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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과 예수, 온전한 제물(질문, 대답, 설명) 02/2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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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2-02-19 04:07 조회6,39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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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과 예수, 온전한 제물

(2월 26일 안식일 / 일몰: 오후 6:22)

 

연구 범위: 히 9:15, 창 15:6~21, 렘 34:8~22, 엡 3:14~19, 히 7:27, 히 10:10, 히 9:22~28

기억절: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히 10:14).

 

 유죄 판결을 받고 십자가에 달려 죽은 자가 하나님으로 경배받는다는 사실은 고대인들에게 모욕적인 일이었다. 로마 문학에서 십자가에 대한 언급이 드물다는 사실은 그런 혐오감이 어느 정도였는지 역설적으로 보여 준다. 유대인의 율법은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받은 자라고 선언했다(신 21:23).

 그렇기 때문에 카타콤(catacombs)의 기독교 벽화들에서 발견된 초기 무늬는 대부분 공작새(불멸을 상징), 비둘기, 승리의 종려나무, 그리고 물고기였다. 시간이 지난 후에 다른 주제들이 등장했는데, 예를 들면 노아 방주, 아브라함이 이삭 대신 숫양을 바치는 모습, 사자굴 속의 다니엘, 큰 물고기 뱃속에서 나온 요나, 어린 양을 짊어지고 있는 목자, 또는 중풍 병자가 나음을 입은 것이나 나사로가 다시 살아난 것과 같은 그림들이었다. 이러한 그림들은 구원, 승리, 그리고 돌보심을 상징하는 것들이었다. 반면 십자가는 패배와 수치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의 상징이 된 것은 바로 십자가였다. 바울은 복음을 “십자가의 도”(고전 1:18)라고 설명했다.

 이번 주 우리는 히브리서에 나타난 십자가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학습 목표

- 깨닫기

죄를 용서함에 있어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동시에 나타내기 위해 예수님의 십자가가 필요했음을 깨닫는다.

- 느끼기

자신을 제물로 바치신 예수님의 대속적 죽음이 나를 죄의 결과로부터 자유케 한 것에 감격한다. 

- 행하기

나를 위한 예수님의 희생이 무의미한 것이 되지 않도록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믿음 위에 굳게 선다. 

 

2. 예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 자신을 제물로 바치셔야 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히 9:15, 22)

※ 새언약의 중보가 완전한 속죄를 이루기 위하여.

3. 이스라엘의 희생 제도 속에 포함된 다섯 가지 제사는 무엇이었으며 그것들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이었습니까?

※ 번제, 소제, 속죄제, 화목제, 속건제. 이것은 예수께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행하시는 온전한 희생을 나타낸다.

4. 예수님의 제사장 직분이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보다 더 우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히 7:27, 10:10)

※ 하나님의 맹세로 되었다. 그리고 영원히 살아계시기 때문이다. 

5. 죄의 용서를 위해 꼭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히 9:22~28)

※ 피 흘림이 없이는 사유함이 없기 때문이다. 

6. 재림 전 심판의 참된 목적은 무엇이며 그 심판이 진행되는 동안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 우주에 성도들의 구원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한 것이다. 

 

결론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우리를 위한 제물로 내어 주심으로 죄의 용서를 위해 율법이 요구하는 공의를 충족시키는 동시에 우리를 향한 사랑을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재림 전 심판을 통해 온 우주에 당신의 백성들을 용서하시고 구원하시는 근거를 제시하시며 다시 한번 자신의 공의로움을 드러내십니다.

 

 

2월 20일(일) 제물이 필요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히브리서 9:15절은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설명한다.

 고대 근동 지방에서 사람 사이 또는 국가 간의 언약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에는 맹세를 통해 약속을 교환하는 일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것은 맹세를 깨뜨리는 사람을 신이 벌하리라는 의미 또한 가지고 있었다. 종종 이와 같은 언약들은 동물을 제물로 바치는 것을 통해 비준되었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셨을 때, 그 예식에는 동물을 반으로 자르는 일이 포함되었다(창 15:6~21). 언약의 당사자들은 둘로 갈라진 동물이 언약을 깨뜨린 사람의 운명을 상징하는 것임을 인정하는 표시로 그 사이를 걸어갔다. 중요한 것은, 오직 하나님께서만 갈라진 동물들 사이로 걸어가셨다는 사실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결코 당신의 약속을 깨뜨리지 않으실 것임을 아브라함에게 보여 주시기 위함이었다.

