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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과 네 문 안에 유하는 나그네(질문, 대답, 설명)10/3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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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1-10-22 15:00 조회5,91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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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과 네 문 안에 유하는 나그네

(10월 30일 안식일 / 일몰: 오후 5시 36분)

 

연구 범위: 막 12:29~31, 신 10:1~19, 시 146:5~10, 마 7:12, 신 27:19, 약 1:27~2:11

 

기억절: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전에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었음이니라”(신 10:19).

 

 지난주 교과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서기관이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이까”(막 12:28)라고 질문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유일하신 하나님에 관하여 확인해 주신 후 이렇게 말씀하셨다. “첫째는 이것이니...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막 12:29, 30).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으시고 “둘째는 이것이니”라고 말씀하시며 서기관이 묻지 않은 것에 관한 설명을 이어 가셨다.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막 12:31).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이웃을 향한 사랑을 하나로 연결하신 후 그것이 가장 큰 계명이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이 전혀 들어보지 못했던 새로운 것을 말씀하고 계신 것이 아니었다. 우리가 이웃과 다른 사람들을 사랑함으로 하나님을 향한 최고의 사랑을 표현한다는 개념은 신명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학습 목표

- 깨닫기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자들을 적극적으로 도우며 공정하게 대하는 것이 참된 경건임을 깨닫는다. 

- 느끼기

 지식에 그치는 신앙이 아니라 삶을 통해 실천하는 신앙을 기대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한다.

- 행하기

 나와 내가 속한 교회가 보다 더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나눌 수 있는 방법들을 모색한다.

 

TMI 위로

2. 마음의 할례를 행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신 10:14~16)

※ 마음에 하나님을 온전히 모시고 그분의 말씀을 순종하게 된 상태이다. 

3.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특별한 명령은 무엇입니까?(신 10:17~19)

※ 나그네를 사랑하라는 명령이다.

4.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황금률의 핵심 기별은 무엇입니까?(마 7:12) 

※ 내가 대접받기를 원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것이다. 

5. 약자들을 대함에 있어 하나님께서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은 무엇입니까?(신 1:16, 24:17)

※ 공정하게 대하는 것이다. 

6. 하나님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어떤 모습일까요?(약 1:27)

※ 고아와 과부를 돌아보고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는 것이다. 

 

결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 가운데 있는 나그네와 소외된 자들을 돌아봄으로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표현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 없는 경건이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아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실천하며 사는 것이 참된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10월 24일(일)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신명기 9장의 내용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10장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맺으셨던 언약을 재확인하시는 내용이다. 사실 신명기의 대부분은 이미 맺었던 언약을 다시금 확인하고 회복시키는 내용이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우상 숭배에 빠졌던 호렙에서의 흉악한 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버리지 않으셨던 것이다.

 

 신명기 10:1~11을 읽어 보라.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를 용서하셨으며, 그들 그리고 그들의 조상들과 맺으셨던 언약을 재확인하고 계심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신10:1~11] 그 때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기를 너는 처음과 같은 두 돌판을 다듬어 가지고 산에 올라 내게로 나아오고 또 나무궤 하나를 만들라 2 네가 깨뜨린 처음 판에 쓴 말을 내가 그 판에 쓰리니 너는 그것을 그 궤에 넣으라 하시기로 3 내가 조각목으로 궤를 만들고 처음 것과 같은 돌판 둘을 다듬어 손에 들고 산에 오르매 4 여호와께서 그 총회 날에 산 위 불 가운데에서 너희에게 이르신 십계명을 처음과 같이 그 판에 쓰시고 그것을 내게 주시기로 5 내가 돌이켜 산에서 내려와서 여호와께서 내게 명령하신 대로 그 판을 내가 만든 궤에 넣었더니 지금까지 있느니라 6 (이스라엘 자손이 브에롯 브네야아간에서 길을 떠나 모세라에 이르러 아론이 거기서 죽어 장사되었고 그의 아들 엘르아살이 그를 이어 제사장의 직임을 행하였으며 7 또 거기를 떠나 굿고다에 이르고 굿고다를 떠나 욧바다에 이른즉 그 땅에는 시내가 많았으며 8 그 때에 여호와께서 레위 지파를 구별하여 여호와의 언약 궤를 메게 하며 여호와 앞에 서서 그를 섬기며 또 여호와의 이름으로 축복하게 하셨으니 그 일은 오늘까지 이르느니라 9 그러므로 레위는 그의 형제 중에 분깃이 없으며 기업이 없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심 같이 여호와가 그의 기업이시니라) 10 내가 처음과 같이 사십 주 사십 야를 산에 머물렀고 그 때에도 여호와께서 내 말을 들으사 너를 참아 멸하지 아니하시고 11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일어나서 백성보다 먼저 길을 떠나라 내가 그들에게 주리라고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에 그들이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하리라 하셨느니라.

