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과 히브리인들, 그리고 우리에게 보낸 편지(질문,대답,설명, 1/1/2022)
페이지 정보
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1-12-25 02:48 조회6,048회 댓글0건본문
제1과 히브리인들, 그리고 우리에게 보낸 편지
(1월 1일 안식일 / 일몰: 오후 5시 24분)
연구 범위: 히 2:3, 4, 벧전 4:14, 16, 히 13:1~9, 13, 왕상 19:1~18, 히 3:12~14, 민 13
기억절: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히 10:36).
예수님이나 사도들이 설교하는 것을 그대가 직접 듣는 것을 상상해 본 적이 있는가? 그들이 했던 설교의 인용문이나 요약본이 있기는 하지만, 직접 듣는 것과 비교한다면 그 정보는 매우 제한적인 것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성경 속에 하나의 완전한 설교를 남겨 주셨다. 바로 바울이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편지, 히브리서이다.
히브리서의 저자인 바울은 자신이 쓴 이 편지를 가리켜 “권면의 말”(히 13:22)이라고 불렀는데 이 표현은 회당과(행 13:15) 기독교 예배에서(딤전 4:13) 하는 설교를 가리킬 때 사용된 것이다. 히브리서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장 초기의 ‘완전한 기독교 설교’라고 주장되어 왔다. 히브리서는 예수님을 믿게 된 후로 어려움을 당하게 된 신자들을 위해 기록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공개적인 비방과 환난을 경험했으며(히 10:32~34),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은 사람도 있었다(히 13:5, 6). 많은 사람들이 지쳐 갔으며 자신의 신앙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되었다(히 3:12, 13). 우리 중에 누군가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는 사람은 없는가?
사도는 이 감동적인 설교를 통해 그들 그리고 우리에게 하늘 성소에서 봉사하고 계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그분을 향한 믿음으로 끝까지 견디라고 호소한다.
*학습 목표
- 깨닫기
초대 교회 성도들이 지체되는 듯 보이는 예수님의 재림으로 인해 겪고 있었던 어려움들을 이해한다.
느끼기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어려움들에도 불구하고 더 확실한 약속이 있음에 감사한다.
행하기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도록 하려는 유혹과 시험이 있을지라도 믿음 위에 굳게 서서 살아간다.
TMI 위로
2. 초대 교회 성도들은 어떤 증거들을 통해 그들이 선택한 믿음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었나요?(히 2:3, 4)
※ 하나님이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성령님의 역사로 들은 것을 확증해 주셨다.
3. ‘그리스도의 치욕을 진다’는 것의 참된 의미는 무엇일까요?(히 11:24~26, 벧전 4:14, 16)
※ ‘그리스도의 치욕을 진다’는 것은, 자신을 그리스도와 동일시하며 그로 인해 겪게 되는 수치와 고난을 견디는 것을 의미했다.
4. 히브리서의 독자들이 마주하고 있었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었습니까?(히 3:12, 13, 12:3)
※ 낙심하게 하는 일들이 많이 발생하고 죄의 유혹이 강하게 밀어닥친 것이다.
5. 지쳐 있는 초대 교회 성도들에게 바울은 어떤 권면을 했습니까?(히 10:19~25)
※ 주님을 생각하고 피차 격려하고 더욱 힘써 모이라고 했다.
6.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특별히 조심해야 할 것들에는 무엇이 있을까요?(히 12:25~29)
※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는 것이다.
결론
사도들의 헌신적인 복음 전파를 통해 기쁨으로 예수님을 믿게 된 초대 교회 성도들은 세상과 구별되는 그들의 삶과, 지연되는 듯 보이는 예수님의 재림으로 인해 영적 흔들림을 경험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확실한 하나님의 약속을 다시 한번 소개하면서 구원의 소망 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믿음을 지키라고 권면했습니다.
12월 26일(일) 영광스러운 시작
히브리서의설교를 제대로 이해하고 그 기별을 우리 자신에게 적용하기 위해, 우리는 그들이 사도로부터 이 편지를 받았을 때의 역사와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
히브리서 2:3, 4을 읽어 보라. 히브리서의 독자들이 처음 회심했을 때, 그들은 어떤 경험을 했는가?
[히2:3,4] 천사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하지 아니함이 공정한 보응을 받았거든/ 4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의 뜻을 따라 성령이 나누어 주신 것으로써 그들과 함께 증언하셨느니라.
답: 그들은 예수님께 직접 들은 경험이 없고 그의 제자들을 통하여 복음을 들었으며 그 일에 하나님께서 표적, 기사, 능력을 경험하였다.
이 말씀은 히브리서의 독자들이 예수님께서 설교하시는 것을 직접 듣지 못했음을 암시한다. 대신 그들은 그들에게 “구원”의 소식을 전해 준 다른 전도자들을 통해 복음을 들었다.
바울 역시 전도자들이 그 기별을 “확증”했으며 하나님께서도 “표적들과 기사들”(히 2:4)로 증언하셨다고 말하고 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표적들과 놀라운 일들을 통해 복음을 경험하고 확인할 수 있게 해 주셨음을 의미한다. 그중의 하나가 바로 “성령의 선물”을 나눠 주신 것이었다(히 2:4). 신약성경은 복음이 새로운 곳에 전파될 때 자주 기적적인 치유, 귀신을 쫓아내는 일, 영적 은사가 넘치도록 주어지는 일과 같은 표적들이 함께 일어났음을 기록하고 있다.
