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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과 어둠을 밝히는 빛(질문, 대답, 설명) 04/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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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4-04-11 21:28 조회3,30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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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과 어둠을 밝히는 빛 

(4월 20일 안식일 / 일몰: 오후 7시 12분)

  

연구 범위: 요 8:44, 잠 23:23, 행 20:27~32, 살후 2:7~12, 시 119:105, 116, 130, 133, 160, 잠 16:25, 고후 4:3~6.

 

기억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둠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어둠에 다니는 자는 그 가는 곳을 알지 못하느니라”(요 12:35).

 

성경의 마지막 책 요한계시록에서 마귀는 용과 뱀으로 나타난다(계 12:9). 마귀는 하나님의 백성을 멸망시키려고 하기에 용이고, 온갖 교활한 거짓말로 그들을 속이려고 하기에 뱀이다.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신 후 로마 제국은 황제 숭배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수천 명의 그리스도인을 고문하고, 사자에게 던지고, 화형에 처했다. 그러나 이런 잔인한 박해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 믿음을 지켰고, 복음은 계속 전파되었으며, 교회는 성장했다.

그래서 사탄은 전략을 바꿨다. 수많은 이교도가 침례를 받았지만 성경 진리에 대한 분명한 교육을 받지 못했다. 지도자들이 성경의 진리를 대중의 관습에 영합하면서 교회 안에 오류가 물밀듯 밀려 들어왔다. 4세기와 5세기는 교회 고위 성직자들이 이교의 관습과 기독교의 가르침을 혼합한 타협의 시대였다. 하지만 가장 어려운 시기에도 하나님은 그의 백성과 여전히 함께하셨다. 그들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만났고, 성령의 능력에 힘입어 믿음을 포기하라는 엄청난 압력을 이기고 양심을 지켰다. 그들은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에 충실했고, 공공연하게 혹은 교묘하게 가해지는 압력에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 말씀의 진리에 굳게 섰다.

 

*학습 목표

깨닫기: 하나님의 말씀만이 세상을 어둡게 덮은 사탄의 오류 가운데 밝은 빛을 주신다. 

느끼기: 영생의 소망을 주는 생명의 말씀을 소중히 받고 삶의 빛으로 삼아야 함을 느낀다. 

행하기: 하나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 사탄의 오류를 멀리하며 진리를 따라 순종한다. 

 

TMI 위로

2. 사탄이 인류에게 거짓말이나 타협을 사용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요 8:44)

*답: 예수님을 부인하게 하는데 좋은 도구이며 그 자신에게는 거짓뿐이니까.

3. 거짓이나 타협이 아닌 진리에 순종하는 것은 왜 중요합니까?(행 20:29~30)

*답: 그것만이 영생을 지키게 한다. 거짓 교훈이 난무할 것이기 때문이다.

4. 성경이 아니라면 그대는 어떻게 신앙의 원칙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딤후 3:16)

*답: 없다.

5. 사탄이 인간을 기만하는 데 성공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삿 21:25)

*답: 자기 생각에 옳은 대로 살기 때문이다.

6. 미혹하는 시험에서 우리의 마음을 지키기 위해 어떤 것이 필요하겠습니까?(요 1:14)

*답: 말씀이 육신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

7. 성경을 연구하면서도 깨어 있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막 13:37)

*답: 예수께서 그렇게 명하셨기 때문이다. 마지막 때까지 미혹이 있을 것을 아시고 경고하신 것이다.

 

결론  

핍박 앞에도 충성하고 번성하는 교회에 대해 사탄은 전략을 바꾸었다. 세상을 기만하는 사탄의 교활한 거짓말에 빠져 교회는 타협하고 오류에 빠져 구원의 기별을 바르게 전할 수 없었다. 우리의 눈을 가리고 어둡게 하는 사탄의 기만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다. 우리가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 말씀의 진리에 굳게 선다면 사탄의 기만은 우리를 흔들 수 없을 것이며 진리의 빛이 우리의 길을 밝게 비출 것이다. 

 

4월 14일(일) 타협: 사탄의 교활한 전략

 

요한복음 14:6과 요한복음 8:44을 비교해 보라. 이 구절에서 예수님의 성품과 사탄의 성품의 어떤 대조를 볼 수 있는가?

[요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답: 예수님은 길, 진리, 생명이시지만, 마귀는 거짓말쟁이, 거짓의 아비, 살인자.

