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과 약속된 아들(질문, 대답, 설명) 01/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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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2-01-08 02:27 조회5,753회 댓글0건본문
제3과 약속된 아들
(1월 15일 안식일 / 일몰: 오후 5시 38분)
연구 범위: 사 2:2, 3, 히 1:1~4, 출 24:16, 17, 사 44:24, 히 1:10, 눅 1:31, 32, 히 1:5
기억절: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히 1:2, 3).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은 직후,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후손,” 즉 그들을 원수로부터 구해 내시고, 잃어버린 유산을 회복하며, 그들이 창조된 목적을 성취할 아들을 약속하셨다(창 3:15). 이 아들은 그들의 자리를 취하여 마침내 뱀을 멸망시킴으로 그들을 대표하고 구원할 것이었다.
“아담과 하와는 이 약속을 처음으로 듣고 이 약속이 속히 성취되기를 고대하였다. 그들은 그들의 맏아들이 구주이기를 바라면서 그 아들을 기쁨으로 환영하였다. 그러나 이 약속의 성취는 지체되었다”(시대의 소망, 31). 이 약속은 훗날 아브라함에게 다시 주어졌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후손”, 즉 지구상의 모든 민족이 그를 통해 복을 받게 될 아들이 생길 것이라고 맹세하셨다(창 22:16~18, 갈 3:16).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약속을 다윗에게도 확증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후손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에 의해 왕위에 오를 것이며 지구상의 모든 왕들 위에 공의로운 통치자로 세워지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다(삼하 7:12~14, 시 89:27~29). 그러나 아담과 하와, 아브라함 그리고 다윗은 구원자로 약속된 그 아들이 하나님 자신이실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학습 목표
- 깨닫기
약속된 아들로 오신 예수님은 어떤 분이시며 그분이 우리의 구원을 위해 무엇을 하고 계신지 깨닫는다.
- 느끼기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 그리고 지금도 행하고 계신 일에 감사한다.
- 행하기
우리에게 하나님을 보여 주시며 무한한 능력으로 이 세상을 붙들고 계신 예수님을 신뢰하며 살아간다.
TMI 위로
2. 바울은 그가 살던 시대를 어떠한 때라고 이해했으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히 1:1~4)
※ 모든 날 마지막 때라고 했다.
3. 예수님을 통한 하나님의 계시가 선지자들을 통한 계시보다 우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 그분은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의 아들로 직접 하나님을 나타내셨기 때문이다.
4. 성경에서 하나님의 영광은 인간에게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습니까?(출 24:16, 17)
※ 빛과 광채로 나타났다.
5. 바울은 예수님이 단순히 창조에 사용된 도구가 아니라 창조의 주체이셨음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습니까?(히 1:10, 히 2:10)
※ “주여 태초에 주께서 땅의 기초를 두셨으며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 바라” “그러므로 만물이 그를 위하고 또한 그로 말미암은 이가”라고 하였다.
6.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가리켜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라고 하신 말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히 1:5)
※ 다윗의 위에 앉으시는 왕이심을 뜻한다.
결론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날의 마지막에 다른 어떤 선지자보다 뛰어난, 아들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며 그분을 통해 하나님의 모습을 우리에게 드러내 보여 주셨습니다. 그 예수님께서 지금도 이 세상을 붙들고 계시며 우리의 구원을 위해 일하고 계신다는 사실이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큰 소망이 됩니다.
1월 9일(일) 이 모든 날 마지막에
히브리서의 첫 문단은 바울이 “마지막 때”에 살고 있다고 믿었음을 보여 준다. 성경은 미래를 나타내는 각기 다른 의미를 가진 두 가지 표현을 사용한다. 선지자들은 일반적인 미래에 대해 언급하기 위해 “말세” 또는 “끝날”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신 4:30, 31, 렘 23:20). 다니엘은 좀 더 구체적으로 지구 역사의 마지막 때에 대해 언급하기 위해 “정한 때의 끝”이라는 또 다른 표현을 사용했다(단 8:17, 12:4).