 

 창세기 15:6~21과 예레미야 34:8~22을 비교해 보라. 이 말씀들이 언약에 대하여 무엇을 가르쳐 주는가?

[창15:6~21]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7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니라 8 그가 이르되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을 소유로 받을 것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9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위하여 삼 년 된 암소와 삼 년 된 암염소와 삼 년 된 숫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가져올지니라 10 아브람이 그 모든 것을 가져다가 그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고 그 새는 쪼개지 아니하였으며 11 솔개가 그 사체 위에 내릴 때에는 아브람이 쫓았더라 12 해 질 때에 아브람에게 깊은 잠이 임하고 큰 흑암과 두려움이 그에게 임하였더니 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14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15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16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17 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연기 나는 화로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18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과 더불어 언약을 세워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19 곧 겐 족속과 그니스 족속과 갓몬 족속과 20 헷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르바 족속과 21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의 땅이니라 하셨더라.

[렘34:8~22] 시드기야 왕이 예루살렘에 있는 모든 백성과 한 가지로 하나님 앞에서 계약을 맺고 자유를 선포한 후에 여호와께로부터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9 그 계약은 사람마다 각기 히브리 남녀 노비를 놓아 자유롭게 하고 그의 동족 유다인을 종으로 삼지 못하게 한 것이라 10 이 계약에 가담한 고관들과 모든 백성이 각기 노비를 자유롭게 하고 다시는 종을 삼지 말라 함을 듣고 순복하여 놓았더니 11 후에 그들의 뜻이 변하여 자유를 주었던 노비를 끌어다가 복종시켜 다시 노비로 삼았더라 12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이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13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너희 선조를 애굽 땅 종의 집에서 인도하여 낼 때에 그들과 언약을 맺으며 이르기를 14 너희 형제 히브리 사람이 네게 팔려 왔거든 너희는 칠 년 되는 해에 그를 놓아 줄 것이니라 그가 육 년 동안 너를 섬겼은즉 그를 놓아 자유롭게 할지니라 하였으나 너희 선조가 내게 순종하지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도 아니하였느니라 15 그러나 너희는 이제 돌이켜 내 눈 앞에 바른 일을 행하여 각기 이웃에게 자유를 선포하되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집에서 내 앞에서 계약을 맺었거늘 16 너희가 돌이켜 내 이름을 더럽히고 각기 놓아 그들의 마음대로 자유롭게 하였던 노비를 끌어다가 다시 너희에게 복종시켜 너희의 노비로 삼았도다 17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가 나에게 순종하지 아니하고 각기 형제와 이웃에게 자유를 선포한 것을 실행하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너희를 대적하여 칼과 전염병과 기근에게 자유를 주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너희를 세계 여러 나라 가운데에 흩어지게 할 것이며 18 송아지를 둘로 쪼개고 그 두 조각 사이로 지나매 내 앞에 언약을 맺었으나 그 말을 실행하지 아니하여 내 계약을 어긴 그들을 19 곧 송아지 두 조각 사이로 지난 유다 고관들과 예루살렘 고관들과 내시들과 제사장들과 이 땅 모든 백성을 20 내가 그들의 원수의 손과 그들의 생명을 찾는 자의 손에 넘기리니 그들의 시체가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의 먹이가 될 것이며 21 또 내가 유다의 시드기야 왕과 그의 고관들을 그의 원수의 손과 그의 생명을 찾는 자의 손과 너희에게서 떠나간 바벨론 왕의 군대의 손에 넘기리라 22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 성읍에 다시 오게 하리니 그들이 이 성을 쳐서 빼앗아 불사를 것이라 내가 유다의 성읍들을 주민이 없어 처참한 황무지가 되게 하리라.

 

답: 언약을 체결할 때 짐승을 잡아 가운데를 쪼개고 그것을 마주놓고 쌍방이 그 가운데를 지나는 것으로 확인했다.