기독교 교회가 처음 시작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에게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셔서 그들로 하여금 그들이 전에 알지 못했던 언어로 복음을 전하며 기적들을 행하게 하셨다(행 2, 3장). 빌립은 비슷한 기사를 사마리아에서 행했으며(행 8장), 베드로는 욥바와 가이사랴에서(행 9, 10장), 바울은 소아시아와 유럽에서 그렇게 했다(행 13~28장). 이와 같은 능력들은, 하나님 나라의 수립, 정죄함으로부터의 구원, 그리고 악한 권세들로부터의 자유와 같은 “구원”의 기별을 확증하는 경험적 증거였다(히 12:25~29).
성령께서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 죄를 용서받았음에 대한 확신을 주셨으므로 그들은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그 결과 그들의 기도는 담대하고 확신에 찼으며, 그들의 신앙적 경험은 기쁨으로 가득했다(행 2:37~47). 성령께서는 악한 영의 권세에 짓눌려 있던 자들을 구원해 주셨는데, 이는 하나님의 능력이 악한 영들보다 우월하다는 강력한 증거가 되었다. 또한, 성령께서는 그들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세워졌음을 확인하여 주셨다.
<묵상>
그대의 회심의 이야기는 무엇입니까? 그대는 어떤 방법으로 그대가 가진 믿음과 예수 그리스도가 그대의 구주 되심에 대한 확증을 얻었습니까?
답: 각자가 대답해보자.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확증으로 믿음이 더욱 공고해져야 한다.
<부가설명> 베드로는 그의 편지를 받는 사람들에게 이와 같은 말을 하였다.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받으실 영광을 미리 증언하여 누구를 또는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벧전1:8~11). 예수님을 보지 못하고 예수님을 믿고 사랑하는 신자들은 주님의 제자들이 예언의 말씀에 근거하여 증거하는 복음을 다 듣고 구원의 기쁨을 누리게 된 것이다. 바울은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10:17)라고 분명히 말했다. 베드로의 증언을 듣고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나 오늘나 우리는 그 사정이 같다. 우리가 예수님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믿고 사랑한다. 기록된 말씀에서 예수님을 만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거기서 예수님을 만나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믿음을 더욱 굳게 해야 한다. 아멘.
그런데 교과 서론부에는 이런 말이 있다. “그분은 우리와 같이 여자에게서 나셨으며우리와 같이 시험을 받으시고 멸시당하셨다.” 여자에게서 나셨다는 말은 맞다. 그러나 ‘우리와 같이’라는 표현은 주의해야 한다. 그분은 동정녀에게서 나신 분이고 우리는 결혼한 여자가 남자에게서 정자를 받아서 임신하고 태어난 사람이다. 여자에게서 났으나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 점에 오해하지 않도록 여기 이렇게 사족을 단다. 그분은 성령으로 잉태하신 분이고 우리는 남자로 인하여 어머니가 잉태한 존재이다. 근본이 전혀 다르다. 우리는 생명을 사람 아버지로부터 받았고 예수님은 당신 자신이 생명자체이시기 때문에 당신의 생명이 씨가 되어 성령으로 동정녀에게 잉태하신 것이다. 이점은 성경과 구원을 깨닫는데 대단히 중요하다. 그래서 성경은 그분을 ‘여자의 씨(후손)’라고 표현한 것이다. 아멘.
<교훈>
하나님께서는 표적과 기사를 통해 초대 교회에 복음에 대한 확신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심으로 구원의 기쁜 소식이 널리 전파되도록 하셨다.
12월 27일(월) 고난
신자들이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고백하고 교회에 입교했을 때, 그들은 믿지 않는 자들과 자신들을 구분하는 표시를 만들었다. 그런데 이런 일은 불행하게도 은연중에 그들이 속한 공동체와 공동체가 가진 가치에 대해 부정적인 판단을 표현하는 것으로 여겨져 갈등의 원인이 되었다.
히브리서 10:32~34과 13:3을 읽어 보라. 히브리서의 독자들이 회심한 후, 그들은 어떤 경험을 했는가?
[히10:32~34]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을 견디어 낸 것을 생각하라 33 혹은 비방과 환난으로써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혹은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과 사귀는 자가 되었으니 34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소유를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소유가 있는 줄 앎이라.
[히13:3] 너희도 함께 갇힌 것 같이 갇힌 자를 생각하고 너희도 몸을 가졌은즉 학대 받는 자를 생각하라.
답: 환난과 핍박을 경험했다. 산업도 빼앗기고 옥에도 갇히는 고난이었고 육체적 학대도 경험했다.
히브리서의 독자들은 그들을 반대하는 자들이 선동한 군중들에 의해 말로 그리고 육체적으로 고통받았음이 분명하다(행 16:19~22, 17:1~9). 그들은 감옥에 갇히기도 했으며 그곳에서 매질을 당하기도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당시 관리들은 증거를 수집하는 동안 합법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도 형벌을 승인하고 투옥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기 때문이다(행 16:22, 23).
