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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기-제1과 창조( 創造)-(요점 Q&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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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봉주 작성일22-03-30 16:20 조회3,78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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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과 창조(創造)   

                                             (4월 2일 안식일 / 일몰: 오후 6시 55분) 

 

(03월27일(日) <창조(創造)의 하나님> 

 

(Q)~(창세기 1장2장)에서 창조(創造)의 하나님을 어떤 모습으로 소개(紹介)하고 있습니까?

 

(A)~⑴.창조사업(創造事業)에서 표현(表現)된 하나님의 사랑-(“하나님은 사랑이시라”)

그분의 본성(本性)과 그분의 율법(律法)은 사랑이시다. 

이는 과거(過去)에도 그러하였고 미래(未來)에도 영원(永遠)히 그러할 것이다. 

“지존무상(至尊無常)하며 영원(永遠)히 거(居)하며”, “그의 행(行)하심이 예로부터 그러하”신 분은 변(變)하지 않으시며 “그는 변(變)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다. 창조력(創造力)의 표시는 모두 무한(無限)하신 사랑의 표현(表現)이다. 하나님의 통치권(統治權)에는 모든 피조물(被造物)들에 대한 완전(完全)한 축복(祝福)이 포함(包含)되어 있다(부조 33).

 

⑵.(수단(手段)의 저장소(貯藏所)(시 33:6 ,9))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고, 그 말씀들은 천연계(天然界) 가운데 그분의 작품(作品)들을 만들어 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삼라만상(森羅萬象)은 그분께서 하나님의 목적(目的)에 쓰시려고 준비(準備)해 두신 수단(手段)의 저장소(貯藏所)이다(편지 131, 1897 ).

 

⑶.<창세기(創世記)의 주제(主題)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충성(忠誠)스런 작은 무리를 하나님이 어떻게 취급(取扱)하는지에 관(關)한 서술(敍述)이요, 

(둘째)는 하나님을 떠나서 그분의 교훈(敎訓)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이 빠진 타락(墮落)의 심연(深淵)을 묘사(描寫)한 것이다. 창세기(創世記)는 인간에게 허락(許諾)된 최초(最初)의 영원(永遠)한 계시(啓示)이며, 신령한 기록(記錄)이다. 

 

⑷.<하나님이 천지(天地)를 창조(創造)하시니라.>

 “창조하다”로 번역(飜譯)된 동사(動詞)는 히브리어 바라(bara’)에서 나왔는데, 여기에 사용된 형태는 결코 인간의 활동이 아닌 하나님의 활동을 묘사(描寫)한다. 하나님이 “바람”(암 4:13)과 “정한 마음”(시 51:10)과 “새 하늘과 새 땅”(사 65:17)을 창조한다. 우리가 “만들다”, “조성(造成)하다”로 각각 번역(飜譯)하는 히브리어 아사(‘asah)와 야차르(yas.ar) 등은 흔히(전적으로 그렇진 않지만) 인간의 활동(活動)과 관련(關聯)해서 사용(使用)되는데, 이것은 선재(先在)하는 물질(物質)을 암시(暗示)한다. 이 세 단어(單語)는 모두 인간의 창조를 묘사(描寫)하는 데 사용(使用)되고 있다. 성경(聖經)의 맨 처음 말들은 창조가 하나님의 활동(活動) 흔적(痕迹)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指摘)한다. 성경의 첫 장(章)에서 독자(讀者)는 생물(生物)과 무생물(無生物)이 모두 존재(存在)의 빚을 지고 있는 하나님을 알게 된다(참조 히 11:3). 여기에 언급(言及)된 “땅”[地]은 분명(分明)히 셋째 날이 되어서야 비로소 물과 분리(分離)된 뭍이 아니라, 지구(地球) 전체(全體)를 가리킨다.(창 1:1, 재림교주석)

 

⑸.<창조(創造)의 특징(特徵)>

㉮.굉장(宏壯)한 다양성(多樣性), 

성질(性質)과 구조(構造)가 서로 다른 여러 가지 종류(種類)의 사물(事物)을 볼 수 있다. 주님이시여! 하나님의 역사(役事)는 어찌 그리 다양(多樣)하시오 며 그 모두가 보기에 선(善)한 것이옵나이까!

 

㉯.굉장한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다. 

남빛 하늘과 푸른 지구(地球)는 호기심(好奇心)에 가득찬 구경군의 눈을 현혹(眩惑)시키는데 하늘과 땅의 장식품(裝飾品)들은 더욱 그 눈에 매혹적(魅惑的)이다. 그렇다면 창조주(創造主) 자신의 우아(優雅)함이란 얼마나 더 굉장(宏壯)한 것이겠는가!

 

㉰.굉장한 정밀성(精密性)과 정확(正確)함을 볼 수 있다. 

현미경의 힘을 빌려 자연계의 활동을 세밀히 관찰하는 사람들은 그것들이 어떤 인간의 예술 작품보다도 훨씬 더 세련된 것임을 보게 될 것이다.

 

㉱.굉장한 능력(能力)을 볼 수 있다. 

지구(地球)는 주검의 덩어리이거나 정체(正體)된 물질(物質)이 아니다. 모든 피조물(被造物)들은 다소간(多少間)의 힘을 가지고 있다. 지구 자체(自體)에도 일조의 자력(磁力)이 있다.

 

㉲.굉장한 질서(秩序)를 볼 수 있다. 

모든 존재간(存在間)의 상호(相互) 의존성(依存性), 운행(運行)에 있어서의 정확(正確)한 조화(調和), 그리고 모든 원인(原因)들 사이의 놀랄 만한 연관성(聯關性)을 볼 수 있다.