 

예수님은 진리의 근원이시기 때문에 그분의 말씀은 진리이다. 진리는 전지하시고 모든 지혜에 뛰어나시며 사랑으로 충만하신 하나님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분은 모든 사실과 진리의 근원이시다.

반면에 사탄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이다. 그는 거짓말, 기만, 잘못된 정보, 진리의 왜곡 등 하나님의 백성을 타락하게 만들기 위한 모든 것에 통달했다. 그는 진실을 왜곡하고 의심을 일으키며 하나님의 말씀을 노골적으로 부인함으로 에덴에서 하와를 속였다. 선악과를 먹어도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고 말한 사탄의 주장은 하나님의 말씀과 분명히 반대되는 것이었다. 사탄은 여러 세기에 걸쳐 같은 전략을 사용해 왔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신뢰를 약화시키고, 하나님이 보여주신 뜻을 거스르며, 성경을 왜곡하고, 때로는 자신에게 유리하게 성경을 악의적으로 인용하기도 한다.

 

잠언 23:23, 요한복음 17:17, 요한복음 8:32을 읽어 보라. 이 구절에서 하나님 말씀이 진리라는 사실에 대한 어떤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는가? 요점은 무엇인가? 

[잠23:23] 진리를 사되 팔지는 말며 지혜와 훈계와 명철도 그리할지니라.

[요17:17]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요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답: 샀으면 팔지 말아야 하는 것이 진리이다. 그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이고 자유하게 한다.

 

“사탄은 성경이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의 기만을 간파하게 해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기의 권세에 대항하게 해줄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세상의 구주이신 주님도 성경 말씀으로 사탄의 공격을 물리치셨다. 그분께서는 사탄이 공격해 올 때마다 ‘기록되었으되’라는 영원한 진리를 방패로 삼아 대응하셨다. 사탄의 모든 도전을 그리스도께서는 성경 말씀의 지혜와 능력으로 대항하셨다. 그러므로 사탄이 사람들을 마음대로 지배하고, 하나님의 권위를 찬탈하는 법왕권을 세우려면 반드시 사람들을 성경에 대하여 무지하게 만들어야 할 것이었다. 성경은 하나님을 높이는 동시에 유한한 사람의 위치를 나타내 주는 것이므로, 성경의 신성한 진리를 가리워 버리거나 없애 버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리하여 이러한 논리가 로마교에 의해 적용되었다. 수백년 동안 성경의 보급은 금지되었고, 사람들은 성경을 읽거나 집에 간직해 둘 수 없었다. 성경의 원칙에서 벗어난 신부들과 주교들이 그들의 진위가 모호한 주장들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성경의 가르침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였다. 그같이 하여 사람들은 법왕이 세상에 있는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교회와 국가를 지배할 수 있는 권위를 가졌다고 시인하기에 이르렀다”(각 시대의 대쟁투, 51).

 

<교훈> 사탄은 말씀에 대한 신뢰를 흔들고, 비방하며, 왜곡하고 또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잘못 인용한다. 우리는 성경을 방패로 삼아 말씀의 진리에 굳게 서야 한다. 

 

<부가설명> 예수님은 태초부터 계시는 말씀이시다. 그분의 다른 이름 하나니가 ‘하나님의 말씀’이다(계19:13). 말씀 하나님께서 사망의 세상에 오셔서 피를 흘려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사망을 폐하셨다(히2:14, 딤후1:10). 또 기록한 말씀을 주셨다. 이제 사람 된신 말씀 하나님의 실체를 우리가 여기서 보지 못해도 기록해주신 말씀으로 만날 수 있게 하셨다. 사탄은 이 기록된 말씀 성경을 사람들이 읽을 수 있는 동안 예수님을 믿지 못하게 할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았다. 그래서 창세 이후로 없는 대 환난을 일으켰다(마24:21,22). 그것이 1,260년 간의 환난이다. 그것은 말씀을 없애기 위한 핍받이다. 이 기간에 성경은 가질 수 없고 읽을 수 없는 금서(禁書)기 되었다. 이 사건을 계시록 11장에 상징으로 계시해놓으셨다. 그러나 그 날들을 감해주셨기에 1517년에 루터를 통하여 종교 개혁을 일으키사 성경을 족쇄에서 풀어놓으셨다. 그리고 1804년에 대영성서공회를 설립하게 하셔서 성경이 대량으로 보급되게 하셨다. 그러자 이제는 성경을 왜곡하게 하도록 성직자들을 사로잡에 해석을 인간의 학문과 지식으로 풀이하도록 해서 진리를 왜곡시켰다.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는 왜곡된 해석을 진리인 것처럼 믿고 전한다. 세상 끝날까지 그럴 것이다. 그래서 때가 찼을 때 남은 자손을 일으키셨는데 이 교회도 성경으로 성경을 해석하는데서 조금씩 떠나서 하지 말라고 한 그 철학적 신학을 많이 의지한다. 사탄은 그렇게 진리교회를 잠식하고 있다. 조심하지 않으면 언제 사로잡힐는지 모른다. 정신 차리고 진리를 오직 성경으로 해석하고 깨닫는 믿음으로 살자. 해석은 하나님께 있기 때문이다(창40:8). 

