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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기-제5과-(네 문안에 유하는 나그네)-(핵심 Q-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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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봉주 작성일21-10-27 12:58 조회2,89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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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4기 제5과 : 네 문(門)안에 유(留)하는 나그네>

                                                  (2021년10월30일(안)17시36분)

 

(10월24일(일) <너희는 마음에 할례(割禮)를 행(行)하고>

 

(Q)~(신명기 10:16)의 “마음에 할례(割禮)를 행(行)하고”의 의미(意味)는 무엇입니까?

 

(A)~ “할례(割禮)”(창 17:9~14)에서 할례(割禮)에 대한 기록(記錄)으로 할례가 갖는 특수한 의미는? 

◎.남아(男兒)의 출생 후(出生後) 생후(生後)8일째 되는 날 남성(男性)의 생식기(生殖器)의 머리 부분을 덮고있는 표피(表皮)를 베어내는 것을 말하며, 이에 의미(意味)로는

⑴.하나님의 언약(言約)에 대한 인간측(人間側)의 순종(順從)을 나타내는 표(標)이다.

⑵.아브라함의 자손(子孫)이라는 표(標)이다.

⑶.이스라엘 민족을 이방민족(異邦民族)과 구별(區別)하는 표이다.(삿 13:3; 삼상 17:26)

⑷.선민의식(選民意識)을 일깨움과 동시에 언약공동체(言約共同體)의 일원(一員)이 되는 것을 상징(象徵)하는 표이다.

⑸.여호와의 언약(言約)을 영원(永遠)히 기억(記憶)하게 하는 표이다.

⑹.신약시대(新約時代) 교회(敎會)의 침례(浸禮)에 대한 예표(豫表)이다.

 

◎.<마음에 할례(割禮)를 행(行)하고>는

⑴.(출 32:1~35)의금송아지 숭배 사건시에 모세의 중보기도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긍휼히 여기시고 언약의 회복을 약속하여 주신 때를 가리킨다(출 33:13-34:3). 

당시 백성들은 모세의 명을 따라(출 32:20) 금송아지를 불살라 부수어 가루를 만들고 그것을 물에 뿌린 후 그 물을 마시며 죄를 회개하였고, 또한 모세는 간절한 중보 기도로 하나님께 용서를 빌었다(신9:21, 25-29).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죄를 용서해 주셨는데, 이는 아무리 크고 흉악한 죄라도 진심으로 자신의 죄를 통회하며 하나님께 돌아오는 자는 긍휼히 여김을 받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욜 2:12).

⑵.그러나 두 번째 돌판은 모세가 준비(準備)하고 하나님은 다만 그것에 십계명(十誡命)만 새겨 주셨는데(2절), 이는 인간이 범죄(犯罪)한 후 회개(悔改)하면 비록 죄사(罪赦)함을 받아 회복(回復)은 되지만 그 흉(凶)터는 남는다는 사실을 교훈(敎訓)해 준다(출 34:1).

 

⑶. “마음에 할례(割禮)란” 상징적(象徵的)인 표현(表現)으로서 마음을 모든 죄(罪)로부터 분리(分離)시켜 하나님의 뜻에 합당(合當)하도록 깨끗하고도 거룩하게 보존(保存)하라는 의미(意味)이다.

 

⑷.깨어진 언약을 상징(象徵)한 행동으로 다시 용서(容恕)하신 하나님 자비(慈悲)의 사랑을 각인(刻印)시킨 마음의 종교(宗敎)로의 신자(信者)가 되라는 권고(勸告)의 기별(寄別)임.  

 

(10월25일(월) <나그네를 사랑하라>

 

(Q)~(신명기 10:17~19)에 모세는 하나님에 관한 특별한 선언(宣言)으로 <고아(孤兒)와 과부(寡婦)와 나그네를 사랑하라> 하시는 명령(命令)의 깊은 뜻은 의미(意味)는 무엇입니까?

 

(A)~⑴.모세가 여기서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애굽의 종살이 했던 시절을 상기시키고 있는 이유는

㉮.타국(他國)에서 이방인(異邦人)으로 절실히 겪었던 설움을 먼저 체험한 자들로서 그 심정을 헤아리도록 하기 위함이며.(출23:9)

㉯.자신들도 하나님 앞에서 큰 사랑에 빚진 민족(民族)임을 깨닫게 하여 그 사랑의 빛을 약(弱)한 이웃에게 갚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⑵.하나님의 유일성(唯一性)과 전지전능성(全知全能性) 그리고 공의성(公義性)과 자비성(慈悲性)이 강조되어있다.

이처럼 모세가 거듭 하나님의 속성(屬性)강조하고 있는 이유는 이스라엘백성들이 하나님의 속성을 바로 깨달아 알 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을 바로 실행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이방 신(神)들의 무능(無能)함과 헛됨도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 무능함과 헛됨도 알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⑶.고아(孤兒)와 과부(寡婦)는 사회 경제적으로부터 약자(弱者)이기 때문에 남들로부터 억울한 일이나 천대(賤待)를 당하기 쉬운 계층(階層)이다.

 

⑷.하나님께서는 특별히 이러한 소외계층을 사랑으로 돌보라고 명하셨을 뿐아니라 자신을 친히 ‘고아(孤兒)의 아버지와’ ‘과부(寡婦)의 재판장(裁判長)’으로 선포(宣布)하셨다.(시68:5)

 

(10월26일(화)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음이니라>

 

(Q)~(신명기 10:19)에 ‘나그네’를 사랑해야 하는 이유(理由)에 대하여 그대는 어떻게 이해(理解)하고 계십니까?

