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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과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방법(질문, 대답, 설명) 07/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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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3-07-15 00:57 조회6,801회 댓글0건

본문

제4과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방법

(7월 22일 안식일 / 일몰: 오후 7시 49분)

 

연구 범위: 엡 2:1~10, 엡 5:14, 롬 5:17, 엡 5:6, 딤후 1:7 

 

기억절: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엡 2:4, 5).

 

1987년 10월 14일, 18개월 된 아기 제시카 맥클루어(Jessica McClure)는 이모의 집 뒷마당에서 놀다가 7m 높이의 버려진 지하수 관정에 빠졌다. 세계 각국의 미디어가 텍사스주 미들랜드로 모여들었다. 전 세계의 시청자들은 아기 제시카가 자고, 울고, 노래하고, 엄마를 찾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구조대원들이 우물에 신선한 공기를 공급하는 모습도 함께 응원했다.

제시카가 추락한 지 58시간이 지난 후, 전 세계 시청자들은 제시카가 이틀 넘게 갇혀 있던 지름 20cm의 구덩이에서 마침내 풀려나는 드라마 같은 장면을 지켜보았다. 그 순간을 포착하여 퓰리처상을 수상한 사진작가 스캇 쇼(Scott Shaw)의 사진은, 온몸이 붕대로 감긴 제시카와 그 아기를 내려다보는 구조대원들의 걱정스러운 얼굴을 통해 ‘아기 제시카’의 극적인 구조의 순간을 잘 담고 있다. 

출구가 없어 보이는 위기 가운데서 건져내는 구조의 이야기는 모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바울은 엡 2:1~10에서 역사상 가장 웅장하고 대대적인 구조 작전, 즉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하시는지 매우 상세하고, 개인적인 관점을 제공한다. 이 긴박한 드라마에서 우리가 그저 다른 이의 구조를 지켜보는 구경꾼이 아니라 자신의 구조에 대한 증인이라는 사실이 이 이야기를 더 주목하게 한다. 

 

*학습 목표

~ 깨닫기: 죄인이 경험하는 깊은 어려움과 그것에서 구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깨닫는다. 

~ 느끼기: 위대한 구원의 이야기에 동참할 주인공으로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셨음을 깨닫는다. 

~ 행하기: 구원의 은혜 가운데 거하며 세상에 은혜를 나누는 증인이 된다. 

 

TMI 위로

2. 바울은 왜 살아있는 에베소인들을 죽은자라고 표현했습니까?(엡 2:1)  

*답: 그들은 아담 안에서 사망의 존재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우리도 똑같다.

3. 본질상 진노의 자녀라는 의미는 우리의 어떤 면들을 포함합니까?(엡 2:1~3)  

*답: 아담 안에서 다 사망이 된 존재라는 뜻이다. 그들은 모든 것이 세속적이다.

4. 이전의 삶을 지배했던 것들이 그리스도에 의해 어떤 것으로 바뀌었습니까?(엡 2:4~6)

*답: 새로운 존재가 되어 예수님과 함께 하늘 보좌에 앉은 자가 되었다. 

5. 우리의 삶을 바꾸어 주는 하나님의 은혜는 어디까지 미칩니까?(엡 2:7)

*답: 세상 끝날 세대까지 미친다.

6. 죄인이 구속받는 본질적인 변화는 어떤 것에 기초해 이루어집니까?(엡 2:8~9) 

*답: 하나님의 은혜에 기초해 있다.

7. 신자들의 선행은 구속(사)에 있어서 어떤 역할을 합니까?(엡 2:10) 

*답: 새로운 피조물의 생활 모습일 뿐이다. 

 

결론 

하나님은 그대를 위대한 구원의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삼으셨다. 어둠 속에 있던 본질상 진노의 자녀인 그대를 미래의 빛나는 영광까지 이끌기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죽음, 부활, 높이 들리심을 겪으셨다. 신자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 과정에 동참하게 되는 것은 그들의 어떠한 공로도 아닌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다. 

 

7월 16일(일) 죽었던 자요 사탄에게 속은 자

 

엡 2:1~10을 읽어 보라.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하신 일에 대해 바울이 이 구절에서 우리에게 말하는 중심 사상은 무엇인가?

