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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과 최종적인 쉼(질문, 대답, 설명) 09/2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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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1-09-17 16:37 조회5,22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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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과 최종적인 쉼

(9월 25일 안식일 / 일몰: 오후 6시 25분)

 

연구 범위: 계 1:9~19, 마 24:4~8, 23~31, 계 14:6~12, 히 11:13~16, 빌 4:4~6.

 

기억절: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고전 2:9).

 

 우리는 선과 악, 그리스도와 사탄 사이의 거대한 투쟁의 소용돌이 속에 살고 있다. 투쟁은 이중 구조로 전개되는 중이다. 하늘에서 처음 시작된 그리스도와 사탄 사이의 대쟁투는(계 12:7) 지금도 지구를 포함한 우주와 그 너머에 이르는 광활한 영역에서 계속되고 있다. 싸움의 혼돈 속에서 우리는 이 세상을 위한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자칫 놓치게 된다. 전쟁, 정치적 혼란, 자연재해가 우리를 가공할 공포로 몰아넣곤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디로 어떻게 갈 것인지 큰 그림을 기억하고 따를 수 있도록 예언을 통해 인도하신다.

 싸움은 개인적인 차원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우리는 모두 매일의 삶 속에서 각자 신앙의 도전을 마주하고 있으며,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기 전에 죽게 된다면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 역시 그 싸움의 일부이다. 물론, 최종적인 상황은 분명 다행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그 전에 우리는 범세계적 차원의 불확실성과 우리 자신의 알 수 없는 미래라는 엄연한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우리는 이번 주 교과를 통해 어떻게 예수님 안에서 쉼을 누릴 수 있는지 살펴볼 것이다.

 

*학습 목표

- 깨닫기

 하나님을 신실히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약속된 최종적인 쉼이 있음을 깨닫는다.

- 느끼기

 예수님 안에서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과 쉼을 누릴 수 있음에 감사한다. 

- 행하기

 우리의 마음이 날마다 하나님의 약속을 향하도록 삶의 방향을 재정립한다.

 

2. 외딴 섬에 유배되었던 요한에게 계시를 통해 주어진 기별은 무엇이었습니까?(계1:1~3)

※ 예수님이 진실로 속이 오신다는 기별, 곧 참된 평안과 행복과 쉼을 맞을 기별을 주셨다.

3.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우리에게 맡겨진 중요한 사명은 무엇입니까?(마 24:14)

※ 천국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는 것이다. 

4. 우리가 전해야 할 “세 천사의 기별”의 내용은 무엇입니까?(계 14:6~12)

※ 영원한 복음이다. 곧 참된 쉼의 기별이다. 

5. 성경은 죽음에 대하여 어떻게 설명하고 있습니까?(요 11:11)

※ 자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6. 바울은 혼란과 고통 가운데서도 참된 쉼을 얻는 방법에 대하여 무엇이라 이야기합니까?(빌 4:4~6)

※ 주께서 가까우신 것을 깨닫는 감사와 기쁨과 관용을 실천하는 것이다.

 

결론

외딴 섬에서 낙심하고 있던 사랑하는 제자 요한에게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한 계시를 보여 주심으로 마음에 소망을 주신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같은 방법으로 소망을 주십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말씀을 분명히 믿는다면 온 세상에 우리가 가진 소망의 이유를 전하며 예수님 안에서 참된 쉼을 누릴 수 있습니다. 

 

 

9월 19일(일) 최후의 모습을 보여 주심 

 

 예수님과 실제로 함께 지냈던 제자 중 가장 오래 생존한 사도 요한은 바위섬에 유배되었다. 소중하고 친근한 모든 존재에게서 멀리 떨어진 황량한 섬에서 요한은 어떤 마음이었겠는가? 어떻게 이런 지경이 되었나라는 생각에 괴롭지 않았겠는가? 요한은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시던 모습을 보았고 거기 서 있던 두 천사가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행 1:11)라고 말하는 것을 직접 들었는데 말이다.

 하지만 예수님의 승천과 천사들의 말은 이미 오래전 일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아직 다시 오시지 않았다. 그날 그 자리에 있었던 사도들은 다 죽었고, 대부분이 예수님을 전하다가 순교했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린 교회는 세대교체를 겪었으며, 바야흐로 외부로부터는 끔찍한 박해가, 내부에서는 수상한 이단의 움직임이 다가오고 있었다. 요한은 외롭고, 고단하고, 마음의 평화가 없었을 것이다. 그때, 홀연히, 환상이 보였다.

