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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과 안식일의 쉼(질문, 대답, 설명) 09/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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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1-08-27 14:47 조회5,98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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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과 안식일의 쉼

(9월 4일 안식일 / 일몰: 오후 6시 57분)

 

연구 범위: 창 1:26, 27, 창 9:6, 벧후 2:19, 롬 6:1~7, 출 19:6, 요 5:7~16.

기억절: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요 일곱째 날은 쉴 안식일이니 성회의 날이라 너희는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거주하는 각처에서 지킬 여호와의 안식일이니라”(레 23:3).

 

 우리는 일곱째 날 안식일을 지키는 것을 반대하는 여러 가지 주장을 듣곤 한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을 일요일로 바꾸셨다거나, 예수님 또는 바울이 안식일을 폐지했다거나, 사도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기 위하여 일곱째 날 안식일을 일요일로 대체했다는 주장들이 바로 그것이다. 최근에는 좀 더 그럴싸한 모습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포장하는 경우도 보게 된다. 예를 들면, 예수님 자체가 우리를 위한 안식일의 쉼이 되시기 때문에 어떤 특정한 날을 지정하여 거룩하게 지킬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일곱째 날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스스로 구원을 이루려고 하는 율법주의적 신앙이라는 주장은 항상 존재할 것이다. 

 반면에 어떤 기독교인들은 쉼이라는 개념과 그 쉼을 위해 주어진 날에 대해 더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비록 그들이 쉼을 위해 구별된 날이 일요일이다 혹은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쉼에 대한 성경적 개념과 그것이 왜 중요한 것인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이번 주 우리는 안식일 계명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쉼에 대하여 더 자세히 공부하며 그 중요성에 대하여 생각해 볼 것이다.              

 

*학습 목표

-  깨닫기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영원한 표징이 되는 안식일을 통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더 잘 알 수 있게 됨을 깨닫는다. 

- 느끼기

 안식일을 통해 우리와 더 깊은 관계 속으로 들어가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한다. 

- 행하기

 하나님의 뜻에 따라 안식일을 거룩하고 즐겁게 지키기 위해 믿음의 가족들과 함께 계획한다.

 

2. 인간이 다른 피조물들과 가진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무엇입니까?(창 1:26, 27)

※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것이다. 

3. 창조 외에 안식일을 통해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중요한 사실은 무엇입니까?(신 5:15)

※ 구원이다. 

4. 안식일의 보편성에 대하여 성경은 무엇이라 말하고 있습니까?(출 20:10, 신 5:14)

※ 종, 나그네, 가축까지 다 쉬라고 하신 말씀에서 알 수 있다. 

5. 안식일을 어떻게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일까요?(사 58:13, 14)

※ 즐겁고 존귀한 날로 여기고 선한 일을 하는 날로 지키는 것이다.

6.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영원한 표징이 되는 안식일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은 무엇일까요?(출 31:12~17)

※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며 엿새 동안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진리를 가르쳐준다. 

 

결론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안식일의 시간 속으로 초청하셔서 우리와 함께 교제하시며 우리 삶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십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안식일의 행복을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나누며 세상에 참된 쉼을 소개하는 자들로 살아가기를 기대하십니다.

 

 

8월 29일(일) 안식일과 창조

 

 십계명의 모든 계명 중에 “기억하라”라는 동사로 시작되는 계명은 넷째 계명뿐이다. “도둑질하지 말라” 또는 “간음하지 말라”라는 계명에는 “기억하라”라는 표현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오직 넷째 계명만이 “안식일을 기억하라”라는 명령으로 시작한다. 

 ‘기억하라’는 말은 기억해야 하는 어떤 일이 과거에 일어났음을 확인하는 것이다. 무언가를 기억한다고 할 때, 우리는 과거의 어떤 일과 연결을 짓게 되는데,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라는 명령은 우리를 창조 주간으로 연결해 준다. 

 

 창 1:26, 27과 창 9:6을 읽어 보라. 이 성경절들은 인간이 얼마나 특별한 존재이며 우리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다른 피조물들과 근본적으로 어떻게 다른지에 대하여 무엇을 가르쳐 주는가? 이러한 차이점을 이해하는 것이 왜 중요한가? 

