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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과 영원토록 여호와를 경배함(질문, 대답, 설명) 03/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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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4-03-14 22:10 조회3,79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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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과 영원토록 여호와를 경배함 

(3월 23일 안식일 / 일몰: 오후 6시 46분)

 

연구 범위: 시 134:, 사 42:10~12, 계 14:3, 시 15:, 101:1~3, 96:, 계 14:6~12, 요 4:23, 24

 

기억절: "내가 평생토록 여호와께 노래하며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내 하나님을 찬양하리로다"(시편 104:33).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에 대한 우리의 경험이 커질수록 우리는 시편 기자처럼 묻게 된다.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시 116:12)? 합당한 대답은 하나님께 충성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시편에서 이스라엘은 단순한 국가가 아니라 "예배드리기 위해 모인 백성"이다(시 22:22, 25, 35:18, 쉬운). 이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다른 나라에게 그분에 대해 증거하는 이스라엘의 주된 소명을 나타낸다. 주님은 온 세상이 당신의 백성과 함께 예배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주님의 백성은 주님을 경배하고 하나님과 그 사랑에 소망을 두는 의인을 의미한다. 

회중 가운데서 주님을 찬양하는 것이 이상적인 예배이다. 그렇다고 개인적인 기도와 찬양이 열등한 예배라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개인의 예배를 통해 공동체는 새로운 찬양을 더하게 되고(시 22:22, 25), 또 공동체와의 긴밀한 관계 속에서 개인의 예배는 그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게 된다. 예배 공동체는 "정직한 자들의 모임"이라고도 불린다(시 111:1). 정직한 사람은 하나님을 알고(시 36:10), 하나님께서도 그를 아시며(시 37:18), 이러한 경험은 그들의 존재의 모든 측면에 스며든다.

 

*학습 목표

깨닫기: 예배는 본분이며 우리는 하나님의 다함 없는 은혜를 영원히 찬양해야 한다. 

느끼기: 하나님은 우리의 예배가 진실하기를 원하시므로 회개와 정직한 마음을 원하심을 느낀다. 

행하기: 온전한 예배롤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웃에게 그 영광을 전한다. 

 

TMI 위로

2. 시편은 성소에서 경배할 때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어떤 일이 있음을 말합니까?(시 67:1)

*답: 긍휼히 여기시고 복 주시고 얼굴 빛을 비추신다.

3. 새노래는 어떤 노래이며 새노래로 찬양하라는 것은 어떻게 찬양하라는 것입니까?(계 5:9)

*답: 구원받은 감사와 감격의 노래며 예수님이 구원하신 사실을 찬양하는 것이다.

4. 시편은 하나님 앞에 서기 위해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합니까?(시 101:2) 

*답: 완전한 길에서 완전한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5. 복음과 심판의 선포는 예배의 어떠한 측면을 의미하며 어떤 모습으로 나타납니까?(시 96:4)

*답: 하나님만을 진정으로 경배하는 모습이다. 

6. 하나님은 왜 규례대로 드린 절기와 제사를 기뻐하지 않으셨습니까?(시 50:8)

*답: 삶은 말씀대로 하지 않으면서 절차에 따라 예배하는 것은 위선이다.

7. 우리의 예배에서 필수적인 요소는 무엇이라고 성경은 말합니까?(요 4:23)

*답: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것이다. 

 

결론: 하나님의 백성은 예배하는 백성이다. 개인의 예배와 공동체의 예배는 서로 보완하며 온전하게 경배하도록 돕는다. 예배는 온전하고 정직한 자의 것이며 하나님은 우리의 거짓과 형식을 받지 않으신다. 우리의 예배에는 회개와 진실함이 필요하며 그것은 삶으로 나타나야 한다. 우리가 삶으로 주님을 경배할 때 세상은 주님의 영광을 볼 것이며 주님은 그런 예배를 통해 온 세상이 하나님께 나오기를 원하신다.   

 

3월 17일(일) 성소에서 너희 손을 들고

 

시편 134편을 읽어 보라. 여기서 예배는 어디에서 드려지는가? 주님을 예배한 결과는 무엇인가?

[시134:1~3] 보라 밤에 여호와의 성전에 서 있는 여호와의 모든 종들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2 성소를 향하여 너희 손을 들고 여호와를 송축하라 3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답: 성전,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주시는 복을 받는다.

