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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과 생명을 선택하라(질문, 대답, 설명) 1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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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1-11-15 18:40 조회5,47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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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과 생명을 선택하라

(11월 20일 안식일 / 일몰: 오후 5시 18분)

 

연구 범위: 창 2:8, 9, 롬 6:23, 요일 5:12, 신 30:1~20, 신 4:19, 계 14:6~12

기억절: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신 30:19).

 

 스물두 살밖에 되지 않은 샌디(Sandy)는 뇌종양 진단을 받았다. 현대 의학의 놀라운 발전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살리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샌디는 죽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계획을 세웠다. 그녀가 죽게 되면 그녀의 뇌세포를 보존하기 위해 그녀의 머리를 급속 냉동고에 있는 큰 질소액 통에 담가 두는 것이었다. 그리고 기술이 발달하여 수많은 신경으로 연결된 그녀의 뇌 정보가 컴퓨터로 옮겨져 새로운 생명을 만들어 낼 수 있을 때까지 그곳에 보관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그녀는 영원히 살게 될 것이었다. 

 이 얼마나 슬픈 이야기인가. 단순히 젊은 여인이 일찍 죽게 되었다는 사실 때문만이 아니라, 그녀가 그녀의 인생의 소망을 어디에 두었는가 하는 사실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샌디는 죽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살고 싶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녀는 결국에는 이루어지지 못할 곳에 그녀의 소망을 두었다.

 우리는 이번 주에도 계속해서 신명기를 공부하면서 생명을 선택한다는 것, 그리고 바로 그 생명을 만드시고 유지해 주시는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시는 선택의 기회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학습 목표

- 깨닫기

  모든 사람이 생명과 죽음, 축복과 저주, 선과 악 사이에서 분명한 선택을 해야 함을 깨닫는다.

- 느끼기

 우리가 생명을 선택하기를 간절히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느껴 본다.

- 행하기

 하나님을 향한 사랑으로 생명을 선택하고 참되신 하나님만 경배하며 살아간다.

 

TMI 위로

2. 하나님께서 그의 존재와 관련하여 아담에게 주신 선택지는 무엇이었습니까?(창 2:15~17)

※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두셨다.

3.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선택의 핵심은 무엇입니까?(요 3:16, 롬 6:23, 요일 5:12)

※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다. 

4. 올바른 선택을 하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필요한 마음은 무엇이었습니까?(신 30:20)

※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에게 의지하는 것이다.

5.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명령의 특징은 무엇입니까?(신 30:11~14)

※ 선택하라는 것이다. (결정하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6. 거짓 신을 섬기는 것과 거짓 경배에 대하여 무엇이라 말씀하셨습니까?(신 8:19, 30:17, 18)

※ 반드시 멸망할 것이라고 하셨다.

 

결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생명을 택하라고 호소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선택은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할 때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같은 호소를 하십니다. 생명과 죽음, 축복과 저주, 선과 악 사이에서 우리의 선택이 마침내 우리가 어떤 운명을 맞이하게 될지 결정할 것입니다.

 

 

11월 14일(일) 생명나무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달라고 스스로 요청해서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담과 하와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모든 피조물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그들 또한 하나님으로부터 창조함을 받겠다고 선택하지 않았다. 돌멩이처럼 존재하기만 하는 사물이나 아메바처럼 존재에 더해 생명을 갖고 있는 것과 달리,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이성적인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로 창조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 스스로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들로 창조되고자 선택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선택이 있다. 그것은 바로 그분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가진 존재들로 남아 있기로 선택하는 것이다. 이 선택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다. 

 

 창세기 2:8, 9, 15~17과 창세기 3:22, 23을 읽어 보라. 그의 존재와 관련하여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어떤 두 가지 선택을 제시하셨는가?

[창2:8,9,15~17]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고 9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15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1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3:22,23]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23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

 

답: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않으면 영생하고 먹으면 이 영생의 생명을 잃고 죽는다.

 

 “에덴동산의 중앙에는 생명나무가 자라고 있었는데 그 열매는 생명을 영원히 지속시키는 능력이 있었다. 만일 아담이 하나님께 계속해서 순종하였을 것 같으면 그는 끊임없이 자유롭게 그 나무에 접근하여 영원히 살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죄를 범하자 그는 생명나무에 나아갈 길이 끊어져 죽음에 굴복하게 되었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는 하나님의 선고는 완전한 생명의 파멸을 알려 준다”(각 시대의 대쟁투, 532, 533).

