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과 기록된 예언들(질문, 대답, 설명) 11/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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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6-10-29 20:58 조회50회 댓글0건본문
제6과 기록된 예언들
(11월 7일 안식일/일몰 오후 5시 28분)
기억절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위로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롬 15:4)
● 연구 범위 -출 17:14; 사 13:1; 렘 36:17, 18; 롬 16:22; 눅 1:1-4; 유 1:14, 15; 고후 4:7
하나님께서 직접 지으신 노래를 우리가 배운다면 그 기분이 어떨까? 신명기 32장의 가사는 모세가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기록한 것이다(신 31:19-22). 예언서를 생각하면서 노래를 떠올리는 경우는 별로 없지만 시편의 많은 글이 사실은 영감받은 노래이다. 비록 그 가사를 주님께서 직접 불러 주신 대로 받아쓴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성경에는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세 가지 주요 방식이 나타난다. ①구술 ② 기록 ③ 상징적인 행위 또는 극적 연출이다. 이번 주에는 성경에 나타난 기록을 중점적으로 살펴보겠다. 성경의 기록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 전달자들의 언어로 기록한 책이며 여기에는 선지자들의 설교와 연설문도 담겨 있다.
예언서에 사용된 다양한 문학 형식을 생각해 보라. 예를 들면 서사, 역사, 시, 애가, 서신 등이다. 선택받은 사람들은 성령의 인도에 따라 전해야 할 내용을 인간의 언어로 표현했다. 이번 주에는 그들의 기록과 집필 보조자(비서)의 활용 그리고 난해한 구절을 연구할 때 주의할 점들을 살펴보겠다.
말씀 속으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출 17:14)
“바룩이 대답하되 그가 그의 입으로 이 모든 말을 내게 불러 주기로 내가 먹으로 책에 기록하였노라”(렘 36:18)
“이 편지를 기록하는 나 더디오도 주 안에서 너희에게 문안하노라”(롬 16:22)
“아담의 칠 대손 에녹이 이 사람들에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유 1:14)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후 4:7)
토의 질문
1. 성경에서 특히 어떤 책을 좋아하나요?
*답: 각각 대답하자.
2. 같은 내용을 이야기, 시, 편지로 전하면 느낌이 어떻게 달라질까요?
*답: 받는 사람 지성과 감성에 따라 다를 것이다.
3. 집필 보조자(대필자)와 공동 저자는 어떻게 다른가요?
*답: 공동저자는 사상과 내용이 공동으로 포함되고. 대필자는 저자의 사상과 내용만 쓴다.
4. 왜 성경은 외부 자료가 인용되었고 사소한 불일치가 있는데도 영감받은 책인가요?
*답: 그 내용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이다.
핵심 교훈
하나님은 선지자들에게 자신의 기별을 기록하게 하여 그 말씀이 시대를 넘어 전해지게 하셨다. 성경 기자들은 다양한 문학 형식과 자료, 집필 보조자들을 활용했지만 성령의 인도로 하나님의 뜻을 충실히 전달했다. 인간적인 한계에도 성경의 신뢰성과 권위는 훼손되지 않았다.
11월 1일(일) 기록하라는 부르심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메시지를 전하고자 가장 먼저 사용하신 방법은 목소리, 꿈, 천사를 통해 직접 말씀하시는 방식이었다. 이런 식으로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책’에 기록하라는 지시가 성경에 처음 등장한 것은 모세 시대에 이르러서였다.
성경에서 기록에 대해 처음 언급된 내용은 무엇인가? 출애굽기 17장 14절을 보라.
[출17:1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 내가 아말렉을 없이하여 천하에서 기억도 못 하게 하리라.
*답: 아말렉을 없이하여 천하에 기억도 못하게 하리라는 내용이다.
