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과 앗수르의 패망 (질문.대답.설명) 02/1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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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1-02-06 09:30 조회6,292회 댓글0건본문
제7과 앗수르의 패망
2월 13일 안식일
일몰:오후 6시 9분
● 연구 범위 : 이사야 36~39장
● 기억절 : “그룹 사이에 계신 이스라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는 천하만국에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라 주께서 천지를 만드셨나이다”(사 37:16).
수척해 보이는 한 아버지가 두 아들과 함께 맨발로 걷고 있다. 어떤 가족은 야윈 황소들이 끄는 수레에 그들의 모든 소유를 실었다. 어떤 사람은 소의 고삐를 잡고 두 여인을 수레에 태워 간다. 수레가 없는 가난한 사람들은 어깨에 물건을 메고 간다.
병사들이 여기저기에 보인다. 공성퇴가 성문을 부순다. 공성퇴 꼭대기에서는 궁수들이 성벽을 방어하는 자들에게 화살을 쏜다. 정신없는 학살이 자행된다.
여러 장면을 건너뛰면 왕이 전리품과 포로들을 보며 거만하게 왕좌에 앉아있다. 어떤 포로는 두 손을 높이 들고 나아오고, 어떤 포로는 빌면서 자비를 간청한다. 또 어떤 포로들은 무릎을 꿇거나 엎드린다. 왕의 보좌 위에는 이런 글이 적혀있다. “세상의 왕이요 앗수르의 왕인 산헤립은 느므두 왕좌에 좌정하고 라기스의 전리품들은 그 앞을 잇따라 지나간다.”―John Malcolm Russell, The Writing on the Wall (Winona Lake, Indiana: Eisenbrauns, 1999), pp. 137, 138.
이는 적수가 없었던 산헤립의 왕궁 벽을 장식했던 일련의 그림이 묘사하는 장면으로서 그 벽은 현재 대영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으며, 하나님을 믿노라고 공언하는 백성이 겪은 곤경이 얼마나 극심했는지를 보여준다.
※ 학습 목표
깨닫기 : 진리에 기초한 믿음의 기도가 사탄의 시험을 이기는 비결임을 배운다.
느끼기 :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에 가장 좋은 방법으로 응답해 주실 것을 믿고 감사드린다.
행하기 : 세상 사람들이 나를 주목할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기회를 놓치지 않기로 결심한다.
➋ 히스기야는 산헤립의 침입에 어떻게 대비했습니까? 영적으로는 어떻게 대비했습니까?(대하 32:2~8, 30)
※ 방비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만들고 견고하며 백성들이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지하도록 했다.
➌ 랍사게의 선동을 듣고 히스기야는 코앞에 닥친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려고 노력했습니까?(사 37:1~6)
※ 그는 선지자의 협력을 구하며 하나님께 기도하여 극복하려고 했다.
➍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기도에 어떻게 응답하셨습니까?(사 37:33~38)
※ 해시계의 해 그림자를 뒤로 10도 물러가게 하는 것으로 응답하셨다.
➎ 히스기야가 바벨론에서 온 사신들 앞에서 범한 최고의 실수는 무엇일까요?(사 39:1~2)
※ 하나님을 높이는 대신 자기를 높인 것이다.
결론 : 사탄은 에덴동산에서 행한 첫 번째 기만 이래, 간단한 속임수로 큰 성공을 거두어 왔습니다. 우리는 싸워보지도 못하고 사탄에게 굴복해 버릴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히스기야의 인생은 시련의 때에 믿음의 반응을 보인 성공의 모본일 뿐 아니라 번영의 때에 자기의 영광을 추구한 실패의 사례이기도 합니다.
2월 7일(일) 믿음에 따른 방책들 (사 36:1)
“너희는 마음을 강하게 하며 담대히 하고…우리와 함께 하시는 이는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시라 반드시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시리라…”(대하 32:7~8).
1. 유다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왕하 18:13, 대하 32:1, 사 36:1)
[왕하18:13] 히스기야 왕 제십사년에 앗수르의 왕 산헤립이 올라와서 유다 모든 견고한 성읍들을 쳐서 점령하매,
[대하32:1] 이 모든 충성된 일을 한 후에 앗수르 왕 산헤립이 유다에 들어와서 견고한 성읍들을 향하여 진을 치고 쳐서 점령하고자 한지라.
[사36:1] 히스기야 왕 십사년에 앗수르 왕 산헤립이 올라와서 유다의 모든 견고한 성을 쳐서 취하니라.
답: 앗수르 왕 산헤립이 유다의 여러 도시들을 점령하는 일이 일어났다.였다.
불충실한 아하스가 죽고 신실한 그의 아들 히스기야가 왕위를 이어받았을 때, 유다 왕국은 완전한 독립을 상실한 상태였다. 수리아와 북방 이스라엘의 동맹에 대항하기 위해 앗수르의 힘을 빌린 대가로 유다는 ‘보호금’이라는 명목의 조공을 바치도록 강요받았다(대하 28:16~21 참고). 기원전 705년에 앗수르 왕 사르곤 2세가 전쟁터에서 죽고 산헤립(센나케리브)이 왕위를 계승했을 때, 앗수르는 취약한 상황에 놓인 것처럼 보였다. 앗수르의 문헌과 성경상의 증거를 살펴보면, 히스기야는 이 기회를 반역의 기회로 삼고, 그 지역의 약소국들을 결집하여 앗수르에 저항하는 반란을 일으키는 주모자로서 과감한 행동을 취하였다(왕하 18:7 참고).
그러나 불행하게도 히스기야는 앗수르 세력의 회복력을 과소평가했다. 기원전 701년에 산헤립이 앗수르 제국의 다른 지역을 정복하고 그 여세를 몰아 수리아와 팔레스틴 지역으로 진격하였고 유다를 유린하려고 하였다.
2. 히스기야는 앗수르에 대항하기 위해 어떻게 대비했는가?(대하 32:1~8)
[대하32:1~8] 이 모든 충성된 일을 한 후에 앗수르 왕 산헤립이 유다에 들어와서 견고한 성읍들을 향하여 진을 치고 쳐서 점령하고자 한지라 2 히스기야가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치러 온 것을 보고 3 그의 방백들과 용사들과 더불어 의논하고 성 밖의 모든 물 근원을 막고자 하매 그들이 돕더라 4 이에 백성이 많이 모여 모든 물 근원과 땅으로 흘러가는 시내를 막고 이르되 어찌 앗수르 왕들이 와서 많은 물을 얻게 하리요 하고 5 히스기야가 힘을 내어 무너진 모든 성벽을 보수하되 망대까지 높이 쌓고 또 외성을 쌓고 다윗 성의 밀로를 견고하게 하고 무기와 방패를 많이 만들고 6 군대 지휘관들을 세워 백성을 거느리게 하고 성문 광장에서 자기 앞에 무리를 모으고 말로 위로하여 이르되 7 너희는 마음을 강하게 하며 담대히 하고 앗수르 왕과 그를 따르는 온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이가 그와 함께 하는 자보다 크니 8 그와 함께 하는 자는 육신의 팔이요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이는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시라 반드시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시리라 하매 백성이 유다 왕 히스기야의 말로 말미암아 안심하니라.
답: 히스기야는 그의 방백들과 용사들과 더불어 의논하고 성 밖의 모든 물 근원과 땅으로 흘러가는 시내를 막고 무너진 모든 성벽을 보수하되 망대까지 높이 쌓고 또 외성을 쌓고 다윗 성의 밀로를 견고하게 하고 무기와 방패를 많이 만들고 군대 지휘관들을 세워 백성을 거느리게 하고 성문 광장에서 자기 앞에 무리를 모으고 여호와 하나님을 신뢰하라고 격려했다.
산헤립의 예루살렘 공격 계획을 알고 히스기야는 방대한 대비책을 강구했다. 그는 성벽을 강화하고, 군대를 정비하며, 예루살렘을 위한 안전한 식수 공급 시설을 보강했다(왕하 20:20, 대하 32:30 참고). 실로암 수로가 얼마나 뛰어나게 건설되었는지를 말해 주는 기념비의 비문은 그것이 예루살렘의 포위 가능성에 대비했던 히스기야 시대의 업적이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물론 군사력과 조직적인 지도력도 중요하지만 히스기야는 그 두려운 시기에 백성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해 영적인 지도력을 발휘하였다.
<부가설명> 히스기야는 왕으로서 대신들과 군사들과 국민들이 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을 함께 수행했다. 그리고 그들을 모으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철저히 신뢰하도록 격려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인간 지도자를 의지하는 것보다 여호와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에게 문제 해결을 맡기는 것이 당연하다.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시146:3).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수에 칠 가치가 어디 있느뇨”(사2:22). 그래도 도우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사람은 인생을 의지하려는 경향이 아주 강하다. 많은 그리스도인들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눈앞에 현실적으로 시험과 곤난이 보이기 때문이고 무섭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사실을 그럴 때 더욱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잡고 신뢰하고 믿음을 행사해야 하는데 육신이 약한 사람들이 두려워서 이런 신뢰를 감당하지 못한다. 히스기야가 믿음으로 서서 산헤립을 물리쳤지만 또 연약하여져서 무너지기도 한 굴곡을 볼 때 히스기야의 이야기만 아니고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했을 때 승리한 사실을 기록하여 이 시대의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떤 경우라도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의지하도록 격려하였다.
교훈 : 히스기야는 다가오는 위기에 철저히 대비했다. 그는 도성의 시설을 정비했을 뿐 아니라 백성들을 군사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무장시켰다.
2월 8일(월) 선동 (사 36:2~20)
“혹시 히스기야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건지시리라 할지라도 속지 말라 열국의 신들 중에 자기의 땅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진 자가 있느냐”(사 36:18).
앗수르의 통치자들은 잔인할 뿐 아니라 매우 영리했다. 그들의 목표는 단순한 파괴가 아니라 부와 권력이었다(사 10:13~14 참고). 만일 말로 설득해서 거주자들을 항복시킬 수 있다면 굳이 무력을 사용함으로써 자원을 허비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산헤립은 라기스를 포위하여 공격하는 동안에 그의 ‘랍사게’(고위 관직 중 하나)를 보내어 선동을 통해서 예루살렘을 항복시키려고 했다.
