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과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질문, 대답, 설명)10/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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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1-10-15 16:48 조회5,717회 댓글0건본문
제4과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10월 23일 안식일 / 일몰: 오후 5시 45분 )
연구 범위: 신 6:4~5, 신 10:12, 엡 2:1~10, 계 14:6, 7, 신 4:37, 신 11:1, 막 12:28~30
기억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 6:5).
유대인 기도문 중 가장 유명한 ‘셰마’ 기도문은 신명기 6장에서 온 것이다. ‘셰마’(Shema)는 ‘듣다’, ‘순종하다’라는 뜻을 가진 샤마(shama‘)라는 단어에서 파생된 것으로, 신명기뿐 아니라 구약 전체에 걸쳐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셰마 기도문의 첫 줄은 이렇게 시작된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신 6:4). 유대인들은 이 기도문을 가지고 기도할 때, 하나님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방해받지 않기 위해 눈을 가린다. 이 기도문의 첫 번째 문장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일신론적 본질을 강조하여 나타내며 오직 그분께만 충성할 것을 나타낸다. 이 문장은 “여호와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다”라고도 읽을 수 있다.
이 문장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직전에 했던 첫 번째 설교의 한 부분이다. 이 첫 문장에 이어서 등장하는 내용은 과거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도 매우 중요한 진리를 포함하고 있다.
*학습 목표
- 깨닫기
우리의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참된 행복의 비결임을 깨닫는다.
- 느끼기
가장 귀한 것을 내어 주시며 우리를 먼저 사랑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한다.
- 행하기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뜻에 순종하는 것을 삶의 우선순위에 두며 살아간다.
TMI 위로
2.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신 6:4,5)
※ 그분을 나의 모든 삶에 첫째 자리에 두고 그분 명령을 준행하는 것이다.
3.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할 뿐 아니라 경외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엡 2:1~10)
※ 경외할 때 진정한 사랑을 실천하게 된다.
4.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 있어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하는 사실은 무엇입니까?(요일 4:19)
※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사실이다.
5. 하나님께서 모든 믿는 자들에게 기대하시는 것은 무엇일까요?(신 10:12, 13)
※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6. 모든 계명 중에 첫째 되는 계명에 대해 예수님께서 무엇이라고 설명하셨습니까?(막 12:28~30)
※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결론
모세는 약속의 땅을 눈앞에 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마음과 힘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호소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사랑이 새로운 땅에서 그들의 힘이 될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우리들도 이와 같은 사랑을 바탕으로 한 순종의 삶을 살기를 기대하십니다.
10월 17일(일)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의 지나온 과거에 관해 이야기한 후, 그들이 약속된 땅을 차지하고 그 땅에서 번성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관한 가르침을 주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성취하시기 위하여 그들에게 은혜로 허락하신 언약 가운데, 그들의 편에서 지켜야 할 언약의 의무에 관하여 말씀해주신 이와 같은 내용이 신명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신명기 6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이는 곧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가르치라 명하신 바 명령과 규례와 법도라 너희가 건너가서 얻을 땅에서 행할 것이니
곧 너와 네 아들과 네 손자로 평생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내가 너희에게 명한 그 모든 규례와 명령을 지키게 하기 위한 것이며 또 네 날을 장구케 하기 위한 것이라”(신 6:1, 2).
신명기 6:4, 5을 읽어 보라. 하나님께서 5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떤 명령을 주시는가? 그 명령이 어떤 의미인가?
[신6:4,5]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5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답: 마음, 뜻, 힘을 다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라.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율법과 경고들과 규칙들에 관하여 언급하는 중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말하는 것이 흥미롭지 않은가? 또한, 이 구절은 그저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사랑하라고 말함으로써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이 어떤 사랑을 의미하는지 말하고 있다.
마음과 성품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분을 향한 우리의 사랑이 사람이나 사물을 향한 그 어떠한 사랑보다 최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야말로 우리 존재와 모든 것의 근원이시며 기초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이 다른 모든 것들을 향한 우리의 사랑을 올바르게 볼 수 있게 해야 한다.