 

시편 134편은 민수기 6:24~26(시 67:1)에서 하나님께서 아론에게 가르쳐 주셨던 백성을 향한 축복을 상기시키며, 축복을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 관계의 기본 원리와 그 결과로 강조한다. 백성들은 성소에서 하나님을 송축하고, 하나님은 시온에서 그분의 백성에게 복을 주신다. 주님은 하늘과 땅의 창조주이시기 때문에 그 복은 모든 생명에게 미친다. 시온을 하나님의 특별한 축복의 장소로 언급하는 것은 주님과 그분의 백성과의 언약적 유대를 강조하는 것이다. 즉, 은혜의 언약 안에서 이스라엘은 주님을 송축하는 특권을 갖고 그분으로부터 복을 받는다. 

 

시편 18:1, 36:1, 113:1, 134:1, 2, 135:1, 2를 읽어 보라. 이 시편은 예배자들을 어떻게 그리고 있는가?

[시18:1]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시36:1] 악인의 죄가 그의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그의 눈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빛이 없다 하니,

[시113:1] 할렐루야, 여호와의 종들아 찬양하라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라.

[시134:1,2] 보라 밤에 여호와의 성전에 서 있는 여호와의 모든 종들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2 성소를 향하여 너희 손을 들고 여호와를 송축하라.

[시135:1,2] 할렐루야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하라 여호와의 종들아 찬송하라 2 여호와의 집 우리 여호와의 성전 곧 우리 하나님의 성전 뜰에 서 있는 너희여.

*답: 하나님을 사랑하고 두려워하며 그 이름을 찬양하고 손을 들고 송축하며 하나님의 집 성전 뜰에 서서 찬양했다.

 

시편은 종종 예배자를 주님의 종으로 묘사한다. "밤에 여호와의 집에 서 있는"(시 134:1) 자는 레위인들의 야간 문지기(대상 9:23~27) 봉사 또는 그들이 밤낮으로 하나님께 찬양(대상 9:33) 드린 것을 가리키는 것 같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경배하는 하나님은 어떤 형상으로도 나타낼 수 없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기 때문에 성소는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죄인들이 거룩한 왕에게 나갈 수 있는 안전한 환경을 제공하는 역할을 했다. 이 만남은 주님께서 친히 시작하셨고 그분의 율법과 규례로 운영되었다.

시편에 제시된 것과 동일한 사상을 신약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벧전 2:4, 5). 베드로의 글은 거룩한 제사장 직분이 된 하나님의 백성이 그들의 창조주이자 구속주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위해 행하신 모든 선한 일에 대해 찬양과 감사를 드리는 것에 대한 기록이다. 

 

<교훈> 시온은 하나님의 특별한 축복의 장소이며 백성과의 언약적 유대를 나타낸다. 그분의 은혜의 언약 안에서 우리는 주님께 나아가 찬양하며 복을 받는다. 

 

<부가설명> 공식적인 예배는 성전에서 했다. 예배에는 첫째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과 자세가 필요하다. 세상에서 신분이 높은 사람 앞에 갈 때도 마음 가집과 옷차림, 외모를 단정하게 한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정신으로 성전에 나가서 찬양하고 기도하며 감사한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들이 마땅히 갖추어야 할 자세를 생각해야 한다. 오늘날 예배에 임하는 신자들의 모습은 전혀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습이 아닌 것 같다. 복장부터 그냥 평소에 입던 평상복 차림으로 오는 신자들이 있다. 부모님 생신이나 환갑연에 참석할 때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옷을 갖추어 입고 절한다. 지근 예배당은 옛 이스라엘의 성전은 아니지만 예배하는 장소이다. 거기서 하나님께서 받으시기에 합당한 모습과 차림으로 예배하는 것이 성도들의 마땅한 자세다. 예수님은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하라고 하셨다(요4:23,24). 영과 진리로 예배한다는 말은 예배에는 장소보다 예배하는 사람이 핵심이라는 것을 가르친 것이다. 예배하는 사람은 인격이 예배적이어야 한다. 즉 영적 존재가 되어서 진리로 예배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 재림성도들이 예배 인격이 되기를 바라신다.

 

3월 18일(월) 새 노래로 여호와를 찬양하라

 

시편 33:3, 40:3, 96:1, 98:1, 144:9, 149:1을 읽어 보라. 이 구절들의 공통적인 주제는 무엇인가?