 

㉳.굉장한 신비(神秘)를 볼 수 있다. 

자연계(自然界)에는 풀 수 없는 현상(現象)들과 헤아릴 수 없는 비밀(秘密)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가 하늘과 땅을 볼 때 거기서 우리는 위대(偉大)하신 창조주(創造主)의 영원(永遠)한 능력(能力)과 신성(神性)을 미루어 살필 수 있을 것이며, 그를 찬양(讚揚)하여야 할 충분(充分)한 이유(理由)를 발견(發見)할 것이다.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우리의 만듦새와 위치(位置)는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인의 의무(義務) 즉 우리의 눈은 언제나 하늘을 바라보며, 우리의 발은 언제나 땅을 밝고 서 있어야 한다는 것을 기억(記憶)하게 하여 준다.

 

⑹. 이 위대(偉大)한 작업(作業)의 주인공(主人公)과 원인(原因)이신 분 즉 하나님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을 나타내는 히브리어는 엘로힘(Elohim)인데, 다음과 같은 뜻을 나타내고 있다.

 

※.<창조주(創造主) 하나님의 능력(能力)을 나타낸다.>

엘(El)은 "강(强)하신 하나님" (the strong God)을 의미(意味)한다. 만일(萬一) 전능(全能)하신 힘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만유(萬有)를 무(無)에서 창조(創造)해 내실 수 있었겠는가?

 

⑺.<여기에서 우리는 다음의 사실(事實)들을 배우자.> 

㉮.무신론(無神論)의 어리석음을 배우자. 

무신론자(無神論者)들은 본질(本質)상 가장 어리석은 자들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스스로가 스스로를 창조(創造)할 수 없는 세상(世上)임을 알면서도 세상을 창조(創造)하신 하나님의 존재(存在)를 승인(承認)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변명(辨明)의 여지(餘地)가 없다. 이 세상의 신이 그들의 마음을 어둡게 해 놓았다.

 

㉯.하나님은 비할 데 없는 권리(權利)로 만물(萬物)을 주관(主管)하시는 만군(萬軍)의 주 여호와이심을 배우자. 

하나님의 창조주(創造主)시라면 그는 천지(天地)의 주인(主人)이시며 그 소유자(所有者)이시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이 가능(可能)함을 배우자. 

그러므로 그를 저들의 하나님으로 모시는 백성(百姓)들은 행복(幸福)하며 저들의 소망(所望)이 다 그 이름에 있다(시 121:2; 124:8).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모든 송축(頌祝)과 찬양(讚揚)을 받으실 만한 분이시며 모든 송축(頌祝)과 찬양(讚揚)에서 뛰어나심을 배우자(느 9:5, 6). 

그는 세상을 지으신 분이시며, 우리의 섬김을 받으실 필요(必要)가 없으시며, 도움을 받으실 필요가 없으시다(행 17:24, 25). 하지만 그는 우리의 섬김과 도움을 요청(要請)하시며, 우리의 찬양(讚揚)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合當)하시다(계 4:11). 모든 것이 그의 것이면 모든 것을 그에게 돌려드려야 마땅하다.(창 1:1, 매튜헨리)

 

⑻.<日욜-요약(要約)>

(창세기에 1장과 2장)에 핵심기사(核心記事)는 창조주(創造主)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全知全能)하신 분이시며 또한 위대(偉大)하시며 사랑과 은혜(恩惠)가 충만(充滿)하신 창조주(創造主) 하나님이심을 알고 신뢰(信賴)하며 이에 신령과 진정(眞正)으로 창조주(創造主) 하나님을 경배(敬拜)하라고 호소(呼訴)의 말씀이다.  

 

(03월28일(月) <창조(創造)> 

 

(Q)~(창세기 1장)에서 창조의 각 단계(段階)를 마칠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무엇이라 평가(評價)하셨으며 그 말의 의미(意味)는 무엇입니까?

 

(A)~⑴.<창조(創造)의 단계(段階)>

  (하나님의 창조사역(創造使役)은 다섯 단계(段階)로 이루어졌다.)

①.창조의 말씀→이르시되

②.말씀으로 인한 각 피조물의 탄생→그대로 되니라.

③.하나님 자신의 평가(評價)→보시기에 좋았더라.

④.각 피조물에 이름을 붙이시는 하나님의 주권적(主權的)사역(使役)→부르시고.

⑤.각 날의 구분→이는 …….날이니라, 등이다.

 

⑵.하나님의 천지창조(天地創造)에는 3차에 걸친 분리사역(分離使役)이 나타나 있다. 즉

   ①.빛과 어둠(창1:4). ②.궁창(穹蒼) 위의 물과 궁창(穹蒼) 아래의 물((창1:7). ③.바다와 땅(창1:9)의 분리(分離)이다. 이 분리작업(分離作業)이 완료(完了) 되었을 때 마다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좋았다”고 인정(認定)하셨다. 

후일(後日)에 사도 바울은 (고후6:14) 이 빛과 어둠의 분리(分離)를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 의(義)와 불법(不法)의 분리(分離)에 적용(適用)시킴으로써 도덕적(道德的), 종교적(宗敎的) 성결(聖潔)의 원리(原理)로 확대(擴大) 해석(解釋)했다.

 

⑶.<보시기에 좋았더라.

