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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과 - 요한일서의 중요한 주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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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등불과기름 작성일09-09-09 13:24 조회4,65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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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09월12일 (안) (일몰: 오후 6시 45분) 李奉周

제11과 요한일서의 重要한 主題들

<記憶節>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요일 3:2)

<核心討議主題>
○ 요한은 하나님의 사역에 관해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는가?
○ 교회는 어떠한 곳이 되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기 위해 그는 어떤 상징을 사용했는가?
○ 우리 구원의 유일한 기초는 무엇인가?
○ 요한은 진리에 관해 무엇을 말해 주는가?

(깨닫기) :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계명들을 지키며, 하나님과 사람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느끼기) :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함을 느낀다.
(행하기) :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분명히 원하시는 바를 실천한다.

<要點>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문제와 구원의 주제를 다룬 이번 주 교과는 우리에게 미래에 대한 소망과 현재의 삶에 대한 용기를 제공해 준다.

日 (9월 6일)
<하나님 >

◉ 만물(萬物)의 영장(靈長)이라 하는 사람이 짐승만도 못한 삶을 사는 원인은 ?
인생이 무엇이며 어데서 왔다 어디로 가는지를 모르는 연유(緣由)에서도 한몫을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신앙심(信仰心)이 있도록 창조된 인간이 신앙의 근본을 제대로 알지 못하거나 잘 몰라서, 이로 인(因)하여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가족과 이웃과 사회와 국가와 인류에게 엄청난 비극(悲劇)을 초래(招來)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고 바로 참되게 알고 신앙하는 축복을 누립시다. 즉 내가 섬길 자를 참되게 바로 알고 바로 신앙해야 될 것이다.

☆ 삼위일체(三位一體) 란 ?
◉"성경에는 한분 하나님을 불리우는 세분이 계심을 말 하고 있다
한분은 성부(聖父)요 다른 한분은 성자(聖子)며 또 다른 한분은 성령(聖靈)이시다. 여기에
성부(聖父)는 → 하나님이시며 성자(聖子)도 아니시며 성령(聖靈)도 아니시고.
성자(聖子)도 → 하나님이시며 성부(聖父)도 성령(聖靈)도 아니시고,
성령(聖靈)도 → 하나님이시며 성자도 성부도 아니신,
각각 독립(獨立)된 개체(個體)로 계신 분이심을 성경은 말 한다.
그분들이 각각 세분의 개체(個體)로 계시면서 한분 하나님으로 불리 우는 것은 그분들의 뜻과 사상(思想) 그리고 목적이 같기 때문이다 함은 인간으로서의 이해(理解)를 얻기 위(爲)함이다.

삼위일체(三位一體)"라는 낱말은 성경(聖經)에서 직접적(直接的)으로 찾을 수 없다.
그러나 마태복음 28장19절의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浸禮)를 베풀고"라는 구절(句節)이 있고, 또, 고린도후서 13장 13절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恩惠)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聖靈)의 교통(交通)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라는 구절(句節)에서도 삼위일체(三位一體)의 교리(敎理)로 살펴볼 수 있다.

○ 요약(要約)
기독교(基督敎)의 삼위일체론(三位一體論)의 핵심(核心)은 다음과 같이 요약(要約)할 수 있다:
하나님만이 창조주(創造主)이시다.
하나님은 성부(聖父), 성자(聖子), 성령(聖靈)의 세 위격(位格)(세 인격, 3 Persons, 세 분)이시다.
성부(聖父), 성자(聖子), 성령(聖靈)은 서로 구별(區別)가능한 인격(人格)이지만 동등(同等)한 영광(榮光)과 지위(地位)와 능력(能力)과 동일(同一)한 본질(本質)을 갖고 있다.
세 위격(位格)(3 Persons, 세 분)은 한 하나님이다.

※ 하나님(GOD)
한 하나님이 계신다.
성부(聖父)성자(聖子)성령(聖靈) 곧 동일(同一)하게 영원(永遠)하신 세 신격(神格)의 통일체(統一體).이시며 하나님은 불멸(不滅)이시고, 전지전능(全知全能)하시고, 만유(萬有)위에 계시고, 항상(恒常)존재(存在)하신다. 그분은 무한(無限)하시고 인간의 이해(理解)를 초월(超越)하는 분 이시면서도, 그분의 자기 계시(啓示)를 통해 알려지신다.
그분은 모든 피조물(被造物)들에게 영원히 경배(敬拜)와 숭배(崇拜)와 예배(禮拜)를 받으시기에 합당(合當)하시다. (기본신조, 2.)

◉ <Ⅰ> 아버지(父) 하나님
영원(永遠)하신 아버지 하나님은 모든 창조물(創造物)의 창조주(創造主), 근원(根源), 유지자(維持者), 통치자(統治者)이시다. 그 분은 공의(公義)롭고, 거룩하며, 자비(慈悲)롭고, 인자(仁慈)하며, 노(怒)하기를 더디 하며, 변함없는 사랑과 진실(眞實)하심이 한량없는 분이시다. 성자(聖子)와 성령(聖靈) 안에 드러난 성질(性質)과 능력(能力)들은 아버지에 관한 계시이기도 하다. (기본신조, 3.)