[엡2:1~10]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10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답: 전에는 본질상 진노의 자식으로 허물과 죄로 죽은 자인데 하나님의 사랑으로 예수님 안에서 새롭게 지음을 받은 사람이 되었다.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요 선물이다. 

 

바울은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구원에 대해 이미 설명했고(엡 1:3~14, 15~23), 에베소에 있는 신자들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이야기했다(엡 1:13). 엡 2:1~10에서 바울은 그들의 회심 이야기를 좀 더 개인적인 관점에서, 보다 자세하게 설명한다. 그는 그들의 과거의 죄 많은 상태(엡 2:1~3)를 그리스도의 부활, 승천, 높임 받으심 (엡 2:4~7)에 참여하게 될 하나님의 구원의 축복과 대조하고, 그 구원의 근거가 하나님의 은혜와 창조 사역에 있음을 찬양한다(엡 2:8~10).

본문의 세 부분은 엡 2:5에 명쾌하게 요약되어 있다. 

(1) 우리는 허물로 죽었고 (2)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으로 (3) 우리는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다. 

엡 2:1, 2에서 바울은 그들이 회심 전에 영적으로 죽어 있었고, 일상에서 허물과 죄를 일삼았으며(엡 2:1), 사탄의 지배를 받았다고 언급함으로써 신자들의 회심 이전 생애의 슬픈 현실을 생각하게 한다(엡 2:2). 바울은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고 있기 때문에 그들을 한때 "죽은 자"라고 은유적으로 표현했다(엡 5:14 비교).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분리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때 그들의 곤경은 매우 현실적이고 끔찍했다(골 2:13, 롬 5:13, 롬 6:23 비교).

바울은 청중들의 과거 삶을 되돌아보면서 그들을 지배했던 두 가지 외부 세력을 확인한다. 첫번째는 "이 세상 풍조"(엡 2:2)로, 인간의 삶을 하나님에 대한 반역으로 왜곡시킨 에베소 사회 전반의 관습과 행동이다. 두번째 외부 세력 ~ 이전의 그들을 지배했던 사탄을 바울은 두 가지 방식으로 묘사한다. 

"공중"(또는 "하늘")은 악한 힘을 포함한 초자연적 힘의 위치로 인식되기 때문에(엡 1:3, 엡 3:10, 엡 6:12 비교) 사탄은 "공중의 권세 잡은 자"(엡 2:2)이다. 또한 그는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엡 2:2)이기에 지상에서도 활동한다.

 

<교훈> 바울은 허물과 죄로 죽은 상태에 있던 에베소 교인들의 이전의 모습을 살펴보는 것을 통해 구원의 복을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와 창조를 찬양한다. 

 

<부가설명> 성경을 읽고 배우는 사람들이 성경이 가르치는 본질적 죄가 무엇인지 계시한 것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일반적으로 죄는, 사람이 도덕적으로 나쁜 짓을 하거나, 나라의 법률을 어겼거나, 종교인이 교리를 배반한 것 등을 뜻하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모두 사람의 사상과 행위가 중심에 있다. 그런데 성경이 가르치는 본질적 죄는 그런 것이 아니다.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5:12).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롬5:18)라고 했다. 여기 ‘많은’으로 번역된 헬라어는 ‘파스’인데 ‘모든’이다. 영어는 ‘all’로 번역했다. 어떻게 한 사람이 저지른 죄가 모든 사람의 죄가 된다는 말인가? 인간 행위로 저지른 죄는 죄를 지은 그 당사자에게 국한한다. 그런데 성경은 한 사람의 범죄로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고 한 범죄로 모든 사람이 정죄 받았다고 한다. 참 어처구니없는 주장이다. 그러므로 죄가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개개인의 행위에 관한 것이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성경이 계시한 본질적 죄는 한 사람 아담으로 말미암아 그의 모든 후손이 사망의 존재가 된 것을 뜻한다. 이것을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고전15:22)이라고 하였다. 성경이 계시한 본질적 죄, 본질적 진노의 자녀라는 말은 아담의 씨로 출생하여 하나님의 생명이 없이 죽을 존재가 된 사실을 뜻한다. 증언의 말씀은 이렇게 설명했다. “첫째 아담과의 관계에서 인류가 그에게서 받은 것이란 죄와 사형 선고밖엔 없다.”(새 자녀 475)”. 이것이 성경이 계시한 죄다. 그래서 죄 사함을 받은 결과가 영생하는 생명을 얻는 것이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죄가 조상이 사망이 된 결과 모든 사람이 그 안에서 사망이 된 사실을 뜻한다는 것을 깨달을 때, 한 사람 마지막 아담 예수님 안에서 사망이 폐하여지고 생명을 얻는 구원을 받는다는 진리를 올바르게 깨닫게 된다. 죄의 본질을 모르면 구원도 모른다. 아멘.

