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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과 지구의 재탄생(질문, 대답, 설명) 03/2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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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1-03-20 02:43 조회5,83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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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과 지구의 재탄생

 

3월 27일 안식일

일몰:오후 6시 50분

 

● 연구 범위 : 사 65:17~25, 66:1~24

 

● 기억절 :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사 65:17).

 

열두 살 된 소년이 어느 날 천문학에 관한 책을 읽고는 학교를 가지 않겠다고 했다. 엄마는 아들을 데리고 병원에 갔다. 의사가 이렇게 물었다. “빌리야, 뭐가 문제니? 왜 공부도 하지 않고 학교에도 가지 않으려고 하니?”

빌리는 이렇게 대답했다. “왜냐면요 제가 천문학 책을 읽었는데, 언젠가 태양이 지구의 생명체를 모조리 태워 죽게 한대요. 결국 모든 것이 죽어 버린다면 저는 무슨 일이든 해야 할 이유를 못 찾겠어요.” 신경질적인 엄마가 소리를 질렀다. “그건 네가 상관할 일이 아니야! 상관할 일이 아니라고!”

의사는 어린 소년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빌리야, 너는 걱정할 필요가 없어. 왜냐하면 이 일이 일어날 즈음이면 어차피 우리는 모두 오래 전에 죽어 있을 거야.”

하지만 의사의 말은 우리 모두가 결국 죽는다는 본질적인 문제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았다.

다행히도 우리는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는 새롭게 된 세계에서 누릴 생명 곧 영생을 받았다.

 

※ 학습 목표

깨닫기 : 구원받은 자들이 재창조된 세상에서 하나님을 경배하며 누릴 영원한 행복을 깨닫는다.

느끼기 : 새 하늘과 새 땅의 약속을 통해 인류에게 소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행하기 : 천국을 약속받은 자들로서 아름다운 신앙공동체의 이상을 이 땅에서부터 구현해 나간다.

 

➋ 이사야가 말하는 ‘새 하늘’과 ‘새 땅’이 궁극적으로 나타내는 것은 무엇입니까?(사 65:17)

※ 하나님의 구원 사업의 완성을 나타낸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이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것도 증명한다.

➌ 여러 나라에서 형제들을 데려와 여호와께 예물로 드린다는 말씀은 무슨 뜻일까요?(사 66:21)

※ 선교사를 온 세상에 보내어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는 것을 뜻한다.

➍ 구원받은 이방인들을 제사장과 레위인으로 삼겠다는 말씀은 어떻게 실현되었습니까?(사 66:21, 벧전 2:9~10)

※ 이방인들도 목사와 선교사와 교회 봉사자들이 되는 것으로 실현되었다. 

➎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우리가 언제 하나님께 나아와 예배합니까? 그 사실은 무엇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까?(사 66:23)

※ 월삭과 안식일에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한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엿새 동안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시라는 것을 고백하는 신앙의 증명이며 그분은 또한 창조한 우주를 친히 붙드시고 운행하신 다는 것을 증명하는 예배이다. 

 

결론 : 당신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경고와 예언은 인류의 역사 동안 계속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새 하늘과 새 땅에 이르러 모든 예언이 성취되면 우리는 그분이 이루신 구원의 완성을 보고 하나님을 영원히 찬양할 것입니다. 

 

 

3월 21일(일) 새 하늘과 새 땅 (사 65:17~25)

 

1. 사 65:17~25을 읽어보라. 여기서 하나님은 어떤 종류의 회복을 약속하시는가?

[사65:17~25]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18 너희는 내가 창조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운 성으로 창조하며 그 백성을 기쁨으로 삼고 19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워하며 나의 백성을 기뻐하리니 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그 가운데에서 다시는 들리지 아니할 것이며 20 거기는 날 수가 많지 못하여 죽는 어린이와 수한이 차지 못한 노인이 다시는 없을 것이라 곧 백 세에 죽는 자를 젊은이라 하겠고 백 세가 못되어 죽는 자는 저주 받은 자이리라 21 그들이 가옥을 건축하고 그 안에 살겠고 포도나무를 심고 열매를 먹을 것이며 22 그들이 건축한 데에 타인이 살지 아니할 것이며 그들이 심은 것을 타인이 먹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 백성의 수한이 나무의 수한과 같겠고 내가 택한 자가 그 손으로 일한 것을 길이 누릴 것이며 23 그들의 수고가 헛되지 않겠고 그들이 생산한 것이 재난을 당하지 아니하리니 그들은 여호와의 복된 자의 자손이요 그들의 후손도 그들과 같을 것임이라 24 그들이 부르기 전에 내가 응답하겠고 그들이 말을 마치기 전에 내가 들을 것이며 25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을 것이며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을 것이며 뱀은 흙을 양식으로 삼을 것이니 나의 성산에서는 해함도 없겠고 상함도 없으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답: 지구의 회복, 지구에 사는 사람들의 수명의 회복, 사람 생활 상태의 회복, 천연계와 동물계의 회복을 약속하셨다. 

