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과 생명의 근원(질문, 대답, 설명) 11/30/24
페이지 정보
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4-11-21 17:00 조회1,886회 댓글0건본문
제9과 생명의 근원
(11월 30일 안식일 / 일몰: 오후 5시 14분)
연구 범위: 요 1:4; 10:10; 1:12, 13; 6:61-68; 민 13:23-33; 마 4:1-4
기억절: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요한복음에서 당신은 누구냐는 질문에 예수님은 하나님이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대답하셨다. '스스로 있'다(I AM)는 분명 불붙은 떨기나무 가운데서 모세에게 나타나셨던 하나님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라고 말씀하셨다(출 3:14).
'스스로 있는' 자이신 바로 그 하나님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나는 …이다"라는 주제는 요한복음 전체를 관통한다. 이번 주 기억절은 그 주제를 나타낸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요 14:6). '나는' 세상의 빛, 생명의 떡, 양들의 문, 선한 목자요 참 포도나무다.
이번 주도 우리는 요한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을 계속 배울 것이다. 또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강력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들이 그분을 거부한 이면에는 무엇이 있는지 더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 이 연구를 통해서 우리는 그들과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또 그러한 실수를 저지를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 배우게 될 것이다.
*학습 목표
깨닫기: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을 때 구원을 주시는 예수님의 능력으로 우리는 영생을 얻는다.
느끼기: 구원은 말씀을 받아 믿음으로 얻는 선물이지만 사탄은 말씀을 시험하게 한다.
행하기: 예수님처럼 말씀을 신뢰하고 믿음에 서서 지혜와 은혜 가운데 성장한다.
TMI 위로
2. 그분 안에 생명이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그 생명은 어떤 생명입니까?(요 1:4)
*답: 그분이 스스로 계시는 분이시며 생명자체라는 것과 그것은 영생의 생명이다.
3. 예수께서 자신을 생명의 떡이라고 하신 것은 누구를 위한 것이며 무엇을 의미합니까?(요 6:35)
*답: 그를 믿는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시는 분이시며 그분이 희생한다는 뜻이다.
4. 새 생명을 얻는 데 있어서 믿음은 어떤 역할을 합니까?(요 20:31)
*답: 예수님을 믿음으로 그 생명을 얻는다.
5. 구주께서 거절당하신 일의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요 1:11)
*답: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영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6. 빛이신 그리스도를 거절할 때 우리에게 어떤 문제가 일어납니까?(요 5:38)
*답: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가 된다.
결론: 예수 안에는 생명이 있으며 우리는 예수를 믿고 그분의 이름을 힘입어 영생을 얻는다. 영생은 구원을 주시는 그분의 능력을 뜻한다. 구원이 그분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믿음으로 얻는 하나님의 선물인 것은 마음을 변화시키는 이는 오직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사탄은 말씀을 시험하게 하지만 예수님은 말씀을 신뢰하셨다. 말씀을 받지 않는 것이 죄의 시작이므로 우리는 믿음의 기초에서 시작해 지혜와 은혜 안에서 성장해야 한다.
11월 24일(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요한복음 1:1에서 사도는 예수님이 하나님, 즉 아들 하나님이라고 분명히 말한다.
따라서 요한복음 1:4에서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라고 할 때 “생명”은 파생되지 않은, 영원히 자존하는 신성한 생명을 말한다. 그분 안에는 생명이 있기에 그분은 생명을 내어놓으셨다가 그것을 다시 취하실 수 있다(요 10:17). 그분 안에는 참 생명이 있기에 그분은 원하는 자에게 생명을 주실 수 있다(요 5:21, 요 14:19).
생명(zoē, 조에, 헬라어)이라는 단어는 요한복음에서 36번 등장하는데, 이는 신약성경에서 사용되는 용례의 약 25%에 해당한다. 요한복음 1:4, 5에서 이 단어는 이 땅의 생명의 근원을 가리키며, 구원과도 연결되어 있다. 요한복음의 나머지 부분에서 이 생명은 대부분 구원의 약속인 영원한 생명을 뜻한다(요 3:15, 16, 36; 요 4:14, 36; 요 6:27, 40, 47, 54, 68; 요 10:27, 28).
따라서 창조 시에 생명을 주신 그분이 잃어버린 바 된 세상에 구원과 영생을 주시는 바로 그분이시다.