민수기 24:14~19과 이사야 2:2, 3을 읽어 보라. 하나님께서 “후일에” 당신의 백성들을 위해 무엇을 하시겠다고 약속하셨는가?
[민24:14~19] 이제 나는 내 백성에게로 돌아가거니와 들으소서 내가 이 백성이 후일에 당신의 백성에게 어떻게 할지를 당신에게 말하리이다 하고 15 예언하여 이르기를 브올의 아들 발람이 말하며 눈을 감았던 자가 말하며 16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가 말하며 지극히 높으신 자의 지식을 아는 자, 전능자의 환상을 보는 자, 엎드려서 눈을 뜬 자가 말하기를 17 내가 그를 보아도 이 때의 일이 아니며 내가 그를 바라보아도 가까운 일이 아니로다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규가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 모압을 이쪽에서 저쪽까지 쳐서 무찌르고 또 셋의 자식들을 다 멸하리로다 18 그의 원수 에돔은 그들의 유산이 되며 그의 원수 세일도 그들의 유산이 되고 그와 동시에 이스라엘은 용감히 행동하리로다 19 주권자가 야곱에게서 나서 남은 자들을 그 성읍에서 멸절하리로다 하고,
[사2:2,3]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 3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답: 말일에 이스라엘에서 주권자가 나오며 만방이 그분께로 모여들어 하나님의 도를 배우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몇몇 구약의 선지자들은 “후일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의 원수를 물리치며(민 24:14~19), 나라들을 이스라엘에게로 이끌어 올 한 왕을 일으키시리라고 선포했다(사 2:2, 3). 바울은 이 약속들이 예수님 안에서 성취되었다고 이야기한다. 예수님께서는 사탄을 물리치셨으며, 또한, 복음을 선포하심으로 모든 나라를 자신에게로 이끌고 계신다(골 2:15, 요 12:32). 이런 의미에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약속들을 성취하심을 통해 “마지막 때”는 이미 시작된 것이다.
우리의 영적 조상들은 믿음 안에서 죽었다. 그들은 그 약속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였으나 그 약속을 받지 못하였다. 반면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그 약속의 성취를 보아 알고 있다.
잠시 하나님의 약속과 예수님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하자.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을 부활시키실 것이라고 약속하셨다(살전 4:15, 16). 놀라운 소식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그 약속을 이미 실현하기 시작하셨다는 사실이다(고전 15:20, 마 27:51~53). 또한, 하나님께서는 새 창조를 약속하셨다(사 65:17).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 새로운 영적 생명을 창조하심으로 그 약속도 성취하기 시작하셨다(고후 5:17, 갈 6:15).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최후의 왕국을 세우실 것이라고 약속하셨다(단 2:44).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탄의 권세에서부터 구원하시고 예수님을 우리의 통치자로 임명하심으로 그 왕국을 시작하셨다(마 12:28~30, 눅 10:18~20).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초림 때 시작하신 일을 재림의 때에 완성하실 것이다.
<묵상>
하나님께서 과거에 성취하신 모든 약속을 보십시오. 이 사실이 아직 성취되지 않은 약속들에 관해서도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게 도와줍니까?
답: 과거에 예언이 성취된 사실에 의하여 미래도 성취될 것을 확인, 확신할 수 있다.
