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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과 하나님의 인과 짐승의 표 II(질문, 대답, 설명) 06/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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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3-06-09 23:11 조회6,66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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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과 하나님의 인과 짐승의 표 II

(6월 17일 안식일 / 일몰: 오후 7시 56분)

 

연구 범위: 계 12:6, 14, 단 7:25, 살후 2:3, 4, 신 6:8, 신 11:18, 출 20:8~11

 

기억절: 사로잡힐 자는 사로잡혀 갈 것이요 칼에 죽을 자는 마땅히 칼에 죽을 것이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계 13:10)

 

15세기에 이탈리아 북부 알프스의 높은 피에몽 계곡에는 자신들이 가진 신앙에 충실하기로 결심한 왈덴스 사람들의 거처가 있었다. 그리스도에 대한 흔들림 없는 충성 때문에 그들은 맹렬한 박해를 받았다. 1488년, 로이스 계곡의 왈덴스인들은 신앙 때문에 로마교회에 의해 잔인하게 살해당했다.

17세기에 또 다른 박해의 물결이 일어났다. 사보이 공작이 8,000명의 군대를 왈덴스인들의 거주지역에 주둔시키면서 군사들이 그들의 집에서 기거할 수 있게 해 줄 것을 요구했다. 왈덴스인들은 그의 요구를 수용했지만, 그것은 병사들이 희생자들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1655년 4월 24일 새벽 4시, 학살의 신호가 울렸고 이 박해에서 살해당한 사람은 4,000명이 넘었다.

불행히도 역사는 종종 반복된다. “짐승의 표”에 관한 예언은 과거에서부터 시작되어 마지막 때까지 계속될 사악한 종교 박해의 마지막 장면에 관한 것이다. 과거의 박해와 마찬가지로, 짐승의 표는 모든 사람이 일련의 신념과 공인된 예배 체제를 따르도록 강요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그러나 과거에 늘 그러했던 것처럼 그것에 굴복하지 않고 하나님께 충성하는 남은 백성이 항상 있을 것이다.

 

*학습 목표

- 깨닫기: 짐승의 표를 받지 않고 충성하는 자는 하나님의 인을 받을 것이다. 

- 느끼기: 모든 방법으로 짐승의 표를 받도록 힘쓸 세력의 위험을 느낀다. 

- 행하기: 환난과 핍박에도 하나님께 충성하는 하나님의 인을 받는 사람이 되기를 결심한다. 

 

2. 성경에 기록된 예언이 얼마나 정확하게 성취된다고 생각 하십니까? (계 13:12)

*답: 예언에 기록한 대로 성취된다. 

3. 사탄의 속임수의 본질은 어떤 것입니까? (살후 2:4)

*답: 자기를 경배하게 하려는 것이다. 즉 창조주 하나님을 무시하라는 것이다. 

4. 사탄의 마지막 전략은 어떻게 진행될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답: 자기가 경배받을 수 있도록 짐승의 표를 주도록 할 것이다. 

5. 짐승의 표의 특징은 무엇이며, 그런 특징으로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신 11:18)

*답: 하나님의 명령을 모방하여 이마와 손에 표를 받게 할 것이다. 

6. 하나님의 인을 받는 자들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을까요? (계 14:4-5)

*답: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계14:4,5). 또 하나님의 인을 받아 가지고 있다.

7. 하나님의 인과 짐승의 표에 대해 살펴보면서 우리가 유의해야 할 점은 어떤 것이 있겠습니까? 

*답: 하나님의 말씀에 굳게 서서 바르게 분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것이 도덕적이며 가정 국가의 안녕을 위한 것으로 가장하고 다가올 것이다. 

 

결론 예언은 짐승의 세력에 대해 말해준다. 교황권은 적그리스도의 면모를 드러내고 진리를 왜곡시킨다. 그는 정치 세력과 결합하여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을 핍박하게 될 것이며, 계명과 안식일을 지키는 자들은 사회의 통합과 유익에 해로운 자로 선언될 것이다. 이런 시련과 압력에도 굴복하지 않고 주님을 신실하게 따르는 자들이 하나님의 인을 받을 사람들이다. 