예수님은 왜 이 땅에 오셨는가?(요 1:29, 3:16, 6:40, 10:10, 12:27)
[요1: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6: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요10:10]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요12:27] 지금 내 마음이 괴로우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
*답: 이 세상의 죄를 없애고 그들 믿는 사람들에게 영생을 주려고 오셨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4, 15).
뱀에게 물린 이스라엘 백성을 구하기 위해 놋뱀이 높이 들렸던 것처럼 죄에 물린 우리를 대신해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다. 그분은 우리가 그분의 생명을 받을 수 있도록 우리가 받아야 할 형벌을 받으셨다.
그리스도께서는 또한 우리가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누리기를 원하신다(요 10:10). 그러므로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요 1:12, 13)이다.
그리스도는 아버지를 우리에게 나타내시기 위해 오셨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 1:18). 예수님의 성품을 통해서 우리는 아버지가 어떤 분인지를 볼 수 있다.
<교훈> 예수 안에 파생되지 않은 영원히 자존하는 신성한 생명이 있다. 그분은 창조 시에 생명을 주신 창조주시며 잃어버린 바 된 세상에 영생을 주시는 구주이시다.
<부가설명> 예수님이 생명이라는 말씀은 진리지만, 반면에 인간을 사망이라는 뜻도 된다. 인간이 사망이 아니라면 예수께서 생명으로 오시기보다는 잘못을 바로잡아 줄 능력자로 오면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분이 오셔서 굳이 십자가에서 죽어야할 이유가 있는가? 인간이 사망이기 때문에 그 사망을 대신 하셔서 사망하시고 그분이 생명이시기 때문에 부활하셔서 생명이 실상이 무엇인지 드러내신 것이다. 그분이 부활하지 않았으면 자신이 생명이라고 주장한 것은 거짓이 된다. 아담이 언약을 어겨서 영원한 생명을 잃었다. 창조주께서는 이 아담을 다시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길을 마련해주셨다. 그것을 구원이다. 그것은 남자의 후손(제라=씨)이 아니라 여자의 후손(제리=씨)이 수행할 것이라고 약속하셨다(창3:15). 그래서 구주는 동정녀에게 탄생하신 것이다. 그가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아담의 죽음을 대신 하신 것이고 그가 부활하셔서 사망을 사망하게 하신 것을 증명하셨고 그분이 생명이신 것을 확증하셨다. 우리는 이렇게 하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생명을 얻게 된다. 사망을 이긴 이김이 우리 것이 된다. 할렐루야!
11월 25일(월) 영생의 말씀
요한복음 6:61-68을 읽어 보라.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나를 떠나겠느냐고 물으셨을 때 베드로가 했던 대답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요6:61~68] 예수께서 스스로 제자들이 이 말씀에 대하여 수군거리는 줄 아시고 이르시되 이 말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느냐 62 그러면 너희는 인자가 이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본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64 그러나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느니라 하시니 이는 예수께서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누구며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아심이러라 65 또 이르시되 그러므로 전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였노라 하시니라 66 그 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67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68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답: 베드로는 예수님이 생명의 주님이심을 알았다. 예수님의 말씀이 영생이라고 고백했다.
"영생"에 대한 베드로의 고백은 요한복음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와 맞닿아 있다. 요한복음 6장에는 5,000명을 먹이신 사건(요 6:27, 40, 47, 54, 68)의 맥락에서 영생에 관한 표현이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예수님은 자신이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하셨는데(요 6:35), 이는 예수님의 삶과 죽음, 부활이 영원한 구원의 근원임을 의미한다.
영생 또는 그에 상응하는 표현이 요한복음에 적어도 17번 이상 나타난다. 이 용어는 영적인 존재나 영원한 존재가 되는 것, 또는 다른 천상의 개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구원을 주고 현재 우리의 존재에 의미를 더하며 주님 다시 오실 때 죽음 없는 생명에 들어가게 하시는 그분의 능력을 뜻한다. 예수님이 육신으로 임하신 것처럼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부활도 우리의 시간과 공간, 그리고 우리의 육신에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그것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는 것이며, 에덴에서 우리가 가졌던 생명을 다시 얻는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영생을 얻을 수 있는가?(요 3:15, 16; 요 5:24; 요 6:40, 47;
요 8:31; 요 12:46; 요 20:31).
[요3:15,16]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6:40,47]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47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요8:31]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요12:46]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둠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
[요20: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답: 오직 예수님을 믿으면 영생을 얻는다.