 성경은 맨 처음부터 우리에게 오직 두 가지 선택만을 제시한다. 우리가 본래 누리기로 되어 있던 영원한 생명 혹은, 우리가 처음 오기 전의 아무것도 아닌 상태로 돌아가는 영원한 죽음이 그것이다.

 영원한 생명을 준다고 기록된 ‘생명나무’가 성경의 첫 번째 책에 등장했다가 성경의 마지막 책에서 다시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계 2:7과 계 22:2, 14을 읽어 보라. 여기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이러한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본래 생명나무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으나 죄로 인해 그 권한을 잃게 되었다. 하지만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진 구원의 계획에 따라 마침내 죄의 문제가 완전하게 해결되면, 생명을 선택한 구원받은 자들에게는 처음 계획되었던 바와 같이 생명나무에 접근할 권한이 다시 주어질 것이다.

 

<묵상>

인류는 죄로 인해 생명나무에 접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 다시 생명 나무에 접근할 수 있게 될까요? 

 

답: 생명의 부활한 후에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생명나무에 나갈 수 있다.

 

<부가설명> 하늘나라에서는 생명나무 실과를 먹어야 영생하는 것이 아니다. 첫째 부활인 생명의 부활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부활할 때 죽지 않을 몸으로 부활한다. 생명과를 안 먹어도 영생하는 것이다. “저 세상과 및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받은 자들은 장가 가고 시집 가는 일이 없으며 그들은 다시 죽을 수도 없나니 이는 천사와 동등이요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임이라”(눅20:35,36)라고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셨다. 부활할 때 생명의 부활을 하는 것이다(요5:18,19). 이 사람들이 영생하는 생명을 가진 사실을 하나님께서 시인하는 방법으로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과를 주셔서 먹게 하신다(계2:7). 생명과를 먹어야 영생하는 것이 아니고, 영생하는 생명을 가진 자만이 생명과를 먹는 특권을 누리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생명 강가의 생명나무에 나아가는 권세를 누리는 것이다(계22:14). 생명나무에 나아가는 것은 생명을 가진 사람들의 권세이다. 생명이 없는 사망의 존재가 생명나무 실과를 먹으면 그 사망에서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이 아닌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 그 나라의 낙원에서는 그렇다. 

 

<교훈>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생명을 선택함으로 그분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가진 존재들로 남아 있게 되기를 원하신다.

 

 

11월 15일(월) 중립 지대는 없음

 

 성경은 계속해서 우리에게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이야기한다. 두 가지 선택지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다음의 성경절들을 읽어 보라. 어떤 두 가지 선택이 직접적으로 또는 간접적으로 제시되고 있는가? 이 선택들이 어떤 방법으로 제시되고 있는가?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창 7:22, 23 육지에 있어 그 코에 생명의 기운의 숨이 있는 것은 다 죽었더라 23 지면의 모든 생물을 쓸어버리시니 곧 사람과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라 이들은 땅에서 쓸어버림을 당하였으되 오직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들만 남았더라. 

롬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롬 8: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요일 5:1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마 7:24~27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25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26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27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답: 생명과 사망이 제시되고 예수님을 믿든지 거절하는지 하는 것으로 결정된다.

 

 우리 인간들에게 중립 지대는 없다. 대쟁투가 완전히 마쳐지기 전에 죄, 사탄, 악, 불순종 그리고 반역은 완전히 근절될 것이다. 그 일이 있고 난 뒤에,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서 창세 전부터 세워 두신 계획에 따라 영원한 생명을 얻든지,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살후 1:9)라고 기록된 말씀과 같이 영원한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성경은 이 둘 외에 다른 어떤 선택지도 주지 않는다. 

 어떤 것이 우리의 운명이 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결국 우리 안에 있다. 우리 앞에 그 선택이 놓여 있다. 생명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죽음을 선택할 것인가?

