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과 청지기 직분과 선교(질문, 대답, 설명) 09/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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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6-09-03 16:45 조회75회 댓글0건본문
제11과 청지기 직분과 선교
(9월 12일 안식일/일몰 오후 6시 45분)
기억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8:9)
● 연구 범위 - 고후 8-9장; 요 3:16; 17:5; 눅 9:58; 계 13:8; 롬 12:8; 15:26, 27
고린도후서 8-9장에서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유다에 있는 형제자매를 섬길 기회를 주었다. 나눔은 그리스도의 자기희생적인 성품을 본받도록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특권이라고 본문은 말한다. 하늘의 언어는 베푸는 삶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요한복음 3장 16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예수를 주신 목적이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분명하게 표현한다. 이 구절에는 청지기 직분과 선교가 하나로 묶여 있다. 이 둘은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뗄 수 없다. 바울이 자신과 동역자들을 “하나님의 신비들을 맡은 청지기”(고전 4:1, 한글킹)로 소개한 것은 전혀 이상한 게 아니다. 같은 맥락에서 우리도 청지기다.
이번 주에는 청지기 직무와 선교가 예수의 모본에 깊이 뿌리박고 있다는 점을 살펴보겠다. 청지기 사명과 선교는 불가분의 관계다. 청지기 직무는 교회에 재정과 인적 자원을 공급해 하나님의 선교를 이루게 한다.
말씀 속으로
“1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2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3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4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 5우리가 바라던 것뿐 아니라 그들이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에게 주었도다 …9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10이 일에 관하여 나의 뜻을 알리노니 이 일은 너희에게 유익함이라 너희가 일 년 전에 행하기를 먼저 시작할 뿐 아니라 원하기도 하였은즉 11이제는 하던 일을 성취할지니 마음에 원하던 것과 같이 완성하되 있는 대로 하라 12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 대로 받으실 터이요 없는 것은 받지 아니하시리라”(고후 8:1-5, 9-12).
토의 질문
1. 청지기 사명은 왜 선교와 불가분의 관계인가요?
*답: 선교 자금의 출처이며 참된 헌신과 예배의 실천이기 때문이다.
2. 예수님이 가난해지심으로 우리가 부요해졌다는 말은 어떤 의미인가요?
*답: 예수께서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을 주장하지 않고 자기를 비워 사람이 되어 복종하셔서 우리를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신 것을 뜻한다.
3. 어떻게 마케도니아 교인들은 가난한 중에도 풍성하게 헌금할 수 있었나요?
*답: 그들이 진정으로 예수님께 자기를 드렸기 때문이다.
4. 하나님께서는 어떤 헌금을 기쁘게 받으실까요?
*답: 즐겨 내는 것을 기뻐하신다.
5. 체계적인 헌금 제도에는 어떤 유익이 있나요?
*답: 헌금하는데 가정과 신자 개인의 질서가 선다.
핵심 교훈
청지기 직분과 선교는 분리될 수 없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아낌없이 내주셨듯 그 사랑을 경험한 사람은 자신의 시간과 재물과 삶을 기꺼이 드리게 된다. 참된 나눔은 의무가 아니라 은혜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며 교회의 연합과 복음 전파를 이루는 하나님의 도구가 된다.
9월 6일(일) 예수의 모본
고린도후서 8-9장은 유대 교회의 가난한 이들을 위해 모금을 완수하도록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을 독려한 내용과 관련이 있다. 그들은 이미 모금을 약속했지만(고후 8:10, 11; 9:5; 고전 16:1-4 참조) 그들과 바울 사이의 관계 문제로 한동안 진전이 없었던 듯싶다. 이제 문제가 해결되었으므로(고후 1-7장) 바울은 모금 활동의 마무리에 관심을 돌린다(고후 8-9장).
처음에 바울은 마케도니아 교인들의 모본에 호소한다(고후 8:1-7). 그들은 가난에 쪼들리면서도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했다.(2절). 가난과 넉넉한 마음은 분명 공존할 수 있다. 마케도니아 교인들의 넘치는 나눔은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내주신 예수님의 너그러움을 그대로 따른 것이다(8-15절).
고린도후서 8장 9절을 읽어 보라. 예수의 모본에 대해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고후8: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답: 예수님의 은혜를 말한다. 자기 희생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생명의 풍성함을 주셨다.