 

답: 깨뜨린 언약의 돌비와 또같은 돌비에 다시 똑같은 내용의 언약문을 쓰셔서 주셨다. 이것은 첫 언약을 파기한 것을 용서하시고 계속 언약관계를 유지하시겠다는 사랑과 자비의 선포이다.

 

 모세는 십계명이 기록된 두 돌판을 땅에 던져 깨뜨렸는데(신 9:17) 이 행동은 깨어진 언약을 상징하는 것이었다(신 32:19). “백성들의 범죄에 대한 그의 혐오감을 나타내 보이기 위하여 그는 돌비를 내던졌다. 그러자 그것은 백성들의 목전에서 깨어지고 말았다. 그리하여 그들이 하나님과 세운 언약을 깨뜨린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그들과 세우신 그분의 언약을 파기하셨다는 것을 나타냈다”(부조와 선지자, 320).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처음과 같은 두 돌판”을 다듬어 가지고 오라 명령하시고 처음 판에 쓴 말을 그 판에 다시 쓰시겠다고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용서하셨으며 그들이 지은 죄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버리지 않으셨음을 보여준다.

 

 신명기 10:14~16을 읽어 보라. 하나님께서 무엇이라 말씀하고 계시는가? 하나님께서 여기에서 사용하신 이미지의 의미는 무엇인가? 

[시10:14~16] 하늘과 모든 하늘의 하늘과 땅과 그 위의 만물은 본래 네 하나님 여호와께 속한 것이로되 15 여호와께서 오직 네 조상들을 기뻐하시고 그들을 사랑하사 그들의 후손인 너희를 만민 중에서 택하셨음이 오늘과 같으니라 16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다시는 목을 곧게 하지 말라.

 

답: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목을 곧게 하지 말라. 마음이 바뀌고 따라서 행동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나타낸다.

 

 본문에는 포피(包皮), 마음, 목과 같은 여러 가지 이미지가 등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시지는 분명하다. 할례는 언약의 표징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외적인 표징에 불과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진실한 사랑이 포함된 마음을 원하셨다. 

 곧은 목에 대한 이미지는 그들이 얼마나 완고한 백성이었는지, 하나님의 말씀에 얼마나 순종하기를 기뻐하지 않았는지를 보여 준다. 이곳뿐만 아니라 성경 여러 곳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나누어진 마음으로 드리는 충성을 멈추고 온 마음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라고 말씀하신다.

 

<묵상>

야고보서 4:8을 읽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요?

[약4:8]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답: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오직 성결한 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이다. 

  

