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 이사야 10. 상상할 수 없는 일을 행하심(이런 사람이 메시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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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광진 작성일21-03-01 11:32 조회3,701회 댓글0건첨부파일
- 21-1. 이사야 10. 상상할 수 없는 일을 행하심.hwp (48.0K) 28회 다운로드 DATE : 2021-03-01 11:32:34
본문
▣연구범위 : 사 50:4~10, 사 52:13~53:12
▣기억절 :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입었도다(사 53:5)
▣핵심 : 메시야는 고난을 통해서 죄인을 구원하시고 높임받으신다.
*핵심어 : 고난
▣토의 및 탐구를 위한 질문
★도입 질문 : 가족이 아닌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얼마나 희생해보았는가?
⇒「루 푸크라는 중국인 그리스도인은 아프리카 광산에 노예로 팔려가는 그의 동족들에 대해 깊은 동정심을 느끼고 그들에게 복음의 소망을 나누어주기를 원했으나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를 몰랐다. 한 가지 방법은 5년 동안 자신도 노예로 팔려가 그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었다. 그는 데머레라로 옮겨졌고, 그곳의 광산에서 고생스럽게 일하면서 동료 노동자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하였다. 루 푸크가 죽기까지 200명 이상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고 절망적인 상태에서 해방되었다. 다른 이들의 유익을 위해 자신을 버리다니 이 얼마나 놀라운 자기희생의 모본인가!
예수님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일, 즉 자신을 낮추고 ‘종의 형체’(빌 2:7)를 가지심으로 죄의 깊은 수렁에 빠진 우리와 온 세상을 향해 다가오셨다.」 이 것이 이사야의 핵심이다.
일.1. 메시야는 모욕을 당할 때 어떻게 할 것이었는가?(사 50:6)
2. 사람들에게 모욕을 당할 때 나는 어떻게 하겠는가?
월.1. 메시야는 높임을 받기 전에 또 어떤 비극을 경험할 것인가?(사 52:13~53:12)
2. 면류관을 얻기 위해 내가 져야 할 십자가는 무엇일까?
화.1. 사 53:1의 질문은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
2.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믿게 할 수 있을까?
수.1. 메시야의 고난은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가?(사 53:4)
2. 그분의 고난을 생각할 때 어떤 사람이 되어야겠는가?
목.1. 메시야의 희생은 죄인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가?(사 53:10~12)
2. 주님의 희생을 힙입어 내가 변화되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답을 위한 도움
일.1. 그대로 당함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나의 뺨을 맡기며 모욕과 침 뱉음을 당하여도 내 얼굴을 가리지 아니하였느니라”(사 50:6).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린다는 말처럼 아무리 하찮아보이는 사람도 모욕을 당하고 자존심을 상하면 가만있을 수 없는 법이다. 그러나 메시야는 상상할 수 없는 모욕을 당하면서도 얼굴을 돌려 피하지 않으신다. 예수님이 빌라도 법정으로, 그리고 골고다 언덕으로 끌려가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피를 흘리실 때 사람들은 그를 향해 온갖 모욕을 다했다. 그에게 침을 뱉거나 뺨을 갈기고 그에게 가시면류관을 씌운 후 그 앞에 무릎꿇어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네가 메시야라면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라, 그러면 우리가 믿겠노라”는 말로 조롱하기도 했다.
이런 모욕을 당하면서도 그들을 그저 바라만 보고 계시는 무력한 인간을 어떻게 인류를 구원하러 오신 메시야로 믿을 수 있겠는가?
「사람들은 그것이 너무나도 이상하여 믿지를 못했다. “저가 남을 구원하였으니 만일 하나님이 택하신 자 그리스도이면 자신도 구원할지어다”(눅 23:35).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노라”(마 27:42).」
그러므로 그것은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는 진리이다. 그런데 로마의 백부장은 예수님의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큰소리로 그분이 메시야임을 선언하였다.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막 16:39) 그는 시험에 합격한 것이다. 나의 죄로 인해 내가 당해야 할 수치를 대신 당하신 일이야말로 참 메시야의 모습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내려오실 수 있으셨다. 그러나 죄인이 하나님의 용서와 은총을 받을 수 있는 희망을 갖게 된 것은 그분께서 자기 자신을 구원하려고 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시대의 소망 749)
월.1. 십자가의 길
「이 시의 서론부(사 52:13~53:1)는 믿기 어렵겠지만 그 종이 형통하고 높임을 받을 것이나, 그의 모습이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상할 것라는 놀라운 대조를 드러낸다. 사 53:2~3은 그 종의 태생과 평범한 모습에서 슬픔과 거절로의 고통스런 나락을 전개한다. 사 53:4~6은 잠시 멈추어 그분은 진실로 우리를 치유하기 위해 우리가 받을 형벌을 짊어지신다는 사실을 설명한다. 사 53:7~9은 다시 무덤까지 내려가는 무죄한 종의 모습을 묘사한다...