 

6월 11일(일) 죽게 되었던 상처

 

요한계시록 13장과 14장에 나오는 짐승의 세력은 세계적인 거짓 예배의 체제를 상징한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요한계시록 13:5, 12:6, 14 그리고 다니엘 7:25을 읽어 보라. 이 권세는 지난 수세기 동안 얼마나 오랫동안 종교적 영역을 지배했는가?

[계13:5] 또 짐승이 과장되고 신성 모독을 말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두 달 동안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계12:6,14]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천이백육십 일 동안 그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14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

[단7:25] 그가 장차 지극히 높으신 이를 말로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고치고자 할 것이며 성도들은 그의 손에 붙인 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

*답: 1260년간 지배했다. 

 

이 짐승은 역사상 일정 기간 동안 계속 존재할 것이다. 상징적 시간 예언에서 예언적 하루는 문자적인 한 해와 같다. 민수기 14:34은 “하루를 일년으로 계산하”는(쉬운말) 성경의 연일원칙의 적용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에스겔서에서도 “하루가 일 년”(겔 4:6)이라고 하신다. 이 원칙은 다니엘 9:24-27의 70이레 같은 성경의 시간 예언을 해석하면서 그 정확성이 거듭 입증되었다. 요한계시록 13:5의 42개월을 한 달이 30일인 고대 달력으로 계산하면 예언적인 1260일 혹은 문자적 1260년이라는 결과에 도달한다. 

4세기에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는 제국 전역에서 기독교를 공인했다. A.D. 330년, 제국의 동부와 서부를 통합하기 위해 콘스탄티노플로 수도를 옮긴 후 로마에는 권력의 공백이 생겼다. 그 빈자리를 교황이 차지했다. 그는 강력한 종교 지도자만이 아니라 유럽의 유력한 정치 세력이 되었다. A.D. 538년, 이교 로마 황제 유스티니아누스는 로마 주교에게 공식적으로 신앙의 수호자 역할을 부여했다. A.D. 538년에서 1798년까지, 이번 주 교과의 서론에서 언급한 끔찍한 박해를 포함하여 중세 교회는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이 예언은 A.D. 1798년, 나폴레옹의 장군 베르티에(Berthier)가 교황을 포로로 사로잡음으로 정확하게 성취되었다.

베르티에와 그의 군대는 교황 비오 6세를 사로잡았고 그를 교황의 왕좌에서 축출했다. 요한계시록 13:12에 따르면 법왕권에 대한 타격은 심각했지만, 그 치명적인 상처는 치유될 것이고 세상은 이 권세로부터 훨씬 더 많은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교훈> 예언적 기간인 1260년이 끝나는 1798년에 교황권이 그 왕좌에서 축출됨으로 죽게 되었던 상처를 입는다는 요한계시록의 예언을 성취하였다. 

 

<묵상> 성경의 예언이 얼마나 놀라운지 그리고 그것이 미래 사건에 대한 하나님의 지혜를 우리에게 어떻게 계시하는지 생각해보십시오.

<적용> 하나님의 예언과 그 성취들은 우리가 아직 성취되지 않은 주님의 약속을 신뢰할 수 있는 이유에 대해 무엇을 말해 줍니까?

*답: 예언한 역사적 사건은 정확하게 예언대로 성취되었다. 그것은 아직 이르지 않은 미래의 역사적 예언도 그대로 성취될 것의 보증이다. 