◉ <Ⅱ> 아들(子)하나님
영원(永遠)하신 아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육신(成肉身)하셨다. 그분을 통하여 만물이 창조되었으며, 하나님의 품성이 계시되었고, 인류의 구원(救援)이 성취(成就)되었으며, 세상이 심판을 받는다. 영원토록 참 하나님이신분이 참 인간(人間), 예수 그리스도가 되셨다. 그 분은 성령(聖靈)으로 잉태(孕胎)되시고 동정녀(童貞女) 마리아에게서 탄생(誕生)하셨다. 그분은 인간으로서 생활하셨고 유혹(誘惑)을 당하셨으나 하나님의 의(義)와 사랑을 완전하게 예증해 보이셨다. 그 분은 당신의 기적(奇蹟)을 통해 하나님의 권능(權能)을 드러내셨으며, 하나님이 약속(約束)하신 메시야이심을 증명(證明)하셨다. 그 분은 우리의 죄(罪)를 위해 우리 대신 자발적(自發的)으로 고난(苦難)당하시고 십자가(十字架)위에서 죽으셨으며,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復活)하시고 승천(昇天)하사우리를 위해 하늘성소에서 봉사(奉仕)하신다. 그 분은 당신의 백성을 최종적으로 구원(救援)하고 만물을 회복(回復)하고자 영광(榮光)중에 다시 오실 것이다. (기본신조, 4.)

◉ <Ⅲ> 성령(聖靈) 하나님
영원하신 성령 하나님은 창조(創造), 성육신(成肉身), 구속사업(救贖事業)에 있어서 성부와 성자(聖子)로 더불어 활동하셨다. 그 분은 성경기자(聖經記者)들에게 영감(靈感)을 주셨다. 그분은 그리스도의 생애에 능력(能力)을 충만(充滿)케 하셨다. 그 분은 인간들을 이끄시고 죄를 깨닫게 하시며 이에 반응(反應)하는 사람들을 새롭게 하시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화(變化)시키신다. 하나님의 자녀(子女)들과 항상(恒常)함께 하시도록 성부(聖父)와 성자(聖子)에 의해 파송(派送)되신 그분은 영적은사(靈的恩賜)들을 교회(敎會)에 부여(附與)하시며, 교회에 능력(能力)을 베풀어 주셔서 그리스도를 증거(證據)하도록 하시고, 성경과 조화(調和)를 이루어 교회(敎會)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引導)하신다. (기본신조, 5.)

◉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의 가장 위대한 사랑은 그의 최고의 계시(啓示)인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표현(表現)되었다.
예수를 통하여 우리는 아버지를 알 수 있다.
요한의 말처럼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요일 5:20)섰다.
또한 예수님은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요 17:3)이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좋은 소식이다. 비록 하나님을 완전하게 아는 것이 불가능하긴 하나, 성경은 우리가 그분과 더불어 구원(救援)의 관계 속으로 들어가기에 충분한 그분에 관한 실제적 지식을 제공해 준다.

☞ 하나님에 관한 지식(知識)을 얻는 법.
다른 지식(知識)과는 달리 하나님에 관한 지식은 두뇌(頭腦)에 관계된 것인 만큼 마음과도 관계된 일이다.
이것은 지성(知性)만이 아닌 전 인격(人格)을 포함하고 있다.
성령께 마음을 열어 놓아야 하며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는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 (요 7:17; 마 11:27, 참조). 예수님은,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마 5:8)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불신자(不信者)는 하나님을 이해(理解)할 수 없다.
바울은 이렇게 선언(宣言)하고 있다.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뇨. 선비가 어디 있느뇨. 이 세상에 변사가 어디 있느뇨.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고전 1:20, 21).

성경으로부터 하나님 알기를 배우는 방법(方法)은 지식(知識)을 얻는 다른 모든 방법들과 다르다.
우리는 하나님 위에 우리 자신을 세워 놓을 수 없으며, 하나님을 분석(分析)하거나 측량(測量)할 수 있는 것처럼 취급할 수 없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탐구(探究)할 때에 우리는 그분의 자기 계시인 성경의 권위(權威)에 복종해야만 한다. 성경은 그 자체(自體)가 해석자(解釋者)가 되기 때문에, 우리는 성경이 제시(提示)하는 원칙(原則)들과 방법들에 대해 우리 자신(自身)을 굴복(屈伏)시켜야 한다.
이러한 성경의 지침(指針)이 없이는 우리가 하나님을 알 수 없다.