 

하나님은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사 65:17)고 말씀하시면서 새로운 창조를 약속하신다. 그분은 “예루살렘을 즐거운 성으로 창조하며 그 백성을 기쁨으로 삼”을 것이라고 약속하신다(사 65:18). 그 성읍에 다시는 우는 소리가 없을 것이다(19절). 거기에는 백 세가 못 되어 죽는 자가 없을 만큼 장수할 것이다(20절). 그들은 다시 일거리와 자녀를 얻고 즐거워할 것이다(21~23절). 하나님은 그들이 부르기 전에 응답하실 것이다(24절).

 

2. 이 자체로도 멋진 일이지만 왜 그것은 우리가 바라는 최종적인 회복과 최고의 소망이 되지 않는가?

 

답: 이것은 현 세상의 상태를 중심으로 회복을 말씀하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바라는 소망은 영생이고 영원한 세상이다. 이것은 영원한 세상으로 회복되는 것의 상징적 표현들이다. 

 

이제까지 우리는 약속의 땅에서 누릴 평온하고 장수하는 삶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좀 더 오래 사는 것일 뿐 그들은 여전히 죽는다. 우리가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에서 기대하는 천연계의 근본적인 변화는 어느 수준까지인가? 그다음 절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을 것이며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을 것이며 뱀은 흙을 양식으로 삼을 것이니 나의 성산에서는 해함도 없겠고 상함도 없으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사 65:25).

사자와 같은 육식 동물이 초식 동물로 바뀌려면 채식요리교실에 참석하는 정도로는 안 된다. 죄로 인해 죽음이 오기 이전의 이상적인 상태로 회복되려면 ‘재창조’가 있어야 한다. 이사야 65장에서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시되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차근차근 단계적으로 그것들을 재창조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한다. 이 장면을 메시아가 세상에 공의를 가져오리라고 말하는 이사야 11장과 비교해보라. 그때 하나님의 성산에는 결국 평화가 깃들 것이다.

이사야 11장의 묘사는 이사야 65장의 묘사와 비슷하다.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사 11:6~7). 즉 “하나님의 성산”이라는 계획은 예루살렘의 시온으로부터 시작되지만 그것은 하나님이 구원받은 자들과 함께 새로운 세상에 펼치겠다고 약속하셨던 일들의 전조이자 상징에 불과했다.

 

<부가설명> 이사야 11장, 35장, 65장 등은 새 하늘의 상태를 묘사하되 우리가 알 수 있는 지구의 사물과 상태를 예로 들어 묘사한다. 나무의 수한과 같다는 말은 나무만큼 오래 살다가 죽는다는 것을 전제로 한 표현은 아니다. 영생하는 삶을 나무의 수한을 예로 들어 비교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옳다. 짐승들이 완전히 변하는 것은 훈련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재창조로 되는 것이다. 재창조되고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사람은 다시는 죽을 수 없는 상태로 부활한다(눅20:35,36). 100세라고 하면 장수한 수명이다. 그러나 그것이 어린아이라고 한 것은 영생과 비교적 표현이다. 저자의 말대로 이것을 사실로 받아들여 나무의 수한과 같아도 죽는 것으로 끝나는 회복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죽지 않는 생명으로 일어나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행복하게 사는 것을 세상의 생태와 비교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더라고 저자의 말대로 이 세상이 그만큼 회복되는 일이 있다해도 그것은 영원한 회복의 전조일 뿐이다. 성경은 영생하시는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행복과 평화로 생활하는 것을 새 하늘과 새 땅의 상태라고 분명히 가르친다(계21, 22장).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이곳에 가는 사람들이 되도록 절대적으로 주님 안에 있어야 할 것이다. 아멘.