 

<부가설명> 예수님은 일이 이루기 전에 미리 너희에게 말한 것은 일이 이룰 때에 믿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확언하셨다(요13:19, 14:29). 그리고 이사야 41:21~24에서는 예언하여 그것이 성취되게 하는 신이 참 신이라고 말씀하셨다. 성경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참 신이 되심을 증명하는 말씀들이 있다. 롬1:19,20에는 창조하셔서 창조한 하나님이 참 신이라고 알게 하셨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성경에 역사적 연대 예언이 많은 것은 성경의 하나님 여호와가 참 하나님이심을 확실하게 증명하는 말씀이다. 사람들이 성경의 하나님이 참으로 존재하는지 어떻게 아느냐? 또는 믿을 수 있느냐라고 물을 때 성경에 기록된 예언은 그것에 대한 확실한 증명하는 대답으로 대단히 중요하다. 그러므로 미래의 역사적 사건을 알려고 하는 것만이 아니고 우리가 믿는 성경의 하나님이 존재하시고 섭리하신다는 것을 증명하여 설명하는 데도 대단히 중요한 말씀이다. 그러므로 재림 성도들은 예언을 확실히 알아야 한다. 그러면 복음도 확실히 깨닫게 하고 예언도 확신하게 하는 이중적 역할이 있다. 

 

6월 12일(월) 배교하는 일

 

데살로니가후서 2:3, 4, 9–12을 읽어 보라. 바울은 마지막 날에 대해 무엇을 예언하는가? 그가 말한 적그리스도의 권세인 짐승을 식별하는 표는 무엇인가?

[살후2:3,4,9~12] 누가 어떻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되지 말라 먼저 배교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그 날이 이르지 아니하리니 4 그는 대적하는 자라 신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과 숭배함을 받는 것에 대항하여 그 위에 자기를 높이고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내세우느니라/ 9 악한 자의 나타남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10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으리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 11 이러므로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12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답: 성전에 앉아서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는 것.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을 행하여 사람들을 미혹함.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하나님 말씀의 진리에서 “배교하는 일”에 대해 경고한다. 그는 신약 교회에 뿌려진 배도의 씨앗에 대해 염려하고 있는데, 그 씨는 재림이 이르기 전까지 수 세기 동안 번창할 것이었다. 가짜 복음이 교회에 들어와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시킬 것이다.

사탄은 이 배교의 배후에 있는 자이다. 그는 "신이라고 불리우는 모든 것과 숭배함을 받는 것에 대항하여 그 위에 자기를 높"이고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있는 진정한 "불법의 사람"이다(살후 2:4). “큰 기만자”는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인간 대리자를 통해 일한다. 다니엘과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존재의 특징을 통해 다니엘 7장의 작은 뿔, 요한계시록 13장, 14장의 짐승 그리고 데살로니가후서 2장에 나오는 '불법한 자'는 모두 동일한 실체를 나타낸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SDA 성경주석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교 로마 권세의 뒤를 잇는 참람된 세력에 대한 다니엘의 예언과, 표범과 비슷한 짐승에 대한 요한의 묘사를 비교해 보면, 세가지 서술(작은 뿔, 짐승의 권세, 불법의 사람) 사이에서 많은 유사성이 나타난다. 이것은 다니엘과 바울과 요한이 동일한 세력, 즉 교황권에 관하여 말하고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한다”(13권, 296).

성경의 예언이 하나님의 말씀을 타협하고, 인간의 전통을 복음으로 둔갑시키며, 성경의 진리에서 멀어진 한 종교 체제를 말하고 있음을 기억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 예언들은 사랑의 하나님에 의해 예수님의 다시오심을 예비할 한 무리를 준비시키기 위해서 주어졌다. 

 이 예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난 배도한 종교 체제에 대한 책망이지,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계 18:4 참조). 이 기별은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을 속인 체제에 관한 것이다. 그 안의 사람들은 속임을 당했지만, 여전히 그리스도의 큰 사랑을 받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을 사랑으로 대해야 한다.

 

<교훈> 마지막 때에 배도하는 종교 체제가 등장할 것이지만 그 안에도 여전히 진실한 그리스도인이 있다. 우리는 그들을 사랑으로 대해야 한다. 