[시33:3]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즐거워하라 찬송은 정직한 자들이 마땅히 할 바로다.

[시40:3] 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 많은 사람이 보고 두려워하여 여호와를 의지하리로다.

[시96:1]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라 온 땅이여 여호와께 노래할지어다.

[시98:1] 새 노래로 여호와께 찬송하라 그는 기이한 일을 행하사 그의 오른손과 거룩한 팔로 자기를 위하여 구원을 베푸셨음이로다.

[시144:9]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새 노래로 노래하며 열 줄 비파로 주를 찬양하리이다.

[시149:1] 할렐루야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며 성도의 모임 가운데에서 찬양할지어다.

*답: 새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여 찬양하라는 것이다.

 

이 시편들은 우리에게 "새 노래"를 부르라고 말한다. "새 노래"는 무엇을 말하는가? "새 노래"의 이유는 세상을 다스리시는 주님의 위엄과 주권을 새롭게 발견하고, 창조주이자 심판자이신 그분의 돌보심과 구원에 다시금 감사하는 것이다. 원수와 죽음으로부터의 구원,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은 "새 노래"를 부르는 좀 더 개인적인 동기이다. 다른 노래들도 주님의 사랑과 자비, 놀라운 일을 찬양하지만 "새 노래"는 이를 다시 찾은 기쁨을 표현하고 주님께 새로운 헌신을 약속하는 특별한 노래이다. 하나님의 구원을 새롭게 경험하는 것은 주님을 창조주이자 왕으로 모시게 한다. "새 노래"의 공통 주제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 그분의 놀라운 위업에 대한 찬양, 고난으로부터의 구원 등이다. 

 

이사야 42:10~12, 요한계시록 5:9, 14:3을 읽어 보라. 이 구절을 통해 "새 노래"에 대해 무엇을 알 수 있는가?

[사42:10~12] 항해하는 자들과 바다 가운데의 만물과 섬들과 거기에 사는 사람들아 여호와께 새 노래로 노래하며 땅 끝에서부터 찬송하라 11 광야와 거기에 있는 성읍들과 게달 사람이 사는 마을들은 소리를 높이라 셀라의 주민들은 노래하며 산 꼭대기에서 즐거이 부르라 12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며 섬들 중에서 그의 찬송을 전할지어다.

[계5:9] 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계14:3] 그들이 보좌 앞과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속량함을 받은 십사만 사천 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답: 새노래는 예수께서 인간을 구원하신 구원의 노래다. 구원받은 사람이 아니면 배울 수 없는 노래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은 "그를 가까이 하는 백성"(시 148:14)이라는 애정 어린 표현으로 묘사된다. 이는 이스라엘이 모든 피조물 중에서 가장 특별한 지위를 가지고 있으며 하나님을 찬양할 가장 큰 의무와 특권이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성경은 모든 세대의 신자들에게 어린양의 보혈로 말미암은 구원에 대한 각자의 경험을 담은 새 노래로 구원자이신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권면한다. "새 노래"는 이전에 들어본 적이 없는 노래, 자신의 삶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생생하게 경험한 것을 기념하는 노래, 또 미래에 경험하게 될 이전에는 몰랐던 하나님의 권능에 대한 소망을 표현하는 것이다. 

참된 예배는 제사와 예물 그 이상의 것이며 항상 새롭고 역동적인, 하나님과의 살아있는 관계를 반영한다. '새 노래'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에 대한 우리의 사랑과 감사를 매일 매일 새롭게 표현하는 것이다.

 

<교훈> "새 노래"는 주님의 사랑과 자비를 다시 찾은 기쁨을 표현하며 새롭게 경험한 구원의 기쁨과 은혜를 생생하게 표현하고 새로운 헌신을 약속하는 노래이다. 