[창1:26,27]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9:6]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

 

답: 사람은 하나님께서 자기 형상대로 창조하셨다. 이 지구에 있는 다른 어떤 피조물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것은 없다. 이 차이점을 이해하는 것은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를 깨닫는데 필수적이다. 

 

 창조에 대하여 기억할 때,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음을 기억하게 되는데, 이는 창조 이야기에서 묘사된 다른 어떤 것에서도 언급되지 않은 특징이다.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얼마나 유사한 DNA를 가졌는지와 상관없이, 우리는 지구에 존재하는 다른 모든 생명체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는 근거 없는 가르침과 달리, 우리는 단순히 원숭이보다 좀 더 나은 존재들이거나 원시 시대의 영장류가 진화하여 생겨난 존재들이 아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인간으로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창조하신 모든 것들 중에 가장 특별한 존재이다.

 

 창조의 이야기는 우리가 다른 창조 세계와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하여 어떻게 설명해 주고 있는가? 창 2:15, 19을 읽어 보라. 

[창2:15,19]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19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답: 다른 생명체들에게 이름을 지어주는 권리가 사람들에게 있다. 

 

 하나님께서 인간뿐만 아니라 우리가 사는 세상 또한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은 우리가 그 세계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책임을 기억하게 해 준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라”고 명령하셨다. 

 다스린다는 것은 그것을 마음대로 다룬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위임받은 존재로서, 하나님께서 하셨을 법한 방법으로 자연 세계와 상호 작용을 하며 살아야 한다. 

 물론 죄로 인하여 모든 것이 망가졌지만, 이 지구는 여전히 하나님이 창조하신 곳이며, 그 누구도 우리에게 그것을 함부로 다룰 권리를 주지 않았다. 특별히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해치거나 힘들게 하도록 허락되지 않았음을 기억해야 한다.

 

<묵상>

하나님을 창조주로 기억하고 경배하는 것 외에,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우리로 하여금 환경을 돌보는 선한 청지기가 되도록 하는 데 어떠한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답: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는 것은 세상의 모든 것들이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을 확신하고 온전히 돌보아야 한다는 책임도 일깨워준다.

 

<부가설명> 창조주께서는 자기 형상대로 지은 사람에게 직접 ‘사람’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셨다(창5:2). 그러나 다른 생물들에게는 사람에게 그 이름을 짓도록 하셨다. 이름을 짓는 것은 그것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이름을 모르면 그것을 모르는 것이다. 아담이 다른 생물들에게 이름을 지어 주도록 하신 것은 모든 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신 지구 통치권을 위임하시는 사건이다. 그처럼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사람과 다른 생물들의 위치와 신분이 다르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은 진화론을 만들어서 다른 생물들과 사람이 신분이 똑같다는 주장을 만들어서 창조주의 뜻을 완전히 왜곡하였다. 하기는 사람이 범죄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영원한 생명을 잃고 사망의 존재가 되었을 때 동물과 별로 다를 것이 없는 상태가 되긴 했다. 그것은 자기가 원재 존귀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생긴 결과이다.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시49:20). 사망의 존재가 되어버린 후의 사람은 스스로 짐승과 같다는 것을 인정해버린 것이다. 존귀한 신분을 버렸으니 스스로 짐승과 같다고 취급하게 된 것이다. 참 불쌍한 존재들이다. 

 

<교훈>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라는 명령은 우리를 창조 주간으로 연결해 줄 뿐 아니라 우리가 창조된 세계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책임을 기억하게 해 준다.

 

 

8월 30일(월) 자유를 기념함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안식일은 창조를 기념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십계명을 두 번째 듣게 될 때, 모세는 이스라엘의 40년간의 광야 생활을 돌아보고 있었다. 이번에는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켜야 하는 이유를 애굽에서의 노예 생활로부터 자유롭게 된 것과 연관 지어 설명하고 있다(신 5:12~15).

 비록 오늘날 우리가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우리 역시 그에 못지않은 또 다른 것의 노예가 될 수 있다.

 

 오늘날 우리는 다른 어떤 것의 노예인가? 창 4:7, 히 12:1, 벧후 2:19을 읽어 보라. 