1. 랍사게는 유다를 위협하기 위해 어떤 논리를 폈는가?(사 36:2~20; 왕하 18:17~35, 대하 32:9~19 참고)
[사36:2~20] 앗수르 왕이 라기스에서부터 랍사게를 예루살렘으로 보내되 대군을 거느리고 히스기야 왕에게로 가게 하매 그가 윗못 수도 곁 세탁자의 밭 큰 길에 서매 3 힐기야의 아들 왕궁 맡은 자 엘리아김과 서기관 셉나와 아삽의 아들 사관 요아가 그에게 나아가니라 4 랍사게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제 히스기야에게 말하라 대왕 앗수르 왕이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네가 믿는 바 그 믿는 것이 무엇이냐 5 내가 말하노니 네가 족히 싸울 계략과 용맹이 있노라 함은 입술에 붙은 말뿐이니라 네가 이제 누구를 믿고 나를 반역하느냐 6 보라 네가 애굽을 믿는도다 그것은 상한 갈대 지팡이와 같은 것이라 사람이 그것을 의지하면 손이 찔리리니 애굽 왕 바로는 그를 믿는 모든 자에게 이와 같으니라 7 혹시 네가 내게 이르기를 우리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노라 하리라마는 그는 그의 산당과 제단을 히스기야가 제하여 버리고 유다와 예루살렘에 명령하기를 너희는 이 제단 앞에서만 예배하라 하던 그 신이 아니냐 하셨느니라 8 그러므로 이제 청하노니 내 주 앗수르 왕과 내기하라 내가 네게 말 이천 필을 주어도 너는 그 탈 자를 능히 내지 못하리라 9 그런즉 네가 어찌 내 주의 종 가운데 극히 작은 총독 한 사람인들 물리칠 수 있으랴 어찌 애굽을 믿고 병거와 기병을 얻으려 하느냐 10 내가 이제 올라와서 이 땅을 멸하는 것이 여호와의 뜻이 없음이겠느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기를 올라가 그 땅을 쳐서 멸하라 하셨느니라 하니라 11 이에 엘리아김과 셉나와 요아가 랍사게에게 이르되 우리가 아람 방언을 아오니 청하건대 그 방언으로 당신의 종들에게 말하고 성 위에 있는 백성이 듣는 데에서 우리에게 유다 방언으로 말하지 마소서 하니 12 랍사게가 이르되 내 주께서 이 일을 네 주와 네게만 말하라고 나를 보내신 것이냐 너희와 함께 자기의 대변을 먹으며 자기의 소변을 마실 성 위에 앉은 사람들에게도 하라고 보내신 것이 아니냐 하더라 13 이에 랍사게가 일어서서 유다 방언으로 크게 외쳐 이르되 너희는 대왕 앗수르 왕의 말씀을 들으라 14 왕의 말씀에 너희는 히스기야에게 미혹되지 말라 그가 능히 너희를 건지지 못할 것이니라 15 히스기야가 너희에게 여호와를 신뢰하게 하려는 것을 따르지 말라 그가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반드시 우리를 건지시리니 이 성이 앗수르 왕의 손에 넘어가지 아니하리라 할지라도 16 히스기야의 말을 듣지 말라 앗수르 왕이 또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내게 항복하고 내게로 나아오라 그리하면 너희가 각각 자기의 포도와 자기의 무화과를 먹을 것이며 각각 자기의 우물 물을 마실 것이요 17 내가 와서 너희를 너희 본토와 같이 곡식과 포도주와 떡과 포도원이 있는 땅에 옮기기까지 하리라 18 혹시 히스기야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건지시리라 할지라도 속지 말라 열국의 신들 중에 자기의 땅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진 자가 있느냐 19 하맛과 아르밧의 신들이 어디 있느냐 스발와임의 신들이 어디 있느냐 그들이 사마리아를 내 손에서 건졌느냐 20 이 열방의 신들 중에 어떤 신이 자기의 나라를 내 손에서 건져냈기에 여호와가 능히 예루살렘을 내 손에서 건지겠느냐 하셨느니라 하니라.
[왕하18:17~35] 앗수르 왕이 다르단과 랍사리스와 랍사게로 하여금 대군을 거느리고 라기스에서부터 예루살렘으로 가서 히스기야 왕을 치게 하매 그들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니라 그들이 올라가서 윗못 수도 곁 곧 세탁자의 밭에 있는 큰 길에 이르러 서니라 18 그들이 왕을 부르매 힐기야의 아들로서 왕궁의 책임자인 엘리야김과 서기관 셉나와 아삽의 아들 사관 요아가 그에게 나가니 19 랍사게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히스기야에게 말하라 대왕 앗수르 왕의 말씀이 네가 의뢰하는 이 의뢰가 무엇이냐 20 네가 싸울 만한 계교와 용력이 있다고 한다마는 이는 입에 붙은 말 뿐이라 네가 이제 누구를 의뢰하고 나를 반역하였느냐 21 이제 네가 너를 위하여 저 상한 갈대 지팡이 애굽을 의뢰하도다 사람이 그것을 의지하면 그의 손에 찔려 들어갈지라 애굽의 왕 바로는 그에게 의뢰하는 모든 자에게 이와 같으니라 22 너희가 내게 이르기를 우리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의뢰하노라 하리라마는 히스기야가 그들의 산당들과 제단을 제거하고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에게 명령하기를 예루살렘 이 제단 앞에서만 예배하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셨나니 23 청하건대 이제 너는 내 주 앗수르 왕과 내기하라 네가 만일 말을 탈 사람을 낼 수 있다면 나는 네게 말 이천 마리를 주리라 24 네가 어찌 내 주의 신하 중 지극히 작은 지휘관 한 사람인들 물리치며 애굽을 의뢰하고 그 병거와 기병을 얻을 듯하냐 25 내가 어찌 여호와의 뜻이 아니고야 이제 이 곳을 멸하러 올라왔겠느냐 여호와께서 전에 내게 이르시기를 이 땅으로 올라와서 쳐서 멸하라 하셨느니라 하는지라 26 힐기야의 아들 엘리야김과 셉나와 요아가 랍사게에게 이르되 우리가 알아듣겠사오니 청하건대 아람 말로 당신의 종들에게 말씀하시고 성 위에 있는 백성이 듣는 데서 유다 말로 우리에게 말씀하지 마옵소서 27 랍사게가 그에게 이르되 내 주께서 네 주와 네게만 이 말을 하라고 나를 보내신 것이냐 성 위에 앉은 사람들도 너희와 함께 자기의 대변을 먹게 하고 자기의 소변을 마시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하고 28 랍사게가 드디어 일어서서 유다 말로 크게 소리 질러 불러 이르되 너희는 대왕 앗수르 왕의 말씀을 들으라 29 왕의 말씀이 너희는 히스기야에게 속지 말라 그가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내지 못하리라 30 또한 히스기야가 너희에게 여호와를 의뢰하라 함을 듣지 말라 그가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반드시 우리를 건지실지라 이 성읍이 앗수르 왕의 손에 함락되지 아니하게 하시리라 할지라도 31 너희는 히스기야의 말을 듣지 말라 앗수르 왕의 말씀이 너희는 내게 항복하고 내게로 나아오라 그리하고 너희는 각각 그의 포도와 무화과를 먹고 또한 각각 자기의 우물의 물을 마시라 32 내가 장차 와서 너희를 한 지방으로 옮기리니 그 곳은 너희 본토와 같은 지방 곧 곡식과 포도주가 있는 지방이요 떡과 포도원이 있는 지방이요 기름 나는 감람과 꿀이 있는 지방이라 너희가 살고 죽지 아니하리라 히스기야가 너희를 설득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건지시리라 하여도 히스기야에게 듣지 말라 33 민족의 신들 중에 어느 한 신이 그의 땅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진 자가 있느냐 34 하맛과 아르밧의 신들이 어디 있으며 스발와임과 헤나와 아와의 신들이 어디 있느냐 그들이 사마리아를 내 손에서 건졌느냐 35 민족의 모든 신들 중에 누가 그의 땅을 내 손에서 건졌기에 여호와가 예루살렘을 내 손에서 건지겠느냐 하셨느니라.
[대하32:9~19] 그 후에 앗수르 왕 산헤립이 그의 온 군대를 거느리고 라기스를 치며 그의 신하들을 예루살렘에 보내어 유다 왕 히스기야와 예루살렘에 있는 유다 무리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10 앗수르 왕 산헤립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가 예루살렘에 에워싸여 있으면서 무엇을 의뢰하느냐 11 히스기야가 너희를 꾀어 이르기를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를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 하거니와 이 어찌 너희를 주림과 목마름으로 죽게 함이 아니냐 12 이 히스기야가 여호와의 산당들과 제단들을 제거하여 버리고 유다와 예루살렘에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다만 한 제단 앞에서 예배하고 그 위에 분향하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13 나와 내 조상들이 이방 모든 백성들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모든 나라의 신들이 능히 그들의 땅을 내 손에서 건져낼 수 있었느냐 14 내 조상들이 진멸한 모든 나라의 그 모든 신들 중에 누가 능히 그의 백성을 내 손에서 건져내었기에 너희 하나님이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지겠느냐 15 그런즉 이와 같이 너희는 히스기야에게 속지 말라 꾀임을 받지 말라 그를 믿지도 말라 어떤 백성이나 어떤 나라의 신도 능히 자기의 백성을 나의 손과 나의 조상들의 손에서 건져내지 못하였나니 하물며 너희 하나님이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내겠느냐 하였더라 16 산헤립의 신하들도 더욱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종 히스기야를 비방하였으며 17 산헤립이 또 편지를 써 보내어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욕하고 비방하여 이르기를 모든 나라의 신들이 그들의 백성을 내 손에서 구원하여 내지 못한 것 같이 히스기야의 신들도 그의 백성을 내 손에서 구원하여 내지 못하리라 하고 18 산헤립의 신하가 유다 방언으로 크게 소리 질러 예루살렘 성 위에 있는 백성을 놀라게 하고 괴롭게 하여 그 성을 점령하려 하였는데 19 그들이 예루살렘의 하나님을 비방하기를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세상 사람의 신들을 비방하듯 하였더라.
답: 애굽은 갈대지팡이니까 의지하면 부러져서 손을 찌를 뿐이고, 앗수르를 대적한 주위 나라들이 다 정복되었다. 그들의 신이 앗수르를 이기지 못했다. 그러니 너희 여호와도 앗수르를 이기지 못한다. 히스기야는 여호와를 섬기는 장소로 사용한 모든 산당을 폐지하고 오직 예루살렘에 성전 하나만 남겼는데 너희 하나님이 너희를 돕겠는가? 그러니까 항복하면 행복하게 될 것이다. ᄋᆞ주 논리적으로 이런 말을 했다.
랍사게는 상당히 강력한 논리를 펼쳤다. ‘애굽은 이미 약해져 있기 때문에 너희는 애굽을 의지할 수 없다. 너희는 여호와를 의지할 수도 없는데, 왜냐하면 히스기야가 여호와의 산당들과 제단들을 제하고 오직 예루살렘 성전에서만 경배하게 함으로 여호와를 불쾌하게 했기 때문이다. 너희는 2천 필의 말을 주어도 그것들을 탈 만큼 훈련된 군사가 없다. 그러니 포위되어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는 고통을 피하려면 지금 항복하라. 그러면 잘 대우하겠다. 다른 신들도 그들의 나라를 앗수르의 손에서 구할 수 없었으니, 여호와도 너희를 구할 수 없을 것이다.’
랍사게의 말은 진실이었는가?
그의 말은 많은 진실을 담고 있었기 때문에 상당히 설득력이 있었다. 게다가 두 가지 사실이 그의 말에 설득력을 더해 주었다. 첫째, 그는 방금 48㎞ 떨어진 라기스에서 왔는데, 앗수르에 대항하던 강력한 요새들도 무너지고 있었다. 둘째, 그는 막강한 앗수르의 대군을 거느리고 왔다(사 36:2).
유다 사람들은, 북방 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를 포함하여, 앗수르에 패배한 다른 나라의 최후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인간적인 견지에서 볼 때, 예루살렘이 어떻게 될 것인지는 불을 보듯 뻔했다(왕하 18:9~10, 사 10:8~11 참고). 히스기야가 예루살렘 성전 예배를 강화하기 위해서 여러 산당을 파괴했다는 랍사게의 말도 사실이었다(왕하 18:4, 대하 31:1). 하지만 이러한 개혁이 하나님을 불쾌하시게 했다면 그의 백성에게 희망을 걸 만한 무엇이 남겠는가? 과연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구하실 것인가? 아니 구원하실 수 있겠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려 있었다.
