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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과-아버지와 아들과 성령-(핵심Q&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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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봉주 작성일24-12-09 23:25 조회1,60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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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과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聖靈)

                                  (12월 14일 (안) / 일몰: 오후 5시 14분) 


<기억절(記憶節)>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요 14:26). 


 <요약(要約):summary>

(1).(창세기 1장)과 (요한복음 1장)은 공통점(共通點)이 있다. 삼위(三位) 하나님은 예수를 통해 창조(創造)에 관여하셨고, 삼위(三位) 하나님은 예수를 통해 구원(救援)에 관여하셨습니다. 


(2).창조적(創造的)인 말씀은 죄(罪)로 훼손(毁損)되고 하나님과 그의 창조물(創造物) 사이에 존재(存在)했던 조화(調和)로운 조화(調和)를 깨뜨린 완벽한 세상을 만들어내셨다. 다행히도 구원(救援)의 말씀이신 예수는 잃어버린 조화를 회복(回復)하는 일을 스스로 맡았고, 그는 승리(勝利)하셨다. 더욱이 그는 죽음과 싸워서 이겼다. (롬 6:8~14. 고후 5:21)


(3). 예수님은 자신과 아버지가 하나이며, 실제로 영원부터 하나였다고 증거하셨습니다. 그분 자신이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다."(요 10:30)라고 말씀하셨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요 10:3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이 세상에 많은 투자(投資)를 하셨고, 이 세상을 사랑하십니다.


(4).성부(聖父) 하나님께서 독생자(獨生子)를 사랑하시는 만큼. 예수님은 아버지의 완전한 뜻을 행하시고(요한복음 5:30), 아버지는 그를 통해 말씀하시고 행동하십니다. (요한복음 14:10). 그리고 아버지는 그의 아들을 믿는 자들에게 구원(救援)을 가져다주십니다. (요한복음 3:16).


(12월 08일) (일) <하늘 아버지>


(Q)~성부(聖父) 하나님 즉 하늘 아버지에 관해서, 또한 성부(聖父) 하나님의 역할(役割)에 대해서 요한은 어떻게 기록하고 있습니까?. (요한복음 3:16~17, 요 6:57, 요 5:22, 30. 요 6:32. 요 14:10, 24. 요 6:45. 요 15:16. 요 16:23)


(A)~창조사업(創造事業)은 성부(聖父) 하나님의 사랑 표현(表現)이었다. 그리고 범죄(犯罪)하고 타락(墮落)한 인류를 구원(救援)하기 위한 하나님의 선물(膳物)은 무한(無限)한 하나님의 자비(慈悲)와 긍휼(矜恤)의 깊이를 나타낸다. 


⑴.영생(永生)을 얻게 하시려 아들(성자(聖子))을 보내셨고, 심판(審判)이 목적이 아니라 구원(救援)을 받게 하려 성자(聖子)를 보내셨다.


⑵.성부(聖父) 하나님의 심판(審判)을 성자(聖子)예수님께 맡기셨고 예수님은 심판(審判)을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기에 의(義)로우시다.


⑶.모세가 준 떡은 참 떡이 아니고 참 떡은 예수님이시다. 예수님게서 하시는 모두는 아들을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시다.


⑷.하나님은 아들(성자(聖子)를 세상에 보내셨고 세상에서 아들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신다고 하셨다. 아버지께 듣고 배운 자는 다 예수님께서 배우는 것과 같다.


⑸.인간이 하나님을 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구(求)하는 것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⑹.예수님은 이 땅에 계시는 동안 아버지의 인도하심에 따라 살며 당신의 삶을 아버지께 복종시켰다. 예수님은 "나와 아버지는 하나"(요 10:30)요.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요 10:38)며 "만일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행하지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요 10:37)라 라고 말씀하셨다. 


⑺.모든 존재(存在)의 창조주(創造主)는 삼위(三位) 하나님(성부(聖父), 성자(聖子), 성령(聖靈)께서 존재의 근원(根源)이시다


⑻.창조의 가장 특별한 존재(存在)는 인간이며 인간을 창조(創造)하신 목적은 인간이 하나님과 서로 사랑하며 조화(調和)롭게 사는 것이 목적이었다.


