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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기 제7과- 율법과 은혜 -(핵심 Q-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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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봉주 작성일21-11-10 01:20 조회2,83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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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7과 율법(律法)과 은혜(恩惠)>

                                                         (2021년11월13일(안) 17시23분)

 

<서언(序言)>

※.<신학(神學)은 성경(聖經)의 말씀 즉 단어(單語)를 공부(工夫)하는 학문(學問)으로써 문맥(文脈)과 말씀하는 위치(位置)에서 말씀하시는 분(하나님)의 전후(前後) 좌우(左右)의 뜻을 올바로 이해(理解)하지 않으면 자의(自意)대로 또는 잘못 듣거나 잘못 배운대로 해석(解釋)하여 정반대(正反對)의 해석(解釋)을 하기 때문에 오직 성경만을 바탕으로 한 올바른 신학(神學)이 필요(必要)한 것이다.>

 

<율법(律法)과 은혜(恩惠)>

 

○.율법(律法)이란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훈(敎訓)과 지시(指示)와 가르침의 명사(名詞)로써 율법(律法)을 히브리어로 토라(Torah)라고 하는데 흔히 모세오경과 십계명(十誡命)을 지칭(指稱)하고 있지만 성경에서 “율법(律法)”이라는 의미(意味)의 말씀으로 언급(言及)하고 있다.

 

율법(律法)이라는 말씀을 온전히 공부(工夫)하지 않으면 율법주의(律法主義)로 인식(認識)될 수 있기 때문에 잘 배워야 할 필요(必要)가 있는 것이다. 

 

○.율법(律法)은 “사랑의 울타리”인 것이다. 


  울타리는 보호(保護)의 개념(槪念)으로 생각하고, 담장은 통제(統制)의 개념(槪念=교도소(矯導所)으로 생각해보면 율법(律法)은 마치 울타리를 벗어나면 안전(安全)을 보장(保障)받기 어렵다는 것이지요, 즉 에덴동산에서 모든 것은 너희가 자유롭게 먹되 동산 중앙(東山中央)에 있는 선악과(善惡果)는 따먹지 말라는 울타리의 말씀(율법)을 주셨으며 선택(選擇)은 각자(各者)의 자유의지(自由意志)에 맡겼다. 결과(結果)는 하나님의 “사랑의 울타리” 이었는데 어떻게 되었는가?

 

○.율법(律法)이 주어진 목적(目的)은 무엇인가?

   (1).율법은 우리가 죄를 범하였음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다.

      만일 율법이 없었다면 사람은 죄가 무엇인지 모를 것이다 (갈 3:19)

   (2).(롬 3:20) 율법은 죄를 깨달음이니라. (거울과 같은 것이다)

 

○. 율법(律法)은 하나님께서 인간(人間)에게 주신 것으로 언약(言約)과 밀접(密接)한 관련(關聯)이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律法)에 순종(順從)하도록 요구(要求)되었다(레 18:5). 

 

  그러나 율법(律法)은 그 누구도 완벽하게 지킬 수 없었으며, 그러므로 인간은 공의(公義)로우신 하나님 앞에서 죄인으로 심판을 받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사랑하사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시어 율법을 친히 이루시고,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구원(救援)을 이루신 것이다. 

 

○.(갈라디아서 3:24) 율법은 단지 구원에 이르도록 그리스도께 우리를 인도하는 역할(役割)에 불과     (不過)하지, 직접(直接) 구원(救援)에 이르게 할 수 없다.

 

○.우리는 행위(行爲)나 율법(律法)으로 구원(救援)받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의(義)롭게 되는 것이다.

 

(갈 3:24)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引導)하는 초등교사(몽학선생(蒙學先生)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義)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은혜(恩惠)란 무엇인가?


   은혜(恩惠)란 우리의 죄를 용서(容恕)하시는 하나님의 자비(慈悲)이며 (롬 11:6), 

구원(救援)을 위해 우리에게 주시는 그리스도의 분에 넘치는 은혜(恩惠)를 말한다. 

 

은혜(恩惠)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값없이 주시는 것이다. 

율법 아래에서는 하나님은 의(義)로움을 요구하시나, 은혜(恩惠) 아래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義)로 우리를 의(義)롭게 하시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말씀대로 행(行)하는 자(者)는 누구나 영생(永生)을 얻을 수 있음이 바로 은혜(恩惠)인 것이다.

 

-율법(律法)은 죄인(罪人)을 정죄(定罪)하지만 은혜(恩惠)는 죄인(罪人)을 용서(容恕)합니다.

-율법은 “죄 값은 사망”이라고 말하나, 은혜는 “하나님의 은사(恩賜)는 영생(永生)”이라고 말합니다.