<부가설명>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은 말의 논리를 앞세운다. 말을 이치에 맞게 잘 정돈해서 논리적으로 딱 들어맞게 말하는 제주가 대단하다. 그렇게 하려고 학문이라는 이름으로 연구를 많이 한다. 학문의 방법은 논리학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마귀가 시험의 광야에서 예수님을 시험한 방법이 논리를 정리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사탄에게서 나온 것인지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을 사탄이 이용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것은 가설과 실험과 증명과 사실이라는 방법이다. 먼저 가설을 세운다. 그 가설이 사실이라면 실험으로 증명해야 한다. 그렇게 증명이 되면 가설이 사실이 된다. 랍사게의 논리도 이렇게 맞아떨어진다. 말 이천 필을 준다면, 그것을 타고 부릴 수 있는 기병을 내어봐라. 그렇게 나올 기병이 없다면 너희는 싸울 능력이 없다. 주위의 여러 나라도 그랬다. 결과가 아수르에 정복된 것이다. 너희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논리이다. 나라들의 신들도 앗수르 군대를 당하지 못했다. 너희 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여호와를 신뢰하라고 했다. 거기는 가설도 실험도 없다. 신뢰하면 된다. 그것이 신앙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구원과 하나님의 도우심을 실험하고 증명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 하나님은 계시고 그분의 약속은 분명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와 구원은 역사적 사실이기 때문에 전적인 믿음으로 이런 논리를 이겨야 한다. 신앙은 논리 이전의 상태이다.
교훈 : 인간적인 관점에서 볼 때, 랍사게의 말은 매우 설득력이 있어 보였지만 예루살렘의 모든 소망이 사라진 것 같은 그때야말로 하나님이 일하실 시간이었다.
2월 9일(화) 흔들렸지만 외면당하지 않음 (사 36:21~37:20)
“히스기야 왕이 듣고 자기의 옷을 찢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여호와의 전으로 갔고 왕궁 맡은 자 엘리아김과 서기관 셉나와 제사장 중 어른들도 굵은 베 옷을 입으니라…”(사 37:1~2).
1. 랍사게의 영리한 웅변이 히스기야와 그의 신하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왕하 18:37~19:4, 사 36:21~37:4)
[왕하18:37~19:4] 이에 힐기야의 아들로서 왕궁 내의 책임자인 엘리야김과 서기관 셉나와 아삽의 아들 사관 요아가 옷을 찢고 히스기야에게 나아가서 랍사게의 말을 전하니라/ 19:1 히스기야 왕이 듣고 그 옷을 찢고 굵은 베를 두르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2 왕궁의 책임자인 엘리야김과 서기관 셉나와 제사장 중 장로들에게 굵은 베를 둘려서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에게로 보내매 3 그들이 이사야에게 이르되 히스기야의 말씀이 오늘은 환난과 징벌과 모욕의 날이라 아이를 낳을 때가 되었으나 해산할 힘이 없도다 4 랍사게가 그의 주 앗수르 왕의 보냄을 받고 와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비방하였으니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혹시 그의 말을 들으셨을지라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들으신 말 때문에 꾸짖으실 듯하니 당신은 이 남아 있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소서 하더이다 하니라.
[사36:21~37:4] 그러나 그들이 잠잠하여 한 말도 대답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왕이 그들에게 명령하여 대답하지 말라 하였음이었더라 22 그 때에 힐기야의 아들 왕궁 맡은 자 엘리아김과 서기관 셉나와 아삽의 아들 사관 요아가 자기의 옷을 찢고 히스기야에게 나아가서 랍사게의 말을 그에게 전하니라/ 37:1 히스기야 왕이 듣고 자기의 옷을 찢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여호와의 전으로 갔고 2 왕궁 맡은 자 엘리아김과 서기관 셉나와 제사장 중 어른들도 굵은 베 옷을 입으니라 왕이 그들을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에게로 보내매 3 그들이 이사야에게 이르되 히스기야의 말씀에 오늘은 환난과 책벌과 능욕의 날이라 아이를 낳으려 하나 해산할 힘이 없음 같도다 4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랍사게의 말을 들으셨을 것이라 그가 그의 상전 앗수르 왕의 보냄을 받고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훼방하였은즉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혹시 그 말로 말미암아 견책하실까 하노라 그런즉 바라건대 당신은 이 남아 있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하시더이다 하니라.
답: 그들이 슬픔과 탄식의 표로 옷을 찢고 오직 진정으로 하나님께 매달릴 수밖에 없다는 마음을 일으켜서 왕이 회개하며 기도하였다.
뿌리까지 흔들린 히스기야는 슬픔과 비탄에 빠져 하나님께로 나아갔다. 그리고 부왕이 무시했던 선지자 이사야에게 겸손히 기도를 요청했다.
2. 하나님은 어떻게 히스기야를 격려하셨는가?(사 37:5~7)
[사37:5~7]그리하여 히스기야 왕의 신하들이 이사야에게 나아가매 6 이사야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너희 주에게 이렇게 말하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들은 바 앗수르 왕의 종들이 나를 능욕한 말로 말미암아 두려워하지 말라 7 보라 내가 영을 그의 속에 두리니 그가 소문을 듣고 그의 고국으로 돌아갈 것이며 또 내가 그를 그의 고국에서 칼에 죽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라.
답: 두려워하지 말라. 소문을 듣고 고국으로 돌아갈 것이고 칼에 죽게 할 것이다.
기별은 간결했으나 충분했다!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의 편이셨다. 이사야는 산헤립이 소문을 듣고 유다에 대한 공세에서 물러설 것이라고 예언했다. 이 예언은 즉시 성취되었다. 일시적으로 위축되었지만 포기할 마음이 없었던 산헤립은 히스기야에게 위협적인 기별을 보냈다. “너는 네가 신뢰하는 하나님이 예루살렘이 앗수르 왕의 손에 넘어가지 아니하리라 하는 말에 속지 말라…그 나라들의 신들이 건졌더냐?”(사 37:10, 12; 대하 32:17 참고).
히스기야는 곧바로 성전으로 가서 그 기별을 여호와 앞에 펴놓고 “그룹 사이에 계신”(사 37:16) 만군의 여호와께 아뢰었다.
3. 히스기야의 기도에 따르면 예루살렘은 얼마나 위태로웠는가?(사 37:15~20)
[사37:15~20]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16 그룹 사이에 계신 이스라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는 천하 만국에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라 주께서 천지를 만드셨나이다 17 여호와여 귀를 기울여 들으시옵소서 여호와여 눈을 뜨고 보시옵소서 산헤립이 사람을 보내어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훼방한 모든 말을 들으시옵소서 18 여호와여 앗수르 왕들이 과연 열국과 그들의 땅을 황폐하게 하였고 19 그들의 신들을 불에 던졌사오나 그들은 신이 아니라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일 뿐이요 나무와 돌이라 그러므로 멸망을 당하였나이다 20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이제 우리를 그의 손에서 구원하사 천하 만국이 주만이 여호와이신 줄을 알게 하옵소서 하니라.
답: 곧 함락될 상태에 있었다.
산헤립은 히스기야의 가장 강력한 방어수단인 하나님께 대한 그의 믿음을 집중적으로 공략했다. 히스기야는 산헤립의 말에 굴복하는 대신에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천하에 알게 하시기를 그분께 호소하였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이제 우리를 그의 손에서 구원하사 천하만국이 주만이 여호와이신 줄을 알게 하옵소서”(사 37:20).
<부가설명> 히스기야는 믿음의 사람이었다. 그는 열심을 다하여 그의 아버지가 훼파한 성전을 보수하고 만들어놓은 우상들을 파괴하였다. 그리고 유대를 여호와 하나님 신앙으로 되돌리는 데 성공했다. 히스기야 왕의 열심은 우상숭배에 빠졌던 유대 국민들을 각성하게 하고 그 하나님을 섬기고 경배하도록 이끌었다. 한 신앙적이고 유능한 지도자의 영향력을 볼 수 있는 개혁이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런 히스기야의 기도를 즉시 응답하셔거 히스기야의 신앙개혁과 국민들의 회개를 받으신 것을 나타내셨다. 위기의 상태에서 현실적으로 엄청난 국력으로 압박하는 나라의 군대를 눈앞에 두고 이런 믿음을 발휘하고 행사하는 것은 보통 믿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늘날 우리가 이런 상태에 직면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코로나19라는 괴물을 이용하여 국가 권력이 하나님의 교회를 음성(陰性)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히스기야의 용기를 가지고 우리의 믿음을 지켜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교회가 일깨어야 할 때가 아닌가? 진리를 확인하고 스스로 진리에 충성하며 호흡마다 기도가 되는 삶으로 주님께 매달려야 할 때가 아닌가?
교훈 : 히스기야는 산헤립의 위협을 듣고 하나님께 나아갔다. 그는 위기의 절정에 이르러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보여달라고 믿음의 기도를 드렸다.
2월 10일(수) 남은 이야기 (사 37:21~38)
“여호와의 사자가 나가서 앗수르 진중에서 십팔만 오천 인을 쳤으므로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본즉 시체뿐이라”(사 37:36).
산헤립은 유다의 46개 성읍을 정복하고 예루살렘을 포위했으며, 유다 왕 히스기야를 “새장의 새처럼 그의 왕궁이 있는 예루살렘에 가두었다.”고 그의 연대기에 기록했다. 그러나 곳곳에 기념비를 세워 자신의 업적을 알리는 그의 성향에도 불구하고, 어떤 문서나 벽화에도 예루살렘을 정복했다는 주장은 없다. 놀랍게도 산헤립의 막강한 세력에 대항하여 히스기야가 반역을 주도했었다는 사실이 생략되었다. 앗수르에 대항하는 반역은 곧 생명의 단축과 소름끼치는 죽음을 의미했다.
성경의 기록이 아니더라도 분명히 기적이 일어났음을 학자들도 인정한다. 적수가 없었던 산헤립이 그의 왕궁 벽에 라기스를 포위했던 장면을 생생하게 새겨놓은 것은 체면을 살리기 위한 장치였던 것으로 보인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이 벽화에는 라기스 대신에 예루살렘이 그려져 있을 뻔했다. 성경은 산헤립이 하지 않은, 남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1. 남은 이야기는 무엇인가?(사 37:21~37).
[사37:21~37]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사람을 보내어 히스기야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네가 앗수르의 산헤립 왕의 일로 내게 기도하였도다 하시고 22 여호와께서 그에 대하여 이같이 이르시되 처녀 딸 시온이 너를 멸시하며 조소하였고 딸 예루살렘이 너를 향하여 머리를 흔들었느니라 23 네가 훼방하며 능욕한 것은 누구에게냐 네가 소리를 높이며 눈을 높이 들어 향한 것은 누구에게냐 곧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에게니라 24 네가 네 종을 통해서 주를 훼방하여 이르기를 내가 나의 허다한 병거를 거느리고 산들의 꼭대기에 올라가며 레바논의 깊은 곳에 이르렀으니 높은 백향목과 아름다운 향나무를 베고 또 그 제일 높은 곳에 들어가 살진 땅의 수풀에 이를 것이며 25 내가 우물을 파서 물을 마셨으니 내 발바닥으로 애굽의 모든 하수를 말리리라 하였도다 26 네가 어찌하여 듣지 못하였느냐 이 일들은 내가 태초부터 행한 바요 상고부터 정한 바로서 이제 내가 이루어 네가 견고한 성읍들을 헐어 돌무더기가 되게 하였노라 27 그러므로 그 주민들이 힘이 약하여 놀라며 수치를 당하여 들의 풀 같이, 푸른 나물 같이, 지붕의 풀 같이, 자라지 못한 곡초 같이 되었느니라 28 네 거처와 네 출입과 네가 나를 거슬러 분노함을 내가 아노라 29 네가 나를 거슬러 분노함과 네 오만함이 내 귀에 들렸으므로 내가 갈고리로 네 코를 꿰며 재갈을 네 입에 물려 너를 오던 길로 돌아가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30 왕이여 이것이 왕에게 징조가 되리니 올해는 스스로 난 것을 먹을 것이요 둘째 해에는 또 거기에서 난 것을 먹을 것이요 셋째 해에는 심고 거두며 포도나무를 심고 그 열매를 먹을 것이니이다 31 유다 족속 중에 피하여 남은 자는 다시 아래로 뿌리를 박고 위로 열매를 맺으리니 32 이는 남은 자가 예루살렘에서 나오며 피하는 자가 시온 산에서 나올 것임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이다 33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에 대하여 이같이 이르시되 그가 이 성에 이르지 못하며 화살 하나도 이리로 쏘지 못하며 방패를 가지고 성에 가까이 오지도 못하며 흉벽을 쌓고 치지도 못할 것이요 34 그가 오던 길 곧 그 길로 돌아가고 이 성에 이르지 못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35 대저 내가 나를 위하며 내 종 다윗을 위하여 이 성을 보호하며 구원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36 여호와의 사자가 나가서 앗수르 진중에서 십팔만 오천인을 쳤으므로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본즉 시체뿐이라 37 이에 앗수르의 산헤립 왕이 떠나 돌아가서 니느웨에 거주하더니 38 자기 신 니스록의 신전에서 경배할 때에 그의 아들 아드람멜렉과 사레셀이 그를 칼로 죽이고 아라랏 땅으로 도망하였으므로 그의 아들 에살핫돈이 이어 왕이 되니라.
