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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기-제13과-(모세의 부활)-(핵심 Q&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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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봉주 작성일21-12-22 23:40 조회1,49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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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3과 모세의 부활(復活)>

                                                (2021년 12월 25일 (안) 17시19분)

 

(12월19일) (일) <모세의 죄(罪) - 1>

 

(Q)~(민수기 20:1~13)에서의 “모세”는 어떠한 실수와 죄를 범했으며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

 

(A)~⑴.모세가 일생일대의 가장 큰 실수(失手)를 하는 장면(場面)이다. 모세의 실수는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판단(判斷)과 그 분의 말씀보다 스스로의 감정(感情)을 앞세운데 서 시작되었다. 즉 모세는 하나님의 권능(權能)은 인정(認定)했으나 그 권능(權能)이 자신의 의지(依支)에 따라 발휘(發揮)될 수도, 그렇지 않을수도 있음을 나타내 보이려고 하였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代言)한다는 입장에서 반석(磐石)을 향하여 말로 명령(命令)하지 않고 백성들을 치고 싶은 격한 감정(感情)으로 반석을 두 번 쳤다. 하나님은 모세가 욕(辱)을 한 바로 그 백성에게 하나님의 능력(能力)과 은혜(恩惠)를 베풀고자 하셨으나 모세는 격한 감정(感情)을 발(發)함으로서 오히려 하나님의 거룩성과 영광(榮光)을 파괴(破壞)하고 말았다. 결국 순종(順從)과 겸손(謙遜)과 절제(節制)를 잃어버렸던 모세는 약속(約束)의 땅에 들어갈 수 없게 되었다.

이런 사실은 ㉮.지도자(指導者)의 실책(失策)이 하나님 앞에서는 매우 엄중(嚴重)하게 다루어지며.(야고보 3:1) ㉯.하나님의 일꾼들의 권위(權威)는 오직하나님의 영광(榮光)을 위해서 사용되어야 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자에게는 교만(驕慢)과 방종(放縱)이 결코 용납되지 않는 다는 진리를 제공(提供)하고 있다.

 

⑵.나(여호와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믿음의 결핍(缺乏) 때문에 모세와 아론을 통해서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드러나는 것이 방해(妨害)받았다.

 

⑶.모세가 범한 죄목(罪目)은 반석(磐石)을 두 번 친 것에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그것을 치라고 말씀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게다가 모세는 그의 태도(態度)와 행실(行實)에서 반영(反映)되어야 했을 인내심, 곧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다루실 때 보인 인내심(忍耐心)을 잊었다. 그는 마치 그 불평(不平)들이 자신을 향한 것이라는 듯 말하고 행동(行動)했다.(재림교 주석 민20:11)

 

(12월20일) (월) <모세의 죄(罪) - 2>

 

(Q)~(민수기 20:8)에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무엇을 하라고 하셨나요, 그런데 모세는 (민수기20:10~11)에 어떻게 행동을 하는 죄를 범했는가요?

 

(A)~◎.(민수기 20:8)에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지팡이를 가지고 아론과 함께 회중(會衆)을 모으고 그들의 목전(目前)에서 반석에게 말씀으로만 명(命)하여 물을 내라 명하셨는데,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지팡이를 잡고 여기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민수기20:10~11)에 모세는 지팡이로 반석(磐石)을 두 번 치므로 믿음의 부족(不足)과 불순종(不順從)을 하였다.

 

⑴.<반석(磐石)에게 명(命)하여>라는 의미(意味)는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무생물(無生物)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主權)을 강조(强調)하는 명령(命令)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천지(天地)를 창조(創造)하시고 또한 그것을 운행(運行)하신다.(창세기1장; 요한복음 1:3)

 

⑵.피조물(被造物) 세계에서 하나님의 간섭(干涉)없이 존재(存在)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로마서 11:36) 그러므로 모세에게 어떤 이적적(異蹟的)인 능력(能力)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能力)에 의해 그 반석(磐石)에서 물이 흘러나오게 된 것이다.

 

⑶.이러한 이적(異蹟)은 신약시대(新約時代)에 이르러 또 한 번 나타난다.즉 영혼(靈魂)의 갈증(渴症)을 호소하는 인간들을 향(向)하여 하나님께서는 반석(磐石)되시는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신령한 음료(飮料)를 제공(提供)하셨다. (고전 10:4)

 

⑷.결국(結局) 본 (민수기10:8절)의 사건(事件)은 ㉮.인간은 영(靈)육(肉)간에 하나님이 공급(供給)하시는 물(은혜)없이는 생존(生存)할 수 없으며 ㉯.이 “물”은 인간의 지혜(智慧)와 노력(努力)에 의한 소득(所得)이 아니라 단지  하나님의 선물(膳物)(엡 2:8)이라는 사실을 밝혀준다.

 

(12월21일) (화) <모세의 죽음>

 

(Q)~하나님의 약속의 땅 가나안을 눈앞에 두고 모세는 죽음을 맞게 되었다. 이를 통해 배울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A)~⑴.가나안 땅을 이스라엘에게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창 12:7, 13:15, 17:8, 29:13, 35:12)은 아브라함 때로부터 지금까지 약 600년간 약속으로만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 약속(約束)이 바로 눈앞에서 성취(成就)되려는 순간(瞬間)에 와 있다.