 

 요한은 이 환상을 통해 어떤 위로를 받았을 것으로 생각되는가? 계 1:9~19을 읽어 보라.

[계1:9~19]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10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되어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11 이르되 네가 보는 것을 두루마리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등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 12 몸을 돌이켜 나에게 말한 음성을 알아 보려고 돌이킬 때에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13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14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 15 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 같으며 16 그의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17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18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19 그러므로 네가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답: 요한은 예수님이 여전히 현재적으로 교회와 성도를 돌보신다는 확신을 얻고 재림하신다는 약속을 굳게 믿으며 위롤 받았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셨던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라는 말씀은 분명, 외롭게 바위섬에 갇혀 있던 요한에게 용기가 되었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받은 요한은 ‘알파와 오메가이며 처음과 마지막’이신 예수님께서 유배지에 갇혀 있는 자신에게 특별한 방법으로 당신을 드러내고 계신다는 것을 깨닫고, 크나큰 위로를 받았을 것이다.

 이 구절에 뒤이어 나오는 것은 지구의 미래에 대한 계시였다. 놀라운 역사의 파노라마가 제시되었는데, 오늘의 우리에게는 기독교 교회의 역사이자 요한에게는 당시 교회의 미래에 대한 것이었다. 

 예수님께서는 교회에 밀어닥칠 시련과 함께 그 모든 고난이 어떻게 끝날지를 보여 주셨고, 요한은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계 21:1, 2)라고 기록했다.

 요한이 계시록에 기록한 위대한 묵시적 환상은 그에게 하나님의 섭리와 약속 가운데 평안한 쉼을 얻게 하였다.

 

<묵상>

새 하늘과 새 땅을 묘사하고 있는 요한계시록 21, 22장을 묵상해 보십시오. 이 말씀 속에서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어떤 소망을 발견하게 되나요? 

 

답: 참된 신자들에게 약소한 하나님의 약속이 확실히 이루어진다는 믿음을 굳게 하며 소망 중에 즐거워할 수 있다. 

 

<부가설명> 예수께서는 요한복음 21장에서 요한의 장래를 묻는 베드로에게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요21:22)라고 하셨다. 이 말을 오해해서 요한은 죽지 않겠다는 말이 퍼졌으나 예수님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세상에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라고 하셔서 어떤 암시를 주셨다는 생각이 든다. 요한이 예수님 재림하실 때까지 살아있지 못하고 그 시대에 잠들었지만, 예수님은 그에게 세상 끝날까지 사건을 계시로 자세히 보게 하셨다. 그것이 요한계시록이다. 요한은 밧모 섬에서 외롭게 유배생활을 하면서 출렁거리고 철석거리는 지중해 파도소리를 들으면서 안식일(주의 날, 계1:10)에 하나님께 예배할 때 예수님은 그에게 그때 있는 일부터 장차 될 일을 상징적 형상의 계시로 보여주셨다. 그래서 요한 자신뿐만 아니고 세상 끝날까지 이 지구에 살아갈 모든 사람들에게 삼위일명 여호와 하나님께서 세상 끝날까지 하실 사업을 보여주시고 기록하게 하신 것이다. 그것으로 오늘날 우리는 이 세상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이 계시록과 구약의 다니엘서를 연구하여 잘 알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신앙생횔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감사합니다. 

 

<교훈>

하나님께서는 괴로운 마음으로 바위섬에 갇혀 있던 요한에게 앞으로 일어날 일들과 새 하늘과 새 땅에 관한 환상을 보여 주심으로 평안한 쉼을 허락하셨다.

 

 

9월 20일(월) 카운트다운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마 24:3). 예수님께서는 감람산에서 제자들의 이 질문에 답하심으로 역사의 큰 획을 그려 보이셨다.

 마태복음 24장에 기록된 예수님의 유명한 설교는 그 말씀을 하시던 때로부터 재림, 그리고 그 이후로 이어지는 중단 없는 역사의 흐름을 다루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인류 역사의 각 시대마다 당신의 백성들에게 마지막 때에 대한 신성한 일정의 윤곽을 보여 주셔서 마지막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최후의 사건에 대비할 수 있게 인도하신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우리 주변의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릴 때조차도 당신의 사랑을 확신하고 평안을 누리기를 바라셨다.