예수님 시대의 수많은 사람이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자기 계시를 파악하는 일에 실패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들은 성경을 통한 성령의 인도하심에 자신을 굴복시키기를 거절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기별을 그릇되게 해석하고 그들의 구주(救主)를 십자가(十字架)에 못 박았다. 그들의 문제는 지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지성을 어둡게 만들고 영원한 멸망을 초래한 것은 그들의 닫힌 마음 때문이었다.

◉ 하나님은 이러한 분이시다.
▶ 하나님은 빛이시다. (요일 1:5)
▶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요일 4:8, 16)
▶ 하나님은 의(義)로우시다. (요일 2:29)
▶ 하나님은 생명(生命)이시다. (요일 5:11-12)
▶ 하나님은 진리(眞理)이시다. (요한이서)
▶ 하나님은 선(善)하시다. (요한삼서)
▶ 사랑은 하나님께 속(屬)한 것이다. (7절)
▶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아들을 보내셨다. 그러므로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한다. (10-11절)

◉ 요한일서의 서신(書信)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시는 일들을 요약(要約)해보자면,
▶ 하나님은 우리 죄를 사(赦)하시고 모든 불의(不義)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심. (요일1:9)
▶ 우리가 죄(罪)를 범(犯)할 때 우리의 대언자(代言者)(중보자)로 봉사(奉仕)하심. (요일2:1~2)
▶ 우리에게 기름 부음을 주시고 그를 통(通)해 우리를 가르치심. (요일2:27)
▶ 당신의 독생자(獨生子)를 나타내심으로 마귀(魔鬼)의 일을 멸(滅)하심. (요일3:8)
▶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獨生子)를 화목제(和睦祭)로 보내시고 우리를 살리심. (요일4:8~10)
▶ 우리에게 영생(永生)을 주심. (요일5:11)
▶ 우리의 구(求)하는 바를 들으심. (요일5:14)

◉ <삼위(三位) 하나님의 사랑 >
“죄인들은 삼위일체 하나님께 예수님의 죽음이 무엇을 의미했는지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영원 전부터 그분은 당신의 아버지와 성령으로 더블어함께 계셨다. 이분들은 상호간에 전적으로 자기를 내어주는 사랑 속에서 동일하게 영원성을 지니신 채 공존하셨다. 그토록 오랫동안 함께 있는 다는 것은 삼위일체 하나님 내부에 존재했던 완전하고도 절대적인 사랑을 보여 준다.”(기본교리, 한국어판, 2007년, 40)

◉ 요한일서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생(永生)을 주시기 위해 모든 것을 제공하신 사랑의 하나님으로 나타나 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구원(救援)하였다.

月 (9월 7일)
<敎會 >

◉ 교회(敎會)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主)와 구주(救主)로 믿는 신자(信者)들의 공동체(共同體)이다. 구약시대(舊約時代)의 하나님의 백성들을 계승(繼承)하여 우리는 세상에서 불러내신바 되었고, 예배(禮拜)와 친교(親交), 말씀의 교훈(敎訓)과 성만찬(聖晩餐)의 거행(擧行), 온 인류애(人類愛)의 봉사(奉仕)와 전 세계적인 복음(福音)의 선포(宣布)에 동참(同參)한다. 교회는 그의 권위(權威)를 성육신(成肉身)하신 말씀이신 그리스도와 기록(記錄)된 말씀인 성경으로부터 받는다. 교회는 하나님의 가족(家族)이며 교인들은 그 분의 자녀로 입양(入養)되었다. 교인들은 새 언약(言約)의 기초(基礎)위에서 산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그리스도께서 머리가 되신 신앙(信仰) 공동체(共同體)이다.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그를 성결하게하고 깨끗케 하기 위하여 돌아가신 신부(新婦)이다. 그리스도께서 승리자로 다시 오실 때 그분은 당신의 피로 사셨고, 티나 주름 잡힌 것이 없이 거룩하고 흠(欠)이 없으며, 모든 시대를 통하여 충성을 다한 영광스러운 교회를 맞아들이실 것이다. (기본신조, 11.)

◉ <신약(新約)에서 교회(敎會)는>
① 소금(마 5:13), ②기 둥(딤전 3:15), ③ 건물 또는 집 (엡 2:21~22),
④ 성전(고전 3:16~17), ⑤ 어머니(계 12:1~2), ⑥ 신부(新婦)(계 21:2), ⑦그리스도의 몸(엡 1:22~23) 등
여러 가지 상징(象徵)으로 나타나 있다.
요한일서는 교회를 하나의 가족(家族)으로 묘사(描寫)하고 있다.
하나님이 아버지시고, 우리 모두는 그분의 자녀로서 형제자매(兄弟姉妹)들이다.
요한일서에는 '아비들', '아이들' 등 가족을 가리키는 용어(用語)들이 많이 나온다.