 

⑵.<너는 그리로 건너가지 못하리라>

출애굽의 영웅(英雄)이자 이스라엘의 위대(偉大)한 영도자(領導者)인 모세는 누구보다도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資格)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모세는 그의 간절(懇切)한 간구(懇求)에도 불구하고 가나안 입성(入城)이 끝내 허락(許諾)되지 않았다(신 3:23-29). 그 일차적(一次的) 이유는 물론 므리바 물 사건(민 20:12) 때 모세가 하나님의 거룩함을 온전히 나타내지 않았기 때문이다(신 31:2, 32:51). 그러나 이 사건은 우리들에게 보다 깊은 교훈(敎訓)을 던져 준다. (1) 모세는 율법을 상징(象徵)하는 자였던 바, 이는 율법이 결코 인간을 하늘 가나안으로 인도(引導)해 들이지 못함을 보여 준다. (2) 천국(天國)은 결코 인간(人間)의 공로(功勞)로 말미암아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님을 보여 준다.” (신 34:4, 만나주석)

 

⑶.<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었다> 

하나님은 그가 결단코 요단강을 건너가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고, 모세는 당초에 하나님의 그 같은 판결(判決)을 번복(飜覆)해 주시도록 간절(懇切)하게 기도(祈禱)하였으나 이제 자기 기도(祈禱)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應答)에 그는 만족(滿足)하고 "그 문제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言及)하지 않았다" (신 3:26).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복되신 구주(救主)께서도 잔(盞)이 자기에게서 지나가도록 기도(祈禱)하셨으나 그렇게 되지 않아야 할 것인 고로 "아버지여! 당신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고 조용하게 따르셨다. 

 

⑷.모세는 왜 120세게 죽어야 하는가? 그는 노령(老齡)으로 인한 노쇠(老衰)도 느끼지 않았기에 여전하게 하나님의 사역(使役)에 적합(適合)하지 않았던가? 이스라엘은 그 어려운 시기에 그를 아쉬워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그의 지도(指導)와 하나님과의 교제(交際)는 가나안 정복(征服)의 일을 수행(遂行)하고 있는 저희에게는 여호수아의 담대(膽大)함과 함께 큰 복이었다. 또 그가 광야(廣野)의 모든 노고(勞苦)를 치르고도 가나안의 즐거움은 누리지 못하게 금지(禁止) 처분(處分)을 받았다는 사실은 모세 자신에게도 힘겨운 괴로움이었다. 그가 그 광야(廣野)의 날에 무거운 짐과 신고(辛苦)를 다 짊어지고서도 대업(大業)을 성취(成就)할 영예(榮譽)는 타인(他人)에게 사양(辭讓)해야 했을 때, 더욱이나 자기의 노역(勞役)에 참여할 자가 자기 아들이 아니라 그 종이었을 때는 참기 힘든 괴로움이었다. 우리는 혈육(血肉)으로 생각할 때는, 이런 일이 달갑지 못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 모세는 아주 온유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그렇게 행하고자 하시매 그는 즐겨 복종(服從)한다.

 

⑸.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언약적(言約的) 약속(約束)에 충실(忠實)하실 것을 모세의 교훈(敎訓)을 통해서 보여주신 것이며, 특히 하나님의 신실(信實)한 백성들은 이 땅에서의 죽음이 끝이 아니고 전부가 아니라 더 좋은 하늘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다는 소망(所望)으로 예수님의 재림(再臨)을 준비(準備)하라는 현대진리(現代眞理)의 가르침이다.

 

(12월22일) (수) <모세의 부활(復活)>

 

(Q)~(유다서 1:9)에서 그리스도이신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屍體)에 관하여, 마귀(魔鬼) 사단과 다투어 변론(辯論)하셨다. 모세는 죄인(罪人)이었다는 사실에 의심(疑心)에 여지가 없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어떻게 모세에 대하여 변론(辯論)하셨는가?

 

(A)~⑴.<모세의 시체(屍體)>

   유다의 이야기를 제외하면 모세를 매장(埋葬)한 일에 관한 성경의 유일한 언급은 (신 34:5~6)뿐인데, 그곳에는 주께서 당신의 충성된 종을 매장했기 때문에 그의 무덤이 사람에게 알려지지 않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유다는 여기에서 시체(屍體)가 그리스도와 사단 사이의 논쟁(論爭)의 대상이었음을 나타낸다. 모세가 엘리야와 함께 변화산 위에 나타났던 사실을 미루어 보아, 주가 마귀와의 다툼에서 승리(勝利)했고, 모세를 그의 무덤에서 부활(復活)시킴으로써 그를 그리스도의 부활(復活)시키는 능력(能力)에 대한 최초(最初)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결론(結論)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참조 신 34:6; 마 17:3 주석; 부조와 선지자, 478 479).