 

7월 17일(월) 육신의 욕망에 미혹되어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엡 2:3).

하나님의 개입이 없다면, 인간 존재는 엡 2:2에 언급된 외적인 힘만 아니라 내적인 것, 즉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며"(엡 2:3; 약 1:14, 15, 벧전 1:14 비교) 그것에 의해서 지배받는다. 

 

바울이 그의 수신자들이 한때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엡 2:3)였다고 말한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엡 2:3, 엡 5:6 비교)

[엡2: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엡5:6]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

*답: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겨진 존재였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상태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지적한다.

 

생명을 잃은 현실도 충분히 고통스럽지만, 마지막 날에 일어날 일은 더 무서운 일이다. 인간은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엡 2:3)로서 종말에 하나님의 심판의 엄중함 아래 서 있다.

"본질상 진노의 자녀"라는 구절은 또 다른 무서운 현실을 가리킨다. 이 구절은 우리가 비록 하나님의 형상을 여전히 지니고 있지만, 우리 안에 깊은 문제가 있음을 가리킨다. 그리스도인의 삶을 산다는 것은 단순히 한두 가지 나쁜 습관을 극복하거나 현재 우리를 위협하고 있는 "허물과 죄"(엡 2:1)를 극복하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단지 죄와 싸우는 것만 아니라 죄된 본성과 싸워야 한다. 우리의 본성은 하나님에 대한 반역과 자기 파멸을 향해 기울어져 있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사탄의 명령(엡 2:2)과 우리 자신의 타고난 죄악된 욕망(엡 2:3)을 따라 자기 파괴적이고 죄악된 행동의 유형에 사로잡혀 있다. 신자들도 한때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다.

바울이 과거 시제를 사용했다는 점을 기억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신자들의 타고난 악에 대해 기울어진 성향이 더는 현실이 아니라는 의미는 아니다. 

바울은 편지의 상당 부분(엡 4:17~5:21)을 할애하여 죄의 본성에 뿌리를 둔 죄악된 행위가 여전히 그리스도인에게 위협이 된다고 경고한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신자는 더 이상 "옛 사람“의 지배를 받을 필요가 없다.

 

<교훈>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따라 죄된 본성으로 기울어진 옛사람의 삶을 벗고 새사람으로 살게 하는 것은 속사람을 변화시키시는 하나님의 개입하심이다.   

 

<부가설명> 우리교회에서는 타락한 본성이라는 말을 잘 사용하는 편이다. 타락한 본성의 실상이 무엇일까? 그것은 도덕적으로 선을 행할 능력이 전혀 없다는 뜻일까? 하나님의 율법을 지킬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뜻일까? 카톨릭의 원죄론이 바로 이렇게 주장한다. 그러나 바울은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다’고 했다(빌3:6). 또 ‘내가 자책할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나’(고전4:4)라고 말했다. 그러면 본질상 진노의 자식인 바울이 흠없이 율법을 다 지켰다는 뜻이 아닐까? 그렇게 살피니 본질상 진노의 자녀라도 흠없이 율법을 지켰다는 증명이 된다. 교과 저자는 “우리의 본성은 하나님에 대한 반역과 자기 파멸을 향해 기울어져 있다.”라고 말한다. 왜 그럴까? 성경이 계시한 이렇게 된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그냥 본성이 하나님에 대한 반역과 자기 파멸을 향해 기울어져 있다라고만 한다. 성경은 이것을 사망이 되어 썩어질 씨로 출생했기 때문이라고 계시하는데(벧전1:23), 그래서 썩어져가는 구습을 따른다고 했는데(엡4:22), 이것을 꼭찝어 가르치지 않는다. 아담 안에서 죽었기 때문에 죽은 것은 성질인 썩는 것이 삶이다. 도덕적으로 선하게 살아도 그것은 생명이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다만 썩는 것을 관리하는 것에 불과하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그분으로부터 하나님의 생명을 받으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 새사람이 된다. 이것을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엡 4:22~24)은” 것이라고 한다. 이제 더는 썩지 않게 되었다. 왜냐하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기 때문이다(요5:24).