   

<묵상>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계 2:10). 오늘 공부한 교과의 내용에 비추어 이 말씀의 의미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답: 예수님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을 받으려면 세상에 대하여, 죄에 대하여 죽어야 한다.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움을 알고 있는 사탄은 우리의 약점을 집요하게 공격하여 넘어뜨림으로 영원한 생명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고자 노력할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하나님께 끝까지 충성하기로 결심하고 매일의 선택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에 의지하여 믿음의 선한 싸움을 이어 간다면 분명 최후의 승리는 우리의 것이 될 것이며 마침내 우리를 위해 준비된 생명의 면류관을 받아 쓰게 될 것입니다.  

 

<부가설명> 성경적으로 생각하면 선택은 우리의 몫이 아니다. 이 교과 저자도 자기가 선택해서 출생한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성경에서 선택은 창조주의 권한으로 나타낸다. 아담 부부를 창조한 사실이나, 이 세상을 창조하고 에덴동산을 창설한 것이 모두 창조주의 선택이었다. 우리가 출생하는 것도 창조주의 선택이 아니겠는가? 여호와께서 성태하게 하시지 않으면 임신이 안 된 사실을 성경은 여러 번 기록하였다. 사람이 하나님의 선택을 거절하는 것이 사망이다. 하나님께서 아담 부부을 선택하시고 영생의 생명을 주셨다. 그런데 사탄의 유혹에 빠져서 하나님의 이 선택을 거절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선택 의지와 상관없이 아담 안에서 다 사망의 존재가 되었다(고전15:22). 이런 사망이 되어버린 사람을 생명으로 옮겨주기 위하여 창조주께서 또 다른 선택을 해주셨다.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분 안에서 우리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길 수 있게 되었다. 예수님은 세상의 구주로 보낸 것은 우리의 선택이 아니다. 그것도 창조주의 선택이다. 우리가 이 선택을 거절하는 것이 불신이다. 하나님의 이 선택을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이다.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선택에 맡기는 것이다. 그런 사람은 창조주께서 예수님 안에서 선택해주신 생명으로 옮긴다. 그것이 영생이다. 우리가 굳이 사망을 선택하지 않아도 이미 우리는 사망이 되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택으로 우리는 생명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얼마나 감사한가!

 

<교훈>

모든 사람은 결국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죽음이라는 선택지 앞에서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한다. 이 선택에 있어 중립 지대란 없다.

 

 

11월 16일(화) 생명과 선, 죽음과 악, 축복과 저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범하게 된다면 그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 것인지를 가르쳐 주는 긴 말씀을 마치고 난 후, 신명기 30장은 비록 그들이 불순종하여 포로로 끌려간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회복시키시고 그 땅으로 돌아오게 하시리라는 약속으로 시작된다. 물론, 그들이 회개하고 악한 길에서 돌아선다면 말이다.

 

 신명기 30:15~20을 읽어 보라. 이곳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제시된 선택은 무엇이었으며 그 선택은 성경 전체에서 발견되는 변치 않는 원칙을 어떻게 보여 주는가? 

[신30:15~20]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16 곧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차지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 17 그러나 네가 만일 마음을 돌이켜 듣지 아니하고 유혹을 받아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기면 18 내가 오늘 너희에게 선언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망할 것이라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차지할 땅에서 너희의 날이 길지 못할 것이니라 19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20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이시니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주하리라.

 

답: 생명과 복, 사망과 저주를 두었으니 생명을 택하라고 강권했다. 변치 않는 원칙은 하나님 편에 서서 생명을 택하라는 권고이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신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둘 중 하나를 선택하게 하시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에게 주신 선택과 같은 것이었다. 신명기 30:15에서 사용된 선(tov)과 악(ra‘)을 나타내는 히브리어는 창세기에서 선악과를 나타낼 때 사용된 것과 같은 단어이다. 성경 다른 모든 곳에서와 마찬가지로, 여기에는 중립 지대가 없다. 하나님을 섬김으로 생명을 선택하든지 아니면 죽음을 선택하든지 해야 했다. 이 같은 사실은 우리 모두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생명, 선 그리고 축복의 반대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죽음, 악, 그리고 저주이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오직 선과 생명과 축복을 제공하신다. 그러나 만일 그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돌아선다면 그와 반대되는 모든 나쁜 것들이 자연적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이 더 이상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하심을 받을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각 사람이 어떻게 이해하든 누구나 이 두 가지 선택지 앞에 서게 된다. 그리고 그 앞에서 자신이 가진 자유 의지에 따라 선택하게 된다. 