⑼.아버지가 아들과 맺고 있는 관계(關係), 또 우리를 친밀하게 대하시며 구원(救援)에 관여하신다는 진리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무엇을 가르쳐 줍니까?


⑽.하나님은 인류(人類)를 창조(創造)하시고 사랑과 조화(調和) 가운데 살도록 하셨다. 죄가 들어와 세상은 무너지고 왜곡(歪曲)되었지만, 그분은 아들을 보내사 회복(回復)하고 구원(救援)하신다. 


(12월 09일) (월) <예수님과 아버지> 


(Q)~ 예수님은 어떻게 아버지와 우리의 깨어진 관계(關係)를 회복(回復)시키십니까? (요 1:14)


(A)~<예수 그리스도에게는 최초부터 있고, 빌려오지 않고 다른 곳에서 파생(派生)되지 않은 생명(生命)이 있다." 자신의 특권을 행사하기를 포기(抛棄)하시고 "자기를 비"(빌 2:7)우신 성육신(成肉身)하신 아들로서 그리스도는 자신을 사람들과 같은 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시며 그분의 소유인 생명도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말씀이 육신(肉身)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심으로.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은 믿는 자에게 영생에 대한 보증(保證)이다”(소망, 530). 


⑴.예수께서는 우리의 죄 많은 세상에 오셔서 악(惡)한 자의 손아귀에서 세상을 구출(救出)하는 신성(神聖)한 사명을 자원하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는 본래(本來)의, 빌려온 것이 아닌, 파생(派生)되지 않은 생명이 있다"라고 말합니다. ( 소망, 530).


⑵.창조(創造)와 구원(救援)은 둘 다 하나님의 주도권(主導權)이었다. 그분은 아담과 이브를 사랑으로 창조하셔서 그들과 교제를 나누게 하셨습니다. 이 교제는 죄로 인해 중단되었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우리 자신의 운명에 내버려 두지 않으셨다.


⑶.예수님은 아담과 이브가 아버지 하나님과 깨진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주도권을 잡으셨다. 때때로 우리는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헌신(獻身)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지만, 예수님께서 우리 인간들에게 큰 헌신을 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인간적 헌신은 무엇이겠습니까?


⑷.우리의 헌신(獻身)을 고무(鼓舞)시키는 것은 바로 그분의 헌신입니다. 바울은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뇨?"라고 질문함으로써 이 요점을 확증합니다. (롬 2:4).


⑸.하나님께서는 사랑으로 이 주도권(主導權)을 공유하셨고, 그분 아들의 인격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각자를 위해 죽으시기로 동의(同意)하셨습니다. 


⑹.(요한복음 3:16)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극도(極度)까지 사랑하셔서 그분의 독생자(獨生子)를 보내어 세상을 위해 죽게 하셨다고 분명히 말씀합니다.


⑺.오직 예수님의 죽음만이 우리를 죽음에서 구원(救援)할 수 있었기 때문이며, 아브라함과 그의 약속(約束)된 아들 이삭은 하나님의 요청(要請)을 이행하기로 동의(同意)함으로써 이 약속을 예표(豫表)했다.


⑻.예수님과 이삭의 차이점(差異點)은 희생(犧牲)이 그리스도의 희생(犧牲)처럼 대속적(代贖的)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차이(差異)는 하나님의 아들이 생명의 근원(根源)이셨고 이삭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존재(存在)했다.


⑼."태초(太初)에 말씀이 있었고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말씀은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는 태초(太初)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습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고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습니다". (요 1:1~2, 4). 


⑽.예수님은 본래의 특권(特權)과 생명을 버리시고 우리와 같은 육신(肉身)이 되심으로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하시고 하나님의 영광(榮光)과 영생(永生)의 소망(所望)을 회복(回復)시켜 주신다. 즉 “인간의 구원(救援)이라는 영광(榮光)스러운 계획(計劃)은 하나님 아버지의 무한(無限)한 사랑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런데도 인류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했(요 17:25)기에 하나님은 아버지의 사랑을 알 수 있도록 독생하신 아들을 보내셨다(요 9:4, 요 16:5).