 

7월 18일(화) 이제는,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 승천, 하늘에 앉음 

 

"그러나 더없이 자비로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크나큰 사랑을 베풀어 주셔서"(엡 2:4, 쉬운말). 바울은 “그러나 하나님은”이라는 단 두 단어로 편지의 수신자들이 겪었던 과거의 슬픔을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통해 새롭고 희망으로 가득찬 현실을 살게 된 신자의 삶으로 전환한다(엡 2:4–10).

 

신자들은 어떤 의미에서 그리스도의 부활, 승천, 하늘에 앉음에 참여하는가? 이러한 참여는 언제 이루어지는가?(엡 2:6, 7)

[엡2:6,7]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답: 예수님을 믿고 그분 안에 있을 때 그렇게 된다.

 

에베소서는 그리스도와 신자들의 연대를 강조하는, 그리스도로 가득한 서신인 것을 우리는 배웠다. 엡 2:5, 6에서 바울은 세 가지 “함께”라는 단어를 사용해 이 주제를 확장하여 하나님의 주도하심을 통해 신자들이 메시아 예수를 중심으로 하는 중요한 구속사적 사건에 참여한다는 놀라운 진리를 드러낸다.

신자들은 (1)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고, (2) 그리스도와 함께 일어나며(바울은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승천에 참여하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이 동사를 사용했다), (3)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음"을 받았는데, 이는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우주의 보좌에 "앉음"에 참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높임을 받는다.

바울이 얼마나 능력있는 말씀을 전하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엡 1:19~23을 되살펴 보면서 그리스도의 죽으심, 부활, 승천, 하늘에 앉으심을 통해서 한때 신자들의 삶을 지배했던 모든 악과 영적 권세로부터 승리를 얻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여전히 활동하며 인간의 존재를 위협하는 이 악의 권세가 예수님의 부활, 승천, 높임의 능력으로 완전히 대체되었다. 우주가 변화되었고 현실이 달라졌다.

신자들은 이 중대사의 단순한 구경꾼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그리고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부활, 승천, 하늘에 앉는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완전히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다. 우리는 마귀가 지배하는 삶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영적 풍요와 능력의 삶으로 전환할 수 있게 된 것이다(딤후 1:7).

 

<교훈> 그리스도의 삶에 일어난 부활, 승천, 높여짐은 우주를 변하게 했고, 신자들의 현실을 바꾸어 그들을 지배하던 악의 권세를 이기게 했다.   

 

<부가설명> 우리가 예수님 안에 있다는 말은 그분의 생명이 우리의 생명이 되었다는 뜻이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어야 한다는 말은 포도나무의 생명이 그 가지에 있다는 뜻이다. 그처럼 신자도 예수님의 생명이 그 속에 있지 않으면 예수님 안에 있는 것이 아니다. 바울은 이것을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으니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고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고 말했다(갈2:20). 그러면 생활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생명이 되신 예수님이 하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예수님 안에 예수님이 내 안에 있다는 뜻이다(요15:1~12). 이 말은 예수님을 진정으로 믿으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다는 뜻이다. 이것이 구원이다(요5:24,25). 그 전에는 사망이더니 이제는 생명이 된 것이다. 우리가 이 경험에 이르지 않으면 교인이기는 해도 그리스도인은 아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생명에 관하여 가르친다.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육체의 생명만 있는 자였고 그것은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 하는 생명이다(히2:15). 그러나 예수님을 믿을 때 사망을 이기고 더는 썩지 않은 존재가 되고 예수님의 향기를 풍기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는 절차가 바로 거듭남이다. 거듭남은 예수님과 함께 죽고 장사되고 예수님과 함께 부활하는 경험을 뜻하는 말이다. 우리는 거듭났는지 스스로 시험하고 살펴야 한다. 거듭난 증명은 그의 사고방식이 영적으로 된 것이다(롬8:5,6). “모든 생각을 사로잡에 예수님께 복종하는 것이다”(고후10:5). 다시 말하면 사고방식이 온전히 성경적이 되는 것이다. 그것이 거듭난 증명이며 예수님 안에 있는 표이다. 