<부가설명> 교과 저자는 구약에서 후일, 또는 말일이라고 한 것이 히브리서 1장의 모든 날 마지막이라는 말씀 안에서 이미 성취되기 시작했다고 설명한다. 옳다. 예수님은 모든 날 마지막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다. 나는 이 세상에는 두 사람뿐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한 분은 첫 사람 아담이고 다른 한 분은 마지막 아담 예수님이다(고전15:45). 그리고 지구상의 모든 인류는 먼저는 첫 아담 안에 있었고, 다음은 마지막 아담 예수님 안에 있다. 그런데 한 사람의 예외를 두고 모든 인류는 다 아담의 허리에 있었다. 예외 한 분은 마지막 아담 예수님이시다. 그분은 첫 아담의 허리에 있은 분이 아니다. 그분은 자존하신 말씀 하나님 여호와이시고 첫 아담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날 마지막에 아담 안에서 죽어버린 인류를 구원하여 새로운 인류를 생산하기 위하여 여자의 씨로 세상에 오셨다. 그래서 그분은 마지막 사람이시다. 그분 후에는 또 다른 사람이 없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처음에는 첫 아담 안에 있었으니 이제는 마지막 아담 예수님 안에 있다. 이 사람들은 모두 예수님 안에서 마지막 사람들이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첫 아담에게서 받은 육체의 생명과 거듭남으로 마지막 아담에게서 받는 영의 생명을 동시가 한 몸에 가지고 있다. 이 두 생명이 한 몸에서 싸운다. 이것이 영적 투쟁이다(갈5:16,17).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영으로 몸의 행실을 죽여야 한다(롬8:13). 이제 그리스도인은 마지막 사람들이 살 마지막 세상 곧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를 것을 기대하면서 영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는 삶을 살아가는 것만 남았다. 모든 것은 예수께서 모든 마지막에 오시므로 시작되었고 진행되고 있으면 예수님이 재림하시므로 끝날 것이다. 아멘.
<교훈>
구약의 선지자들이 “후일에” 일어나리라고 한 일들이 예수님을 통해 성취되었으며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 때”는 이미 시작된 것이다.
1월 10일(월) 아들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심
히브리서 1:1~4을 읽어 보라. 이 말씀의 중심 사상은 무엇인가?
[히1:1~4]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2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3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4 그가 천사보다 훨씬 뛰어남은 그들보다 더욱 아름다운 이름을 기업으로 얻으심이니,
답: 모든 날 마지막에 하나님께서 아들로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는 것이며 그 아들은 창조주시며 만물을 다스리시는 분이시라는 것이다.
헬라어 원문에서 히브리서 1:1~4절은 하나의 문장으로 쓰여 있는데, 헬라어로 쓰여진 문장의 아름다움이라는 관점으로 볼 때, 이 말씀은 신약 전체에서 가장 아름다운 문장으로 손꼽힌다. 이 본문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아들 예수님을 통해 당신의 백성들에게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1세기에 살았던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오랜 세월 동안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그들에게 다시 말씀하고 계셨다. 예수님을 통한 하나님의 계시는 하나님께서 다른 어떤 선지자들을 통해 주셨던 계시보다 더 우월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다른 어떤 계시의 방법보다 위대하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고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하나님 자신이시다. 바울은 예수님의 신성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그는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또한, 바울에게 구약 성경은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과거에 말씀하셨던, 같은 하나님께서 현재에도 계속해서 말씀하고 계신다. 구약은 참된 하나님의 뜻을 알려 주었다.
하지만 아들이 이 땅에 오셨을 때 마침내 구약의 의미를 보다 더 완전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마치 퍼즐 박스에 그려져 있는 그림이 각각의 퍼즐 조각이 어디에 들어가야 하는지 가르쳐 주는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아버지를 나타내셨고, 그를 통해 구약에 기록된 많은 말씀의 참된 의미를 드러내 보여 주셨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대표자 그리고 구원자가 되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 원수와의 싸움에서 우리의 자리를 취하시고 뱀을 물리치실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히브리서에서 예수님은 믿는 자들의 “창시자” 또는 “대장” 그리고 “앞서가신 자”이시다(히 2:10, 6:20). 그분은 우리를 위해 싸우시며 우리를 대표하신다.
이것은 아버지 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대표자 되시는 예수님을 위해 하신 일을 우리를 위해서도 행하고자 하신다는 의미이다. 예수님을 높이셔서 당신의 우편에 앉게 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 또한 예수님과 함께 그분의 보좌에 앉기를 원하신다(계 3:21).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기별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뿐만 아니라 우리의 현세적인 그리고 영원한 유익을 위해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그리고 예수님께 행하신 모든 것을 포함한다.