 

 하나님과의 언약은 이스라엘을 그들에게 허락된 유산인 약속의 땅으 로 들어갈 수 있게 했다. 하지만 그 언약에는 계명에 대한 순종과 제단 위에 피 뿌리는 일이 포함되었다. 피 뿌리는 일은 언약을 깨뜨리는 자의 운명을 암시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히브리서가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 9:22)라고 말하고 있는 이유이다.

 이스라엘이 언약을 깨뜨렸을 때, 하나님께서는 고통스러운 딜레마를 마주하게 되셨다. 언약은 죄인의 죽음을 요구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을 사랑하셨다. 만약 하나님께서 모른 체 하셨다거나 죄인을 벌하기를 거부하셨다면, 그분의 계명들은 집행될 수 없게 되고 이 세상은 혼란에 빠지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아들께서 자기 자신을 대속물로 바치셨다. 우리가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기 위하여 그분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셨다(히 9:15, 26, 롬 3:21~26). 그분께서는 당신의 율법의 존엄성을 높이시는 동시에 율법을 어긴 자들을 살리실 것이었다. 그리고 오직 십자가를 통해서만 이 일을 이루실 수 있으셨다.

 

<묵상>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고 있는 것과 달리 복음에 있어 율법이 그렇게도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답: 율법은 복음의 필요를 가르쳐준다. 

 

<부가설명> 옛날 언약에는 제물이 필요했다. 언약을 어기면 죽음이라는 것을 확실히 하는 무서운 약속이다. 에덴동산에서 창조주는 아담과 언약을 맺을 때(호6:7) 영생의 약속과 아담의 준행할 조건으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않는 것으로 약속을 했다. 아담이 언약을 어기면 죽음이었다. 그 열매를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는다고 하셨다. 그들이 그 열매를 먹었을 때 그들은 영생을 잃었다. 그의 모든 후손은 다 사망이 되어 죽을 때까지 죽어가는 일생을 보내야 한다. 그들의 후손은 세상에 살명서 언약을 맺을 때 에덴동산에 있었던 원리를 사용한 것 같다. 짐승을 쪼개고 그것을 마주 놓고 그 사이로 언약을 체결하는 쌍방이 지나갔다. 그런데 아브라함과 맺은 창세기 15장 언약에서는 성경에는 아브라함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났다는 기록이 없다. 하나님께서 친히 지나가셨다. 그것은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반드시 이루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었다. 그 약속을 예수님이 성취하셨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을 때 성취하신 언약의 피을 우리에게 뿌리시고(벧전1:2) 하나님을 떠나서 잃어버린 생명을 예수님 안에서 다시 얻게 되었다는 선포를 듣는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언약을 이행한 사실을 우주에 선포하고 아담과 그 후손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것이 아주 공의롭다는 것을 우주에 알게 했다. 그것을 믿는 우리는 영생을 얻고, 그것을 거절하는 사람은 영멸을 얻게 된다. 언약은 생사가 달린 중요한 사실이다. 

 

<교훈>

언약은 그 언약을 깨뜨린 사람의 목숨을 요구했기 때문에 인류가 죄를 지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자기 자신을 인류의 구원을 위한 제물로 바치셨다. 

 

 

2월 21일(월) 다양한 종류의 제사들

 

 예수님의 죽음은 우리의 죄에 대한 용서 또는 사함을 제공했다. 하지만 죄를 사하는 것은 언약을 깨뜨린 것에 대한 형벌을 없이하는 것 이상의 것을 포함한다. 그 속에 포함된 다른 요소들 또한 매우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희생제도 속에는 다섯 가지의 각기 다른 제사가 있었던 것이다. 각각의 제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미를 더욱더 풍성히 하기 위해 꼭 필요했다.

 

 에베소서 3:14~19을 읽어 보라. 신자들을 위한 바울의 기도 제목은 무엇이었는가?   

[엡3:14~19] 이러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15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16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18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19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답: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충분히 알게 되어 하나님의 충만하심이 신자들에게 충만하게 되기를 구하였다.

 

 번제에서는 바쳐진 제물을 제단 위에서 온전히 불살라야 했다(레 1장). 이것은 우리를 위해 자신을 온전히 바치신 예수님을 상징했다. 속죄는 우리를 위한 예수님의 온전한 희생을 요구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한 분이셨지만, 그분께서는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셨다(빌 2:5~8).