-율법은 인간의 죄를 드러내고 은혜는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냅니다.

-율법은 죄를 알게 하고 은혜(恩惠)는 구원(救援)의 사실(事實)을 알게 합니다.

 

(11월07일 (일) <하늘에 있는 법(法)>

 

(Q)~우주만물(宇宙萬物)가운데 특별히 인간들에게만 도덕적(道德的)인 존재(存在)들로 창조하셨다. 그렇다면 이들 인간들에게는 “(도덕법)”이 존재(存在)하여야 되겠는가. 그 근거(根據)와 필요성(必要性)은 무엇인가?

 

(A)~도덕적(道德的)인 존재(存在)로 창조(創造)된 인간들에게는 도덕법(道德法)이 존재(存在)할 수밖에 없으며 오직 도덕적인 존재만이 도덕법을 필요로 한다. 법(法)이 없다면 범죄(犯罪)도 있을 수 없으며, 법(法)이 있었기 때문에 타락(墮落)한 천사들이 있었고 죄악(罪惡) 세상이 존재(存在)하게 되었으며 이를 범(犯)하는 것은 곧 죄(罪)인 것입니다.

 

- 도덕법(道德法)이란? 


  德으로 가는 길을 알려주는 법칙으로.... 德이란 행복이란 단어와 동의어(同義語)다.

즉, 사람으로 하여금 행복하게 하기 위해 알려주는 法이다.(신10:13) = 십계명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면 그것이 완전한 것이고, 오늘날 표현으로 도덕적 善(선)이 되는 것이다.

 

 (11월08일 (월) <신명기(申命記)에 나타난 율법(律法)>

 

(Q)~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참으로 많은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 이에 모세가 가나안 땅을 코앞에 두고 이 백성들에게 거듭거듭 당부하는 말씀이 무엇이며 왜 그토록 반복하여 당부 하고 있는지를 설명해 보자.

 

 

(A)~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불순종(不順從)의 죄(罪)의 결과(結果)로 이들이 멸망(滅亡) 할 수밖에 없는 목이 곧은 백성들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사랑과 은혜(恩惠)로 이 백성을 구원(救援)하여 주셨다. 

 

이들의 가장 중요(重要)한 것은 사랑의 울타리가 되는 율법(律法)을 도외시(度外視)하고 묵살(黙殺)하였음으로 출애굽한 그들이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두 사람(여호수아와 갈렙)만 제외(除外)하고 그들은 다 죽었다. 이제 가나안을 눈앞에 두고 “모세”가 이들 2세와 후손(後孫)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들이 바로 <사랑의 율법(律法)에 순종(順從)하라고> 그래야 구원(救援)받는 다는 것을 강조(强調)하고 강조(强調)하여 “신명기(申命記)”에 무려 “율법”이라는 단어(單語)가 (창세기→계시록)까지 319회 가운데 신명기서에 <율법(律法) 22회, 규례(規例) 30회, 법도(法道) 20회>를 비중(比重)있게 기록(記錄)하고 있다.

 

그러므로 “신명기(申命記)”는 “은혜(恩惠)”와 “율법(律法)”의 관계(關係) “를 보여주는 거대한 실물교훈(實物敎訓)인 것이다. 율법(律法)에 순종(順從)하라는 말씀은 지금도 마찬가지 이다.

 

즉 신명기에 말씀하고 있는 율법(律法)은 구원(救援)받는  것이 필요한 법(法)으로 죄를 깨닫게 하여 주는 거울과 같은 기능과 역할로 십자가(十字架)의 은혜(恩惠)를 깨달은 때 순종으로 반응(反應)하게 되는 것이다.

 

-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다.

- 사람에게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할 능력을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 지금의 우리도 율법을 순종하는 것은 우리에게 은혜로 주어진 구원의 반응인 것이다. 

 

(11월09일 (화) <내 행복(幸福)을 위(爲)하여>

 

(Q)~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목적(目的)은 궁극적(窮極的)으로 무엇입니까?

 

(A)~⑴.하나님의 율법(律法)과 규례는 하나님의 사랑이 흘러넘친다. 이는 그들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고자 하나님의 사랑에서 비롯된 것으로 즉 순종하면 네 자신에게 행복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⑵.율법에는 하나님에 대한 의무(義務)와 이웃에 대한 의무(義務), 그리고 우리 자신(自身)에 대한 우리 의무(義務)가 가장 명료(明瞭)하게 지적(知的)되어 있음을 본다.

 

   ⑶.율법(律法)에는 우리 영혼(靈魂)의 성향(性向)과 애정(愛情)에서, 그리고 우리의 삶의 원칙(原則)과 관례(慣例)에서 오는 모든 행동(行動)속에서 우리가 하나님께 대하여 지킬 의무(義務)가 무엇인지를 가르치고 있다.