 

<적용> 마 7:12에서 배운 황금률의 원칙을 요한계시록 13장, 14장에 나오는 짐승의 권세를 상대할 때에는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요?

*답: 조직에 대하여서는 정체를 설명하고 조직원들에게는 진리를 가르쳐 바른길에 들어오도록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

 

<부가설명> 배교의 시작은 루시퍼다. 하늘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대적하다 하늘에 있을 곳을 얻지 못하여 땅으로 쫓겨 내려왔다. 시조 아담이 루시퍼의 유혹에 넘어가서 이 지구의 통치권이 루시퍼에게 넘어갔다(눅4:5,6). 루시퍼는 이 세상에서 당당히 왕노릇하는데 예수님 때문에 자기 정체가 탄로나고 사람들이 예수님 안에서 영생으로 구원받게 되자 그 기별을 전하는 진리의 기둥과 터인(뎀전3:15) 교회를 교묘한 수단으로 자기편에 끌어들이는데 성공했다. 그래서 진리의 기둥과 터인 교회 모습을 하고 유사 진리를 만들고 성경 해석을 인간의 지식과 지혜로 하도록 이끌며 자기를 광명한 천사처럼 나타내어서(고후11:13~15) 사람들을 속인다. 그에게 속은 사람들은 오류를 진리라고 굳게 믿는데, 성령께서 이적과 권능으로 참 교회에 역사하신 것처럼 광명한 천라를 가장하는 루시퍼도 거짓 이적과 권능으로 사람들에게 성령의 역사인 것처럼 보여서 아주 교묘하게 속인다. 그러므로 예수 이름 부르고 교회에 다니며 성경 읽고 찬송하는 것이 모두 참 성경의 종교와 신앙으로 속지 않고 진리를 옳게 분별하는(딤후2:15) 능력으로 바른 신앙생활해야 한다.

 

6월 13일(화) 사탄의 최후의 전략

 

수많은 설문 조사는 사람들이 각종 기관과 정부를 거의 신뢰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세상을 이끌어 줄 충직한 지도자가 어디 있는가?’라고 묻고 있다. 요한계시록의 예언은 짐승의 세력이 종교/정치 연합체의 지원하에 그 역할을 수행하기에 적합한 것으로 여겨지게 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요한계시록 17:12~14을 읽어 보라. 요한은 지구 역사의 이 마지막 장면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가? 여기서 어떤 중대한 대조(contrast-차이가 아니고)를 발견할 수 있는가?

[계17:12~14] 네가 보던 열 뿔은 열 왕이니 아직 나라를 얻지 못하였으나 다만 짐승과 더불어 임금처럼 한동안 권세를 받으리라 13 그들이 한 뜻을 가지고 자기의 능력과 권세를 짐승에게 주더라 14 그들이 어린 양과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

*답: 나라들이 한뜻으로 짐승에게 권세를 일임한다. 짐승과 나라들의 연합은 예수님과 싸운다. 그러나 그들은 패배하고 예수님과 그의 성도들이 승리한다는 사실을 대조하였다. 

 

이 구절에서 요한은 세 가지 중요한 점을 지적한다. 첫째, 정치 세력들은 “한 뜻”을 가지고 “자기의 능력과 권세를 짐승에게” 준다. 둘째, 이 오류의 집합체는 어린양이신 예수님과 전쟁을 벌인다. 셋째, 지구의 마지막 전쟁에서 그리스도와 그분을 따르는 사람들이 승리한다. 짐승은 패배하고 예수께서 승리하신다. 