히브리서 11:24~26과 베드로전서 4:14, 16을 읽어 보라. 모세와 베드로전서의 독자들의 경험은 우리로 하여금 기독교 신자들이 왜 박해를 당했는지 이해하는 데 어떤 도움을 주는가?
[히11:24~26]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25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벧전4:14,16]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16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답: 그들의 생각과 생활방식이 세상과 같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치욕을 진다’는 것은, 자신을 그리스도와 동일시하며 그로 인해 겪게 되는 수치와 고난을 견디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공개적인 적대감은 그들이 가진, 구별되는 종교적인 신념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이해할 수 없는 종교적 관습들 또는 자신들을 죄책감에 빠지게 하며 부끄럽게 만드는 생활 방식이나 도덕적 가치로 인해 불쾌감을 느끼곤 한다.
1세기 중엽, 로마의 역사학자 타키투스는 그리스도인들을 “인류에 대한 증오감”을 조장한 죄인들로 간주했다. 이와 같은 비난의 정확한 이유가 무엇이었든지 간에, 바울의 편지를 받았던 사람들을 포함한 초대 교회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믿음으로 인해 고난을 받고 있었다.
<묵상>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받는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경험하는 고난 중에 그리스도를 위해 받는 고난은 얼마나 될까요?
답: 신자들이 이 세상에 처하여 있으면서 전혀 이 세상적이지 않는 삶을 살기 때문이다. 죄는 의를 까닭없이 미워한다.
<부가설명> 천로역정에는 기독도와 진충(眞忠)이 허화시(虛華市=허영의 도시)를 지나가는 데 그 도시 사람들이 기독도와 진충의 말이 다르고 의복이 다르다는 이유로 핍박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번연은 그런 도시에서 진충이 순교당한다고 묘사했다. 까닭없이 미워하는 이유는 예수님을 증오하는 사탄의 정신을 가졌기 때문이다. 현재의 이 세상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살지 못하기에 꼭 알맞은 세상이다. 기런 세상에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의 복음을 전하면서 그 생명으로 생활하는 모습을 드러내어야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 목적이다. 그래서 허영의 도시 같은 세상 사람들 중에 이 생활을 그리워하고 사모하는 사람들을 찾아내어 함께 하늘까지 가는 것이 우리 주님의 뜻이다. 그래서 핍박을 받으면서도, 순교하면서도 이 사명을 감당해온 것이다. 성령께서 그렇게 이끌어주시기 때문에 가능한 삶이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딤후3:12). 지금은 그래도 옛날 갖지 않은 것 같지만 사탄의 증오심은 결단코 없어지지 않는다. 말세에는 핍박현상이 교묘한 방법으로 실현될 것이다. 하루하루를 주님 안에서 이기는 경험으로 살아야 할 것이다.
<교훈>
초대 교회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믿게 된 후, 세상과 구별되는 삶의 방식을 선택함으로 많은 고난을 받았다.
12월 28일(화) 계속되는 어려움
히브리서의 독자들은 계속해서 이어지는 반대와 박해 가운데서도 자신들의 믿음을 지키며 그리스도께 끝까지 헌신하는 일에 성공하였다. 하지만 그와 같은 갈등이 큰 피해를 초래한 것도 사실이었다. 그들은 선한 싸움을 싸웠고 승리하였지만, 많이 지쳐 있었다.
히브리서 2:18, 3:12, 13, 4:15, 10:25, 12:3, 12, 13, 13:1~9, 13을 읽어 보라. 신자들이 맞닥뜨리게 된 도전들에는 무엇이 있었는가?
[히2:18]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히3:12,13] 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 13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
[히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히10: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히12:3,12,13]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12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13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히13:1~9]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2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3 너희도 함께 갇힌 것 같이 갇힌 자를 생각하고 너희도 몸을 가졌은즉 학대 받는 자를 생각하라 4 모든 사람은 결혼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 5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6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말하되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 7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일러 주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그들의 행실의 결말을 주의하여 보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라 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9 여러 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 함이 아름답고 음식으로써 할 것이 아니니 음식으로 말미암아 행한 자는 유익을 얻지 못하였느니라.
답: 시험이 이어지며 낙심하려는 생각을 들게하고 교회 집회를 불참하는 정신이 생기게 하고 심신을 피곤하게 하며 경제적인 어려움이 닥치는 등, 일상생활의 불편이 이어졌다. 그러나 우리 주님이 이 모든 것을 이기신 것을 생각하고 주님 안에 굳게 있으라고 권고한다.
히브리서는 독자들이 계속해서 어려움을 경험했다고 이야기한다. 언어적인 공격뿐만 아니라 그들의 명예를 짓밟는 다른 종류의 공격들이 이어졌다(히 13:13). 일부 신자들은 여전히 감옥에 갇혀 있었는데(히 13:3) 이는 교회를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들게 하는 일이었다. 그들은 지쳐 있었고(히 12:12, 13) “낙심”할 위기에 처해 있었다(히 12:3).