 

4월 15일(월) 사나운 이리들

 

사도행전 20:27~32을 읽어 보라. 사도 바울은 다가올 배교에 대해 에베소 교회 지도자들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경고를 했는가?

[행20:27~32]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여러분에게 전하였음이라 28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29 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30 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라 31 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32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답: 이리가 들어와서 양떼를 아끼지 않을 것이니 은혜의 말씀으로 든든히 서도록 하라고 경고했다.

 

바울이 권면한 목적은 다가오는 일에 대비하여 교회를 준비시키는 것이었다. 이 구절에서 그는 자신의 주된 염려를 말한다. 바울은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행 20:29)할 것을 우려한다. 신자들은 교회 내부에서 주어지는 극심한 어려움을 직면하게 될 것이었다. 

바울은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라"(행 20:30)며 우려를 나타냈다. 이단이 교회로 들어올 것이다. 거짓 교리가 거룩한 진리를 대신하게 될 것이며 이교의 관습이 교회에 널리 퍼지게 될 것이다. 4세기와 5세기에 선교 확장을 명분으로 타협의 자세가 교회에 교묘하게 스며들었다. 하지만 하나님 말씀의 진리에서 벗어나는 것은 끔찍한 결과를 낳을 뿐이었다. 

 

데살로니가후서 2:7~12을 읽어 보라. 사도 바울은 다가올 배도에 대해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가? 신자들은 그들에게서 어떤 특징을 찾을 수 있는가?

[살후2:7~12]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지금은 그것을 막는 자가 있어 그 중에서 옮겨질 때까지 하리라 8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그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 9 악한 자의 나타남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10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으리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 11 이러므로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12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답: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했는데, 그들은 속임 수, 거짓 기적, 능력으로 나타내며 그것이 마치 참 성령의 역사인 것처럼 보이게 한다.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다는 바울의 말을 생각해 보라. 바울의 시대에도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라는 하나님 말씀의 진리에서 점차 멀어지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러한 이탈은 후세에 더욱 두드러질 것이었다.

둘째 계명을 뒤로 제쳐둔 채 우상이 기독교 예배에 도입되었다. 수천 년 동안 모든 이교 종교의 전면에는 우상이 있었다. 개종하는 이교도들이 기독교를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소위 성자로 이름만 바꾼 이교의 신들이 교회로 들어왔다.

태양신을 숭배하는 날 일요일은 부활을 기념하는 기독교의 예배일로 점진적으로 채택되었다. 성경에 근거하지 않은 이 거짓된 날은 지금 더 널리 퍼져 있다.

 

<교훈> 선교 확장을 명분으로 교묘하게 스며든 타협의 자세는 교회가 하나님 말씀의 진리에서 벗어나게 하였다. 후세에 더 두드러진 거짓은 지금도 널리 퍼져 있다. 