 재림 교인들은 “환난이 있으리니 이는 개국 이래로 그때까지 없던 환난일 것이며”(단 12:1)라는 다니엘의 기록을 잘 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당신께서 다시 오시기에 앞서 있을 사건에 대비하기를 원하신다.

 

예수님의 다시 오심은 어떠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속지 않을 수 있는가? 마 24:4~8, 23~31을 읽어 보라.

[미24:4~8, 23~3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5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6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7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8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 23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24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 25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26 그러면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27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28 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들이 모일 것이니라 29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30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31 그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답: 큰 나팔소리와 함께 오신다. 온 세상이 다 알 수 있는 모습으로 오신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잘못된 주장에 미혹되지 않아야 한다. 그러기 위하여 징조를 성경에 근거하여 잘 살펴 분별해야 한다.

 

 예수의 재림은 마지막 때에 실제로 일어날 것이다. 예언 가운데 기록된 예수님의 다시 오심에 대한 확실한 증거뿐만 아니라,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 직접 설교하신 것을 볼 때, 이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전 세계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던 노아 홍수가 벌어졌을 때, 그 사건을 위해 준비된 사람은 지구 전체에 단 여덟 명뿐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재림이 얼마나 놀라운 사건이 될 것인지를 노아 홍수(마 24:37~39)에 비교하신다. 그 누구도 재림의 날이나 시간을 알지 못하지만(마 24:36),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 가늠할 수 있는 예언을 주셨다.

 이 우주적 투쟁에서, 우리는 단순한 구경꾼이 아니다. 우리는 복음을 세상 끝까지 전파하는 적극적인 참여자가 될 터인데, 그 말은 우리 역시 박해를 받을 것이란 뜻이기도 하다.

 

예언된 이 사건 속에 우리가 감당해야 할 역할이 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마 24:9~14을 주의 깊게 읽어 보라.

[마24:9~14]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 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10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되어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11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12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13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14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답: 환난과 핍박이 있겠으나 모든 민족에게 이 복음을 전파해야 한다.

 

<묵상>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 24:13)라는 말은 어떤 뜻일까요?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떨어져 나가지 않기 위해 날마다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답: 예수님 안에 굳게 서 있어야 한다. 날마다 예수님을 선택해야 한다.

 

<부가설명> 예언은 성경 말씀이 사실인 진리의 말씀인지 분별할 수 있는 말씀이다. 예수께서 미리 말씀하신 것은 그것이 이룰 때에 우리가 믿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셨다(요13:19, 14:29). 종말 때에 있을 사건에 대한 예언은 역사적 사건으로 분명히 성취된 것이 많다. 그런 성취는 성경 말씀이 진실로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증명하는 사건들이다. 그 중에 거짓 그리스도, 거짓 선지자에 관한 말씀이 현재 세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모두 보고 있다. 거짓 공자가 없고, 거짓 석가가 없고 거짓 마호메트가 없다. 유독 거짓 그리스도, 교회에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났고 현재도 일어나고 있다. 한국에도 여러명이 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재림 징조에 관하여 묻는 제자들에게 맨먼저 주의해야 할 것으로 사람에게 미혹되지 않도록 하라는 말씀이었다(마24:4). 우리는 아주 면밀히 그들의 주장이 성경과 일치하는지 살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 가짜들이다. 어머니 하나님이 있다는 주장, 성경에 없다. 갈4:26은 어머니 하나님에 관한 말씀이 아니다. 그 구절은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에 관한 것이다. 그걸은 억지로 어머니 하나님이 있다고 우기는 것은 성경을 왜곡하는 것이다. 또 재림하시는 예수님은 땅으로 오시지 않는다. 그분은 공중에 오셔서 성도들을 공중으로 끌어올려서 공중에서 맞이하게 하신다(살전4:16,17). 땅에 발붙이고 다니면서 재림 주라고 하는 사람들은 다 가짜들이다. 우리는 말씀을 자세히 살피고 자세히 깨달아야 한다. 그래서 속지 않는다. 성령님 지혜를 주소서. 감사합니다. (갈4:28 아니고 26절)

 

<교훈>

예수의 재림은 마지막 때에 실제로 일어날 것이다. 이때를 위해 준비하도록 하나님께서는 예언을 통해 당신의 백성들을 준비시키고 계신다.