개인이나 공동체 가운데서 승리의 감격이 지나간 후, 심리적으로 또는 정신적으로 긴장이 풀렸을 때, 그런 순간 다가오는 적의 역습에 사람들은 더 취약하다. 연이어 다가오는 위협을 감당해 낼 힘을 계속해서 다잡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열왕기상 19:1~4을 읽어 보라. 엘리야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가?
[왕상19:1~4] 아합이 엘리야가 행한 모든 일과 그가 어떻게 모든 선지자를 칼로 죽였는지를 이세벨에게 말하니 2 이세벨이 사신을 엘리야에게 보내어 이르되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반드시 네 생명을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과 같게 하리라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한지라 3 그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자기의 생명을 위해 도망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자기의 사환을 그 곳에 머물게 하고 4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답: 바알 선지자들에게 승리한 후 이세벨이 그를 죽이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낙심하여 광야로 도망했다.
“그러나 높은 신앙과 영광스러운 성공에 흔히 뒤따라오는 그런 반작용이 엘리야에게 몰려들고 있었다. 그는 갈멜산 위에서 시작된 개혁이 중단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로 의기소침하였다. 그는 비스가산 꼭대기까지 높임을 받았으나 이제 그는 골짜기에 떨어져 있었다. 그가 전능하신 하나님의 영감을 받고 있을 때에는 가장 혹독한 신앙의 시련을 견딜 수 있었으나 그의 귀에 울리는 이세벨의 위협과 이 악한 여인의 음모를 통하여 나타나는 사탄의 계속적인 영향력으로 인해 실망한 이때에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데 실패하였다. 그는 엄청나게 높임을 받았으며 그 반작용도 대단하였다. 엘리야는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계속 도망하여 마침내 아무도 없는 쓸쓸한 광야에 오게 되었다”(선지자와 왕, 161, 162).
<묵상>
베드로후서 3장 1~13절을 묵상해 보십시오. 재림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어떤 기별을 주고 있습니까?
[벧후3:1~13]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이제 이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 이 두 편지로 너희의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나게 하여 2 곧 거룩한 선지자들이 예언한 말씀과 주 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려 하노라 3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롱하여 4 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5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그들이 일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6 이로 말미암아 그 때에 세상은 물이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7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보호하신 바 되어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8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11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답: 말세에 기록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핍박할 것이지만, 재림의 소망 중에서 참고 믿음을 잘 지키라고 권고한다.
히브리서의 수신자들과 마찬가지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도 계속해서 지연되며 도무지 이루어질 것 같지 않은 재림의 약속으로 인해 낙심하거나 우리가 붙들어야 할 가장 큰 소망을 놓칠 위험에 처해 있지는 않은지요? 하지만 거짓 없으신 하나님의 약속은 너무도 분명하며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그분의 약속은 분명히 이루어질 것입니다.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재림 성도로서 눈앞의 현실을 뛰어넘어 하나님의 확실한 약속을 바라볼 수 있는 믿음을 소유하기 위해 날마다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며 살아야겠습니다.
<부가설명> 이 세상에서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은 늘 환난과 핍박에 노출되어 있다. 요즘도 코로나 19를 핑계로 교회가 하는 일을 표적삼아 제재하는 것 같은 인상을 주고 있다. 이것은 약과이다. 계13장 예언이 역사의 현장에 나타날 때에는 정말로 어려운 시기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이기신 예수님 안에 깊이 숨어있어야 한다.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라고 하셨다. 계시록의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는 끝 부분에 ‘이기는 자는’이라는 말씀이 빠짐없이 다 있다. 사람들은 이 말씀을 신앙의 투쟁에서 스스로 승리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인 것 같다. 그러나 이기신 분은 예수님이시다. 우리가 그분 안에 있으면 우리도 이긴 자가 된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 안에 거하라’라고 강조해서 말씀하셨다. 이런 기별을 전제로 너희가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나 이미 내가 이겼다고 선언하신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 있기만 하면 이미 이긴 자들이 된다. 예수님 안에 있는 것은 그분의 말씀 안에 있는 것이다.
<교훈>
초대 교회 신자들은 거센 반대 가운데서도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웠으나 계속해서 이어지는 원수의 공격으로 인해 지쳐 가고 있었다.
12월 29일(수) 함께 노력함
히브리서의 수신자들을 향해 사도는 무엇이라고 조언하였는가? 히브리서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엘리야가 그의 좌절에서부터 다시 회복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어떻게 도우셨는지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열왕기상 19:5~18을 읽어 보라. 당신의 종 엘리야의 믿음을 회복시키시기 위해 하나님은 어떤 일을 하셨는가?
[왕상19:5~18] 로뎀 나무 아래에 누워 자더니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6 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더라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 7 여호와의 천사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 먹으라 네가 갈 길을 다 가지 못할까 하노라 하는지라
8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음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 주 사십 야를 가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 9 엘리야가 그 곳 굴에 들어가 거기서 머물더니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10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11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가서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서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에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12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13 엘리야가 듣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나가 굴 어귀에 서매 소리가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14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15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길을 돌이켜 광야를 통하여 다메섹에 가서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의 왕이 되게 하고 16 너는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고 또 아벨므홀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 17 하사엘의 칼을 피하는 자를 예후가 죽일 것이요 예후의 칼을 피하는 자를 엘리사가 죽이리라 18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답: 음식물을 주셔서 몸의 기력을 유지하게 하시고 그가 가야할 곳으로 인도하시며 산에서 그를 만나셔서 권능을 느끼게 하셨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조용한 중에 세미한 음성으로 들려주시고 그가 하는 개혁을 도울 조력자들을 보여주셨다.
