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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과 모세의 역사 수업(질문, 대답, 설명) 10/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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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1-10-02 06:24 조회5,41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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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과 모세의 역사 수업

(10월 9일 안식일 / 오후: 저녁 6시 4분)

 

연구 범위: 신 1~3장, 출 32:29~32, 민 14장, 엡 3:10, 창 15:1~16, 요 14:9.  

 

기억절: “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고전 10:3, 4).

 

 “이는 모세가...선포한 말씀이니라”(신 1:1). 신명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책의 첫 문장에서부터 모압 땅에서의 죽음에 이르기까지(신 34:5), 신명기 전체에 걸쳐 모세의 존재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사실 신명기는 성경의 다른 모든 책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에 관한 책이다. 왜냐하면, 그분이야말로 우리를 창조하셨고(창 1, 2장, 요 1:1~3), 붙드시며(골 1:15~17, 히 1:3), 구원하시는(사 41:14, 딛 2:14) 분이시기 때문이다. 신명기는 구속의 역사 가운데 매우 중요한 이 시기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계속해서 당신의 백성들을 창조하시고, 붙드시며, 구원하시는지를 보여 준다. 

 마침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에 앞서, 모세는 성경 전체에 걸쳐 반복되고 있는 주제를 가지고 그들 앞에서 역사 수업을 진행하였는데 그 핵심은 하나님께서 과거에 너희에게 어떤 일을 행하셨는지 잊지 말라는 것이었다.

 이 경고는 더 나은 약속의 땅의 경계에 서 있는 우리에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와야 한다.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를 인도해 오신 길과 우리의 과거 역사를 통하여 주신 그분의 가르침을 잊어버리는 것 외에는 미래를 위하여 두려워할 것이 전혀 없다”(엘렌 G. 화잇 자서전, 196).

 

*학습 목표

- 깨닫기

 필요에 따라 이스라엘 백성들을 선하게 인도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는다.

- 느끼기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인도하고 계심을 믿고 감사한다.

- 행하기

 우리의 삶 속에 항상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아간다.

 

TMI 위로

2. 하나님께서 모세를 크게 사용하실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출 32:29~32)

※ 그는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다.

3. 신명기의 시작을 알리는 “마흔째 해”의 예언적 중요성은 무엇입니까?(신 1:3) 

※ 예언의 성취를 확인하는 말씀이다. 

4.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을 보다 더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모세가 취한 조치는 무엇이었습니까?(신 1:12~17)

※ 조직하는 것이다.

5. 가데스 바네아에서 반역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모세는 무엇이라고 중재했습니까?(민 14:13~20)

※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이름을 위하여 그들을 사하시기를 간구했다. 즉 그들의 죄를 하나님께서 취하여주시기를 간구했다.

6. 이해하기 힘든 하나님의 모습을 성경에서 발견하게 될 때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사 55:8, 9)

※ 하나님의 생각과 길은 인간의 생각과 길과는 하늘과 땅 차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전3:11 후반을 읽어보라).

 

결론

모세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에 앞서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했던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설명했습니다. 그 사실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이 새로운 땅에서 그들의 힘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삶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하고 기억하는 것이 우리의 힘입니다. 

 

 

10월 3일(일) 모세의 사역

 

 성경 전체에서 모세의 존재감이 느껴진다. 비록 출애굽기 2:2에 이르기까지 그의 이름이 언급되고 있지는 않지만, 그는 우리가 누구이며, 우리가 어떻게 이곳에 이르게 되었으며, 우리가 사는 곳이 왜 이렇게 나쁘게 변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왜 소망을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해, 하나님의 권세에 대한 가장 기본이 되는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는 창세기의 저자이다. 창조, 타락, 구원의 약속, 홍수, 아브라함 그리고 복음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주제들은 창세기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데 그 책의 저자가 바로 모세다. 비록 실수도 있었지만,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했고 그분을 위해 봉사하고자 했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헌신했던 이 한 사람의 영향력을 온전히 측정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금송아지를 만드는 심각한 죄 이후에 하나님과 모세가 나눈 대화가 기록되어 있는 출애굽기 32:29~32을 읽어 보라. 이 이야기는 모세의 성품에 대해 무엇을 말하는가? 그가 가진 결함들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를 크게 사용하실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출32:29~32] 모세가 이르되 각 사람이 자기의 아들과 자기의 형제를 쳤으니 오늘 여호와께 헌신하게 되었느니라 그가 오늘 너희에게 복을 내리시리라 30 이튿날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큰 죄를 범하였도다 내가 이제 여호와께로 올라가노니 혹 너희를 위하여 속죄가 될까 하노라 하고 31 모세가 여호와께로 다시 나아가 여짜오되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 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32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답: 모세는 자기가 인도하는 백성들을 위하여 기꺼이 희생하려는 자비의 성품을 가진 사람이었다.