구약에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별꾼들에게 백성을 위한 자신의 말씀을 기록하여 보존하라고 지시하신 사례가 많다. 예레미야도 모세와 같은 지시를 받았다. “너는 두루마리 책을 가져다가 내가 네게 말하던 날 곧 요시야의 날부터 오늘까지 이스라엘과 유다와 모든 나라에 대하여 내가 네게 일러 준 모든 말을 거기에 기록하라”(렘 36:2).
예레미야는 그 예언을 기록해야 하는 이유도 전달받았다. “유다 가문이 내가 그들에게 내리려 한 모든 재난을 듣고 각기 악한 길에서 돌이키리니 그리하면 내가 그 악과 죄를 용서하리라 하시니라”(렘 36:3). 예언은 미래에 대한 호기심을 채우기보다 백성을 구원으로 이끌기 위해서 주어졌다.
하나님의 기별꾼들은 다양한 환경에서 메시지를 기록했다. 모세는 성경의 첫 다섯 권을 광야에서 기록했다. 다윗은 사울에게 쫓겨 다니면서 시편을 여럿 지었다(시 52, 54, 57, 59편). 다니엘은 바벨론과 메디아-페르시아의 궁정에서 시무하며 자신이 본 환상을 기록했다. 그와 대조적으로 바울은 에베소, 빌립보, 골로새, 빌레몬에게 보내는 편지를 옥중에서 썼고 요한은 밧모섬에 유배된 몸으로 요한계시록을 기록했다. 하나님의 기별꾼들이 기록하라는 감동을 받았을 때는 성령께서 환경에 상관없이 그들에게 능력을 주신 것이 분명하다.
흥미롭게도 예수의 모든 가르침은 이 귀한 진리를 맡도록 하나님께 선택받은 사람들에 의해 기록됐다. 하나님께서는 이 신성한 메시지들이 자신의 기별꾼들에 의해 성실하게 기록되고 보존되리라 확신하셨음을 여기서 알 수 있다.
나의 삶 속으: 성경은 원본이 보존되어 있지 않아 믿을 수 없다는 사람에게 어떻게 답변하시겠습니까? 위의 주장은 왜 설득력이 약한가요?
<부가설명> 스스로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이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셨고 사람을 창조하셨다. 그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여 하나님은 그의 아버지가 되셨고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눅3:38). 그런데 사탄의 유혹으로 아담 부부는 그리스도를 떠나(고후11:3) 마귀의 자식이 되어버렸다(요8:44). 여호와 하나님은 이 아들을 다시 찾아 아들의 신분과 권세를 회복하기로 하셨다. 이것을 성경은 복음이라고 한다(롬16:25,26). 하나님은 회복되어야 할 아담과 그의 자손들이 이 놀라운 복음을 알기를 열망하신다. 그래서 그의 백성을 택하시고 그 중에서 선지자들을 택하셔서 이 놀라운 복음 기별을 누구든지 읽고 깨달을 수 있도록 기록하게 하셨다. 그래서 우리도 알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의 신분을 회복하고 권세를 얻게 되었다(엡1:5, 요1:12,13). 이 기록은 하나님이 말씀하셨고 성령께서 모아서 책이 되게 하셨다. “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보라 이것들이 하나도 빠진 것이 없고 하나도 그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하셨고 그의 신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라”(사34:16, 개역). 모든 번역에도 그렇게 하셨다. 신약에는 번역하면이라는 말이 여러번 나온다. 성령께서 지도하신 것이다. 그래서 번역서도 성령께서 함께하신 것을 나타낸다. 그렇다면 사본은 말할 것도 없이 성령께서 사본하는 사람을 감동하시고 말씀을 지켰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구원의 복음이기 때문이다.
11월 2일(월) 문학 양식과 표현 기법
성경에는 하나님의 영감받은 전달자들이 사용한 다양한 표현 기법이 담겨 있다. 어떤 글은 일기와 비슷하다(민 33:1-49). 반면에 다니엘, 스가랴, 요한이 기록한 책에는 웅장한 상징, 우주적 주제, 하늘 존재들의 묘사가 두드러지는 묵시 문학이 나타난다.