[창4: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히12: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벧후2:19] 그들에게 자유를 준다 하여도 자신들은 멸망의 종들이니 누구든지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됨이라.

 

답: 죄와 멸망의 종이다. 

 

 안식일은 우리를 구속하는 모든 것들로부터의 자유를 기념하는 날이다. 매 안식일 우리는 우리 자신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죄로부터 자유롭게 된다. 이것은 믿음으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우리가 이러한 자유를 얻을 만한 어떤 일을 했기 때문이 결코 아니다. 이스라엘의 장자들은 출애굽 전날 밤 문설주에 어린양의 피를 바름으로써 구원함을 받았다(출 12). 우리 역시 어린양의 피로써 구원함을 받으며, 그리스도 예수로 인해 우리의 것이 된 자유 가운데 살게 된다. 

 

 롬 6:1~7을 읽어 보라. 바울은 여기서 안식일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것과 연결될 수 있는 무엇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가? 

[롬6:1~7]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2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침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답: 출애굽을 기념하는 안식일과 같이 죄의 종에서 새 생명을 얻어 새 사람이 된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을 기억하게 한다.

 

 신 5:15의 말씀은 분명히 이야기한다.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네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거기서 너를 인도하여 내었나니.”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큰 능력으로 일하셨기 때문에 그들이 구원받을 수 있었음을 다시 한번 기억하게 되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큰 능력으로 일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죄에서 구원받을 수 있었음을 기억한다.

 안식일 계명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강한 팔로 우리를 위해 이루어 주신 구원 안에서 쉼을 얻으라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구원하려는 모든 행위로부터 자유롭게 된다. 우리를 창조하신 바로 그 하나님께서 우리를 재창조하시고, 우리가 허락하기만 하면 지금 당장 우리를 죄로부터 자유롭게 하실 수 있으시기 때문이다.

 

<묵상>

죄의 종 되었던 우리에게 자유를 주기 위해 예수님께서 지신 십자가의 은혜를 깊이 묵상해 보십시오. 어떤 삶으로 그 은혜에 보답해야 할까요? 

 

답: 예수께서 드러내신 생명과 썩지 않는 생활로 충성하게 될 것이다.

 

<부가설명> 제7일 안식일은 일주일 중의 한날이지만 그 의미는 굉장하다. 단순한 일주일 중의 하루가 아니다. 이날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구별하신 날이다. 창조하시는 엿새 동안은 ‘좋았더라’라고 하셨으나, 일곱째 날은 ‘거룩하게 하시고 복을 주시고 안식하셨다’라고 기록하였다. 그냥 좋았던 날과 거룩하게 하시고 복주신 날이 동일할 수 있겠는가? 엿새는 사람이 살아가면서 좋은 일을 추구하고 자기에게 주어진 생활 임무를 선하게 수행하면 된다. 좋다는 말 ‘토브’는 선하다, 좋다, 등의 뜻이다. 그러나 거룩하다는 것은 오늘날 사상으로는 종교적이며 신과 관련된 표현이다. 그렇다 일곱째 날은 종교적이며 신앙적인 날이다. 사람이 엿새 동안의 자기 일을 멈추고 창조주와 함께 능력을 더욱 새롭게 하는 친교와 기쁨의 특별한 날이다. 그래서 이날을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할 때 “네가 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기업으로 기르리라”(사58:13,14)라는 약속이 성취될 것이다. 얼마나 대단한 날인가? 이날을 거룩하게 지킬 때만 창조주가 여호와 하나님이시고 엿새 동안 천지만물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믿는 믿음을 생활로 고백하는 신앙인이 된다. 그래서 죄와 사망이 구속하는 모든 문제에서 자유한 사람이라는 것을 증거하는 것이 된다. 아멘.

 

<교훈>

안식일은 우리 자신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속하는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롭게 됨을 기념하는 날이다. 