그대는 마귀가 국가들을 연합하게 하기 위해 어떤 전략을 사용할지 궁금해 한 적이 있는가? 역사는 자주 반복된다. 우리는 로마 제국의 붕괴에서 귀중한 교훈을 발견한다. 게르만족의 침략이 서유럽을 황폐화했을 때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는 종교에서 방법을 찾아냈다. 국가의 권력과 결합된 교회의 권위야말로 콘스탄티누스가 필요로 했던 것이었다. 그가 4세기에 일요일의 신성성을 지속적으로 강화했던 것은 위기의 시기에 제국을 통합하기 위해 계산된 정치적, 종교적 움직임이었다. 콘스탄틴은 자신의 제국이 연합되기를 원했고 로마 교회는 제국이 "개종"하기를 원했다. 저명한 역사가 아서 와이걸(Arthur Weigall)은 다음과 같이 분명히 말한다. “교회는 일요일을 신성한 날로 만들었다... 주요 원인은 그 날이 일주일 중에서 태양의 축제일이기 때문이었다. 왜냐하면 전통적으로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이교 축제를 인수하여 거기에 기독교적 중요성을 부여하는 것이 확고한 기독교의 정책이었기 때문이다.”(The Paganism in Our Christianity, New York: G. P. Putnam’s Sons, 1928, 145)

 온 세상이 놀라고, 손상되고, 두려운 큰 위기의 때에 사람들은 안정과 보호를 가져다 줄 누군가를 간절히 원할 것이다. 이것이 과거에 폭정이 일어난 방식이며 그것이 다시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할 이유가 없다. 예언에 따르면 무언가가 이러한 마지막 사건을 초래케 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어떻게 전개될지 다 알기 어렵지만, 세상은 언제라도 엄청난 변화가 올 수 있으며 그것이 얼마나 급속하게 진행될 수 있는지 이미 알고 있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구체적으로 알지는 못하지만 어떤 일이 다가오든 우리는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교훈> 로마시대에 제국의 연합을 위해서 종교적 방법을 썼던 것처럼 사탄은 말세에 안정과 보호가 필요하다는 명분으로 정치 종교적인 방법을 사용할 것이다. 

 

<부가설명>

 

6월 14일(수) 짐승의 표

 

요한계시록 14:9을 읽고 그것을 요한계시록 14:12과 비교해 보라. 짐승의 표는 어디에 받는다고 기록되어 있는가?(신 6:8, 신 11:18 참조) 짐승의 표를 받는 사람들과 하나님의 백성을 구분하는 두 가지 특징은 무엇인가?

[계14:9] 또 다른 천사 곧 셋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이르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계14:12]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답: 짐승의 표는 이마와 손에 받고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했다. 성도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이다. 

 

한 무리는 짐승에게 경배하고, 한 무리는 하나님의 계명(짐승의 권세가 변개한 네 번째 계명 포함)을 지키며 예수의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다른 점이다. 마귀는 바다와 땅의 짐승을 통해 일하면서 예배의 중심 즉, 안식일을 공격하여 하나님의 권위를 훼손하려고 시도한다. 짐승의 표는 이마나 손에 찍힌다. 이마는 양심, 이성, 판단력이 있는 마음을, 반대로 손은 행동과 행위를 상징한다. 

종교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이 통과될 날이 다가오고 있으며 아마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빨리 올 것이다. 양심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 주님의 참된 안식일을 지키는 자들에게는 사회의 통합과 유익에 반대한다는 낙인이 찍힐 것이다.

“성경상 안식일을 존중하는 사람들은 법률과 질서를 문란케 하고 사회의 도덕적 울타리를 깨뜨리고 무정부 상태와 타락을 초래하고, 지상에 하나님의 심판을 불러들이는 자들로 비난을 받게 될 것이다. 양심의 지시에 순종하는 그들의 행동은 완고와 고집과 권위에 대한 멸시로 단정될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정부에 대하여 불평하는 자들로 고발당할 것이다”(각 시대의 대쟁투, 592).

로마 교회는 일요일에 예배 드리는 것에 대해 “가톨릭 교회는 그 변경은 교회가 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행위는 종교적 문제에 있어서 교회가 가진 힘과 권위의 표시이다”(The American Catholic Quarterly Review, 1883, 1)라고 주장한다. 