이사야 13장 1절을 읽어 보라. 이사야의 메시지를 무엇이라고 표현하는가?
[사13:1]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바벨론에 대하여 받은 경고라.
*답: 받은 경고라고 표현했다.
선지자들이 받은 환상은 하나님의 전언 또는 계시라는 의미에서 ‘경고(oracles)’라고 표현되기도 한다(어떤 역본에서는 ‘부담[burden, 킹흠정]’이라고 옮겼다.). 최근의 성경 역본들을 보면 많은 기록이 시의 형식을 취했고 대구법도 자주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대구법이란 앞 구절과 반복 또는 대비되는 구절이 뒤따르는 경우를 말한다. 예를 들면 “그날에 사람이 자기를 지으신 이를 바라보겠으며 그의 눈이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뵙겠고”라는 이사야 17장 7절이다. 여기서는 “지으신 이”와 “거룩하신 이”가 서로를 보완하며 하나님의 모습을 더욱 풍성하게 보여 준다.
선지자들은 은유법(상징법), 과장법 같은 일반적인 문학 기법도 사용했다. 이들의 메시지를 더 잘 이해하고 적용하려면 어떤 문학 형식을 사용했는지를 반드시 알아야 한다.
성경에서 자주 보이는 또 다른 문학 형식은 ‘언약 소송’이다. 예를 들어 예레미야 2장 4-9절에서 예레미야는 언약 의무를 위반한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고발을 표현한다. 법정의 이미지를 활용해 예레미야는 하나님을 심판의 근거를 제시하는 검사로 묘사하고 있다.
성경에는 예언의 글, 역사, 노래, 비유도 있다. 예레미야는 자신이 받은 모든 메시지를 책으로 만들라는 지시를 받았다(렘 36:2). 한편 신약 성경에는 개인이나 단체에게 보내는 편지가 많다. 형식이 다르다고 권위에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바울의 편지는 구약 선지자들의 글과 같은 무게를 지닌다. 자신이 성령의 감동을 받았다는 증거를 바울이 편지에서 분명히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고전 7:10, 12, 40).
나의 삶 속으로: 성경에서 하나님을 배제하고 인간적인 요소만 강조하는 학문이 있습니다. 왜 이것은 영적 파멸로 이어질 수밖에 없나요?
성경이 다양한 문학 장르로 쓰였다는 사실은 그 가르침을 삶에 적용하는 데 어떤 장점이 있을까요?
<부가설명> 성령의 감동을 받아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받아 기록하는 사람들은 자기의 역량을 따라 정직하게 기록했다. 주시는 말씀의 성질을 따가 산문으로 기록하기도 하고 운문으로 기록하기도 했다. 또 그들이 살던 때의 문학과 문화로 배운 지식을 활용했다. 그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들을 때에 합당한 언어로 기록했다. 구약은 대부분 히브리어로 기록했으나, 아주 적은 분량이지만 아람어로 기록한 부분도 있다. 그 언어로 기록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감동 받았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오늘날 원본은 없다. 다 사본이다. 이 세상의 어떤 고대 문헌의 사본보다 많은 사본이 있다. 그 유명한 플라톤이나 호메르스의 작품 사본은 고작 수개에서 수십개에 불과한데 비해 성경 사본은 헬라어 사본만도 5천6백개가 넘고 그 외에 다른 언어들 시리아어, 곱틱어, 이티오피아등의 사본까지 합치면 2만 사천에서 2만 오천개가 넘는다고 한다. 그래서 사본들을 대조하여 원본의 내용을 아주 정확하게 복원할 수 있었다. 이런 작업하는 학자들을 본문 비판 학자라고 한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성경은 영감된 대로 기록한 말씀이라고 믿어도 안심할 수 있는 말씀이라고 나는 믿는다.
11월 3일(화) 집필 보조자들
예레미야 36장 17, 18절과 로마서 16장 22절을 읽어 보라. 성경 저자들이 집필 보조자를 어떻게 활용했는가?