◉ <하나님의 가족(家族)인 교회(敎會)>
“교회는 하나님의 가족이며 교인들은 그분의 자녀로 입양되었다. 교인들은 새 언약의 기초 위에서 산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그리스도께서 머리가 되신 신앙 공동체이다.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그를 성결하게 하고 깨끗케 하기 위하여 돌아가신 신부이다. 그리스도께서 승리자로 다시 오실 때 그분은 당신의 피로 사셨고, 티나 주름 잡힌 것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으며, 모든 시대를 통하여 충성을 다한 영광스러운 교회를 맞아들이실 것이다.”
(기본교리, 한국어판, 2007년, 201)

◉ 요한일서에서 교회(敎會)는 가족(家族)으로 표상(表象)되었다.
그리스도인들은 수직적(垂直的)으로는 하나님 아버지와, 수평적으로는 형제자매와 사랑을 나누며 살아간다.

火 (9월 8일)
구원<救援 >

◉ 인간을 쇠(철(鐵))로 비유(譬喩)해보자.
전봇대만한 쇠기둥을 연마(鍊磨: 숫돌에 갈아서)하는 것을, 수양(修養)이나 도(道)를 닦는 것으로 가정(假定)해보자.
오랫토록 수양(修養)이나 도를 닦아서 전봇대만한 쇠가 가느다란 바늘처럼 작아 졌다고 해도 물에 넣으면 가라않는다. 혹자(或者)는 말하기를 인생살이를 고해(苦海)와 같은 세상이라고 표현을 한다.
그 말에 적용을 해보면 고통스러운 바다(苦海)에 쇠를 넣으면 아무리 작은 쇠라도 가라앉는다.(침몰(沈沒))된다.
즉 인간이 아무리 도(道)를 쌓아도 인간 세상에 섞여 산다는 것은 그 속세(俗世)에 살다보면 세속(世俗)에 가라앉기 마련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아무리 큰 쇠 덩어리라도 큰 배(船)에 담겨져 있기만 하면 절대로 가라앉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세속의 삶속에서 우리의 구원자(救援者)되시는 예수그리스도의 방주(方舟)안에 들어와 있기만 하면 세속(世俗)의 바다에서 침몰(沈沒)되지 않는 다는 비유(譬喩)입니다.
이를 일컬어서 구원(救援)의 방주인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救援)의 방주(方舟)안에서의 삶인 것입니다.

◉ <구원(救援)>
"하나님께서는 무한(無限)한 자비(慈悲)와 사랑가운데서 죄를 알지도 못하신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하여 죄를 삼으심으로 우리가 그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義)가 되게 하셨다. 성령(聖靈)의 인도를 받아 우리는 자신의 필요를 자각(自覺)하고, 우리의 죄악성(罪惡性)을 인정(認定)하고, 허물을 회개(悔改)하며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 대치 물(代置物)과 모본(模本)으로 믿는 믿음을 행사하게 된다. 구원을 받아들이는 이 믿음은 거룩한 말씀의 능력에서 나오며, 또한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恩惠)의 선물(膳物)이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의롭게 되고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入養)되며 죄의 세력(勢力)에서 구원(救援)을 얻는다. 성령을 통하여 우리는 거듭나고 성화(聖化)된다.
성령은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고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의 법을 기록(記錄)하신다. 그리하여 우리는 거룩한 생애를 살 능력을 받는다. 그의 안에 거(居)함으로 우리는 신(神)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들이 되고 현재와 심판(審判)때에 구원(救援)에 대한 보증(保證)을 얻는다." (기본신조 10)

○ <구원(救援)의 경험(經驗)과 과거(過去)>
하나님과 그분의 사랑과 자애(慈愛)에 대한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充分)치 못하다. 그리스도를 제쳐놓고 자신(自身)속에 선을 계발시키려는 시도는 반(反) 생산적(生産的)이다. 심령(心靈) 깊숙한 곳까지 미치는 구원(救援)의 경험은 하나님으로부터만 온다. 그리스도는 이 경험(經驗)에 관하여 말씀하시면서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요 3:3, 5)고 언급하셨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사람은 구원(救援)을 경험(經驗)할 수 있다. 왜냐하면 '천하(天下)인간에 구원(救援)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일이 없"(행 4:12)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4:6)고 말씀하셨다. 구원의 경험은 회개(悔改), 자복(自服), 용서(容恕), 칭의(稱義), 그리고 성화(聖化)를 포함한다. (기본교리27. 119p)

사도 요한은 그의 서신 요한일서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救援)을 얻는데 그 비결은 그분을 알 때 신뢰(信賴)할 수가 있음을 강조하기 위하여 "알다"라는 말을 40회 이상을 쓰고 있으며 참된 그리스도인은 신조(信條)이상의 것을 알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종교라고 그의 경험을 기록 하면서,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음을 우리는 잘 알 수 있지만 구원에 대하여 (요일 4:13-16절)에서 영생의 보증을 요일 5:13