 

 비록 모세는 그 죄와 아무런 상관이 없었지만, 큰 죄를 지은 백성들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내놓을 각오로 중재하였다. 출애굽기 32:32에서 모세가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나사)”라고 하나님께 간구했을 때, 여기서 사용된 동사는 ‘떠맡다, 감당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죄의 무게와 그 죄를 속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이해하고 있던 모세는 하나님께 그들의 죄를 ‘감당해’ 달라고 부탁했던 것이다. 그가 그렇게 부탁했던 이유는 그들의 죄, 또한 그 어떤 죄라 할지라도 용서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것뿐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경의 초반부에서부터 대속에 관한 매우 강력한 표현을 보게 된다. 하나님 자신이 인간의 몸을 쓰신 예수님을 통하여 죄의 모든 결과와 형벌을 직접 감당 하신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정부와 율법의 원칙에 충실하시면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미 정해 놓으셨던 방법이었다.

 수세기 후에 베드로는 예수님에 관해 이렇게 기록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벧전 2:24). 우리는 모세가 중보자로서 죄지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중재하는 이 이야기를 통해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하실 일을 보게 된다(참조, 히 7:25).

 

<묵상>

‘자기 백성들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는다’라는 말의 의미를 좀 더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이 말 속에서 다른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에 대해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까?

 

답: 모세의 간구는 우리를 대신하여 죽어주실 예수님의 구원사업을 표상하는 기도가 되었다. 진심으로 그들이 살기를 바라는 사랑이 없으면 그런 간구를 할 수 없다,

 

<부가설명> 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여러번 사양했다. 그가 나이가 많아지고 목자의 경험을 하면서 인간 능력의 한계를 절실히 깨달았을 것이다. 그가 40세 때 자기 혈기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려는 생각을 했었다(행7:23~29). 그러나 그의 행동은 실패로 끝나고 자기는 미디안으로 망명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서 40년 양을 치는 목자로 생활하면서 사람도 양떼를 돌보듯이 해야 한다는 것을 배운 것이다. 요즘 한국의 애완동물 돌보는 사람들 이야기를 티비나 유튜브를 보면 그렇게 조심스럽고 정성스럽게 돌볼 수가 없다. 부모님이나 자녀들을 그런 정성으로 돌볼까? 사람도 그런 정성으로 돌봐야 하는 존재들이다. 모세는 그렇게 창조주께서 그의 피조물들을 돌보신다는 진리를 깨달았다. 그렇게 반역 정신으로 하나님을 원망하고 모세를 원망하는 민족들을 그 황량하기까지 한 광야에서 인도하면서 양떼를 이끌던 그런 마음으로 정성과 온유와 자비로 이끌었다. 그것은 모세가 깨달은 하나님의 마음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그렇게 양육하셨다. 모세가 이스라엘의 허물을 자기의 허물처럼 여기고 하나님께 간구한 모습으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일하신 예수님의 사업을 나타낸 것이다. 하나님은 모세가 그렇게 일할 것을 아셨다. 그래서 예수님을 모세와 같은 선지자라고 표현하였다(신18:15). 

 

<교훈>

모세가 가진 여러 결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를 크게 사용하실 수 있었던 이유는 예수님을 닮은 그의 품성 때문이었다.

 

 

10월 4일(월) 성취된 예언

 

 현대 과학의 일부 오류에도 불구하고 과학은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에 관한 놀라운 통찰을 제공한다. 타락한 상태 속에서도 자연계의 많은 부분이 보여 주는 조화와 균형과 정확성은 그것을 공부하는 사람들을 계속해서 놀라게 한다.

 만약 하나님께서 물질적인 것들에 있어서 그렇게 정확하시다면, 영적인 것들에 있어서도 그러하실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신명기의 첫 구절에서부터 우리는 하나님의 놀라운 정확성을 살펴볼 수 있다. 