[렘36:17,18]그들이 또 바룩에게 물어 이르되 너는 그가 불러 주는 이 모든 말을 어떻게 기록하였느냐 청하노니 우리에게 알리라 18 바룩이 대답하되 그가 그의 입으로 이 모든 말을 내게 불러 주기로 내가 먹으로 책에 기록하였노라.
[롬16:22 ]이 편지를 기록하는 나 더디오도 주 안에서 너희에게 문안하노라.
*답: 대필(대서)하게 했다.
예레미야는 메시지를 직접 기록할 수도 있었을 테지만 믿음직한 서기관에게 일을 맡겨 자신의 예언을 성실히 기록하고 지도자들에게 전하게 했다. 집필 보조자를 활용해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한 이는 예레미야만이 아니다.
신약에서 더디오는 심지어 자신이 “편지를 기록”했다고까지 밝힌다(롬 16:22). 그런데 로마서 서두를 보면 그는 단지 바울이 말하고 싶은 내용만 기록한 것이 분명하다. 더디오는 바울의 대필자이자 비서 곧 바울의 말을 글로 기록한 집필 보조였다. 이런 관행은 바울에게 드문 일이 아니었다. 골로새 및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보내는 편지 말미에 바울은 “친필로”(골 4:18; 살후 3:17) 인사말을 덧붙여 편지 전체가 진본임을 확인시켜 준다. 이 대목에서 그가 편지 작성을 다른 사람에게 맡겼음을 짐작할 수 있다. 대필 편지는 발신자의 뜻을 제대로 대변하고 있는지, 나아가 정말 그가 직접 쓴 것이 맞는지 의구심을 일으킬 수 있기에 바울은 편지의 진정성에 대한 의심의 여지를 없애고자 마지막에 친필 기록을 덧붙인 것이다.
바울 서신의 문체가 다양한 이유가 보조 집필자의 활용 때문이라고 보는 주석가도 많다. 베드로의 두 서신에 관한 평가도 그와 비슷하다. “베드로후서의 문체가 사실상 베드로전서와 다른 이유는…베드로가 그리스어로 서신을 기록할 때 기록 비서의 도움을 받아 작성했을 가능성으로 적절하게 설명될 수 있다. 그리스어에 능통한 바울조차 비서를 활용했다면 아람어가 모국어인 베드로는 당연히 그랬을 것이며 이 비서들이 그리스어로 된 베드로후서의 표현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으리라는 생각은 더욱 타당성을 지니는 것이다”(재림교회 성경주석 10권[한글판], “성경에 대한 ‘하등’ 비평과 ‘고등’ 비평”, 161).
전달자의 생각과 의도는 충실히 유지되면서도 기록 비서의 역량에 따라 어휘와 문장 구조에 차이가 생기는 이유는 이런 점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영감받는 것은 생각이지 그 생각을 표현하는 데 사용되는 어휘가 꼭 그런 것은 아니다.
나의 삶 속으로: 영감받은 전달자의 메시지를 대필한 사람은 왜 공동 저자라고 볼 수 없나요?
성경 기록 과정에서 영감받은 것은 어휘가 아니라 생각이라는 사실에서 배울 점은 무엇인가요?
<부가설명> 성경 영감설에 관해서는 5과 수요일 부가설명에 말했다. 여기서는 대필자에 관한 것이다. 대필자는 주로 저자의 말을 받아쓰는 경우겠지만, 단어나 문장 구조에 관해서 저자의 말보다 더 나을 수 있을 때 그러게 의논하고 고쳐 썼을 것이다. 바룩은 예레미야가 입으로 말하는 것을 그대로 받아 쓴 것처럼 말했다. 그러나 더둘로는 대서했다고 했는데, 바울이 말하는 내용을 받아 쓰기도 하고 바울이 말했을 때 더둘로가 듣고 문장에 관해서 의논하고 바울의 허락을 받아 문장을 만들었을 수도 있다. 오래 전에 연합회 교회 지남에 권두언을 연합회장이 쓰는데, 주제를 주고 이러이러하게 쓰라고 지시한 후 비서에게 쓰게 했다. 비서가 글을 써서 연합회장에게 보여주면 죽 읽고 합당하면 그대로 발표했고, 이러이러한 곳은 이렇게 고치는 것이 좋겠다고 하면 비서가 그대로 받아 고쳐서 연합회장 이름으로 권두언으로 내보냈다. 대필자는 이런 경우가 없었다고 말하겠는가? 그렇다고 그것이 본인의 사상이나 말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가? 성경 중에 이렇게 한 사실을 정직하게 기록했고 그 정직은 바로 영감과 연결되어 있었다.