고린도후서 8장 9절은 성경 전체에서 가장 놀랍고 강력하고 심오한 구절이다. 바울은 놀랄 만큼 절제된 표현으로 예수의 사명을 설명한다. 여기에는 엄청난 신학이 담겨 있다. 이것은 한 구절로 표현된 구속의 이야기다.
이 이야기가 재정적인 용어로 묘사되었다는 점이 특히 인상적이다. 분명 예수는 부유하셨다. 그분은 하늘에 먼저 계셨다는 점에서 부유하셨다(요 17:5). 그런데 하늘 영광을 버리고 슬픈 이 세상에 내려옴으로써 가난해지기로 결심하셨다. 그분은 문자 그대로 가난해지셨다(눅 9:58). 하나님과 동등한 존재임에도 그분은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다(빌 2:7). 또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다(빌 2:8, 새번역).
예수께는 우리가 자신과 영원히 함께 살도록 자기 생명을 내주셨다. 그 희생에는 한 가지 목적이 있었다. 바로 우리의 구원이다. 청지기 사명과 선교는 한데 묶여 있다. 고린도후서 8-9장은 특정한 헌금에 관해 말하고 있는데 이 모든 이야기의 밑바탕은 예수님이시다. 이번 주에는 자신을 내주신 그리스도의 희생에 기초한 헌금 생활의 신학적 원칙들을 살펴보겠다.
나의 삶 속으로: 예수의 탄생, 생애, 죽음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괴로운 이 세상과는 차원이 다른 삶을 선물로 주신 그분께 무엇으로 보답할 수 있을까요?
<부가설명> 탕자는 부잣집 아들이었다. 이 비유도 재물과 관련해서 복음을 설명한 비유다. 예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사상을 깨달은 바울도 역시 재정과 복음 관계로 선교를 설명한다. 탕자의 재물이 없어지자 친구가 없어졌다. 교회가 선교 자금을 아끼면 복음을 들을 사람이 없어진다. 탕자는 자기 양식도 구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는 굶어서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 탕자가 아버지 집을 떠날 때 잃어버린 것은 재물이 아니라 생명력이다. 교회가 선교 재정을 아끼면 생명력을 잃는다. 교회 운영과 기타 행사에 재정을 쏟고 선교에는 재정을 합당하게 배정하지 않아서 선교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교회는 활력을 잃는다. 활력은 생명력의 다른 말이다. 우리 주님은 하늘을 두고 이 사망의 새상에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게 하기 위하여 오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이 모본을 성실히 따라야 할 것이다.
9월 7일(월) 동기
고린도후서 8장 1, 5절과 9장 7, 9, 13, 15절을 읽어 보라. 중심 기별은 무엇인가?
[고후8:1,5]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5 우리가 바라던 것뿐 아니라 그들이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에게 주었도다.
[고후9:7,9,13,15]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9 기록된 바 그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13 이 직무로 증거를 삼아 너희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진실히 믿고 복종하는 것과 그들과 모든 사람을 섬기는 너희의 후한 연보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15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답: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마음이 넘쳐서 후하게 연보했다. 그들의 동기는 구원의 은혜였다.
고린도후서 8-9장에는 나눔의 언어가 면면이 흐른다. “하나님께서…주신 은혜”(8:1), “그들이…자신을…주었도다”(8:5), “저마다 자기 마음속에 정한 대로 낼 것이요 …하나님은 즐거이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9:7, 킹흠정), “그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9:9), “너희의 후한 연보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9:13), “이루 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선물로 인하여 그분께 감사하노라”(9:15, 킹흠정) 등이다. 고린도후서 8-9장은 나눔의 언어로 시작하고 끝맺는다(8:1; 9:15). 헌물을 드려야 하는 이유를 여기서는 최소한 네 가지로 제시한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기 때문이다(8:1; 9:14, 15). 고린도후서 8-9장은 “하나님의 은혜”(8:1, 바른)를 언급하면서 시작한다. 이어서 바울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8:9)라고 말한다. 본문에 따르면 헌금을 실천하는 주된 이유는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은혜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라는 엄청난 선물을 우리에게 주셨고 우리는 예물을 드리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삶 속에서 인식한다. ‘은혜’(그리스어 ‘카리스’)는 나눔의 개념과 함께 고린도후서 8-9장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며 그 시작과 끝에도 ‘카리스’가 언급된다(8:1; 9:14, 15). 본문에서 바울은 은혜를 여러 가지 의미로 적용하면서 우리 삶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가 타인에게 은혜를 베풀고 감사할 수 있게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예수의 모본을 따르고자 하기 때문이다(8:9). 예수님은 부유하지만 가난해지셨다(부유함은 그분의 선재성, 가난함은 이후의 성육신을 가리킨다). 이것은 그분이 모든 것을 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헌물을 드림으로써 사람들이 주님을 인식하도록 도울 수 있다.