 소제는 그분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돌보심에 대한 감사를 표현하는 예물이었다(레 2장). 이것 또한 “생명의 떡”(요 6:35, 48) 되시며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는 예수님을 상징한다.

 화목제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평안함을 기념하기 위해 친구들이나 가족들과 함께 나누는 식사를 포함했다(레 3장). 이것은 희생을 통해 우리를 화목하게 하신 그리스도를 상징했다(사 53:5, 롬 5:1, 엡 2:14). 또한, 그분의 살과 피를 먹음으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희생에 동참해야 함을 강조했다(요 6:51~56).

 속죄제는 우리의 죄를 위한 속죄를 제공했다(레 4:1~5:13). 이 제사에서는 죄로부터의 구속을 제공하기 위해 생명을 상징하는 제물의 피의 역할을 강조했으며(레 17:11), 이는 우리의 죄에서 우리를 구원하실 예수님의 피를 가리켜 보여 주었다(마 26:28, 롬 3:25, 히 9:14).

 속건제는 배상이나 보상이 가능한 잘못에 대한 용서를 제공하였다(레 5:14~6:7). 이것은 하나님의 용서하심이 우리가 잘못을 저지른 자들에게 보상 또는 배상해야 하는 책임을 없어지게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었다.

 성소의 제사들은 우리에게 구원의 경험이 단순히 예수님을 우리의 대속주로 받아들이는 것 이상임을 가르쳐 준다. 우리는 그분의 생명을 우리의 것으로 취하고, 그분의 은혜를 다른 사람들과 나누며, 우리가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에게 합당한 보상을 해야 한다.

 

<묵상>

레위기 1~7장에서 설명하고 있는 다섯 가지 제사를 좀 더 자세히 공부하고 묵상해 보십시오. 각기 다른 제사들이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까?

 

답: 헌신과 말씀공부와 회개와 화목한 생활과 일상적이 허물의 용서를 가르친다. 

 

<부가설명> 레위기에는 여러 가지 제사가 기록되었다. 맨 먼저 기록된 것이 번제다. 번제라는 말은 완전히 불살라 올리는 제사라는 뜻이고, 소제는 곡식 제사이고 속죄제는 죄를 속하는 제사, 화목제는 죄 사함을 받은 사람이 하나님과 제사장과 가족들이 죄 없이함을 받은 기쁨으로 친교를 나누는 것이고 속건제는 발씻는 회개를 가리킨다. 이 모든 제사는 예수님이 희생이 기초가 된다. 예수님은 완전히 불사른 것처럼 온전히 드리셨고 그분이 생명의 떡이 되어 우리가 먹고 영생할 수 있게 하셨고 아담 안에서 사망이 된 죄를 십자가에서 대속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 사귈 수 있게 되었다(요일1:1~7). 그렇게 살아가는 중에도 발이 더러워지고 사탄의 불화살에 상처 받을 수 있다. 그것도 예수께서 친히 씻어주신다는 것을 가리키는데, 서로 용서하고 손해를 끼친 것은 배상할 줄 아는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 속건제이다. 이 여러 가지 제사는 예수께서 사람을 하나님 앞과 사람 사이에서 온전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하는 기초가 된다는 것을 가르친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이 모든 은혜를 기쁨으로 누릴 수 있다. 

 

<교훈>

이스라엘의 희생 제도 속에는 다섯 가지의 각기 다른 제사가 있었는데, 각각의 제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미를 더욱더 풍성히 하기 위해 꼭 필요했다.

 

 

2월 22일(화)

예수님의 온전한 희생

 

 히브리서 7:27과 10:10을 읽어 보라. 이 말씀은 예수님의 희생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가? 

[히7:27] 그는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그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라.

[히10:10]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답: 단번에 드려 이루셨다.