 

교훈 : 이사야는 다시는 눈물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예언하며 하나님이 창조하실 새 하늘과 새 땅의 비전을 제시했다.

 

 

3월 22일(월) 거룩한 ‘자석(磁石)’ (사 66:1~19)

 

“…때가 이르면 뭇 나라와 언어가 다른 민족들을 모으리니 그들이 와서 나의 영광을 볼 것이며”(사 66:18).

 

1. 사 66:1~19을 읽어보라. 이사야서가 기록될 당시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읽는다면 여기서 말하려는 기별의 핵심은 무엇인가?

[사66:1~19]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판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으랴 내가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 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었으므로 그들이 생겼느니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내 말을 듣고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돌보려니와 3 소를 잡아 드리는 것은 살인함과 다름이 없이 하고 어린 양으로 제사드리는 것은 개의 목을 꺾음과 다름이 없이 하며 드리는 예물은 돼지의 피와 다름이 없이 하고 분향하는 것은 우상을 찬송함과 다름이 없이 행하는 그들은 자기의 길을 택하며 그들의 마음은 가증한 것을 기뻐한즉 4 나 또한 유혹을 그들에게 택하여 주며 그들이 무서워하는 것을 그들에게 임하게 하리니 이는 내가 불러도 대답하는 자가 없으며 내가 말하여도 그들이 듣지 않고 오직 나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며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는 것을 택하였음이라 하시니라 5 여호와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떠는 자들아 그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르시되 너희 형제가 너희를 미워하며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쫓아내며 이르기를 여호와께서는 영광을 나타내사 너희 기쁨을 우리에게 보이시기를 원하노라 하였으나 그들은 수치를 당하리라 하셨느니라 6 떠드는 소리가 성읍에서부터 들려 오며 목소리가 성전에서부터 들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의 원수에게 보응하시는 목소리로다 7 시온은 진통을 하기 전에 해산하며 고통을 당하기 전에 남아를 낳았으니 8 이러한 일을 들은 자가 누구이며 이러한 일을 본 자가 누구이냐 나라가 어찌 하루에 생기겠으며 민족이 어찌 한 순간에 태어나겠느냐 그러나 시온은 진통하는 즉시 그 아들을 순산하였도다 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아이를 갖도록 하였은즉 해산하게 하지 아니하겠느냐 네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해산하게 하는 이인즉 어찌 태를 닫겠느냐 하시니라 10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들이여 다 그 성읍과 함께 기뻐하라 다 그 성읍과 함께 즐거워하라 그 성을 위하여 슬퍼하는 자들이여 다 그 성의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성과 함께 기뻐하라 11 너희가 젖을 빠는 것 같이 그 위로하는 품에서 만족하겠고 젖을 넉넉히 빤 것 같이 그 영광의 풍성함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라 12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그에게 평강을 강 같이, 그에게 뭇 나라의 영광을 넘치는 시내 같이 주리니 너희가 그 성읍의 젖을 빨 것이며 너희가 옆에 안기며 그 무릎에서 놀 것이라 13 어머니가 자식을 위로함 같이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인즉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으리니 14 너희가 이를 보고 마음이 기뻐서 너희 뼈가 연한 풀의 무성함 같으리라 여호와의 손은 그의 종들에게 나타나겠고 그의 진노는 그의 원수에게 더하리라 15 보라 여호와께서 불에 둘러싸여 강림하시리니 그의 수레들은 회오리바람 같으리로다 그가 혁혁한 위세로 노여움을 나타내시며 맹렬한 화염으로 책망하실 것이라 16 여호와께서 불과 칼로 모든 혈육에게 심판을 베푸신즉 여호와께 죽임 당할 자가 많으리니 17 스스로 거룩하게 구별하며 스스로 정결하게 하고 동산에 들어가서 그 가운데에 있는 자를 따라 돼지 고기와 가증한 물건과 쥐를 먹는 자가 다 함께 망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8 내가 그들의 행위와 사상을 아노라 때가 이르면 뭇 나라와 언어가 다른 민족들을 모으리니 그들이 와서 나의 영광을 볼 것이며 19 내가 그들 가운데에서 징조를 세워서 그들 가운데에서 도피한 자를 여러 나라 곧 다시스와 뿔과 활을 당기는 룻과 및 두발과 야완과 또 나의 명성을 듣지도 못하고 나의 영광을 보지도 못한 먼 섬들로 보내리니 그들이 나의 영광을 뭇 나라에 전파하리라.