답: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보호하시고 구원하신다는 기별을 보내시고 그날 밤에 앗수르 군대 185,000명을 한 천사를 보내어 죽게 하여 산헤립이 돌아갈 수밖에 없었고 말씀하신 대로 그는 고국에 돌아가서 아들들의 손에 죽임을 당했다.
하나님은 온전한 믿음으로 드린 히스기야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서 유다를 위한 완전한 보증의 기별을 그에게 보내셨다. 그것은 감히 왕의 왕이신 분을 공격한 거만한 앗수르 왕에 대한 진노의 기별이었다(사 37:23).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방어하시겠다는 약속을 신속하게 이루셨다(왕하 19:35~37, 대하 32:21~22, 사 37:36~38).
큰 위기가 큰 기적을 낳았다. 무려 18만 5천 명이나 되는 적군이 쓰러졌다. 그리하여 산헤립은 본국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고, 거기서 죽음을 맞이했다(사 37:7~38에 나오는 이사야의 예언과 비교해보라).
만일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정복했더라면 그는 백성을 이주시켰을 것이고, 유다는 북방 이스라엘과 같이 정체성을 잃고 말았을 것이며, 메시아 탄생을 소망했던 유대인의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소망의 불씨를 살려주셨다.
<부가설명>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여자의 후손을 보내시겠다는 약속을 창세기 3장 15절에서 하셨다. 더 멀리는 여호와 회의에서 평화에 관한 의논을 하실 때 하셨다. 이 약속은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한 사람이 이 지구에 생존하게 될 것이다. 그 여자의 후손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오실 것이고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것이다. 그러기 위하여서는 유대민족이 여자의 후손이 오실 때까지는 역사적으로 존속해야 하고 다윗의 후손은 분명히 있어야 한다. 사탄은 이것을 저지하기 위하여 얼마나 노력했는지 모른다. 세상에 죄가 관영하게 해서 호수로 모든 사람을 멸망하도록 했으나 하나님은 노아를 건지시고 셈의 후손으로 구주를 보낼 것을 말씀하셨고, 애굽에서 바로가 모든 아들을 다 죽이라고 했으나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시고 나라를 세우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셨다. 그 나라가 배도하여 망하게 되었으나 유다 지파가 중심이 된 유다 나라를 보존하시고 다윗의 자손인 요셉과 정혼한 동정녀 마리아를 통하여 여자의 후손 예수께서 탄생하시므로 인류를 구원하는 일을 이루셨다. 이 일이 이루기까지 유다 나라는 망할 수 없었다. 산헤립이 이것을 어떻게 알았겠는가. 여호와께서 히스기야의 기도를 응답하셨지만 그 이면에는 이런 구원의 계획을 성취하여야 하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감사합니다.
교훈 :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간절한 기도에 응답하셔서 기적적인 방법으로 원수를 물리치셨다. 그렇게 해서 메시아에 대한 소망이 이어질 수 있었다.
2월 11일(목) 질병 그리고 번영 (이사야 38~39장)
“그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니…”(사 38:1).
이사야 38~39장(왕하 20장 참고)에 나오는 사건은 하나님이 히스기야를 산헤립의 손에서 건지신 사건과 시기적으로 매우 가깝다. 사 38:5~6과 왕하 20:6을 보면 그들은 여전히 앗수르의 위협에 직면해 있었다.
“사탄은 히스기야의 죽음과 예루살렘의 멸망, 이 둘 모두를 이루고자 결심하였다. 이는 그가 만일 히스기야가 없으면 개혁을 위한 그의 노력이 그칠 것이며, 따라서 예루살렘의 멸망이 더욱 신속히 성취될 것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었다”(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성경주석 4권, 301).
1. 위의 인용문에 따르면 하나님의 백성에게 훌륭한 지도자가 얼마나 중요한가?
답: 지도자에 따라서 나라가 흥하고 망하게 될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2.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믿음을 확증하는 표로서 어떤 징조를 베푸셨는가?(왕하 20:8~10, 사 38:6~8)
[왕하20:8~10]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낫게 하시고 삼 일 만에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게 하실 무슨 징표가 있나이까 하니 9 이사야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실 일에 대하여 여호와께로부터 왕에게 한 징표가 임하리이다 해 그림자가 십도를 나아갈 것이니이까 혹 십도를 물러갈 것이니이까 하니 10 히스기야가 대답하되 그림자가 십도를 나아가기는 쉬우니 그리할 것이 아니라 십도가 뒤로 물러갈 것이니이다 하니라.
[사38:6~8]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져내겠고 내가 또 이 성을 보호하리라 7 이는 여호와께로 말미암는 너를 위한 징조이니 곧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을 그가 이루신다는 증거이니라 8 보라 아하스의 해시계에 나아갔던 해 그림자를 뒤로 십 도를 물러가게 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더니 이에 해시계에 나아갔던 해의 그림자가 십 도를 물러가니라.
답: 아하스의 해시계의 해 그림자를 뒤로 10도 물러가게 하는 징조를 주셨다.
아하스는 하나님이 제시하신 징조를 거절함으로써(사 7장) 앗수르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길로 들어섰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징조를 구하였으므로(왕하 20:8) 하나님은 그로 하여금 그의 아버지가 가져온 위기에 대응할 수 있게 하셨다. 참으로 아하스의 일영표(해시계)의 해 그림자가 뒤로 물러간 것은 오직 기적을 통해서만 가능했다.
바벨론 사람들은 천체의 움직임을 연구하고 이 사실을 정확히 기록했다. 따라서 그들은 태양의 이상한 움직임을 주목하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궁금해 했다. 그때 므로닥발라단이 유다에 사신들을 보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바벨론 사람들은 히스기야의 병이 나은 것과 기적적인 징조 사이의 관계를 깨달았다.
우리는 왜 하나님이 이 특별한 징조를 택하셨는지를 안다. 훗날 베들레헴의 별을 사용해서 동방박사들을 이끄셨던 것처럼 하나님은 태양계의 변화를 사용해서 바벨론의 사자들을 이끄셨다.
이것은 그들이 참 하나님을 배울 수 있는 특별한 기회였다. 므로닥발라단은 평생 동안 앗수르로부터 지속적인 독립을 쟁취하고자 애썼다. 그가 강력한 동맹국을 필요로 했다는 사실은 그가 히스기야와 접촉한 것으로 설명된다. 히스기야의 기도만으로 태양이 움직였다면 히스기야가 못할 일이 무엇이었겠는가?
<부가설명> 우리가 믿는 성경의 하나님은 못하실 것이 전혀 없으신 분이시다. 그분이 하시고 하면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다. “오직 우리 하나님은 하늘에 계셔서 원하시는 모든 것을 행하셨나이다”(시115:3).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해그림자를 10도 뒤로 물러가게 하셨고, 앗수르 대군을 하루저녁에 몰사하게도 하셨다. 그런데도 이 지구의 사람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구원의 일을 하시는데는 친히 사람이 되어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셔서 사망을 처리하셔야 했다. 그리고 삼일만에 부활하셔서 생명과 썩지 않는 것을 드러내셨다(딤후1:10). 사망이 된 아담과 그의 후손을 구원하는 일이 그만큼 어려운 사업인 것 같다. 이런 희생으로 이루어주신 구원을 우리가 등한히 여기면 어떻게 영원한 멸망을 피하겠는가(히2:3)? 당시로는 앗수르이 속국으로 있던 바벨론은 앗수르의 속박에서 독립하려고 애를 썼는데 해그림자를 10도나 물러가게 하는 히스기야의 하나님의 능력을 얻으려고 문병사절을 보냈는데 히스기야는 이 능력의 하나님을 증거하는 데 실패했다. 교만해졌고 베푸신 은혜를 아마도 어느 순간에 잊어버린 것이다. 이사야의 책망을 들었을 때 화들짝 깨닫고 회개했다고 생각된다. 우리는 언제나 주님 앞에서 겸손하고 자아를 죽게 하는 바울의 경험으로 신앙생활을 이루자.
교훈 :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신뢰심으로 히스기야는 다시 한번 큰 기적을 경험했지만 바벨론 사절들이 방문했을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데는 실패했다.
2월 12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하나님의 직접적인 개입으로써만 해시계 위의 그림자가 십 도 물러가게 할 수 있었고 이것이 여호와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셨다는 것을 히스기야에게 알리는 징조가 될 것이었다”(선지자와 왕, 342).
“먼 나라 통치자에게서 온 이 사자들의 내방은 히스기야에게 살아 계신 하나님을 찬양할 기회를 주었다. 모든 피조물을 붙드시는 분, 다른 모든 희망이 사라졌을 때에 은총을 통하여 자신의 생명을 구한 하나님을 그들에게 소개하는 일이야말로 히스기야에게 얼마나 쉬운 일이었을까! 만일 갈대아 평야에서 진리를 찾으려고 온 이 사람들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최상권을 승인하도록 인도함을 받았더라면 얼마나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을 것인가! …
그러나 히스기야의 마음은 교만과 허영심으로 가득 차서 자기 자신을 높이고자 했다. 그래서 탐욕의 눈을 가진 이들에게 하나님이 그분의 백성을 부요하게 하신 보물들을 보여 주었다. 왕이 ‘그들에게 보물 창고 곧 은금과 향료와 보배로운 기름과 모든 무기고에 있는 것을 다 보여 주었으니 히스기야가 궁중의 소유와 전 국내의 소유를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사 39:2)었다. 왕이 이렇게 한 것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자 함이 아니요 외국 방백들의 목전에서 자신을 높이고자 함이었다”(선지자와 왕, 344~345).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사탄은 앗수르의 랍사게와 얼마나 흡사합니까? 우리가 죄를 범했다고 사탄이 말할 때, 그 말은 사실입니까?(슥 3:1). 하나님은 어떻게 반응하십니까?(슥 3:2~5 참고). 이러한 고소가 있을 때 우리의 유일한 소망은 무엇입니까?(롬 8:1).
※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사유하시는 은혜를 붙들어야 한다. 스가랴서의 기록은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있다고 했다. 사탄의 참소는 사실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탄을 꾸짖으시고 주님의 요청대로 더러운 옷을 벗기고 아름다운 옷을 입혀주셨다.
➋ 우리가 용서를 받았다고 해서 사탄이 우리에 대한 고소를 멈출까요?(계 12:10 참고). 그가 제기하는 고소의 본질은 무엇입니까?(신 19:16~21)
※ 용서 받았어도 사탄의 참소는 그가 없어질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 그는 항상 사람이 악을 행하였다고 고소한다. 그는 우리의 모든 행동을 부릅뜬 눈으로 살피고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순간순간 회개의 호흡으로 사유를 경험하는 기도와 믿음으로 살아야 하겠다.
요약 : 신실한 왕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여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을 구하시고, 자신이 세상을 주관하는 이스라엘의 전능한 왕이시라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분은 자기 백성을 공격하는 자들을 물리치시지만 또한 그들에게 그분의 백성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십니다.