오직 믿음으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사셨고 우리를 대신하여 죽기 위해 오신 것을 믿는다. 이 믿음은 우리에게 선물로 주어지지만, 우리는 회개하고 죄 용서와 깨끗함을 받기 위해 그분의 피의 능력을 구하고 자신을 맡기기로 의식적으로 선택해야 한다.
제자들의 선택을 묻는 예수님의 질문에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요 6:68)라고 말한 베드로의 대답은 구원의 본질과 우리가 그것을 얻는 방법을 담고 있다.
구원은 철학, 역사, 과학 같은 인간의 학문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 안에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계신 예수께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그 생명을 받아들이는 모든 이에게 값없이 주시는 선물이다.
<교훈> 그분은 영생의 말씀이며, 영생은 구원을 주고 현재 우리의 존재에 의미를 더하며 주님 다시 오실 때 죽음 없는 생명에 들어가게 하는 그분의 능력을 뜻한다.
<부가설명> 이 세상에 아담의 후손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하나님의 생명이 어떤 것인지 모른다. 지금 살아가고 있는 것이 생명인 줄 안다. 성경은 그것은 죽은 것으로 완전히 없어질 때까지 썩고 있는 것이라고 계시한다. 성경은 썩어져가는 구습이라고 가르친다(엡4:22). 그래서 썩은 것은 썩지 않는 것을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고 분명히 계시하였다(고전15:50). 이 말씀은 지금 생명이라는 것은 이미 썩은 것이라고 말했다. 아담의 후손으로 이 세상에는 생명이 없다. 사망이 존재를 상실할 때까지 후패(朽敗)하는 과정일 뿐이다(고후4:16).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셔서 하나님의 생명을 주셔서 영생하도록 하셨는데(요일2:25 참고), 이 생명을 잃어버리고 사망이 되어 종신할 수밖에 없게 되어 창조가 비창조가 되어버렸다. 창조주께서는 이것을 다시 생명으로 회복하여 처음 창조의 목적대로 영생하도록 하려고 생명 자체이신 말씀 하나님께서 오셔서 십자가에서 사망을 처리하시고 부활하셔서 생명과 썩지 않는 것을 드러내신 것이다(딤후1:10). 이것을 믿는 사람들은 다 예수님 안에서 영생의 생명을 가졌다(요6:47). 할렐루야!
11월 26일(화) 믿음과 새롭게 태어남
요한복음 1:12, 13을 읽어 보라.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이 되는 단계를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가?
[요1:12,13]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답: 예수님을 영접하여 그 이름을 믿고 하나님께로부토 출생하는 것이다.
요한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그분의 이름을 힘입어 영생을 얻게 하려고 복음을 기록했다(요 20:31). 요한복음 1:12, 13은 이 과정을 두 단계로 설명하고 있다. 첫째, 우리는 그분을 영접한다. 즉, 그분을 믿는 것이다. 둘째, 그분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시는데, 13절은 이것을 하나님으로부터 난 것으로 설명한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이 되는 데에는 인간적인 측면과 신적인 측면이 있다. 우리는 믿음으로 행해야 하고, 그분을 영접하고, 빛에 열려 있어야 하지만 마음을 거듭나게 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다.
결국 믿음은 그분의 말씀을 들음으로써 얻는 하나님의 선물이다(롬 10:17). "그리스도에 대한 참되고 지속적인 믿음을 갖기 위해서는 말씀에 나타난 대로의 그분을 알아야 한다"(그리스도인 교육의 기초, 433). “인간의 마음에 영향을 미치고 인간의 마음을 밝게 해주시는 하나님의 성령께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창조하신다”(화잇주석, 벧전 1:22).
아들을 메시아로 믿고 영접하는 사람은 영생을 얻는다. 요한도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받아들이고 믿는 것을 강조한다(요 5:24, 38, 47). 우리에게 확신을 주시는 것은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다(요 16:7, 8; 롬 8:16).
로마서 8:16을 읽어 보라. 예수님의 구원에 관한 어떤 원리를 발견할 수 있는가?
[롬8:16]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답: 성령께서 친히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신다.
우리 마음속 성령의 역사에 기초한 믿음, 즉 성경적 믿음이 우리 믿음의 기초이다.
