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과 예수 쉼을 주시는 분-(핵심Q&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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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봉주 작성일22-01-27 02:49 조회3,248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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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과 예수, 쉼을 주시는 분>
(2022년1월22일(안)17시44분)
(01월23일 (일) < 쉼의 장소(場所)로서의 땅>
(Q)~(창세기15:13~21)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어떤 약속을 하셨으며, 이 약속(約束)의 영적(靈的)의미는 무엇인가?
(A)~아브라함에 약속(約束)하신 것을(창 15:13~21) 모세를 통하여 성취(成就)되는데 쉼이 없는 애굽에서의 노예(奴隸)생활에서 하나님께서는 쉼이 자유롭게 있는 땅으로써 그들 이스라엘 백성들이 쉼에 아무런 방해(妨害)를 받지 않고 하나님과의 긴밀한 관계(關係)회복을 통하여 진정으로 온전한 쉼을 누리도록 약속(約束)하신 언약의 성취(成就)가 십계명(十誡命)중에 4번째 계명(誡命)인 숨막혀 죽을 지경에서 숨을 쉴 수 있도록 참 쉼을 누리도록 계명(誡命)속에서도 명시(明示)되어있다 (신명기 5:12~15)참조.
그 자유(自由)로운 쉼의 날이 바로 안식일(安息日)인데 그 안식일(安息日)안에는 두 가지 깊은 뜻이 내포 되어 있다. <첫째> 창조의 기념(記念)일 이며 <둘째> 구속(救贖)의 기념일이라는 점을 잊지 말고 기억(記憶)하여 지키면 축복(祝福)이 된다는 영적 의미(靈的意味)가 있는 것이다
(01월24일 (월) <믿지 아니하므로>
(Q)~출애굽 당시의 약200여만 명의 인구들 중에 가나안에 들어간 1세대 중에는 단 두 명(여호수아와 갈렙)외에는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다 죽었다. 그러한 일들의 교훈(敎訓)을 (히브리서 4:2)에서 설명하는 핵심(核心)은 무엇인가?
(A)~좋으신 하나님께서는 노예(奴隸)의 속박(束縛)으로부터 애굽의 바로 왕의 강팍한 마음가운데에서도 재앙(災殃)들을 내리시어 출애굽을 할 수 있도록 기적을 베푸셧고 홍해의 기적으로부터 광야(廣野)에서 만나로부터 생수(生水)와 의복(衣服)과 구름 기둥으로 불기둥으로 인도하시며 가나안에 입성(入城)직전까지 이르게 되었는데 극소수(極少數)만 가나안에 들어갔지만 출애굽한 그들이 가나안에 들어가 안식(安息)을 취하지 못한 결정적인 이유는 하나님의 기적적(奇蹟的)인 구원(救援)의 인도하심을 체험(體驗)하였지만 약속의 땅 경계선(境界線)까지 이르렀지만 “믿지 아니하므로” 즉 결정 적인 순간에 불신(不信)하기로 선택함으로 하나님의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했다.
지금 우리도 하늘 가나안의 경계선(境界線)에 이르러 있다. (민수기 13장14장)에서의 교훈(敎訓)들과 (히브리서 3장12~19)등의 말씀을 명심(銘心)하여 불신(不信)1. 때문에 하늘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하자.
(01월25일 (화)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Q)~(히브리서 3장~4장)에서 “오늘”이라는 표현이 5번이나 등장하는데 안식일과 관련하여 “오늘”안식에 들어간다는 것은 어떠한 의미인가?
(A)~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모세와 여호수아와 다윗과 바울 등을 통해서 계속 계속 오늘 안식(安息)에 들어오도록 초청(招請)하시고 계신다. 오늘 안식할 때가 남아있다고 말씀하신 의미(意味)는 오늘의 시간은 안식(安息)할 기별(寄別)의 초청을 듣고 안식(安息)에 대하여 지금(오늘)결정(決定)할 기회(機會)와 위험(危險)이 함께 공존(共存)한다는 말로써 즉시(卽時) 믿음으로 하나님의 뜻에 따르기로 결심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자비의 음성(音聲)이다.
(01월26일 (수) <그분의 안식(安息)에 들어감 >
(Q)~((히브리서 3장11과, 4장1,3,5,10절)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안식에 들어오라고 초청하시는 안식과 (히브리서 4장9~11절 16절)에서 우리는 무엇을 하라고 부르심을 받았는가?
(A)~ “안식(安息)”이라는 말에 중심(中心)을 둔 3장(章)과 4장(章)의 논리는 본질적으로 다음과 같이 전개되고 있다.
(1) 원래 하나님은 모세가 이스라엘을 가나안의 “안식”으로 인도해 들이기를 의도하였다.