2월 13일 안식일
일몰:오후 6시 9분
● 연구 범위 : 이사야 36~39장
● 기억절 : “그룹 사이에 계신 이스라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는 천하만국에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라 주께서 천지를 만드셨나이다”(사 37:16).
수척해 보이는 한 아버지가 두 아들과 함께 맨발로 걷고 있다. 어떤 가족은 야윈 황소들이 끄는 수레에 그들의 모든 소유를 실었다. 어떤 사람은 소의 고삐를 잡고 두 여인을 수레에 태워 간다. 수레가 없는 가난한 사람들은 어깨에 물건을 메고 간다.
병사들이 여기저기에 보인다. 공성퇴가 성문을 부순다. 공성퇴 꼭대기에서는 궁수들이 성벽을 방어하는 자들에게 화살을 쏜다. 정신없는 학살이 자행된다.
여러 장면을 건너뛰면 왕이 전리품과 포로들을 보며 거만하게 왕좌에 앉아있다. 어떤 포로는 두 손을 높이 들고 나아오고, 어떤 포로는 빌면서 자비를 간청한다. 또 어떤 포로들은 무릎을 꿇거나 엎드린다. 왕의 보좌 위에는 이런 글이 적혀있다. “세상의 왕이요 앗수르의 왕인 산헤립은 느므두 왕좌에 좌정하고 라기스의 전리품들은 그 앞을 잇따라 지나간다.”―John Malcolm Russell, The Writing on the Wall (Winona Lake, Indiana: Eisenbrauns, 1999), pp. 137, 138.
이는 적수가 없었던 산헤립의 왕궁 벽을 장식했던 일련의 그림이 묘사하는 장면으로서 그 벽은 현재 대영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으며, 하나님을 믿노라고 공언하는 백성이 겪은 곤경이 얼마나 극심했는지를 보여준다.
※ 학습 목표
깨닫기 : 진리에 기초한 믿음의 기도가 사탄의 시험을 이기는 비결임을 배운다.
느끼기 :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에 가장 좋은 방법으로 응답해 주실 것을 믿고 감사드린다.
행하기 : 세상 사람들이 나를 주목할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기회를 놓치지 않기로 결심한다.
➋ 히스기야는 산헤립의 침입에 어떻게 대비했습니까? 영적으로는 어떻게 대비했습니까?(대하 32:2~8, 30)
※ 방비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만들고 견고하며 백성들이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지하도록 했다.
➌ 랍사게의 선동을 듣고 히스기야는 코앞에 닥친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려고 노력했습니까?(사 37:1~6)
※ 그는 선지자의 협력을 구하며 하나님께 기도하여 극복하려고 했다.
➍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기도에 어떻게 응답하셨습니까?(사 37:33~38)
※ 해시계의 해 그림자를 뒤로 10도 물러가게 하는 것으로 응답하셨다.
➎ 히스기야가 바벨론에서 온 사신들 앞에서 범한 최고의 실수는 무엇일까요?(사 39:1~2)
※ 하나님을 높이는 대신 자기를 높인 것이다.
결론 : 사탄은 에덴동산에서 행한 첫 번째 기만 이래, 간단한 속임수로 큰 성공을 거두어 왔습니다. 우리는 싸워보지도 못하고 사탄에게 굴복해 버릴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히스기야의 인생은 시련의 때에 믿음의 반응을 보인 성공의 모본일 뿐 아니라 번영의 때에 자기의 영광을 추구한 실패의 사례이기도 합니다.
2월 7일(일) 믿음에 따른 방책들 (사 36:1)
“너희는 마음을 강하게 하며 담대히 하고…우리와 함께 하시는 이는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시라 반드시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시리라…”(대하 32:7~8).
1. 유다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왕하 18:13, 대하 32:1, 사 36:1)
[왕하18:13] 히스기야 왕 제십사년에 앗수르의 왕 산헤립이 올라와서 유다 모든 견고한 성읍들을 쳐서 점령하매,
[대하32:1] 이 모든 충성된 일을 한 후에 앗수르 왕 산헤립이 유다에 들어와서 견고한 성읍들을 향하여 진을 치고 쳐서 점령하고자 한지라.
[사36:1] 히스기야 왕 십사년에 앗수르 왕 산헤립이 올라와서 유다의 모든 견고한 성을 쳐서 취하니라.
답: 앗수르 왕 산헤립이 유다의 여러 도시들을 점령하는 일이 일어났다.였다.
불충실한 아하스가 죽고 신실한 그의 아들 히스기야가 왕위를 이어받았을 때, 유다 왕국은 완전한 독립을 상실한 상태였다. 수리아와 북방 이스라엘의 동맹에 대항하기 위해 앗수르의 힘을 빌린 대가로 유다는 ‘보호금’이라는 명목의 조공을 바치도록 강요받았다(대하 28:16~21 참고). 기원전 705년에 앗수르 왕 사르곤 2세가 전쟁터에서 죽고 산헤립(센나케리브)이 왕위를 계승했을 때, 앗수르는 취약한 상황에 놓인 것처럼 보였다. 앗수르의 문헌과 성경상의 증거를 살펴보면, 히스기야는 이 기회를 반역의 기회로 삼고, 그 지역의 약소국들을 결집하여 앗수르에 저항하는 반란을 일으키는 주모자로서 과감한 행동을 취하였다(왕하 18:7 참고).
그러나 불행하게도 히스기야는 앗수르 세력의 회복력을 과소평가했다. 기원전 701년에 산헤립이 앗수르 제국의 다른 지역을 정복하고 그 여세를 몰아 수리아와 팔레스틴 지역으로 진격하였고 유다를 유린하려고 하였다.
2. 히스기야는 앗수르에 대항하기 위해 어떻게 대비했는가?(대하 32:1~8)
[대하32:1~8] 이 모든 충성된 일을 한 후에 앗수르 왕 산헤립이 유다에 들어와서 견고한 성읍들을 향하여 진을 치고 쳐서 점령하고자 한지라 2 히스기야가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치러 온 것을 보고 3 그의 방백들과 용사들과 더불어 의논하고 성 밖의 모든 물 근원을 막고자 하매 그들이 돕더라 4 이에 백성이 많이 모여 모든 물 근원과 땅으로 흘러가는 시내를 막고 이르되 어찌 앗수르 왕들이 와서 많은 물을 얻게 하리요 하고 5 히스기야가 힘을 내어 무너진 모든 성벽을 보수하되 망대까지 높이 쌓고 또 외성을 쌓고 다윗 성의 밀로를 견고하게 하고 무기와 방패를 많이 만들고 6 군대 지휘관들을 세워 백성을 거느리게 하고 성문 광장에서 자기 앞에 무리를 모으고 말로 위로하여 이르되 7 너희는 마음을 강하게 하며 담대히 하고 앗수르 왕과 그를 따르는 온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이가 그와 함께 하는 자보다 크니 8 그와 함께 하는 자는 육신의 팔이요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이는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시라 반드시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시리라 하매 백성이 유다 왕 히스기야의 말로 말미암아 안심하니라.
답: 히스기야는 그의 방백들과 용사들과 더불어 의논하고 성 밖의 모든 물 근원과 땅으로 흘러가는 시내를 막고 무너진 모든 성벽을 보수하되 망대까지 높이 쌓고 또 외성을 쌓고 다윗 성의 밀로를 견고하게 하고 무기와 방패를 많이 만들고 군대 지휘관들을 세워 백성을 거느리게 하고 성문 광장에서 자기 앞에 무리를 모으고 여호와 하나님을 신뢰하라고 격려했다.
산헤립의 예루살렘 공격 계획을 알고 히스기야는 방대한 대비책을 강구했다. 그는 성벽을 강화하고, 군대를 정비하며, 예루살렘을 위한 안전한 식수 공급 시설을 보강했다(왕하 20:20, 대하 32:30 참고). 실로암 수로가 얼마나 뛰어나게 건설되었는지를 말해 주는 기념비의 비문은 그것이 예루살렘의 포위 가능성에 대비했던 히스기야 시대의 업적이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물론 군사력과 조직적인 지도력도 중요하지만 히스기야는 그 두려운 시기에 백성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해 영적인 지도력을 발휘하였다.
<부가설명> 히스기야는 왕으로서 대신들과 군사들과 국민들이 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을 함께 수행했다. 그리고 그들을 모으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철저히 신뢰하도록 격려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인간 지도자를 의지하는 것보다 여호와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에게 문제 해결을 맡기는 것이 당연하다.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시146:3).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수에 칠 가치가 어디 있느뇨”(사2:22). 그래도 도우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사람은 인생을 의지하려는 경향이 아주 강하다. 많은 그리스도인들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눈앞에 현실적으로 시험과 곤난이 보이기 때문이고 무섭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사실을 그럴 때 더욱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잡고 신뢰하고 믿음을 행사해야 하는데 육신이 약한 사람들이 두려워서 이런 신뢰를 감당하지 못한다. 히스기야가 믿음으로 서서 산헤립을 물리쳤지만 또 연약하여져서 무너지기도 한 굴곡을 볼 때 히스기야의 이야기만 아니고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했을 때 승리한 사실을 기록하여 이 시대의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떤 경우라도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의지하도록 격려하였다.
교훈 : 히스기야는 다가오는 위기에 철저히 대비했다. 그는 도성의 시설을 정비했을 뿐 아니라 백성들을 군사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무장시켰다.
2월 8일(월) 선동 (사 36:2~20)
“혹시 히스기야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건지시리라 할지라도 속지 말라 열국의 신들 중에 자기의 땅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진 자가 있느냐”(사 36:18).
앗수르의 통치자들은 잔인할 뿐 아니라 매우 영리했다. 그들의 목표는 단순한 파괴가 아니라 부와 권력이었다(사 10:13~14 참고). 만일 말로 설득해서 거주자들을 항복시킬 수 있다면 굳이 무력을 사용함으로써 자원을 허비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산헤립은 라기스를 포위하여 공격하는 동안에 그의 ‘랍사게’(고위 관직 중 하나)를 보내어 선동을 통해서 예루살렘을 항복시키려고 했다.