<부가설명> 증언의 말씀대로 모세가 돌비를 깨뜨린 것은 백성이 언약을 어겼기 때문에 언약은 파기되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언약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 언약에 조건대로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에서 제외되고 결국은 죽음으로 끝나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편에서도 언약을 파기했다는 것을 알린 것이다. 그래서 언약을 어긴 죄를 그들에게 묻지 않은 것이다. 계속 그들에게 사랑과 자비와 복을 주실 때에 하시는 말씀은 아브라함과 이상과 야곱과 맺은 언약 때문이라고 하셨다. 그들의 후손이 하나님의 뜻을 잘 수행했기 때문이 아니다. “네가 가서 그 땅을 차지함은 네 공의로 말미암음도 아니며 네 마음이 정직함으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이 민족들이 악함으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심이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맹세를 이루려 하심이니라”(시9:5). 이것은 아담의 모든 후손들을 사망의 죄에서 구원하여 생명의 나라로 옮기시는 것은 아담 자손들이 하나님의 법을 잘 지키고 순종 잘했기 때문이 아니다. 영원 전에 삼위일명 여호와 사이에서 맺은 언약 때문이다. 모세는 이 신명기에서 이 사실을 깨닫게 하려고 열심히 말하였다. 출34:10을 읽으면 첫 돌비를 깨뜨린 후에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언약을 맺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것이 곧 새 언약에 관한 암시로서 영원 전에 삼위일명 여호와 사이에서 .맺은 언약을 실행하실 것을 나타내신 것이다. 이런 여호와 삼위 사이에 맺은 영원 전부터 있는 그 언약으로 인하여 오늘 우리는 구원받을 수 있다. “네가 가서 그 땅을 차지함은 네 공의로 말미암음도 아니며 네 마음이 정직함으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여호와께서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맹세를 이루려 하심이니라” 감사하고 감사한 일이다. 

 

<교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은 죄를 용서하시고 그들과 맺으신 언약을 재확인하시며 전심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명령하셨다. 

 

 

10월 25일(월) 나그네를 사랑하라

 

 이어지는 훈계 중에 모세는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하늘과 모든 하늘의 하늘과 땅과 그 위의 만물은 본래 네 하나님 여호와께 속한 것이로되”(신 10:14).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얼마나 강력한 표현인가! 이와 같은 개념은 성경 여러 곳에서 나타난다.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시 24:1). 

 

 신명기 10:17~19을 읽어 보라. 모세는 이곳에서 하나님에 관한 또 다른 어떤 선언을 하고 있는가? 더욱 중요한 것은, 이 선언의 결과로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들에게 어떤 명령을 하고 계시는가?

[신10:17~19]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신 가운데 신이시며 주 가운데 주시요 크고 능하시며 두려우신 하나님이시라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시며 뇌물을 받지 아니하시고 18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정의를 행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여 그에게 떡과 옷을 주시나니 19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전에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음이니라.

 

답: 하나님 여호와는 신 중에 신이시고 주 중에 주이시다 그러므로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너희도 애굽에서 나그네였었다.

 

 여호와 하나님은 하늘과 땅의 주권을 가지고 계신 분이실 뿐 아니라 “신 가운데 신이시며 주 가운데 주”이시다(신 10:17). 이 말은 주변 이방 민족들이 섬겼던 신들 가운데 하나님과 견줄 만한 다른 신이 있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이 말은 모든 신 위에 계신 하나님의 유일하심을 강조해서 나타내는 말이었다. “이제는 나 곧 내가 그인 줄 알라 나 외에는 신이 없도다”(신 32:39). 그것은 하늘과 땅에 존재하는 모든 권세 위에 있는 하나님의 완전한 우월성을 선언하는 것이다. 

 본문의 성경절은 이어서 이야기한다. “크고 능하시며 두려우신 하나님이시라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시며 뇌물을 받지 아니하시고.” 이 모든 설명은 다음과 같은 더 중요한 기별의 일부분이다. ‘여호와는 너희의 하나님이시며, 너희는 하나님의 백성들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그분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매우 강력한 대비를 발견하게 된다. 여호와는 모든 신 가운데 신이시며 주 가운데 주이시다. 그분은 또한 절대적인 주권을 가진 통치자이시며 만물을 붙들고 계신 분이시다(골 1:16, 17). 그런 하나님께서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 또한 돌보신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직접적인 필요를 채워 주심으로 그들을 향한 관심과 사랑을 보여주신다. 

 참새 한 마리가 땅에 떨어지는 것까지 관심을 가지고 돌보시는(마 10:29) 하나님께서는 사회에서 소외당하는 자들의 아픔을 잘 알고 계신다. 그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 것이었다. “너희는 선택받은 특별한 민족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다. 그런데 나는 너희 중에 있는 약한 자들과 도움이 필요한 자들 또한 사랑한다. 내가 그들을 사랑하는 것 같이 너희도 그들을 사랑해야 한다. 이것은 너와 내가 맺은 언약 가운데 너희가 지켜야 할 매우 중요한 의무이다.”