(12월 10일) (화) <아들을 아는 것이 아버지를 아는 것이라> 


(Q)~예수님과 아버지의 관계(關係)에 대해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는가? (요한복음 7:16; 요한복음 8:38; 요한복음 14:10, 23; 요한복음 15:1, 9~10; 요한복음 16:27~28; 요한복음 17:3)


(A)~<내가 아버지 안에…. 아버지는 내 안에 이 말씀은 공간적(空間的)·물리적개념(物理的槪念)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요한복음에서 강조하는 것처럼 '관계(關係)'와 '사역(使役)이라는 측면에서 성부(聖父)와 성자(聖子) 간의 연합(聯合)으로 파악(把握)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즉 아들을 사랑하신 아버지(요 5:20)께서는 그 아들을 품으신다(요 1:18). 동시에 아버지께서는 육신(肉身)을 입으신 아들 안에 계셔서 함께 역사하신다(요 10:38). 이러한 연합(聯合)은 그리스도와 그의 제자(弟子) 사이에도 성립(成立)된다. (요 15:4~5). >


⑴.예수님은 이 땅에서 아버지의 대리인(代理人)으로, 인성(人性)을 입으시고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오셨다. 실제로 예수님은 모든 일에서 자신이 아닌 아버지의 뜻을 행하려 하신다고 말씀하셨다(요 5:30).


⑵.성경의 어느 곳보다도 요한복음에는 아버지에 대한 언급이 많이 나옵니다. 특히 후반부에서 그렇습니다. 예수께서는 정확히 136번이나 아버지를 언급하셨습니다.


⑶.그분이 어떤 분이신지, 그리고 두 분 사이에 존재하는 일체성(一體性)에 대해 요한복음에 많이 언급(言及)하셨다. 이러한 격려적(激勵的)인 깨달음은 우리가 아들과 마찬가지로 아버지와 서로 사랑하는 관계(關係)를 맺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⑷.예수께서는 우리가 그분의 아버지를 알고 소중히 여기기를 원(願)하셨다. 그와 함께 예수께서는 자신이 말씀하고 행하신 모든 일에서 아버지의 완전한 뜻을 어떻게 살아내셨는지 강조(强調)하셨다.


⑸.(요한복음 14:9)에서 빌립에게 한 그리스도의 대답일 것입니다. 그 안에서 구세주(救世主)는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느니라"라고 확언(確言)합니다. 이 분명한 선언(宣言)은 우리가 모두 하나님 아버지와 하나님 아들과 관계(關係)를 맺는 것처럼 관계를 맺도록 이끌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복음서(福音書)에서 우리가 보는 예수님의 어떤 특성이든, 우리는 또한 아버지와 관련된 것으로 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⑹.이른바, “안에 있고”란 말은 성부(聖父)와 성자(聖子)의 본질상(本質上) 연합(聯合)을 가리킨다. 그러나 여기서 그 두 분의 도덕적(道德的) 연합(聯合)(행위로써 연합)도 의미하였으니, 고데이(Godet)의 말한 바와 같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곧, “여기 ‘나는 아버지 안에’란 말은, 예수님께서 아버지를 향하여 자기를 겸비(謙虛)시킴이고, ‘아버지는 내 안에’란 말은 아버지께서 예수님의 겸허(謙虛)에 모든 능력과 지혜(智慧)가 전달(傳達)하심이다.”라고 하였다. (요 14:10, 만나주석)


⑺.예수는 아버지의 것을 말하고, 그를 믿는 것도 아버지를 믿는 것이며 구원(救援)과 사랑에 있어서 두 분은 하나이다. 예수님은 아버지를 설명하며 그 사랑을 보여준다. 


⑻.요한복음 전체에서 사도(使徒)는 아들이신 예수께서 어떻게 아버지를 가리키며 활동하는지 설명한다. 예수님은 아버지가 어떤 분인지 설명하고 아버지가 이 세상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여준다. 이는 모두 '아버지를 알려 주신’(exēgeomai, 엑세게오마이)다는 (요 1:18)의 말씀과 일치한다. 