<묵상>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이 지구에 오신 의미를 생각해 보십시오. 이 진리가 우리에게 큰 희망을 주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답: 창조주가 구원의 주가 되셨기 때문에 구원하시는 일에 차질이 없다는 사실은 우리가 그분 안에서 확실히 구원받았다는 보증이 된다. 아멘.
<부가설명> 히브리서 기자인 바울은 예수님이 창조주시며 우주를 친히 다스리시는 분이심을 믿음으로 고백하고 있다. 성령께서 그렇게 바울의 마음을 감동하신 것이다. 우리도 이런 성경의 계시를 통하여 예수님이 창조주시며 우주를 다스리시고 운행하시는 분이심을 믿음으로 알고 감사하고 경배하게 되었다.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사람들은 자기가 흠모하는 사람을 직접 만날 때에 아주 기뻐하며 황송한 모습을 한다. 그런데 우리는 기록된 말씀에서 계시를 보는 사람들이고 계시 중에 삼위일명(三位一名) 여호와 하나님으 만나는데도 그런 감격과 정성이 별로 없는 것이 아닌가 싶다. 나 자신부터 그런 정서인 것 같아서 글을 쓰면서 황송하기 그지없다. 우리 구주 예수님이 마지막 사람이요, 또한 구주시며 그분 안에서 우리가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놀라운 은혜를 입었으니 넘치는 감사가 마음에서부터 우러나와 찬양과 감사로 그분께 경배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는가? 이런 감사가 충만하면 믿음이 충성도 충만하게 된다. 날마다 나에게 이런 감사와 충성이 풍성하도록 성령께서 능력으로 역사해주시기를 기도한다. 아멘.
<교훈>
구약 시대에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하셨던 하나님께서는 신약 시대에는 다른 모든 계시보다 우월한, 모든 계시를 성취하신 예수님을 통해 말씀하셨다.
1월 11일(화)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히브리서 1:2~4을 읽어 보라. 이 본문이 우리에게 예수님에 관하여 무엇을 가르쳐 주는가?
[히1:2~4]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3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4 그가 천사보다 훨씬 뛰어남은 그들보다 더욱 아름다운 이름을 기업으로 얻으심이니,
답: 예수님은 창조주시며 하나님의 본체의 형상과 영광의 광채시다. 그분은 죄를 사해주시는 분이시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이름을 받으신 분이시다.
우리는 오늘 교과를 통해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히 1:3)라는 부분을 집중해서 살펴보려고 한다.
출애굽기 24:16, 17, 시편 4:6, 36:9, 89:15을 읽어 보라. 이 말씀들이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데 어떤 도움을 주는가?
[출24:16,17] 여호와의 영광이 시내 산 위에 머무르고 구름이 엿새 동안 산을 가리더니 일곱째 날에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시니라 17 산 위의 여호와의 영광이 이스라엘 자손의 눈에 맹렬한 불 같이 보였고,
[시4:6] 여러 사람의 말이 우리에게 선을 보일 자 누구뇨 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추소서.
[시36:9] 진실로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
[시89:15] 즐겁게 소리칠 줄 아는 백성은 복이 있나니 여호와여 그들이 주의 얼굴 빛 안에서 다니리로다.
답: 하나님께서 임재하신 표로 나타나는데 선을 보이는 것이기도 하고 생명의 나타나심이기도 하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영광은 당신의 백성들 가운데 나타난 하나님의 가시적인 임재를 가리킨다(출 16:7, 24:16, 17, 레 9:23, 민 14:10). 이와 같은 하나님의 임재는 흔히 빛 또는 광채와 관련되어 있다.
성경은 예수님을 가리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 보여 주기 위해 이 땅에 오신 빛이라고 이야기한다(히 1:3, 요 1:6~9, 14~18, 고후 4:6). 예를 들어 예수님께서 변화산 사건에서 어떻게 나타나셨는지 생각해 보라.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마 17:2).