 

<부가설명> 애굽에서 구원받아 홍해를 건너 구원이 확실하게 되었을 때 모세는 노래를 구원받은 이스라엘이 부르도록 가르쳤다. 그것은 유리바닷가에서 구원받은 모든 성도들이 부를 모세의 노래요 어린양의 노래다(계15:2,3). 이 노래는 구원의 노래인데 구원받은 사람만이 부를 수 있는 특별한 노래다. 예수님은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찾으신다고 하셨다. 영과 진리, 개역에는 신령과 진정이라고 번역한 그 말씀이 무슨 뜻인가? 사마리아 여자가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이 예배에 대하여 말할 때 예배 장소를 중요하게 가르친 것을 말했을 때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는 장소 전에 예배하는 자가 어떤 자여야 하는지 가르치신 것이다. 그들은 영적 존재가 되어서 진리를 거슬러 아무것도 할 수 없는(고후13:8) 인격이 된 자들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구원받았다는 증명이다. 예배하는 자는 거듭나서 영적 존재가 되어야(롬8:9) 하고 그의 삶은 오직 진리를 생활하는 인격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친 것이다. 우리가 예배하러 예배당에 앉았을 때 자신을 잘 살피고 이런 경험에 이르도록 간구하고 아직 그렇지 못했으면 그렇게 되도록 성령님의 강한 역사를 간구해야 할 것이다. 진정으로 예배의 인격이 되도록 복을 주소서. 

 

3월 19일(화) 주여, 누가 주의 장막에 거하리까?

 

시편 15편을 읽어 보라. 하나님 앞에 경배드리기 합당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시15:1~5]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사는 자 누구오니이까 2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실천하며 그의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3 그의 혀로 남을 허물하지 아니하고 그의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웃을 비방하지 아니하며 4 그의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들을 존대하며 그의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하지 아니하며 5 이자를 받으려고 돈을 꾸어 주지 아니하며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하지 아니하는 자이니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이다.

*답: 온전히 거듭나서 하나님의 법도대로 생활하는 사람이다.

 

이 시편은 율법과 선지자가 이미 제시한 요구사항, 즉 행동("정의를 행하며")과 품성("네 마음 속에 두고")에 하나님을 반영하는 사람(신 6:6, 미 6:6~8)에 대한 요약이다. 성소는 거룩한 장소였으며 제사장을 포함하여 성소 안의 모든 것은 거룩하게 구별되었다. 따라서 거룩함은 하나님 앞에 나가기 위한 필수 요건이다. 이스라엘의 거룩은 예배와 윤리가 일치하고 삶의 모든 면에서 실천되는 포괄적인 것이어야 했다. 율법은 하나님의 백성이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제사장 나라로 살아가도록 주어졌다. 왕 같은 제사장 직분에는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삶을 살며 다른 나라에게 언약의 축복을 나누는 것이 포함된다. 

 

시편 24:3~6, 101:1~3을 읽어 보라. 거룩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시24:3~6]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 4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5 그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 6 이는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요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로다.

[시101:1~3] 내가 인자와 정의를 노래하겠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찬양하리이다 2 내가 완전한 길을 주목하오리니 주께서 어느 때나 내게 임하시겠나이까 내가 완전한 마음으로 내 집 안에서 행하리이다 3 나는 비천한 것을 내 눈 앞에 두지 아니할 것이요 배교자들의 행위를 내가 미워하오리니 나는 그 어느 것도 붙들지 아니하리이다.

*답: 믿음으로 말미암은 온전한(도덕적) 삶이 확실한 자들이다.

 

하나님 앞에선 예배자의 가장 큰 특성은 "완전한 마음"이다. 히브리어 타밈(tamim)은 "완전하다"는 뜻으로 "완전함"과 "온전함"이라는 개념을 나타낸다. 에스겔 15:5의 "완전한" 포도나무는 온전하고, 손상되지 않고, 건강한 것이다. 제물로 바쳐진 동물은 타밈, 즉 흠이 없는 동물이어야 했다(레 22:21~24). "온전한" 말은 전적으로 진실한 말이다(욥 36:4). 따라서 "완전한 마음"은 "청결한 마음"(시 24:4) 또는 진실한 마음(시 15:2)이다. 그것은 하나님을 찾고(시 24:6) 하나님의 용서를 받음으로 정결하게 된다(시 51:2~10). 흠 없는 삶은 하나님의 은혜와 그분의 의를 인정하는 데서 시작한다. 하나님의 은혜는 하나님의 종들이 주님을 경외하는 삶, 즉 막힘 없이 하나님과 교제하며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도록 영감을 주며 능력을 준다. 헌신하는 경건한 삶은 자신의 영광이 아닌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으로 나타난다. 

시편 15편의 대부분의 요구사항은 부정적인 용어로 제시되어 있다(시 15:3~5). 그 요구사항은 하나님의 은혜를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을 피하도록 주어진 것이다.