11월 4일(수) 외부 문헌
“전도자는 지혜자이어서 여전히 백성에게 지식을 가르쳤고 또 깊이 생각하고 연구하여 잠언을 많이 지었으며 전도자는 힘써 아름다운 말들을 구하였나니 진리의 말씀들을 정직하게 기록하였느니라”(전 12:9, 10).
솔로몬이 기록한 잠언 모두가 자기 창작물은 아니라는 사실을 이 구절에서 알 수 있다. 하나님의 영감 아래서 그는 여러 격언을 “구하였고” “아름다운 말들”을 찾아보았다. 잠언 31장에서 자주 인용되는 어진 여인에 관한 묘사는 솔로몬이 아니라 르무엘이라는 잘 알려지지 않은 왕의 어머니가 한 말이다(잠 31:1). 잠언서가 이집트 문학의 영향을 받았다는 증거도 있다.
그와 비슷하게 구약의 영감받은 역사가들 또한 자신들이 하나님 백성의 이야기를 충실하게 전하고자 문서 자료와 역사 기록을 참고했다고 밝힌다.
열왕기상 11장 41절, 누가복음 1장 1-4절, 유다서 1장 14, 15절을 읽어 보라. 영감받은 기록자들은 간혹 어떤 식으로 성경 이외의 자료를 사용했는가?
[왕상11:41] 솔로몬의 남은 사적과 무릇 저의 행한 일과 그 지혜는 솔로몬의 행장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눅1:1~4]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2 처음부터 목격자와 말씀의 일꾼 된 자들이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3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4 이는 각하가 알고 있는 바를 더 확실하게 하려 함이로라.
[유1:14,15] 아담의 칠대 손 에녹이 이 사람들에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15 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하지 않은 자가 경건하지 않게 행한 모든 경건하지 않은 일과 또 경건하지 않은 죄인들이 주를 거슬러 한 모든 완악한 말로 말미암아 그들을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
*답: 주신 영감과 계시에 합당하다고 영감을 받을 때 다른 책에서 인용하여 기록했다.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역사 자료를 사용한 성경 필자의 또 다른 사례다. 에스라서에는 예루살렘과 페르시아에 관한 편지글과 왕의 칙령이 담겨 있고(스 4-7장), 느헤미야는 자신이 찾아서 기록에 포함시킨 족보 명부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느 7:5-72).
이 원칙은 신약에도 나타난다. “누가의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영감은 자연스러운 정신 기능과 조화를 이루어 작용하며 그러한 정신 기능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영감받은 기록자인 누가는 성령의 인도를 받아 그리스도의 생애에 관련된, 당시에 활용 가능한 구술 및 문서 자료를 부지런히 탐구했고 수집된 정보를 일관성 있는 이야기로 엮었다”(재림교회 성경주석, 눅 1:2).
유다서에는 정경에 포함되지 않은 신구약 중간기의 유대 문헌인 <제1에녹서> 1장 9절 내용이 인용된 듯하다. 또 바울은 이름을 밝히지 않고 그리스 철학자들의 말을 인용했다(행 17:28; 딛 1:12).
나의 삶 속으로: 성경 저자들은 환상과 꿈을 통해 직접 계시를 받을 때가 많았지만 성령께서는 그들이 다른 출처에서 자료를 선택하도록 영감을 주기도 하셨습니다. 이 점을 명심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요?