갈멜산 사건 이후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어떻게 대하셨는지를 살피는 것은 매우 감동적이다. 왜냐하면, 좌절에 빠져 스스로의 힘으로는 믿음을 회복하지 못하는 곤란한 처지에 빠진 한 사람을 대하시는 하나님의 부드러운 돌보심과 지혜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위해 몇 가지 일을 행하셨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의 육체적인 필요를 채우셨다. 그에게 음식을 주시고 쉬게 하셨다. 그러고 나서 동굴 안에서 부드러운 음성으로 엘리야를 책망하셨다.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왕상 19:9). 그리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하시며, 어떻게 그분의 목적을 이루시는지를 그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하나님은 바람이나 지진이나 불 가운데 계시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세미한 소리로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할 일을 주셨고 당신께서 함께하시리라는 확신을 주셨다.
히브리서 2:1, 3:12~14, 5:11~6:3, 10:19~25을 읽어 보라. 바울은 신자들에게 무엇을 해야 한다고 제안했는가?
[히2:1]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
[히3:12~14] 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 13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 14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
[히5:11~6:3]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가 듣는 것이 둔하므로 설명하기 어려우니라 12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13 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14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6:1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2 침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 3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가 이것을 하리라.
[히10:19~25]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21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23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24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답: 받은 구원을 떠내려가지 않도록 조심하고 낙심하지 않도록 가다듬으며 의의 도를 경험하고 더 완전한데 나아가도록 하라고 격려한다.
히브리서 전체에 걸쳐 우리는 독자들이 본래 가지고 있던 힘과 믿음을 회복할 수 있도록 바울이 그들에게 준 몇 가지 가르침을 발견할 수 있다. 바울이 강조하는 한 가지는 동료 신자들의 실질적인 필요를 돌아보라는 것이었다. 바울은 그들에게 감옥에 갇혀 있는 자를 방문하여 돌보라고 제안하는데 이것은 동료 신자들의 필요를 채워 주라는 뜻이었다. 사도는 독자들에게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지 않으실 것임을 기억하고 후하게 대접하라고 이야기한다(히 13:1~6).
바울은 그들을 책망하기도 하고 격려하기도 한다. 바울은 그들에게 “떠내려”가는 상황에 처하지 말라고 경고했고(히 2:1),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갖지 말라고 이야기했으며(히 3:12), 믿음을 이해하는 일에 성장하라고 격려했다(히 5:11~6:3). 바울은 또한 교회 모임에 꾸준히 참석하는 일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했다(히 10:25). 요약하자면, 바울은 그들이 함께 노력하고, 서로 격려하고, 사랑과 선한 일에 힘쓰라고 권면했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과 그분께서 하늘 성소에서 그들을 위해 행하고 계신 일들에 관해서도 강조하여 이야기했다(히 8:1, 2, 12:1~4).
<묵상> 바울이 초대 교회 믿음의 공동체에게 주었던 권면의 말씀들 가운데 오늘 우리 또한 실천해야 하는 것들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답: 서로 격려하여 용기와 믿음을 북돋우고 모이기를 더욱 힘쓰며 진리의 말씀을 경험하는 것을 실천해야 할 것이다.
<부가설명> 하나님께서 엘리야가 용기를 가지고 일하도록 격려하신 것처럼 주님께서 성령님의 역사로 히브리교인들을 도우실 것이기 때문에 교인들이 서로 격려하여 함께 믿음에 굳게 서도록 협력하도록 강권한다. 평안할 때나 어려울 때나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된 유기체이다. 서로 격려하여 함께 힘을 얻고 하늘까지 낙심하지 않고 걸어가는 것은 당연하다. 한 몸이요 한 가족이다. 하나님은 엘리야가 모르는 7,000명의 신실한 하나님의 백성을 지켜주셨다. 그들이 가까이서 서로 격려했는지는 모르지만 서로가 알았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우리도 서로 허는 것보다는 격려해야 하지 않겠는가? 말씀과 다른 주장을 그럴듯하게 하고 진리를 허는 경우는 조심해야 하겠지만, 그렇지 않고 약해지고 낙심하는 모습은 기도와 격려로 돕고 힘을 더해줘야 한다. 서로 짐을 나눠질 수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합당하다. 그러나 기록된 말씀 밖으로 사람을 끌어내려고 하면 단연히 경계해야 하고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딛3:10)라고 한 성경의 경고대로 멀리하는 것이 옳다. 그렇지 않으면 사랑의 도움과 격려와 권고가 성도들이 할 일앋,
<교훈>
바울은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회복시키셨을 때 하셨던 것과 같이 지친 초대 교회 성도들을 회복시키기 위하여 사랑으로 권면하고 용기를 주었다.
12월 30일(목) 모든 날 마지막에
히브리서 1:2, 9:26~28, 10:25, 36~38, 12:25~28을 읽어 보라. 바울은 여기에서 특별히 때에 관련하여 어떤 내용을 강조하여 설명하고 있는가?