이 표현(表現)은 일곱 번(창세기1:4, 10, 12, 18, 21, 25, 31절) 반복(反覆)되는데, 

하나님의 활동(活動)을 인간의 언어(言語)로 전달(傳達)하고 있다. 이것은 곧, 창조(創造)의 각 행위(行爲)가 조물주(造物主)의 계획(計劃)과 의지(意志)를 완전(完全)히 충족(充足)시킨 것을 뜻한다. 마치 우리가 자신의 노력(努力)의 산물(産物)들을 바라보고 살핌으로써 그것들이 우리의 계획(計劃)과 목적(目的)에 부합(符合)할 때 만족(滿足)하고 행복(幸福)해 하듯이, 하나님도 창조행위(創造行爲) 다음에는 항상(恒常), 그의 산물(産物)들이 그의 계획(計劃)에 완전(完全)히 일치(一致)한다고 만족(滿足)해 하시고 기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자신께서 행하시는 일들로 말미암아 즐거워하”(시 104:31)신다.

또한 ‘좋았더라.에 해당(該當)하는 히브리어 ‘토브(tov)’는 아름답고 예쁜 것을 의미(意味)하기도 한다. 이 단어(單語)는 하나님의 아들들에게 비친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창 6:2)이나 매력(魅力), 리브가의 “아리따움”(창 24:16), 그리고 밧세바의 “아름다움”(삼하 11:2)을 묘사(描寫)할 때 사용되었다.

 

⑷.<月욜-요약(要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는 진화론(進化論)을 주장(主張)하거나 그것을 믿는 사람들과, 창조론(創造論)을 주장(主張)하는 사람들과 그것을 믿고 사는 사람들로 양분(兩分)되어 살고 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하나님의 계획대로 천지만물(天地萬物)을 창조(創造)하셨다고 기록(記錄)하고 있다. 이에 그리스도인들인 이를 확실(確實)히 신뢰(信賴)하고 믿고 있다. 

 

(03월29일(火) <안식일(安息日)>

 

(Q)~(이사야 65:17, 계시록 21:1)에서  창조주간(創造週間) 끝에 자리에 잡은 안식일(安息日)이 우리를 위한 소망(所望)의 기별(寄別)이 되는 이유(理由)는 무엇입니까?

 

(A)~⑴.<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②.하나님께서 천지만물(天地萬物)에 대한 창조사역(創造使役)을 마치신 날은 여섯째 날이다. 

(2) 그러나 그분의 창조사역(創造使役)의 완성(完成)은 이를 기념(紀念)하고 축복(祝福)하여 안식(安息)하신 날인 일곱째 날에야 온전(穩全)히 성취(成就)되었다.

 

⑵.<안식(安息)하시니라.> 

 [히, 샤바트] 노동(勞動)이나 일을 중단(中斷)하는 것을 의미(意味)한다. 

이것은 일에 지쳐 나가떨어진 것을 의미(意味)하지 않고, 잠시 중단(中斷)한 채 취하는 ‘휴식(休息)’(출 31:17)을 의미(意味)한다. 

이는 하나님께서 더 이상 새로운 피조물(被造物)을 만들지 않으셨다는 것과 피조(被造)된 천지만물(天地萬物)의 운행(運行)을 주관(主管)하시며 그것들을 보고 기뻐하고 계셨다는 것(1:31)을 의미(意味)한다. 이러한 하나님의 안식(安息)에 근거(根據)하여 주어진 것이 바로 제칠일안식일(第七日安息日) 제도(制度)이다(출 16:29, 신 5:15).

 

⑶.<거룩하게 하셨으니.> 

[히, 카다쉬] ‘성결(聖潔)하다고 선언(宣言)하다’, ‘거룩한 것으로 간주(看做)하다’는 뜻이다. 

일곱째 날 자체(自體)가 거룩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거룩한 날로 간주(看做)하셨기 때문에 일곱째 날이 거룩한 것이다. 그리고 ‘거룩하다’는 말은 그분의 소유(所有)가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제칠일안식일(第七日安息日)은 흔히 유대인 시대(時代)에 속한 제도(制度)로 간주(看做)되어 왔지만, 성경(聖經)은 최초(最初)의 이스라엘 백성(百姓)들(야곱-이스라엘의 자손)이 태어나기 2,000년도 훨씬 전에 제정(制定)되었다고 선언(宣言)한다.

 

⑷.<그 날에 안식(安息)하셨음이니라.>

십계명(十誡命) 중 넷째 계명(誡命)에는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에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출 20:11)기 때문에 우리도 지키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안식(安息)하신 것은 피조물(被造物)이 그분처럼 안식일(安息日)을 지켜야 할 중요(重要)한 이유(理由)가 된다.” (창 2:2~3, 만나주석)

 

⑸.<안식(安息)하시니라>

“안식(安息)하였다”는 동사 샵바트(s∨abbat)는 실제(實際)로 노동(勞動)이나 활동(活動)을 “중단(中斷)하는 것”을 의미(意味)한다(참조 창 8:22; 욥 32:1 등). 인간 기술공(技術工)이 자신의 일의 이상(以上)을 구현(具現)하게 되었을 때 그 일을 끝내는 것처럼, 무한(無限)히 더 높은 지각(知覺)을 지닌 하나님은 어떤 새로운 것을 생산(生産)해내기를 중단(中斷)함으로써 세상의 창조를 완수(完遂)하고 “안식(安息)하였다.” 하나님은 쉼이 필요하여 안식(安息)하지 않았다(참조 사 40:28). 그러므로 하나님의 안식(安息)은 탈진(脫盡)이나 피로의 결과가 아니라, 앞서 행한 일의 중단(中斷)이었다.

 

⑹.<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福) 주사>

이 쉼의 날의 의미(意味)와 중요성(重要性)에 대한 설명(說明)이 첨가(添加)되고 있다. 여기서 거룩한 기록(記錄)은 매주(每週)의 안식일(安息日)을 하나님의 창조사업(創造事業)과 일곱째 날의 쉼과 밀접(密接)하게 관련(關聯)시키는데, 이는 넷째 계명(誡命)에도 그렇게 나타나 있다. 일곱째 날을 축복(祝福)했다는 말은 그것에 의해 그 날이 하나님의 은총(恩寵)의 특별(特別)한 대상(對象)이 되며, 그의 피조물(被造物)들에게 복(福)을 가져다 줄 날로 선언(宣言)되었음을 시사(示唆)하였다.