히브리어로 보면 ‘너의’ 하나님, ‘너의’ 마음, ‘너의’ 힘에 나타난 ‘너의’라는 단어는 단수로 쓰여 있다.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 전체에게 말씀하고 계셨지만, 전체의 어떠함은 각 사람의 어떠함에 달려 있다. 비록 우리가 어떤 커다란 전체의 일부일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의 개인적인 충성을 원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충성심은 그분을 향한 사랑과 그분께서 어떤 분이신지, 그리고, 그분께서 우리를 위해 이루어 주신 것을 기억하는 것에 기초해야 한다.
<묵상>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에 있어 개인적인 선택과 충성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답: 엄밀히 따져 생각하면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철저히 개인적이다. 하나님과 그분의 자녀인 우리와의 관계도 개인적이다. 개인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은 관념일 뿐이다.
<부가설명>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어떤 형태로든지 관계를 형성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사회적 동물이라는 설명이 붙었다. 이 관계는 윤리적, 도덕적이어야 한다. 크게 나누면 이해관계와 사랑의 관계가 아닐까 생각한다. 사랑의 관계는 남녀 사이의 애정 관계, 붕우 사이의 우애가 있지만, 부모와 자녀 사이는 혈연관계로 피로 맺은 사랑이 있다. 이 사랑이 사람 사이의 사랑의 기초요 근본이다. 부모는 자녀가 잘못해도 불쌍히 여기는 마음과 눈길로 대한다. 혈연 아닌 사람들이 손가락 질을 해도 부모는 그런 자식을 불쌍히 여긴다. 이것은 피로 연결된 생명을 나누었기 때문이다. 여호와 하나님과 그분의 피조물이며 그분의 형상대로 창조한 사람과의 관계도 이 혈연의 생명 관계이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은 아담 안에서 사망이 되어버린 사람을 불쌍히 여기시며 사랑하신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의 교회를 자기 피로 값을 주고 사셨다(행20:28).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피는 하나님의 피이다. 이렇게 하나님과 그의 백성은 피로 연결된 생명 관계요, 그것의 본질이 사랑이다. 자녀가 부모를 알아보기도 전에 부모가 자녀에게 다함없는 사랑을 베푼다. 그 사랑을 듬뿍 받은 자녀는 그 반응으로 부모를 사랑하게 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도 그와 같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요일4:19).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교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마음과 성품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명령하시며 개인적인 결심을 촉구하셨다.
10월 18일(월)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이 가진 모든 것을 가지고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말했다. 그것은 명령이었다. 그런데 모세가 그 명령을 말하기 전 조금 앞 구절에서는 또 다른 명령을 주었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라”(신 6:2).
신명기 10:12을 읽어 보라. 이 성경절은 사랑과 경외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우리는 그 말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신10:12]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의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답: 경외는 존경하여 조심스럽게 대하는 것을 나타낸다. 그래서 하나님을 존경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임을 가르친다.
한 성경절에서는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말하고, 다른 성경절에서는 그분을 사랑하라고 말하며, 이 성경절에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동시에 사랑하라고 말한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경외’라는 단어의 의미로 볼 때 이 명령은 뭔가 모순되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우리에게 있어 매우 자연스러운 반응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우리의 죄 됨과 연약함과 그분께 대한 전적인 의존성에 대비되는 그분의 권위와 능력과 정의와 의로우심에 감탄하며 존경을 표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법을 어김으로 타락한 존재들로서 정죄받고 영원한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자들이었으나 하나님의 은혜로 살게 된 자들이다.
에베소서 2:1~10을 읽어 보라. 이 성경절이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동시에 사랑할 수 있는지에 대하여 이해하는 것을 어떻게 도와주는가?
[엡2:1~10]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10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답: 진노의 자식을 은혜로 사죄하시고 하나님 앞에서 자녀 삼아 살게 하셨으니 존경하며 높일 수밖에 없고 영원한 생명을 회복하여 영생하게 하셨으니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진노의 자녀”였음에도 불구하고(우리가 그분을 경외해야 하는 이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돌아가심으로 우리는 그분 안에서 과거의 죄와 정죄함으로부터의 자유를 경험하는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되었다(우리가 그분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
이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사실인 것 같이, 똑같은 원리가 고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적용되었다. 그들은 애굽에서 노예로서 억압 가운데 살고 있었지만,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그들에게 위대한 구원을 가져다준 것이었다.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너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었나니”(신 5:15).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동시에 경외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만약 그들이 그렇게 해야 했다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에 관한 위대한 진리를 알고 있는 우리는 얼마나 더 그렇게 해야겠는가?