 

신명기 1:1~6을 읽어 보라. 신명기 1:3이 “마흔째 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의 예언적 중요성은 무엇인가?

[신1:1~6] 이는 모세가 요단 저쪽 숩 맞은편의 아라바 광야 곧 바란과 도벨과 라반과 하세롯과 디사합 사이에서 이스라엘 무리에게 선포한 말씀이니라 2 호렙 산에서 세일 산을 지나 가데스 바네아까지 열 하룻길이었더라 3 마흔째 해 열한째 달 그 달 첫째 날에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자기에게 주신 명령을 다 알렸으니 4 그 때는 모세가 헤스본에 거주하는 아모리 왕 시혼을 쳐죽이고 에드레이에서 아스다롯에 거주하는 바산 왕 옥을 쳐죽인 후라 5 모세가 요단 저쪽 모압 땅에서 이 율법을 설명하기 시작하였더라 일렀으되 6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호렙 산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여 이르시기를 너희가 이 산에 거주한 지 오래니,

 

답: 정탐꾼들이 40일 정탐한 것의 하루를 1년으로 환산해서 40년을 광야에서 지낼 것이라는 예언이 성취된 햇수를 말한 것이다. 

 

 모세가 가데스 바네아에서 정탐꾼을 보내어 땅을 정탐한 후, 백성들이 그 땅에 들어가기를 거절한 큰 실패 이후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그들은 자신들의 소망과는 달리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이 그 땅에 들어가기까지 얼마나 기다려야 했는가? “너희는 그 땅을 정탐한 날 수인 사십 일의 하루를 일 년으로 쳐서 그 사십 년간 너희의 죄악을 담당할지니 너희는 그제서야 내가 싫어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알리라 하셨다 하라”(민 14:34).

 그러므로 신명기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이야기를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던 마흔 번째 해에서부터 시작한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예언적 말씀은 하나님 자신만큼이나 신뢰할 만하다는 것인데, 우리는 신명기의 첫 구절에서 하나님의 신뢰성에 대한 확실한 증거를 보게 된다. 하나님은 하시겠다고 하신 것을, 그분이 행하시겠다고 하신 ‘때에’ 행하신다.

 물론 이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진 유일한 예언적 시간이 아니다. 예를 들어 오늘날 우리의 관점에서 돌아볼 때, 다니엘 9:24~27에 나타난 예수님과 관련된 시간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진 것을 볼 수 있다. 또, 단 8:14의 이천삼백 주야와 더불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단 7:25, 계 12:6, 14, 계 13:5) 역시 역사 속에서 성취된 것을 볼 수 있다.

 정확한 시간과 관련된 예언들 외에도, 세계의 역사를 정확하고 확실하게 예측한 다니엘 2, 7, 8장의 예언들은 하나님의 예지와 주권과 신뢰성에 관한 넘치는 증거를 제공한다.

 

<묵상>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든 예언들을 과거에 예고하신 대로 충실하게 이루셨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이 하나님께서 이루어지리라고 말씀하셨으나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들에 대해 확신을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답: 과거의 예언이 역사에서 성취된 것은 미래에 관한 예언도 그대로 성취될 것의 보증이 된다.

 

<부가설명> 성경의 예언은 예언(豫言)만이 아니다. 예언(預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預言은 하나님께서 선지자에게 말하라고 맡긴 말씀을 뜻한다. 과거 사건을 맡겼으면 과거의 일을, 현재 사실을 맡겼으면 현재의 일을, 미래의 사실을 맡겼으면 미래의 일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의 모든 말씀은 預言이다. 그러므로 성경의 예언을 豫言으로만 생각하면 너무 좁은 이해이다. 預言으로 이해해야 한다. 베드로는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벧후1:20,21)라고 기록하였다. 성경 말씀은 모두 預言이다. 그 중에 豫言이 있다. 특히 다니엘서 계시록의 예언은 주로 豫言이다. 선지자와 사도가 과거 사건을 중심으로 豫言한 것이 아니라 미래를 豫言한 것이다. 그것을 연구하면 우리에게는 과거가 된 말씀, 선지자가 기록할 때에는 먼 미래의 사건이 역사에서 정확하게 성취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처럼 미래의 豫言도 역사적 사건으로 확실히 성취될 것을 확신할 수 있다. 감사합니다. 