 

⑺.<거룩하게 하셨으니>

거룩하게 하시는 행위(行爲)는 그 날이 거룩하며 거룩한 목적(目的)을 위하여 구별(區別)되었다는 선언(宣言)에 있었다. 나중에 시내산이 거룩하게 되었듯이(출 19:23), 즉 한동안 하나님이 거하는 곳으로 신성(神聖)함을 입었듯이,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제사장(祭司長) 직분(職分)을 위하여 성별(聖別)되었듯이(출 29:44), 희년(禧年)이 종교적(宗敎的)인 목적(目的)을 위하여 거룩하게 바쳐졌듯이(레 25:10), 여기서는 일곱째 날이 거룩하게 되었으며, 그와 같이 거룩한 날로 선언(宣言)되었다. 일곱째 날을 복(福) 주며 그 날이 거룩하다고 선언(宣言)한 이 행위(行爲)는 인류(人類)를 위해 이루어졌다. 왜냐하면 그들의 유익(有益)을 위하여 안식일(安息日)이 제정(制定)되었기 때문이다. 매주(每週)의 제7일 안식일(安息日)은 흔히 유대인 시대(時代)에 속한 제도(制度)로 간주(看做)되어 왔지만, 영감(靈感)의 기록(記錄)은 최초(最初)의 이스라엘 백성들(야곱-이스라엘의 자손)이 태어나기 2,000년도 훨씬 전에 제정(制定)되었다고 선언(宣言)한다. 더욱이 “안식일(安息日)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막 2:27)이라고 선언(宣言)한 예수의 말씀이 있는데, 그 말은 이 제도(制度)가 유대인만이 아니라 모든 인류(人類)를 위해서 제정(制定)된 것임을 분명(分明)하게 나타낸다.

 

⑻.<이날에 안식(安息)하셨음이더라>

하나님이 사람에게 일곱째 날에 안식(安息)하도록 명(命)한 데에는 사람이 그의 창조주(創造主)의 사랑과 선(善)함에 대하여 숙고(熟考)함으로 창조주(創造主)와 같이 될 수 있는 기회(機會)를 누리도록 명(命)하는 것보다 더 고귀(高貴)한 이유(理由)가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이 6일 동안 일하고 일곱째 날에 안식(安息)한 것처럼, 사람도 6일 동안 수고하고 일곱째 날에 쉬어야 한다. 이 매주(每週)의 안식일(安息日)은 창조주(創造主) 하나님이 인간(人間)에게 준 거룩한 제도(制度)이므로, 입법자(立法者)인 하나님은 그것의 준수(遵守)를 요구(要求)한다. 그러므로 인간이 이 거룩한 시간(時間)의 일부(一部)나 전부(全部)를 빼돌리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不順從)의 죄와, 인간의 능력(能力)과 그의 시간(時間)의 원(原) 소유자(所有者)인 하나님의 것을 약탈(掠奪)하는 죄를 짓는 것이다. 하나님이 정(定)한 제도(制度)인 안식일(安息日)은 우리의 경의(敬意)와 존중(尊重)을 받을 가치(價値)가 있다. 하나님은 이를 게을리 하는 것을 죄(罪)로 여긴다.

 

⑼.안식일(安息日)은 일상적(日常的)인 육체적(肉體的) 노동(勞動)을 삼가며 정신(精神)과 마음을 거룩한 사물(事物)에 바칠 것을 요구(要求)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회(聖會)로 안식일(安息日)을 사용(使用)하도록 훈계(訓戒)를 받았다(레 23:3). 복음서(福音書)는 그리스도와 제자(弟子)들이 안식일(安息日)을 그렇게 사용(使用)하였으며(눅 4:16; 행 17:2; 18:4 등), 그리스도의 지상봉사(地上奉仕)가 마친 후(後)에도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계속(繼續)해서 준수(遵守)되어야 한다(마 24:20).고 증언(證言)한다.

 

안식일(安息日)이 새 땅에서도 예배일(禮拜日)로서 여전히 기념(紀念)될 것이라(사 66:23)는 사실은 하나님이 결코 안식일(安息日)의 준수(遵守)를 다른 날로 옮기도록 의도(意圖)하지 않았음을 분명(分明)하게 나타낸다. 매주(每週)의 안식일(安息日)은 창조(創造)의 기념일(記念日)로서, 인간(人間)에게 매주(每週) 하나님의 창조(創造)의 능력(能力)에 대하여, 그리고 자비(慈悲)로운 창조자(創造者)이자 공급자(供給者)인 그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빚지고 있는지를 상기(想起)시켜 준다. 안식일(安息日)을 거절(拒絶)하는 것은 창조자(創造者)를 거절(拒絶)하는 것이며, 온갖 종류(種類)의 거짓 이론(理論)들을 위한 문을 활짝 여는 것이다. “안식일(安息日)은 그분의 존재(存在)에 대한 계속적(繼續的)인 증거(證據)이며, 그분의 위대(偉大)하심과 그분의 지혜(智慧)와 그분의 사랑을 상기(想起)시켜 주는 방편(方便)이다. 안식일(安息日)이 항상(恒常) 신성(神聖)하게 준수(遵守)되어 왔다면, 무신론자(無神論者)나 우상숭배자(偶像崇拜者)가 결코 생겨날 수 없었을 것이다”(부조와 선지자, 336). (창 2:2~3, 재림교주석)

 

<火욜-요약(要約)>

◇<우리는 왜 제7칠일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가?>

  우리는 하나님이 명(命) 하셨고 우리 구주(救主) 예수그리스도께서 바로 그 날을 지키셨으며 사도(使徒)들도 계속(繼續)지키어 우리에게 모본(模本)을 보여 주셨으니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로써 이날을 지키는 것이 마땅 하지 않겠는가!.  (사58:13)   (요일 2:3-4)

 

안식일(安息日)은 하나님께서 친(親)히 제정(制定)하신 바 하늘 정부(政府)의 헌법(憲法)인 십계명(十誡命)중의 4번째 계명(誡命)이다.