"믿음 ...을 보는 눈과 듣는 귀는 큰 축복이다"(하늘에서, In Heavenly Places, E. G. White 104). 사람이 말하는 믿음을 얻는 방법은 먼저 믿을만한 근거, 믿음의 이유가 있을 때에 믿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와 달리 성경이 말하는 믿음을 얻는 방법은 믿음 자체가 기초이며 하나님의 선물이다(엡 2:8, 고전 1:17-24, 고전 2:1-6). 우리는 믿음이라는 기초에서 시작해 지혜와 은혜 안에서 성장한다.
<교훈> 믿음으로 행해야 하고, 그분을 영접하고, 빛에 열려 있어야 하지만 마음을 거듭나게 하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다. 믿음은 말씀을 통해 얻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부가설명> 믿음은 자기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믿음을 상대방이 주는 것이다. 내가 아무리 상대를 믿으려고 해도 상대가 나를 믿도록 해주지 않으면 믿음이 생기지 않는다. 성경은 믿음을 선물이라고 했다(엡2:8). 예수님을 믿는 믿음만이 선물이 아니다. 모든 믿음은 상대가 주는 선물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믿음은 내가 믿는 것이 아니다. 예수께서 내게 주시는 선물이다. 그 믿음은 예수님의 믿음이요 하나님 아버지의 믿음이다. 하나님과 예수님에게도 믿음이 있는가? 당연히 있다. 계14:12에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라고 했는데, 개정판에는 예수에 대한 믿음이라고 번역했다. 원문은 예수의 믿음이다. 즉 예수님이 믿는 믿음이라는 표현이다. 같은 표현은 롬3:3에는 “어떤 자들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어찌하리요 그 믿지 아니함이 하나님의 미쁘심을 폐하겠느냐”라고 기록되었는데 미쁘심이라고 번역된 원어가 믿음이라는 명사 ‘피스티스’의 대격 여성 단수로서 미쁘심이라는 형용사가 아니다. 이것을 직역하면 ‘하나님의 믿음을 폐하겠느냐?’가 된다. 하나님께서 어떤 믿음을 가지셨을까? 독생자를 보내시면 구원받을 사람이 땅에 충만하게 될 것을 믿으시는 것이다. 예수께서도 당신의 희생봉사로 구원받을 사람이 땅에 충만하게 될 것을 믿으셨다. 그래서 오셔서 희생하셨다. 이 믿음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고 우리는 이 믿음을 받아서 믿는다. 그래서 믿음을 지켜야 한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믿음을 성경은 “지극히 거룩한 믿음”(유1:20)이라고 표현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믿음은 하나님과 예수께서 우리에게 주신 지극히 거룩한 믿음이다. 잘 지켜야 한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딤후4:7), 우리도 이처럼 잘 지키자. 그러면 받은 영생도 잘 지키게 된다.
11월 27일(수) 생명의 근원을 거절함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빛이)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요 1:5, 10, 11)다. "스스로 계신" 분께서 자기 백성 중 많은 이에게 거절당하셨다. 이것은 요한이 기록한 성경 전체에서 가장 슬픈 기록 가운데 하나이다.
바울이 "너희의 확신을 버리지 말라"(히 10:35, 흠정역)고 이후에 준 경고도 분명하게 말한다. 우리가 반복해서 보았듯이,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거절당하셨다.
"현대의 인본주의적 사고는 의심에서 시작된다. 사람들은 무엇이 진리인지 판단하기 위해 모든 것에 의문을 제기한다. 이 의심의 불길을 거치고 살아남은 것은 바위처럼 확고한 지식으로 받아들이고, 믿을만한 것으로 여긴다. 어떤 사람들은 동일한 방법을 성경에도 적용하여 성경에서 무엇이 진리인지 결정하기 위해 과학, 역사, 심리, 철학, 고고학 또는 지질학의 관점에서 모든 것에 의문을 제기한다. 성경의 진실성에 대한 의심으로 시작해서 의심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눅 18:8)라고 물으셨다"(에드워드 징키, E. Edward Zinke, The Certainty of the Second Coming, Review and Herald Publishing Association, 2000, 96).
민수기 13:23-33을 읽어 보라. 정탐꾼들의 가나안에 대한 보고가 서로 극명히 다른 이유는 무엇인가?