 여기서 무엇이 올바른 선택인지는 너무나 분명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떤 선택을 했는지 우리는 너무나 잘 안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그때에도 대쟁투는 매우 실제적이었으며,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경험을 통해 만일 우리가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전적으로 바치고 생명을 선택하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를 분명히 배워야 한다.

 

<묵상>

 신명기 30:20에 나타난 사랑과 순종의 관계를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하나님께 충성하기 위하여 이스라엘은 무엇을 해야 했습니까? 그와 같은 원리가 오늘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까요?

 

답: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라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고 그를 의지하는 것이다. 그들과 똑같이 적용된다.

 

<부가설명> 선택은 하나님이 하신다는 사실을 이 구절에서도 나타났다. 생명과 복, 사망과 저주를 하나님께서 그들 앞에 두셨다. 사람이 이것들을 선택하여 둔 것이 아니다. 이 선택은 하나님의 것이다. 굳이 사람들이 선택한다고 말한다면 하나님께서 선택해 두신 것을 고르는 것뿐이다. 성경 전체를 통하여 관통하는 사상은 창조주께서 모든 것을 다 하셨고 하시며 하시리라는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에 참여할 수 있다. 하나님의 하신 일을 받아들이든지 거절하든지 할 수 있다. 이것을 사람들은 사람들의 자유 선택, 또는 사람들의 자유의지의 사용이라고 말한다. 사람 중심의 사고방식이 아닌가? 그래서 선택도 사람이 하고 구원을 위하여 선을 행하는 노력도 사람이 해야 한다. 죄와 피흘리기까지 싸우는 것도 사람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히12:4).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하시고 사람들은 하나님이 하신 선한 일을 받든지 거절하든지 두 가지 반응을 할 수 있을 뿐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렇지 않은가? 하나님은 사람들이 생명과 복에 거하기를 열망하신다. 그런데 아담이 사탄의 말을 듣고 하나님을 떠나서 생명을 잃어버린 후에 사람들은 이미 사망과 저주 아래 있다. 사람이 사망과 저주를 선택할 필요가 없다. 이미 그 속에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예수님 안에서 생명과 선을 선택하셔서 우리 앞에 내 놓으시고 사망과 저주에 그대로 있지 말고 생명과 선으로 나오라고 하신다. 우리는 이 말씀대로 생명과 선으로 나오도록 예수님을 믿으면 된다. 

 

<교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축복과 저주의 길을 설명하신 후 중립 지대가 없는 선택을 요구하셨으며 그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이다. 

 

 

11월 17일(수)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신명기 30장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만일 그들이 회개하고 악한 길에서 돌아서면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 것인지를 가르쳐 주시는 말씀으로 시작된다. 

 

 신명기 30:1~10을 읽어 보라.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어떤 약속들을 주셨는가?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는가?

[신30:1~10] 내가 네게 진술한 모든 복과 저주가 네게 임하므로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로부터 쫓겨간 모든 나라 가운데서 이 일이 마음에서 기억이 나거든 2 너와 네 자손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와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한 것을 온전히 따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3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마음을 돌이키시고 너를 긍휼히 여기사 포로에서 돌아오게 하시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흩으신 그 모든 백성 중에서 너를 모으시리니 4 네 쫓겨간 자들이 하늘 가에 있을지라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거기서 너를 모으실 것이며 거기서부터 너를 이끄실 것이라 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네 조상들이 차지한 땅으로 돌아오게 하사 네게 다시 그것을 차지하게 하실 것이며 여호와께서 또 네게 선을 행하사 너를 네 조상들보다 더 번성하게 하실 것이며 6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너로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너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며 7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적군과 너를 미워하고 핍박하던 자에게 이 모든 저주를 내리게 하시리니 8 너는 돌아와 다시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 모든 명령을 행할 것이라 9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여 이 율법책에 기록된 그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고 네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여호와 네 하나님께 돌아오면 10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과 네 몸의 소생과 네 가축의 새끼와 네 토지 소산을 많게 하시고 네게 복을 주시되 곧 여호와께서 네 조상들을 기뻐하신 것과 같이 너를 다시 기뻐하사 네게 복을 주시리라.