요한계시록은 미래에 전 세계적인 위기의 때에 급격한 정치적, 사회적, 종교적, 도덕적 변화가 강력하게 요구될 것인데, 그 변화에서 일요일 준수가 강요되고 그것이 “짐승의 표”가 될 것이라고 예언한다. 

 이 모든 것이 어떻게 전개되는지에 대해 정확하게 듣지 못했다. 성경은 우리에게 대략적인 개요만을 제공한다. 하지만, 창조주와 짐승의 사이에서 예배하는 문제를 둘러싼 대쟁투가 절정에 이를 것이며, 제칠일 안식일이 그 중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점은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교훈> 정치 종교적인 세력에 의해 강제된 짐승의 표를 받지 않는 자는 반사회적인 자로 핍박 당할 것이지만 하나님의 백성은 계명을 지키며 충성할 것이다. 

 

<묵상> 짐승의 표와 관련한 어떤 점에서 인류는 항상 하나님의 편과 사탄의 편 사이에서 나누어졌습니까? 

<적용> 왜 이 문제와 관련해서 중간 지대가 있을 수 없을까요? 우리가 정말로 누구 편에 있는지를 어떻게 확실하게 알 수 있습니까?

*답: 경배하는 일로 나누어졌다. 제칠일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는 것과 지키니 않는 것으로 확실히 구분된다. 

 

<부가설명> 짐승의 표가 무엇인가? 사람들은 짐승의 표 666에 관하여 많은 해석을 쏟아놓았다. 재림교회는 교황권을 드러내는 어떤 제도라는 것임을 확신한다. 사람들은 666이라는 숫자를 해석하는 방법으로 그 표가 무엇인지 알려고 한다. 숫자만 가지고 아무리 애를 써도 짐승의 표를 알 수 없다. 짐승의 표를 알기 위하여서는 ‘짐승’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짐승을 모르면서 표를 뜻하는 666이라는 숫자만 붙들고 어떤 풀이를 해도 맞을 수 없다. 이것을 알기 위하여 우리는 성경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원칙에 굳게 서 있어야 한다. 이 원칙을 벗어나면 결코 바르게 알 수 없다. 

성경은 짐승을 ‘나라’라고 해석했다(단7:23). 그 나라는 왕국이라고 해석했다(단7:17). 그러므로 짐승의 표는 어떤 왕국의 표다. 공화국이 아니다. 어떤 왕국인가? 이 말씀이 나온 곳은 계시록 13장이다. 거기에는 세 마리 짐승이 나타난다. 용, 바다짐승, 땅 짐승이다. 그런데 바다짐승은 용에게 권세와 보좌를 받는다. 땅 짐승은 바다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고 그 짐승과 우상에게 경배하라고 한다. 여기 중심역할하는 것은 바다짐승이다.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인데, 바다는 나라들과 민족과 방언들이다(계17:15). 이렇게 민족들이 섞여 복잡한 국가가 있는 지역에서 건국되는 나라다. 이 짐승은 열 뿔이 있다. 짐승에게서 나온 뿔들은 짐승을 추종하는 나라들이나 큰 나라가 분열하여 생긴 나라들이다(단7:24, 8:22). 계13장의 짐승은 열 나라의 지지를 받는 나라다(계17:12,13). 그 나라는 죽은 것 같다가 다시 살아나는 나라다(계13:3). 결과로 온 세상이 따르는 나라다. 이 나라는 경배를 받는 나라다. 그러니 종교와 정치의 권력을 함께 가진 나라다. 이 나라는 여러 나라와 방언을 통치하는 나라다. 그 권력의 전성기가 42달 곧 1260년이다. 이제 이런 특징을 가진 나라를 역사에서 찾으면 된다. 그것은 교황권 나라밖에 없다. 유일하다. 그러니 짐승의 표는 이 나라의 표다. 이 표는 경배를 받기 위한 표다(계13:15,16).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 경배하는 표를 모방하여 자기를 경배하게 하는 표다. 여호와 하나님을 경배하는 표는 제칠일 안식일이다. 안식일은 요일이다. 이 짐승도 혼동하도록 요일을 자기 경배하는 표로 제정한다. 우리는 짐승의 표가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따. 혼동하지 말자.  