⑼.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를 만날 수 있고, 또한 예수님을 통해서만 하나님 아버지의 음성(音聲)도 들을 수 있다. 물론 하나님으로 축복을 받는 것도 예외 없이 예수님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 다른 방법으로는 절대로 하나님과 바로 직접적(直接的)으로 연결(連結)되지 않습니다. 


⑽.요한복음 전체에서 사도(使徒) 요한은 성자(聖子) 예수께서 성부(聖父) 하나님 아버지를 가리키며 활동하는지 설명하고 있고, 예수님은 성부(聖父) 하나님 아버지가 어떤 분인지 설명하고 아버지가 이 세상을 어떻게 주관하시는지를 말씀하여 주고 있다.


(12월 11일) (수) <성령(聖靈)>


(Q)~성령(聖靈)의 중요성(重要性)과 성령의 활동(活動)과 인간을 위해서 성령이 하시는 일을 요약(要約)해 보세요. (요한복음 1:10~13. 요 3:5~8, 요 6:63, 요 14:26, 요 15:26, 요한복음 16:7~11).


(A)~<성령은 1).인격적(人格的)인 속성(屬性)을 소유(所有)함. ①.성령은 지력(知力)을 소유하고 있다. (고전 2:10, 사 11:2). ②.성령은 감정(感情)을 소유하고 있다. (롬 8:26, 15:30). ③.성령은 의지(意志)를 소유하고 있다. (고전 12:11, 행 16:6~7) 2). 성령은 인격적(人格的)인 활동을 하신다. ①.성령은 가르치신다. (요 14:26). ②.성령은 증거(證據)하신다. (요 15:26) ③.성령은 중보 하신다. (롬 8:26) ④.성령은 말씀하신다. (딤전 4:1). ⑤.성령은 명령하신다. (행 13:2)>


◉ 성령은 힘이나 능력(能力) 자체가 아니라 능력(能力)을 소유(所有)하신 인격적(人格的)인 존재(存在)로서 제3위(位)의 하나님이시다. 


⑴.성령 님(聖靈 任)을 보혜사(保惠師)라고 소개(紹介)하고 있고요. 원어(原語)로 보면 그 의미는 돕는 자로 되어있다. 예수님 곁에서 늘 예수님을 보호(保護)하고, 도와주고 필요를 채워주는 든든한 후원자(後援者)가 되어주신 것이죠. 자기 곁을 늘 지키면서 나의 든든한 후원자(後援者)가 있다는 것은 큰 축복(祝福)이지요. 예수님은 이제 승천(昇天)하시면서 그 보혜사(保惠師)를 우리에게도 보내주시겠다고 약속(約束)하셨다. 


⑵.성령(聖靈)은 우리에게 주신 최고(最高)의 선물(膳物)이다. 성령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깨닫게 하고 확신(確信)을 주며 우리 생각(生覺)과 삶의 경험(經驗)을 하나님께 순복(順服)하게 한다. 


⑶.성부(聖父) 하나님은 공급자(供給者)의 역할(役割)을 하시며, 공급(供給)해주시는 모든 축복을 받아서 활용(活用)하시는 실행자(實行者)는 예수님이시고 성령님(聖靈任)은 그 아버지가 주시는 복(福)과 은혜(恩惠)를 누리고 활용하여 효과(效果)를 극대화(極大化)하도록 실제적 도움을 주는 봉사자(奉仕者)의 역할(役割)을 성령께서 하신다.


⑷.성령은 예수님 안에 있는 모든 진리(眞理)로 우리를 인도(引導)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증거(證據)할 때, 예수님은 우리가 적절한 때에 말해야 할 것들을 기억(記憶)하게 하십니다. (누가복음 21:14, 15). 또한, 성령은 예수님의 말씀과 뜻을 존중(尊重)함으로써 예수님을 영광스럽게 합니다.


⑸.요한은 말씀을 받은 자 곧 그분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의 자녀(子女)가 되었으니, "이는 혈통(血統)으로나 육정(肉情)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난 자들"(요 1:13)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오직 성령(聖靈)의 역사로 말미암는다. 