 

<부가설명> 출애굽한 이스라엘의 역사는 교회 역사의 상징적 상태로 볼 수 있다. 그들은 모세의 인도로 애굽에서 나왔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큰 권능을 친히 보고 경험했다. 거센 홍해도 갈라서 마른 땅으로 건너게 했다. 광야 여행 모든 행로가 이적이었다. 그런데 얼마 안 돼서 송아지를 만들었다. 그만큰 애굽의 우상 종교의 영향에 빠져 있어서 무의식적으로 하는 종교가 그대로 우상 숭배 종교였다. 사회 분위기 문화 분위기라는 그 분위기는 그런 시대와 환경에 사는 사람들에게 무의식적으로 의식화된다. 그런 문화를 거절하면 왕따가 되고 시대에 뒤처지는 사람이 된다. 재림교회는 처음에 신학박사가 없었다. 그러나 세상이 박사라는 학위를 우대하니까 그 분위기를 따라 신학박사가 양산 되었다. 그 학위는 순수한 성경의 진리에만 서 있을 수 없다. 수많은 책을 읽고 각주를 달아서 학계가 인정할 수 있는 논문을 제출해서 통과해야 한다. 자기도 모르게 그들의 철학적 신학적 사상이 배어든다. 자기도 모르게 순수한 진리에서 아주 조금씩 떠난다. 그렇게 해야 학적 분위기에 맞추어나가게 된다. 나중에 보면 멀리 떠난 것을 깨달을 것이다. 우리는 절대로 순수한 말씀으로 돌아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모스 8:11~13절 상태에 떨어지게 될 것이다. 

 

4월 16일(화) 말씀으로 보호받음

 

요한복음 17:15~17과 사도행전 20:32을 비교해 보라. 사탄의 속임수로부터 보호받기 위해 예수님과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어떤 통찰력을 주고 있는가?

[요17:15~17]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16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17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행20:32]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답: 오직 기록된 말씀으로 속임수에서 안전할 수 있다. 말씀의 진리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무오한 계시이다. 성경은 인류 구원을 위한 하늘의 계획을 보여준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기에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딤후 3:16)다. 즉,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것이기에 일부분만 영감을 받았거나 특정 부분이 다른 부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성경 전체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쉽게 미혹에 빠지게 될 것이다. 

성경은 대쟁투에 나타난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분명히 보여준다. 성경은 사탄의 미혹을 공개하고 그의 속임수를 드러낸다. 사탄은 하나님의 말씀을 증오하며 그 감화력을 파괴하기 위해 수세기 동안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왔다. 

성경이 없다면 우리가 구원의 계획에 대해 무엇을 알 수 있겠는가? 성경 없이 예수님의 탄생, 생애, 가르침 그리고 사역에 대해 우리가 과연 얼마나 이해할 수 있는가? 무엇을 어떻게 알겠는가? 그리스도의 희생의 깊이와 부활의 영광, 그분의 중보사역의 능력과 장엄한 재림의 모습을 성경 없이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이 모든 중요한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계시되고, 강조되며 가르침 받게 되어 있다. 성경, 오직 성경만이 모든 신성한 진리를 이해하는 최종적이고 궁극적인 기준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성경의 권위나 영감을 훼손하려는 모든 시도에 맞서 싸워야 한다. 특별히 성경에 대한 큰 사랑을 공언하면서 교묘하게 성경에 대한 의심을 불러일으키는 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비극적이게도 우리에게 스며든 현대적 사고의 영향으로 많은 신학자와 기독교인들이 성경을 인간적인 관점으로 이해하려다 보니 어느새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인간의 말이 되어 버렸다. 

그들은 성경을 그 저자인 왕, 목자, 어부, 사제, 시인 등이 하나님과 자연, 그리고 현실에 대한 그들의 이해와 개념을 자신의 시대와 장소에 맞게 당대의 사람들이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공유한 기록이라고 주장한다.

무슨 말인가? 이게 사실이라면, 오늘날 21세기를 사는 우리가 오래된 그들의 생각에 관심을 가져야 할 필요는 무엇이며, 과연 그것을 영원한 소망의 기초로 삼을 수 있겠는가? 그럴 수 없을 것이다. 

 

<교훈> 모든 중요한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발견하고 배우게 되어 있다. 오직 성경만이 모든 신성한 진리를 이해하는 최종적이고 궁극적인 기준이다. 