 

6월 15일(목) 안식일 시험

 

아마 지금도 이 임박한 박해의 무대가 마련되는 중일 것이다. 2012년 6월 6일,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로마의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15,000명 이상의 사람들에게 일요일은 모든 사람을 위한 휴식의 날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일요일을 수호하는 것이 인간의 자유를 수호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자유롭게 가족과 하나님과 함께할 수 있을 것이라며 그는 긴급하게 호소했다. 물론 이것은 안식일 계명처럼 사람들에게 이 날을 지키라고 명령한 것은 아니지만, "쉼의 날"로서의 일요일의 개념이 확실히 실제적인 문제인 것을 보여준다. 머지않아 법이 통과될 때에 양심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 참 안식일을 지키는 사람들은 사회의 최선의 유익에 반대하는 자라는 낙인이 찍힐 것이다.

이 위기의 때에 하나님의 신실한 백성은 그분의 은혜와 능력에 힘입어 주를 따르겠다는 확신에 굳게 설 것이다. 그들은 압력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짐승의 표가 아닌 하나님의 인을 받게 될 것이다. 인장은 고대에 공문서의 진위를 증명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율법에도 하나님의 인이 들어있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고대 인장은 독특하고 개별화된 표식이었다. 선지자 이사야는 “증거를 싸매고 율법을 내 제자들 가운데에서 봉함하라”(사 8:16)고 말한다. 

 

출애굽기 20:8-11을 읽어보라. 그대가 안식일 계명에서 찾은 성경적 인의 요소는 무엇인가? 안식일 계명은 다른 모든 계명과 어떻게 다른가?

[출20:8~11]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9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10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11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답: 이 계명에만 계명을 주신 분의 이름이 권위적으로 들어있다. 3계명에도 이름이 있지만 그것은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고 경고한 내용일 뿐이다. 

 

넷째 계명에는 진품 인장이 가지고 있는 세 가지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 첫째, 인장 주인의 이름이 있다. “주 너의 하나님” (출 20:10). 둘째, 인봉하는 자의 칭호가 있다. "지으신"(출 20:11) 여호와, 또는 창조주. 셋째, 인봉하는 자의 영토가 표시된다.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출 20:11). 

 요한계시록 7:2, 3에 따르면 하나님의 인은 우리 마음의 상징인 이마에만 찍혀 있다. 예수님은 우리의 선택의 자유를 존중하신다. 

그분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우리 믿음의 기초에서 흔들리지 않도록(엡 4:30) 그분의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빚으실 수 있게 우리를 초대하신다. 따라서 우리는 신실한 자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믿음을 가진”(계 14:12) 자들이며, 그 “계명”에는 짐승의 권세가 변경하기를 원했던 넷째 계명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단 7:25). 

 

<교훈> 사람의 권위를 상징하는 짐승의 표를 거절하고 하나님의 이름과 권위와 주권이 담겨 있는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인을 받는 것이다. 

 

<묵상> 주변의 정세를 볼 때에 종교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어떤 상황이 조성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까? 그대가 사는 시대에 대해서 생각해 보십시오. 

*답: 코로나 팬데믹은 신앙의 자유를 제한하는 방법이 어떻게 시행될 것인지 자세히 드러내 주었다. 