 

답: 올바르게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경배하라는 기별이다. 올바르게 섬기고 경배하지 않는 자들은 멸망할 것이고 올바르게 섬기고 경배하는 자들은 위로받고 회복된다.

 

하나님은 선지자를 통해서 이 책에 스며있는 호소와 경고를 반복하신다. 즉 하나님은 겸손한 자들과 그분의 말씀에 전율하는 자들을 구원하고 회복하실 것이다(사 66:2, 5). 사 40:1에서처럼 그분은 그들을 위로하실 것이다(사 66:13). 그러나 그분은 자신을 거역한 자들을 멸하실 것이다. 거기에는 그분을 믿는 자들을 미워하고 무시한 자들뿐 아니라(사 66:5), 그분께서 거부하시는 의식(儀式)상의 위선자들(사 66:3~4; 사 1:10~15과 비교)까지 포함된다. 또한 거기에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가증한 일을 행하던 자들같이(겔 8:7~12) 이교의 가증한 행습을 행하는 자들(사 66:17)도 포함된다.

 

2. 사 66:3을 읽어보라. 이 성경절은 무엇에 대해 말하고 있는가? 여기서 어떤 영적인 원칙이 드러나는가? 오늘날의 그리스도교 예배의 맥락에서는 이와 같은 개념은 어떻게 표현될 수 있는가?

[사66:3] 소를 잡아 드리는 것은 살인함과 다름이 없이 하고 어린 양으로 제사드리는 것은 개의 목을 꺾음과 다름이 없이 하며 드리는 예물은 돼지의 피와 다름이 없이 하고 분향하는 것은 우상을 찬송함과 다름이 없이 행하는 그들은 자기의 길을 택하며 그들의 마음은 가증한 것을 기뻐한즉,

 

답: 형식적이고 인간 중심적인 예배는 우상숭배와 다를 것이 없다는 경고이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지 않는 것은 우상 숭배와 같은 것이라고 경고한다.

 

3. 하나님은 어떻게 열방을 자신에게로 끌어당기는 자석 같은 역할을 하시는가?(사 66:18~19).

[사66:18,19] 내가 그들의 행위와 사상을 아노라 때가 이르면 뭇 나라와 언어가 다른 민족들을 모으리니 그들이 와서 나의 영광을 볼 것이며 19 내가 그들 가운데에서 징조를 세워서 그들 가운데에서 도피한 자를 여러 나라 곧 다시스와 뿔과 활을 당기는 룻과 및 두발과 야완과 또 나의 명성을 듣지도 못하고 나의 영광을 보지도 못한 먼 섬들로 보내리니 그들이 나의 영광을 뭇 나라에 전파하리라.

 

답: 하나님의 영광을 온 세상이 보도록 하셔서 그렇게 하신다. 

 

하나님은 원수들을 멸하신 후에(사 66:14~17) 그분의 영광을 나타내심으로써 사람들을 예루살렘으로 이끄시는 일종의 자석이 되신다(사 2:2~4 참고). 그분은 그들 중에 한 “징조”를 베푸시는데, 여기에 자세히 기록되지는 않았지만 그것은 분명히 이사야가 마지막으로 언급한 “표징”을 가리킨다. 즉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에게 기쁨과 평화를 주시고 그들의 땅을 회복시키실 것이다(사 55:12~13).

하나님이 대홍수 이후에 노아에게 무지개를 징표로 주셨던 것처럼(창 9:13~17), 파괴 이후에 그분의 백성을 회복시키시며 영광을 드러내실 때 이것은 그분의 은총이 회복되었다는 표징이 될 것이다.