 

<부가설명> 성경은 성경의 해석을 성경이 한다고 계시하였다. 요셉은 옥중에서 꿈꾸고 그 의미를 알려고 하는 두 관원에게 말하면서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않습니까?’(창40:8)라고 했다. 하나님께서 계시나 꿈으로 영감으로 주셨다(민12:6). 이사야를 통하여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사55:8,9)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그런데 사람이 자기 생각과 지식으로 성경을 해석하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시도다. 그런데 오늘날 강단을 맡은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을 뒤지고 주석책을 뒤진다. 참고가 되는 것은 맞다. 그러나 최종 해석은 오직 성경에서 얻어야 한다. 그래서 예수님은 성령을 보내서 말씀을 깨닫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요16:13~15).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고전2:9~14). 우리는 이 말씀을 깊이 새겨 읽고 그대로 해야 할 것이다.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한” 그것을 어떻게 사람의 지식과 사상으로 해석하려고 하는가? 그는 또 하나의 루시퍼가 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4월 17(수) 성경을 벗어난 인간의 추론

 

성령은 우리의 마음을 통해 일하신다. 성령은 우리가 세상의 신비를 탐구하도록 초대한다. 누군가 말했듯이 "신자들이 교회에 들어설 때, 이성과 지성을 벗어서 외투 옷장에 맡겨두고 들어오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의 이성이 아무리 탁월해도 그것만으로 성경의 거룩한 진리를 이해할 수는 없다. 진리는 인간 견해의 영역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계시하심으로 알려지는 것이다. 

 

잠언 16:25, 사사기 21:25, 이사야 53:6을 읽어 보라. 이 구절은 사탄의 속임수와 전략에 대해 무엇을 말해주는가?

[잠16:25]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삿21:25]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사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답: 사람 보기에 바른 길이 사망의 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탄의 가장 성공적인 속임수 중 하나는 성령의 도움이나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이해 없이 인간의 이성만으로 하나님의 뜻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믿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가 보기에 또 모든 사람이 옳다고 여기는 방법이라도 하나님의 눈에는 완전히 잘못된 방법일 수 있다.

몇 년 전, 아내와 나는 하룻밤 지내기로 한 호텔 근처의 숲을 걷기로 했다. 평소 길 찾기에 능숙하기에 나는 여러 갈래의 길을 따라 한 시간 정도 걷고는 별 어려움 없이 숙소로 돌아오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거라 자신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나는 숲속에서 길을 잃고 말았다. 해가 지평선을 넘어갈 때쯤 나는 최악의 상황을 염려하고 있었다. 다행히도 우리는 길을 아는 다른 사람을 만났고, 숙소에서 적어도 8Km 넘게 벗어난 큰 도로 근처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차가 가까이 있으니 호텔까지 태워다 주겠다고 했다. 길을 아는 사람, 우리를 목적지까지 데려다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난 것이 우리가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던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하나님은 이 땅에서 하늘로 가는 여정에서 우리를 홀로 두지 않으신다. 성령은 우리를 본향으로 인도하는 거룩한 성경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진리와 오류, 옳고 그름, 선과 악은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볼 때만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에 맞지 않는 것은 오류이고 그것은 항상 위험하다. 하나님과 조화를 이루는 것은 진리이고 선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와 도덕의 최종 규범으로 삼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가

 

<교훈> 하나님의 말씀에 맞지 않는 것은 오류이고 조화를 이루는 것은 진리이며 선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와 도덕의 최종 규범으로 삼아야 한다. 

 

<부가설명> 우리가 성경을 연구할 때 사탄이 자신을 광명한 천사로 가장해서(고후11:13~15) 마치 성령의 감동으로 성경을 깨닫는 것처럼 접근한다는 것도 유의해야 한다. 마귀 사탄은 예수님께 기록하였으되라고 성경을 인용하여 시험했다. 예수님은 또 기록하였으되 라고 대답하셨다. 우리는 또 기록하였으되를 아는 것은 중요하다. 성경 구절을 들고 나온다고 다 성경적인 것은 아니다. 성경은 퍼즐 같아서 한쪽이라도 제자리에 맞지 않으면 그 그림은 틀린 그림이다. 성경 해석도 그와 같다. 모든 진리가 다 제자리에 들어맞을 때 비로소 신뢰할 수 있다. 그래서 성경 교사는 특히 주의해야 하고 많이 선생 되지 말라고 경고한 이유를 알 수 있다(약3:1). 그래서 기도하며 성령님 감동과 지도를 간절히 구하면서 성경이 성경을 해석하는 길을 찾아 성경을 연구하고 깨달아야 한다. 다니엘 계시록의 상징적 표현들은 성경이 그 상징을 해석하고 있다. 그것을 찾아서 깨달아야 한다. 다니엘 계시록만이 아니다. 모든 성경이 그렇다. 그래서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바른 해석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성경 통독이 필요하고 성구사전이 필요하다. 예수님은 모세가 떨기나무 불타는 것을 볼 때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하신 것을 죽은 자의 부활에 관한 말씀이라고 해석하셨다(막12:24~27). 그렇게 성경이 성경을 해석한 것을 찾는 지혜를 하나님께 구하고 성령님 감동으로 바른 깨달음을 얻도록 언제나 말씀 앞에 굴복하고 자기를 포기하도록 하자. 