 

 

7월 19일(수) 이제는, 은혜로 영원히 복 받음

 

엡 1:3, 4에 기록된 하나님의 구원 계획과 엡 2:7에 묘사된 그 계획의 영원한 결과를 비교해 보라.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필수 요소와 목표는 무엇인가?

[엡1:3,4]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엡2: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답: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흠없이 하려고 그 은혜의 풍성함을 여러 세대에 나타내시는 것이다. 

 

유치원이든 박사 학위든 졸업식은 뜻깊은 축하의 시간이다. 졸업은 인생이나 경력의 다른 단계로 나아가는 중요한 성취를 의미한다. 신자인 우리에게는 복음의 심오한 진리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이다. 

그러나 우리는 은혜로부터 결코 졸업하지 않는다. 우리가 은혜에 대한 박사 학위를 취득하거나 그것이 더는 필요 없어서 졸업하고 축하할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바울은 엡 2:7에서 이 진리를 확언하며 광범위한 연대기를 통해 그것을 강조한다. 하나님은 과거에 우리를 구속하기 위해 그리스도 안에서 행동하셨고, 현재 우리는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부활, 승천, 높여짐에 함께 참여하는 자로 간주하신다(엡 2:4~6). 하지만 하나님의 계획은 은혜 충만한 과거, 자비로 가득한 현재에서 끝나지 않는다. 태고의 신성한 의논에 뿌리를 둔(엡 1:4) 하나님의 계획은 미래의 영원한 때까지 펼쳐져 있다. 

여기에는 모든 "다가오는 시대"(엡 2:7, 흠정역)가 포함된다. 영원한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은 과거와 현재에 행하신 하나님의 행동과 동일한 원리, 즉 은혜의 원리에 기초한다. 하나님께서는 다가오는 시대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나타내시기를 고대하신다(엡 2:7).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를 신자들이 어떤 필요라도 충족시키기 위해 끌어올 수 있는 헤아릴 수 없는 가치를 지닌 보물이나 재산(엡 1:7, 엡 3:8 비교)으로 생각한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위대한 관대하심은 한량없고 영원하며 우주적인 그분의 은혜에 대한 증거이다. 

"예수께서는 우리와 함께 계시기 위하여 오심으로써 하나님을 사람들과 천사들에게 나타내시려 하셨다... 

그러나 이러한 계시가 주어진 것은 이 세상의 인간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이 작은 세계는 우주의 교과서이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의 목적 즉 구속하시는 사랑의 신비는 “천사들도 또한 살피기를 원하는” 주제로서 무궁한 시대를 통하여 그들의 연구 주제가 될 것이다. 구속(救贖)받은 자들이나 타락하지 않은 자들 모두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그들의 과학과 노래를 찾게 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서 비치는 영광은 자아 희생적(自我犧牲的) 사랑의 영광임이 드러날 것이다"(시대의 소망, 19, 20).

 

<교훈>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 개인을 위한 것만이 아니라 창세전부터 영원까지 이르는 더 큰 목적을 위한 것으로 온 우주가 그 영광을 보게 될 것이다. 