성경 이외의 책이나 매체를 바람직하게 활용하려면 어떤 점들을 유의해야 할까요?
<부가설명> 성령께서는 복음을 증거하고 진리를 깨닫는 데 필요한 것은 세상의 책들이나 구전을 사용하도록 영감 하신다. 성경에는 뱀의 말도 기록되었고 골리앗의 말도 기록되었다. 하그 외에도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의 말도 많이 인용했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것은 모두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기록했다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기록하라고 한 것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할 때 한 말은 마귀의 말이다. 그러나 그 사건을 기록하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이처럼 성경은 하나님의 섭리와 뜻을 사람들이 올바르게 알아서 생명의 길에 들어와서 구원받고 영생을 얻도록 하는데 필요한 사건과 말씀들을 기록한 것이다. 이 일에 필요하다고 보실 때는 세상 사람들이 쓴 글도 인용하게 하신다. 지금도 말씀을 증거할 때 필요하다면 예화를 사용하고 세상 지혜자들의 논리도 사용한다. 그러나 그것은 항상 엄격하게 말씀과 일치하는 것을 일치하도록 사용해야 한다. 그럴 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은 극히 유의해야할 일이다.
11월 5일(목) 하나님의 메시지와 인간의 불완전함
고린도후서 4장 7절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보배에 관해 무엇이라 말하는가?
[고후4: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답: 능력이 우리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음을 알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하나님의 보배가 “질그릇”(인간 존재)에 담긴 이유는 우리의 연약함과 대조되는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나게 하기 위해서라고 바울은 말한다. 하나님의 기별꾼들은 개인 생활에 실수가 없도록 초자연적으로 보존되지 않았다(예, 모세, 엘리야, 다윗, 요나, 베드로). 마찬가지로 그들의 저술 또한 인간의 불완전에서 비롯되는 이해와 전달의 한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신성과 인성의 연합은 성경에도 존재한다. 계시된 진리는 모두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지만 인간의 말로 표현되었으며 인간의 형편에 맞추어졌다”(교회증언 5권, 747).
진리의 보배를 전하도록 신성한 부르심을 받았다고 해서 하나님의 기별꾼이 지닌 인간적인 면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고린도후서 4장 7절은 바로 이 점을 보여 준다. 또 성령께서는 오늘날 사람들에게 와닿지 않거나 설명하기 어려운 진술과 표현을 기별꾼들이 사용하지 못하도록 막지도 않으신 듯하다. 이런 구절은 매우 드물지만 사고가 편협한 이들은 이 부분에서 걸려 넘어질 수도 있다. 성경을 믿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이해하는 만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더라도 주님을 신뢰해야 한다.
일부 불일치는 후기 필경사들의 작은 실수나 영감받은 저술자들이 활용했던 자료(기록 문서) 자체의 차이 때문에 발생하기도 한다. 문제 되는 구절을 접할 때는 저자의 표현에 담긴 의미를 우리가 완전히 이해하고 있는지 그리고 더 깊이 연구하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인지를 자문해 보아야 한다.
심지어 실수나 불일치로 보이는 사항이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경우라도 해당 문제들을 살펴보면 메시지의 핵심에 영향을 주지 않는 사소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기별꾼들이 지닌 불완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성경의 신성한 진리들이 충실하게 계시되었다고 확신할 수 있다.
나의 삶 속으로: 왜 하나님께서는 죄 없는 천사들 대신 불완전한 인간을 자신의 전달자로 삼으셨을까요?
성경에 나타난 사소한 불일치로 성경의 신성성을 부정하는 이들에게 어떻게 답변해 주면 좋을까요?