 

<묵상>

 시편 146:5~10을 읽어 보십시오. 이 시편의 기별은 무엇이며 그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져야 할까요?

[시146:5~10]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6 여호와는 천지와 바다와 그 중의 만물을 지으시며 영원히 진실함을 지키시며 7 억눌린 사람들을 위해 정의로 심판하시며 주린 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 이시로다 여호와께서는 갇힌 자들에게 자유를 주시는도다 8 여호와께서 맹인들의 눈을 여시며 여호와께서 비굴한 자들을 일으키시며 여호와께서 의인들을 사랑하시며 9 여호와께서 나그네들을 보호하시며 고아와 과부를 붙드시고 악인들의 길은 굽게 하시는도다 10 시온아 여호와는 영원히 다스리시고 네 하나님은 대대로 통치하시리로다 할렐루야.

 

답: 소외된 자들과 억눌린 자들과 고통당하는 자들을 돌보라는 의미이다.

 

<교훈> 사회에서 소외당하며 고통 중에 있는 자들을 기억하고 돌보시는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 또한 그렇게 하라고 명령하신다. 

 

<부가설명>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430년을 나그네로 지냈다. 단순히 나그네가 아니라 노예가 되어 지냈다. 그들은 나그네의 설움을 체험했다. 그러니 나그네 사정을 잘 알 것이다. 그러므로 나그네를 돌보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씀하신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그네와 종으로 지낸 것은 아담의 후손들이 이 죄의 세상에서 나그네와 죄의 종으로 지내는 것을 상징한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다 이 세상이 나그네 광야이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세상의 다른 나그네들을 돌보아 그들도 같은 고향에 갈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히11:13,14). 그래서 우리는 나그네로 지낼 동안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벧전1:17). 다른 나그네를 잘 돌보는 것도 두려움으로 지내는 믿음 생활이다. 그러므로 사회에서 소외당하는 사람들,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을 보살피라고 하신 것이다. 

 

 

10월 26일(화)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음이니라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전에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음이니라”(신 10:19).

 

 위의 말씀이 고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는 기별은 무엇인가? 이 말씀이 우리에게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답: 이스라엘 백성이 자기의 옛 신분을 기억하고 구원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라는 기별이다. 이것은 우리가 죄의 종이었던 신분을 기억하고 구원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라는 기별이 된다.

 

 수세기 전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창 15:13, 참조, 창 17:8, 행 13:17).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졌고, 출애굽기의 초반에 등장하는 애굽으로부터의 기적적인 구속(출 15:13)과 구원(출 14:13)의 이야기는 후대에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질 구속과 구원의 상징과 표상으로 주어졌다. 위의 성경절에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어디에 있었으며 어떤 신분이었는지를 기억하기를 바라셨다. 그들은 다른 땅에서 나그네로 살던 자들이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었다. “너희보다 강한 자들에 의해 억압받고 고통당하며 사회에서 소외당하고 무시당하며 종살이하던 때를 기억하라.” 비록 이스라엘이 하나님으로부터 선택 받은 “제사장 나라”(출 19:6)였지만, 비록 이스라엘이 그들 가운데 있는 나그네들과 다른 점이 있었지만, ‘인간의 권리’에 있어서는 나그네나, 과부나, 고아나 상관없이, 이스라엘 백성 자신들이 기대했던 똑같은 공정함과 정의로 취급받아야 했다. 

 

 마태복음 7:12을 읽어 보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 가운데 있는 연약한 자들을 어떻게 대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계시는가?

[마7: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답: 자기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것과 같이 대접하라고 하신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사회의 약자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신 내용은 고대 사회의 일반적인 모습과 엄청나게 달랐다. 고대 사회에서 사회적 약자들은 동물과도 같은 취급을 받았다.