 

 

8월 31일(화) 문안에 유하는 객

 

 출 19:6을 읽어 보라. 이 성경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무엇이라 부르고 계시는가?(참조, 벧전 2:9)

[출19: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답: 하나님의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이라고 불렀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이 되기 위하여 애굽에서 불러냄을 받았다. 만약 그들이 하나님과의 언약에 충실했다면, 그들을 통하여 복음이 전 세계에 전파되었을 것이었다. 의심의 여지 없이 그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돌보심과 관심의 대상이었으며, 그들에게는 특권과 함께 특별한 책임도 부여되었다. 

 

 출 23:12을 읽어 보라. 여기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이 성경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 사람들을 어떻게 바라보시는지에 대하여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는가?

[출23:12] 너는 엿새 동안에 네 일을 하고 일곱째 날에는 쉬라 네 소와 나귀가 쉴 것이며 네 여종의 자식과 나그네가 숨을 돌리리라.

 

답: 안식일에는 가축과 여종의 자식들과 나그네도 숨을 돌리며 쉬게 하기를 바라신다. 이것은 이스라엘 사람 아닌 이방인들도 안식일의 복을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의 자비를 알게 하신다.

 

 많은 사람들은 안식일의 보편성을 간과한다. 사람들이 범하는 가장 일반적인 실수는 안식일이 오직 유대인들만을 위한 날이라고 주장하는 것인데, 그러한 주장은 창세기의 첫 두 장만 보아도 잘못된 것임을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창조하셨고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안식일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안식일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 기억해야 함은 물론이고, 안식일이 우리에게 다른 사람에 대하여 무엇을 가르쳐 주는지에 대해서도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안식일을 통해 쉼을 경험하는 것과, 안식일을 통해 우리의 창조자 되시고 구원자 되시는 하나님께 연결되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한다. 왜냐하면, 그들 또한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셨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그들도 사랑하고 계시며,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뿐만 아니라 그들을 위해서도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이미 살펴본 것과 같이(출 20:10, 신 5:14), 성경은 종들과 손님들과 그리고 동물들마저도 안식일의 쉼을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아직 언약의 백성으로 선택받지 못한 객이라 할지라도 안식일의 쉼을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말씀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히브리인들은 매주 찾아오는 안식일을 통해 매우 강력한 방법으로 모든 사람이 차이가 없음을 기억하게 되었다. 그것은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이다. 비록 우리가 안식일을 지킴으로 다른 사람들이 누리지 못하는 축복과 특권을 누리지만, 우리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인류라는 커다란 가족의 일원으로서 다른 사람을 존중과 사랑으로 대해야 한다.

 

<묵상>

그대가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축복이 될 수 있을까요? 다시 말해, 어떻게 하면 안식일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요?

 

답: 제7일 안식일은 사람이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하는 날이다. 그래서 창조주를 만날 때 그의 존재가 존귀하다는 것을 참으로 알게 된다. 복음은 사람을 존귀하게 하는 진리이다. 

 

<부가설명>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엿새, 즉 지구가 여섯 번 자전하는 동안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그런 진리를 전하면 받아들이지 않는다. 나아가서는 여호와 하나님은 사람들이 상상으로 만든 신일 뿐이라고 참람한 망언을 한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를 멸망하는 짐승으로 여기는 사람이다(시49:20).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진정으로 인정하지 않아도 창조주의 제도 안에서 살아가는 것은 벗어날 수 없다. 벗어나면 존재와 생명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일주일 7일 제도 안에서 살아간다. 이 범위를 절대로 벗어날 수가 없다.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면서 그렇게 산다. 그 분명한 이유를 가르쳐주는 기록은 오직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께서 계시와 영감으로 기록한 성경뿐이다. 그런데도 성경의 기록을 인정하지 않고 역사적 발전으로 어찌하다가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며 그런 이론을 만드는데 부지런하다. 존귀하지만 깨닫지 못해서 멸망하는 짐승 같이 되었기 때문이다. 성경 말씀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존귀한 존재가 된다. 사상이 달라지고 인격이 달라진다. 아멘.

 

<교훈>

우리가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단순히 그날을 지키는 우리에게만 축복이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더불어 사는 사람들에게도 축복이 되어야 한다. 

 

 

9월 1일(수) 다른 사람들을 섬김을 통해 하나님의 안식일을 높임

 

 신약 시대 종교 지도자들은 안식일 지키는 일을 매우 엄격하게 관리하였다. 당시에는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수십 개의 금지법과 규칙들이 있었다.