<부가설명> 하나님께서는 가능한 한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게 하셨다. 예수께서도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이러한 많은 비유로 저희가 알아 들을 수 있는 대로 말씀을 가르치시되”(막4:33), 사람들이 알아듣도록 하려고 예수님은 비유 없이는 가르치지 않으셨다. 34절에 “비유 아니면”이라고 했는데 ‘아니면’ 헬라오 ‘코리스=χωρίς’다 이 말은 ‘아니면’이라는 뜻도 있지만, 첫째 뜻이 ‘없이는’이다. 예수께서 회중들이 쉽게 이해하도록 비유를 사용하셨다는 뜻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친히 말씀하셨다.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요3:12). 땅의 일을 비유로 하늘을 보게 가르치신 것이다. 그 중심에 비유로 가르치심이 있다. 성경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성경이 성경을 해석하는 그 길을 찾아서 따라가야 한다. 그러면 질그릇인 우리가 하늘 보배를 보관하는 그릇이 되고 같은 질그릇들에게 이 보배를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11월 6일(금) 더 깊은 묵상을 위해
엘렌 G. 화잇의 저술
엘렌 G. 화잇의 경험은 이번 주에 성경에서 살펴본 하나님의 기별꾼들과 유사한 부분이 많다. 그녀 역시 계시받은 것을 기록하라는 거룩한 임무를 맡았다.
1909년에 엘렌 G. 화잇은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거의 목숨을 잃을 뻔했던 사고로 나는 건강이 쇠약해져 글을 쓸 수 없었다. …그러나 어느 날 밤 천사가 곁에 와서 말했다. ‘내가 전하는 것을 당신은 글로 써야 합니다.’ 나는 말했다. ‘저는 쓸 수 없어요.’ 같은 명령이 다시 주어졌다. ‘내가 전하는 것을 글로 쓰세요.’ 그래야겠다고 생각한 뒤 테이블에서 필기용 받침대를 가져와 글을 쓰기 시작했더니 하나하나 글을 쉽게 써 내려갈 수 있었다”(대총회 회보, 1909. 5. 31.).
성경의 영감받은 기록자들과 마찬가지로 엘렌 G. 화잇도 집필 보조자의 도움을 받았다. 그녀의 비서들은 편집자가 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즉 필자가 메시지를 명확히 표현하도록 돕는 한편 자기 생각을 거기에 끼워 넣지는 않았다. 그들은 대필 작가나 공동 필자가 아니었다. 직접 기록한 원고든 구술한 내용이 되었든 그들은 엘렌 G. 화잇이 직접 제공한 자료로 작업했다.
엘렌 G. 화잇은 메시지 전달에 도움이 될 경우 자신의 글에 다른 문헌을 인용하거나 각색해 넣기도 했다. 자신이 활용한 일부 서적을 독자들에게 추천한 점으로 미루어 그녀가 독자를 속이거나 원저자에게 부당 행위를 저지를 의도가 없었던 게 분명하다. 독자들에게 전할 진리와 관련해 가장 적절한 표현을 그들의 글에서 찾아냈을 뿐이다.
불일치와 부정확한 사항들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
“무오류와 관련하여” 화잇은 이렇게 진술했다. “나는 절대로 무오류를 주장한 적이 없다. 오류가 없는 분은 하나님뿐이시다”(가려 뽑은 기별 1권, 37).
그녀의 글에서 이해하기 어렵거나 서로 조화시키기 어려운 진술을 발견할 수도 있다. 신성한 부르심을 받았다고 해서 엘렌 G. 화잇이 지닌 인간적인 면이 배제된 것은 아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엘렌 화잇 역시 성장과 성숙을 경험하는 사람이었고 이것은 그녀의 글에서도 드러난다. 앞서 언급했듯이 화잇은 자신이 기록한 모든 말이 직접 하늘에서 왔다고 믿는 이들을 바로잡기도 했다. “일상적인 일들에 대해 말할 때가 있다. 일반적인 생각들이 마음을 차지할 때도 있으며 일반적인 편지들을 써야 하고 교역자에게 받은 정보를 다른 교역자에게 전달해 주어야 할 때도 있다. 이런 말과 정보는 성령의 특별한 영감으로 주어진 게 아니다”(가려 뽑은 기별 3권,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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