 

<교훈>

우리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이루시겠다고 하신 것들을 당신께서 정하신 때에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심을 믿을 수 있다. 

 

 

10월 5일(화) 천 배나 많게 하심

 

 광야에서의 긴 여정 끝에 모세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이야기했다. “내가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그들과 그들의 후손에게 주리라 한 땅이 너희 앞에 있으니 들어가서 그 땅을 차지할지니라”(신 1:8).

 그러나 그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보라.

 

신명기 1:9~11을 읽어 보라. 가데스 바네아에서의 반역으로 인해 그들이 형벌을 받고 있다는 관점에서 비추어 볼 때, 이 말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신1:9~11] 그 때에 내가 너희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는 홀로 너희의 짐을 질 수 없도다 10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번성하게 하셨으므로 너희가 오늘날 하늘의 별 같이 많거니와 11 너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현재보다 천 배나 많게 하시며 너희에게 허락하신 것과 같이 너희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답: 백성들의 불순종과 반역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광야를 인도하신 사실은 자비와 은혜로 돌보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고 죄의 세상의 그리스도인도 그처럼 돌보신다는 확신을 준다.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의 은혜의 또 다른 실례를 본다. 광야에서 방황하는 중에도 그들은 복을 받았다. “사십 년 동안 들에서 기르시되 부족함이 없게 하시므로 그 옷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사오며”(느 9:21).

 모세는 다시 한번 그의 백성에 대한 사랑을 보이면서, 하나님께서 이미 이루어 주신 것보다 천 배나 더 많게 하시기를 간구했다.

 

 신명기 1:12~17을 읽어 보라.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축복하신 것의 직접적인 결과로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그리고 그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모세는 어떤 조치를 취했는가? 

[신1:12~17] 그런즉 나 홀로 어찌 능히 너희의 괴로운 일과 너희의 힘겨운 일과 너희의 다투는 일을 담당할 수 있으랴 13 너희의 각 지파에서 지혜와 지식이 있는 인정 받는 자들을 택하라 내가 그들을 세워 너희 수령을 삼으리라 한즉 14 너희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기를 당신의 말씀대로 하는 것이 좋다 하기에 15 내가 너희 지파의 수령으로 지혜가 있고 인정 받는 자들을 취하여 너희의 수령을 삼되 곧 각 지파를 따라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과 조장을 삼고 16 내가 그 때에 너희의 재판장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너희의 형제 중에서 송사를 들을 때에 쌍방간에 공정히 판결할 것이며 그들 중에 있는 타국인에게도 그리 할 것이라 17 재판은 하나님께 속한 것인즉 너희는 재판할 때에 외모를 보지 말고 귀천을 차별 없이 듣고 사람의 낯을 두려워하지 말 것이며 스스로 결단하기 어려운 일이 있거든 내게로 돌리라 내가 들으리라 하였고,

 

답: 수가 많아서 모세 혼자 모든 일을 감당할 수 없어서 조직하여 책임을 분담하였다. 

 

 하나님의 강력한 임재 속에서도, 조직과 구조 그리고 책임을 나누기 위한 체계가 필요했다. 이스라엘은 조직된 총회(신 31:30)였으며, 이는 신약에 등장하는 교회(마 16:18)를 미리 보여 주는 것이었다. 비록 다른 상황 속에서 일했지만, 바울 역시 자신의 유대 배경을 발휘해 고린도전서 12장에서 마치 신명기에 등장하는 광야의 이스라엘 총회처럼, 자격을 갖춘 사람들에게 각기 다른 책임을 맡김으로써 몸이 올바르게 움직일 수 있게 하라고 설명한다. 

 오늘날의 교회도 당시의 총회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각자 받은 은사를 바탕으로 서로 다른 역할을 감당하며 하나로 연합된 몸이 되어야 한다. ‘조직화’한 종교에 대해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 특별히 신약에서는 조직된 교회를 분명히 인정하고 있다.

 

<묵상>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사명을 보다 더 효율적으로 감당하기 위해 조직을 갖추는 일이 왜 중요할까요?