 그 금지법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무엇이든 묶거나 풀지 말 것. 불을 끄지 말 것. 물건을 개인적인 장소에서 공공장소로 옮기지 말 것. 공공장소에서 정해진 거리 이상으로 물건을 옮기지 말 것.

 

 요 5:7~16에서 예수님께 대하여 어떤 비난이 일어났는가?

[요5:7~16]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8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9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10 유대인들이 병 나은 사람에게 이르되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 11 대답하되 나를 낫게 한 그가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더라 하니 12 그들이 묻되 너에게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한 사람이 누구냐 하되 13 고침을 받은 사람은 그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니 이는 거기 사람이 많으므로 예수께서 이미 피하셨음이라 14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 15 그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가서 자기를 고친 이는 예수라 하니라 16 그러므로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행하신다 하여 유대인들이 예수를 박해하게 된지라.

 

답: 안식일에 자리를 가지고 걸어간다고 비난하고 안식일에 병을 고쳐주었다고 비난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위대한 기적과 그 사람에게 허락하신 질병으로부터의 자유는 완전히 무시한 채, 종교 지도자들은 그저, 나음을 받은 사람이 안식일에 사람들이 있는 데서 자리를 들고 걸어간 것에 대해 심각하게 문제를 삼았다. “안식일의 주인”(막 2:28)되신 예수님께서 이 특별한 날을 어떻게 활용하셨는지를 살피는 대신, 종교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만든 규례를 지켜내기에만 급급했다. 우리는 우리가 처한 상황 속에서 우리만의 방법으로 이와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사 58:12~14은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지키기를 원하시는 안식일의 모습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가?

[사58:12~14]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보수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 13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하지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하게 여기고 네 길로 행하지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하지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14 네가 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기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답: 즐거운 날, 존귀한 날로 여기며 자기 오락과 사사로운 말을 금하고 자기 길로 행하지 않기를 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이 담기지 않은 형식뿐인 예배를 원치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이 압박당하고 소외당하는 사람들을 돕는 모습을 보기 원하신다. 

 이사야는 사 58:13, 14에서 이 사실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하지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하게 여기고 네 길로 행하지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하지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기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사 58:13, 14).

 우리 자신을 즐겁게 하기 위한 “오락”을 행하는 것은 안식일을 범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안식일에 사적인 오락이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이상적인 안식일의 모습이 아니다. 대신 우리는 고통 중에 있는 자들, 얽매인 자들, 굶주리고 헐벗고 어둠 가운데 있는 자들, 그리고 무시당하는 자들을 돌아보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우리는 다른 어떤 날보다 안식일에 우리 자신의 유익을 위한 일들에서부터 벗어나 다른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필요를 채우는 일에 대하여 더 많이 생각해야 한다.

 

<묵상>

사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의 안식일 봉사를 묵상해 보십시오. 어떤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까?

 

답: 어렵고 병든 사람들을 위하여 봉사하셨다.

 

<부가설명> 안식일에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계명을 따라 안식일에 일하지 말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안식일에 선한 일을 하는 것은 합당하다고 하셨다. 선한 일이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안식일에 하라고 한 일이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이 선한 일이다. 여리고 성을 돌 때 7일간 돌았으니까 그 중에 하루는 안식일이 확실하다. 아마도 일곱 번 돈 날이 안식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또한 여호야다 대제사장이 왕권 회복을 위하여 요아스를 왕에 앉일 때 안식일에 했다. 또한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을 복구한 후에 주위 이방인들이 안식일에 장사하러 찾아오는 것을 금해도 자꾸 오니까 안식일에 성문에 파숫꾼을 세웠다. 이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일을 한 것이다. 그래서 안식일에 결석자 방문하는 것이나, 환자 방문, 전도지 돌리는 것 등등. 이런 것은 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된다. 또한 오후에 일가친척들이 함께 모여 말씀을 들으며 어린이들에게 진리를 전하는 것도 좋은 것이다. 유대교인들은 안식일 오후를 주로 이렇게 보낸다고 한다. 그래서 일가친척들에게 복음을 바르게 알게 하는 것은 아주 좋은 일이다. 자기의 이익을 위한 일이나 쾌락을 위한 오락이나 이런 것을 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엿새 동안 하는 모든 일은 십계명의 원칙을 매일 실천하는 일이 중심이다. 성령께서 바르게 깨닫게 하셔서 안식일을 거룩하로 복되고 아름답게 지키는 경험이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이끄시기를 빈다. 