 

<교훈> 하나님 앞에 나가는 거룩하고 온전한 삶은 그분의 은혜와 의를 인정하고 주님을 경외하며 예배하는 삶이 매일의 생활과 일치하는 복을 나누는 삶을 의미한다. 

 

<부가설명> 시편 15편이나 101편의 내용은 사람이 진정으로 회개하고 물과 성령으로 난 사람들에게 영적 생명의 생리현상으로 이루어지는 것들이다. 사람이 자기 노력이기 전에 이미 그에게 있는 예수님의 생명이 생활하는 모습이다. 생명은 생활을 낳는다. 죽은 자는 절대로 스스로 움직일 수 없다. 그러나 산자는 그를 살게 하는 생명이 그를 움직이게 한다. 생명이 작용하는 원리를 생리라고 한다. 생리(生理)란 생명이 작용하는 원리를 뜻하는 말이다. 우리 육체의 생명도 생활하는 원리가 있다. 숨 쉬고 먹고 마시고 활동하는 것이 다 생명이 하는 것이다. 그처럼 영의 생명 곧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영원한 생명도 생리가 있다. 이 생명이 나타내는 생활 원리는 사랑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생명의 본성이 사랑이라고 가르친다. 사랑하지 않는 자는 사망에 머문 자라고 했다.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요일3:14). 하나님의 산에 살 수 있는 사람은 거듭난 사람이고 그의 삶이 거듭난 생명의 생활 원리를 따라 이루어지는 사람이다. 시편이 기록한 것은 이런 사람에 대한 것이다. 성경이 도덕적 삶이나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에 대하여 말할 때는 다 이런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계명이 지켜지는 것은 그것이 영적 생명의 생리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분의 계명이 영생임을 아노라”(요12:50, 한글킹).

 

3월 20일(수) 열방 중에 주의 영광을 선포하라

 

시편 96편을 읽어 보라. 이 시편에는 예배의 어떤 다양한 측면이 언급되어 있는가?

[시96:1~13]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라 온 땅이여 여호와께 노래할지어다 2 여호와께 노래하여 그의 이름을 송축하며 그의 구원을 날마다 전파할지어다 3 그의 영광을 백성들 가운데에, 그의 기이한 행적을 만민 가운데에 선포할지어다 4 여호와는 위대하시니 지극히 찬양할 것이요 모든 신들보다 경외할 것임이여 5 만국의 모든 신들은 우상들이지만 여호와께서는 하늘을 지으셨음이로다 6 존귀와 위엄이 그의 앞에 있으며 능력과 아름다움이 그의 성소에 있도다 7 만국의 족속들아 영광과 권능을 여호와께 돌릴지어다 여호와께 돌릴지어다 8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지어다 예물을 들고 그의 궁정에 들어갈지어다 9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여호와께 예배할지어다 온 땅이여 그 앞에서 떨지어다 10 모든 나라 가운데서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니 세계가 굳게 서고 흔들리지 않으리라 그가 만민을 공평하게 심판하시리라 할지로다 11 하늘은 기뻐하고 땅은 즐거워하며 바다와 거기에 충만한 것이 외치고 12 밭과 그 가운데에 있는 모든 것은 즐거워할지로다 그 때 숲의 모든 나무들이 여호와 앞에서 즐거이 노래하리니 13 그가 임하시되 땅을 심판하러 임하실 것임이라 그가 의로 세계를 심판하시며 그의 진실하심으로 백성을 심판하시리로다.

*답: “여호와께 노래하고(시 96:1, 2), 그의 이름을 송축하며(시 96:2), 그의 선하심과 위대하심을 선포하고(시 96:3, 4), 예물을 들고 궁정에 들어가는 것(시 96:8), 만민 가운데 주님의 나라를 선포하는 복음이 포함되었다.

 

예배에는 여호와께 노래하고(시 96:1, 2), 그의 이름을 송축하며(시 96:2), 그의 선하심과 위대하심을 선포하고(시 96:3, 4), 예물을 들고 궁정에 들어가는 것(시 96:8)이 포함된다. 시편은 예배의 친숙한 특징 외에 분명하게 알려지지 않은 다른 측면, 즉 만민 가운데 주님의 나라를 선포하는 복음의 차원을 강조한다(시 96:2, 3, 10).