 

<부가설명> 조직은 집단을 유기적으로 활동하게 하는 방법이다. 유기적이라는 것은 조직의 모든 요소가 한 목적을 위하여 존재하고 활동하는 것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유기체의 대표적인 것이 인체(人體)이다. 몸의 모든 구성이 다 사람이 생활한다는 한 목적에 집중되어 있다. 교회도 그런 유기체이다. 그래서 교회를 사람의 몸에 비유했다. 몸은 지체들로 이루어져있다. 이 지체들은 사람의 삶이라는 목적을 위하여 기능을 발휘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 사건을 보면 교회의 조직과 발전을 잘 예표하고 있다. 그들이 애굽에서 나오는 것은 사람이 죄의 세상에서 나교회로 나오는 것을 보여준다. 그들은 홍해를 건는 것은 침례를 표상한다(고전10:1~4). 광야 생활은 교회 생활을 표상한다(행7:38). 이 광야에서 조직했다(출18장). 초기 교회도 신자 수가 많아질 때 조직했다(행6장).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의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도록 구조를 갖추게 되었다. 몸은 지체가 건강해야 몸이 다 건강하다. 교회도 지체인 교인 개개인이 건강한 신앙인이 되어야 교회가 건강하다. 그래서 교회는 교회 자체의 건강을 위한 것과 전도하는 것을 겸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양육과 성장이다. 조직은 이것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이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도록 하셨고 조직에는 반드시 질서가 있다. 교회도 이 질서를 주님 안에서 진리로 수행해야 할 것이다. 

 

<교훈>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방황하는 중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을 축복하고 계셨으며 모세는 그 백성들을 효과적으로 지도하기 위해 조직을 구성하였다. 

 

 

10월 6일(수) 가데스 바네아

 

 가데스 바네아에서의 실패가 신명기 앞부분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이 불행한 이야기는 신명기의 직접적인 배경을 제공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 이야기를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민수기 14장을 읽어 보라. 백성들은 정탐꾼들의 보고에 어떻게 반응했으며 그러한 반응의 결과는 무엇이었는가?(참조, 신 1:20~46)

[민14장] 열두 정탐꾼이 가나안 정탐 후에 여호수아 갈렙 외의 열 사람이 정복할 수 없다고 한 사건이 기록되었다. 

[신1;20~46] 각자가 읽어보라. 민수기 14장 사건을 설명하는 내용이다. 이 사건과 관련하여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는 빌미가 발생했다고 말한다(신1:37).

 

답: 그 반응의 결과는 그들이 반응한대로 결과가 되었다. 즉 40년을 광야에서 방랑하였고 결국 그 세대 사람들은 다 죽고 그 자녀 세대가 모세의 말을 듣고 있다.

 

 우리는 이 이야기에서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지만, 그중에서도 민수기 14장에 등장하는 한 가지 교훈에 집중해 보기로 하자.

 

민수기 14:11~20을 읽어 보라. 우리는 다시 한번 중재자의 역할을 하고 있는 모세를 보게 되는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멸망시키지 말아야 하는 이유에 대하여 무엇이라 말하고 있는가? 그것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민14:11~20]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많은 이적을 행하였으나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 12 내가 전염병으로 그들을 쳐서 멸하고 네게 그들보다 크고 강한 나라를 이루게 하리라 13 모세가 여호와께 여짜오되 애굽인 중에서 주의 능력으로 이 백성을 인도하여 내셨거늘 그리하시면 그들이 듣고 14 이 땅 거주민에게 전하리이다 주 여호와께서 이 백성 중에 계심을 그들도 들었으니 곧 주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보이시며 주의 구름이 그들 위에 섰으며 주께서 낮에는 구름 기둥 가운데에서, 밤에는 불 기둥 가운데에서 그들 앞에 행하시는 것이니이다 15 이제 주께서 이 백성을 하나 같이 죽이시면 주의 명성을 들은 여러 나라가 말하여 이르기를 16 여호와가 이 백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에 인도할 능력이 없었으므로 광야에서 죽였다 하리이다 17 이제 구하옵나니 이미 말씀하신 대로 주의 큰 권능을 나타내옵소서 이르시기를 18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인자가 많아 죄악과 허물을 사하시나 형벌 받을 자는 결단코 사하지 아니하시고 아버지의 죄악을 자식에게 갚아 삼사대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19 구하옵나니 주의 인자의 광대하심을 따라 이 백성의 죄악을 사하시되 애굽에서부터 지금까지 이 백성을 사하신 것 같이 사하시옵소서 20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네 말대로 사하노라.

 

답: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을 멸시할 것이라고 말하였다. 모세가 한 이 말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행하신 일은 땅의 모든 민족이 아브라함과 그 후손을 통하여 복 받으리라는 약속을 실행하시는 과정이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근거가 된 호소이다. 