이 시와 빌 2:5~11을 비교해보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형상이셨지만 자기를 비우셔서 인간의 모양을 취하시고 모든 죽음 중에서 가장 비천한 죽음인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셨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를 심히 높여서 만인으로 하여금 그를 주로 인정하게 하셨다(사 49:7 참고).」
예수님을 견딜 수 없게 한 것은 육체적인 형벌보다 인류의 모든 죄의 짐을 홀로 지심으로 하나님에게서 끊어짐을 당하는 영적인 고통이었다. 그분은 이러한 고통을 신이 아닌 연약한 인성으로 감당하셔야 했다.
“우리를 율법의 정죄에서 구속하려고 그분은 범죄자로 헤아림을 받으셨다. 아담의 모든 자손의 죄가 그분의 마음을 눌렀다. 불법으로 인하여 생긴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 곧 그분의 무서운 불쾌하심이 당신의 아들의 영혼을 전율하게 만들었다... 이 최대의 고민의 시간에 하나님께서 구주로부터 얼굴을 돌리심으로 인간이 결코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슬픔이 그분의 마음을 찔렀다. 이러한 고민이 너무 컸기 때문에 그분은 육체적 고통을 거의 느낄 수 없었다.”(시대의 소망 753)
화.1. 믿음을 호소함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사 53:1).
「사 53:1에 있는 두 질문을 보라. 이 질문들은 믿을 수 없는 것을 믿어야 하는 도전에 대해 말하며(요 12:37~41 참고), 우리에게 잠잠히 남은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한다.
그런데 이 질문들은 호소를 포함하기도 한다. 문맥 속에서 이 두 질문의 유사점은 여호와의 능력 있는 구원의 팔이 “전한 것”(53:1)을 믿는 자들에게 나타났다는 것을 암시한다(사 52:10 참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기 원하는가? 그렇다면 그 “전한 것”을 믿으라.」
모든 성경이 “전한 것”은 메시야에 대한 예언이다. 그것은 예수님을 통해서 성취되었다.(요 5:39). 그러나 사람들은 분명한 예언들에도 불구하고 고난받는 종으로서의 메시야에 대한 예언은 간과하고 무시해버렸다. 그러한 메시야는 그들의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사야는 장차 메시야가 고난받을 것을 전하지만 사람들이 그 것을 받아들이지 못할 것을 내다보며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메시야의 희생을 통해서 구원하시는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며 탄식한다.(사 53:1) 그것은 동시에 제발 좀 믿으라고 간곡하게 호소하는 것이다. 기록된 대로 “전한 것”을 그대로 믿는 자에게 여호와의 구원의 팔이 나타날 것이다.
수.1. 나를 위함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사 53:4).
예수님은 온전히 무죄하신 분이었기에 고난당할 이유가 전혀 없으셨다. 그러나 그분이 고난당하심은 우리 모든 사람의 죄를 짊어지시고 대신 형벌 받으심으로 우리를 죄와 멸망에서 구원하시기 위함이었다.
「‘왜?’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 곧 시험하는 진리이다.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메시아가 고난을 당하도록 선택되었다. 하지만 왜인가? 이사야는 상상하기 어려운 진리의 완성에 종지부를 찍는다. 그는 구제할 수 없는 자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고난의 길을 선택한다. 그런데 그 구제할 수 없는 자들이 바로 우리였다!...
모세가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은 것(신 21:23, 민 25:4)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그것은 다 하나님의 뜻이었다(사 53:10). 왜일까?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갈 3:13)시기 위해서였다. 또한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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