예배의 요소들과 복음 선포는 별개의 행동이 아니라 예배의 다양한 표현이다. 만민에게 하나님의 구원을 선포하는 것은 찬양에 구체적 맥락을 더해 주고 예배를 충만하게 한다. 예배의 이유가 다른 민족에게 선포된 기별과 어떻게 일치하는지 생각해 보라. "여호와는 위대하시니"(시 96:4), "만국의 모든 신들은 우상들이지만 여호와께서는 하늘을 지으셨음이로다"(시 96:5),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니"(시 96:10), "그가 땅을 심판하러 임하실 것임이라"(시 96:13). 전도의 목표는 만민을 하나님의 백성과 연합시키고 궁극적으로 온 피조세계가 주님을 경배하는 것이다(시 96:11~13).

예배는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한 내적 인식에서 비롯된다. 그는 창조주이시며 왕이시고 재판관이시다(시 96:5, 10, 13). 따라서 예배는 하나님이 과거에 하신 일(창조)을 기억하고, 현재의 놀라운 임재(세상을 유지하고 다스리시는 것)를 찬양하며, 미래에 이루실 역사(종말의 심판과 새 하늘과 새 땅에서의 새 삶)를 기대하는 것이다.

시편에서 심판은 현재 불의와 고통으로 신음하는 세상에 평화, 정의, 안녕의 하나님의 질서가 회복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온 땅은 하나님의 심판을 기대하며 즐거워한다(시 96:10~13, 시 98:4~9). 동시에 주님이 의로우신 심판자라는 사실은 사람들이 거룩하고 "떨림"으로 그분을 경배하도록 동기를 주고 예배를 경홀히 여기지 않도록 경고한다(시 96:9). 예배는 엄청난 기쁨과 확신(시 96:1, 2, 11~13), 그리고 거룩한 두려움과 경외심(시 96:4, 9)을 모두 포함한다.

창조주요 심판자이신 분을 경배하라는 시편 96편의 전 우주적인 호소는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마지막 복음 선포인 요한계시록 14:6~12의 세 천사의 기별에도 기록되어 있다. 여러 면에서 시편 96편은 창조, 구원("영원한 복음"), 예배, 심판을 포함하는 마지막 때의 모든 기별을 담고 있다. 

 

<교훈> 예배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심을 깨닫고 경외하는 것이다. 전도의 궁극적인 목표도 만민을 하나님의 백성과 연합시켜 온 피조세계가 주님을 경배하는 것이다.

 

<부가설명> 신약성경은 예배의 두 가시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요한복음 4:23,24과 로마서 12:1,2이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사실을 찾을 수 있지만 이 두 구절은 예배 원리를 선명하게 설명한다. 요한 복음에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하라고 할 때 ‘예배’는 ‘프로스퀴네오’다. 이것은 예배하는 사람의 인격에 관한 말씀인데, 또 헬라어는 손에 입 맞춘다는 뜻이 있다. 즉 절하는 모습이다. 자세히 설명하면 ‘머리를 숙이다’, ‘경외함으로 절하다’, ‘손에 입맞추’라는 데서 나온 말이다. 이 말은 예모를 갖추어 공경하는 것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예식 예배라고 표현할 수 있다. 공중예배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 예배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영이 되고 진리로 사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런데 로마서 12:1,2에 있는 ‘영적 예배’라는 말은 ‘라트레이아’이다. 이것은 일차적으로는 제사 예배를 나타낸다. 그러나 영어 번역대로 이것은 srervice이다. 봉사라는 말이다. 이것은 성도들의 생활이 예배가 되어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한 주동안 생활예배로 주님께 영광을 돌린 사람들이 공동체 예배에 참석하여 ‘프로스퀴네오’해야 한다는 것을 잘 나타낸다. 시 96편은 이 진리를 종합적으로 표현하였다.

 

3월 21일(목) 하나님께서 예배를 기뻐하지 않으실 때

 

시편 40:6~8, 50:7~23, 51:16~19을 읽어 보라. 이 구절들은 어떤 중요한 문제를 다루고 있는가? 하나님은 왜 당신이 규정하신 말씀대로 드린 제사를 기뻐하지 않으시는가(출 20:24)?