하나님의 복을 나누고 싶기 때문이다(9:10, 11). 우리가 남에게 베푸는 이유는 단 하나, 우리가 먼저 하나님께 받았기 때문이다. 그분은 우리가 후하게 나누도록 우리를 풍성하게 하신다.
진심 어린 사랑 때문이다(8:8, 24). 나눔은 참된 사랑의 증표이며 그 마음에 사랑이 깃들어 있다는 가장 분명한 증거다. 영어 격언처럼 ‘마음이 열리면 지갑이 열리기 마련이다’(put your money where your mouth is.).
나의 삶 속으로: 가슴 뭉클한 도움을 받았던 적이 있나요? 십자가에 비추어 본다면 나는 받은 것에 비해 얼마나 베풀고 있나요?
<부가설명> 바울은 이렇게 지적한다.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고전4:7). 우리가 가진 것 중에 받지 않은 것이 없다. 존재 자체도 부모님, 나아가서는 하나님께 받았다. 우리가 사용하는 것도 다 내게서 나온 것이 아니다. 다 나 밖에서 나에게 주어진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마치 받지 않은 것처럼 자랑한다. 생명도 형체도 물질도 모두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다. 우주와 그 가운데 만물은 창조주께서 창조하셨기 때문에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제칠일안식일을 기억하여 지키는 것이다. 제칠일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엿새 동안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신 것을 부인하는 삶이다.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그 만물을 사람들이 관리하고 사용하도록 하셨다. 모든 것의 소유주는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십일조를 드리는 것이다. 십일조와 헌물을 드리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는 것이라고 성경은 분명히 말한다(말3:8~10). 주인의 물건을 허락없이 사용하면 도둑질이 된다. 하나님의 소유를 인정하지 않고 마음대로 사용하는 것이 도둑질이다. 제칠일안식일과 십일조는 창주와 소유주 되시는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인정하고 믿는 삶의 필수적인 것이다. 거기에 헌물을 더하여 생명을 전하는 것이 성도들의 삶의 본질이다.
9월 8일(화) 계획
고린도후서 9장 7절을 읽어 보라. 헌금에 대해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고후9:7]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답: 헌금을 드리지 전에 마음에 정하는 것을 먼저 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각각 합당하게 드리라고 한다. 인색하지 않고 억지로 하지 않는 질서다.
이 세상이 죄에 빠지기 전부터 하나님은 세상을 구하기로 결심하셨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내려와 우리를 위해 죽기로 한 것은 오래된 계획의 일부다(계 13:8). 하나님께 이것은 예상치 못한 놀랄 일이 아니다.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을 내주기로 진작부터 계획하셨다. 고린도후서 8장과 9장에서 계획은 나눔과 관련된 중요한 신학적 원리이다. 적어도 두 가지 측면에서 그렇다.
첫째, 계획에는 사전 결정이 담겨 있다. 바울은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고후 9:7)이라고 말한다. ‘정하다.’로 번역된 그리스어 동사 ‘프로아이레오’는 합성어다. 전치사 ‘프로’는 ‘미리, 전부터’라는 뜻이고 ‘아이레오’는 ‘선택하다.’라는 뜻이다. 따라서 ‘프로아이레오’는 미리 내린 결정을 의미한다. 또 바울은 ‘각각’이라는 말을 앞에 덧붙여 헌금의 액수가 모두에게 동일하지는 않다는 점을 짚어 준다. 얼마를 드릴 생각이든 신중하게 생각하고 결정하라는 것이 그의 요지다. 알맞다고 여겨지는 만큼을 드리라는 것이다.