 

 모세가 하나님께 했던 말을 생각해 보라. ‘만약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 죽이시면 애굽 사람들과 주변에 있는 나라들의 사람들의 눈에 하나님이 어떻게 보일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 말이 중요한 이유는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하시고자 했던 모든 일들이 단지 이스라엘만을 위한 일이 아니라 모든 인류를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온 세계를 위한 빛이 되어야 했다. 고대 세계에 살고 있던 모든 사람에게 오직 참 하나님에게서만 발견할 수 있는 사랑과 능력과 구원을 드러내 보여야 했다.

 만약 모세가 말한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 이 백성을 다 쓸어 버리시면 그다음에는 어떤 일이 있겠는가? 그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 분명했다. “여호와가 이 백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에 인도할 능력이 없었으므로 광야에서 죽였다 하리이다”(민 14:16).

 다시 말해, 우리가 여기에서 보고 있는 것은 성경 전체에 걸쳐 발견되는 주제이다. 바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통해 영광받게 되실 것이라는 사실 말이다. 하나님의 영광과 선하심, 사랑과 권능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통해 하시는 일로써 하나님의 교회에서 드러나야 한다. 물론 당신의 백성들이 그런 존재가 되는 것이 늘 간단하게 이뤄지지는 않지만,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지상에 사는 당신의 백성들의 행동을 통해 영광받으실 것이다.

 

<묵상>

에베소서 3:10을 읽어 보십시오. 바울은 여기서 무엇이라 말하고 있으며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날까요? 어떻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가 온 우주에 나타나게 되나요? 

[엡3:10]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답: 교회가 복음을 전하여 모든 민족이 이 기별을 듣고 긍정적인 반응을 할 때 하나님이 창조와 구원으로 이루시는 사랑의 섭리를 온 우주가 볼 것이다.

 

<부가설명> 성경에 기록된 사실들, 역사뿐만 아니라 모든 말씀들은 아담 안에서 죽은 모든 사람을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생명적 사랑을 깨닫게 하시려는 것을 아는 것은 중요하다. 대부분의 교인이 구약에 기록된 원수를 진멸하고 이스라엘의 대적들을 멸절하라는 말씀들을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런 말씀들을 보면서 구약의 여호와는 아주 무섭고 잔인한 하나님이라고 오해한다. 기독교 역사에서는 2세기의 마르시온(마르키온 84년~160년)은 구약의 하나님은 악신이고 신약의 하나님은 선한 신으로서 서로 다른 신이라고 주장한 사람이다. 어쩌면 요즘도 마르시온의 사상을 가진 사람이 많을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을 가지는 것은 인간의 상태를 모르기 때문이다. 아담의 후손을 출생한 인간은 예외 없이 다 아담 안에서 죽은 자들이다. 다 시체들이라는 말이다. 생명의 하나님은 이렇게 시체가 되었으나 호흡이 끊어질 때까지만 활동하는 인간들에게 호흡이 끊어지기 전에 진정한 생명을 주어서 생명이신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행복한 삶을 누리자고 하는데 사람이 자기 실상을 몰라서 이 생명을 받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결국 그들은 생명으로 살아날 가능성이 전혀 없어졌을 때 하나님의 생명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감염시켜서 그들도 생명을 받지 못하게 할 것을 아시고 죽은 그들을 장례식하는 것이 진멸. 또는 멸절이라는 표현을 기록한 것이다. 그것은 우리나라에서 조류나 포유류가 유행병에 걸렸을 때 아직 호흡이 있어도 살처분하는 것과 같다고 비유할 수 있다. 주인은 눈물을 머금도 그 일을 한다. 다른 감염 안 된 동물을 위한 조치이다. 이것을 깨달으면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도리를 깨닫도록 하는 사건이요 말씀들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겔18:32, 33:11).

 

<교훈>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데스 바네아에서 반역하므로 죽을 위기에 처했으나 모세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백성들을 용서해 주시기를 간구했다.

 

 

10월 7일(목) 아모리 족속의 죄

 

 신명기 2장과 3장에서 모세는 계속해서 이스라엘의 지나온 역사를 이야기하며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로 그들이 적들을 물리쳤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들이 하나님께 신실하게 행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승리를 주셨다. “거인”처럼 큰 적들에게서도 말이다(신 2:11, 20, 신 3:13). 