○ <구원(救援)의 확신(確信)>
구원(救援)은 세 가지 시제, 곧 과거(過去), 현재(現在), 미래(未來)를 포함한다.
요한일서 1-4장은 그리스도인의 구원(救援)이 지니는 과거적(過去的)인 측면, 곧 칭의(稱義)를 다루고 있다.
요한일서 5:1-8:17은 구원(救援)의 현재적(現在的)인 측면(側面)(성화(聖化))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로마서 8:18-39은 간단하지만 매우 인상적(印象的)으로 구원(救援)의 미래적(未來的)인 측면, 곧 영화(靈化)를 다룬다. 따라서 구원(救援)의 확신을 고백한다는 것은 천국(天國)에 갈 것을 확신(確信)한다는 의미(意味)를 넘어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엄밀(嚴密)하게 말해 칭의(稱義)와 성화(聖化)와 영화(靈化)를 모두 확신한다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이런 전제(前提)하에서 논의(論議)를 계속하고자 한다.
또한 우리가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것을 알 수 있으며, 그러므로 우리는 구(求)하면 얻을 수 있음도 잘 알 수 있다. 이러한 중요한 진리(眞理)를 요한은 거듭거듭 우리에게 확신시켜주고 있다.

◉ 요한에게 있어서 신자들의 구원(救援)은 ‘현재적 실제’였다.
그는 그것을 다양(多樣)한 방식(方式)으로 표현(表現)하였다.
▷ 그들은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요일 2:2~3)
▷ 그들은 그분 안에 있었다.(요일 2:5, 5:20)
▷ 그들의 죄는 용서를 받았다.(요일 2:12)
▷ 그들은 악한 자를 이겼다.(요일 2:13)
▷ 그들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다.(요일 3:14)
▷ 그들은 영생을 가졌다.(요일 5:12~13)
이것은 구원(救援)이 무엇인가에 대한 놀라운 묘사(描寫)가 아닐 수 없다.

◉ <예수님을 통(通)한 구원(救援)의 약속(約束)>
<“예수님은 우리의 유일한 구주(救主)이시다. >
비록 고침을 받아야 할 수백만의 사람들이 그분께서 주신 자비를 거절(拒絶)할지라도, 그분의 공로(功勞)를 신뢰(信賴)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멸망(滅亡)하도록 버려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 없을 때의 우리의 속절없는 상태를 깨닫는 한편 낙심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신 구주를 의지해야 한다. 가련하고 죄로 병든 절망적인 영혼(靈魂)이여, 바라보고 삶을 얻으라. 예수님은 당신의 말씀을 지키기로 약속하셨다. 그분께서는 당신께로 나오는 모든 자들을 구원하실 것이다.”(증언보감, 2권, 93)

◉ 우리가 올바른 신앙(信仰)을 가지려면 예수께서 우리의 구주(救主)로서 행(行)하신 일과,
우리의 중보자(中保者)로서 지금 행(行)하고 계신 일에 대한 바른 이해(理解)를 가져야 한다.

◉ 요한은 그 당시에 교회(敎會)안에 퍼지고 있던 이설(異說)들, 특히 거짓 교사들로 인해 야기(惹起)된 문제(問題)들을 수습(收拾)하기 위(爲)해 매우 강경(剛勁)한 어조(語調)로 그 문제들을 언급(言及)하고 있다.
성경은 구원에 관한 기록이며 그것은 또한 요한일서의 핵심 주제이기도 하다.
예수 그리스도가 화목제물(和睦祭物)이 되심으로 그를 믿을 때 죄 사(赦)함을 받고 영생(永生)에 이른다.

◉ <십자가(十字架) 위에서 베푸신 구원(救援)>
“예수께서 약속의 말씀을 하실 때에 십자가를 덮고 있던 어두운 구름 속으로 밝고 활기찬 광선이 뚫고 들어왔다. 회개한 강도에게는 하나님께서 받으셨다는 확신으로 완전한 평화가 이르러왔다. … 숨을 거두시면서 그분은 자신의 신성과 아버지의 영광에 대한 증거를 나타내셨다. 그분의 귀는 들으실 수 없을 만큼 둔하지 않으며 그 분의 팔은 구원하실 수 없을 만큼 짧지도 않으시다. 당신을 힘입어 하나님께 나오는 모든 사람을 온전히 구원하시는 것이 그분의 대권이다.”(시대의 소망, 751)

◉ 성경은 예수님을 통한 구원(救援)의 역사를 기록한 책이다.
요한일서에는 십자가라는 단어가 안 나오지만 그분의 속죄의 희생을 매우 생생하게 묘사(描寫)하고 있다.