<묵상>
요한계시록 14:6, 7을 읽어 보십시오. 세상을 향한 마지막 기별 가운데 “하나님을 두려워하라”라는 명령이 하나님의 첫 번째 명령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답: 두려워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서 공경하는 정신과 태도를 뜻한다. 그것이 경외이다.
<부가설명> 누구를 경외한다는 것은 그분을 대하는 것이 그분의 가치에 합당하게 대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부모를 대하는 태도가 길가다 만난 노인을 대하듯하면 부모를 무시하는 것이다. 경외의 첫걸음은 상대를 무시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접하지 않으면 경외의 첫걸음도 떼지 않은 상태이다. 우리는 때때로 하나님이 안 계시는 것처럼 말하고 행동하고 감정을 쏟아 낸다. 이것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이다. 예수님께 돌질하는 것이다. 하루하루 삶을 돌아보면 하나님을 무시하고 성령님께 근심을 끼치고 예수님을 욕되게 한 것이 한두 건(件)이 아니다. 우리는 정말 삼위일명 여호와 하나님 경외하는 것을 배우고 훈련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마음과 뜻(성품=네페쉬)과 힘을 다하여 사랑하게 될 것이다. 경외하지 않으면 사랑하지 못한다. 어쩌면 동정과 연민으로 대할 수 있을는지는 모륻나. 성경의 하나님 전능하신 여호와께서 우리의 동정과 연민의 대상인가? 그런 사랑이라면 바로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기 위하여 하나님 경외하는 것을 날마다 확인하고 연습해야 할 것 같다.
<교훈>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우리를 죄에서부터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그에 합당한 경배와 존경을 돌려 드리는 것이다.
10월 19일(화)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심
신명기에 기록된 모든 규례와 훈계들 가운데서 그들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마음과 성품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들이 그렇게 해야 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신명기 4:37, 7:7, 8, 13, 10:15, 23:5, 33:3을 읽어 보라. 당신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무엇이라 말하고 있는가?
[신4:37] 여호와께서 네 조상들을 사랑하신 고로 그 후손인 너를 택하시고 큰 권능으로 친히 인도하여 애굽에서 나오게 하시며,
[신7:7,8,13]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8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으로 말미암아, 또는 너희의 조상들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으로 말미암아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되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속량하셨나니,/ 13 곧 너를 사랑하시고 복을 주사 너를 번성하게 하시되 네게 주리라고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서 네 소생에게 은혜를 베푸시며 네 토지 소산과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풍성하게 하시고 네 소와 양을 번식하게 하시리니,
[신10:15] 여호와께서 오직 네 조상들을 기뻐하시고 그들을 사랑하사 그들의 후손인 너희를 만민 중에서 택하셨음이 오늘과 같으니라.
[신23: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사랑하시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발람의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저주를 변하여 복이 되게 하셨나니,
[신33:3] 여호와께서 백성을 사랑하시나니 모든 성도가 그의 수중에 있으며 주의 발 아래에 앉아서 주의 말씀을 받는도다.
답: 이상의 성경 말씀의 내용은 이스라엘 백성이 잘하지 못해도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선하고 형통하게 하신 사실들을 열거한 것이다.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렇게 하셨다고 강조했다.
신명기에서 모세는 이스라엘과 그들의 조상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고 또 말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말로만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행동으로 사랑을 드러내 보이셨다. 그들의 부족함과 실패와 죄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으셨다. 그리고 그 사랑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어떻게 대하셨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요일 4:19).
우리가 왜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해하는 데 이 성경절은 어떤 도움을 주는가?
답: 사람들에게는 사랑이 없다. 다만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때 그 사랑으로 반사하는 사랑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 각자가 태어나기 훨씬 전에 이미 시작된 것이다. 구원의 계획은 “창세 전에”(엡 1:4) 계획되었다.
엘렌 G. 화잇은 이렇게 기록한다. “구속 경륜은 아담이 타락한 후에 세워진 사후 고안(事後考案)이 아니었다. 이 경륜은 ‘영세 전부터 감취었다가 … 알게 하신 그 비밀’(롬 16:25)의 계시였다. 이것은 영세 전부터 하나님의 보좌의 기초가 되어 온 원칙을 공개한 것이었다”(시대의 소망, 22).