[히1:2]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히9:26~28]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한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28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히10:25,36~38]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36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37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38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히12:25~28] 너희는 삼가 말씀하신 이를 거역하지 말라 땅에서 경고하신 이를 거역한 그들이 피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하늘로부터 경고하신 이를 배반하는 우리일까보냐 26 그 때에는 그 소리가 땅을 진동하였거니와 이제는 약속하여 이르시되 내가 또 한 번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리라 하셨느니라 27 이 또 한 번이라 하심은 진동하지 아니하는 것을 영존하게 하기 위하여 진동할 것들 곧 만드신 것들이 변동될 것을 나타내심이라 28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또는 감사하자.
답: 예수께서는 구약성경에 예언한 대로 구약적인 마지막 때에 오셔서 예언을 성취하셨다. 그처럼 역사의 마지막 때가 가까워 올수록 더욱 믿음에 굳게 서서 신실한 믿음으로 하늘 가나안에 들어가도록 경성하라고 권고한다.
사도가 전한 권면의 말씀에 긴박성을 더하기 위해 그가 강조하고 있는 매우 중요한 요소가 한 가지 있다. 그것은 바로 독자들이 마지막 때에 살고 있으며(히 1:2) 하나님의 약속들은 곧 성취될 것이라는 사실이다(히 10:36~38). 앞으로 계속 살펴보게 되겠지만, 바울은 히브리서 전체에 걸쳐 그의 독자들과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위해 가나안 땅 경계 바로 앞에 서 있던 광야 세대를 비교한다. 바울은 그들에게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히 10:37)라고 상기시킨 후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히 10:39)라고 격려한다. 이 마지막 권면은 당시의 독자들과 우리에게 역사적으로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기 직전에 당신의 백성들이 경험했던 위험들을 상기시켜 준다.
민수기는 바로 이 문제에 대하여 언급한다. 성경의 기록에 의하면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직전,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 번이나 결정적인 실패를 경험한다. 첫 번째 실패가 기록된 민수기 13, 14장에서는 몇몇 지도자들이 온 회중에게 의심의 정신을 퍼뜨림으로 이스라엘의 믿음이 좌절되게 한 것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 결과 온 회중은 가나안 땅 입성을 눈앞에 둔 바로 그때, 새로운 지도자를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고자 하였다.
두 번째 실패는 바알브올에서 음란과 거짓 우상 숭배에 빠진 사건이다(민 24, 25장). 발람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저주를 가지고 올 수 없었지만, 사탄은 성적인 유혹을 통해 이스라엘을 거짓 우상 숭배에 빠뜨림으로 죄를 짓게 하여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진노를 경험하게 했다.
바울은 히브리서의 독자들에게 이 두 가지 위험들에 대하여 경고한다. 첫째, 바울은 그들이 했던 믿음의 고백을 끝까지 붙들며 언제나 예수님을 바라보라고 권면한다(히 4:14, 10:23, 12:1~4). 둘째, 바울은 그들에게 부도덕과 탐심을 멀리하라고 권면한다(히 13:4~6). 마지막으로, 바울은 그들의 지도자들에게 순종하라고 권면한다(히 13:7, 17).
<묵상>
우리는 죽은 자들이 다시 눈을 뜨게 되는 순간은 바로 재림의 순간이라고 믿습니다. 죽은 자의 상태에 대한 그런 이해에 비추어 볼 때, 모든 사람이 마지막 때를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답: 사람은 자기의 호흡이 끊어질 때를 모른다. 그러므로 호흡이 있는 동안은 항상 개인적 마지막 때라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언제 말세에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에 합당한 신앙생활을 해야 할 것이다.
<부가설명> 바울은 구약 시대의 마지막을 히브리 1:2절에서 지적하였다. 그와 동시에 히브리서 10장 이후에는 역사적 종말 때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특히 3:13에는 개인의 종말을 깨닫도록 강하게 말하였다. 사람은 오늘이라는 하루만 사는 존재이다. 내일은 나의 날이 아니다. 자고 깨면, 어제 내일이라고 한 날이 오늘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앞에 전개된다. 그러며 그는 또 오늘만 산다. 그러므로 오늘이라는 매일이 사람들에게는 마지막 날이다. 이 사실을 깨닫고 성도들은 재림을 맞을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역사적 종말과 관련한 징조들만 바라보며 그것이 종말의 표징이라고 주장하면서 재림 맞을 준비를 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은 그리 현명한 주장은 아니다. 실제로 우리는 역사적 종말의 기간을 정확하게 모른다. 그런데 역사적 종말의 징조가 눈앞에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깨어있어야 한다는 주장은 자칫 사람을 역사적 종말이 멀리 있다면 준비를 다잡을 이유가 없다는 생각을 일으킬 위험이 있다. 사람은 호흡하는 매일이 자기의 마지막 날이라는 것을 자각가호 오늘이라고 말하는 하루하루를 재림 맞을 준비 안에서 믿음의 삶을 살아야 한다.
<교훈>
바울은 히브리서의 독자들과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위해 가나안 경계에 서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비교하며 마지막 때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 권면한다.