 그러나 이방 나라들에 빛이 되라고 부름을 받은 이스라엘은 그들과 달라야 했다. 그들이 소외된 자들을 친절하게 대하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은 그들의 하나님과 그들이 가진 믿음이 이방 민족들의 것에 비해 얼마나 더 우월한지를 보여 주는 강력한 증거가 될 것이었다. 이와 같은 삶을 통해 그들의 하나님을 드러내  보이며 사는 것은 바로 그들의 존재 이유 중 하나였다.

 

<묵상>

 마태복음 25:31~46에 기록된 양과 염소의 비유를 묵상해 보십시오.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하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 비유가 주는 기별은 무엇입니까?

 

답: 소외되고 고통 당하는 사람들을 진심으로 돌보는 삶을 하라는 기별이다. 

 

<부가설명> 솔직히 말하면 남루한 옷을 입고 몸에서 고약한 냄새가 나는 사람들을 집에 들여 잠재워주며 음식 대접한다는 것은 엄청나게 역겨운 경험을 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을 대접하는 것은 아마도 가능하면 시설들을 설비한 곳으로 안내하는 것이 현실적일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도 주님의 구원의 대상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그들에게도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며 나그네와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는 방법이 아닌가 생각된다. 영원한 나라에는 소외되고 고난당하는 사람이 없다. 이 죄의 세상에서는 그런 경험을 하더라도 주님의 나라에서는 사랑과 행복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예수님을 믿게 하는 것이 그들을 진심으로 돌보는 방법이 아니겠는가? 생명의 복음은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증거 되어야 할 하나님의 사랑이기 때문이다. 

 

<교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 가운데 있는 약자들을 친절하게 대함으로 하나님을 드러내며 그들의 존재 이유를 증명하기를 기대하셨다.

 

 

10월 27일(수) 공정하게 판단하라

 

 믿는 자들로서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을 반사하라고 부름을 받았다. 바울은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갈 4:19)라고 기록했다. 비록 후에 죄로 인해 훼손되기는 했지만 우리는 본래 “하나님의 형상”(창 1:27)에 따라 만들어졌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모세는 하나님의 능력과 위엄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하나님께서는 뇌물을 받지 아니하시고 약한 자들과 소외된 자들을 돌보신다고 이야기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다면 우리 또한 그와 같이 행해야 한다.

 

 신명기에 등장하는 다음 성경절들을 읽어 보라. 여기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주제는 무엇인가?

신 1:16 내가 그 때에 너희의 재판장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너희의 형제 중에서 송사를 들을 때에 쌍방간에 공정히 판결할 것이며 그들 중에 있는 타국인에게도 그리 할 것이라.

신 16:19 너는 재판을 굽게 하지 말며 사람을 외모로 보지 말며 또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지혜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인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

신 24:17 너는 객이나 고아의 송사를 억울하게 하지 말며 과부의 옷을 전당 잡지 말라.

신 27:19 객이나 고아나 과부의 송사를 억울하게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답: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재판하라는 것이다. 

 

 약한 자들과 가난한 자들과 소외당하는 자들이 돈 많고 힘 있고 연줄 있는 사람들과 같은 종류의 ‘정의’를 경험하지 못한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헌법을 포함한 기타 여러 법률에 정의의 원칙과 공정성이 얼마나 분명히 명시되어 있는지와 상관없이, 나라와 시대와 문화를 망라해서 현실은 같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여기에 하신 말씀이 놀라운 것이다. 하나님을 드러내 보이기 위해 부름을 받은 이스라엘에는 세상에 만연한 불공정함이 존재해서는 안 될 것이었다. 오늘날의 표현을 빌리자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안에서 ‘법 아래 평등한 정의’가 실천되기를 원하셨다.

 하지만 이것은 법적인 공정함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레 19:2). 그들은 참된 하나님을 알고 있었고, 올바른 예배의 형식을 가지고 있었으며, 올바른 예물들을 가지고 왔다. 이 모든 것이 중요한 것들이다. 