 

 “제사장 된 그들의 수효가 많은 것은 죽음으로 말미암아 항상 있지 못함이로되”(히 7:23)라고 설명된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은 영원히 계시며, 영원한 제사장 직분을 가지고 계신 예수님과 대조된다(히 7:24, 25).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은 “날마다”(히 7:27) 그리고 “해마다”(히 9:25) “섬기는 자를 그 양심상 온전하게 할 수 없”는(히 9:9, 10:1~4) 예물과 제사를 드렸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양심을 깨끗하게 하며(히 9:14, 10:1~10) 죄를 사하는(히 9:26) 제물로서 자기 자신을 “단번에,” “한 번의 제사로”(히 10:10, 12~14) 드리셨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성취하신(히 10:5~10)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히 7:26~28), 예수님의 희생은 동물로 드려진 제물보다 훨씬 더 우월한 것이다.

 예수님의 희생이 “단번에” 드려진 것으로 설명된 것은 몇 가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첫째, 예수님의 희생은 온전한 효력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능가하는 것은 결코 없을 것이다.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이 반복해서 제사를 드려야 했던 이유는 그들의 사역이 온전한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아니하면 섬기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하게 되어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으리니 어찌 제사 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리요”(히 10:2).

 둘째, 구약에 나타난 각기 다른 종류의 제사들은 십자가에서 그 성취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깨끗하게 하실 뿐만 아니라(히 9:14), 우리에게서 죄를 제하심으로(히 9:26) 성화를 허락하신다(히 10:10~14). 제사장들이 성소에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동료 인간들을 위해 봉사하기 전에, 그들은 정결하고 거룩하게 되어야 했다(레 8, 9장). 예수님의 희생은 우리가 담대하게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히 10:19~23) “왕 같은 제사장”(히 9:14, 벧전 2:9)으로 그분을 섬길 수 있도록 우리를 깨끗하고 거룩하게 한다(히 10:10~14).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희생은 우리의 영적 삶에 양분을 제공한다. 그분의 희생은 우리가 순종하고 따라야 할 모본이다. 그렇기 때문에 히브리서는 우리의 시선을 예수님, 특히 그분의 십자가에 고정하고, 그분의 인도하심에 따르도록 우리를 초청한다(히 12:1~4, 13:12, 13).

 

<묵상>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희생을 본받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삶의 모습은 무엇일까요?

 

답: 말씀에 순복하는 삶이다. 성령께서 인도하신다고 약속하셨다. 

 

<부가설명> 피조물인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창조주이신 말씀 하나님께서 꼭 사람이 되어 오셔서 죽으셔야 했는가?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다. 그냥 구원하시면 되는 것이 아닌가? 사탄을 없애버리면 되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다 알 수 없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시면 그렇게 하신다. 그런데 이 우주의 대 쟁투는 단순히 힘의 대결이 아니다. 이것은 창조주의 하신 일이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온 우주에 드러내어 창조주의 권위를 떨어뜨리고 그 지위를 찬탈하려는 반역이다. 그래서 루시퍼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사람을 미혹한 것이다. 사탄이 에덴동산에서 여자에게 한 것은 선악과를 먹으라는 것 이상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사실이 아니라고 말한 것이다. 하나님은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셨다. 말씀이 사실이 아니면 창조도 사실이 아닌 것이 된다. 시험의 광야에서 예수님을 공격한 것도 같은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돌은 떡이 아니다. 그것을 떡을 만들어 먹으라는 것은 얼핏 보기에 말이 되는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 말씀을 각각 종류대로 창조하신 것을 무시하라는 요구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은 진리라고 대답하신 것이다. 만일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그 말씀이 성취되지 않으면 사탄의 주장이 사실로 우주에 드러날 것이다. 하나님은 하신 모든 일이 진실이고 실제라는 것을 우주에 증명하고 반역한 사탄이 거짓말쟁이라는 것을 드러내기까지 기다리시면서 사망이 된 아담을 다시 생명이 되도록 하셔서 처음 창조하셨을 때 모든 말씀이 진리요 실제임을 증명하여 우주가 사랑과 생명으로 영원하 행복하게 지내는데 말씀 하나님의 희생과 부활이 필요하다고 보신 것이다(사43:25). 결과 아담과 그의 모든 후손이 창조된 때 이상으로 회복되어 우주에 창조주의 권위하 사랑을 증명하게 된다.

 

<교훈>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성취하신 하나님의 아들로서, 자기 자신을 우리의 죄를 사하기 위한 더 온전한 제물로 단번에 드리셨다. 