마치 태양이 그 빛의 광채로서만 관찰될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진 바 된다. 하나님의 영광은 빛 자체이기 때문에, 하나님과 예수님 사이에는 그 존재와 품성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 마치 빛과 그 광채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것처럼 말이다.
히브리서는 예수님이 아버지의 “본체의 형상”이라고 이야기한다(히 1:3). 이 비유의 요점은 아버지와 아들의 존재가 본질적으로 완벽하게 일치한다는 것이다. 우리 인간들이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있지만 그분의 본질을 가지고 있지는 않음을 주목해 보라(창 1:26). 그러나 아들은 아버지와 같은 본질을 공유한다. 예수님께서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요 14:9)이라고 말씀하신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묵상>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성품과 영광을 우리에게 드러내 보여 주신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좋은 소식이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 아버지는 어떤 분이시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시나요?
답: 아버지는 예수님과 같은 분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이 되셨을 때에라도 하나님으로 존재하시는 일을 그치지 않으셨다. 비록 그분이 자신을 낮추어 인간이 되셨을지라도 신성은 여전히 그분의 것이었다. 그리스도께서만 인간에게 아버지 하나님을 나타내실 수 있었으며, 제자들은 삼년 동안이나 그 나타나심을 볼 수 있는 특권을 가졌다”(시대의 소망, 663). 우리는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서 행하신 모든 일들과, 그분께서 나타내 보여 주신 온전한 사랑과 섬김의 모습을 통해 아버지 하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부가설명> 예수님을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라고 계시하였다. 이런 말씀에 근거해서 삼위일체를 설명할 때 태양을 예로 들면서 ‘아버지는 그 본체, 아들은 그 빛 광채, 성령은 그 열(熱)인데 결국은 한 태양이다’라는 논리를 편다. 이것은 개신교 내에서도 양태론(樣態論)이라고 하여 이단 취급하는 것 같다. 이렇게 설명하는 일체는 설명되는지 모르지만 개체가 없어진다. 삼위는 분명 각각 따로 개체를 가지신 존재이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라고 하는 것은 교과 저자의 표현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임재하실 때 사람들이 그분의 임재를 알 수 있도록 빛과 광채를 동반하신 구약의 기록과 관련한 표현이다. 그분이 곧 아버지 하나님을 가장 분명히 나타내시는 분이시라는 뜻이다. 그리고 시36:9의 말씀이 요1:4에 인용되었는데 ‘그(예수)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라는 말씀이다. 결국 빛으로 나타내신 것은 그분이 생명 자체심을 나타내신 것이다. 그분을 거절하고 떠나는 것은 생명을 거절하는 것이다. 결과는 생명과 존재를 상실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사망이요 죄이다. 예수님은 이 사망과 죄를 없이하시고 생명을 드러내어서 사람들이 이 생명을 얻게 하시려고 모든 날 마지막에 친히 세상에 오신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8:12)라고 선포하신 것이다. 아멘.
<교훈>
히브리서는 예수님을 가리켜 우리에게 하나님을 보여 주는 광채이시며 하나님과 같은 본질을 가지고 계신 분이라고 설명한다.
1월 12일(수) 그를 통해 만물을 만드심
히브리서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이 세상을 창조하셨으며, 예수님께서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들고 계신다고 말한다.
이사야 44:24, 45:18, 느 9:6을 읽어 보라. 구약에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홀로” 세상을 만드셨으며 당신만이 “유일한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이 말씀과 신약에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말씀을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는가?
[사44:24] 네 구속자요 모태에서 너를 지은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만물을 지은 여호와라 홀로 하늘을 폈으며 나와 함께 한 자 없이 땅을 펼쳤고,
[사45:18] 대저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을 창조하신 이 그는 하나님이시니 그가 땅을 지으시고 그것을 만드셨으며 그것을 견고하게 하시되 혼돈하게 창조하지 아니하시고 사람이 거주하게 그것을 지으셨으니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느9:6] 오직 주는 여호와시라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과 일월 성신과 땅과 땅 위의 만물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시고 다 보존하시오니 모든 천군이 주께 경배하나이다.