[시40:6~8] 주께서 내 귀를 통하여 내게 들려 주시기를 제사와 예물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번제와 속죄제를 요구하지 아니하신다 하신지라 7 그 때에 내가 말하기를 내가 왔나이다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이 두루마리 책에 있나이다 8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 하였나이다.

[시50:7~23] 내 백성아 들을지어다 내가 말하리라 이스라엘아 내가 네게 증언하리라 나는 하나님 곧 네 하나님이로다 8 나는 네 제물 때문에 너를 책망하지는 아니하리니 네 번제가 항상 내 앞에 있음이로다 9 내가 네 집에서 수소나 네 우리에서 숫염소를 가져가지 아니하리니 10 이는 삼림의 짐승들과 뭇 산의 가축이 다 내 것이며 11 산의 모든 새들도 내가 아는 것이며 들의 짐승도 내 것임이로다 12 내가 가령 주려도 네게 이르지 아니할 것은 세계와 거기에 충만한 것이 내 것임이로다 13 내가 수소의 고기를 먹으며 염소의 피를 마시겠느냐 14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존하신 이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16 악인에게는 하나님이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내 율례를 전하며 내 언약을 네 입에 두느냐 17 네가 교훈을 미워하고 내 말을 네 뒤로 던지며 18 도둑을 본즉 그와 연합하고 간음하는 자들과 동료가 되며 19 네 입을 악에게 내어 주고 네 혀로 거짓을 꾸미며 20 앉아서 네 형제를 공박하며 네 어머니의 아들을 비방하는도다 21 네가 이 일을 행하여도 내가 잠잠하였더니 네가 나를 너와 같은 줄로 생각하였도다 그러나 내가 너를 책망하여 네 죄를 네 눈 앞에 낱낱이 드러내리라 하시는도다 22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 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시51:16~19] 주께서는 제사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17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18 주의 은택으로 시온에 선을 행하시고 예루살렘 성을 쌓으소서 19 그 때에 주께서 의로운 제사와 번제와 온전한 번제를 기뻐하시리니 그 때에 그들이 수소를 주의 제단에 드리리이다.

[출20:24] 내게 토단을 쌓고 그 위에 네 양과 소로 네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라 내가 내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모든 곳에서 네게 임하여 복을 주리라.

*답: 말씀대로 생활하지 않으면서 제사하기 때문이다.

 

시편 기자들은 선지자들과 마찬가지로 예배가 본래의 의미를 잃는 것을 견책한다. 이 구절들은 주께서 이스라엘의 제사와 절기를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혐오하게 만드는 예배와 영성 사이의 심각한 괴리에 대해 말하고 있다. 

하나님은 백성의 제사와 번제물이 아니라 그들의 삶에서 행한 악과 불의한 행위를 책망하신다(시 50:8, 17~21). 시편은 제사와 예배가 아니라 예배자들이 이러한 불의 가운데 드리는 헛된 제사와 공허한 예배를 반대하고 있다.

예배의 외적 표현과 올바른 내적 동기가 조화되지 않을 때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실제 경험보다 의식 자체가 더 중요해진다. 즉, 예배가 가리키고 나타내야 하는 하나님이 아닌 예배의 형식 그 자체가 목적이 된다. 

 

요한복음 4:23, 24을 읽어 보라. 오늘 시편이 경고하고 있는 내용과 정확히 일치하는 어떤 내용을 예수님은 이 구절에서 말씀하고 계시는가?

[요4:23,24]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답: 예배하는 자는 영과 진리로 예배해야 한다.

 

제물을 드리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제물을 드리는 사람의 마음에 회개와 믿음, 죄에 대한 애통함이 없다면 제물을 드리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회개와 진실한 감사가 동반될 때에만 황소의 희생은 "의의 제사"(시 51:19, 시 50:14)로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 예수님은 이사야의 말을 인용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마 15:8). 시편 기자들이 말하는 문제는 예수님께서 지상에서 봉사하실 때 일부 사람들, 특히 지도자들에게서 겪으셨던 것과 동일한 문제였다.

 

<교훈> 예배의 외적 표현과 내적 동기가 조화되지 않을 때 예배는 왜곡되고 형식이 강화된다. 하나님은 오직 회개와 진실한 감사가 동반되는 예배를 기뻐 받으신다. 

