것을 모두 갚아야 하지만 결코 완전히 갚을 수 없는 빚이 있는데 바로 동료 인간에 대한 사랑의 빚이다.


⑶.율법(律法)-문자적(文字的)으로 정관사(定冠詞)가 없는 “율법”(로마서 2:12 참조). 십계명(十誡命)에 대한 특별한 언급(로마서 13:9)은 바울이 그 율법을 마음에 두고 있음을 나타내지만 “율법”에 정관사(定冠詞)가 붙지 않은 것은 그가 “율법”을 하나의 원칙(原則)으로 말하고 있을 가능성(可能性)이 있음을 시사(示唆)한다. 죄가 율법에 대한 불순종(不順從)이나 무법(無法)(참조 요일 3:4 주석)인 데 반해 사랑은 문자적으로 “율법의 완성”(로마서 13:10)이다


⑷.피차 사랑하는 것은 무한(無限)한 채무(債務)이다. 그것은 갚기 위해 늘 노력하지만, 동료 인간을 위해 선(善)한 일을 할 기회(機會)가 남아 있는 한 결코 완불(完拂)할 수 없는 빚이다.


⑸.그리스도인은 빚진 것을 모두 갚아야 하지만 결코 완전히 갚을 수 없는 빚이 있는데 바로 동료인간(同僚人間)에 대한 사랑의 빚이다. 피차(彼此)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로마서 13:8)


⑹.동료인간(同僚人間)을 사랑하는 사람은 율법(律法)의 의도(意圖)와 목적(目的)을 수행(遂行)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모든 율법은 사랑이라는 한 원칙(原則)에 기초(基礎)하고 있다. (마 22:34~40; 참조 롬 13:9). 그러므로 그분의 율법은 문자(文字)의 외적준수(外的遵守)로 완전(完全)하게 순종(順從)할 수 없다. 참된 순종은 마음과 영(靈)(참조 로마서 2:28~29)의 문제이다. 


⑺.그들은 박하(薄荷)와 회향(茴香)과 근채(芹菜)의 십일조를 드리는 데는 빨랐으나 율법이 더 중한바 의(義), 인(仁), 신(信)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마 23:23; 눅 11:42)은 간과(看過)했다. 그러므로 예수는 다시 한번 그의 아버지의 율법의 참된 목적을 드러내려고 했다. 


⑻.주님은 모든 계명(誡命)이 사랑 안에 요약(要約)되어 있으며(마 22:37~40; 막 12:29~34; 눅 10:27, 28), 동료인간(同僚人間)에 대한 사랑이 순종하는 제자들을 구별(區別)하는 표(表)(요 13:34~35) 라는 사실을 가르쳤다. (롬 13:8, 재림교주석)


⑼.“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다 이루었느니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페플레로켄’은 현재 완료형(現在完了型)이다. 이는 사랑하는 순간 율법을 이룬 것임을 말해준다. 여기서 바울이 율법을 무시(無視)하지 않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율법은 폐기되는 것이 아니라 완성되는 것이다. 이것은 다수의 가르침과 일치한다. (마 5:7). (로마서 13:8)


⑽.(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본문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첫째)는, 성도(聖徒)들이 살아가는 데 있어 갚지 않고 남겨두는 빚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고,

(둘째)는 사랑이란 성도(聖徒)들이 지불(支拂)해야 하는 빚으로서 ‘다 갚음’이 없는 영원한 부채(負債)라는 것이다. 

한편 ‘아무에게든지’라는 표현은 사랑의 빚을 갚아야 하는 대상이 ‘성도(聖徒)들’에 국한(局限)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존재(存在)하는 모든 사람에까지 확장(擴張)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율법(律法)의 더 중(重)한 것은 정의(正義)와 긍휼(矜恤)과 믿음이라고 하셨다. 이것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드러난다. 