 

 

2월 23일(수) 십자가와 용서의 대가(代價)

 

 히브리서 9:22~28을 읽어 보라. 이 말씀은 그리스도의 하늘 성소 봉사에 관하여 무엇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가?

[히9:22~28]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23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은 이런 것들로써 정결하게 할 필요가 있었으나 하늘에 있는 그것들은 이런 것들보다 더 좋은 제물로 할지니라 24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바로 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25 대제사장이 해마다 다른 것의 피로써 성소에 들어가는 것 같이 자주 자기를 드리려고 아니하실지니 26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한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28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답: 단번에 자기를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 하시고 심판으로 하늘 성소를 정겨하게 하시고 성도들을 하늘로 옮기기 위하여 재림하실 것이다. 

 

 하늘 성소가 정결케 되어야 한다는 개념은 구약에 나타난 성소의 맥락에서 볼 때 합당한 것이다. 성소는 하나님의 정부의 상징이며(삼상 4:4, 삼하 6:2), 하나님께서 백성들의 죄를 어떻게 다루시는가 하는 것은 그분의 정부의 공의로움에 대한 백성들의 인식에 영향을 미친다(시 97:2). 하나님은 통치자로서 그분의 백성들의 재판관이시기 때문에, 죄 없는 자의 무죄를 밝혀 주며 죄인을 벌하심으로 공정하게 판단하셔야 한다. 하나님께서 죄인을 용서하실 때, 그분은 법적 책임을 지게 되신다. 그런데 하나님의 성품과 통치를 상징하는 성소는 더럽혀졌고 이 사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실 때 왜 우리의 죄를 짊어지시는지를 설명해 준다(출 34:7, 민 14:17~19, 여기서 사용된 “용서”라는 단어는 히브리어 원어에서 ‘짊어지다, 감당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스라엘 성소의 희생 제도는 이 점을 분명히 보여 준다. 어떤 사람이 용서를 받고자 할 때, 그 사람은 자신의 죄를 위한 제물을 가지고 와서 그 제물 위에 죄를 자백하고 그것을 죽여야 했다. 동물의 피는 제단의 뿔 위에 바르거나 성전 첫 번째 칸의 휘장 앞에 뿌려졌다. 이를 통해 죄가 상징적으로 성소로 옮겨지게 되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죄를 취하셔서 직접 짊어지신 것이었다.

 이스라엘 제도 속에서 속죄는 두 단계를 거쳐 이루어졌다. 첫 단계는 한 해 동안 회개하는 죄인들은 자신들의 죄를 깨끗하게 하며 동시에 그들의 죄를 성소, 곧 하나님 자신에게로 옮기는 희생 제물을 성소로 가지고 오는 것이었다. 두 번째 단계는 심판의 날로서 한 해의 끝에 있는 대속죄일에, 하나님께서 성소에서 가져온 죄들을 사탄을 상징하는 아사셀 염소에게 옮기셔서 그분의 법적 책임을 없이 하심으로 성소를 깨끗하게 하시는 것이었다(레 16:15~22).

 하늘 성소의 모형인 지상 성소의 두 칸으로 상징된 두 단계에 걸친 속죄 제도는(출 25:9, 히 8:5), 하나님의 자비와 공의를 동시에 나타낼 수 있도록 하였다. 한 해 동안 그들의 죄를 자백한 자들은 대속죄일에 엄숙한 안식을 지키며 자기 자신을 괴롭게 함으로 하나님께 대한 충성을 보였다(레 16:29~31). 충성을 보이지 않은 자들은 백성 중에서 “끊어질” 것이었다(레 23:27~32).

 

<묵상>

만일 그대가 그동안 지은 죄에 대한 형벌을 직접 받아야만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그와 같은 현실을 이해하는 것이 그리스도께서 그대를 위해 이루어 주신 일을 이해하는 데 어떻게 도움을 주나요? 

 

답: 고통 중에 죽어서 소멸될 것이다. 그분의 대속으로 영원한 생명의 존재로 평화와 행복을 누릴 것이다. 예수님의 구속의 은혜 때문이다. 