하나님께서 사랑의 하나님이심이 우리 모두에게 얼마나 좋은 소식인가! 하나님께서는 그 큰 사랑으로 우리를 위해 십자가로 향하셨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8).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분명한 계시를 가지고 있다.
<묵상>
하나님이 사랑이 아닌 증오 또는 무관심한 하나님이셨다면 어땠을까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분명한 계시가 주어졌음에 기뻐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답: 하나님이 사랑이 아니시라면 이 지구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은 이미 소멸하고 없어졌을 것이다.
<부가설명> 성경이 계시한 하나님의 사랑의 본질은 죽은 자에게 생명을 주셔서 영생하게 하시는 것이다. 아담 후손으로 이 세상 모든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잃어버려서 육체의 생명만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눈에는 죽은 자들이다. 그들은 원래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는 영생할 수 있는 존재들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영원히 존재할 수 없는 사망의 존재들이 되었다. 그래서 생명이신 여호와 하나님은 그들을 살려서 영생하게 하시려는 하나님 생명의 본질을 드러내셨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신 그 결과는 영생을 얻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의 본질이 생명을 주어 영생하게 하려는 것임을 깨달을 수 있다. 이 사랑은 생명 자체이신 분 외에는 나타낼 수 없는 본성이다. 예수를 믿는 우리는 예수님께 이 영생의 생명을 받았다. 그래서 우리도 하나님처럼 사랑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이것을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이라고 기록하였다. 그러므로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사망에 있는 자이고 형제를 사랑하는 것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 사실을 증명하게 된다(요일3:14). 우리는 참으로 형제 사랑하는 것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는가(요일4:20)?
<교훈>
하나님께서는 다른 무엇보다 먼저 우리가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기를 원하시는데 우리가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그분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10월 20일(수)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키리라”
이스라엘은 한 국가로서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적인 선택에 의해서만 가능한 일이었다. 자유의지를 부여받은 개별적인 인간으로서, 각각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기로 선택하고 순종함으로 그 사랑을 드러내 보여야 했다.
아래 성경절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된 주제는 무엇인가?
신 5:10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신 7:9 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그를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그의 언약을 이행하시며 인애를 베푸시되,
신 10:12, 13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의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13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신 11:1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여 그가 주신 책무와 법도와 규례와 명령을 항상 지키라.
신 19:9 또 너희가 오늘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이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항상 그의 길로 행할 때에는 이 셋 외에 세 성읍을 더하여,
답: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명령을 지킬 때에 복을 더하실 것이 공통 주제다.
성경 말씀이 어떻게 이보다 더 분명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한다고 말씀하실 뿐 아니라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과, 지금도 행하고 계신 일을 통해 그 사랑을 나타내 보여주시는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들 또한 그들의 행동으로 하나님을 향한 그들의 사랑을 나타내 보여야 한다. 그리고 위의 성경절들에서 보는 것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분께 대한 순종과 떼려야 뗄 수 없이 연결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요한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요일 5:3)라고 이야기하거나, 예수님께서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 14:15)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 구절들은 이런 기본적인 가르침을 표현한 것뿐이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언제나 그분에 대한 순종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이것은 지금껏 변치 않는 진리였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께 대한 순종은 하나님의 율법, 곧 안식일 계명을 포함하는 십계명에 대한 순종을 말하는 것이다. 네 번째 계명을 지키는 것은 다른 계명들을 지키는 것과 마찬가지로 결코 율법주의적인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하지 않을 경우, 그 어떤 계명에 대한 순종도 율법주의가 될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면 우리는 그분께 순종하고 싶어진다.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반복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께 순종하라고 이야기한 것은, 그들이 애굽에서 구원함을 받은 이후였다. 다시 말해 그들의 사랑과 순종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허락하신 구원에 대한 반응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에 의해 구원함을 받았다. 이제 그들이 그분의 계명에 순종함으로 하나님께 반응할 차례였다. 이 사실은 오늘날에도 변함이 없다.
<묵상>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순종의 올바른 동기가 되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답: 사랑으로 말미암는 순종이 아닌 것은 자기의 행위로 하나님을 이롭게 하려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불쌍히 보는 것이 된다.