 (03월 27일) (목) <무엇보다 서로 사랑하라> 

 

(Q)~새 계명(誡命)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에 “무엇보다 서로 사랑하라”라는 하나님의 뜻을 위해 일하는 사람에게 주신 그분의 약속(約束)과 의미(意味)는 무엇이겠습니까? (요한복음 13:34~35, 요한복음 15:12, 야고보서 2:1~9, 출 33:14)


(A)~<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새 계명(誡命)에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은 = 그 계명(誡命)의 새로운 부분(部分)을 제자(弟子)들은 깨닫지 못하였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사랑하신 것처럼 서로 사랑하여야 하였다. 이것이 영광(榮光)의 소망(所望)이신 그리스도께서 그들 속에 계신다는 신임장(信任狀)이었다.> 


⑴.사랑하라는 계명(誡命)은 그 자체가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 계명은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해 주신 명령 가운데 포함되어 있었다. (레 19:18). 그 계명은 사랑이 새롭게 실증될 때에만 새로운 것이 된다. 제자들은 이 명령을 따르도록 분부를 받았다.


⑵.“새 계명”이란 명칭의 이유, 창조 질서로 말하면, 하나님께서 천하만민(天下萬民)을 한 혈맥(血脈)으로 지으셨다고 하였는데(행 17:26), 그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남들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해야 할 근거(根據)를 성립(成立)시켰다. 그러므로 구약에도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는 계명이 있다(레 19:18). 구약(舊約)의 계명(誡命)도 사랑 중심의 것이다. (롬 13:8~10). 


⑶.새 계명을 지키는 방법.=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 같이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그는 우리를 위하여 희생하시는 것으로서 사랑을 보여 주셨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사실과 그들의 죄(罪)를 씻기 위하여 십자가(十字架) 위에서 대속(代贖)의 죽음을 죽으실 것을 비유(譬喩)하기도 한다.)


⑷.옛 계명(誡命)은 사람들에게 이웃을 그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였으나, 새 계명(誡命)은 예수가 그들을 사랑하신 것같이 이웃을 사랑하라고 촉구(促求)한다. 새 계명은 사실상 옛 계명보다 더 어려웠으나, 그것을 성취(成就)할 수 있는 은혜(恩惠)가 아낌없이 공급(供給)될 것이었다. (요 13:34, 재림교주석)


⑸.왜 ‘새 계명’이라고 일컬었는가? 제자들은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사랑하신 것같이 서로 사랑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인간을 위하여 나타내실 충만하신 사랑을 아직 본 일이 없었다. 그들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十字架)에서 죽으시는 그분을 아직 보지 못하였다.


⑹.그들은 그리스도의 생애(生涯)와 죽음을 통하여 사랑에 대한 새로운 관념(觀念)을 받아들여야 하였다. “서로 사랑하라”라는 명령(命令)은 그분의 자기희생(自己犧牲)의 빛 가운데서 새로운 의미(意味)가 있도록 되어 있었다. 


⑺.갈바리 십자가에서 비쳐오는 빛 가운데서 그들은 그 말씀의 의미를 읽어야 하였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리뷰 1910. 6. 30).


⑻.예수께서 말씀하신다. 사랑은 충동적(衝動的)이고 상황(狀況)에 따라 변화무쌍(變化無雙)한 감정(感情)이 아니다. 그것은 살아있는 원칙이며, 영원한 능력이다. 영혼(靈魂)은 결코 다함이 없는 샘물 같은 사랑, 그리스도의 가슴에서 흘러나오는 순결한 사랑의 시냇물을 먹고 자란다.


⑼.(실제적인 사랑, 역사하는 사랑)―그리스도께서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한다는 것은 언제 어디서나 친절(親切)한 말과 유쾌(愉快)한 표정으로 이기심(利己心)이 없는 모습을 보이는 것을 말한다. 이런 것들은 아무 비용(費用)도 들지 않는 것들이지만 그것들은 영혼들을 감싸는 향기(香氣)를 뒤에다 남긴다. 


⑽.이기심(利己心)과 교만(驕慢)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들의 정신을 한데 묶는 순수한 사랑을 방해(妨害)한다. 만약 이 사랑을 충실하게 계발(啓發)하면 유한한 자들은 유한한 자들과 섞인 것이며, 따라서 모든 사람은 무한(無限)하신 분을 중심으로 삼을 것이다. 


◉.사랑이 율법(律法)의 완성(完成)이라면, 단순히 잘못된 일을 하지 않는 것으로는 온전히 하나님의 율법을 지켰다고 할 수 없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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