 

<부가설명> 은혜, 인간의 언어는 늘 제한적이다. 인간 사이에 나타내는 은혜는 “사람이나 신(神)이 어떤 사람에게 베푸는 도움이나 고마운 일. 은공. 은덕. 보권(寶眷). 혜은(惠恩).”라는 말로 정의 한다. 그런데 하나님이 베푸시는 것을 은혜라는 말로 표현하지만, 그 포함된 의미를 충분히 드러내는 것은 아니다. “성경에 기록된 은혜가 무엇인지를 정의할 때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요약할 수 있다.”라고 기독일보 블로그에 설명했다. “은혜는 하나님의 무조건적이고도 자의적인 사랑을 가리키는 말이다. 즉, 넓은 의미로는 대상의 가치나 공적에 관계없이 주어진 하나님의 사랑 곧 모든 피조물들에게 베풀어진 하나님의 자비로운 역사와 선하심을 의미한다. 그렇지만 좁은 의미로은 아담의 범죄와 타락 이후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십자가 수난, 부활 등의 사역을 통해 나타난 죄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적극적이고도 자기 희생적인 사랑과 관심을 뜻한다.” ([출처] 은혜란 무엇인가?|작성자 드림렌즈 박사) 네이버 블로거. 

  성경의 은혜를 설명하는 말들이다. 성경은 은혜를 이렇게 말한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요1:18). 결국 성경이 계시한 은혜는 예수님이시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그분 안에 있으면 은혜 안에 있는 것이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은혜 안에 있고 이 은혜를 나누는 사람들이다. 

 

 

7월 20일(목) 이제는, 하나님의 구원을 받음 

 

엡 2:1~10까지를 다시 읽고, 8~10에 나타난 바울의 결론을 집중해서 보라. 바울은 이 구절을 결론지으며 어떤 점을 강조하고 있는가?

[엡2:1~10]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10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답: 우리의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예수 안에서 베푸신 은혜라는 것을 강조한다. 구원에 인간의 행위가 들어갈 공간은 절대로 없다. 

 

엡 2:1~3에서 바울은 에베소 신자들의 구원이 그들의 착한 행동이나 훌륭한 자질 때문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고 기록한다. 서신이 시작될 때의 이들은 영적으로 죽어 있는 상태였다. 그들 안에는 생명이나 가치 있는 것이 전혀 없었다(엡 2:1). 죄에 완전히 정복당했고(엡 2:1), 사탄의 권세, 자신의 정욕, 정신적 미혹에 이끌려 그들은 인생의 주도권을 상실했다(엡 2:2, 3).

에베소 신자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저 영적 생명이나 미덕이 없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 형편에 처했다. 그들은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참 하나님을 대적하며 거룩한 하나님의 심판의 날을 향해 가고 있었다. 그들은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엡 2:3)였다.

그들의 구원은 그 자신의 자질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표현할 수 없는 사랑, 그 대상의 어떤 가치로도 설명할 수 없는 사랑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하나님은 자비와 사랑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들을 대신하여(엡 2:4) 행하시며, 그들을 영적 죽음에서 부활시켜 주신다. 하나님의 개입으로 인해 그들은 예수님이 가셨던 길을 따르는 놀라운 여정을 경험한다. 완전한 영적 죽음과 가혹한 노예 생활의 심연에서 부활하여 "하늘"로 옮겨져 그리스도와 함께 우주의 보좌에 앉게 된다(엡 2:5, 6). 이것은 천지가 개벽하는 듯한 신성한 개입이지만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원토록 그들을 향한 그분의 은혜를 나타내기 원하시기 때문에 이것은 참된 지속력과 영속성을 가지고 있다(엡 2:7).

엡 2:1~10까지의 결론(엡 2:8~10)에서 바울은 신자의 구원은 인간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 이 부분을 다시 한번 살펴본다. 그것은 우리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다. 

어떤 인간도 그것이 일어나게 했다고 자랑할 수 없다(엡 2:8, 9). 하나님의 은혜 안에 서 있는 우리 신자들은 하나님의 은혜의 표본이며, 오직 그분의 은혜를 드러낸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만드신“(엡 2:10) 그분의 걸작품이다.

 

<교훈> 내가 이 놀라운 여정에 참여하여 하늘까지 올라가는 길을 걷게 된 것은 나의 자질과 관계없이 주어진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의 선물이다.   