 

<부가설명> 요한복은 4:23,24의 내용은 수요일 부가설명에서 말했다. 오늘 교과는 예배는 인격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세 천사의 기별은 예배 회복의 기별이기도 하다. 창조주를 경배하라고 했는데, 여기 ‘경배’라는 말은 ‘예배’라는 말고 같은 ‘프로스퀴네오’이다. 예배에 창조하신 하나님을 빠뜨리면 예배가 되지 않는다. 그보다 더 요긴한 것은 예배하는 사람의 상태다. 예배자는 그 사람이 예배적 인격을 이루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예배적 인격을 이루는 것은 거듭나는 것이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면 영이 된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요3:6). 예수께서 니고데모에세 거듭남을 가르치시면서 하신 말씀이다. 물과 성령으로 나면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라고 하신 그 말씀에 해당된다. 바울도 같은 뜻을 말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8:9). 성령이 주장하는 사람은 육신에 있지 않고 영에 있다. 진정으로 거듭나면 예배적 인격이 된다. 성도들은 자기가 거듭났는지 매일 물으면서 바울의 고백이 우리 고백이 되게 해야 한다.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15:31). 바울은 날마다 죽는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날마다 부활하는 삶을 살았다. 우리도 매일 자아가 죽고 예수님 안에서 거듭난 존재로 매일 부활하는 경험이 믿음의 삶이 되도록 성령께서 역사해주시도록 기도하자. 

 

3월 22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하여

 

예배의 핵심에는 회개, 참된 회개가 필수적이다. "회개라는 것은 죄를 슬퍼하고 죄에서 떠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가 죄가 얼마나 악한 것인지 깨닫지 못하면 죄를 버리지 않게 될 것이요, 또한 진심으로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면 우리 생애에 진정한 변화가 없을 것이다. 회개의 참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이 많다. 많은 사람은 저희의 악행이 저희 자신에게 고통을 미치게 할까 두려워 저희가 범죄한 것을 후회하고 혹은 외형적 변화를 나타내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이 의미하는 회개가 아니다. 저들은 죄보다 그에 따른 고통을 슬퍼한다.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영구히 잃어버린 것을 알게 되었을 때에 슬퍼한 것이 그런 것이다. 칼을 빼어들고 자기의 가는 길에 선 천사를 보고 발람은 두려워서 자기 생명을 잃을까 염려하여 자기 죄를 자백하였다. 그러나 그는 진정으로 죄를 회개하지도 않았고 목적을 바꾸지도 않았고 악을 미워하지도 않았다. 가룟 유다도 자기의 주를 판 후에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마 27:4)고 부르짖었다"(정로의 계단, 22, 23).

"하나님께서 그들이 그 전에 함께 모여 당신을 찾고 저희 죄악들을 고백하고 서로를 위하여 기도할 때에 성령을 통해 그들과 만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러나 하나님께 예배하러 모이는 자들은 모든 악한 일을 버려야 한다. 그들이 신령과 진리와 거룩함의 미덕으로 하나님을 예배하지 아니하면 저희의 모임은 아무 유익이 없다. 그에 대하여 주께서는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마 15:8, 9)한다고 선언하신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여야 하는데 이는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요 4:23)기 때문이다"(선지자와 왕, 50).

 

함께하는 토의를 위하여

1. 주님께 드리는 가장 큰 예물은 무엇인가(시 40:6~10, 롬 12:1, 2)?

*답: 몸(자신)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제사로 드리는 것이다.

2. 개인 예배와 공동체 예배는 서로 어떤 관련이 있는가? 왜 둘 다 필요한가? 각각은 서로를 어떻게 향상시키는가?

*답: 개인이 예배적 인격이 되어 생활예배가 이루어질 때 공동체 예배가 진정한 예배가 된다.

3. 많은 사람이 예배를 기도, 찬양, 성경연구와 예언의 신 연구 등에만 관련된 것으로 이해한다. 이는 예배에 필수적이지만 예배는 그런 활동에만 국한되는 것인가? 다른 형태의 예배에 대해 예를 들어보라. 

*답: 롬12:1,2이 생활예배를 계시한 말씀이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4. "그를 섬기는 일을 마음을 슬프게 하거나 괴롭게 하는 일로 생각지 말 것이다"(정로의 계단, 103). 어떻게 하면 주님을 경배하는 것이 즐거움이 될 수 있는가?

*답: 구원받은 기쁨이 주장할 때 감사와 즐거움으로 예배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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