답: 이것은 삼위일명(三位一名)이라는 진리로 대답이 된다. 삼위가 다 여호와라는 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 삼위는 다 스스로 계신 여호와이시다. (부가설명에서 자세히 설명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은 단지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는 데 사용한 도구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불가능하다. 첫째, 바울에게 있어 예수님은 조력자가 아니라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다. 바울은 히브리서 1:10에서 예수님은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하나님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으며, 시편 102:25~27에서 창조주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에 대하여 이야기한 것을 예수님께 적용하고 있다. 둘째, 히브리서 2:10은 아버지를 “통해” 만물이 창조되었다고 이야기한다. 이는 히브리서 1:2에서 예수님께도 똑같이 적용된 표현이다. 아버지께서 창조하셨고 예수님도 창조하셨다(히 1:2, 10, 2:10).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는 그 목적과 활동에 있어 완벽한 일치가 있다. 이것이 바로 삼위일체의 신비 중의 하나이다. 예수님께서 창조하셨고 하나님께서도 창조하셨지만, 창조주는 한 분이시다. 이는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의미한다.
한편, 히브리서 4:13은 예수님은 심판자이심을 보여 준다. 통치하고 심판하는 예수님의 권위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만물을 붙들고 계심에서 비롯된다(사 44:24~28).
히브리서 1:3과 골로새서 1:17은 예수님께서 만물을 붙들고 계신다고 선언한다. 이와 같은 예수님의 붙드시는 행위는 인도와 통치의 개념을 포함한다. “붙들다”라고 해석되는 헬라어 단어 페론(pheron)은 바람이 배를 몰아가는 것(행 27:15, 17), 또는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인도하시는 것을 묘사한다(벧후 1:21).
즉,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창조하셨을 뿐만 아니라 매우 실질적인 맥락에서 우리를 붙들고 계신다. 모든 호흡과 심장 박동, 그리고 우리 존재의 매 순간은 모든 존재하는 것의 기초가 되시는 예수님 안에서 발견된다.
<묵상>
사도행전 17:28을 찾아보십시오. 예수님과 그분의 능력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이러한 예수님께서 우리들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의 의미를 생각해 보십시오. 이 진리가 하나님의 자아 부정의 성품에 관해 무엇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까?
[행17:28]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 너희 시인 중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답: 사람들은 창조주(예수님)를 힘입어 살며 활동하며 존재한다. 이렇게 하신 분이 사람이 되어 오셔서 아담의 자손들을 구원하여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주시기 위하여 희생하셨다. 자기를 비우신 것이다.
<부가설명> 이사야 44:24은 “네 구속자요 모태에서 너를 지은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만물을 지은 여호와라 홀로 하늘을 폈으며 나와 함께 한 자 없이 땅을 펼쳤고,”라고 말씀하셨다.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한 다른 이가 없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 홀로 창조하셨다고 단언했다. 그러니까 아들과 성령은 창조하지 않은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성경은 아들도 성령도 다 창조주라고 계시하였다. 그러면 이사야 44:24과 충돌되고 모순이 되지 않느냐는 질문이 나올 것이다. 그런데 여기 ‘홀로’라는 히브리어를 잘 이해해야 한다. 그것은 ‘엑하드’나 ‘약히드’가 아니고 ‘바드’이다. 이 말은 ‘…만이’라는 뜻이다. 즉 창조는 여호와만(바드)이 하셨다는 말이다. 여호와 외에는 창조에 함께 한 다른 자가 없다. 그러므로 창조에 함께 한 분이 있다면 그는 여호와이실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요1:1~3은 말씀 하나님이 창조하셨다고 계시하면서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다.’라고 단언했다. 그러니까 말씀 하나님도 창조주가 틀림없고, 또 성령님도 창조하신분이라고 계시하셨으니 그분도 창조주이시다. “주의 영(성령)을 보내어 그들을 창조하사 지면을 새롭게 하시나이다”(시104:30). 그러니 아버지 말씀 하나님, 성령님은 다 창조주이시다. 그래서 이 삼위는 여호와라는 한 이름을 가지신 분이시고(마28:19) 여호와 외에는 창조에 함께 한 자가 없다는 이사야 44:24은 정확한 계시의 말씀인 것을 알게 된다. 즉 여호와라 이름하신 하나님 외에는 창조에 함께한 다른 이가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여호와만이(바드) 창조하셨다고 계시하였다. 다 이해하였기를 바란다.