 여기서 우리는 꼭 언급하고 넘어가야 하는 어려운 주제에 봉착하게 되는데 그것은 이 적들의 멸망에 관한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주 적들에게 먼저 평화를 제안했지만(신 20:10, 11), 만약 그들이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여자와 아이들을 포함하여 그들을 치고 진멸하였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를 우리에게 넘기시매 우리가 그와 그의 아들들과 그의 모든 백성을 쳤고 그때에 우리가 그의 모든 성읍을 점령하고 그의 각 성읍을 그 남녀와 유아와 함께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고 진멸하였고”(신 2:33, 34).

 어떤 사람들은 이 이야기들이 사실이 아니라고 둘러대며 이러한 주제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을 피하려고 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고(딤후 3:16) 믿기 때문에 그러한 태도는 우리 재림 성도들에게 적합한 것이 아니다. 

 

 창세기 15:1~16을 읽어 보라. 창세기 15:16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무엇이라 말씀하셨으며 그것이 이 어려운 주제를 다루는 데 있어 어떤 빛을 제공하는가?

[창15:1~16]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2 아브람이 이르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3 아브람이 또 이르되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내 집에서 길린 자가 내 상속자가 될 것이니이다 4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5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7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니라 8 그가 이르되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을 소유로 받을 것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9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위하여 삼 년 된 암소와 삼 년 된 암염소와 삼 년 된 숫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가져올지니라 10 아브람이 그 모든 것을 가져다가 그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고 그 새는 쪼개지 아니하였으며 11 솔개가 그 사체 위에 내릴 때에는 아브람이 쫓았더라 12 해 질 때에 아브람에게 깊은 잠이 임하고 큰 흑암과 두려움이 그에게 임하였더니 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14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15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16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답: 하나님께서는 이방들이 살 수 있는 기회를 넉넉히 주셨으나 그들이 죄악을 관영(차고 넘치게)하게 했기 때문에 그들을 살처분할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오래 참으셨으나 가능성이 없었다.(위의 부가설명을 참고하라) 

 

 많은 이방 나라들이 극도로 잔혹하고 사악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들은 이미 오래전에 하나님의 공정한 진노와 형벌을 마주했을 수도 있었다. 사실이 그러했다. 하나님께서 인내심을 가지고 그들이 악한 길에서 돌아서기를 기다려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변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 사실이 하나님께서 아이들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을 진멸하셨다는 사실을 바꾸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지금은, 그 사건의 배경에 대해 주어진 제한적인 정보를 바탕으로 이 참혹한 현실을 받아들이고, 이미 다른 방법으로 분명하게 나타나 보여진 하나님의 선하심을 신뢰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믿음은 그저 화창한 날에 싱그러운 숲속에서 보기 좋은 것들과 듣기 좋은 소리 가운데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믿음은 우리가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분을 신뢰하는 것이다.

 

<묵상>

고린도전서 10:1~4와 요한복음 14:9을 읽어 보라. 이 성경절들을 비롯하여 이와 유사한 내용의 성경절들은 우리가 이 말씀들과 상충 되는 상황들을 마주하게 될 때 우리로 하여금 여전히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와 선하심을 신뢰하도록 도와주는가? 

[고전10:1~4]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2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침례를 받고 3 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4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요14:9]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답: 하나님께서는 아담 자손들의 사망 상태를 알면서도 수명을 누리는 동안 생명 얻기를 인내로 기다리셨으나 그 한계가 지나서 살처분할 수밖에 없을 때 눈물을 머금고 살처분하신다. 

 

<부가설명> 수요일 부가설명에서 설명했으나 같은 주제가 목요일에도 있어서 첨가하여 설명할 필요를 느낀다. 성경은 아담의 모든 후손을 아담 안에서 죽었다고 했다(고전15:22). 그들은 살아간다고 하지만 실상은 죽어가는 것이다. 죽지 않을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다만 수명이 각각 다를 뿐이다. 그러니 살아가는 것이 곧 죽어가는 것이다. 그들은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극구 반대하여 사람들이 생명의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못하게 함으로 사람들을 사망의 길로 가도록 감염시키는 강한 사망병의 전염성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들은 생명을 가진 이스라엘 사람에게 사망병을 전염시켜서 이스라엘도 망하게 하는 존재들이다. 그래서 생명을 온세상에 전하기 위하여 사망병 전염을 예방하는 것이 그들을 멸절하게 하신 조치이다. 이것을 곰곰이 생각하면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을 알 것이다. 살아남지 못하고 주은 자들을 장례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도리를 깨달으려면 아담의 후손들은 살았다는 이름을 있지만 실상은 죽은 자들이라는 것을 인식해야만 한다. 이것을 인식하지 못하면 이런 기록을 올바르게 깨달을 수 없다. 오직 생명이신 예수님을 영접할 때만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게 된다(요5:24,25). 아래 영감의 교훈을 참고하라.