[민13:23~33] 또 에스골 골짜기에 이르러 거기서 포도송이가 달린 가지를 베어 둘이 막대기에 꿰어 메고 또 석류와 무화과를 따니라 24 이스라엘 자손이 거기서 포도를 베었으므로 그 곳을 에스골 골짜기라 불렀더라 25 사십 일 동안 땅을 정탐하기를 마치고 돌아와 26 바란 광야 가데스에 이르러 모세와 아론과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나아와 그들에게 보고하고 그 땅의 과일을 보이고 27 모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에 간즉 과연 그 땅에 젖과 꿀이 흐르는데 이것은 그 땅의 과일이니이다 28 그러나 그 땅 거주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 29 아말렉인은 남방 땅에 거주하고 헷인과 여부스인과 아모리인은 산지에 거주하고 가나안인은 해변과 요단 가에 거주하더이다 30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조용하게 하고 이르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 31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이르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32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33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답: 10사람은 인간들의 상태를 중심으로 봤고, 두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의 눈으로 봤다.
가데스 바네아에 있을 때 히브리인들이 저지른 죄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올라가서 그 땅을 차지하라고 말씀하셨다. 가나안 땅을 정탐하기 위해 12명의 정탐꾼을 보냈다.
그들이 가지고 돌아온 보고서는 두 가지였다. 다수는 부정적인 보고를 했다. 그 땅에는 거인들이 있고, 도시는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한 번도 본 적 없는 무기와 잘 훈련된 군대가 있다는 것이었다. 반면에 우리는 군사 경험이 거의 없는 이집트의 노예 출신에 불과하다. 10명의 정탐꾼들은 인간적인 관점에서 본 압도적인 증거를 근거로 가나안 정복을 반대했다. 오직 두 명의 정탐꾼만 하나님 말씀의 강력한 능력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찬성을 말했다.
<교훈>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구주께서 거절당하셨다. 말씀을 의심하는 것은 모든 죄의 시작이다. 우리는 믿음으로 말씀을 받아야 한다.
<부가설명> 그리스도인은 마음의 눈을 떠야 한다(엡1:18). 열 정탐꾼은 육신의 눈으로만 봤다. 두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의 눈으로 정탐했다. 예수님을 믿음은 기록된 말씀을 믿는 믿음이다. 출생해서 성장하는 아기들은 성장 과정이 온전히 부모님을 믿는 믿음 훈련 과정이다. 사람들은 그렇게 믿음 훈련으로 성장한 다음 학문을 배우고 사회를 경험하면서 쌓아온 믿음은 무의식으로 무너지고 의심이 자리를 차지한다. 그렇게 의심하기 때문에 확인이 필요하다. 확인을 위하여 확인할만한 것들을 다 들춘다. 그것이 학문이 되고 과학이 되고 철학이 되었다. 그래서 오직 믿음으로 확인되는 신앙을 실험과 증명이라는 이름으로 파괴해 버렸다. 사탄의 에덴동산에서 의심을 불어넣었는데, 예수께서 40일 금식 후에도 같은 방법으로 예수님께 의심을 불어넣으려고 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믿음으로 말씀에 굳게 서서 그를 물리쳤다. 유대인들은 의심으로 복음을 거절했다.
11월 28일(목) 정죄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요 3:18-21, 요 1:10 비교).
사람들이 심판받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3:18, 36; 요 5:24, 38; 요 8:24; 요 12:47)
[요3:18,36]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36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요5:24,3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38 그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가 보내신 이를 믿지 아니함이라.
[요8: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하였노라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요12:47]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지라도 내가 그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
*답: 예수님을 믿지 않고 그분의 말씀을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의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것은 우리를 의심과 마귀의 유혹에 빠지게 한다. 그것은 빛에서 어둠으로 돌아서는 것이다.
하와는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빛을 받았다. 사탄은 그 빛을 의심하도록 유혹했다. 그녀는 하나님은 사랑이며 당신이 창조하신 피조물을 멸망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시험했다. 그녀는 또한 자신의 감각을 신뢰했다. 뱀은 그 열매를 먹었기에 이제 말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 것 같았다. 그녀는 열매를 먹으면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는 뱀의 말이 어쩌면 맞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기만당한 하와는 빛에서 돌아섰고 아담도 같은 길을 선택했다.
마태복음 4:1-4을 읽어 보라. 그리스도는 광야의 시험 앞에서 사탄의 속임수에 맞서 싸우기 위해 어떤 원칙을 사용하셨는가?
[마4:1~4]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2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3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답: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했고 거기 굳게 섰다.
그리스도께서 시험을 대하실 때도 아담과 하와, 홍수 이전의 사람들, 가데스 바네아의 이스라엘이 소유했던 것과 동일한 인성을 가지고 계셨다.