<교훈>
하나님과 함께 세상을 창조하신 예수님께서는 오늘 우리 삶의 모든 부분을 붙드시며 인도하고 계신다.
1월 13일(목)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
히브리서 1:5에는 예수님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낳았다는 것은 무슨 뜻이며, 이 일은 언제 일어났는가? 이 말씀은 과연 많은 사람들이 믿는 것처럼 아주 오래전 예수님 또한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음을 보여 주는 것인가?
히브리서 1:5, 사무엘하 7:12~14, 시편 2:7, 누가복음 1:31, 32을 읽어 보라. 바울은 다윗에게 허락된 어떤 약속을 예수님께 적용하고 있는가?
[히1:5] 하나님께서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 하셨으며 또 다시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라 하셨느냐.
[삼하7:12~14]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13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14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시2:7]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눅1:31,32]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32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답: 다윗의 아들을 왕으로 세우실 때 그를 내 아들을 삼는다고 하신 약속을 예수님께 적용했다.
하나님에 의해 다윗의 후손, 곧 약속된 통치자로 임명 또는 받아들여지셨다는 의미에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낳으신 것이다. 통치자로 구별되고 선택된다는 것의 의미는 그리스 · 로마 세계와 동방에서 널리 알려진 것이었다. 그것은 임명된 통치자에게 그 땅에 대한 정당성과 권력을 부여해 주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그의 후손이 그 나라의 참되고 합법적인 통치자가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후손을 당신의 아들로 받아들이실 것이었다. 이 과정을 통해 다윗 혈통의 왕이 하나님의 후계자와 상속자가 될 것이었다. 그 언약은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님을 통해 성취되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원수들을 물리치시고 유산으로 나라들을 예수님께 주실 것이었다(시 89:27, 2:7, 8).
로마서 1:3, 4과 사도행전 13:32, 33에서 읽을 수 있는 것처럼, 예수님은 공개적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을 받으셨다. 예수님의 침례와 변형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자신의 아들로 인정하고 공표하신 순간들이었다(마 3:17, 17:5).
하지만 신약의 기록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셨을 때 비로소 ‘능력 있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셨다(롬1:3,4). 바로 그 순간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후손이 하나님의 친아들로 받아들여져서 나라들 위에서 그 보좌가 영원히 서게 되리라고 다윗에게 말씀하셨던 당신의 약속을 성취하셨다(삼하 7:12~14).
<묵상>
하나님의 “독생자”라는 개념은 어떤 의미를 나타내고 있는 것일까요?
(이어서) 예수님을 낳았다는 것은 나라들 위에 예수님의 통치가 시작된 것을 나타내는 것이지 그분의 존재의 시작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항상 존재하셨기 때문이다.
히브리서 7:3은 예수님은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히 13:8과 비교)으시다라고 이야기한다. 왜냐하면, 그분은 영원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독생자”라는 개념은 신으로서 예수님의 본성을 다루고 있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계획에 있어 그분의 역할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성육신을 통해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언약적 약속들을 성취하셨다.