죄에 굳어진 자들을 끊어 버리시는 이유 - “여호와께서는 복수하기를 기뻐하지 않으시지만 그러나 당신의 율법을 범한 자들에게는, 지상의 거민들을 완전한 타락과 파멸에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형벌을 집행하실 수밖에 없으시다. 구원받아야 할 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여호와께서는 죄에 굳어진 자들을 끊어 버려야만 하셨다”(부조와 선지자, 628).

 

<교훈>

이방 나라들을 진멸하신 하나님의 모습을 온전히 설명할 길이 없지만 우리는 이미 주어진 빛 가운데 나타난 하나님의 선하심을 신뢰할 수 있다.

 

 

10월 8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사람을 포함한 모든 것들의 창조자이시며 모든 것의 통치자이신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원하시는 모든 것을 자유롭게 할 수 있으시다.…하나님의 길은 신비이다. 우리가 어떤 노력을 다한다고 할지라도 그분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에 우리 마음속에 품고 있는 모든 질문들 때문에 너무 고민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사야 55:8~9은 이런 우리에게 위안을 준다. 

 성경에 묘사된 가나안 민족들을 보면 그들이 매우 악했으며 그들을 진멸하신 것은 그들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나타낸다. 가나안 민족의 멸망은 하나님이 이렇게 하신 첫 번째도 마지막도 아니었다. 가나안 민족의 운명과 창세기 6~9장(노아의 가족 제외)에 나타난 인류의 운명은 규모와 방법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인들을 진멸하도록 하는 것을 모든 민족들에게 적용해야 하는 방침으로 정해두신 것은 아니다. 신명기 7:1은 그들이 진멸해야 할 민족에 관한 범위를 분명히 정해 주고 있다. 여기에 정해진 방침들을 아람, 에돔, 애굽 또는 그 어떤 민족에게도 똑같이 적용해서는 안 될 것이었다(신 20:10~18).

 가나안 민족은 모든 죄인들이 마주해야 할 운명을 경험하였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심판이었다.…하나님께서 가나안 민족을 진멸하신 것은 구속의 역사 가운데 꼭 필요한 과정이었다.…비록 가나안 모든 민족들이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되었지만, 그들에게는 적어도 멸망에 앞서 주어진 사십 년간의 경고가 있었다(수 2:8~11에 기록된 라합의 고백을 보라)”(Daniel I. Block, NIV 적용 주석: 신명기, 98, 99).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우리가 마음에 품고 있는 모든 질문들에 관한 답을 얻게 될 천년 간의 시간을 생각해 보라. 이러한 때가 분명히 있다는 사실을 믿는 믿음이 우리가 답할 수 없는 어려운 질문들이 있을지라도 여전히 하나님을 신뢰하는 데 어떻게 도움을 주는가?  

※ 하나님이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이신 것을 기억하라. 그분은 파괴하기 위하여 창조하신 것이 아니다. 심히 좋도록 창조한 그대로 유지하기를 원하신다. 그것을 끝까지 반대하고 대항하면 그들을 없앨 수밖에 없다. 그들의 생각과 삶이 그들의 죽음을 가져온 것일 뿐이다(렘6:19).

 

2. 다가올 미래에도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했던 과거의 경험이 있는가? 하나님께서 과거에 우리를 어떻게 인도하셨는지를 기억하는 것이 왜 중요한가?

※ 그렇다면 미래도 그렇게 인도하실 것을 믿을 수 있는 경험이 되기 때문이다. 

 

3. 자신의 목숨을 걸고 백성들을 위해 중재했던 모세의 모습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 그렇게 하면서까지 누군가의 구원을 위해 헌신하는 것은 과연 필요한 일인가? 

※ 생명이 있는 사람은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기 위하여 최선을 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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