 

   ⑷.말씀의 한 예(例)로

나그네에게 친절(親切)하라고 그들에게 반복해서 계명(誡命)을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대 백성들은 이방인(異邦人)들에게 대한 뿌리 깊은 반감(反感)을 그대로 품고 있었고, 그들은 이방인(異邦人)들을 지독(至毒)하게 멸시(蔑視)했다. 그리하여 이방인(異邦人)들로 하나님의 은혜(恩惠)와 그리스도의 복음(福音)을 부러워하게 되었고, 그것이 유대 백성들 자신들에게는 치명적(致命的)인 파멸(破滅)을 초래(招來)했던 것이다.

 

   ⑸.<네 행복(幸福)을 위(爲)하여>

이스라엘의 구속주(救贖主)되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것을 요구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전 12:1, 고전 10:31).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결코 우리의 자유를 저해(沮害)하거나 율법조문(律法條文)으로 얽어매려는 요구(要求)가 아니라, 도리어 우리들에게 진정(眞正)한 삶의 의미(意味)와 복(福)된 길을 제공(提供)해 주려는 축복(祝福)의 방편임을 강조(强調)하고 있다(신명기 4:40, 5:29, 6:2, 8:2).”

 

하나님의 율법, 즉 십계명에 순종하는 것은 전적으로 그들의 유익을 위한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을 향한 사랑으로 율법을 주셨고, 그 율법에 순종하는 것은 그들 ‘자신의 행복을 위한’길이 될 것이다. 

 

(11월10일 (수) <애굽에서 종된 자>

 

(Q)~(신명기 5:6~22)에서 특히 네 번째 계명(誡命)과 그 계명(誡命)을 지켜야하는 이유(理由)에 대해 언급(言及)하는 의미(意味)가 무엇인지?

 

(A)~⑴.<네가…종이 되었더니>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하시는 모든 행동은 우리가 “기억(記憶)”해야 할 이유(理由), 다시 말해 이 사랑과 은혜(恩惠)의 돌보심에 반응(反應)하고 인식(認識)하고 감사(感謝)해야 할 이유(理由)들을 구성(構成)한다. 안식일(安息日)에는 피조물(被造物)과 그 창조주(創造主)사이의 직접적(直接的)이고도 개인적(個人的)인 교제(交際)를 방해(妨害)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피(避)하는 것이 하나님의 의도(意圖)이셨다. 안식일(安息日)은 하늘에 계신 우리의 아버지 “그 분을 아는 것이 곧 영생(永生)인”(요 17:3) 하나님과 더 친숙(親熟)해지는 특권(特權)을 누리는 그런 날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그 분을 사랑하는 것(요일 4:8), 그분을 존경(尊敬)하는 것, 그 분의 아버지로서의 선(善)하심(goodness)의 증거(證據)들에 감사(感謝)하는 것(롬 1:21)을 의미한다.

 

 ⑵.안식일은 창조(創造)와 구원(救援)을 기념하기 위해 유대인들에게 주어진 은혜(恩惠)의 언약(言約)이 포함(包含)되지 않은 사람들(종)은 물론이며 짐승까지도 쉼을 주어라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종살이 하였을 때 기억하고, 특히 안식일(安息日)은 창조(創造)의 상징(象徵)이 될 뿐만 아니라 구원(救援)과 은혜(恩惠)의 상징(象徵)임을 깨달을 때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은혜(恩惠)로 행(行)하신 일을 이제 그들이 다른 사람들을 위해 행(行)하여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신명기에는 안식일은 창조의 기념일로 지킬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애굽에서 종 된자를 구원해 내신 것을 기념하는 의미에서도 안식일을 지키라는 것이며, 이제 그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누는 날이 되어야 한다.

 

(11월11일 (목) <너희의 의(義)로움 때문이 아니라>

 

 (Q)~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救援)하신 것은 우리의 행위(行爲)때문이 아니고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구원(救援)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구원받은 자들의 그에 대한 반응은 어떻게 해야 할까?

 

 (A).~⑴.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떠난 후로 그들이 보인 악(惡)한 행동(行動)들은 자격(資格)과 가치(價値)가 있어서 그들에게 가나안이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말해 준다(9:7-27절).

     ⑵.이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깨달은 자는 순종의 삶을 살라고 명령하고 계신다.

 

     ⑶.믿음으로 말미암는 의(義)란?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구원(救援)하는 것은 우리 나 자신(自身)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임을 깨닫게 될 때 그들은 비로소 그리스도의 의(義)로 옷 입혀질 준비가 되었다는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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