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 이사야 8. 내 백성을 위로하라(위로가 위로되는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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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광진 작성일21-02-16 07:15 조회3,105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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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연구 범위 ∥ 사 40장
▣기억절 ∥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하지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게 이르기를 너희의 하나님을 보라 하라”(사 40:9).
▣핵심 ∥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자비로우시고, 그분에게 우리를 구원할 만한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핵심어 : 자비, 능력
▣토의 및 탐구를 위한 질문
☆도입 : 나에게 가장 위로가 되었던 말은?
⇒
일.1. 사 40:1의 내 백성을 위로하라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
2. 고난의 때가 끝날 것이라는 성경의 약속은 얼마나 큰 용기가 되는가?
월.1. 위로를 위한 전제조건은 무엇인가?(사 40:1~8)
2. 주님을 모시기 위해 내 마음의 평탄케 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화.1. 구원의 기별을 사람들이 듣도록 하기 위해 누가 필요한가?(사 40:9~11)
2. 나에게 주신 전도자의 사명을 어떻게 감당하겠는가?
수.1. 자비로우신 하나님은 또한 어떤 분이신가?(사 40장)
2. 하나님이 창조주라는 사실은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목.1. 우상 숭배는 얼마나 어리석은가?(사 40:19~20)
2. 내가 버려야 할 우상은 무엇인가?
▣적용, 결심
☆이번 주 교과를 통해서 결심한 것이 있다면?
▣답을 위한 도움
일.1. 징벌이 끝날 것이라는 기별
오랜 세월 배도의 늪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은 바벨론에 나라를 빼앗기고 포로로 끌려가 70년간 눈물과 고통의 나날을 보냈다. 하나님은 그들을 해방시켜 남은자들로 본토에 돌아오도록 하셨다. 그것은 이사야 당시로부터 아직 먼 미래에 속한 일이었으나 미리 기록해둠으로써 장차 고난받을 백성들에게 믿음과 소망을 주고자 함이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이 불순종할 때 고난을 허락하시나 멸망이 목적이 아니요, 고난을 통해서 정결케 하여 구원하시는 긍휼이 크신 하나님이시다.
「이사야 1~39장은 기원전 701년에 있었던 앗수르로부터의 구원에 이르기까지의 사건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이사야 40장부터는 그로부터 약 150년을 뛰어넘어 기원전 539년에 있을 바벨론의 종말과 그 후에 있을 유대인들의 귀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나님은 “야곱을 긍휼히 여기시며 이스라엘을 다시 택하여 그들의 땅에 두시리니...너를 슬픔과 곤고와 및 네가 수고하는 고역에서 놓으시고 안식을 주”(사 14:1)실 것이며 그들로 하여금 바벨론 왕에 대하여 노래를 지어 부르게 할 것이었다(사 14:3).」
월.1. 길을 평탄케 함
장차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사 40:5) 이는 메시야에 대한 약속이다. 하나님의 백성을 위로하기 위해 장차 메시야가 오실 것이었다. 가까이는 바벨론에서 해방시켜 줄 고레스 대왕이, 그보다 더 오랜 후에는 죄에서 구원하실 예수님이 오실 것이다. 고레스나 다른 구원자들은 풀처럼 시들었으나, 예수님은 영원한 ‘말씀’으로 오셔서 예언을 성취하고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온 세상의 구원과 소망이 되셨다. 그러므로 우리의 참된 위로자는 예수님 뿐이다. 그런데 그분의 오심을 위해서 백성들은 길을 평탄케 해야 했다. 길을 평탄케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거친 길은 어떤 왕에게도 적합하지 않다. 따라서 왕이 오기 전에 평탄하게 되어야 한다. 하물며 왕 중의 왕을 위해서라면 어떻겠는가!...
신약은 분명하게 이사야의 예언을 침례 요한의 설교를 통한 영적인 평탄작업에 적용한다(마 3:3). 요한의 기별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 3:2)였고, 그가 베푼 침례는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침례”(막 1:4)였다.」
예수님는 모든 죄인을 위해 오셨으나, 그분을 통해 구원과 위로를 받을 사람은 죄를 통회하고 회개함으로 “죄악의 사함”(사 40:2)을 경험한 자 뿐이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마 5:4)
예수님 당시 경건해보이는 종교지도자들은 회개하지 않음으로 하나님의 위로를 얻지 못하였으나 세리들과 창녀들은 회개하고 위로를 경험했다.
화.1. 전하는 자
예수님이 세상에 오셨을 때 그분을 메시야로 알아보고 증거한 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시므온과 안나, 그리고 침례 요한이었다. 증거하는 이들이 없었다면 사람들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신약은 이사야 40:3~5을 자기 백성 가운데 육체로 오시는 영원한 말씀(요 1:14)이신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했던 침례 요한에게 적용한다. 물론 요한보다 더 일찍 그분이 오셨다는 소식을 전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 중에 나이 많은 시므온과 안나가 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증인이 필요하다. 현대 문명은 눈이 부시도록 발전하고 있지만 삶은 더욱 복잡하고 경쟁에 시달리고 있다. 경쟁에서 낙오한 자는 삶을 포기하기도 한다. 이긴 자나 진 자나 힘겨운 삶에 위로를 얻기 위해 향락에 빠지거나 종교에 의지한다. 그러나 어디에도 마음의 안식과 평안을 주는 참된 위로를 발견하지 못해 사람들은 소망없이 죽어간다. 코로나19는 오랫동안 온 세상을 어둡게 하고 있다.
말세의 위로와 소망은 세 천사의 기별에 있다. 그 기별을 온 세상에 신속히 전해야 할 사명이 남은 자손에게 있다.
수.1. 창조주
죄인을 구원하고 위로하시는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며 전능자이시다.
「이사야 40장 전체에서 하나님의 자비와 능력이라는 주제는 서로 얽혀있다못해 섞여 있다. 왜냐하면 이 둘은 하나님이 그분의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분은 자비로우시기 때문에 그들을 구원하기 원하신다. 그분은 강하시기 때문에 그들을 구원하실 수 있다.」
인간은 자비로우나 무능력할 수 있고, 능력은 있으나 무자비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인간은 궁극적으로 의지할 대상이 못된다. 그러나 하나님은 세상을 무에서 유로 창조하신 무한한 능력의 근원이시며 사랑 그 자체이시다. 그러므로 그분을 의지하는 자는 실망당하지 않는다.
목.1. 유한한 인간의 손으로 만든 수공품일 뿐
우상은 인간이 자기의 생각대로 고안해내고 만든 물건임에도 그것에게 경배하고 구원을 기대하는 것은 스스로의 수준을 끌어내리는 행위이다. 왜 사람들은 이런 어리석음에 빠지는가?
「고대의 문헌들을 보면 우상숭배는 매력적이었다. 왜냐하면 그것이 물질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예배 형식을 사용함으로써 우상숭배자들은 그들이 믿는 세력들이 그들에게 풍요와 번영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자구(自求)적인 신앙에 불과했다.」 우상숭배는 결국 스스로 구원의 길을 찾는 행함으로 말미암는 의라는 것이다.
수공물을 섬기는 것 뿐 아니라 하나님보다 사랑하는 모든 것이 우상이다. 오늘날 가장 널리 퍼진 우상은 돈이다. 우상숭배는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생각하는 이들 중에도 있다. 세상적인 번영이나 자녀를 하나님 보다 떠받드는 것들은 매우 교묘한 우상들이다. 이러한 삶 속에는 하나님의 위로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