 하지만 이 모든 옳은 것들을 행하면서 약한 자들과 가난한 자들을 공정하지 못하게 대한다면 그 좋은 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나님께서는 선지서에서 가난하고 도움이 필요한 자들을 억압하는 자들에게 반복해서 말씀하신다. 다른 사람을 억압하면서 어떻게 ‘거룩한’ 백성이 될 수 있겠는가? 종교적 의식을 아무리 잘 지킨다고 할지라도 결코, 그러할 수 없다.

 

<묵상>

 아모스 2:6, 4:1, 5:11, 이사야 3:14, 15, 10:1, 2, 예레미야 2:34을 읽어 보십시오. 선지자들이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이 말씀들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암2:6]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이스라엘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은을 받고 의인을 팔며 신 한 켤레를 받고 가난한 자를 팔며,

[암4:1] 사마리아의 산에 있는 바산의 암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는 힘 없는 자를 학대하며 가난한 자를 압제하며 가장에게 이르기를 술을 가져다가 우리로 마시게 하라 하는도다.

[암5:11] 너희가 힘없는 자를 밟고 그에게서 밀의 부당한 세를 거두었은즉 너희가 비록 다듬은 돌로 집을 건축하였으나 거기 거주하지 못할 것이요 아름다운 포도원을 가꾸었으나 그 포도주를 마시지 못하리라.

[사3:14,15]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장로들과 고관들을 심문하러 오시리니 포도원을 삼킨 자는 너희이며 가난한 자에게서 탈취한 물건이 너희의 집에 있도다 15 어찌하여 너희가 내 백성을 짓밟으며 가난한 자의 얼굴에 맷돌질하느냐 주 만군의 여호와 내가 말하였느니라 하시도다.

[사10:1,2] 불의한 법령을 만들며 불의한 말을 기록하며 2 가난한 자를 불공평하게 판결하여 가난한 내 백성의 권리를 박탈하며 과부에게 토색하고 고아의 것을 약탈하는 자는 화 있을진저,

[렘2:34] 또 네 옷단에는 죄 없는 가난한 자를 죽인 피가 묻었나니 그들이 담 구멍을 뚫었기 때문이 아니라 오직 이 모든 일 때문이니라.

 

답: 약하고 가난한 자들을 불공평하게 대하지 말고 멸시하지 말라는 경고인데, 오늘날에도 이런 사람들을 잘 돌보고 동일한 인격적 대우를 해야 한다.

 

<부가설명> 죄가 세상을 지배하면서 모든 사람들은 죽음의 이르는 병을 가지고 출생한 불치병 환자들이다. 그 죽는 시간이 다를 뿐, 건강하다는 사람도 죽는다는 사실은 면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은 다 죽을 병을 앓는 환자들이다. 이런 환자를 성경은 죄인이라고 한다. 사람의 시각으로는 죽을 때까지는 살아 있는 사람으로 보이지만 창조주 하나님의 시각에는 이미 죽은 자이다. 그래서 성경은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었다고 명시했다(고전15:22). 이 사람들은 호흡이 있는 동안 서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려는 욕망을 버리지 못한다. 그런데 예수님은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자리로 오셔서 죽음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어주셨다. 그리고 이렇게 죽음에 시달리는 고통당하는 사람들, 서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고 남을 끌어내리고 멸시하고 지배하려는 사람들을 생명의 나라로 옮기시려고 하신다. 그분께 나오면 그렇게 옮길 수 있다. 사람들을 이렇게 이끄는 것이 가난하고 멸시받고 소외당한 사람들을 돌보는 영적 봉사이다. 신명기의 이스라엘에게 명한 것도 궁극적으로는 이 진리를 실천하라는 것이 아니겠는가.

 

<교훈>

하나님께서는 올바른 종교적 행위가 그들을 거룩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품성을 닮은 삶의 실천이 참된 ‘거룩함’임을 가르쳐 주셨다.

 

 

10월 28일(목) 하나님 앞에 정결한 경건

 

 신명기 24:10~15을 읽어 보라. 우리의 지배 아래 있는 자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관하여 어떤 중요한 원칙들이 기록되어 있는가?