 

답: 그들이 잘못해서 징계를 받았을지라도 마침내 다시 불러 주신 땅에서 번성하게 하실 것이다. 우리의 허물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유하시고 마침내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살게 하실 것을 나타낸다.

 

 이 말씀은 분명 그들에게 위안을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본문의 핵심은 그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명령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는 그 누구에게도 값싼 은혜를 제공하지 않으신다. 이 말씀은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 주고 있으며, 그 사랑에 대한 반응으로써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함으로 그들 또한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드러내 보여야 할 것이었다. 

 

 신명기 30:11~14을 읽어 보라. 이 성경절에 나타난 하나님의 약속은 무엇이며, 같은 약속을 보여 주는 신약의 말씀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시30:11~14]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한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 12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올라가 그의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하랴 할 것이 아니요 13 이것이 바다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바다를 건너가서 그의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하랴 할 것도 아니라 14 오직 그 말씀이 네게 매우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

 

답: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의 마음과 입에 있으므로 준행할 수 있는 쉬운 것이다. 

 

 아름다운 언어와 빈틈없는 논리로 표현된 호소에 집중해 보라.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어려운 것을 요구하고 계신 것이 결코 아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그들이 이해하기에 ‘어려운 것’도 아니요 ‘신비스러운 것’도 아니었다. 또한, 그것은 너무 멀어서 그들이 이루기에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하늘 멀리 또는 바다 멀리에 있어서 누군가가 그들을 위해 가져다주어야 하는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오직 그 말씀이 네게 매우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신 30:14). 이 말은 그들이 이미 하나님의 명령에 대해 잘 알고 있으므로 그들의 입으로 말할 수 있고, 그것이 이미 그들의 마음속에 있으므로 그것을 행해야 함을 이미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러므로 순종하지 않기 위해 핑계할 것이 없었다. “그가 명하는 모든 것은 다 할 수 있는 것들이다”(실물교훈, 333).

 이 말씀이 주어진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생명과 죽음, 축복과 저주 가운데서 선택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그리고 만약 그들이 은혜와 믿음으로 생명을 선택한다면, 그것이 그들에게 주어질 것이었다. 그것은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이다.

 

<묵상>

요한일서 5:3을 읽어 보십시오. 이 말씀에서 어떤 중요한 가르침을 얻을 수 있을까요?

[요일5:3]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답: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드러낸다. 계명을 지키는 것은 무거운 것이 아니다. 

 

<부가설명> 이미 앞의 어디서 인용했지만, 육체에 속한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법을 순종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롬8:7). 그러나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고 인정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법을 준행하는 것이 쉽다. 이유는 그것이 그들의 마음이고 그들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생명의 언어기 때문에 생명이 없는 사람은 결코 준행할 수 없다. 그것은 죽은 시체가 활동할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들은 무엇을 하든지 썩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성경은 그들을 썩어져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이라고 하였다(엡4:22). 그러나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 산 사람들은 하나님의 계명이 영생이기 때문에(요12:50, 한글킹 역) 그 생명의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다. 이 길을 벗어나서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것은 사망으로 떨어져서 다시 사망이 되는 것이다. “만일 그들이 주요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통해 세상의 오염에서 피했다가 다시 거기에 말려들고 패배하면 그들의 나중 결과가 처음보다 더 악화되나니 의의 길을 알고 난 뒤에 그들에게 전수된 거룩한 계명을 저버리는 것보다는 알지 못했던 편이 더 나았으리라”(벧후2:20,21 한글킹). 신명기 30:11~14은 이 진리를 계시한 말씀이다. 

 

<교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순종하라고 명령하신 것들은 결코 어렵거나 불가능한 것이 아니었다. 

 

 

11월 18일(목) 참된 경배에 관하여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언약 관계의 핵심은 경배였다. 이방 민족들이 여러 종류의 거짓 신들을 섬기고 있는 가운데 이스라엘 백성들만이 참 하나님께 경배하고 있었는데 이것은 그들을 그들 주변에 있는 다른 여러 민족들과 구별해 주는 특징이었다. “이제는 나 곧 내가 그인 줄 알라 나 외에는 신이 없도다”(신 32:39). 