 

십계명(十誡命)은 영원불변(永遠不變)한 하늘 정부(政府)의 헌법(憲法)으로써 그 불변(不變)의 상징(象徵)이며 권위(權威)의 표현(表現)이 되는 한편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표(表)가 되며 (요일 5:3) 의무(義務)가 되며(전 12:13) 선악(善惡)의 표준(標準)이 된다.(약 2:12) 

 

안식일(安息日)이 이러한 십계명(十誡命)중의 한 부분(部分)인 것을 생각(生角) 할 때 그 중요성(重要性)과 불변성(不變性)은 확실(確實)해 진다.

 

<★> 안식일(安息日)의 목적(目的)

1. 창조(創造)의 기념(記念) 창 2:1-3,  출 20:11)

2. 인류(人類)의 행복(幸福) (막 2:27-28, 창 2:3)

3. 성별(聖別)의 표(表) (겔 31:13, 16), (출 31:12-14, 16)

4. 구속(救贖)의 표(表) (신 5:15, 겔20:20) 

5. 만물(萬物)의 주권자(主權者)는 하나님이심을 상기(想起) 시켜 주기 위(爲)하여  (출 20:11, 시 111:4)

6. 창조주(創造主) 하나님을 경배(敬拜) 하도록 하기위하여 (출 20:8, 사 66:23, 출31:17)

7. 우상숭배(偶像崇拜)에서 보호(保護)하기위하여 (레 26:1-2)

※ 가). 언약관계(言約關係)의 표징(表徵) (출 31:16-17)

   나). 충성(忠誠)의 시금석(試金石) (출 16:23-30) (계 14:12) 

   다). 시간(時間)의 성소(聖所) (사 58:12-14)

   라). 하늘 안식(安息)을 맛보는 것입니다. (히 4:1-  히 4:9-11)

 

(03월30일(水) <인간(人間)의 창조(創造)> 

 

(Q)~(창세기 1:26~29)에서 창세기(創世記)에 기록(記錄)된 “하나님의 형상(形狀)”이라는 말을 어떻게 이해(理解)해야 할까요?

 

(A)~⑴.(창 1:27) 사람(하나의 새롭고도 독특(獨特)한 존재(存在))

즐거운 마음으로 온 하늘은 세계(世界)와 인간(人間)의 창조(創造)에 깊은 관심(關心)을 보였다. 

인간(人間)은 하나의 새롭고도 독특(獨特)한 존재(存在)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형상(形狀)’을 따라 지음을 받았으며, 그들을 땅에 충만(充滿)케 하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計劃)이셨다(리뷰 1902. 2. 11).

 

⑵.(창1:26) <우리의 형상(形狀)을 따라>

“사람은 외모(外貌)나 품성(稟性)에 있어서 모두 하나님의 형상(形狀)을 지니게 될 것이었다.”(부조와 선지자, 45). 

그 형상(形狀)은 영적(靈的)인 본성(本性)에 의(依)해 매우 분명(分明)히 나타났다. 

그는 “생령(生靈)”, 다시 말해 자유의지(自由意志), 자의식(自意識)이 있는 인격(人格)을 부여(附與)받은 산 존재(存在)가 되었다.

이 본성(本性)은 죄가 하나님의 모습(模襲)을 망쳐 버리기까지 그 조물주(造物主)의 신적(神的) 거룩함을 반영(反映)하였다. 

우리의 본성(本性)이 다시 하나님의 형상(形狀)으로 변화(變化)되는 것(골 3:10; 엡 4:24)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榮光)의 광채(光彩)요 “그 본체(本體)의 형상(形狀)”(히 1:3)인 그리스도를 통(通)해서만 가능(可能)하다.

 

⑶.<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신성(神聖)한 기록(記錄)은 바로 시초(始初)부터 지상(地上)의 다른 모든 피조물(被造物) 위에 뛰어난 인간(人間)의 탁월성(卓越性)을 선언(宣言)한다. “우리”라는 복수(複數)는 초기교회(初期敎會)의 신학자(神學者)들에 의해 거의 만장일치(滿場一致)로 신성(神聖)의 삼위(三位)를 가리키는 것으로 간주(看做)되었다. “우리”라는 말은 적어도 함께 의논할 두 분의 존재(存在)를 요구(要求)한다. 사람이 “우리”의 형상(形狀)대로 만들어질 것이었으며, “하나님의” 형상(形狀)대로 만들어진다는 진술(陳述)은 의논(議論)하는 당사자(當事者)들이 모두 동일(同一)한 신성(神聖)의 위격(位格)을 지니고 있음이 틀림없다는 결론(結論)에 이르게 한다. 

 

⑷.<인간의 창조(創造)(창세기 1:26-28)>

  ㉮.인간(人間)은 모든 피조물(被造物)들 가운데서 제일(第一) 마지막에 지음 받았다.

  ㉯.인간의 창조(創造)는 다른 피조물(被造物)의 창조(創造)보다 더욱 뚜렷하고 직접적(直接的)인 하나님의 지혜(智慧)와 능력(能力)의 활동(活動)이시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形狀)을 따라, 하나님의 모양(模樣)대로 지음을 받았다. 