<부가설명> 시편2:7 말씀은 예수님을 여호와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잘 인용하는 구절이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낳아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는 주장이다. 그것을 예수 피조물 설로 주장하는 교단도 있고 예수님을 전적으로 아버지와 동등한 분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이 구절을 인용한다. 심지어는 성령님은 하나님이 아니고 그냥 하나님의 감화력이나 능력을 그렇게 표현했다고 주장하는 소위 재림교인들 중에도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이 있다고 들었다. 그러나 시2:7 자체가 이런 주장들을 전혀 용인하지 않는다. 6,7절을 읽으면 답이 거기 이미 나와 있다.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이 구절에서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는 말을 듣는 분은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을 분명히 기록하였다. 여호와의 명을 전하는 분이 바로 아들이라고 선포된 그분이다. 내가 너를 낳았다는 선포가 있기 전에 이미 존재하는 분에게 하신 말씀이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예언한 말씀으로(행13:33) 또 대제사장 되실 것을 예언한 말씀으로(히5:5) 또 다윗의 위에 앉으실 왕이된다는 예언으로 해석했다. 그러므로 성경에 기록한 말씀 밖으로 나가면서 인간의 생각으로 단어를 강조하며 그런 오류를 주장하는 것을 오직 말씀에 의하여 바르게 분별하고 깨닫는 신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예수님은 요1:1~3에 기록대로 태초부터 계신 말씀 하나님 여호와이시다. 성경의 계시를 그대로 믿는 믿음이 진리에 굳게 선 믿음이다.
<교훈>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낳았다는 것은 예수님의 존재의 시작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계획에 있어 예수님의 역할을 나타내는 것이다.
1월 14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오심을 통해 여러 가지 일들을 동시에 성취하셨다. 우선,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로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셨다. 당신의 행동들과 말씀들을 통해 아버지께서 정말로 어떤 분이시며 우리가 왜 그분을 신뢰하고 순종할 수 있는지 알려 주셨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통해 원수를 물리치시고 세상을 통치하시겠다고 약속하셨던 하나님의 말씀대로 다윗, 아브라함, 그리고 아담의 약속된 아들로서 이 땅에 오셨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인류의 조상이었던 아담의 자리를 취하기 위해 오셨으며 그것을 통해 하나님께서 인류를 위해 갖고 계셨던 본래의 계획을 성취하셨다.
“요단강에서 예수에게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하신 말씀은 인류를 향하여 하신 말씀도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대표자로서의 예수에게 말씀하신 것이다. 우리의 이 모든 죄와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무가치한 자로서 버림을 받지는 않는다. 그는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엡 1:6) 우리를 받으셨다. 그리스도에게 임한 그 영광은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보증이다.…하늘의 열린 문에서부터 쏟아져 나와 구주의 머리에 비췬 그 빛은 우리가 시험에 저항하기 위해 도움을 간구할 때에 우리에게도 임할 것이다. 예수에게 말씀하신 그 음성은 또한 모든 믿는 자에게,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말씀하신다”(시대의 소망, 113).
핵심적인 연구를 위해
1.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을 더 잘 이해하는 것이 하나님 아버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배웠다. 예수님을 더 잘 이해하는 것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풍성하게 하는 데 어떤 실제적인 도움을 주는가?
※ 예수님의 여러 역할은 모두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것이므로 그분 안에서 우리도 그분의 모든 역할을 믿음으로 받아 감당할 수 있는 보증이 되기 때문이다.
2. 그리스도의 영원한 신성의 중요성에 관해 깊이 생각해 보라. 만약 우리가 예수님 또한 우리와 마찬가지로 창조된 존재로서 십자가에 달리셨다고 믿는다면 무엇을 잃게 되는가? 이와 같은 생각을 영원한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사실과 대조해 보라. 두 개념의 큰 차이점은 무엇인가?
※ 예수님이 우리와 같은 피조물이라는 그분의 십자가의 죽음은 인류를 대신하여 죽어주시는 죽음이 될 수 없고 부활할 능력도 없다. 예수님은 여호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스스로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는 분이시다(요10:17,18). 그래서 그분을 믿을 때 우리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구원을 경험한다.
3. 요한계시록 14:7을 읽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에 관하여 함께 이야기해 보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어떻게 현대 진리와 ‘세 천사의 기별’의 일부분이 되는가?
※ 영광은 그분의 임재의 빛이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세상의 빛이 될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 그것이 바로 세 천사의 기별을 드러내는 생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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