⑹.성령은 영적회심(靈的悔心)의 역동적(力動的)인 과정(過程)에서 활동하는 주체(主體)이며, 예수께서는 이 과정을 거듭남이라고 묘사(描寫)하셨습니다.


⑺.요한은 복음서(福音書)의 시작 부분에서도 "혈육(血肉)이나 육신(肉身)의 뜻이나 사람의 뜻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난 것"(요한복음 1:13)인 거듭남이라는 중요한 문제를 다룹니다. 이 기적적(奇蹟的)인 사건은 성령이 인간의 마음에 미치는 감동적(感動的)인 영향력(影響力)을 통해 일어납니다.


⑻.양심(良心)을 구원(救援)에 대한 절실한 필요성에 일깨우고 아버지와 아들이 말씀하고 행하시는 모든 것의 진실성(眞實性)에 대해 마음을 확신(確信)시키는 것은 성령(聖靈)입니다. 


⑼.성령은 우리의 보혜사(保惠師), 즉 우리 옆에 앉아 위로(慰勞)를 주시는 분일 뿐만 아니라 확신(確信)을 전문(專門)으로 합니다. 우리는 죄책감(罪責感)이라는 유익(有益)한 복용량(服用量)을 경험할 때 감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성령이 우리 삶에서 활동하고, 우리가 일을 바로잡도록 유혹(誘惑)하고 있다는 분명한 신호(信號)이기 때문입니다


⑽.성령은 우리를 괴롭히는 죄에 대한 죄책감(罪責感)으로 우리의 양심(良心)을 책망(責望)하고, 우리 삶에서 제거(除去)되어야 합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의(義)로움과 이기적(利己的)인 것이 아닌 옳은 일을 하는 기쁨을 책망(責望)합니다. 이 의(義)로움은 귀속(歸屬)되고 부여(附與)되며, 성령의 사역(使役) 통해 "의(義)의 태양(太陽)"에서만 옵니다. 


(12월 12일) (목) <예수님의 기도(祈禱)>  


(Q)~(요한복음 17장)의 예수님의 중보 기도(仲保祈禱)의 특징(特徵)과 기도내용을 요약해보세요? (요한복음 17:1~26)


(A)~<(하늘 성소(聖所)에서 중보(仲保)하시는 예수님의 예증(例證))―(요한복음 17장)에는 그리스도께서 수난을 당하시고 십자가(十字架)에 달리시기 직전(直前)에 아버지께 올리신 그리스도의 중보 기도(仲保祈禱)가 실려 있다. 인류(人類)를 위한 그분의 크신 희생(犧牲) 곧 친히 자기 몸을 바치는 사업을 끝마치려 할 때 드린 이 기도(祈禱)는 구주(救主)께서 휘장(揮帳) 안으로 가져가시는 중보(仲保)에 관한 교훈(敎訓)이다. 우리의 중보자(仲保者)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하늘 성소(聖所)에서 봉사(奉仕)하시는 그의 봉사의 모습을 이와 같은 예증(例證)으로 보여주셨다. 이 봉사(奉仕)는 모든 이기심(利己心)을 비우고, 구원(救援)하시는 그분의 능력을 믿으면서 온유(溫柔)와 겸손(謙遜)으로 그분께 나아오는 모든 사람을 위한 봉사이다(원고 29, 1906).”(화이트 주석, 요 17:1~26)>


⑴.하나님은 우리와의 인격적관계(人格的關係) 회복(回復) 원하신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자신과 아버지 하나님과 성령(聖靈) 사이의 관계(關係)를 이해(理解)하고 그 관계(關係)를 그들도 가지기를 원(願)하셨다.


⑵.(요 17장)의 기도는 그리스도께서 제자들과 함께 드리신 기도(祈禱)이다. 그것은 그분이 팔리고 체포(逮捕)될 곳인 겟세마네 동산으로 들어가시기 바로 전에 드리신 기도이다. 


⑶.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 이르렀을 때 예수님은 심한 고민(苦悶)으로 땅바닥에 엎드려지셨다. 온 세상 죄(罪)의 짐이 그분 위에 놓여 있었다. 