 

 신명기 4:19, 8:19, 11:16, 30:17을 읽어 보라. 모든 성경절들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경고는 무엇인가? 이와 같은 경고가 이스라엘 민족에게 꼭 필요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신4:19] 또 그리하여 네가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어 해와 달과 별들, 하늘 위의 모든 천체 곧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천하 만민을 위하여 배정하신 것을 보고 미혹하여 그것에 경배하며 섬기지 말라.

[신8:19]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다른 신들을 따라 그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면 내가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멸망할 것이라.

[신11:16] 너희는 스스로 삼가라 두렵건대 마음에 미혹하여 돌이켜 다른 신들을 섬기며 그것에게 절하므로,

[신30:17] 그러나 네가 만일 마음을 돌이켜 듣지 아니하고 유혹을 받아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기면,

 

답: 여호와 외의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것이다. 이스라엘 주위의 이방 나라들이 다 우상숭배하는 나라들이기 때문에 그 영향을 받은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수천 년 전에도 하나님의 백성들은 동시대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표준과 전통과 개념들이 자신들의 신념과 충돌하는 문화와 환경 속에 살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늘 스스로 조심해야 했는데 그렇지 않으면 세상의 방법들과, 우상들과, 거짓 신들이 그들의 경배의 대상이 될 수 있었다.

 우리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신 4:24, 5:9, 6:15)이시며 오직 그분만이 우리의 창조주요 구원자로서 우리의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시다. 여기에서도 중립 지대는 결코 없다. 우리는 우리에게 생명과 선하심과 축복을 주시는 하나님을 경배하든지, 아니면 악과 저주와 죽음을 가져오는 거짓 신을 경배하든지 해야 한다.

 

 요한계시록 13:1~15을 읽으면서 이곳에서 경배에 관한 문제가 어떻게 언급되고 있는지 집중해서 살펴보라. 그리고서 이 말씀을 요한계시록 14:6~12과 비교해 보라. 신명기를 비롯한 성경 전체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거짓 경배에 대한 말씀이 이곳 요한계시록에서는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

[계13:1~15]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왕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신성 모독 하는 이름들이 있더라 2 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3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놀랍게 여겨 짐승을 따르고 4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이르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냐 누가 능히 이와 더불어 싸우리요 하더라 5 또 짐승이 과장되고 신성 모독을 말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두 달 동안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6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비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사는 자들을 비방하더라 7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8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9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지어다 10 사로잡힐 자는 사로잡혀 갈 것이요 칼에 죽을 자는 마땅히 칼에 죽을 것이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 11 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어린 양 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을 하더라 12 그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땅과 땅에 사는 자들을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 곧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니라 13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고 14 짐승 앞에서 받은 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15 그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계14:6~12]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주하는 자들 곧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7 그가 큰 음성으로 이르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의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 8 또 다른 천사 곧 둘째가 그 뒤를 따라 말하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에게 그의 음행으로 말미암아 진노의 포도주를 먹이던 자로다 하더라 9 또 다른 천사 곧 셋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이르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10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11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의 이름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12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답: 용과 짐승과 우상에게 경배하라는 것을 강요하는 세상이 될 것이다. 그럴 때 오직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므로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만을 경배하는 무리들이 있을 것이다. 

 

 각각의 상황은 다를 수 있으나 쟁점은 같다. 사람들이 참 하나님을 경배하고 생명을 얻을 것인가 아니면 주변의 노골적인, 혹은 보이지 않는 압력에 굴복하여 하나님께로부터 돌아서서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결국 개인의 선택에 달려 있다. 하나님께서는 고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강요하지 않으셨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강요하지 않으신다. 요한계시록 13장에서 보는 것과 같이 강요하는 것은 짐승과 짐승의 우상이 사용하는 방법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으로 역사하신다.

 

<묵상>

마지막 때가 가까워져 올수록 참된 경배가 대쟁투의 핵심이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답: 거짓 그리스도가 스스로 경배받으려고 모든 수단을 동원하기 때문이다. 