[신24:10~15] 네 이웃에게 무엇을 꾸어줄 때에 너는 그의 집에 들어가서 전당물을 취하지 말고 11 너는 밖에 서 있고 네게 꾸는 자가 전당물을 밖으로 가지고 나와서 네게 줄 것이며 12 그가 가난한 자이면 너는 그의 전당물을 가지고 자지 말고 13 해 질 때에 그 전당물을 반드시 그에게 돌려줄 것이라 그리하면 그가 그 옷을 입고 자며 너를 위하여 축복하리니 그 일이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네 공의로움이 되리라 14 곤궁하고 빈한한 품꾼은 너희 형제든지 네 땅 성문 안에 우거하는 객이든지 그를 학대하지 말며 15 그 품삯을 당일에 주고 해 진 후까지 미루지 말라 이는 그가 가난하므로 그 품삯을 간절히 바람이라 그가 너를 여호와께 호소하지 않게 하라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네게 죄가 될 것임이라.

 

답: 관대하고 인격적으로 대접하고 배려하는 정신을 대하라.

 

 우리는 다시 한번 인간의 존엄에 관해 관심을 가지시는 하나님을 보게 된다. 누군가가 너에게 빚을 졌으며 이제 갚을 때가 되었다고 하자. 비록 빚진 자이지만 상대를 존중하며 인격적으로 대하라. 집으로 쳐들어가 강요하지 말라. 대신 그 사람이 직접 밖으로 나와 갚을 수 있도록 밖에서 기다리라. 신명기 24:12, 13은 만일 가난한 자가 그의 옷을 ‘담보물’로 주거든 그것을 돌려주어 밤에 춥지 않게 잘 수 있도록 배려하라고 이야기한다. 

 다른 성경절은 주인을 위해 일하는 가난한 품꾼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관하여 이야기한다. 이들은 주인에 의해 너무나 쉽게 억압당할 수 있는 존재들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그들을 억압하는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극심한 죄이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이스라엘은 약한 자들과 소외된 자들에게 친절을 베풂으로, 오류와 우상 숭배와 악과 죄 가운데 빠진 세상을 향해 진리 가운데 행하는 거룩한 백성, 곧 하나님의 증인이 되어야 할 것이었다. 

 

 야고보서 1:27~2:11을 읽어 보라. 야고보는 하나님께서 신명기에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주신 말씀을 반사하는 어떤 말을 하고 있는가? 야고보가 이 말씀에서 가난한 자를 불의하게 대하는 것과 십계명을 연결 짓고 있는 것의 중요성은 무엇인가?

[약1:27~2:11]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2:1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2 만일 너희 회당에 금 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3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눈여겨 보고 말하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말하되 너는 거기 서 있든지 내 발등상 아래에 앉으라 하면 4 너희끼리 서로 차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 5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지 아니하셨느냐 6 너희는 도리어 가난한 자를 업신여겼도다 부자는 너희를 억압하며 법정으로 끌고 가지 아니하느냐 7 그들은 너희에게 대하여 일컫는 바 그 아름다운 이름을 비방하지 아니하느냐 8 너희가 만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의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9 만일 너희가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법자로 정죄하리라 10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11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

 

답: 가난한 자들을 대우하고 멸시하지 말라고 권고하면서 그것이 이웃 사랑하기를 자기 몸과 같이하는 길이라고 말하고 그것을 구체적으로 가르쳐준 것이 십계명이라고 말한다. 

 

 비록 십계명 자체가 부자와 가난한 자를 차별하는 것에 관해 직접적인 언급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율법은 문자 그대로 엄격하게 지키면서 가난한 자를 불의하게 대하는 것은, 믿음과 계명을 철저히 지킨다는 주장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것이다.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율법의 가장 높은 차원의 표현이다. 이와 같이 실천하는 것은, 모세가 거룩한 땅의 경계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야기했던 때와 마찬가지로, 또한 야고보의 때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매우 중요한 현대 진리이다.