⑷.(요한복음 17장)의 기도문(祈禱文)을 우리가 연구할 때에 그분이 여기에 나오는 말씀으로 기도하신 것은 이러한 경험(經驗)을 겪으시기 바로 직전(直前)이었으며, 팔리 우시고, 시련(試鍊)을 겪으시기 바로 전(前)이었음을 기억(記憶)하자(원고 52, 1904).


⑸.(요한복음 17장)은 하나님과 그리스도가 각각 독립된 개성을 가지신 존재이심과 그들 상호간의 관계에 관하여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옵소서”(요 17:23, 33; 5-11인용). 이 말씀 속에는 그분들 각자의 개성과 개체가 각각임이 나타나 있다(원고 124, 1903).


⑹.우리가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수단(手段)은 단지 그리스도를 앎으로써이다. 하나님의 보내신 분은 모든 사람에게 이 말씀에 귀를 기울이라고 하신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누구나 다 이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는 이 말씀으로 심판(審判)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⑺.그리스도를 구주(救主)로 안다는 것은 영적지식(靈的知識)으로 활력(活力)을 얻어서 그의 말씀을 실천(實踐)하는 것이다. 다른 모든 것은 이것이 없이는 아무 가치(價値)가 없다. (사인즈 1898.1. 27).


⑻.(요한복음 17장)의 기도(祈禱)는 예수님의 중보 기도(仲保祈禱)로 묘사(描寫)되어 있으며, 이는 예수님의 기도 중 가장 길고 심오(深奧)한 기도(祈禱)이다. 이 기도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위해, 제자들을 위해, 그리고 현재(現在)와 미래(未來)의 모든 신자를 위해 기도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또한 제자들의 말로 나를 믿을 자들을 위해" 기도하시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17:20). 


⑼.그리스도의 기도는 강력(强力)할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포괄(包括)합니다. 그분이 우리를 위해 개인적(個人的)으로, 열정적(熱情的)으로, 강력(强力)하게, 그리고 끊임없이 기도하신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⑽.예수님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할 때처럼 간헐적(間歇的)으로가 아니라 끊임없이 기도하십니다. (히브리서 7:25)은 예수님께서 "항상(恒常)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해 중보(仲保) 하심으로 자기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穩全)히 구원(救援)하실 수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극심한 고난의 삶을 사셨고 결국 종교 당국으로부터 배척당하셨다. 그분은 사람들의 무관심에 시달렸고 때로는 제자들까지도 그분을 외면했다. 그분은 끝없는 고난을 겪으셨고, 구원하기 위해 오신 바로 그 사람들의 손에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 


예수님이 누구인지 평가(平價)할 때, 그분의 반대자들은 "육체를 따라"(요 8:15) 인간의 기준으로 판단했다. 이것은 아마도 단순히 "외모로 판단"(요 7:24)하는 것보다 더 나쁠 것이다. 그들은 성령의 강력한 통제 없이 타락한 세상에서 타락한 인간의 육체의 기준을 따랐다(요 3:3~7). 그들은 그분의 "육체"를 따라서 보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실 수 있다는 가능성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요 1:14). 그러한 제한된 기준으로 그리스도를 보는 것은 세상의 관점에서 그분을 평가하는 것이다(고후 5:16).


"보혜사(保惠師)는 ‘진리의 성령’이라고 불리워진다. 보혜사의 하시는 일은 진리를 밝히고 보존하는 데 있다. 그분은 먼저 진리의 성령으로 마음 가운데 거하시는바 그리하여 보혜사가 되신다. 진리 가운데는 위안과 평화가 있으나 거짓 속에서는 참된 평화와 위안을 찾을 수가 없다. 거짓 교리와 유전을 통하여 사탄은 마음을 지배하는 세력을 얻는다. 그는 사람들을 거짓 표준으로 인도하여 그들의 품성을 보기 흉하게 만든다. 성령께서는 성경 말씀을 통하여 마음에 말씀하시며 진리를 심령에 깊이 새기신다. 이와 같이 성령께서는 잘못을 드러내시고 심령에서 그것을 내쫓으신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택하신 백성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심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역사하시는 진리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행하시는 것이다"(소망, 671).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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