그러나 모세도, 애굽을 떠난 세대도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다.
(2) 여호수아는 다음 세대를 가나안으로 인도했으나, 그들의 불신(不信) 때문에 하나님의 영적(靈的) “안식(安息)”으로 이끌 수 없었다.
(3) 다윗의 때에, 하나님은 영적(靈的) “안식(安息)”으로 들어가라는 초청(招請)을 재개(再改)하였다.
그러나 신약 시대까지, 한 국가로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 것이 분명하다.
(4)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초청과 약속은 흠이 있어서 소멸된 것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어떤 목적을 이루기로 작정하시면 인간의 실패에 관계없이 그것을 이루기 때문이다(참조 4:3, 4 주석).
(5)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이 아직 그의 “안식”으로 들어오지 못했기 때문에,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히4:9)는 것이 확실하다.
(6) 만일 그리스도인들이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3:1)이신 그리스도가 봉사하는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4:16)간다면, 그들의 “연약함”을 “체휼하”는 한 분을 발견할 것이다(4:15). 그리고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16절)을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하나님의 영적 “안식”에 들어갈 것이다. 즉 회개한 죄인들을 위해 그가 준비한 영혼의 “안식”으로 들어갈 것이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저자는 이스라엘이 과거 수 세기 동안 들어가기에 실패했던 그 경험은 오늘날 진실한 그리스도인의 특권이 된다고 설명한다(3:13, 15).
(7)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約束)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 혹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그러므로 우리는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順從)치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4:1, 11). 믿음은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는 열쇠이다(4:2; 참조 3:18, 19; 4:6; 11장). 그리고 우리는 우리 속에 “믿지 아니하는 악심”이 있지 않을까 “염려”해야 한다(3:12).
레위 제사장(祭司長) 제도(制度) 하에서 사람들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救援)의 계획(計劃)을 그들이 깨닫고 이해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계획된 어떤 “행위(行爲)들”을 행(行)해야 했다. 그러나 대제사장(大祭司長) 그리스도의 봉사(奉仕) 아래 사람들은 인간 제사장(祭司長)의 중보(中保)없이 직접(直接) 그에게 나아가야 한다. 그들은 의식제도(儀式制度)나 다른 제도(制度)가 요구한 “행위(行爲)들”없이 그리스도 안에서 “안식(安息)”을 발견(發見)해야 한다. 3장과 4장에서 저자(著者)는 유대인 그리스도인 형제들에게 이런 무익(無益)한 “행위(行爲)들”을 그치고 하늘에 계신 우리의 크신 대제사장의 대속적(代贖的) 공로(功勞)와 봉사(奉仕)를 단순(單純)히 믿음으로 그 “안식”에 들어가라고 탄원(歎願)한다. 참조 사 30:15; 렘 6:16; 마 11:29.” (히 3:11, 재림교주석)
◎. 창조(創造)의 기념일(記念日)이 구속(救贖)의 기념일(記念日)로 될 수 있는 길은, 창조주(創造主)께서 여섯째 날에 사람을 만드시고 안식(安息)하신 것처럼 예수님께서 인간의 모습으로 오셔서 십자가(十字架)에 대속(代贖)하시며 다 이루었다 하시고 운명(殞命)하시고 3일 만에 부활(復活)하시고 승천(昇天)하신 사실을 기억(記憶)하며 우리의 구원(救援)을 최종적(最終的)으로 이루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안에서 만이 온전히 안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
(01월27일 (목) <새로운 창조(創造)를 미리 맛봄 >
(Q)~(출애굽기 20:8~11, 신명기 5:12~15, 그리고 히브리서 4:8~11을 비교(比較)해 보고. 안식일(安息日)의 쉼에 관하여 어떤 차이점(差異點)들을 발견(發見)하게 되는가?
(A)~출애굽기와 신명기(申命記)에 기록(記錄)된 성경(聖經) 말씀들은 과거(過去)를 돌아보며 교훈(敎訓)하게 되며 특히 출애굽기는 엿새 동안 창조(創造)를 기억(記憶)하라 하셨고 신명기(申命記)는 애굽에서 구원(救援)하여 해방(解放)된 사실을 기억(記憶)하라 하셨다. 그리고 히브리서는 미래(未來)를 위한 하늘 가나안의 안식(安息)에 관한 것과 비교(比較)하여 미래(未來)에 있을 하나님의 안식(安息)에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하셨으며 특히 안식일(安息日)은 과거(過去)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 인도(引導)하시고 축복(祝福)하신 일들을 기념(記念)할 뿐만 아니라 죄악(罪惡)된 세상에 살고 있지만 앞으로 맞이할 새 하늘을 고대(苦待)하며 소망(所望)하는 날이라는 것을 확신(確信)시켜주시고 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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