   여기에 사용(使用)된 두 가지의 낱말은 서로 같은 사실(事實)을 나타내고 있으며, 서로의 표현(表現)을 풍부(豊富)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형상(形狀)" 과 "모양(模樣)" 이란 말들은 눈에 보이는 피조물(被造物)들의 가장 닮은 모습(模襲)과 그 근사성(近似性)을 나타내는 말들이다. 인간은 그보다 앞서 만들어진 어떤 피조물(被造物)과는 같지 않게 만들어졌으며, 오직 그를 지으신 창조주(創造主)를 닮도록 지음을 받았다. 하지만 여전히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무한(無限)한 거리가 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로서 하나님과 같은 본질(本質)을 가진 분으로 하나님의 형상(形狀)을 그대로 나타내 주고 계신다.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에게 새겨진 하나님의 영광(榮光)은 유리 위에 비쳐진 그림자나 동전(銅錢) 위에 새겨진 왕(王)의 초상(肖像)과 같이 단지(但只) 부분적(部分的)인 것이다. 인간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형상은 다음의 세 가지를 포함(包含)하고 있다.

 

①.육체적(肉體的)인 것이 아니고, 영적(靈的)인 것으로서의 그 본성(本性)과 구조(構造)이다(육체적인 것이 아닌 까닭은 하나님께 육체(肉體)가 없으시기 때문이다). 

실로 하나님은 말씀이 육신(肉身)이 되는 영광(榮光)을 인간의 육신(肉身) 위에 주셨는데,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의 육체(肉體)와 똑같은 육체(肉體)를 입으시고 즉시(卽時)로 우리의 육체(肉體)에 자기 육체(肉體)의 것과 같은 영광(榮光)을 옷입혀 주실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다음과 같이 말하여도 그것은 조금도 과언(過言)이 아닐 것이다. 즉 대우주(大宇宙)만이 아니라 소우주(小宇宙)인 인간을 창조하실 때 하나의 매개(媒介)가 되었던 그리스도는 태초(太初)에 그 자신의 계획(計劃)에 따라 때가 이르면 그 자신이 입을 인간의 육체(肉體)를 형성(形成)하시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특별(特別)히 하나님의 형상(形狀)을 옷 입고 있는 것은 인간의 위대(偉大)한 영(靈)이다. 영혼(soul)이란 하나의 영(spirit)이며, 지적(知的)인 불멸(不滅)의 영(靈), 감화력(感化力)이 풍부(豊富)한 활동적(活動的)인 영(靈)이며, 여기서는 모든 영(靈)들의 아버지 하나님을 닮은 영(靈)이다. 그리고 또 세상(世上)의 영(靈)이기도 하다. 인간의 영은 여호와의 등불이다. 인간의 영혼(靈魂)은 그것이 가지고 있는 세 가지의 고상(高尙)한 능력(能力) 즉 이해(理解), 의지(意志)와 그리고 활동력(活動力)에서 볼 때 그것은 본질(本質)상 하나님을 볼 수 있는 가장 밝고도 맑은 거울일 것이다.

 

②.그의 위치(位置)와 권위(權威)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형상(形狀)을 따라,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라고 하셨다. 인간이 하등(下等) 피조물(被造物)들을 다스리는 권세(權勢)를 부여(附與)받음으로써 땅 위에서의 하나님의 대리자(代理者) 또는 그의 총독(總督)이 되었다. 하등(下等) 피조물(被造物)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를 섬길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인간을 두려워하고 섬기게 하였다. 하지만 인간(人間)이 그의 속에 있는 자유의지(自由意志)를 가지고 다스리는 것이, 다른 피조물(被造物)들을 다스리는 것보다 더욱 더 하나님의 형상(形狀)을 닮은 것이다.

 

③.그의 순결성(純潔性)과 방정(芳情)함이다. 

   인간에게 있는 하나님의 형상은 그의 지식(知識)과 의(義)와 그리고 참다운 거룩함에 있다(엡 4:24; 골 3:10). 인간은 정직(正直)하게 지음 받았다(전 7:29). 인간은 하나님의 뜻에 자기 자신을 부합(符合)시키는 본성적(本性的)인 능력(能力)을 가지고 있다. 그의 이해(理解)는 하늘의 사실(事實)을 분명(分明)히 그리고 진실(眞實)되게 보고 있으며, 그리고 그의 지식(知識)에는 잘못이나 과오(過誤)가 있을 수 없다. 그의 뜻은 쉽사리 그리고 보편적(普遍的)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응(順應)하였는데, 혐오감(嫌惡感)이나 반항(反抗)이 전혀 없었다. 인간의 성정(性情)은 모두 정상적(正常的)이었으며 그에게는 비정상적(非正常的)인 욕망(慾望)이나 욕정(欲情)이 없었다. 그의 생각(生覺)은 쉽게 떠오르며, 가장 좋은 점에 귀착(歸着)될 수 있었고, 거기에는 허망(虛妄)함이나 난폭(亂暴)함이 없었다. 모든 열등(劣等)한 능력(能力)은 우월(優越)한 능력(能力)의 지시(指示)와 지도(指導)에 대해 반항(反抗)이나 항거(抗拒)를 하지 않고 그대로 순종(順從)하였던 것이다. 우리의 맨 처음 조상(祖上)은 하나님의 형상을 그들 위에 간직함으로써 이처럼 거룩했고 이처럼 행복하였다. 태초(太初)에 인간에게 부여(附與)한 바로 이러한 영광(榮光) 때문에 우리는 서로 저주(詛呪)해서는 안 되며(약 3:9), 서로 해(害)를 끼쳐서도 안 된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이유(理由) 때문에 우리는 우리 자신을 죄의 종으로 타락(墮落)시켜서는 안 되며,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일을 위해 헌신(獻身)하여야 한다. 그런데 여명기의 인간들이여! 너는 어찌하여 타락(墮落)하였는가! 인간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형상이 어떻게 하여 훼손(毁損)되었는가! 얼마나 많이 사라졌으며! 얼마나 그 파괴(破壞)가 심한가! 하나님은 그의 희생적(犧牲的)인 은혜를 통해 하나님의 형상(形狀)은 다시금 우리의 영혼(靈魂) 위에 회복(回復)시켜 주시리라!