 

<부가설명>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역사적으로 먼 미래에 안식일을 변경할 세력을 내다보셨다. 그런 일이 일어날 때 하나님의 참 백성들이 어떻게 신앙을 잘 지켜야 하는지 분명히 계명에 새겨넣으셨다. 그것이 안식일을 ‘기억하여’라는 말씀이다. 원문은 ‘기억하라’라는 말이 맨 먼저 나온다. 어떤 안식일을 기억해야 한다는 말인가? 기억해야 할 안식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이다. 이 안식일이 언제인지 그것을 분명히 밝혀서 기록하셨다. 그것은 ‘제칠일’이다. 그러니 제칠일이 여호와의 안식일인 것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개신교인들은 수입의 십분의 일을 여호와 하나님께 드리는 것처럼 칠일 중에 하루를 하나님께 구별하여 예배하면 된다는 식으로 해석하는 것을 내가 장로교회에 다닐 때 여러 번 들었다. 그러나 넷째 계명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제칠일을 여호와의 안식일로 기억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기억하여 지키라고 하셨다. 기억하라. 무엇을 제칠일 안식일이 여호와의 안식일이라는 것을, 그리고 거룩하게 지키라. 이것이 제4계명의 핵심 명령이다. 기억하여 지키지 않으면 그는 여호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 된다. “또 나의 안식일을 거룩하게 할지어다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에 표징이 되어 내가 여호와 너희 하나님인 줄을 너희가 알게 하리라 하였노라”(겔20:20). 이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킬 때 여호와 우리 하나님인 줄 아는 증명이 된다(출31:13~15).

 

6월 16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개신교가 로마의 세력과 손을 잡기 위하여 구렁을 넘어 손을 뻗게 될 때, 그가 강신술과 악수하기 위하여 심연(深淵) 저편으로 건너갈 때, 이 삼중 연합의 영향 아래 미국이 개신교와 공화 정부로서의 그 헌법의 모든 원칙을 거부하고 법왕권의 거짓과 속임을 퍼뜨릴 준비를 갖추게 될 때, 우리는 놀라운 사단의 활동시기가 왔다는 것과 끝이 가까웠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교회증언 5권, 451)

요한계시록의 흐름 속에서 일요일이 반대 세력의 예배일이라는 사실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일요일은 용의 극심한 교활함과 궤변을 드러내는 매우 중요한 상징이다... 하나님 율법의 변경은 우주적인 대쟁투에서 하나님에 대한 용의 증오의 본질을 단번에 드러내는 것이다. 그것은 매우 단순해서 오히려 더 기만적이다. 용은 자신을 숭배의 진정한 대상으로 묘사하고 하나님의 법이 부당하므로 변경되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우주에서 하나님의 자리를 찬탈하려고 했다. 용은 십계명 가운데 하나님이 창조주이자 구속자이시며 유일하게 경배받기에 합당하신 분으로 확인되는 그 부분에서 율법을 변경했다(출 20:8-11, 신 5, 계 4:11, 5:9, 13, 14 참조). 율법의 변경은 여호와의 뜻(율법)에 대한 용의 증오를 드러낼 뿐만 아니라 경배의 대상이 됨으로써 하나님의 자리를 찬탈하려는 용의 시도이기도 하다... 이 법의 변경이 일반화된다면 그에게 승리가 보장될 것이다.”(앙헬 마누엘 로드리게스, 53, 54)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마지막 사건에 대한 예상, 심지어 기대 속에서 살고 있지만, 영감을 통해 우리에게 계시된 것 이상으로 추측하거나 날짜를 정하거나 광신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렇게 할 경우 따라올 위험은 무엇이며, 그들이 기대했던 때와 방법에 따라 예상하던 일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결과가 어떠했는가?

*답: 기록한 말씀 밖으로 나가는 교만에 빠지게 된다(고전4:6). 대 실망이다.

 

2. 1번 질문에 묘사된 위험을 피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짐승의 표와 박해에 대해 우리가 가르치는 것과 같은 일은 일어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어떻게 대하는 것이 좋겠는가? 그런 사람들의 추론 방식이 표면적으로는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전혀 합리적이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세상에 엄청난 변화가 얼마나 빨리 몰아닥칠 수 있는지를 보라)

*답: 세상을 세상의 눈으로 볼 때 그런 사상이 생긴다. 그러나 성경을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예언된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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