 

<부가설명> 십자가는 사망 자체를 처리함으로 우주에서 사망을 없애는 것이다. 생명 자체이신 말씀 하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생명을 희생하신 것이다. 그러나 그분은 여호와이시므로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셨다(요10:17,18). 그가 생명 자체이신데 이 생명을 사망에 내어주셔서 사망의 세력을 잡은 마귀를 없이하셨다(히2:14 개역). 그래서 우주에 생명의 반대 현상인 사망이 없어지게 되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고 죽음을 영원히 보지 않게 된다(요5:24, 8:51). 예수께서 부활하시므로 그분은 스스로 계시는 분이심을 우주에 증명하셨다. 사탄은 예수님이 여호와일 수 없다고 공격한 것이다. 그러나 그분은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그분이 스스로 계시는 분이심을 우주뿐만 아니라 사탄도 부인할 수 없게 하셨다. 그것이 아담 후손들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용서의 길이 된 것이다. 그 일을 위하여 말씀 하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또한 공의이심을 증명하셨다. 

 

<교훈>

성소 제도에서 상징적으로 나타난 두 단계에 걸친 속죄 제도는 죄인들에게 하나님의 자비와 공의를 동시에 나타낼 수 있도록 했다.

 

 

2월 24일(목) 심판과 하나님의 품성

 

 로마서 3:21~26, 1:16, 17, 5:8을 읽어 보라. 우리의 죄를 사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이루신 구속이 하나님에 관하여 무엇을 나타내 보여주는가?

[롬3:21~26]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26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롬1:16,17]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롬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답: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

 

 우리의 죄의 용서는 하늘 성소의 두 칸에서 행하시는 예수님의 중보에 두 단계가 있음을 암시한다. 첫째, 예수님께서는 그분을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용서를 허락하시기 위해 우리의 죄를 벗기시고 그 죄를 십자가 위에서 자신이 직접 짊어지셨다(행 2:38, 5:31).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그들의 죄를 직접 감당하심으로 자기를 믿는 모든 사람들을 용서하실 권리를 얻으셨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성령님을 통해 믿는 자들의 마음에 하나님의 법을 두실 수 있도록 하는 새 언약을 개시하셨다(히 8:10~12, 겔 36:25~27).     

 예수님의 중보 사역의 두 번째 단계는 심판, 곧 재림 전 심판으로 이루어지는데 이것은 히브리서의 관점에서 여전히 미래에 있을 일이다(히 2:1~4, 히 6:2, 히 9:27, 28, 히 10:25). 이 심판은 하나님의 백성들로부터 시작되며 다니엘 7:9~27, 마 22:1~14, 그리고 요한계시록 14:7에 묘사되어 있다. 재림 전 심판의 목적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용서하시는 데 있어 하나님의 공의를 나타내기 위함이다. 이 심판에서 온 우주가 볼 수 있도록 그들의 삶의 기록들이 공개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들의 마음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그들이 어떻게 예수님을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였으며, 어떻게 그들의 삶 가운데서 그분의 영을 받아들였는지 보여 주실 것이다.

 이 심판에 관하여 엘렌 G. 화잇은 이렇게 기록했다. “사람은 이 비난들에 스스로 대항할 수 없다. 그는 죄로 더러워진 옷을 입고, 하나님 앞에 서서 그의 죄를 고백한다. 그러나 우리의 중보자이신 예수님은, 회개와 믿음으로 그들의 영혼을 지켜 주도록 그분께 바친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효과적으로 탄원하신다. 그분은 그들을 변호하시고, 갈바리의 강한 논증에 의하여 그들의 비난자를 물리치신다.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하나님의 율법을 완전히 순종하심으로써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권세가 그분께 주어졌다. 

 그러므로 그분은 범죄한 인류를 위하여 자비와 화해를 그분의 아버지께 주장하신다.…그러나 우리의 죄 많은 상태를 깨닫는 동안, 우리는 그리스도를 우리의 의와 우리의 거룩함과 우리의 구속으로 신뢰하게 된다. 우리는 우리를 대적하는 사단의 비난에 대답할 수 없다.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위하여 효과적으로 탄원하실 수 있다. 그분은 우리의 공로에 근거된 것이 아닌 그분 자신의 공로에 근거된 논증을 가지고 비난자를 침묵하게 하실 수 있다”(교회증언 5권, 471, 472).