<부가설명>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계명을 지키는 것과 상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요14:15절이나 요일5:3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사랑하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하나님의 계명을 폐했다는 것은 사랑을 폐했다는 것과 같은 뜻이다. 사랑에는 방법이 있다. 그냥 사랑한다는 말만으로 사랑이 되지 않는다. 사랑은 행동으로 드러나게 되어 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지키라고 말씀하신 계명을 십자가에서 완성하고 폐했다고 주장하면서 사랑만 하면 된다는 논리는 전혀 성립될 수 없는 것이다. 십자가 후에도 요일 5:3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고 계시하였다.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표시가 되는 것이다. 누가복음 7장에 기록된 죄인 여자는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씻기고 머리털로 닦았다. 그것을 보던 시몬은 그 여자가 죄인인데 자기의 발을 만져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예수님이 과연 하나님의 아들일까 의심했다. 그때 예수님은 500 데나리오 빚진 자와 50 데나리온 빚진 자 둘다 탕감해줬을 때 누가 탕감해준 자를 더 사랑하겠느냐고 물으시고 시몬이 많이 탕감받은 자라고 대답하자, 이 여자는 많은 죄를 사함 받았기 때문에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시몬보다 더 커서 이렇게 사랑을 행동으로 실천했다고 지적하셨다. 그리고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저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저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눅7:47)라고 하셨다. 사랑은 행동으로 나타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삶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교훈>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우리를 위해 베풀어 주신 사랑과 구원에 대한 반응으로 우리가 그분의 계명에 순종하기를 기대하신다.
10월 21일(목) 첫째 되는 계명
일부 기독교인 중에는 여러 이유를 들어 구약과 신약을 분리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신약의 참된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예수님에 대한 계시와 그분의 삶과 죽음과 부활과 대제사장 사역에 관한 신학적 설명을 보여 주는 신약은, 구약에 나타난 예언들과 표상들의 성취를 보여 준다. 많은 경우 구약은 신약을 위한 배경과 맥락과 기초를 제공한다. 구약과 신약 모두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사랑을 드러내 보여 준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그리고 신약이 계속해서 구약을 인용하는 이유이다.
마가복음 12:28~30을 읽어 보라. “모든 계명 중에 첫째” 되는 계명에 대해 어떤 질문을 하였는가? 예수님께서 어떻게 대답하셨으며 어디서 그 답을 가져오셨는가?
[막12:28~30] 서기관 중 한 사람이 그들이 변론하는 것을 듣고 예수께서 잘 대답하신 줄을 알고 나아와 묻되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이까 29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30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답: 신명기 6:4,5절에서 가져오셨다.
평생을 율법을 공부하며 그것이 어떻게 적용되어야 하는지를 연구했을 서기관이 이런 질문을 했다는 것이 참으로 흥미롭다. 그들이 얼마나 많은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믿었든지와 상관없이(훗날 유대교 전통에서는 613개의 율법이 있다고 가르쳤다), 그 모든 것을 한 가지로 요약하려 했다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서기관의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대답하셨는가? 예수님께서는 곧장 신명기 6장으로 가셔서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신 6:4)라는 말씀에서부터 시작하여 온 마음과 성품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다음 절까지 인용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여호와를 그들의 유일한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말씀을 가리키신 후에, 그 진리를 바탕으로 그들이 하나님을 최고로 사랑하라는 부르심을 받았다고 말씀하셨다.
이 명령보다 더 ‘현대 진리’가 되는 것이 어디 있겠는가? 마지막 때가 되어 최후의 사건들이 펼쳐지며 모든 사람이 어느 한쪽을 선택하라는 극적인 요청을 받게 될 때, 하나님의 계명(계 14:12)은 결정적인 역할을 감당하게 될 것이다.
박해를 마주하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우리가 하게 될 선택은 결국, 우리가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따라 판가름 나게 될 것이다. 그것이 바로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인데, 우리 스스로가 직접 하나님의 선하심과 사랑과 은혜를 경험할 때만 온 마음과 성품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묵상>
마지막 때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서 우리의 선택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소는 무엇일까요?
답: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것이다(계14:12).