 

<교훈>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이 형식적인 예배로 안식일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압박당하고 소외당하는 사람들을 도우며 안식일의 참된 정신을 실천하기를 원하신다.

 

 

9월 2일(목) 하나님께 속했다는 표징

 

 세계 2차 대전 중 영국은 독일의 임박한 침공을 대비하고 있었다. 자신들의 나라를 어떻게 해서든 지키기 위한 준비가 계속되었다. 해안가를 따라 방어 시설들이 추가로 설치되었고 적군이 목적지에 빠른 속도로 접근하는 것을 막기 위해 전략적인 위치에 장애물이 설치되었다. 그리고서 영국 군대의 지휘관들은 조금 특이한 일을 했다. 적의 진격 속도를 늦추고 교란하기 위해 기찻길과 도로 위의 안내 표지판들을 제거한 것이었다. 돌이나 건물 위에 새겨져 있던 표시들은 시멘트를 발라 감추어 버렸다. 

 표지판은 매우 중요하다. 그것들은 중요한 것을 표시하거나 안내해 준다. 내비게이션이 생기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지도나 표지판을 보고 길을 찾곤 했다. 

 

 안식일은 무엇을 나타내는 표징인가? 출 31:13, 16, 17을 읽어 보라. 하나님의 율법이 영원함을 믿는 우리에게 여기에 기록된 말씀은 어떻게 적용될 수 있겠는가?

[출31:13,16,17]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게 함이라/ 16 이같이 이스라엘 자손이 안식일을 지켜서 그것으로 대대로 영원한 언약을 삼을 것이니 17 이는 나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영원한 표징이며 나 여호와가 엿새 동안에 천지를 창조하고 일곱째 날에 일을 마치고 쉬었음이니라 하라.

 

답: 여호와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 사이의 언약의 영원한 표징이다. 안식일은 하나님의 계명의 중심에 기록한 조문이다. 그러면 계명이 영원하다는 증거가 된다.

 

 여기 기록된 말씀이 비록 고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진 말씀이었지만, 우리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들로서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갈 3:29)들이므로 안식일은 여전히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중요한 표징이 된다. 출애굽기 31장은 안식일을 가리켜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의 표징이라고 이야기한다(출 31:16, 17). 이 표징은 우리에게 우리의 창조자이시고 구원자이시며 거룩하게 하시는 분이신 하나님을 알게 해 준다. 그날은 마치 일곱째 날마다 게양되어 우리로 하여금 중요한 것을 잊지 않고 기억하도록 돕는 국기와 같다.

 하나님의 안식일은 지속적으로 우리의 기원과 구원, 운명, 그리고 소외된 사람들을 향한 우리의 책임을 기억하게 해 준다. 안식일은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우리가 안식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매주 예외 없이 안식일이 우리에게 다가온다. 안식일은 우리에게 우리가 누구이며, 누가 우리를 만드셨으며, 그분께서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하고 계시며, 마침내 그분께서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하실 것인지 기억하게 한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언약의 동반자인 우리를 초청하셔서 정말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신다. 우리에게 정말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우리의 창조자이시며 구원자 되시는 하나님과 나누는 구원의 관계이다. 매주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로 주어지는 안식일을 통해 우리는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히 12:2) 되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값없이 주어지는 쉼을 얻으라는 명령을 받는다.

 

<묵상> 

하나님께서 일주일 중의 하루(안식일)를 구별하시고 그 시간 속으로 우리를 초청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답: 일주일 중의 하루를 구별하신 것이 아니고 제7일을 구별하셨다. 그것은 피조물인 사람이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과 연결하는 끈이고 우리가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의 권속으로서 하나님과 즐겁고 고상한 친교를 나누려는 사랑이다. 

