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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과 참된 쉼을 경험하지 못하게 하는 것들-(요점 Q &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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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봉주 작성일21-07-13 18:54 조회1,64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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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과 : <참된 쉼을 경험(經驗)하지 못하게 하는 것들>

                                               (2021년 07월 17일(안) 일몰(日沒) 17시 52분)


7월 11일(일) <검(劍)을 주러 왔노라>

 

(Q)~ 사랑의 하나님 사랑의 예수님께서 여기(마태복음 10:34~39)에 하신 말씀(내가 세상에 화평(和平)을 주러 온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和平)이 아니요. 검(劍)을 주러 왔노라)라고 하신 말씀의 뜻은 무엇인가?

 

(A)~ ①.<검(劍)을 주러 왔노라>

이사야는 메시아의 탄생(誕生)을 ‘평강(平康)의 왕(王)’이라 예언(豫言)하였으며(사 9:6), 

예수 탄생시(誕生時) 목동(牧童)들에게 나타난 천사(天使)들은 그의 탄생을 두고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平和)로다”(눅 2:14)라고 노래하였다. 

사실 예수는 평화(平和)의 실체(實體)이자 평화의 전달자(傳達者)로 이 땅에 오셨다.

(눅 1:79, 요 14:27, 롬 10:15, 골 1:20). 

따라서 이곳에서 예수께서 ‘화평(和平)’이 아니라 ‘검(劍)’(sword)을 주러 왔다고 하신 것은 메시아의 임(臨)하심으로 야기(惹起)되는 그 영향력(影響力)과 결과(結果) 중의 하나가 불의(不義)를 정복(征服)하고 악(惡)을 제거(除去)하는 투쟁(鬪爭)일 것임을 밝힌 것으로 이해(理解)할 수 있다. 

 

○.여하튼 검(劍)이라고 하는 것은 적(敵)을 죽이는데 사용(使用)하는 도구(道具)이며, 무기(武器)로서 검(劍)을 준다는 것은 적대감(敵對感)을 유발(誘發)시켜 투쟁(鬪爭)과 분열(分裂)과 전쟁(戰爭)을 발발케 한다는 것이다. 

실로 평화의 왕이신 예수께서 이 땅에 평화의 신국(神國)을 건설키 위해 오셨는데(5:9), 이 신국(神國)은 곧 땅 위의 죄악(罪惡)된 질서(秩序)를 척결(剔抉)함으로써 그 위에 세워질 것이다. 

그런 까닭에 세상은 메시아와 그의 통치(統治)를 완강히 거부(拒否)하게 될 것이고 그 나라가 완성되기까지 사생결단(死生決斷)의 치열(熾烈)한 혈전(血戰)이 끊임없이 일어날 것이다(요 14:27, 16:33). 

한편 그 전투(戰鬪)의 가장 치열(熾烈)한 격전지(激戰地)가 바로 예수의 십자가(十字架)이다.

또한 검(劍)은 세상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을 박해(迫害)함으로 야기(惹起)되는 싸움과 죽음을 가리킬 수 있다.

 

②.화평(和平)이 아니라 분쟁(紛爭)을 말하는(34절), 가족(家族)의 화목이 아니라 분열(分裂)을 말하는 (35~37절), 평안함이 아니라 고통(苦痛)을 강조(强調)하는(38절), 생명이 아니라 죽음을 높이는(39절) 성경의 일반 진리와 모순되는 것처럼 보일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역설법적(逆說法的) 표현(表現)을 통하여 주님을 따르는 사역직(使役職)이 다른 그 무엇보다 더 급하고 중요하고 고귀한 사명(使命)임을 강조하기 위한 것일 뿐으로 즉 성도(聖徒)는 화평(和平), 평안(平安), 생명(生命) 가족 사랑을 위하여 헌신(獻身), 희생(犠牲)해야 하지만 만약 그것이 주님의 제자직(弟子職) 수행의 걸림돌이 된다면 과감히 포기하여야 함을 보여준다. 즉 예수는 절체절명의 상황을 제시함으로써 제자직의 중요성을 깊이 있게 교훈하신 것이다.

 

③.신앙은 관계중심이다. 예수를 구주(救主)로 영접하였다면 세상과 어떤 관계보다도 중요한 것이 예수님과의 관계가 최우선순위라는 점이며 검(劍)의 치열한 격전지(激戰地)는 예수님의 십자가(十字架)로 신자와 불신자의 투쟁에는 칼(劍)로 묘사(描寫)함이다. 

 

7월 12일(월) <이기심(利己心)>

 

(Q)~ (누가복음 12:13~21)의 비유(譬喩)에서의 핵심(核心)은 무엇이며 문제점(問題點)은 무엇이며 주시고자 하는 교훈(敎訓)은 무엇인가?

 

(A)~ ①.문제점은 탐심(貪心)과 이기심(利己心) 대한 언급으로 탐심과 이기심은 참된 쉼을 방해하는 죄(罪)라는 것이다.

②.탐심(貪心)(헬라어 플레오넥시아(pleonexia)은 삶에 관련된 물질적인 소유들, 특히 다른 이들에게 속한 소유에 대한 부당한 애착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③.마음속에 더 이상 탐심이 없다면, 해결할 분쟁도 없을 것이다. 늘 그렇듯이, 예수는 문제의 뿌리에 접근했고 미구에 필연적으로 발생할 유사한 문제들을 막을 수 있는 해결책을 제시하였다. 