 

 

<묵상>

십자가와 우리를 위한 예수님의 사역이 우리를 담대하게, 그러나 겸손과 회개하는 마음으로 심판을 바라보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답: 그분이 심판을 이기시고 우리를 의롭다고 하실 모든 것을 이루셨기 때문이다. 

 

<부가설명> 조사심판은 성도들의 신원(伸冤) 심판이다. 그 심판을 통하여 성도들이 영생을 얻고 산자의 하나님과 함께 영원한 나라에서 영생하는 것이 합당하다는 사실을 우주에 공포하신다. 이 심판이 없으면 죄요 사망이었던 사람들이 죄가 전혀 없었던 우주 거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신분을 증명할 길이 없다. 그러면 이것을 창조주 하나님의 일방적인 특혜인가 하는 의구심을 만들 수 있다. 조사심판을 통하여 구원받은 성도들이 합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이 드러나는 것이다. 온 우주가 환영할 것이고 그 일을 이루기 위하여 희생의 길을 걸으신 말씀 하나님을 더욱 경배하고 감사할 것이다. “그가(예수님)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사53:11)라는 예언이 성취되는 것을 우주가 감탄하며 볼 것이고 찬양할 것이다. 

 

<교훈>

하나님께서는 재림 전 심판을 통해 온 우주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용서하시고 구원하시는 데 합당한 이유가 있음을 보여 주심으로 그분의 공의를 나타내신다.

 

 

2월 25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시대의 소망>, 741~757 ‘갈바리’, 758~764 ‘다 이루었다’를 읽어 보라.

 

 “하나님께서는 마치 상점의 진열대에 물건을 진열하듯이 나의 죄를 드러내 보이기 위해 그곳에 계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먼저 당신의 놀랍고 능력 있는 은혜를 가리켜 보이실 것이다. 그런 후에, 나의 모든 삶의 참된 증인으로서 온 우주 앞에 하나님을 향한 나의 태도와 나의 내면의 동기들과 나의 생각과 나의 행위들과 내 삶의 방향을 설명하실 것이다. 그분께서 그 모든 것을 보여 주실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을 범하는 많은 잘못을 저질렀음을 증언하실 것이다. 그러나 내가 회개함으로 용서를 구했으며 그분의 은혜로 변화되었음 또한 증언하실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선언하실 것이다. ‘나의 피는 이 죄인을 구원하기에 충분하다. 그의 삶의 방향은 나를 향해 있으며, 나와 다른 사람들을 향한 이 사람의 태도는 따뜻하고 이기심 없는 것이었다. 그는 신뢰할 만하다. 이 사람은 나의 착하고 충성된 종이다’”(“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성경적 신학”,Journal of the Adventist Theological Society 15 (Spring 2004), 155).

 “구속(救贖)받은 자들이나 타락하지 않은 자들 모두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그들의 과학과 노래를 찾게 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서 비치는 영광은 자아 희생적(自我犧牲的) 사랑의 영광임이 드러날 것이다. 갈바리에서 비쳐 나오는 빛으로 볼 때 자아를 부정하는 사랑의 법칙이 이 세상과 하늘의 생명의 법칙임이 드러날 것이다”(시대의 소망, 20).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인간들은 용서 또는 구원의 대가로 하나님께 갖가지 희생을 바치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어떤 이들은 고행으로 나타나는 영웅적 행위를 바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금욕적인 삶을 바치기도 한다. 예수님의 희생과 십자가로 인해 다시 제사 드릴 것이 없다고 말하는 성경의 주장에 비추어 볼 때 이와 같은 행위들은 어떻게 여겨져야 하는가?  

※ 감사의 찬양으로 본다면 괜찮지만, 그것이 구원의 필요로 한다면 주님의 십자가를 무시하는 것이다. 감사와 찬양이라도 주님은 그렇게 하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2. 한편, 믿는 자들의 삶 속에서 희생의 역할은 무엇인가?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던 예수님의 말씀이나(마 16:24),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롬 12:1)라고 했던 바울의 말은 어떤 의미인가? 예수님과 바울의 말과 히브리서 13:15, 16은 어떤 관계가 있는가?

※ 감사하는 마음으로 예수께서 성도 안에 거하셔서 사시는 모습이 드러나는 것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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