 

<부가설명> 성경에 계명이라는 말은 많이 있지만, 십계명이라는 말은 구약성경에 세 번만 있다. 신약성경에는 한 번도 없다. 구약성경에 십계명이라는 말은 출34:28, 신4:13, 10:4에 있다. 그런데 원어에는 이 세곳 모두 언약의 열 말씀들이라고 되어 있다. 우리가 십계명이라고 부르는 그것은 언약의 말씀이다. 그 언약의 표징이 넷째 계명이다. 그래서 넷째 계명을 하나님의 인이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는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킴으로 하나님과 언약 관계가 확실하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면 아무리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도 언약의 표가 없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다. 에스겔 20:20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에서 여호와를 아는 표가 된다고 하셨다. 제7일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면 여호와를 모르는 사람이라는 말과 같다. 하나님을 경배한다고 하면서 그분이 여호와이신 줄 모른다면 진정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 되겠는가? 제7일 안식일은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하나님의 권속이며 그분의 백성이라는 확실한 표가 되는 것이다. 

 

<교훈>

안식일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영원한 표징이다. 우리는 그 표징을 통해 우리의 창조자이시고 구원자이시며 거룩하게 하시는 분이신 하나님을 알게 된다.

 

 

9월 3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온 하늘이 안식일을 지킨다. 그러나 무관심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식으로 지키지 않는다. 이 날에 영혼의 모든 에너지가 일깨워져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과 우리 구주 그리스도를 그날 만나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그분을 믿음으로 바라볼 수 있다. 그분께서는 모든 영혼을 새롭게 하시고 축복하시고자 갈망하신다”(교회증언, 6권, 362).

 

 “하나님께 대한 요구는 다른 날에보다 안식일에 한층 더 크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들의 평시의 작업을 떠나서 명상과 예배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그들은 다른 날보다도 안식일에 더욱 많은 은총을 하나님께 간구한다. 그들은 특별한 관심을 보여 주시기를 하나님께 요구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가장 훌륭한 축복을 갈망한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요구 사항들을 들어주시기 전에 안식일이 지나가기를 기다리지 않으신다. 하늘의 사업은 결코 중단되지 않으므로 사람들도 선한 일을 결코 중단해서는 안 된다. 안식일은 쓸모없는 무위(無爲)의 시간이 되도록 의도되지 않았다. 율법은 주의 안식일에 세속적인 일을 금지하고 있다. 생계를 위한 일은 중지해야 한다. 세속적인 향락이나 이익을 위한 노동은 그날에는 적법하지 않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당신의 창조하시는 역사를 쉬시고 안식일에 안식하여 그날을 거룩하게 하신 것처럼 사람도 그의 일상 생애의 일에서 떠나서 이 거룩한 시간을 건전한 안식과 예배와 거룩한 행위를 위하여 바쳐야 한다”(시대의 소망, 207).

 

1. 환경 문제는 많은 나라에서 뜨거운 정치적 토론의 주제가 되었다. 우리는 재림 성도로서 어떻게 하면 정치적인 논리와 상관없이 자연을 돌보는 좋은 청지기가 될 수 있는가? 

※ 천연계를 하나님의 뜻을 따라 보호하는 마음으로 돌보면 되는 것이 아닌가?

 

2. 섬김은 마음에서부터 시작된다. 어떻게 하면 더 활발한 섬김의 정신을 우리 가운데 조성할 수 있겠는가? 안식일이 어떻게 우리로 하여금 그러한 믿음을 실천할 기회를 제공하는가?

※ 창조주와 구원의 주님께 진정한 감사가 넘치면 충성하는 믿음으로 살게 된다. 안식일에 이 사실을 더욱 확고하게 하는 날이 되도록 하자.

 

3. 매 안식일 우리는 모든 인류가 하나님으로부터 창조되었음을 기억하게 된다. 우리는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본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어떻게 인종, 민족, 계층, 성별의 차이에 상관없이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만들어졌으며,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임을 기억하게 도와주는가?

※ 제7일 안식일은 엿새 동안 창조하신 기념의 표징이고 한 사람 아담으로부터 모든 인류가 형성된 것을 기억할 때 사랑의 대상이라는 분명한 이유를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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