<부가설명> 예수님은 어느 계명이 크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신명기 6:4,5의 말씀을 인용하셨다.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라고 하셨다. 또 성경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고 기록하였다(요일5:3).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은 십계명의 1~4계명까지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둘 수 없게 된다. 또 우상을 만들거나 절할 수 없게 되고 하나님의 이름을 존귀하고 거룩하게 여기며 제7일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게 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생명이 그 사람 속에서 역사(役事)하기 때문에 그 생명의 본성인 사랑이 감정과 태도로 드러나게 된다. 이것이 짐이 되지 않는 것은 생명력이 그렇게 활동하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사람이 음식을 먹는 것이 짐이 아니라 즐거움이다. 그와 같이 예수님의 생명, 곧 영생하는 생명으로 사는 사람은 그 생명의 성질이 사랑이기 때문에 사랑인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즐거움이 된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계명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결국 자기 마음대로 생각한 것을 주장하기 때문에 자기가 하나님이 되는 것이다. 참으로 두려운 일이다.
<교훈>
모든 계명 가운데 가장 첫째 되는 계명은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인데, 이 사랑이 마지막 때 우리가 마주하게 될 모든 선택의 기준이 될 것이다.
10월 22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영원토록 구속받은 자들의 연구와 찬양의 대상이 될 것이다. 그들은 영광을 입으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볼 것이다. 광대한 우주의 무수한 세계들을 창조하시고 유지하시는 그분, 그룹과 영광의 스랍들이 즐겨 경배하는 사랑받는 하나님의 아들, 하늘의 왕께서 타락한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자신을 낮추시고 죄의 치욕과 슬픔을 지시고 아버지의 얼굴에서 숨겨진 채 마침내 잃어버린 세상의 죄 때문에 갈바리의 십자가 위에서 당신의 심장이 터지고 생명이 떠나간 사실은 결코 잊히지 않을 것이다. 온 우주의 창조자시며 모든 운명의 결정자께서 인류를 위한 사랑 때문에 당신의 영광을 버리시고 스스로를 낮추셨다는 것은 영원히 우주의 경이와 존경을 자아낼 것이다. 구원을 받은 모든 민족들이 그들의 구주를 쳐다보고 그분의 얼굴에서 아버지 하나님의 영원한 영광이 빛나고 있는 것을 볼 때, 또한 그들이 영원부터 영원까지 존속하는 그분의 보좌를 보고, 그분의 나라가 끝이 없을 것을 알게 될 때 그들은 환희에 사로잡혀 노래를 부를 것이다. ‘우리를 그 귀하신 보혈로 하나님께 구속하시고자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이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각 시대의 대쟁투, 651, 652).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위에 인용된 글을 읽어 보라.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우리의 가장 큰 사랑이 되어야 함을 이해하도록 무엇이라 이야기하고 있는가? “광대한 우주의 무수한 세계들을 창조하시고 유지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사실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 보라. 이 진리가 우리가 하나님과 맺는 관계의 바탕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 여호와이신 말씀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어 예수라는 이름으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셔서 사망을 처리하시고 부활하셔서 영생을 우리에게 주신 사실은 어떤 말과 감정으로도 표현할 수 없다. 다만 감사와 찬양으로 우리의 모든 사랑을 바쳐야 할 것이다.
2. 하나님을 사랑하는 동시에 경외하는 것에 대한 개념에 관해 더 묵상해 보라.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할 수 있으며 또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 경외는 그분을 그분답게 대우하는 것이다. 이것이 없이는 그분께 걸맞는 사랑을 나타낼 수 없다.
3. 삶의 모든 일이 잘 풀릴 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삶에 온갖 어려움이 닥쳐오는 순간에는 어떠한가? 그러한 위기의 때, 하나님을 끝까지 사랑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 그것이 피로 맺은 생명 관계의 본질이다. 내가 어려워도 부모님을 저버릴 수 없다.
4. 믿지 않는 사람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 관해 설명할 때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에는 무엇이 있는가? 인간으로서 우리가 직접 보지 못한 누군가를 어떻게 사랑할 수 있는가? 우리가 하나님을 대면하여 보지 못한 것이 그분을 사랑하는 데 문제가 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 보지 못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그 사람의 표적이 있기 때문이다. 부모를 보지 못해도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자기 존재가 부모님의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처럼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의 창조주로서 그가 계시는 것을 온 천지에 가득 채워두셔서 사랑할 수밖에 없다(롬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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