 

 

9월 21일(화) 전진 명령

 

 예언을 통해 역사의 큰 그림이 주어진 것은, 예언된 사건이 차근차근 전개될 때, 우리가 그 중 어느 것도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핑계로 그저 수수방관해도 된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종종 “그러게…. 마지막 사건들은 예정대로 일어날 거야. 일어날 일들이 일어나게 두는 것 말고 뭘 할 수 있겠어? 나 혼자 나선다고 뭐가 달라지겠어?”라는 식의 태도를 보게 된다.

 그러나 기독교인은 자신이 사는 세상, 특히 마지막 사건을 대하는 자세가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과 다르다. 요한계시록 14장은 우리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목적은 주변 사람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알리고 그 사람들이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고 말한다.

 

 계 14:6~12을 읽어 보라. 이 말씀은 무엇을 가르쳐 주고 있으며, 우리는 세상에 어떤 기별을 전해야 하는가? 이 기별을 신속히 전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계14:6~12]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주하는 자들 곧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7 그가 큰 음성으로 이르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의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 8 또 다른 천사 곧 둘째가 그 뒤를 따라 말하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에게 그의 음행으로 말미암아 진노의 포도주를 먹이던 자로다 하더라 9 또 다른 천사 곧 셋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이르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10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11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의 이름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12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13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답: 온 세상 사람들에게 전해야 하는 영원한 복음의 기별이라고 가르친다.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기 때문에 신속히 전할 기별이다. 세 천사가 전한 기별이다. 

 

우리 재림교인들은 ‘세 천사의 기별’이 이 시대를 위한 ‘현대 진리’(벧후 1:12)라고 믿는다. 세 천사의 기별은 지구 역사상 바로 이 시기에 우리를 부르신 이유를 알려 주는 핵심이다.

 세 천사의 기별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영원한 복음’으로 시작하고 있음을 주목해 보라. 이 놀라운 소식이야말로 구원에 대한 유일한 희망이다. 시간의 끝을 가리키는 강력한 이정표인 “그의 심판의 시간이 이르렀”(계 14:7)다는 구절과 함께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는 외침이 이어진다. 이는 바벨론에 머물면서 “짐승과 그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들에 대한 두려운 경고와 대조된다. 끝으로,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라고 하나님의 마지막 백성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한다는 구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견이 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당신께 순종하는 사람에게 베푸시는 평안을 경험하지 못한다는 점에는 모두 동의할 것이다.

 

계 14:11을 읽어 보라.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이 경험하게 될 쉼 없음에 대해 무엇이라고 설명하고 있는가? 

[계14:11]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의 이름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답: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갈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의식이 있는 동안은 절대로 쉼이 없다. 

 

<묵상>

세 천사의 기별의 첫 번째 부분이 “영원한 복음”으로 시작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세 천사의 기별을 세상에 전하면서 이 위대한 진리를 항상 앞세워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참된 쉼에 대한 개념에서 복음을 이해하는 것이 핵심이 되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답: 영원한 복음은 세 천사의 기별 내용이다. 영원한 복음과 세 천사의 기별이 각각 다른 내용이 아니다. 복음은 쉼과 기쁨을 주는 기별이다. 

 

<부가설명> 영원한 복음을 가지고 그들이 외치는 기별이 세 천사의 기별인데, 오늘 교과는 영원한 복음의 내용과 세 천사의 기별은 별개의 내용인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세 천사의 기별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영원한 복음’으로 시작하고 있음을 주목해 보라.”는 말은 세 천사의 기별이 영원한 복음으로 시작한다고 말하고 그 복음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라고 말한 것은 이 둘을 분리해서 이해한다는 인상을 준다. 묵상에서도 “세 천사의 기별의 첫 번째 부분이 “영원한 복음”으로 시작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세 천사의 기별을 세상에 전하면서 이 위대한 진리를 항상 앞세워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라고 한 것도 그런 내용이 아닌가? 증언은 셋째 천사의 기별을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기별이라고 했다. 이 기별은 영원한 복음의 내용이다. 그러므로 세 천사의 기별 자체가 영원한 복음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계14:13절까지가 셋째 천사의 기별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13절은 11절과 대조된다. 짐승의 표를 받고 우상에게 절하는 자들은 밤낮 쉬지 못하지만,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들이 성도들은 수고를 그치고 쉬게 된다는 말씀은 서로 대조되는 내용이다. 영원한 복음 곧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얻은 사람들은 쉼이 있는 사람들이다. 구원은 쉼이다. 세 천사의 기별은 믿음으로 의에 이르는 사람들은 자아가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기 때문에 쉼을 얻고 그들의 행한 일이 따라는 기쁨을 누리게 된다.