 

④. 인간(人間)을 남자(男子)와 여자(女子)로 창조(創造)하고 그들을 복(福) 주어 생육(生肉)하고 번성(蕃盛)하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 하셨는데, 곧 이어서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創造)하셨다" 는 말씀이 뒤따른다. 그는 결심(決心)하신 바를 곧 실천(實踐)하셨다. 우리에게 있어서 말하는 것과 행(行)함은 서로 다른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 있어서는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 아담과 하와를 창조(創造)하셨다. 먼저 아담을 흙으로 지으시고 하와를 그의 갈빗대로 만드셨다(2장). 하나님께서는 다른 모든 피조물(被造物)들을 많은 짝을 지으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영(靈)의 남은 그림자를 가지고 있는데도, 인간(人間)의 짝은 "하나만을 지으신 것이 아닌가?" (말 2:15)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는 이혼(離婚)을 금(禁)하셨다(마 19:4, 5). 우리의 시조(始祖) 아담에게는 한 아내만이 주어졌다. 아담이 만일 그녀를 버린다면, 다시금 결혼(結婚)할 상대자(相對者)가 없었다. 이러한 사실(事實)을 명백(明白)히 결혼(結婚)의 관계(關係)는 마음 내키는 대로 해약(解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준다. 천사(天使)는 남자(男子)와 여자(女子)로 지음 받지 않았다. 천사(天使)들은 그 종족(種族)을 번식(繁殖)시킬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눅 20:34-36). 인간은 남자와 여자로 지음을 받았는데 이는 그 종류가 번식(繁殖)하고 그 종족(種族)이 계속(繼續)하기 위함이다. 이 낮은 세계의 광명(光名)인 불과 촛불을 타서 없어져 버리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것들을 태울 수 있는 능력(能力)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하늘의 빛들을 그렇지 않다. 별들은 서로 다른 별들을 불태우지 않는다. 하나님은 다만 한 남자와 한 여자를 창조(創造)하셨다. 이는 모든 인간 종족(種族)들이 스스로 그들이 한 피로 지음을 받은 것과 또 한 줄기에서 가지 쳐 내려 온 것을 알게 하며, 따라서 서로 사랑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인간이 맡은 바 본질(本質)을 후손(後孫)들에게 전달(傳達) 할 수 있도록 창조(創造)하신 하나님께서는 인간(人間)에게 말씀하기를 "생육(生肉)하고 번성(蕃盛)하여 땅에 충만(充滿)하라" 고 하셨다. 여기서 하나님은 인간에게 다음과 같은 것들을 주셨다.

 

1. 거대(巨大)한 유산(遺産)을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에게 "땅에 충만(充滿)하라" 고 하셨다. 그들은 "온 땅에 거할 수 있도록" 지음을 받았다(행 27:26). 이 땅은 인간들로 하여금 하등 피조물(被造物)들을 다스려야 하는 하나님의 섭리(攝理)를 따르는 종(種)이 되며 이 우주(宇宙)의 하나의 예지(叡智)가 되게 하신 곳이다. 또 이 땅에 사는 모든 피조물(被造物)들도 받아 누리기는 하면서도 그 사실을 모르고 있는 하나님의 은사(恩賜)를 인간은 알고 받아들이며, 나가서 이 낮은 세상의 모든 찬양(讚揚)을 모아 하늘의 창고(倉庫)에 돌려 보내드리는 자가 되게 하신 곳이다(시 145:10). 그리고 끝으로 이 땅은 보다 좋은 곳으로 들어가기 위한 훈련생(訓練生)으로 수련(修鍊)을 쌓는 곳이기도 하다.

 

2. 수많은 영속(永續)하는 가족(家族)들을 주시어, 이 유산(遺産)을 누리게 하셨으며, 그들에게 축복을 내리어, 그 축복으로 그들의 자손(子孫)들이 땅 끝까지 번지게 하시고, 세상 끝날 까지 계속되게 하셨다. 생육(生育)과 번식(繁殖)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오벳에돔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여덟 아들들을 두었다(대상 26:5). 태초(太初)에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이 축복(祝福)으로 말미암아 인류는 오늘날까지도 존재(存在)하고 있으며, "한 세대가 지나가면 또한 세대(世代)가 온다."

 

⑸.하나님께서는 인간(人間)을 창조(創造)하셨을 때 인간에게 하등(下等) 피조물(被造物)들, 곧 바다의 고기와 공중(空中)의 새들을 다스리도록 하셨다. 