 

<부가설명> 진정한 예배는 화려한 예배당에 모여서 찬미하고 기도하고 설교 듣는 것만이 아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지 않으면 그것은 이사야 1장이나 66장에 지적한 오히려 하나님을 모욕하는 집회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 원문을 직역하면 영과 진리로 예배해야 한다고 하셨다. 이렇게 예배하는 자를 찾으신다(요4:23,24). 영으로 예배하는 것은 예배하는 사람이 참으로 영적 존재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롬8:9 참조). 진리로 예배한다는 것은 성경이 가르치는 그런 정신으로 예배하라는 것이다. 진리를 거슬러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격이 되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고후13:8). 적어도 이런 마음 상태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오늘날 교회 예배가 이럴까? 중세에, 교회가 세상을 지배하면서 화려하고 값비싸게 교회당을 건축하고 꾸미고 멋진 옷과 멋진 순서로 예배를 하는 풍조가 교회 안에 들어오고 교회를 크고 화려하게 짓는 유행이 생기면서 예배는 형식이 되고 그런 교회의 예배 자체가 믿음의 척도가 되고 구원의 방편이 되어버린 것이고, 개혁했어도 구교회의 습관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답습하는 모습이 되었다. 초대교회는 그런 멋진 예배당이 있었던 것 같지 않다. 솔로몬의 성전의 화려함을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오늘날 교회당의 표준이 아니다. 그래서 그 성전은 파괴되었고 그와 못지 않게 지은 헤롯의 성전도 파괴 되었다. 우리는 인격 성전을 바르게 짓고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예배를 회복해야 할 것이다. 

 

교훈 : 하나님은 원수를 멸하고 그분을 찾는 만민을 자신에게로 이끄실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인류에 대한 그분의 은총이 회복되었다는 표징이 될 것이다.

 

 

3월 23일(화) 선교사들과 예배 인도자들 (사 66:19~21)

 

“내가 그들 가운데에서 징조를 세워서 그들 가운데에서 도피한 자를 여러 나라 곧…나의 영광을 보지도 못한 먼 섬들로 보내리니…그들이 너희 모든 형제를 뭇 나라에서 나의 성산 예루살렘으로…노새와 낙타에 태워다가 여호와께 예물로 드릴 것이요 나는 그 가운데에서 택하여 제사장과 레위인을 삼으리라…”(사 66:19~21).

 

1. 남은 자들이 열방에서 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여호와께 제물로 바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사 66:19~20)

[사66:19,20] 내가 그들 가운데에서 징조를 세워서 그들 가운데에서 도피한 자를 여러 나라 곧 다시스와 뿔과 활을 당기는 룻과 및 두발과 야완과 또 나의 명성을 듣지도 못하고 나의 영광을 보지도 못한 먼 섬들로 보내리니 그들이 나의 영광을 뭇 나라에 전파하리라 20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자손이 예물을 깨끗한 그릇에 담아 여호와의 집에 드림 같이 그들이 너희 모든 형제를 뭇 나라에서 나의 성산 예루살렘으로 말과 수레와 교자와 노새와 낙타에 태워다가 여호와께 예물로 드릴 것이요.

 

답: 선교사들을 보내서 이방인들을 하나님의 백성이 되도록 한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도피한 자들을 땅 끝에,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보내시며 “그들이 나의 영광을 뭇 나라에 전파하리라”(사 66:19)고 하셨다. 이것은 선교사 파송이라는 주제를 가장 명백하게 진술한 구약의 사례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방인들이 히브리 민족에게 이끌려 올 뿐 아니라, 히브리인들이 다른 나라로 가서 그들에게 참하나님에 관하여 가르칠 것이라는 신약의 모형이 명백하게 제시된 것이다. 비록 포로생활에서 돌아왔을 때부터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 사이에 유대인 선교사들이 있었지만(마 23:15),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신속하고도 광범위하게 복음을 전파하였다(골 1:23).

이스라엘 백성이 곡식을 제물로 가져와 여호와께 바친 것처럼, 선교사들도 그분께 제물을 바칠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제물은 “뭇 나라에서” 데리고 온 “너희 모든 형제”(사 66:20)들이 될 것이었다. 곡식 제물이 죽이지 않는 예물이었듯이, 여호와께 데려온 회심자들은 그분께 바치는 ‘산 제물’이 될 것이다(롬 12:1 참고).

사람을 일종의 예물로 하나님께 바친다는 개념을 민 8:11과 비교해 보라.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레위인을 흔들어 바치는 제물로 여호와 앞에 드릴지니 이는 그들에게 여호와께 봉사하게 하기 위함이라”(민 8:11).

 

2. “그 가운데에서 택하여 제사장과 레위인을 삼으리라”(사 66:21)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에는 어떤 중요한 의미가 있는가?

 

답: 이방인들 중에서 하나님을 위하여 사람들을 하나님께 산 제물로 드리는 선교사와 봉사자들이 나올 것을 약속한 것이다. 