<교훈>

우리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목적은 세 천사의 기별을 전함으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알리고 그 사람들이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9월 22일(수) 평안한 휴식

 

 기독교인들은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기를 오랫동안 기다려 왔다. 재림은 인류 역사상 모든 믿는 사람들의 바람이자 우리의 모든 소망의 절정이다.

 

 히 11:13~16을 읽어 보라. 오래전에 살았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도 소망이 되는 어떤 위대한 약속이 기록되어 있는가? 

[히11:13~16]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14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15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16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답: 더 나은 본향 하나님이 친히 예비하신 하늘 새예루살렘 성에 들어가는 약속이 믿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졌다.

 

 만약, 죽음에 대해 많은 사람이 상식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이 구절들은 여러 면에서 말이 안 되는 것이 돼 버린다. “약속을 받지 못”(히 11:13)한 사람들이라는 구절은 대체 무슨 말인가? 사람들이 믿고 있는 것이 맞다면, 그들은 죽어서 이미 하늘에 올라가 예수님과 함께 큰 상급을 누리며 살고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예컨대, 유명한 복음 전도자였던 빌리 그레이엄이 죽었을 때, “이제 그가 천국에서 예수님과 함께 있습니다”라고 표현하는 것을 들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사람이 죽으면 “편히 쉬세요.”라고 말을 하는데, 그 말도 위의 견해와 맞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믿음의 선조들은 편히 쉬고 있는가? 아니면 하늘에서 그들이 해야 하는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가?

 

예수님께서는 죽음을 어떻게 묘사하고 계시는가? 요 11:11을 읽어 보라.

[요11:11]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또 이르시되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답: 나사로가 잠들었다라고 하셨다.

 

 죽은 사람이 편히 ‘쉬고 있다’는 생각은 죽음 이후 일어나는 일에 대한 정확한 진술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 죽은 자들은 쉬고 있다. “믿는 자들에게는 죽음이 사소한 문제에 불과하다. 그리스도께서는 그것을 마치 순간의 일처럼 말씀하셨다.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보지 아니하리라’, ‘죽음을 영원히 맛보지 아니하리라.’ 그리스도인에게 죽음이란 잠자는 것이며 한순간의 침묵과 어두움에 불과한 것이다.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어 있으며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날 것이다”(시대의 소망, 787).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죽음과 부활을 무의식 상태인 잠(요 11:11, 14)과 아침이 되어 깨어나는 것에 비교하신다. 예수님께서는 또한 구원받은 자와 잃어버린 바 된 자 모두가 부활 후에 각자의 상급을 받을 것이라고 강조하시며(요 5:28, 29), 언제 죽음을 마주하더라도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고 가르쳐 주신다.

 

<묵상>

먼저 잠든 우리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든 고통과 괴로움에서 벗어나 평안히 쉬고 있음을 아는 것이 그대에게 어떤 위로를 주나요?

 

답: 죽은 사람을 생시 상태로 만나서 친교할 수 없지만 그들이 주님 안에서 편히 쉰다는 것은 소망없는 사람들처럼 슬퍼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위로 받는다(살전4:13,18).

 

<부가설명> 사람은 죽음자체의 본질을 모른다. 마찬가지로 생명자체의 본질도 모른다. 단백질과 무기질 등등이 적당한 비율로 조합되면 생명체가 나온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아메바나 바이러스 같은 것을 만들었다고 그것이 본질적인 생명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내 생각은 사람이 죽음은 모르지만 죽은 현상을 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똑같이 생명 자체는 모르지만, 생명현상은 안다고 여겨진다. 우리가 죽음과 삶에 대하여 말할 때는 이런 현상을 두고 하는 말이지 그 본질을 뜻하는 말일 수 없다고 생각한다. 생명은 생명 자체이신 삼위일명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여호와를 모르면 생명을 모른다. 그렇다고 사람은 여호와를 완전히 알 수 있는 존재도 아니다. 아담의 후손들은 생명력을 가지고 생활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죽어가는 것이다. 수명이 다하면 죽고 없어진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사망을 폐하셨기 때문에 아담의 모든 후손은 생명을 얻게 되었다. 그래서 의인이나 악인이나 다 부활하게 된다. 그런데 악인은 그 생명을 거절했기 때문에 부활한 후에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준 그 생명을 반납해야 한다. 그것이 마지막 심판이고 결과이다. 그들은 모두 생명없는 시체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랑으로 화장(火葬)해주신다. 그것이 불 못이다. 그때까지는 모든 호흡이 끊어진 사람들이 무덤에서 정말 평안한 쉼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교훈>