水 (9월 9일)
<그리스도인의 行實 >

◉ 사람은 생각하는 것이 말로 표현(表現)하게 되고 말한 것을 행동(行動)으로 옮기는 것이 사람의 품행이며 행실(行實)이다. 그러므로 마음에 담고 있는 것이 어느 것이냐에 따라서 그가 생각을 하게 되고 그 생각이 은연중(隱然中)에 입으로 나오며 그 말하는 것이 말초신경(末梢神經)을 자극(刺戟)하여 행동(行動)으로 옮겨지는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진리를 생각할 때, 어느 것을 섭취(攝取)하느냐에 따라서 그 결과가 반듯이 나타난다.
즉(卽) 말씀도 어는 말씀을 먹느냐에 따라서 그의 품성이 꼴 지어 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즉 그릇에 인분(人糞)을 담고 있으면 자연히 인분(人糞:구릿내)냄새가 날 것이며,
좋은 향기(香氣)의 향수(香水)를 담고 있다면 필히 좋은 향기(香氣)가 날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매일매일 먹는 사람과 일주일에 한번 그것도 조금 먹는 사람과는,
그들이 매일의 삶은 분명히 다를 것이다.

◉ <그리스도인의 품행(品行)>
우리는 하늘의 원칙들과 조화(調和)죄게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行動)하는 경건(敬虔)한 백성이 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우리는 성령께서 우리 속에 우리 주님의 품성(稟性)을 재창조(再創造)하실 수 있도록, 우리의 생애에 그리스도와 같은 순결(純潔)과 건강(健康)과 기쁨을 낳게 될 일들에만 관계한다. 이것은 우리의 오락(娛樂)과 여흥(餘興)이 그리스도인의 취향(趣向)과 아름다움의 최고 표준(標準)에 맞는 것이어야 함을 의미(意味)한다.
문화적(文化的)인 차이점(差異點)들은 인정(認定)할지라도, 우리의 의복(衣服)은 단순하고 정숙(貞淑)하고 산뜻해야 하며, 그들의 참된 미(美)가 외양(外樣)을 꾸미는데 있지 않고 없어지지 않을 부드럽고 유순한 정신을 가꾸는 데 있는 자들에게 적합(適合)한 것이어야 한다.
그것은 또한 우리의 육체(肉體)가 성령(聖靈)의 전(殿)이기 때문에, 그것을 현명하게 돌보아야 함을 의미(意味)한다. 우리는 적절(適切)한 운동(運動)및 휴식(休息)과 더불어 가능(可能)한 한 건강에 가장 유익(有益)한 음식(飮食)을 취해야 하며 성경에 명시(明示)된 부정(不淨)한 식품(食品)들을 삼가야 한다.
주정음료(酒酊飮料), 담배 및 마약(痲藥)과 마취제(痲醉劑)의 무책임(無責任)한 사용은 신체(身體)에 해(害)가 되므로, 우리는 그것들도 삼가야 한다. 대신에 우리는 우리의 사상과 육체가 우리의 건강과 기쁨과 선량(善良)함을 원(願)하시는 그리스도의 훈육(訓育)에 부합(附合)되게 하는 일에는 무슨 일에나 참여(參與)해야 한다.
(기본신조, 21.)

○ 그리스도인의 품행(品行), 곧 하나님을 따르는 자들의 생활양식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위대(偉大)한 구원(救援)에 대한 감사의 반응으로 나타난다. 바울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호소(呼訴)한다."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모든 자비(慈悲)하심으로 너희를 권(勸)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祭祀)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靈的)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善)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穩全)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分別)하도록 하라." (롬 12:1-2).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창조주(創造主)요 구속주(救贖主)께 영광을 돌리기 위하여 그들의 정신적. 육체적. 영적(靈的) 능력들을 자진해서 보호하고 계발(啓發)시킨다.

합당한 품행이 무엇인가를 결정함에 있어서, 우리는 두 가지 극단(極端)을 피(避)해야 한다.
(첫째는) 구원(救援)의 수단으로써 규칙들을 받아들이고 원칙(原則)들을 적용(適用)하는 것이다.
바울은 이 같은 극단을 "율법(律法)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갈 5:4)라는 말로써 요약한다.
(둘째로) 정반대의 극단은,
행위(行爲)로는 구원(救援)받지 못하기 때문에 그것들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즉 사람이 어떻게 행하든지 상관이 없다고 한다.
바울은 이 같은 극단(極端)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말했다.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갈 5:13)라.
각 교인들이 그 자신의 양심(良心)을 따를 때는, 마태복음 18장과 갈라디아서 6장1-2절의 말씀에 따라 동료 그리스도인들 상호간에 바로잡는 일이 없게 된다.
그 안에 상호간의 사랑과 보살핌이 있어야 하는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 되지 않고 원자로 된 개인들의 집합체가 되며, 각자는 그의 동료에 대해 어떤 책임감을 갖거나 그들을 위한 어떤 관심도 받아들이지 않고 그 자신의 길로 행한다." 한편 우리의 품행과 영성이 밀접한 관계를 이루고 있는 반면에, 우리는 올바른 품행으로 말미암아서는 결코 구원을 얻을 수 없다. 오히려 그리스도인 품행은 구원의 자연적인 결과이며, 그리스도께서 갈바리에서 이미 우리를 위하여 이루신 일에 기초(基礎)되어 있다. (기초교리27, 262p)

◉ 요한 서신(書信)에서 예수님은 "메시야"이신 하나님의 아들이실 뿐 아니라,
인간(人間)의 육체(肉體)로 이 세상(世上)에 오신 사람의 아들이심이 분명(分明)히 묘사(描寫)되어 있다.