 

<부가설명> 아담이 생명에서 사망으로 떨어진 이후의 이 세상은 사탄의 왕국이 되었다. 사탄은 근본적으로 경배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는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어떤 피조물도 종교적 숭배나 경배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창조주만이 경배의 대상이다. 그분이 모든 존재와 생명의 근원이기 때문에 그분으로부터 존재와 생명을 부여받은 피조물들은 그분에게 경배하는 것이 당연하다. 조각(彫刻) 우상(偶像)을 사람이 만든다. 따지자면 그 우상 조각상들이 조각한 사람에게 경배하는 것이 옳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가 만든 그 조각상들에게 절하고 복을 빈다. 사람의 변명은 있다. 그 배후에 있는 신들에게 복을 비는 것이라고 한다. 그 신들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보이는 형상을 상징으로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타락한 사람은 신적인 영의 세계 존재들을 볼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조각하는 신상들은 주로 사람의 모양이다. 참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성경은 단언한다. “우상을 만드는 자와 그것을 의지하는 자가 다 그와 같으리로다”(시115:8). 만들어진 우상이나 그것을 만든 사람은 똑같은 물건들이라는 뜻이다. 예수님을 믿는 진정한 신자들은 자신을 우상으로 만들지 않아야 할 것이다. 

 

<교훈>

하나님께서는 시대를 초월하여 당신의 백성들 가운데 사랑으로 역사하셔서 참 하나님을 경배함으로 영원한 생명 가운데 거하라고 호소하신다.

 

 

11월 19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예나 지금이나 우리 모두에게는 선택의 기회가 주어졌다.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선택’이다. 사람이 태어나기도 전에 그 사람이 잃은 바 될 뿐 아니라,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당하도록 하나님께서 예정하셨다고 믿는 어떤 이해와는 달리, 성경은 생명과 죽음, 축복과 저주, 선과 악 사이에서 우리의 자유로운 선택이 우리가 마침내 어떤 운명을 맞이하게 될지를 결정한다고 가르친다. 그리고, 설령 누군가가 잘못된 선택을 하더라도, 그 결과가 꺼지지 않은 불못에서 영원히 고통당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죽음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은 얼마나 다행인가.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 6:23). 생명은 의인이 받을 유업이요 사망은 악인이 받을 몫이다. 모세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내가 오늘날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신 30:15)노라고 말하였다. 이 성경절에서 말하는 사망은 아담에게 선고된 사망이 아니다. 왜냐하면, 모든 인류는 아담의 범죄의 형벌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영생과 대조적인 위치에 있는 ‘둘째 사망’이다”(각 시대의 대쟁투, 544).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하나님께서 불순종한 사람에게 직접 형벌을 내리시는 것인지, 아니면 법을 위반한 경우 그에 따른 응분의 집행이 이뤄지는 것처럼 불순종의 결과가 나타나는 것인지, 아니면 둘 다 맞는지, 혹은 때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는지, 화요일 교과에 제시된 개념에 대해 함께 토의해 보라. 우리는 이 주제를 어떻게 이해하는가?

※ 하나님을 떠나면 그것이 사망이 된다. 사람의 존재와 생명과 행복과 평안은 모두 창조주께로부터 오는 것인데, 하나님을 떠나면 이것들이 다 절단된다. 결과가 고통과 불행과 전쟁과 사망이다. 이것은 자기 선택의 결과일 뿐이다. 

 

2.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본 엘렌 화잇의 글이 죄를 극복하도록 도와주는 하나님의 능력에 관하여 무엇을 가르쳐 주고 있는가?

※ 금요일에 있는 화잇의 글은 위에 있는 것인데, 하나님께서 복과 생명을 사람들 앞에 두셨다는 말을 뜻하는 것인가? 그 약속이 죄를 극복하는 하나님의 능력에 관한 표현으로 보는 것인지 필자도 무엇을 묻는지 잘 모르겠네요. 공부하는 분들이 좋은 답을 생각해보기 바란다.

 

3. 바울이 예수님 안에서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에 관하여 자세히 설명하면서 신명기 30:11~14을 인용하고 있는 로마서 10:1~10을 읽어 보라. 바울이 왜 신명기의 말씀을 인용했다고 생각하는가? 로마서 10:10에 특별히 주의를 기울여 보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바울이 어떤 주장을 하고 있는가?

※ 마음으로 믿는 것을 입으로 시인하게 된다는 것을 말한다. 신명기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과 입술에 있다고 하셨다.

 

4. 그대가 속한 문화와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만일 그대가 조심하지 않을 경우 빠질 가능성이 있는 잘못된 경배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 오락, 스포츠, 컴퓨터, 스마트폰, 잘못 주장하는 책들 등등 아주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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