 

4월 18일(목) 마음을 얻기 위한 싸움

 

고린도후서 4:3~6을 읽어 보라.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않는 자들의 마음을 가"(고후 4:4, 흠정역)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어떻게 해서 마음의 눈이 멀게 되었는가? 마음의 눈은 어떻게 하면 열 수 있는가?

[고후4:3~6]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4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5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6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답: 생각이 땅의 것에 집중되기 때문이다(고전15:47,48). 예수님을 향할 때 빛을 비추신다. 

 

이 구절에서 "마음"을 뜻하는 헬라어는 노에마(Noema)이다. 그것은 우리의 지각 또는 정신 능력을 의미한다. SDA성경주석은 이 구절을 탁월하게 통찰하고 있다. "그리스도와 사탄 사이의 싸움은 인간의 마음을 얻으려는 싸움이다(롬 7:23, 25; 12:2; 고후 3:14, 11:3, 빌 2:5, 4:7, 8). 사탄이 하는 주된 일은 사람의 마음을 눈멀게 혹은 어둡게 하는 일이다. 사탄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지 못하도록 하고, 육체와 영혼의 과도한 사용으로 정신력을 교란시키며, 이생의 사물에 온통 마음을 뺏기도록 하고, 자만심과 자기를 높이는 정신에 호소하여 이 일을 이룬다"(SDA 성경주석 12권, 398).

구원을 잃은 자들에게 지식이 부족한 것은 알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알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은 진리를 알 수 있는 모든 기회에도 불구하고 믿지 않기로 선택했고, 사탄은 그들의 눈을 멀게 했다. 사탄의 왕국은 어둠의 왕국이다. "복음은 사탄의 사악한 계획과 기만을 드러내고, 사람들에게 어둠에서 빛으로 가는 길을 보여주는 유일한 수단이다"(SDA성경주석 12권, 399). 신약 성경이 전하는 기별의 본질은 예수님의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이다. 그분이 복음의 본질, 성경의 중심이며 모든 성경은 예수를 증거한다(요 5:39).

 

요한복음 1:4, 5, 9, 14을 읽어 보라. 이 구절은 예수님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가? 특별히 요한복음 1:14을 주의 깊게 살펴보라.

[요1:4,5,9,1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5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답: 생명, 빛, 육신이 되신 말씀.

 

초기 기독교 교회는 어둠 가운데 빛을 비추어 주시는 그리스도께 전적으로 헌신했다. 그리스도의 은혜는 그들을 구속했고, 그리스도의 능력이 그들을 변화하게 했으며, 그리스도의 사랑은 그들의 원동력이 되었다. 

죽음마저도 그리스도를 향한 그들의 충성을 깰 수 없었다. 복음의 빛은 마귀의 속임수를 분별하게 했고 주님의 은혜로 진리를 위해 굳게 서는 남녀 성도들이 항상 그리스도의 편에 있었다. 어두운 시대 속에서도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 진리의 빛이 세상을 밝게 비추었다.

 

<교훈> 복음은 사탄의 계획과 기만을 드러내고, 어둠에서 빛으로 가는 길을 보여주는 유일한 수단이기에 그는 우리 눈을 가리고 예수님과 복음을 보지 못하게 한다. 