1. 랍사게는 유다를 위협하기 위해 어떤 논리를 폈는가?(사 36:2~20; 왕하 18:17~35, 대하 32:9~19 참고)
[사36:2~20] 앗수르 왕이 라기스에서부터 랍사게를 예루살렘으로 보내되 대군을 거느리고 히스기야 왕에게로 가게 하매 그가 윗못 수도 곁 세탁자의 밭 큰 길에 서매 3 힐기야의 아들 왕궁 맡은 자 엘리아김과 서기관 셉나와 아삽의 아들 사관 요아가 그에게 나아가니라 4 랍사게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제 히스기야에게 말하라 대왕 앗수르 왕이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네가 믿는 바 그 믿는 것이 무엇이냐 5 내가 말하노니 네가 족히 싸울 계략과 용맹이 있노라 함은 입술에 붙은 말뿐이니라 네가 이제 누구를 믿고 나를 반역하느냐 6 보라 네가 애굽을 믿는도다 그것은 상한 갈대 지팡이와 같은 것이라 사람이 그것을 의지하면 손이 찔리리니 애굽 왕 바로는 그를 믿는 모든 자에게 이와 같으니라 7 혹시 네가 내게 이르기를 우리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노라 하리라마는 그는 그의 산당과 제단을 히스기야가 제하여 버리고 유다와 예루살렘에 명령하기를 너희는 이 제단 앞에서만 예배하라 하던 그 신이 아니냐 하셨느니라 8 그러므로 이제 청하노니 내 주 앗수르 왕과 내기하라 내가 네게 말 이천 필을 주어도 너는 그 탈 자를 능히 내지 못하리라 9 그런즉 네가 어찌 내 주의 종 가운데 극히 작은 총독 한 사람인들 물리칠 수 있으랴 어찌 애굽을 믿고 병거와 기병을 얻으려 하느냐 10 내가 이제 올라와서 이 땅을 멸하는 것이 여호와의 뜻이 없음이겠느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기를 올라가 그 땅을 쳐서 멸하라 하셨느니라 하니라 11 이에 엘리아김과 셉나와 요아가 랍사게에게 이르되 우리가 아람 방언을 아오니 청하건대 그 방언으로 당신의 종들에게 말하고 성 위에 있는 백성이 듣는 데에서 우리에게 유다 방언으로 말하지 마소서 하니 12 랍사게가 이르되 내 주께서 이 일을 네 주와 네게만 말하라고 나를 보내신 것이냐 너희와 함께 자기의 대변을 먹으며 자기의 소변을 마실 성 위에 앉은 사람들에게도 하라고 보내신 것이 아니냐 하더라 13 이에 랍사게가 일어서서 유다 방언으로 크게 외쳐 이르되 너희는 대왕 앗수르 왕의 말씀을 들으라 14 왕의 말씀에 너희는 히스기야에게 미혹되지 말라 그가 능히 너희를 건지지 못할 것이니라 15 히스기야가 너희에게 여호와를 신뢰하게 하려는 것을 따르지 말라 그가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반드시 우리를 건지시리니 이 성이 앗수르 왕의 손에 넘어가지 아니하리라 할지라도 16 히스기야의 말을 듣지 말라 앗수르 왕이 또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내게 항복하고 내게로 나아오라 그리하면 너희가 각각 자기의 포도와 자기의 무화과를 먹을 것이며 각각 자기의 우물 물을 마실 것이요 17 내가 와서 너희를 너희 본토와 같이 곡식과 포도주와 떡과 포도원이 있는 땅에 옮기기까지 하리라 18 혹시 히스기야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건지시리라 할지라도 속지 말라 열국의 신들 중에 자기의 땅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진 자가 있느냐 19 하맛과 아르밧의 신들이 어디 있느냐 스발와임의 신들이 어디 있느냐 그들이 사마리아를 내 손에서 건졌느냐 20 이 열방의 신들 중에 어떤 신이 자기의 나라를 내 손에서 건져냈기에 여호와가 능히 예루살렘을 내 손에서 건지겠느냐 하셨느니라 하니라.
[왕하18:17~35] 앗수르 왕이 다르단과 랍사리스와 랍사게로 하여금 대군을 거느리고 라기스에서부터 예루살렘으로 가서 히스기야 왕을 치게 하매 그들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니라 그들이 올라가서 윗못 수도 곁 곧 세탁자의 밭에 있는 큰 길에 이르러 서니라 18 그들이 왕을 부르매 힐기야의 아들로서 왕궁의 책임자인 엘리야김과 서기관 셉나와 아삽의 아들 사관 요아가 그에게 나가니 19 랍사게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히스기야에게 말하라 대왕 앗수르 왕의 말씀이 네가 의뢰하는 이 의뢰가 무엇이냐 20 네가 싸울 만한 계교와 용력이 있다고 한다마는 이는 입에 붙은 말 뿐이라 네가 이제 누구를 의뢰하고 나를 반역하였느냐 21 이제 네가 너를 위하여 저 상한 갈대 지팡이 애굽을 의뢰하도다 사람이 그것을 의지하면 그의 손에 찔려 들어갈지라 애굽의 왕 바로는 그에게 의뢰하는 모든 자에게 이와 같으니라 22 너희가 내게 이르기를 우리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의뢰하노라 하리라마는 히스기야가 그들의 산당들과 제단을 제거하고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에게 명령하기를 예루살렘 이 제단 앞에서만 예배하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셨나니 23 청하건대 이제 너는 내 주 앗수르 왕과 내기하라 네가 만일 말을 탈 사람을 낼 수 있다면 나는 네게 말 이천 마리를 주리라 24 네가 어찌 내 주의 신하 중 지극히 작은 지휘관 한 사람인들 물리치며 애굽을 의뢰하고 그 병거와 기병을 얻을 듯하냐 25 내가 어찌 여호와의 뜻이 아니고야 이제 이 곳을 멸하러 올라왔겠느냐 여호와께서 전에 내게 이르시기를 이 땅으로 올라와서 쳐서 멸하라 하셨느니라 하는지라 26 힐기야의 아들 엘리야김과 셉나와 요아가 랍사게에게 이르되 우리가 알아듣겠사오니 청하건대 아람 말로 당신의 종들에게 말씀하시고 성 위에 있는 백성이 듣는 데서 유다 말로 우리에게 말씀하지 마옵소서 27 랍사게가 그에게 이르되 내 주께서 네 주와 네게만 이 말을 하라고 나를 보내신 것이냐 성 위에 앉은 사람들도 너희와 함께 자기의 대변을 먹게 하고 자기의 소변을 마시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하고 28 랍사게가 드디어 일어서서 유다 말로 크게 소리 질러 불러 이르되 너희는 대왕 앗수르 왕의 말씀을 들으라 29 왕의 말씀이 너희는 히스기야에게 속지 말라 그가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내지 못하리라 30 또한 히스기야가 너희에게 여호와를 의뢰하라 함을 듣지 말라 그가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반드시 우리를 건지실지라 이 성읍이 앗수르 왕의 손에 함락되지 아니하게 하시리라 할지라도 31 너희는 히스기야의 말을 듣지 말라 앗수르 왕의 말씀이 너희는 내게 항복하고 내게로 나아오라 그리하고 너희는 각각 그의 포도와 무화과를 먹고 또한 각각 자기의 우물의 물을 마시라 32 내가 장차 와서 너희를 한 지방으로 옮기리니 그 곳은 너희 본토와 같은 지방 곧 곡식과 포도주가 있는 지방이요 떡과 포도원이 있는 지방이요 기름 나는 감람과 꿀이 있는 지방이라 너희가 살고 죽지 아니하리라 히스기야가 너희를 설득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건지시리라 하여도 히스기야에게 듣지 말라 33 민족의 신들 중에 어느 한 신이 그의 땅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진 자가 있느냐 34 하맛과 아르밧의 신들이 어디 있으며 스발와임과 헤나와 아와의 신들이 어디 있느냐 그들이 사마리아를 내 손에서 건졌느냐 35 민족의 모든 신들 중에 누가 그의 땅을 내 손에서 건졌기에 여호와가 예루살렘을 내 손에서 건지겠느냐 하셨느니라.
[대하32:9~19] 그 후에 앗수르 왕 산헤립이 그의 온 군대를 거느리고 라기스를 치며 그의 신하들을 예루살렘에 보내어 유다 왕 히스기야와 예루살렘에 있는 유다 무리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10 앗수르 왕 산헤립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가 예루살렘에 에워싸여 있으면서 무엇을 의뢰하느냐 11 히스기야가 너희를 꾀어 이르기를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를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 하거니와 이 어찌 너희를 주림과 목마름으로 죽게 함이 아니냐 12 이 히스기야가 여호와의 산당들과 제단들을 제거하여 버리고 유다와 예루살렘에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다만 한 제단 앞에서 예배하고 그 위에 분향하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13 나와 내 조상들이 이방 모든 백성들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모든 나라의 신들이 능히 그들의 땅을 내 손에서 건져낼 수 있었느냐 14 내 조상들이 진멸한 모든 나라의 그 모든 신들 중에 누가 능히 그의 백성을 내 손에서 건져내었기에 너희 하나님이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지겠느냐 15 그런즉 이와 같이 너희는 히스기야에게 속지 말라 꾀임을 받지 말라 그를 믿지도 말라 어떤 백성이나 어떤 나라의 신도 능히 자기의 백성을 나의 손과 나의 조상들의 손에서 건져내지 못하였나니 하물며 너희 하나님이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내겠느냐 하였더라 16 산헤립의 신하들도 더욱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종 히스기야를 비방하였으며 17 산헤립이 또 편지를 써 보내어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욕하고 비방하여 이르기를 모든 나라의 신들이 그들의 백성을 내 손에서 구원하여 내지 못한 것 같이 히스기야의 신들도 그의 백성을 내 손에서 구원하여 내지 못하리라 하고 18 산헤립의 신하가 유다 방언으로 크게 소리 질러 예루살렘 성 위에 있는 백성을 놀라게 하고 괴롭게 하여 그 성을 점령하려 하였는데 19 그들이 예루살렘의 하나님을 비방하기를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세상 사람의 신들을 비방하듯 하였더라.
답: 애굽은 갈대지팡이니까 의지하면 부러져서 손을 찌를 뿐이고, 앗수르를 대적한 주위 나라들이 다 정복되었다. 그들의 신이 앗수르를 이기지 못했다. 그러니 너희 여호와도 앗수르를 이기지 못한다. 히스기야는 여호와를 섬기는 장소로 사용한 모든 산당을 폐지하고 오직 예루살렘에 성전 하나만 남겼는데 너희 하나님이 너희를 돕겠는가? 그러니까 항복하면 행복하게 될 것이다. ᄋᆞ주 논리적으로 이런 말을 했다.
랍사게는 상당히 강력한 논리를 펼쳤다. ‘애굽은 이미 약해져 있기 때문에 너희는 애굽을 의지할 수 없다. 너희는 여호와를 의지할 수도 없는데, 왜냐하면 히스기야가 여호와의 산당들과 제단들을 제하고 오직 예루살렘 성전에서만 경배하게 함으로 여호와를 불쾌하게 했기 때문이다. 너희는 2천 필의 말을 주어도 그것들을 탈 만큼 훈련된 군사가 없다. 그러니 포위되어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는 고통을 피하려면 지금 항복하라. 그러면 잘 대우하겠다. 다른 신들도 그들의 나라를 앗수르의 손에서 구할 수 없었으니, 여호와도 너희를 구할 수 없을 것이다.’
랍사게의 말은 진실이었는가?
그의 말은 많은 진실을 담고 있었기 때문에 상당히 설득력이 있었다. 게다가 두 가지 사실이 그의 말에 설득력을 더해 주었다. 첫째, 그는 방금 48㎞ 떨어진 라기스에서 왔는데, 앗수르에 대항하던 강력한 요새들도 무너지고 있었다. 둘째, 그는 막강한 앗수르의 대군을 거느리고 왔다(사 36:2).
유다 사람들은, 북방 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를 포함하여, 앗수르에 패배한 다른 나라의 최후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인간적인 견지에서 볼 때, 예루살렘이 어떻게 될 것인지는 불을 보듯 뻔했다(왕하 18:9~10, 사 10:8~11 참고). 히스기야가 예루살렘 성전 예배를 강화하기 위해서 여러 산당을 파괴했다는 랍사게의 말도 사실이었다(왕하 18:4, 대하 31:1). 하지만 이러한 개혁이 하나님을 불쾌하시게 했다면 그의 백성에게 희망을 걸 만한 무엇이 남겠는가? 과연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구하실 것인가? 아니 구원하실 수 있겠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려 있었다.
<부가설명>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은 말의 논리를 앞세운다. 말을 이치에 맞게 잘 정돈해서 논리적으로 딱 들어맞게 말하는 제주가 대단하다. 그렇게 하려고 학문이라는 이름으로 연구를 많이 한다. 학문의 방법은 논리학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마귀가 시험의 광야에서 예수님을 시험한 방법이 논리를 정리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사탄에게서 나온 것인지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을 사탄이 이용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것은 가설과 실험과 증명과 사실이라는 방법이다. 먼저 가설을 세운다. 그 가설이 사실이라면 실험으로 증명해야 한다. 그렇게 증명이 되면 가설이 사실이 된다. 랍사게의 논리도 이렇게 맞아떨어진다. 말 이천 필을 준다면, 그것을 타고 부릴 수 있는 기병을 내어봐라. 그렇게 나올 기병이 없다면 너희는 싸울 능력이 없다. 주위의 여러 나라도 그랬다. 결과가 아수르에 정복된 것이다. 너희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논리이다. 나라들의 신들도 앗수르 군대를 당하지 못했다. 너희 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여호와를 신뢰하라고 했다. 거기는 가설도 실험도 없다. 신뢰하면 된다. 그것이 신앙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구원과 하나님의 도우심을 실험하고 증명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 하나님은 계시고 그분의 약속은 분명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와 구원은 역사적 사실이기 때문에 전적인 믿음으로 이런 논리를 이겨야 한다. 신앙은 논리 이전의 상태이다.