둘째, 계획에는 비례의 원칙이 담겨 있다. 바울은 마케도니아 교인들이 “힘이 닿는 대로 구제”했다고 말한다(고후 8:3, 우리말). 이어 그는 이 비례의 원칙을 고린도 교인들에게도 적용한다. 이미 시작한 과제를 끝마치라고 격려하면서 바울은 지니고 있는 자원으로 그 일을 완성하라고 권한다(고후 8:11). 그는 “헌금은 있는 대로 받으실 터이요 없는 것은 받지 아니하시리라”(12절)라면서 논지를 매듭짓는다. 성경에서는 십일조의 비율을 10분의 1로 규정하지만 이것이 헌금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비례의 원칙은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고후 9:7)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소득의 얼마를 헌금할지는 각자가 결정할 몫이다. 각 사람은 가진 것에 비례해 드려야 하며 이것은 계획 없이는 불가능하다.
나의 삶 속으로: 수입에 관계없이 십일조와 헌물을 얼마나 충실하게 드리고 있습니까? 더 많이 드릴 수 있는 헌금을 제한하는 핑곗거리가 있다면 무엇입니까?
<부가설명> 그리스도인은 무엇이든지 성경 말씀 표준으로 계획해야 한다. 헌금하는 것은 더욱 그렇다. 정직하게 하나님께서 만물의 소유주이심을 인정하고 감사하며 헌금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것은 어느 것 하나 창조주께로부터 받지 않은 것이 없다. 땅도 하늘도 햇빛도 별들도 산천초목이 다 그렇다. 공기도 물도 예외가 없다. 그런 것을 우리는 현금을 지불하지 않고 사용한다. 소유주께서 사용하라고 주셨기 때문이다.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마6:32). 그래서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빠짐없이 마련하시고 그것을 그냥 쓰라고 하셨다. 다만 그것을 주시는 분이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이신 것을 인정하고 제칠일안식일을 기억하고 거룩하게 지키며 예배하고 그 예배 때에 만물의 소유주가 되시는 것을 인정하고 십일조를 드리면 된다. 얼마나 간단하고 싼 것인가?
9월 9일(수) 마음가짐
고린도후서 8장 1-5절을 읽어 보라. 어떻게 마케도니아 교인들은 이토록 후한 헌금을 즐겨 드릴 수 있었을까?
[고후8:1~5]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2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3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4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 5 우리가 바라던 것뿐 아니라 그들이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에게 주었도다.
*답: 답은 아래 설명에 있다. 그러나 간단하게 말하면 자신을 주님께 드렸기 때문에 자기에게 속한 모든 것이 주님 것임을 인정하는 믿음의 은혜가 역사한 것이다.
마케도니아 교인들의 태도는 여러 면에서 두드러졌다.
첫째, 그들은 넘치는 기쁨으로 드렸다(2절). 마케도니아 사람들은 “기쁨이 넘쳤으며 극심한 가난에도 헌금을 넘치게 하였다.”고 바울은 설명한다(고후 8:2, 바른). 이어 그는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신다고 말한다(고후 9:7). “즐겨”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는 신약 성경에서 이곳에만 언급되지만 그 동족어는 다른 데서도 나타난다.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롬 12:8). 어근이 같은 용어들이 성경 이외의 문헌에서는 ‘기쁨’, ‘행복’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한마디로 ‘즐겨 낸다.’는 말은 아까워하지 않고 드린다는 뜻이다.
둘째, 그들은 풍성한 연보를 드렸다(2절). 바울은 마케도니아 교인들의 너그러움을 언급하기에 앞서 그들의 극심한 가난에 대해 먼저 말했다. ‘풍성한 연보’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하플로테토스’가 고린도후서 8-9장에는 두 번 더 나온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모든 일에 부요하게 하시므로 여러분이 후하게 헌금을 하게 될 것”(고후 9:11, 새번역)이라고 했다. 우리는 주기 위해서 받는다는 것이다. 또 그는 “너희의 후한 연보”(고후 9:13)라고 말한다. 여기서 후한 연보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고백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셋째, 그들은 “자원하여” 드렸다(3절). 자발적이었다. 형편이 넉넉하여 드린 게 아니라는 대목이 특히 감동적이다. 그들은 재정적으로 심하게 쪼들렸다. 같은 맥락으로 디도의 고린도 방문 또한 자발적인 동기에서 비롯했다고 바울은 말한다. 디도는 자원하여 고린도에 갔다(고후 8:17).