  인간은 비록 준비(準備)한 것이 아무 것도 없는 데도 양자를 다스릴 권세(權勢)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더욱 나아가서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生物)을 다스리는 권세(權勢)" 를 받았다. 땅에 움직이는 생물은 보다 더 인간의 손 가까이 있으면서 인간의 보호(保護)를 받는다. 이러한 일들을 통해서 인간에게 영광(榮光)을 주시려고 영광을 돌려야 하는 그의 의무(義務)를 강(强)하게 깨닫게 하여 주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지배권(支配權)이 타락(墮落)으로 말미암아 소멸(消滅)되었다. 그래도 하나님의 섭리(攝理)는 계속(繼續)해서 인류의 후손(後孫)들에게 적용(適用)되고 있는데 그들의 생명을 안전(安全)하게 보존(保存)시켜 줄 필요(必要)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恩惠)는 성도(聖徒)들에게 피로 인하여 그들이 상실(喪失)하였던 것보다 더 좋고, 새로운 피조물(被造物)에 대한 그들의 칭호(稱號)를 주셨는데,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모든 것이 우리의 것이 되기 때문이다(고전 3:22). (창 1:26~29, 매튜헨리)

 

<水욜-요약(要約)>

※ <인간의 창조(創造)(창세기 1:26-28)>

⑴.인간은 모든 피조물(被造物)들 가운데서 제일 마지막에 지음 받았다.

⑵.인간의 창조(創造)는 다른 피조물(被造物)의 창조(創造)보다 더욱 뚜렷하고 직접적(直接的)인 하나님의 지혜(智慧)와 능력(能力)의 활동(活動)이시다. 

⑶.인간은 하나님의 형상(形狀)을 따라, 하나님의 모양(模樣)대로 지음을 받았다. 

㉮.육체적(肉體的)인 것이 아니고, 영적(靈的)인 것으로서의 그 본성(本性)과 구조(構造)이다(육체적(肉體的)인 것이 아닌 까닭은 하나님께 육체(肉體)가 없으시기 때문이다). 

㉯.그의 위치(位置)와 권위(權威)이다. 

㉰.그의 순결성(純潔性)과 방정(芳情)함이다. 

⑷.인간(人間)을 남자(男子)와 여자로 창조(創造)하고 그들을 복(福) 주어 생육(生育)하고 번성(蕃盛)하게 하셨다. 

㉮.거대(巨大)한 유산(遺産)을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에게 "땅에 충만(充滿)하라" 고 하셨다. 그들은 "온 땅에 거(居)할 수 있도록" 지음을 받았다(행 27:26). 

㉯.수많은 영속(永續)하는 가족(家族)들을 주시어, 이 유산(遺産)을 누리게 하셨으며, 그들에게 축복(祝福)을 내리어, 그 축복으로 그들의 자손(子孫)들이 땅 끝까지 번지게 하시고, 세상 끝날 까지 계속(繼續)되게 하셨다. 

⑸.하나님께서는 인간(人間)을 창조(創造)하셨을 때 인간(人間)에게 하등(下等) 피조물(被造物)들, 곧 바다의 고기와 공중(空中)의 새들을 다스리도록 하셨다. 즉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形狀)에 따라 창조(創造)되었다는 말은 영적(靈的)으로 뿐만 아니라 육체적(肉體的)으로도 하나님을 닮게 창조(創造)되었다는 뜻이다.  

 

(03월31일(木) <인간(人間)의 의무(義務)>

 

(Q)~(창세기 2:15~17)에서 피조물(被造物)과 하나님께 대한 사람의 의무(義務)는 무엇입니까?

 

(A)~⑴.<하나님께서 천지만물(天地萬物)을 창조(創造)하시고 인간(人間)을 창조(創造)하신 후(後) 세 가지 선물(膳物)을 주셨다>

   1.에덴동산(창2:8)과 /  2.음식(창2:16)과 /  3.여자(女子)(창2:22)을 주셨다.

     ⑵.<그리고 세 가지 의무(義務)도 주셨다>

      ㉮.자연환경(自然環境)과 관련(關聯)하여 “그것을 경작(耕作)하며 지키게 하시고” (창2:15)

  (경작(耕作)=여기서 노동(勞動)은 단지 생계(生計)가 아니라 “자연(自然)과 세계(世界)를 관리(管理)하게 하신 하나님의 뜻을 받드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음식물(飮食物)과 관련(關聯)된 풍성(豊盛)한 선물(膳物)중에서 먹을 것과 먹지 말아야 할 제한(制限)을 두셨다.

 ☞. (식물(食物)의 창조(창세기 1:29-30))

  ◎.하나님은 인간(人間)을 위하여 식물(食物)을 마련하여 주셨다(창1:29절). 

  ①.그것은 우리를 겸손(謙遜)하게 한다. 

  ②.그것은 우리를 감사(感謝)하게 만든다. 

  ③.그것은 우리의 생활(生活)을 절제(節制)있게 하며, 우리에게 주어진 분수에 만족(滿足)하게 한다. 

 

    ⑶.하나님께서 허락(許諾)하신 결혼(結婚)에 관련(關聯)된 책임(責任)과 의무(義務)이다.

   ☞.(창2:24)의 결혼의 원리(原理)는 

     ①.부모(父母)로부터 완전(完全)한 독립(獨立) 

     ②.동등(同等)한 두 인격체(人格體)의 완전(完全)한 연합(聯合) 

   ③.두 몸이 한 몸이 되는 완전(完全)한 합일(合一)의 원리(原理)이다. 

 

<木욜-요약(要約)>

 축복(祝福)에는 의무(義務)가 수반(隨伴)될 때 진정(眞正)한 축복(祝福)이 되는 것이다.

  즉 건강(健康)하려면 건강법칙(健康法則)을 준수(遵守)할 때 보장(保障)이 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創造)하시고 그에게 필요(必要)한 많은 선물(膳物)들을 주셨다. 그러나 그러한 선물(膳物)에는 합당(合當)한 법칙(法則)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의무(義務)가 수반(隨伴)될 때 조화(調和)와 질서(秩序)를 마련하신 분이 바로 창조주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이를 꼭 기억하여 온전한 축복에 삶을 누리십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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