 

21절에서 말하는 대상은 뭇 나라에서 온 “너희 모든 형제”(사 66:21)를 가리킨다. 이 이방인들 중에서 하나님은 몇을 택하셔서 제사장과 레위인으로 더불어 예배를 인도할 자로 삼으신다. 이것은 혁명적인 변화이다. 이방인은 결코 아론의 자손이나 레위인이 될 수 없었으나, 하나님은 일반 유대인에게도 금지되어 있던 이 자격을 그들에게 주어 봉사하게 하실 것이었다.

 

<부가설명> 바울은 자신을 이방인들을 하나님께 바치는 제사장이라고 말하였다.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 만하게 하려 하심이라”(롬15:16). 저자가 제시한 두 성경 구절(민8:11, 사66:21)은 유대인이 아니고 레위인이 아니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일꾼 된 사람들이 제사장과 레위인의 자격으로 하나님께 봉사한다는 것을 예언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오늘날 민족적 유대인과 레위인 중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복음의 선교사로 활동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지 우리는 모른다. 그러나 온 세상 각 나라에 있는 재림성도들은 세 천사의 영원한 복음을 전하여 사람들을 하나님께 산 제물로 드리는 제사장과 레위인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이것은 새 하늘과 새 땅이 창조되는 하나님의 창조사업에 동참하는 영광을 누리는 것이다. 그래서 창조주를 경배하라고 외치고 짐승의 표를 받지 말고 부활과 생명의 하나님을 경배하라고 외치는 것이다. 

 

교훈 : 이사야는 구원받은 백성들이 먼 나라로 파송되어 복음을 전하고 이방인 형제들을 하나님께로 데려와 산 제물로 바치게 될 시대를 예언하였다.

 

 

3월 24일(수) 신앙 공동체 (사 66:21)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출 19:5~6).

 

이스라엘 백성은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출 19:6)이었고, 그들에게는 그들을 대표하여 예배를 인도하는 성별된 제사장들이 있었다. 그러나 미래에는 이방인들도 예배 인도자가 될 것이었다(사 66:21).

 

1. 이러한 변화는 새로운 신앙 공동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는가?(마 28:19, 행 26:20, 갈 3:28, 골 3:11, 딤전 3:16 참고)

[마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고,

[행26:20] 먼저 다메섹과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과 유대 온 땅과 이방인에게까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하라 전하므로, 

[갈3: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골3:11] 거기에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할례파나 무할례파나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차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

[딤전3:16]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려지셨느니라.

 

답: 세계 선교로 나아가게 했다. 

 

하나님의 ‘새로운 세계 질서’에서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백성에 합류할 뿐 아니라, 유대인들과 동등한 동역자로서 통합적인 신앙 공동체의 “왕 같은 제사장들”이 될 것이었다. 따라서 유대인과 이방인을 구별하는 것은 기능적으로 의미가 없게 될 것이었다.

 

2. 이사야의 이 예언은 언제 성취되었는가?

 

답: 사울이 바울이 되어 이방의 사도가 될 때에 성취되었다. 그러나 그전에 베드로가 고넬료에게, 빌립이 구스 내시에게 핍박으로 흩어진 성도들이 사마리아와 헬라인들에게 전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이방인의 사도인 바울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갈 3:28~29)고 선언했다.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가 되고, 고귀한 ‘왕 같은 제사장’이 되는 것은, 특정한 소수 정예에게 위임된 것이 아니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벧전 2:9; 사 66:19 참고)하기 위해 유대인과 결합하는 모든 자들에게 위탁된 것이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의 지위가 상승했다고 해서 하나님이 그들에게도 똑같은 보상을 주셨다고 불평할 권리가 없었다. 또한 해질 무렵 고용된 일꾼이 일찍부터 일하고 있던 일꾼들을 무시해서는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방인들도 유대인 형제자매들을 무례하게 대할 권리가 없다(마 20:1~16 참고).

유대인들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계시의 통로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자들’이었다(롬 3:2).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또한 가지 얼마가 꺾이었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가 되었은즉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랑하지 말라”(롬 11:17~18).