예수님께서는 죽음을 잠에 비유하여 설명하셨으며 구원받은 자와 잃어버린 바 된 자 모두가 부활 후에 각자의 상급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9월 23일(목)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누구나 스마트폰 길 찾기 앱이나 내비게이션을 자주 사용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 손에 들린 스마트폰에 GPS를 기반으로 한, 길 찾기 기능이 없었을 때 어떻게 살았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할 지경이다. 내비게이션을 켜면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 곳을 향해, 심지어 외국에서조차 불안감 없이 길을 나설 수 있다. 하나님께서 예언의 시간표를 통해 우리에게 주시려는 평안함이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우리는 때때로 잘못된 주소를 입력하거나, 자신이 길을 더 잘 알고 있다고 믿고 길 찾기 앱이 추천하는 경로를 따르지 않기도 한다. 두 경우 모두, 결국 원치 않았던 곳에서 결코 평안하다고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될 가능성이 있다.

 

 빌 4:4~6을 읽어 보라. 바울은 혼란과 고통 가운데서도 참된 쉼과 평안을 얻는 방법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가?

[빌4:4~6]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5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답: 주님 안에 있는 것이다.

 

 바울은 우리가 겪는 모든 시련 가운데 언제나 기뻐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바울이 강조하고 있는 것은 “주 안에서”라는 대목이다. 우리의 현재 상황이 어떻든, 어떤 시련이 닥치든, 우리가 하나님과 그분의 선하심, 그분의 사랑,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신 그분의 희생 안에 머무는 한, 우리는 그분 안에서 항상 기뻐할 수 있고, 그분께서 지친 영혼에 주시는 평안을 마음껏 누릴 수 있다.

 이 구절은 바로 쉼, 평화, 그리고 사람의 안목으로는 감히 알 수 없는, 지금의 삶을 뛰어넘는 압도적인 희망을 말한다.

 아무것도 걱정하지 않을 때, 우리 영혼이 누리게 될 평안을 상상해 보라. 아무것도 걱정하지 않는다는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으나(사도 바울도 걱정이 많았다), 다시 말하건대, 사랑의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장하시고, 우리를 그분의 왕국에 이르기까지 인도하시고 구원해 주신다는 것을 안다면, 지금 우리의 걱정거리들 역시 올바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될 것이다.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그렇다. 예수께서는 항상 우리 곁에 계신다. 우리가 눈을 감고 죽음이라는 잠으로 쉬게 되면, 바로 그다음 순간에 일어날 일은 그리스도의 재림이다.

 삶은 긴장, 시련, 갈등으로 가득 차 있다. 누구도 피할 수 없다. 사도 바울도 마찬가지였다(참조, 고후 11). 그러나 바울은 모든 문제 속에서도, 우리가, 바로 지금,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영혼의 안식을 누릴 수 있다고 단언한다.

 

<묵상>

빌 4:4~6을 다시 한번 읽어 보십시오. 그대가 지금 어떤 상황에 놓여 있든지 간에, 여기에 기록된 위대한 말씀을 그대의 삶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요?

[빌4:4~6]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5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답: 예수님은 항상 성도들 가장 가까이에 계신다. 그분과 얼굴을 대하여 만날 시간은 죽음의 잠을 잔 바로 다음이다. 진실로 속히 오시는 예수님이시다. 

 

<부가설명> 사람은 시간세계에 매여 있다. 각 사람에게 허락된 시간인 수명이 다하면 시속 말로 죽는다. 죽은 자는 아무것도 모른다(전9:5). 그에게는 시간이 없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재림하셔서 잠자는 성도를 깨우면 잠잔 시간을 전혀 모르기 때문에 그가 의식을 되찾았을 때, 잠깐 깊은 잠을 한숨 잘 자고 깨는 아침으로 여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 주님 예수께서 재림하시는 것은 잠든 모든 성도에게는 진실로 속히 오신 예수님을 맞는다. 이것이 성경이 계시하는 진실로 속히 오신다는 말씀의 복음이다. 아브라함이나 베드로나 바울이나, 누구든지 자기가 잠든 바로 다음 아침에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맞을 것이다. 죽은 자에게는 역사적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이 진리를 깨달은 신자들은 사회적 징조나 천연계의 징조를 살피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호흡하고 의식이 있는 매 시간을 주님 안에 있는지 스스로 시험하고 살피는 것이다(고후13:5). 그리고 주님이 가까운 것을 실감하고 기뻐하고 관용하며 감사하고 모든 욕심 버리고 오늘 하루를 주님 안에서 한발자국도 벗어나지 않도록 살아야 한다.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히3:13).