 

<묵상> 

 하나님의 율법을 지킨다고 자부하는 우리 재림 성도들이 야고보서와 신명기에 기록된 말씀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실천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야고보서에 기록된 것과 같이, 우리가 율법을 지키는 것이 우리 가운데 있는 가난하고 연약한 자들을 돕게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답: 하나님의 참된 백성은 예수님의 생명으로 살기 때문에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본질적 삶이 되어야 한다(요일3:14). 예수님은 세상에서 가난하고 약한 자들을 잘 돌보시고 그들이 필요를 공급하셨다. 그것이 그들이 섬기는 하나님을 바르게 증거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부가설명> 경건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정신을 나타내는 것이다. 두렵다는 말은 공포를 뜻하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을 하나님답게 대하는 태도를 뜻한다. 옛날 신하들이나 평민들이 왕을 대할 때 나타내는 태도와 비교하여 이해할 수 있다. 가난한 자나 비천한 자나 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존재들이다. 그들의 생명과 존재나 부자나 권력자의 생명과 존재는 생명과 존재라는 입장에서는 동일하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생명과 존재를 똑같이 보신다. 그러므로 가난하고 비천한 자들을 무시하는 것은 그분을 창조하신 창조주를 무시하는 것과 같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지위와 재물과 학식이 많은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사람에게 생명을 주셔서 존재하게 하셨기 때문에 그런 관점에서 사람을 대하신다. 그리스도인들도 마땅히 그런 하나님의 정신으로 사람을 대하도록 성령님의 감화와 지도를 구해야 할 것이다. 

 

<교훈>

이스라엘은 약한 자들과 소외된 자들에게 친절을 베풂으로, 오류와 죄악 가운데 있는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증인이 되라는 부르심을 받았다. 

 

 

10월 29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다윗과 솔로몬이 통치하던 때와 같은 이스라엘 역사 최고의 시기에도, 하나님으로부터 큰 축복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 가운데 있던 가난하고 연약하고 소외된 자들을 억압하며 살았다는 것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너희가 힘없는 자를 밟고 그에게서 밀의 부당한 세를 거두었은즉 

너희가 비록 다듬은 돌로 집을 건축하였으나 거기 거주하지 못할 것이요 

아름다운 포도원을 가꾸었으나 그 포도주를 마시지 못하리라

너희의 허물이 많고 죄악이 무거움을 내가 아노라 

너희는 의인을 학대하며 뇌물을 받고 

성문에서 가난한 자를 억울하게 하는 자로다”(암 5:11, 12).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장로들과 고관들을 심문하러 오시리니 

포도원을 삼킨 자는 너희이며 

가난한 자에게서 탈취한 물건이 너희의 집에 있도다”(사 3:14).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이스라엘은 그들 또한 애굽에서 ‘나그네’였음을 기억해야 했다. 이는 그들이 그들 중에 있는 나그네들과 소외된 자들을 그들이 애굽에서 있을 때 그들이 대우받고 싶었던 대로 대우해야 할 이유였다. 이와 같은 사실은 예수님의 피로 우리 모두가 죄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났다고 이야기하는 복음과 어떻게 연결되는가?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이루어 주신 일들이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들을 대하는 데 영향을 주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 세상 모든 사람들은 다 죄의 종으로서 예수님을 믿을 때 죄의 속박에서 자유를 얻는 것이 옛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종노릇하다가 해방된 것으로 상징했기 때문이다. 

 

2. 우리는 올바른 날에 예배드릴 수 있고 죽음과 지옥 그리고 짐승의 표와 같은 다양한 교리들에 관한 진리를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부당하게 취급하거나 불공정하게 대한다면 그 모든 올바른 이해가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우리가 가진 진리를 아는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의 전부라고 착각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진리를 아는 것에 만족하는 것이 우리에게 위험한 덫이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 지식은 교만하게 하는 덫이 될 수 있다(고전8:1). 우리는 진리를 생활화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다. 

 

3. 오늘날 흔히 ‘인권’이라고 불리는 것을 이해하는 데 있어 우리의 믿음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 인권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대우하는 정신으로 사람을 대할 때 세워지는 것이다. 창조의 섭리를 거스르는 제도를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만들고 강요하는 것은 합밥작 제도를 만들어 인권을 유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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