12월 31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데이비드 드실바(David A. deSilva)는 초기 기독교인들이 왜 박해를 받았는지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기독교인들은 반사회적이며 체제 전복적이라고까지 여겨질 수 있는 생활 방식을 받아들였다. 제사와 같은 거룩한 종교 의식에 참여하여 신들에게 충성을 다하는 것은 정부와 권력자들과 친구와 가족에 대한 충성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신들에게 예배하는 것은, 사회를 안정적이고 풍요롭게 유지해 주는 신들과의 관계에 대한 헌신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에 참여하지 않으므로 기독교인들은 유대인과 마찬가지로 제국 내에서 범법자들 그리고 체제 전복적인 요소를 갖춘 수상한 자들로 여겨지게 되었다(Perseverance in Gratitude, Eerdmans Publishing Company, 2000, 12).
“낙심한 자들을 위한 확실한 치료제가 있다. 그것은 신앙과 기도와 사업이다. 신앙과 활동은 자신감과 만족을 줄 것이며 그것들은 날마다 증가하게 될 것이다. 그대는 불안한 예감이나 심한 절망적인 감정에 빠지고 싶은 시험을 당해 본 일이 있는가? 가장 암담한 날, 형세가 가장 험악한 것처럼 보일 때에도 무서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믿으라. 하나님께서는 그대의 필요를 아신다. 그분은 전능하신 분이시다. 그분의 무한하신 사랑과 동정심은 결코 지치지 아니한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약속을 성취하는 데 실패하지나 않을까 하고 염려하지 말라. 하나님은 영원한 진리이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충실한 종들에게 그들의 필요를 채울 정도의 능력을 내려 주실 것이다”(선지자와 왕, 164).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우리가 가진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결심으로 인해 남들과 ‘다른’ 삶을 살면서도 다른 사람들로부터 ‘분리’됐다거나 그들을 ‘무시’한다는 오해를 받지 않을 수 있는가?
※ 이웃에 사랑을 실천하여 재림 신자들이 반드시 필요한 이웃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끼치는 삶이 아닐까?
2. 성경에서 사용된 ‘권면’이라는 단어는 견책 또는 격려의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낙심하고 있는 사람을 권면할 때 조심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 견책하는 어조나 태도를 나타내지 않고 사랑과 온유로 도움의 손길임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3. 히브리서의 독자들과 요한계시록 3:14~22에 등장하는 라오디게아교회 사이에 어떤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는가? 이천 년이 지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경험과 그들의 경험 사이의 유사점은 무엇이며 그것으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 미지근하고 말씀을 경험적으로 깨닫지 못하고 모이기를 폐하는 등 유사점이 아주 많다. 정신 차려야 할 것이다.
(1월 1일 안식일 / 일몰: 오후 5시 24분)
연구 범위: 히 2:3, 4, 벧전 4:14, 16, 히 13:1~9, 13, 왕상 19:1~18, 히 3:12~14, 민 13
기억절: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히 10:36).
예수님이나 사도들이 설교하는 것을 그대가 직접 듣는 것을 상상해 본 적이 있는가? 그들이 했던 설교의 인용문이나 요약본이 있기는 하지만, 직접 듣는 것과 비교한다면 그 정보는 매우 제한적인 것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성경 속에 하나의 완전한 설교를 남겨 주셨다. 바로 바울이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편지, 히브리서이다.
히브리서의 저자인 바울은 자신이 쓴 이 편지를 가리켜 “권면의 말”(히 13:22)이라고 불렀는데 이 표현은 회당과(행 13:15) 기독교 예배에서(딤전 4:13) 하는 설교를 가리킬 때 사용된 것이다. 히브리서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장 초기의 ‘완전한 기독교 설교’라고 주장되어 왔다. 히브리서는 예수님을 믿게 된 후로 어려움을 당하게 된 신자들을 위해 기록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공개적인 비방과 환난을 경험했으며(히 10:32~34),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은 사람도 있었다(히 13:5, 6). 많은 사람들이 지쳐 갔으며 자신의 신앙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되었다(히 3:12, 13). 우리 중에 누군가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는 사람은 없는가?
사도는 이 감동적인 설교를 통해 그들 그리고 우리에게 하늘 성소에서 봉사하고 계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그분을 향한 믿음으로 끝까지 견디라고 호소한다.
*학습 목표
- 깨닫기
초대 교회 성도들이 지체되는 듯 보이는 예수님의 재림으로 인해 겪고 있었던 어려움들을 이해한다.
느끼기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어려움들에도 불구하고 더 확실한 약속이 있음에 감사한다.
행하기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도록 하려는 유혹과 시험이 있을지라도 믿음 위에 굳게 서서 살아간다.
TMI 위로
2. 초대 교회 성도들은 어떤 증거들을 통해 그들이 선택한 믿음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었나요?(히 2:3, 4)
※ 하나님이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성령님의 역사로 들은 것을 확증해 주셨다.
3. ‘그리스도의 치욕을 진다’는 것의 참된 의미는 무엇일까요?(히 11:24~26, 벧전 4:14, 16)
※ ‘그리스도의 치욕을 진다’는 것은, 자신을 그리스도와 동일시하며 그로 인해 겪게 되는 수치와 고난을 견디는 것을 의미했다.