 

<교훈>

우리의 현재 상황이 어떻든지 간에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과 희생에 머물러 있기로 선택한다면 우리는 그분 안에서 항상 기뻐하며 참된 쉼과 평안을 누릴 수 있다.

 

  영감의 교훈에서 오역이 있어서 바른 것을 알게 하려고 여기 남긴다. 

 

<영감의 교훈> 

기쁨으로 충만한 하늘 - “하늘은 기쁨으로 충만해 있다. 그것은 인류를 구속하기 위하여 그처럼 놀랍게 희생하신 분을 찬양하는 노래로 울려 퍼진다. 지상의 교회가 찬양으로 충만해져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섬기는 기쁨을 온 세상에 알려야 하지 않겠는가? 하늘에서 찬양의 노래로 천사의 합창단에 연합할 자들은 지상에서 하늘의 노래, 곧 감사로 된 죽음(주음, 으뜸음=keynote)을 배워야 한다”(교회증언 7권, 244).

 

 

9월 24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우리는 모두 우리의 기도가 속히 응답되기를 바라고, 응답이 더디거나 혹은 기대한 바대로 응답되지 않을 때에는 쉽게 낙심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무한히 지혜로우시며 선하시므로 우리가 바라는 그 시간과 방법대로 응답하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바라는 것 이상으로 더 좋은 것을 더욱 풍성히 이루어 주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을 의지함으로 우리의 뜻대로 이루어 주시도록 구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목적하신 바가 무엇임을 알고 그대로 이루어 주시도록 구하여야 한다. 우리의 희망과 주장을 다 버리곤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만 되기를 바랄 것이다”(복음 교역자, 219).

 

 “예수께서 오셔서 당신의 자녀를 구원하고 그들을 불멸의 몸으로 변화시켜 주실 때가 조금밖에 남지 않았다.… 무덤들은 열릴 것이며 죽은 자들이 다음과 같은 승전가를 부르면서 나올 것이다.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예수님 안에서 잠든 우리의 사랑하는 자들이 불멸의 몸으로 나올 것이다“(청지기에게 보내는 기별, 350).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대쟁투의 실체를 생각해 보라.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이것이 어떻게 펼쳐지고 있는가? 당신 삶의 대쟁투는 어떻게 벌어지고 있는가? 많은 사람들이 악마의 존재를 믿지 않지만 대쟁투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실제적으로 진행 중이다. 대쟁투의 실체를 아는 것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이해하는 데 왜 그렇게 중요한가? 대쟁투가 어떻게 끝날지 아는 것은 또 왜 그렇게 위로가 되는가?

※ 날마다의 삶을 감사와 용기로 주님의 뜻을 따라 살아갈 수 있는 지혜와 지식을 얻기 때문이다. 

 

2. 명백하게 드러난 것을 넘어서 해석하려 한다면 예언은 장해물이 될 수 있다.  얼마나 자주 누군가가 자의적으로 예언하거나 그런 말을 믿어서 문제가 되었던가? 어떻게 하면 그런 함정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까?

※ 오직 말씀이 계시한 예언 이해의 원칙을 바르게 깨달으면 ㄱ런 함정에 빠지지 않는다. 

 

3. 계 14:9~11의 짐승과 그 우상을 경배하는 사람들과 그들이 쉼을 얻지 못한다는 구절의 의미를 교과 토의 시간에 함께 살펴보라. 그 말씀이 무슨 의미이겠는가?

※ 그들은 하나님의 쉼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그렇다. 그들은 인간의 쉼이나 속임수의 쉼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4. 그리스도의 재림이 임박한 이 때에 우리가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소식을 세상에 적극적으로 전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 주님의 오심을 세상이 알고 맞을 준비하도록 할뿐 아니라, 그것이 우리가 재림을 맞을 사람이라는 증거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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