④.물질주의는 오늘날 세계의 많은 주된 문제들의 뿌리다. 

그것은 대부분의 정치 및 경제 철학에 기초를 제공하며, 따라서 인류에게 재앙을 몰고 오는 대부분 계층 및 국가 간 투쟁에 원인을 제공한다. 우리의 소유에 대한 불만족은 자신 스스로 정직하게 애쓰기보다는 다른 사람 소유의 일부나 전부를 포기하도록 강요함으로써 더 많은 것을 확보하려는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탐심은 세상이 해결할 수 없는 많은 문제의 원인이다.

⑤.하늘나라의 원칙은 더 큰 것, 더 좋은 것, 더 많이 갖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기심과 욕심(慾心) 때문에 나를 위해 쌓아두는 것이 큰 행복으로 착각(錯覺)하지만 예수님은 인류의 구원(救援)을 위해 모든 것은 내어주신 분이시다.

⑥.탐심과 이기심을 버리는 것은 겸손과 사랑의 주관자 되시는 예수님께서 내 마음에 주인이 되실 때만 가능하기에 사단의 유혹과 무기는 이기심과 탐심이므로 죄의 뿌리를 근본적으로 제거해야 한다.

 

7월 13일(화) <야망(野望)>

 

(Q)~ (누가복음 22:14~30)의 말씀에서 “천국에서 누가 크니까?”라는 질문과 실물교훈으로 답하신 내용의 교훈과 핵심은 무엇입니까?

 

(A)~ ①.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전까지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제자들은 누가 더 큰 자인가로 다투고 있다. 즉 세상의 이기심과 야망은 높은 자리 더 높은 지배욕과 교만과 자신의 욕망으로 즉 전능자 되시는 하나님 없이 모든 것을 자신의 능력으로 이룰 수 있다는 자만이요 교만이요 이기심이요 야망인 죄인의 속성으로 포장되어있다. 즉 죄인의 전형적인 모습인 것이다. 이는 참된 회심을 경험하지 못한 마음에서 나온 야망에서 나오는 언행(言行)이다.

 

②.참된 위대함은 회심을 경험해야만 예수님 안에서만이 참된 쉼을 경험하는 시발점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린아이와 같이 예수님을 믿고 그분에게 의지할 때 온전한 쉼의 행복이 있다는 것이다.

 

 

7월 14일(수) <위선(僞善)>

 

(Q)~ (마태복음 23:1~13)의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어떤 점을 날카롭게 직설적인 말씀으로 책망하시며 또한 교훈하시고자 하십니까?

 

(A)~ ①.예수님께서 유대인들의 종교지도자(宗敎指導者)들이었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위선(僞善)에 관하여 공개적(公開的)으로 책망(責望)하셨다.

②.㉮이들 유대교 지도자(指導者)들의 근본적(根本的)인 종교적(宗敎的) 결함(缺陷)을 지적(指摘)하면서 성도(聖徒)들이 지켜야 할 올바른 종교윤리(宗敎倫理)를 제시(提示)해주고 있으며 ㉯. 그리고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외식(外飾)을 일곱 가지로 지적(指摘)하면서 그들에게 화(禍)가 있을 것을 경고(警告)하고 있으며. ㉰.마지막으로 결론(結論)에서는 외식(外飾)하는 자들의 도성(都城)인 예루살렘이 장차(將次) 멸망(滅亡)할 것을 예언(豫言)하고 있다. 

③.예수님께서 유대교의 지도자(指導者)들에게 외식주의(外飾主義)의 비판(批判)으로

㉮.저희는 말만 하고 스스로 실천(實踐)하지 않는다 점과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하여 행동(行動)한다는 점과

㉰.저희는 교만(驕慢)하여 뭇사람들로부터 높임 받기를 좋아한다는 점이다.

 

④.위선(僞善)이란 그렇지 않으면서도 그런체하는 사람을 가리키며, 말한 대로 행동하지 않는 자를 말하는 것으로 있는 종교적으로 위선에 빠진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사랑하셨다.

○.예수님은 다른 사람과 교제하실 때 

㉮.사랑과 이해심이 많으시고 ㉯.무례한 행동을 안 하시고 ㉰.쓸데없는 가혹한 말을 하여 남의 감정을 상하게 하지 않으시고 ㉱.사람의 약점을 책하지도 않으셨다.

 

7월 15일(목) <참된 쉼을 방해(妨害)하는 것들을 제거(除去)하기>

 

(Q)~ 우리 인생(人生) 모두는 상처(傷處) 입고, 지치고, 아프고, 낙담(落膽)하며 살고 있으며 늘 마음으로 사모(思慕)하는 그곳, 모든 아픔 없는 곳 온전한 쉼이 있는 삶과 고통(苦痛)이 영원(永遠)히 사라질 거처(居處)를 그리며 살고 있는데 그곳이 어디이며 그곳을 어떻게 갈 수 있을까요?

 

(A)~ ①.우리 인생의 유일(唯一)한 소망(所望)과 방법(方法)은 길이요 진리(眞理)요 생명(生命)이 되시는 예수님뿐 이시며 그분을 붙잡고 믿고 사는 것뿐이다.

②.참된 쉼은 예수님으로부터 시작되며 그분만이 길이고 진리이며 생명이시다. 그러므로 참된 쉼과 가야 할 길과 정답(正答)은 예수님을 나의 삶의 주인(主人)으로 모시고 굳게 붙잡고 신뢰(信賴)하는 것뿐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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