 

<부가설명> 구원과 사람의 노력의 관계는 언제나 혼동하는 문제다. 구원을 위하여 노력하는 것이 아니고 구원받아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기 때문에 그 생명이 구원받은 사람을 생활하게 하는 것일뿐이다. 사탄은 그들이 구원을 오해하게 하고 포기하게 하려고 최대한 노력한다. 사탄의 이런 노력과 맞서서 싸우는 것이 마치 구원받기 위하여 노력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이런 것은 착각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하는데 그것이 바로 사탄이 우리의 구원을 포기하게 하려고 공격하는 것과 싸우는 것이다. 고난을 만나게 하고 낙심하게 하고 의심하게 하는 것 등등이 다 사탄의 공격이다. 이런것과 맞서서 싸우지 않으면 우리의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 히브리서의 표현대로는 이 큰 구원을 등한히 하면 떠내려갈 것이다(히2:1~3). 이런 것이 마치 구원받기 위하여 하는 노력으로 보인다. 이렇게 싸우는 것은 너희 구원을 이루는 것이요 재림의 날까지 견디는 것이다. 원수의 나라에서 살고 있으므로 이 투쟁은 쉬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구원받는 공로가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우리는 이 뜻을 알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며 주님께 숨어 이미 승리한 주님 안에서 승리의 보증을 받는 것이다. 아멘.

 

7월 21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하여

 

에베소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의 근간에는 종종 부분적으로 반복되거나 그 안에서 암시되는 이야기가 있다. 이야기의 주요 사건은 다음과 같다.

1. "창세 전에" 백성을 선택하신 하나님(엡 1:4, 5, 11).

2. 잃어버린 바 된 존재(엡 2:1~3, 11, 12, 엡 4:17~19, 22, 엡 5:8).

3.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의 개입(엡 1:7, 8, 엡 2:4~6, 13~19, 엡 4:1, 20, 21, 엡 5:2, 8, 23, 25, 26).

4. 그들이 복음을 받아들임(엡 1:12, 13 및 다른 곳에서 암시됨). 한때 "소망이 없던"(엡 2:12) 자들이 이제 신자로서 나아갈 "한 가지 소망"을 소유함(엡 4:4; 엡 1:18과 비교).

5. 제자로 살아가는 현재의 삶. 위험과 악한 권세의 반대가 가득한 시대에 살고 있지만, 그들은 높여진 주님께서 제공하신 자원을 활용할 수 있음(엡 1:15~23, 2:6, 3:14~21, 4:7~16, 6:10~20).

6. 미래의 역사의 정점에서 성령의 "보증"(엡 1:13, 14) 또는 "인"(엡 4:30)으로서의 역할이 열매를 맺음. 이 결정적인 순간에 수신자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부여된 "기업"을 소유함으로써 그들의 신실함에 대한 보상을 받으며(엡 2:7, 엡 6:8, 9),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해 다가올 그리스도 중심의 시대에 참여하게 됨(엡 1:21, 2:7, 19~22, 4:13, 15, 5:27).

 

핵심적인 토의를 위하여

1. 에베소서의 기저에 있는 이야기(위 내용 참조)는 1세기 신자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이야기의 주요 시점 또는 단계 중 지금 이 순간 가장 희망을 주는 것은 어떤 것인가?

*답: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하여 예수님과 함께 하늘에 앉았다는 복된 사실이다. 

 

2. 바울이 수신자들의 죄 많은 과거를 자주 상기하면서 회심 이전의 삶을 되돌아보도록 권유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답: 하나님이 예수님 안에서 행하신 일을 기억하며 감사로 현재의 구원을 잘 지키도록 하려는 것이다. 

 

3. 엡 2:8~10에 기록된 바울의 복음 요약과 롬 1:16, 17에 쓰인 그의 이전 요약 내용을 비교해 보라. 어떤 비슷한 주제가 나타나는가? 둘은 어떤 점에서 다른가?

*답: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복음으로 우리에게 계시하셨다는 사실이 같은 것이고 그것은 새로운 창조인데 선한 일을 위한 것이라는 것과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한 것이 같은 사실을 조금 다른 관점으로 소개했다.

 

4. 신자들의 선행은 하나님 앞에 구원의 공로를 줄 수 없다는 점에서 그들의 구속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지만, 신자들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 속에 어떤 중요한 역할을 하는가?(엡 2:10)

*답: 구원은 예수님의 부활의 생명으로 거듭난 것이기 때문에 그 생명이 거듭난 새로운 피조물이 된 그리스도인을 선한 행위를 하게 하는 동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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