 

<부가설명> 복음에 있어서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하나님 앞에서 완전히 동등하다. 유대인에게 복음에 관한 특권은 없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영적 이스라엘이 되어 복음의 증인들이 되었다. 유대인들이나 이방인들이나 이 일에는 차별도 없고 차등도 없다. 지금은 국가적 민족적으로 하나님의 선민(選民)이 되는 시대가 아니다. 개인적으로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면 제사장의 직무를 받는 것이다. 그들은 우리를 구원하신 대제사장 예수님을 선전하는 제사장들이 되어야 한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는 예언의 중요한 한 부분이다(계1:5,6, 5:9,10). 베드로는 그리스도인을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했다. 그냥 제사장이 아니다. 왕 같은 제사장이다(벧전2:9). 놀라운 특권이다. 이 특권을 생활에서 잘 수행해야 할 것이다. 

 

교훈 :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는 누구도 차별받지 않는다. 모두가 그분을 믿음으로 은혜로 구원을 얻고 누구든지 그분을 위해 일하는 거룩한 도구가 된다.

 

 

3월 25일(목) 너희 자손과 너희 이름이 항상 있으리라 (사 66:22~24)

 

“내가 지을 새 하늘과 새 땅이 내 앞에 항상 있는 것같이 너희 자손과 너희 이름이 항상 있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사 66:22).

 

1. 사 66:22을 읽어보라. 그 말씀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우리는 여기서 어떤 소망을 발견할 수 있는가?

[사66:22] 내가 지을 새 하늘과 새 땅이 내 앞에 항상 있는 것같이 너희 자손과 너희 이름이 항상 있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답: 새 하늘과 새 땅에 우리들과 자손들의 이름이 영원할 것이라는 소망이다. 

 

이사야서에서 가장 놀라운 약속 중 하나가 이사야 66:22에 기록되어 있다. 이 구절을 주의 깊게 읽어 보라.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우리 자손과 우리 이름이 영원히 남을 것이다. 다시는 지워지거나, 잘리거나, 뽑히지 않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죄와 죽음과 고통이 없는 새로운 세상, 곧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이라는 약속이 있다. 그것이 바로 기독교 신앙의 최종적이고 완전한 성취이자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이뤄 놓으신 일들의 완성이다.

 

2. 사 66:23이 묘사하고 있는 새 하늘과 새 땅에 안식일과 더불어 월삭이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66:23] 여호와가 말하노라 매월 초하루와 매 안식일에 모든 혈육이 내 앞에 나아와 예배하리라.

 

답: 매월 초하루(월삭)과 매 안식일에 하나님 앞에 나아가 예배한다. 그 이유는 그분이 창조주시며 우주를 유지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것을 믿는 믿음을 항상 나타내는 것이다.

 

이 난해한 구절을 바라보는 관점은 다양하다. 그중 희생제도가 존재하기 전에 하나님이 안식일을 창조하셨다(창 2:2~3)는 관점이 있다. 비록 안식일이 제사제도에 의해 존중되긴 했으나 그 제도에 의존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안식일은 새 땅의 시대에도 중단 없이 계속 준수된다. 반면 성경에서 월삭이 희생제도와 별개로 준수된 예배일이었다는 암시는 없다. 그러나 새 땅에서 그것은 매주 안식일과 같은 휴식의 날은 아닐지라도, 아마도 생명나무의 매월 주기와 관련한(계 22:2) 예배의 날이 될 것이다.

사 66:23의 의미가 구체적으로 무엇이든 간에 중요한 핵심은, 하나님의 백성이 영원무궁토록 그분을 경배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사야의 경고는 계시이사야는 그 당시의 사람들에게 하나의 생생한 경고로서, 바벨론이 무너질 때에 살아남을 신실한 자들과 멸망당할 패역한 자들을 재차 대조하여 보여준다. 이는 영원한 고문이 아니다. 그들은 태울 것을 다 태우기까지 꺼지지 않는 ‘불’에 멸망한다. 그래야 예루살렘의 재창조가 시작될 수 있다.

록 20장의 궁극적인 성취를 가리킨다. 죄인들과 사탄과 사망은 불못에서 멸망할 것이다. 그런 다음에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이 이르는데 그곳에는 더 이상 눈물과 고통이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기 때문이다(계 21:1~4; 사 65:17~19과 비교). 땅에서 구속함을 받은 모든 이가 거기서 영생을 받고 새로운 삶을 영위할 것이다.