 

⑵.<거짓된 사단의 주장(主張)들>

   배도자(背道者)요, 반역자(叛逆者)인 사단은 하나님께서 목적하신 바를 좌절(挫折)시키기 위하여 모든 책략(策略)을 다 동원(動員)하여 일하고 있다. 그는 주장하기를 사람들이 범죄(犯罪)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자기의 지배(支配)를 받아야 하며, 힘이 센 천사들이 그의 지배(支配)를 받고 있는 그의 부하(部下)들을 빼앗아 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만약 하나님의 능력을 받으면 그는 그들을 이길 수 없다는 것과 그들의 몸과 마음에 그의 뜻을 잔인(殘忍)하게 펼 수가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 앞에서 그들을 참소(讒訴)하고 주장하기를 그들에게 하나님의 능력(能力)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리뷰 1893. 6. 20). (유 1:9, 화잇주석)

 

⑶.<포로(捕虜)를 해방(解放)시킬 그리스도의 권세(權勢)(사 49:24, 25)>

   그리스도께서 원수(怨讐)의 손에서 포로들을 빼내어 올 만한 무슨 권세를 가지셨는가? 이 권세를 갖는다는 것은 하늘나라를 지배(支配)하는 공의(公義)의 원칙(原則)을 충족(充足)시키는 희생(犧牲)을 이루는 것이다. 그가 잃어버린바 된 인류의 구주(救主)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교활(狡猾)한 원수(怨讐)를 정복(征服)하시기 위함이었으며, 그분이 의에 대한 확고(確固)한 충성(忠誠)을 보이신 것은 그를 구주(救主)로 받아들이는 모든 자를 구원(救援)하시기 위함이었다. 십자가(十字架) 위에서 그는 구속(救贖)의 값을 치르셨다. 이렇게 해서 그는 대 기만자(欺瞞者)의 손아귀에서 포로(捕虜)들을 빼앗아 올 권세(權勢)를 얻으신 것이다. 그 기만자(欺瞞者)는 하나님의 정부(政府)를 비난(非難)하는 지어낸 거짓말을 가지고 인류를 타락(墮落)하게 하였고, 이로 인해서 인류는 영원(永遠)한 하나님의 영광(榮光)스러운 나라의 충성(忠誠)스러운 신하(臣下)라 불리움을 받을 특권(特權)을 송두리째 잃게 하였다(사인즈 1903. 9. 30).

 

(12월23일) (목) <우리 모두의 부활(復活)>

 

(Q)~모세는 죽음을 경험(經驗)하였고 또한 죽은 자의 부활(復活)에 관한 성경(聖經)에 첫째인물이다. (고전 15:13~22)에는 주안에서 죽은 자들에 대한 부활(復活)의 소망(所望)에 약속(約束)이 있다. 이는 약속(約束)의 땅 접경(接境)에 있는 우리에게 확실(確實)한 보증(保證)이 되는가?

 

(A)~⑴.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시지 아니하셨으리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사신 것이 없었을 터이요. 여기에 같은 말씀이 중복(重複)된 목적은, 그리스도의 부활(復活)과 일반 신자들의 부활(復活)이 서로 서로 일체(一體)되는 원리(原理)라는 것을 역설(力說)하려는 데 있다.

 

⑵.우리의 구주(救主)는 모든 권세(權勢)를 손에 넣고 중보자(仲保者)로서 왕국(王國)을 소유(所有)하고 다스리시기 위하여 죽은 자로부터 일어나셨다.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살으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니라"(롬 14:9).

 

⑶.부활(復活)이 없다면, 죽은 자들은 죽은 상태(常態)로 남게 되고, 기독교(基督敎)에서 주장한 소망은 잔인(殘忍)한 기만(欺瞞)이 되며, 모든 죽은 의인(義人)은 무덤에서 잠자는 상태로 남아 있도록 운명 지워질 것이다. 어떤 그리스도인도 희망(希望)을 짓밟는 그런 결론(結論)을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바울의 추론을 통해 기독교 교리에서 부활의 중요한 위치가 다시 강조된다(참조 고전 15:16절 주석).

 

⑷.<최종적(最終的) 부활(復活)의 견본(見本) (롬 8:11)>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모든 자들의 최종적 부활의 견본이었다. 부활하신 구주의 몸과 그분의 자태와 그의 말의 억양은 모두 다 그를 따르는 자들에게 낯익은 것들이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들도 그런 낯익은 모습으로 다시 부활할 것이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알아보았던 것같이 우리도 우리의 친구들을 알아볼 것이다. 비록 그들이 이 세상의 생활 속에서 병들고, 불구가 되고, 모습이 보기 흉하게 일그러졌을지라도 몸은 영광스럽게 부활할 것이며, 그 중에서도 그들의 개인적 신원은 완전하게 보존될 것이다. 예수님의 얼굴에서 비쳐 나오는 빛으로 광채가 나는 얼굴을 한 우리의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알아볼 것이다(3예언 219).” (고전 15:20, 화잇주석)

 

⑸.모세 당시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으신 하나님께서 죽었던 모세를 부활시켰던 모세의 경험이 우리의 경험이 당연히 될 것이며 성경 여러 군데에서 기록하고 언급하신 말씀들이 죽음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부활에 대한 소망과 확신이며 보증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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