사랑의 하나님이 왜 아들을 음식과 보호도 없이 광야에 40일 밤낮으로 내버려 두실까 질문할 수도 있었다. 또한 돌을 떡으로 만들어 당신이 아들이심을 증명하기로 마음먹을 수도 있었다! 많은 사람, 심지어 믿음을 가진 사람들도 흔히 하는 것처럼 그분도 잘못된 결정을 내리는 것을 합리화하기 쉽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그분은 시험 앞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응답하셨다. 그분은 이 땅의 사고방식이 아닌 하늘의 것을 기준으로 행동하셨다.
<교훈> 사탄은 의심하게 하고 하나님 말씀을 시험하게 한다. 예수님은 합리화하지 않고 말씀으로 응하셨다. 그분은 이 땅의 방식이 아닌 하늘의 기준으로 행동하셨다.
<부가설명> 사탄이 사람들에게 사용하는 가장 효과적인 무기가 의심을 일으키는 것 같다. 태초의 여자에게 사용한 방법이었고 40일 금식 후에 예수님께 사용한 방법이다. 사탄은 의심을 제거하려면 바른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고 논리를 제시한다. 그것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돌들을 떡덩이가 되게 하라’ ‘돌들이 떡덩이가 되면’ ‘네가 하나님의 아들 맞다.’ 이런 논리다. 이것은 논문 쓰는 방법이다. 즉, 가설(만일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실험(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가정대로 되면(실험 성공), 가정이 사실이다(하나님의 아들 맞다). 이 규정에 맞지 않으면 가정은 사실이 되지 않는다. 사탄이 제시한 이 방법은 오늘날 학문에 철칙이 되었다. 이 규정에 맞추어 가설이 사실로 성립되면 거기에 상당한 대우를 한다. 석사. 박사가 다 이런 규정의 틀에서 나온다. 예수님은 이런 사탄의 방법으로 굳어진 인간 학문의 방법을 따르지 않았다. 기록된 말씀을 그대로 믿었다. 그리스도인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성경을 그대로 믿고 기록한 말씀대로 따르면 된다. 예수님은 유대인이 그렇게 하지 않고 그들의 해석을 따르는 것을 책망했다. 그것은 사탄의 길을 따르는 것이라고 분명히 지적하셨다(요8:43,44).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줄 아는 사람인가?
11월 29일(금)
시대의 소망 1장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66장 “논쟁”을 읽어 보라.
"그리스도께서는 자기를 낮추시고 인성을 취하심으로써 사탄의 품성과 정반대되는 품성을 드러내셨다. 그분은 그 굴욕의 길에서 한층 더 밑으로 내려가셨다.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8). 대제사장이 화려한 예복을 벗고 일반 제사장의 세마포 옷을 입고 봉사한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는 종의 형상을 취하시고 자신이 제사장으로서 그리고 자신이 제물도 되셔서 제사를 드리셨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사 53:5)린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로 당신의 받으실 대접을 받게 하기 위하여 우리가 받아야 할 대우를 받으셨다. 그리스도께서 당신과 아무 상관이 없는 우리 죄를 인하여 정죄함을 받으신 것은 우리로 우리가 아무런 공헌도 한 바 없는 당신의 의로 의롭다 하심을 받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시대의 소망, 25).
함께하는 토의를 위하여
1. 예수님은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너무나 많은 것을 주셨다. 다른 사람이 이 놀라운 진리를 보고 믿음으로 그분께 나아오도록 돕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답: 자신이 말씀대로 생활하여 본이 되고 말씀을 올바르게 전하는 것이다.
2. 세상의 차원에서 인간적인 결정을 내리는 것과 하나님의 계시에 근거하여 결정을 내리는 것의 주요 차이점은 무엇인가?
*답: 인간논리를 따르는 것과 하나님을 믿는 것의 차이다.
3.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는 데 논리나 이성은 어떻게 부합하는가? 우리가 믿음을 갖게 된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예언의 성취나 창조 세계의 놀라운 아름다움과 심오함 같은 것들이 어떻게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우리에게 하나님의 존재와 구원 계획의 진리를 알려 주는가?
*답: 믿음의 논리는 성경 말씀 안에 있는 말씀의 논리다. 말씀 밖의 논리로 말씀을 연구하면 오류로 가게 된다(고전4:6 참고).
4. 당신의 믿음은 무엇에 근거하고 있는가? 누군가 당신이 예수님을 믿는 이유와 복음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답: ‘기록되었으되’라는 예수님의 방법으로 대하면 된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