 

<부가설명> 이 구절은 시간관념으로 이해하려고 하면 결코 올바르게 이해할 수 없다. 신학자들이나 예수를 믿는 철학자들이 시간을 하나님이 창조했다고 믿는 것 같다. 그러나 성경에는 시간을 창조한 사실이 기록되지 않은 것 같다. 창조의 넷째 날 창조주는 “하나님이 가라사대 하늘의 궁창에 광명이 있어 주야를 나뉘게 하라 또 그 광명으로 하여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이 이루라(창1:14)라고 하셨다. ‘사시, 일자, 연한’이 시간을 창조한 사실을 표현한 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깊이 생각하면 이것은 시간을 창조한 사실을 표현한 말이기 보다는 창조하신 천체의 운행 법칙을 제정하신 사실을 표현한 것이다. 일자는 지구의 자전을, 연한은 지구의 공전을, 사시는 지구의 공전궤도를 지정하신 것을 나타낸다고 나는 깨닫는다. 성경은 이것을 만물을 붙드시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1:2,3). 이 구절은 창조주께서 모든 세계를 지으시고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신다고 했다. 이것은 창조주께서 하시는 일이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엿새 동안 창조하신 사실이 새 하늘 새 땅에서도 여전히 그렇다는 것을 증명하고 그것을 믿는 믿음으로 창조주를 경배한다는 뜻이고 월삭에 모인다는 것은 달이 지구를 공전하는 일이 거기서도 여전히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말씀인데 창조주께서 천체 운행을 여전히 주장하신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월삭이라는 말이 성경에 처음 나오는 곳이 민수기 10:10이다. 월삭을 절기로 정한 기록 없이 이날에 번제물을 드리고 그 위에 나팔을 불라는 말씀이 나온다. 이것을 보면 이미 월삭에 번제를 드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 창조주께서 창조하신 천체들을 붙드시는 말씀의 능력에 언제나 순복한다는 것을 전제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은 새 하늘 새 땅에서도 여전히 그렇다. 그래서 안식일과 월삭에 하나님 앞에 모여 경배하는 것이 당연하다.

 

교훈 : 그때가 되면 죄가 끝나고 원수와 죽음이 사라지며 지구는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재창조되어서 구원받은 자들은 이곳에서 영원히 행복을 누리며 살 것이다.

 

 

3월 26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각 시대의 대쟁투> 662~678 ‘대쟁투의 종막’을 읽어보라.

“그리고 영원한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대한 더욱 풍성하고 더욱 영광스러운 계시가 나타난다. 또한 지식이 발전되어 감에 따라 사랑과 존경과 행복도 증가될 것이다.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하여 배우면 배울수록 그분의 성품에 대한 그들의 감탄은 더욱 커질 것이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구원의 풍성함과 사탄과의 대쟁투에서 거둔 놀라운 결과를 제시해 주실 때 구속받은 자들의 마음은 더욱 열렬한 헌신의 마음으로 감동되고, 그들은 더욱 충만한 기쁨으로 금거문고를 탄다. 그러자 천천만만의 무리가 목소리를 합하여 웅장한 합창으로 찬양한다.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피조물이 이르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계 5:13).

대쟁투는 끝났다. 죄와 죄인들은 없어졌다. 온 우주는 깨끗해졌다. 오직 조화와 기쁨의 맥박만이 온 우주의 만물을 통하여 고동(鼓動)친다. 생명과 빛과 환희가 만물을 창조하신 분에게서 끝없이 넓은 우주로 퍼져나간다. 가장 작은 원자(原子)로부터 가장 큰 세계에 이르기까지, 만물은 생물계와 무생물계를 막론하고 조금도 흠이 없는 아름다움과 완전한 기쁨으로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선포한다”(각 시대의 대쟁투, 678).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누릴 영생에 대한 약속이 우리의 신앙에 그토록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러한 약속이 없다면 우리의 신앙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 그 약속이 없고 그 약속이 성취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신앙은 소용이 없고 모든 사람들 중에 가장 불쌍하게 살다가 죽는 비참한 사람이 된다(고전15:17~19).

 

요약 : 이사야서는 광대한 비전을 제시합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신앙공동체를 정결하게 하시고 회복시키실 뿐 아니라, 그 범위를 온 열방으로 확대해 나가십니다. 그분에게 속한 공동체의 재창조는 마침내 지구 전체의 재창조로 이어지며, 거기서 그분의 임재는 그분의 백성에게 궁극적인 위로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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