넷째, 그들은 나눔을 특권으로 여기며 드렸다(4절). 이런 마음가짐은 마케도니아 교인들이 모금에 참여하고 싶다고 간청한 사실에서 드러난다. “그들은 성도들을 구제하는 특권에 동참하게 해 달라고 우리에게 간절히 청하였습니다”(고후 8:4, 새번역).
마지막으로 그들은 전적인 헌신의 표시로 모금에 동참했다(5절). “그들은…자신을 먼저 주께 드리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에게도 헌신”했다고 바울은 말한다(고후 8:5, 우리말). 자신을 주님께 바치면 남에게도 헌신하게 되어 있다. 마케도니아 교인들의 선교 동참은 재정 지원 너머로 확장됐다. 그들의 나눔과 너그러움은 돈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나의 삶 속으로: 마케도니아 교인들의 태도에서 어떤 점이 가장 인상 깊었습니까? 재정적인 후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부가설명> 종이 주인의 잰산에서 주는 것으로 산다. 라반은 몰래 떠난 야곱을 따라갔을 때 야곱이 라반이 어떻게 자기를 올바르게 대우하지 않았는지 따졌을 때 이렇게 대답했다. “43 라반이 야곱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딸들은 내 딸이요 자식들은 내 자식이요 양떼는 나의 양떼요 네가 보는 것은 다 내 것이라 내가 오늘날 내 딸들과 그 낳은 자식들에게 어찌할수 있으랴
44 이제 오라 너와 내가 언약을 세워 그것으로 너와 나 사이에 증거를 삼을 것이니라”(창31:43,44). 야곱이 수고한 댓가로 자기 소유를 삼았지만, 원래 모두 라반의 것이라는 말은 사실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것은 본래 창조주 하나님의 것이다. 에덴동산에서는 수고 없이 모든 것을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담이 죄에 빠진 후에는 이마에 땀이 흐르도록 수고해야 사용할 수 있었다. 오늘 우리도 수고해서 하나님의 것을 사용한다. 그래도 그 소유주가 하나님이심으로 그것을 인정하고 헌금하는 것은 착하고 신실한 종들이 하는 믿음 행위다(마25:21).
9월 10일(목) 연합
곤궁해진 유대의 교회를 위해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도 모금에 동참하도록 독려한다. 연대감의 고취가 그중 한 목적이었다. 그들도 함께 참여해 선교의 일익을 담당하기를 바란 것이다. 그는 예루살렘의 유대인 신자들과 이방인 교회들이 똑같은 하나님의 한 가족이며 한때 반대 세력이었던 이들이 이제는 하나님의 새 언약 안에서 동일한 남은 무리가 되었음을 일깨워 주고 싶었다. 후대 교회들이 주목할 만큼 놀라운 방식으로 그는 그리스도인 가족 전체 즉 유대인과 이방인이 연합하기를 갈망하고 있다.
디도와 함께 평판이 좋은 두 형제가 모금을 맡았다. 하나님은 교회를 돌보는 마음을 디도에게 주셨고(고후 8:16), 교회를 통해서 다른 두 형제도 택하셨다(18-23절). 이 형제들은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낼 교회의 대표자들”이다(고후 8:23, 현대인).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는 존재가 두 형제인지 교회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궁극적으로 헌금이란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에 대한 충성을 드러낸다(엡 4:15).
고린도후서 8-9장에서 헌금은 하나님에 의해 교회의 임명을 받은 자들에게 드려야 한다고 지적한다. “모든 교회”(고후 8:18), “교회의 택함을 받아”(19절), “교회의 사자들”(23절)과 같은 표현은 이 점을 분명히 보여 준다. 따라서 “여러 교회 앞에서 너희의 사랑과 너희에 대한 우리 자랑의 증거를 그들에게 보이라”(24절)는 바울의 권면은 놀라운 것이 아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이 정하신 도구인 교회에 헌금을 드리는 일은 연합을 촉진하는 요소이자 유대감의 결과이다(고후 8:13, 14). 돈은 강력한 연합의 수단이 될 수 있다. 그와 반대로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는 일에 오롯이 시선을 집중하지 않으면 돈 때문에 사이가 벌어지기도 한다.
로마서 15장 26, 27절에서는 연합을 바라는 바울의 마음이 어떻게 드러나는가?