◉ 요한은 신앙생활의 매우 구체적인 지침을 말해 주었다. "빛 가운데 행하라." "죄를 범치 말라."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아무도 우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형제를 미워하지 말라." "궁핍한 형제가 있으면 말로 아닌 행동으로 도와주라." "서로 사랑하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계명들을 지키라."

◉ <복음(福音)의 원칙(原則)과 우리의 행실(行實)>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심령이 성화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성질을 사람 속에 부식(扶植)하는 것이다. 복음의 신앙은 곧 그리스도께서 그 생애 가운데 사시는 것이니 곧 살아서 활동하는 원칙을 말한다. 이 신앙은 품성 가운데 그리스도의 덕성이 드러나고 그것이 선한 행실을 하게 하는 것이다. 복음의 원칙들은 우리 실생활의 어떤 부문으로부터도 분리할 수 없다. 그리스도인의 모든 경험과 활동은 그리스도의 생애를 대표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재림교 성경주석, 눅 10:25-37)

◉ 요한은 우리가 믿는 진리가 결코 이론에 그쳐서는 안 되며,
우리의 삶에 실제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원동력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木 (9월 10일)
<眞理와 誤謬 >

◉ 언젠가 이곳의 교과시간에 예화(例話)로 들은바와 같이
금반지(金斑指)에는 14K, 24K, 순금반지(純金斑指))등으로 흔히들 구분하여 알고 있다.
그냥 눈으로 보아서는 어느 것이 14K, 24K, 순금반지인지 구분하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그 반지(斑指)의 성분(成分)즉 함량(含量)을 알아야 어느 것이 14K, 24K, 순금반지(99.99%)인지를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성분의 함량을 아는 방법은 시금석(試金石)이라는 것으로 분석(分析)을 해보아야 어느 것이 14K, 24K, 순금반지(99.99%)인지를 알 수 있듯이,
신앙(信仰)도 그냥 교회에 출석한다고 해서 다 그리스도인이 아닌 것처럼,
그리스도인들도 14K, 24K, 순금반지처럼 순도(純度)가 다른 신앙인들로 구분할 수 가있다.
즉 시금석이 되는 성경말씀에 분석(分析)을 해보아야 진리인지 비 진리(오류(誤謬))인지 알 수가 있다는 것이다.
일예(一例)로 성경에 안식일에 대하여 어느 교파(敎派)의 사람들은 일요일이 안식일이라 하여 일요일에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며, 안식일(安息日)(토요일)에 예배를 드리는 그리스도인들을 오히려 이단(異端)이라고 매도(罵倒)하며 갖은 모욕적(侮辱的)인 언사(言事)와 행동(行動)으로 일관하여 일삼고 있다.
성경 어디에도 일요일(日曜日)에 예배를 드리라는 곳은 단 한 곳도 없다는 사실을 일예로 들 수가 있다.
<예(例)>
◉ 안식일(安息日)(Sabbath) (출 20:8-11), (신 5:11-21)
안식일(安息日)은 하나님께서 친(親)히 제정(制定)하신 바,
하늘 정부(政府)의 헌법(憲法)인 십계명(十誡命)중의 4번째 계명(誡命)이다.
십계명(十誡命)은 영원불변(永遠不變)한 하늘 정부(政府)의 헌법(憲法)으로써 그 불변(不變)의 상징(象徵)이며 권위(權威)의 표현(表現)이 되는 한편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표(表)가 되며 (요일 5:3) 의무(義務)가 되며(전 12:13) 선악(善惡)의 표준(標準)이 된다.(약 2:12)
안식일(安息日)이 이러한 십계명(十誡命)중의 한 부분(部分)인 것을 생각(生角) 할 때 그 중요성(重要性)과 불변성(不變性)은 확실(確實)해 진다.
[Ⅰ] 안식일(安息日)의 목적(目的)
1. 창조(創造)의 기념(記念) (창 2:1-3, 출 20:11)
2. 인류(人類)의 행복(幸福) (막 2:27-28, 창 2:3)
3. 성별(聖別)의 표(表) (겔 31:13, 16), (출 31:12-14, 16)
4. 구속(救贖)의 표(表) (신 5:15, 겔20:20)
5. 만물(萬物)의 주권자(主權者)는 하나님이심을 상기(想起)시켜 주기 위(爲)하여(출 20:11, 시 111:4)
6. 창조주(創造主) 하나님을 경배(敬拜) 하도록 하기위하여 (출 20:8, 사 66:23, 출31:17)
7. 우상숭배(偶像崇拜)에서 보호(保護)하기위하여 (레 26:1-2)
※ 가). 언약관계(言約關係)의 표징(表徵) (출 31:16-17)
나). 충성(忠誠)의 시금석(試金石) (출 16:23-30) (계 14:12)
다). 시간(時間)의 성소(聖所) (사 58:12-14)
라). 하늘 안식(安息)을 맛보는 것입니다. (히 4:1- 히 4:9-11)