교훈 : 인간적인 관점에서 볼 때, 랍사게의 말은 매우 설득력이 있어 보였지만 예루살렘의 모든 소망이 사라진 것 같은 그때야말로 하나님이 일하실 시간이었다.
2월 9일(화) 흔들렸지만 외면당하지 않음 (사 36:21~37:20)
“히스기야 왕이 듣고 자기의 옷을 찢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여호와의 전으로 갔고 왕궁 맡은 자 엘리아김과 서기관 셉나와 제사장 중 어른들도 굵은 베 옷을 입으니라…”(사 37:1~2).
1. 랍사게의 영리한 웅변이 히스기야와 그의 신하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왕하 18:37~19:4, 사 36:21~37:4)
[왕하18:37~19:4] 이에 힐기야의 아들로서 왕궁 내의 책임자인 엘리야김과 서기관 셉나와 아삽의 아들 사관 요아가 옷을 찢고 히스기야에게 나아가서 랍사게의 말을 전하니라/ 19:1 히스기야 왕이 듣고 그 옷을 찢고 굵은 베를 두르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2 왕궁의 책임자인 엘리야김과 서기관 셉나와 제사장 중 장로들에게 굵은 베를 둘려서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에게로 보내매 3 그들이 이사야에게 이르되 히스기야의 말씀이 오늘은 환난과 징벌과 모욕의 날이라 아이를 낳을 때가 되었으나 해산할 힘이 없도다 4 랍사게가 그의 주 앗수르 왕의 보냄을 받고 와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비방하였으니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혹시 그의 말을 들으셨을지라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들으신 말 때문에 꾸짖으실 듯하니 당신은 이 남아 있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소서 하더이다 하니라.
[사36:21~37:4] 그러나 그들이 잠잠하여 한 말도 대답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왕이 그들에게 명령하여 대답하지 말라 하였음이었더라 22 그 때에 힐기야의 아들 왕궁 맡은 자 엘리아김과 서기관 셉나와 아삽의 아들 사관 요아가 자기의 옷을 찢고 히스기야에게 나아가서 랍사게의 말을 그에게 전하니라/ 37:1 히스기야 왕이 듣고 자기의 옷을 찢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여호와의 전으로 갔고 2 왕궁 맡은 자 엘리아김과 서기관 셉나와 제사장 중 어른들도 굵은 베 옷을 입으니라 왕이 그들을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에게로 보내매 3 그들이 이사야에게 이르되 히스기야의 말씀에 오늘은 환난과 책벌과 능욕의 날이라 아이를 낳으려 하나 해산할 힘이 없음 같도다 4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랍사게의 말을 들으셨을 것이라 그가 그의 상전 앗수르 왕의 보냄을 받고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훼방하였은즉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혹시 그 말로 말미암아 견책하실까 하노라 그런즉 바라건대 당신은 이 남아 있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하시더이다 하니라.
답: 그들이 슬픔과 탄식의 표로 옷을 찢고 오직 진정으로 하나님께 매달릴 수밖에 없다는 마음을 일으켜서 왕이 회개하며 기도하였다.
뿌리까지 흔들린 히스기야는 슬픔과 비탄에 빠져 하나님께로 나아갔다. 그리고 부왕이 무시했던 선지자 이사야에게 겸손히 기도를 요청했다.
2. 하나님은 어떻게 히스기야를 격려하셨는가?(사 37:5~7)
[사37:5~7]그리하여 히스기야 왕의 신하들이 이사야에게 나아가매 6 이사야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너희 주에게 이렇게 말하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들은 바 앗수르 왕의 종들이 나를 능욕한 말로 말미암아 두려워하지 말라 7 보라 내가 영을 그의 속에 두리니 그가 소문을 듣고 그의 고국으로 돌아갈 것이며 또 내가 그를 그의 고국에서 칼에 죽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라.
답: 두려워하지 말라. 소문을 듣고 고국으로 돌아갈 것이고 칼에 죽게 할 것이다.
기별은 간결했으나 충분했다!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의 편이셨다. 이사야는 산헤립이 소문을 듣고 유다에 대한 공세에서 물러설 것이라고 예언했다. 이 예언은 즉시 성취되었다. 일시적으로 위축되었지만 포기할 마음이 없었던 산헤립은 히스기야에게 위협적인 기별을 보냈다. “너는 네가 신뢰하는 하나님이 예루살렘이 앗수르 왕의 손에 넘어가지 아니하리라 하는 말에 속지 말라…그 나라들의 신들이 건졌더냐?”(사 37:10, 12; 대하 32:17 참고).
히스기야는 곧바로 성전으로 가서 그 기별을 여호와 앞에 펴놓고 “그룹 사이에 계신”(사 37:16) 만군의 여호와께 아뢰었다.
3. 히스기야의 기도에 따르면 예루살렘은 얼마나 위태로웠는가?(사 37:15~20)
[사37:15~20]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16 그룹 사이에 계신 이스라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는 천하 만국에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라 주께서 천지를 만드셨나이다 17 여호와여 귀를 기울여 들으시옵소서 여호와여 눈을 뜨고 보시옵소서 산헤립이 사람을 보내어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훼방한 모든 말을 들으시옵소서 18 여호와여 앗수르 왕들이 과연 열국과 그들의 땅을 황폐하게 하였고 19 그들의 신들을 불에 던졌사오나 그들은 신이 아니라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일 뿐이요 나무와 돌이라 그러므로 멸망을 당하였나이다 20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이제 우리를 그의 손에서 구원하사 천하 만국이 주만이 여호와이신 줄을 알게 하옵소서 하니라.
답: 곧 함락될 상태에 있었다.
산헤립은 히스기야의 가장 강력한 방어수단인 하나님께 대한 그의 믿음을 집중적으로 공략했다. 히스기야는 산헤립의 말에 굴복하는 대신에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천하에 알게 하시기를 그분께 호소하였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이제 우리를 그의 손에서 구원하사 천하만국이 주만이 여호와이신 줄을 알게 하옵소서”(사 37:20).
<부가설명> 히스기야는 믿음의 사람이었다. 그는 열심을 다하여 그의 아버지가 훼파한 성전을 보수하고 만들어놓은 우상들을 파괴하였다. 그리고 유대를 여호와 하나님 신앙으로 되돌리는 데 성공했다. 히스기야 왕의 열심은 우상숭배에 빠졌던 유대 국민들을 각성하게 하고 그 하나님을 섬기고 경배하도록 이끌었다. 한 신앙적이고 유능한 지도자의 영향력을 볼 수 있는 개혁이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런 히스기야의 기도를 즉시 응답하셔거 히스기야의 신앙개혁과 국민들의 회개를 받으신 것을 나타내셨다. 위기의 상태에서 현실적으로 엄청난 국력으로 압박하는 나라의 군대를 눈앞에 두고 이런 믿음을 발휘하고 행사하는 것은 보통 믿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늘날 우리가 이런 상태에 직면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코로나19라는 괴물을 이용하여 국가 권력이 하나님의 교회를 음성(陰性)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히스기야의 용기를 가지고 우리의 믿음을 지켜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교회가 일깨어야 할 때가 아닌가? 진리를 확인하고 스스로 진리에 충성하며 호흡마다 기도가 되는 삶으로 주님께 매달려야 할 때가 아닌가?
교훈 : 히스기야는 산헤립의 위협을 듣고 하나님께 나아갔다. 그는 위기의 절정에 이르러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보여달라고 믿음의 기도를 드렸다.
2월 10일(수) 남은 이야기 (사 37:21~38)
“여호와의 사자가 나가서 앗수르 진중에서 십팔만 오천 인을 쳤으므로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본즉 시체뿐이라”(사 37:36).
산헤립은 유다의 46개 성읍을 정복하고 예루살렘을 포위했으며, 유다 왕 히스기야를 “새장의 새처럼 그의 왕궁이 있는 예루살렘에 가두었다.”고 그의 연대기에 기록했다. 그러나 곳곳에 기념비를 세워 자신의 업적을 알리는 그의 성향에도 불구하고, 어떤 문서나 벽화에도 예루살렘을 정복했다는 주장은 없다. 놀랍게도 산헤립의 막강한 세력에 대항하여 히스기야가 반역을 주도했었다는 사실이 생략되었다. 앗수르에 대항하는 반역은 곧 생명의 단축과 소름끼치는 죽음을 의미했다.
성경의 기록이 아니더라도 분명히 기적이 일어났음을 학자들도 인정한다. 적수가 없었던 산헤립이 그의 왕궁 벽에 라기스를 포위했던 장면을 생생하게 새겨놓은 것은 체면을 살리기 위한 장치였던 것으로 보인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이 벽화에는 라기스 대신에 예루살렘이 그려져 있을 뻔했다. 성경은 산헤립이 하지 않은, 남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1. 남은 이야기는 무엇인가?(사 37:21~37).
[사37:21~37]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사람을 보내어 히스기야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네가 앗수르의 산헤립 왕의 일로 내게 기도하였도다 하시고 22 여호와께서 그에 대하여 이같이 이르시되 처녀 딸 시온이 너를 멸시하며 조소하였고 딸 예루살렘이 너를 향하여 머리를 흔들었느니라 23 네가 훼방하며 능욕한 것은 누구에게냐 네가 소리를 높이며 눈을 높이 들어 향한 것은 누구에게냐 곧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에게니라 24 네가 네 종을 통해서 주를 훼방하여 이르기를 내가 나의 허다한 병거를 거느리고 산들의 꼭대기에 올라가며 레바논의 깊은 곳에 이르렀으니 높은 백향목과 아름다운 향나무를 베고 또 그 제일 높은 곳에 들어가 살진 땅의 수풀에 이를 것이며 25 내가 우물을 파서 물을 마셨으니 내 발바닥으로 애굽의 모든 하수를 말리리라 하였도다 26 네가 어찌하여 듣지 못하였느냐 이 일들은 내가 태초부터 행한 바요 상고부터 정한 바로서 이제 내가 이루어 네가 견고한 성읍들을 헐어 돌무더기가 되게 하였노라 27 그러므로 그 주민들이 힘이 약하여 놀라며 수치를 당하여 들의 풀 같이, 푸른 나물 같이, 지붕의 풀 같이, 자라지 못한 곡초 같이 되었느니라 28 네 거처와 네 출입과 네가 나를 거슬러 분노함을 내가 아노라 29 네가 나를 거슬러 분노함과 네 오만함이 내 귀에 들렸으므로 내가 갈고리로 네 코를 꿰며 재갈을 네 입에 물려 너를 오던 길로 돌아가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30 왕이여 이것이 왕에게 징조가 되리니 올해는 스스로 난 것을 먹을 것이요 둘째 해에는 또 거기에서 난 것을 먹을 것이요 셋째 해에는 심고 거두며 포도나무를 심고 그 열매를 먹을 것이니이다 31 유다 족속 중에 피하여 남은 자는 다시 아래로 뿌리를 박고 위로 열매를 맺으리니 32 이는 남은 자가 예루살렘에서 나오며 피하는 자가 시온 산에서 나올 것임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이다 33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에 대하여 이같이 이르시되 그가 이 성에 이르지 못하며 화살 하나도 이리로 쏘지 못하며 방패를 가지고 성에 가까이 오지도 못하며 흉벽을 쌓고 치지도 못할 것이요 34 그가 오던 길 곧 그 길로 돌아가고 이 성에 이르지 못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35 대저 내가 나를 위하며 내 종 다윗을 위하여 이 성을 보호하며 구원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36 여호와의 사자가 나가서 앗수르 진중에서 십팔만 오천인을 쳤으므로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본즉 시체뿐이라 37 이에 앗수르의 산헤립 왕이 떠나 돌아가서 니느웨에 거주하더니 38 자기 신 니스록의 신전에서 경배할 때에 그의 아들 아드람멜렉과 사레셀이 그를 칼로 죽이고 아라랏 땅으로 도망하였으므로 그의 아들 에살핫돈이 이어 왕이 되니라.