 

<부가설명> 예수님 당시 유대인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 서기관과 율법사들은 다 예수님이 읽은 같은 성경을 읽었다. 그들은 율법의 선생이 되어 가르치기도 했다(롬2:17~21). 그런데 성경이 예수님을 가리키고 있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요5:39,40). 같은 구절을 읽고도 이해가 달랐다. 그들은 이사야 53장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므로 오해함이 아니냐”(막12:24). 그들은 성경 선생이었다. 그런데 예수님은 성경을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셨다. 성경은 그 자체에 하나님의 능력이 있다(히4:12,13). 그런데 그들은 인간의 지식으로 성경을 풀이하되 자기들의 이기심을 따라 풀이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깨달을 수 있었겠는가? 이것은 그들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우리도 그런 오류에 빠질 수 있다. 어떤 경우 스스로 대답을 만들어놓고 그 대답에 성경을 꿰어 맞추려고 한다. 확증편향이라고 표현하는 현상이다. ‘주일은 일요일이다.’라고 정해놓고 거기 맞는 성경 구절을 찾는 것이나, ‘영혼은 불멸이다.’라고 정해놓고 어떤 구절들을 거기 맞추어 해석하고 이해하고 그렇게 가르친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 선생들과 다를 것이 없다. 재림교회 선생들은 이런 상태에 빠지지 않았는지 선생된 자들이 자신을 깊이 살펴야 할 것이다. 이런 글을 쓰는 필자도 예외가 아니다. 오직 성령께서 하나님의 뜻대로 말씀을 깨닫게 해주시도록 날마다 굴복할 수밖에 없다.

 

4월 19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하여

 

"진리를 미워하고 반대하는 동일한 정신이 각 시대를 통하여 하나님의 원수들을 충동시켜 왔다. 그리고 하나님의 종들에게는 경계와 충성이 요구되어 왔다. 그리스도께서 최초의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은 말세에 사는 그분의 제자들에게도 적용되는 말씀이다. 그분께서는 “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이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막 13:37)고 말씀하신다"(각 시대의 대쟁투, 56).

세계 여러 곳에서, 특히 사람들이 성경을 자유롭게 접할 수 있는 곳에서 사탄은 성경의 영향력을 감소시키기 위해 여러 가지 다른 수단을 사용해 왔다. 그중에 매우 효과적인 방법은 다양한 과학적 방법이나 심지어 성경 학술 연구를 이용하는 것인데, 이런 방법은 자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신뢰를 흔들어 놓았다. 예를 들어, 성경이 말하는 다니엘서의 시대는 기원전 500여 년 전이지만, 많은 성경 학자들은 다니엘서의 연대가 기원전 2세기 중반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다니엘서가 이 시기에 쓰여진 것이 분명하다고 주장한다. 다니엘이 미래를 예언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역사가 이루어진 이후의 기록이기 때문이지, 그렇지 않고서는 이렇게 정확하게 예언할 수 없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따라서 그들은 다니엘서가 실제로는 성경의 기록보다 수백 년 후에 기록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안타깝게도 성경에 대한 이런 거짓말은 현대 성경 학계가 어느새 바꾸어 놓은 수많은 오류의 일부에 불과하다. 더 안타까운 것은 성경 학자들이 이것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오류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바울이 우리에게 "모든 것을 시험해 보고 선한 것을 굳게 붙들라"(살전 5:21, 흠정역) 경고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함께하는 토의를 위하여 

1. 화요일 교과의 인용문을 참고하라. 사탄은 성경의 권위를 교묘하게 약화시키기 위해 오늘날 어떤 유사한 방법을 사용하고 있는가?

*답: 다양한 학문적인 해석법으로 말씀의 본의를 왜곡시킨다(암8:11~13 참고).

2. 하나님 말씀을 잘못 해석하는 것을 방지하는 가장 중요한 안전장치는 무엇인가?

*답: 오직 성경이 성경을 해석하는 길을 따라야 한다.

3. 선과 악의 대쟁투에서 사탄이 가장 많이 시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을 비방하고 그분을 권위주의적이며 무자비한 폭군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마귀는 이것을 어떻게 시도하고 있으며, 그의 거짓말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은 무엇인가?

*답: 성경에 기록된 이스라엘의 역사에 나타난 전쟁과 살육에 관한 기록들과 사랑의 하나님이 왜 이렇게 하느냐는 의구심으로 혼란하게 한다. 그 대답은 예수님과 그분의 고난과 십자가이다. 

4. 베드로는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벧후 1:20)라고 단언한다. 자기 유익을 위해서 성경의 뜻을 왜곡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생각보다 이런 왜곡이 더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그런 일에서 

자신을 보호할 수 있겠는가?

*답: 성경은 절대적인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확신하는 믿음이다. 그리고 해석이 하나님께 있다는 계시를 믿고 성경으로 성경을 해석하고 깨닫도록 기도하고 성령께 굴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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