[롬15:26,27] 이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연보하였음이라 27 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또한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 자니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영적인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적인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
*답: 영적 육적으로 서로 도우며 하나된 형제의 기쁨을 나타내는 것은 합당하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바울은 이 모금을 봉사이자 사역이고, 은혜의 행위요 축복이며, 예배이자 교제라고 묘사한다. 헌금에 이렇게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나의 삶 속으로: 헌금에 담긴 영적 의미들을 생각해 봅시다. 가까이 또는 멀리 있는 교회들을 위한 헌금은 세계 교회의 연합에 어떤 도움을 주나요?
<부가설명> “이 모금(헌금)을 봉사이자 사역이고, 은혜의 행위요 축복이며, 예배이자 교제라고 묘사한다.”는 교과 저자의 설명은 참이고 은혜로운 설명이다. 헌금에 관한 아주 합당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말했지만, 십일조와 헌금은 창조주께서 만물의 소유주신 것을 인정하고 경배하는 것이다. 성경말씀 대로 즐겨 드리는 자를 하나님은 더욱 사랑하신다. 그것은 하나님을 소유주로 인정하고 믿는 것을 즐거움으로 여기는 열매이기 때문이다. 아무쪼록 모든 성도들이 헌금 예배의 깊은 의미를 깨닫고 정성을 다한 헌금으로 충성하는 종들의 즐거움에 함께 참여하는 생활 자체가 예배가 되는 믿음으로 살아가자.
9월 11일(금) 더 깊은 묵상을 위해
『사도행적』 제32장 ‘너그러운 교회’(335-345)를 읽어 보라.
“마음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가득한 사람은 그분의 모본을 따를 것이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 가난해지셨고 이로써 우리를 부요하게 하고자 하셨다. 그들은 하나님께 받은 선물인 돈, 시간, 영향력이 복음 사업을 진전시키는 수단으로 사용될 때만 가치 있다고 여긴다. 초기 교회에서 그러했듯 오늘날 교회에서도 교인들이 성령을 힘입어 세상에 대한 애착을 버리고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즐겨 희생한다면 진리의 메시지는 듣는 이들에게 강력한 감화력을 발휘할 것이다”(사도행적, 71).
“주님께는 우리의 헌물이 필요하지 않다. 우리는 우리 예물로 그분을 부요하게 할 수 없다. 시편의 저자는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자비에 우리가 감사를 표하도록 허락하신다. 그것은 동일한 자기희생적인 정신을 다른 이들에게 베푸는 것이다. 이것만이 하나님께 우리의 감사와 사랑을 나타내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분은 다른 방법을 주시지 않았다”(청지기에게 보내는 권면, 18, 19).
“인간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 얼마나 큰가! 이런 선물을 주시는 분이야말로 참하나님이시다. 더할 수 없는 너그러움으로 그분은 반역한 인간 자녀를 구원하여 자신의 뜻을 깨닫게 하고 그 사랑을 알게 하신다.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원히 살게끔 독생자를 주신 분을 위해서라면 그 무엇도 아까울 게 없다는 여러분의 생각을 예물과 십일조로 보여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리뷰 앤드 헤럴드, 1900. 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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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린도후서 8장 9절을 깊이 생각해 보라. 청지기 직무와 관련한 예수님의 모본은 왜 이토록 중요한가?
*답: 부요하신 분이 우리를 부요하게 하시려고 가난해 지셨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바울처럼 공회 회원으로 호강하며 살 수 있었으나 복음 전도를 위하여 가난과 고난의 길을 걸었다. 이것이 복음이 이 세상에서 전파되는 과정으로 보인다.
2. 하늘의 언어는 베푸는 삶임을 요한복음 3장 16절에서 알 수 있다. 다음 성경절의 공통점과 교훈은 무엇인가? 요 15:13; 엡 5:2, 25; 갈 2:19, 20; 요일 3:16
[요15: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엡5:2,25]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25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갈2:19,20]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에 대하여 살려 함이라 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요일3:16]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답: 예수님의 희생과 복음 전파에 종사하는 사람도 그 본을 따르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이다.
3. 고린도후서 8-9장에서 배울 수 있는 나눔의 유익은 무엇인가?
*답: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연합이다.
4. 체계적인 헌금 이외에도 예수님의 자기희생적인 모본을 따르는 다른 방법들은 무엇이 있을까?
*답: 구제하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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