답: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보호하시고 구원하신다는 기별을 보내시고 그날 밤에 앗수르 군대 185,000명을 한 천사를 보내어 죽게 하여 산헤립이 돌아갈 수밖에 없었고 말씀하신 대로 그는 고국에 돌아가서 아들들의 손에 죽임을 당했다.
하나님은 온전한 믿음으로 드린 히스기야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서 유다를 위한 완전한 보증의 기별을 그에게 보내셨다. 그것은 감히 왕의 왕이신 분을 공격한 거만한 앗수르 왕에 대한 진노의 기별이었다(사 37:23).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방어하시겠다는 약속을 신속하게 이루셨다(왕하 19:35~37, 대하 32:21~22, 사 37:36~38).
큰 위기가 큰 기적을 낳았다. 무려 18만 5천 명이나 되는 적군이 쓰러졌다. 그리하여 산헤립은 본국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고, 거기서 죽음을 맞이했다(사 37:7~38에 나오는 이사야의 예언과 비교해보라).
만일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정복했더라면 그는 백성을 이주시켰을 것이고, 유다는 북방 이스라엘과 같이 정체성을 잃고 말았을 것이며, 메시아 탄생을 소망했던 유대인의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소망의 불씨를 살려주셨다.
<부가설명>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여자의 후손을 보내시겠다는 약속을 창세기 3장 15절에서 하셨다. 더 멀리는 여호와 회의에서 평화에 관한 의논을 하실 때 하셨다. 이 약속은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한 사람이 이 지구에 생존하게 될 것이다. 그 여자의 후손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오실 것이고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것이다. 그러기 위하여서는 유대민족이 여자의 후손이 오실 때까지는 역사적으로 존속해야 하고 다윗의 후손은 분명히 있어야 한다. 사탄은 이것을 저지하기 위하여 얼마나 노력했는지 모른다. 세상에 죄가 관영하게 해서 호수로 모든 사람을 멸망하도록 했으나 하나님은 노아를 건지시고 셈의 후손으로 구주를 보낼 것을 말씀하셨고, 애굽에서 바로가 모든 아들을 다 죽이라고 했으나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시고 나라를 세우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셨다. 그 나라가 배도하여 망하게 되었으나 유다 지파가 중심이 된 유다 나라를 보존하시고 다윗의 자손인 요셉과 정혼한 동정녀 마리아를 통하여 여자의 후손 예수께서 탄생하시므로 인류를 구원하는 일을 이루셨다. 이 일이 이루기까지 유다 나라는 망할 수 없었다. 산헤립이 이것을 어떻게 알았겠는가. 여호와께서 히스기야의 기도를 응답하셨지만 그 이면에는 이런 구원의 계획을 성취하여야 하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감사합니다.
교훈 :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간절한 기도에 응답하셔서 기적적인 방법으로 원수를 물리치셨다. 그렇게 해서 메시아에 대한 소망이 이어질 수 있었다.
2월 11일(목) 질병 그리고 번영 (이사야 38~39장)
“그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니…”(사 38:1).
이사야 38~39장(왕하 20장 참고)에 나오는 사건은 하나님이 히스기야를 산헤립의 손에서 건지신 사건과 시기적으로 매우 가깝다. 사 38:5~6과 왕하 20:6을 보면 그들은 여전히 앗수르의 위협에 직면해 있었다.
“사탄은 히스기야의 죽음과 예루살렘의 멸망, 이 둘 모두를 이루고자 결심하였다. 이는 그가 만일 히스기야가 없으면 개혁을 위한 그의 노력이 그칠 것이며, 따라서 예루살렘의 멸망이 더욱 신속히 성취될 것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었다”(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성경주석 4권, 301).
1. 위의 인용문에 따르면 하나님의 백성에게 훌륭한 지도자가 얼마나 중요한가?
답: 지도자에 따라서 나라가 흥하고 망하게 될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2.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믿음을 확증하는 표로서 어떤 징조를 베푸셨는가?(왕하 20:8~10, 사 38:6~8)
[왕하20:8~10]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낫게 하시고 삼 일 만에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게 하실 무슨 징표가 있나이까 하니 9 이사야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실 일에 대하여 여호와께로부터 왕에게 한 징표가 임하리이다 해 그림자가 십도를 나아갈 것이니이까 혹 십도를 물러갈 것이니이까 하니 10 히스기야가 대답하되 그림자가 십도를 나아가기는 쉬우니 그리할 것이 아니라 십도가 뒤로 물러갈 것이니이다 하니라.
[사38:6~8]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져내겠고 내가 또 이 성을 보호하리라 7 이는 여호와께로 말미암는 너를 위한 징조이니 곧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을 그가 이루신다는 증거이니라 8 보라 아하스의 해시계에 나아갔던 해 그림자를 뒤로 십 도를 물러가게 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더니 이에 해시계에 나아갔던 해의 그림자가 십 도를 물러가니라.
답: 아하스의 해시계의 해 그림자를 뒤로 10도 물러가게 하는 징조를 주셨다.
아하스는 하나님이 제시하신 징조를 거절함으로써(사 7장) 앗수르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길로 들어섰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징조를 구하였으므로(왕하 20:8) 하나님은 그로 하여금 그의 아버지가 가져온 위기에 대응할 수 있게 하셨다. 참으로 아하스의 일영표(해시계)의 해 그림자가 뒤로 물러간 것은 오직 기적을 통해서만 가능했다.
바벨론 사람들은 천체의 움직임을 연구하고 이 사실을 정확히 기록했다. 따라서 그들은 태양의 이상한 움직임을 주목하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궁금해 했다. 그때 므로닥발라단이 유다에 사신들을 보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바벨론 사람들은 히스기야의 병이 나은 것과 기적적인 징조 사이의 관계를 깨달았다.
우리는 왜 하나님이 이 특별한 징조를 택하셨는지를 안다. 훗날 베들레헴의 별을 사용해서 동방박사들을 이끄셨던 것처럼 하나님은 태양계의 변화를 사용해서 바벨론의 사자들을 이끄셨다.
이것은 그들이 참 하나님을 배울 수 있는 특별한 기회였다. 므로닥발라단은 평생 동안 앗수르로부터 지속적인 독립을 쟁취하고자 애썼다. 그가 강력한 동맹국을 필요로 했다는 사실은 그가 히스기야와 접촉한 것으로 설명된다. 히스기야의 기도만으로 태양이 움직였다면 히스기야가 못할 일이 무엇이었겠는가?
<부가설명> 우리가 믿는 성경의 하나님은 못하실 것이 전혀 없으신 분이시다. 그분이 하시고 하면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다. “오직 우리 하나님은 하늘에 계셔서 원하시는 모든 것을 행하셨나이다”(시115:3).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해그림자를 10도 뒤로 물러가게 하셨고, 앗수르 대군을 하루저녁에 몰사하게도 하셨다. 그런데도 이 지구의 사람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구원의 일을 하시는데는 친히 사람이 되어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셔서 사망을 처리하셔야 했다. 그리고 삼일만에 부활하셔서 생명과 썩지 않는 것을 드러내셨다(딤후1:10). 사망이 된 아담과 그의 후손을 구원하는 일이 그만큼 어려운 사업인 것 같다. 이런 희생으로 이루어주신 구원을 우리가 등한히 여기면 어떻게 영원한 멸망을 피하겠는가(히2:3)? 당시로는 앗수르이 속국으로 있던 바벨론은 앗수르의 속박에서 독립하려고 애를 썼는데 해그림자를 10도나 물러가게 하는 히스기야의 하나님의 능력을 얻으려고 문병사절을 보냈는데 히스기야는 이 능력의 하나님을 증거하는 데 실패했다. 교만해졌고 베푸신 은혜를 아마도 어느 순간에 잊어버린 것이다. 이사야의 책망을 들었을 때 화들짝 깨닫고 회개했다고 생각된다. 우리는 언제나 주님 앞에서 겸손하고 자아를 죽게 하는 바울의 경험으로 신앙생활을 이루자.
교훈 :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신뢰심으로 히스기야는 다시 한번 큰 기적을 경험했지만 바벨론 사절들이 방문했을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데는 실패했다.
2월 12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하나님의 직접적인 개입으로써만 해시계 위의 그림자가 십 도 물러가게 할 수 있었고 이것이 여호와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셨다는 것을 히스기야에게 알리는 징조가 될 것이었다”(선지자와 왕, 342).
“먼 나라 통치자에게서 온 이 사자들의 내방은 히스기야에게 살아 계신 하나님을 찬양할 기회를 주었다. 모든 피조물을 붙드시는 분, 다른 모든 희망이 사라졌을 때에 은총을 통하여 자신의 생명을 구한 하나님을 그들에게 소개하는 일이야말로 히스기야에게 얼마나 쉬운 일이었을까! 만일 갈대아 평야에서 진리를 찾으려고 온 이 사람들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최상권을 승인하도록 인도함을 받았더라면 얼마나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을 것인가! …
그러나 히스기야의 마음은 교만과 허영심으로 가득 차서 자기 자신을 높이고자 했다. 그래서 탐욕의 눈을 가진 이들에게 하나님이 그분의 백성을 부요하게 하신 보물들을 보여 주었다. 왕이 ‘그들에게 보물 창고 곧 은금과 향료와 보배로운 기름과 모든 무기고에 있는 것을 다 보여 주었으니 히스기야가 궁중의 소유와 전 국내의 소유를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사 39:2)었다. 왕이 이렇게 한 것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자 함이 아니요 외국 방백들의 목전에서 자신을 높이고자 함이었다”(선지자와 왕, 344~345).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사탄은 앗수르의 랍사게와 얼마나 흡사합니까? 우리가 죄를 범했다고 사탄이 말할 때, 그 말은 사실입니까?(슥 3:1). 하나님은 어떻게 반응하십니까?(슥 3:2~5 참고). 이러한 고소가 있을 때 우리의 유일한 소망은 무엇입니까?(롬 8:1).
※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사유하시는 은혜를 붙들어야 한다. 스가랴서의 기록은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있다고 했다. 사탄의 참소는 사실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탄을 꾸짖으시고 주님의 요청대로 더러운 옷을 벗기고 아름다운 옷을 입혀주셨다.
➋ 우리가 용서를 받았다고 해서 사탄이 우리에 대한 고소를 멈출까요?(계 12:10 참고). 그가 제기하는 고소의 본질은 무엇입니까?(신 19:16~21)
※ 용서 받았어도 사탄의 참소는 그가 없어질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 그는 항상 사람이 악을 행하였다고 고소한다. 그는 우리의 모든 행동을 부릅뜬 눈으로 살피고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순간순간 회개의 호흡으로 사유를 경험하는 기도와 믿음으로 살아야 하겠다.
요약 : 신실한 왕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여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을 구하시고, 자신이 세상을 주관하는 이스라엘의 전능한 왕이시라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분은 자기 백성을 공격하는 자들을 물리치시지만 또한 그들에게 그분의 백성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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