 

(A)~⑴.<나그네>란 당시에 자기 본 혈족(血族)과 고향(故鄕)을 떠나 히브리인들 가운데 섞여 거주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데 이들은 토착민(土着民)이 아니었기 때문에 자기 몫의 땅도 없었고, 법적권리(法的權利)도 없었던 약자(弱者)들이었다. 이와 같이 지금도 이 말씀이 그리스도인들이 존재(存在)하는 이유와 실천해야 하는 것이 “현대진리(現代眞理)”의 기별인 것이다.

 

⑵.사랑의 하나님께서는 항상(恒常) 약자(弱者)편에 서시어 그들을 도와주셨고 사회에서 소외(疏外)당하며 고통(苦痛)중에 있는 자들을 기억(記憶)하고 돌보시는 사랑의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로부터 그와 같이 약자(弱者)들을 배려(配慮)하는 삶을 실천(實踐)하라고 명령(命令)하고 계신다. 즉 하나님께로 부터 받은 사랑을 깨달을 때 약자(弱者)들을 사랑으로 돌볼 수 있을 것이다.

 

(10월27일(수) <공정(公正)하게 판단(判斷)하라>

 

(Q)~어떻게 하는 것이 공정(公正)하게 판단(判斷)하는 것이며, 공정(公正)하다는 뜻은 어떤 것이 공정한 것인가?

 

(A)~⑴.공평(公平)하고 올바름이 공정(公正)함이라 한다.

⑵. 사회적(社會的)으로 내세우거나 의지(依支)할만 한 것이 없고, 자기 권리(權利)마저 주장(主張)할 힘도 없는 약자(弱者)들이다. 그러므로 종종 사회로부터 소외(疏外) 내지는 무시(無視)당하거나 이유(理由)없는 학대(虐待)를 당하기 쉬운 자들이다. 특별히 그 같은 행위를 엄격(嚴格)히 금(禁)하며, 도리어 그들의 권익(權益)을 옹호(擁護)해 주도록 촉구(促求)하고 있다. 이처럼 약자(弱者)들에 대한 보호(保護)와 사랑, 그것은 곧 율법(律法)의 끊임없는 관심사(關心事) 중의 하나였다(10:18-19, 출 22:21-22, 레 19:33-34).” (신 24:17, 만나주석)

 

⑶.하나님께서는 송사(訟事)를 억울(抑鬱)하게 하지 말라하십니다. 여기서 ‘억울(抑鬱)하게 하다’에 해당하는 ‘나타’는 ‘비틀다’, ‘굽게 하다’, ‘벗어나게 하다’는 뜻으로, 정당(正當)한 판결(判決)을 내리지 아니하고 힘 있는 자를 두호(斗護)하는 것을 가리킨다. 실로 하나님께서는 ‘오직 정의(定義)를 물 같이, 공의(公義)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암 5:24)는 것을 기뻐하시는 분임을 분명(分明)히 기억(記憶)해야 할 것이다. 

 

⑷.올바른 종교적 행위는 그들의 삶을 통하여 행위로 나타난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거룩하시기 때문에 그들도 거룩한 삶을 통하여 그 거룩함이 나타날 때 거룩하신 분에게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하나님 자신은 공정하신 분이시고 공평(公平)하신 분 그 자체가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바른 신앙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품성을 삶의 향기로 발산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약자(弱者)와 가난한자와 불우한자들을 배려하는 것이 사랑의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거룩한’ 삶임을 가르쳐주시는 교훈(敎訓)이다. 

 

(10월28일(목) <하나님 앞에 정결(淨潔)한 경건(敬虔)>

 

(Q)~진리(眞理)를 아는 것만으로 만족(滿足)하게 여기고 거기서 끝나게 되면 아주 위험(危險)한 독(毒)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정결(淨潔)한 하다경건(敬虔)”이 그토록 필요하게 된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A)~⑴. “정결(淨潔)”하다 “경건(敬虔)”하다라는 용어(用語)는 내 자신이 나의 주관(主觀)대로 내 생각대로 자행자지(自行自止)하는 것이 아니라, “공경(恭敬)하며 삼가고 엄숙(嚴肅)한 것”을 말하는 것으로 여기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은 이스라엘은 “약(弱)한 자(者)들과 소외(疏外)된 자들에게 사랑을 베풂으로 혼탁(混濁)한 죄악세상(罪惡世上)에서 오류(誤謬)와 죄악(罪惡)가운데에서 방황(彷徨)하는 이웃과 세상을 향(向)해 하나님의 선(善)하시고 자비(慈悲)로우심의 구원(救援)의 기별(寄別)을 전파(傳播)하는 증인(證人)들이 되라고 부르신 것을 깨닫고 경험(經驗)할 때 정결(淨潔)한 삶과 경건(敬虔)한 삶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⑵.인간을 위(爲)한 하나님의 이상은 사람의 생각이 도달(到達)할 수 있는 가장 높은 경지(境地)보다도 더 높다. 경건(敬虔) 곧 하나님과 같은 성품(性稟)을 가지는 것이 도달(到達)해야 할 목표이다. (교육, 16-18.)

 

⑶.헌신(獻身), 경건(敬虔), 그리고 전인적(全人的)인 성화(聖化)는 우리의 의(義)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실현(實現)된다. 하나님의 사랑은 끊임없이 배양(培養)할 필요(必要)가 있다. 아, 내 마음은 얼마나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달라고 하나님께 부르짖고 있는가! 나는 자아(自我)를 포기(抛棄)하기를 원(願)한다.(원고, 24, 1890).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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