◉ <하나님의 말씀>
"진리(眞理)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自由)케 하리라"(요 8:32)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魔鬼)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요 8:44)
"빌라도가 가로되 진리(眞理)가 무엇이냐 하더라 이 말을 하고 다시 유대인들에게 나가서 이르되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노라"(요 18:38)
"그리스도의 진리(眞理)가 내 속에 있으니 "(고후 11:10)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과연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엡 4:21)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眞理)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요일 1:8)
"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誡命)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眞理)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요일 2:4)

“여호와여 주의 도로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주의 진리에 행하오리니 일심으로 주의 이름을 경외하게 하소서” (시 86:11).
“내가 주의 진리에 행하오리니”라고 말하라.
하나님을 경외(敬畏)하는 가운데 표현(表現)된 모든 결심(決心)은 목적과 믿음에 힘을 더해 줄 것이다. 그것은 격려(激勵)하고, 겸손(謙遜)하게 하며, 힘과 확신을 주는 경향이 있다. “내가 주의 진리에 행하오리니.” 꾸며 낸 이야기로 가득한 세상이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진리를 신뢰해야 한다. 횡행(橫行)하고 있는 오류(誤謬)와 모조품(模造品)은 어딘가에 진리(眞理), 참된 진리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유일(唯一)하게 증거(證據)한다.
우리는 진리를 듣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순종(順從)을 요구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눅 11:28).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요 13:17). 우리는 진리의 기쁨 가운데 행할 수 있다.

진리를 믿노라고 주장하는 우리는 말과 품성을 통해 그 열매를 나타내야 한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빛나는 하늘의 햇빛을 소유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 곧 하나님과 우리 이웃을 향한 그분의 사랑을 수용하는 일에 탁월해야 한다.
진리는 영혼의 가장 깊은 곳까지 도달해야 하며 그리스도의 정신과 같지 않은 모든 것을 씻어 버려야 한다.
그리하여 순결하고 거룩하며 더럽혀지지 않은 그분의 품성의 속성에 의해 공간이 채워져서
마음의 온갖 샘이 향내로, 달콤한 향기로, 생명에서 생명에 이르는 냄새로 향긋한 꽃처럼 될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을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은 영혼 속에 자리한 진리이다

◉ 진리(眞理)란 참된 것, 사실(事實)을 진리(眞理)라 한다. 하나님을 진리(眞理)라 하고 사단을 일컬어 오류(誤謬)라 한다. 이는 참된 것과, 거짓과 가식(假飾)을 구분(區分)하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랑과 진리(眞理)는 불가분(不可分)의 관계(關係)가 있다.
사도 요한은 "진리로 인하여"세상의 모든 가르침을 성경말씀으로써 시험(試驗)하여야 한다. 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것이 마지막 시험이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당신의 경험(經驗)을 시험하라.
당신의 경험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시험(試驗)하지 않도록 주의 하라.

◉ 진리(眞理)이신 예수님을 아는 자는 그분의 계명(誡命)을 지킬 것이다.
“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誡命)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요일 2:4)

◉ <진리 그 자체이신 예수님 >
“그리스도는 성경의 초점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진리(엡 4:21)를 이해하라고 우리를 초청하신다. 왜냐하면 그분은 진리이시기 때문이다(요 14:6). 우주적 쟁투에서 사단의 전략가운데 하나는, 사람들에게 예수 없이도 진리를 이해할 수 있다고 확신시키는 것이다.”(기본교리, 한국어판, 2007년, 143)
요한일서에서 두드러진 또 하나의 주제는 진리(眞理)에 관한 것이다.
오늘날 세상에는 상대주의(相對主義)가 우세(優勢)한 듯 보이지만, 진리(眞理)는 절대적(絶對的)이며 실제적이다.

◉ 요한에 따르면, 진정한 그리스도교의 특징(特徵)은,
(1) 육체(肉體)로 오신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2) 하나님의 계명(誡命)들을 지키며,
(3) 하나님과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요한은 그의 독자(讀者)들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의 확신을 갖게 하고자 굳건한 토대를 놓기 원하였다.

<초점(焦點)>
○ 요한일서의 중요한 주제들은 "하나님, 교회(敎會), 구원(救援), 그리스도인의 행실에 관하여 진리(眞理)와 오류(誤謬)에 대하여 승리(勝利)하도록 깊이 있는 사랑의 말씀으로 요약(要約)되어있는 짧지만 깊이 있는 서신(書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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