4. 히브리서의 독자들이 마주하고 있었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었습니까?(히 3:12, 13, 12:3)
※ 낙심하게 하는 일들이 많이 발생하고 죄의 유혹이 강하게 밀어닥친 것이다.
5. 지쳐 있는 초대 교회 성도들에게 바울은 어떤 권면을 했습니까?(히 10:19~25)
※ 주님을 생각하고 피차 격려하고 더욱 힘써 모이라고 했다.
6.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특별히 조심해야 할 것들에는 무엇이 있을까요?(히 12:25~29)
※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는 것이다.
결론
사도들의 헌신적인 복음 전파를 통해 기쁨으로 예수님을 믿게 된 초대 교회 성도들은 세상과 구별되는 그들의 삶과, 지연되는 듯 보이는 예수님의 재림으로 인해 영적 흔들림을 경험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확실한 하나님의 약속을 다시 한번 소개하면서 구원의 소망 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믿음을 지키라고 권면했습니다.
12월 26일(일) 영광스러운 시작
히브리서의설교를 제대로 이해하고 그 기별을 우리 자신에게 적용하기 위해, 우리는 그들이 사도로부터 이 편지를 받았을 때의 역사와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
히브리서 2:3, 4을 읽어 보라. 히브리서의 독자들이 처음 회심했을 때, 그들은 어떤 경험을 했는가?
[히2:3,4] 천사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하지 아니함이 공정한 보응을 받았거든/ 4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의 뜻을 따라 성령이 나누어 주신 것으로써 그들과 함께 증언하셨느니라.
답: 그들은 예수님께 직접 들은 경험이 없고 그의 제자들을 통하여 복음을 들었으며 그 일에 하나님께서 표적, 기사, 능력을 경험하였다.
이 말씀은 히브리서의 독자들이 예수님께서 설교하시는 것을 직접 듣지 못했음을 암시한다. 대신 그들은 그들에게 “구원”의 소식을 전해 준 다른 전도자들을 통해 복음을 들었다.
바울 역시 전도자들이 그 기별을 “확증”했으며 하나님께서도 “표적들과 기사들”(히 2:4)로 증언하셨다고 말하고 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표적들과 놀라운 일들을 통해 복음을 경험하고 확인할 수 있게 해 주셨음을 의미한다. 그중의 하나가 바로 “성령의 선물”을 나눠 주신 것이었다(히 2:4). 신약성경은 복음이 새로운 곳에 전파될 때 자주 기적적인 치유, 귀신을 쫓아내는 일, 영적 은사가 넘치도록 주어지는 일과 같은 표적들이 함께 일어났음을 기록하고 있다.
기독교 교회가 처음 시작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에게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셔서 그들로 하여금 그들이 전에 알지 못했던 언어로 복음을 전하며 기적들을 행하게 하셨다(행 2, 3장). 빌립은 비슷한 기사를 사마리아에서 행했으며(행 8장), 베드로는 욥바와 가이사랴에서(행 9, 10장), 바울은 소아시아와 유럽에서 그렇게 했다(행 13~28장). 이와 같은 능력들은, 하나님 나라의 수립, 정죄함으로부터의 구원, 그리고 악한 권세들로부터의 자유와 같은 “구원”의 기별을 확증하는 경험적 증거였다(히 12:25~29).
성령께서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 죄를 용서받았음에 대한 확신을 주셨으므로 그들은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그 결과 그들의 기도는 담대하고 확신에 찼으며, 그들의 신앙적 경험은 기쁨으로 가득했다(행 2:37~47). 성령께서는 악한 영의 권세에 짓눌려 있던 자들을 구원해 주셨는데, 이는 하나님의 능력이 악한 영들보다 우월하다는 강력한 증거가 되었다. 또한, 성령께서는 그들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세워졌음을 확인하여 주셨다.
<묵상>
그대의 회심의 이야기는 무엇입니까? 그대는 어떤 방법으로 그대가 가진 믿음과 예수 그리스도가 그대의 구주 되심에 대한 확증을 얻었습니까?
답: 각자가 대답해보자.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확증으로 믿음이 더욱 공고해져야 한다.
<부가설명> 베드로는 그의 편지를 받는 사람들에게 이와 같은 말을 하였다.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받으실 영광을 미리 증언하여 누구를 또는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벧전1:8~11). 예수님을 보지 못하고 예수님을 믿고 사랑하는 신자들은 주님의 제자들이 예언의 말씀에 근거하여 증거하는 복음을 다 듣고 구원의 기쁨을 누리게 된 것이다. 바울은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10:17)라고 분명히 말했다. 베드로의 증언을 듣고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나 오늘나 우리는 그 사정이 같다. 우리가 예수님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믿고 사랑한다. 기록된 말씀에서 예수님을 만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거기서 예수님을 만나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믿음을 더욱 굳게 해야 한다. 아멘.
그런데 교과 서론부에는 이런 말이 있다. “그분은 우리와 같이 여자에게서 나셨으며우리와 같이 시험을 받으시고 멸시당하셨다.” 여자에게서 나셨다는 말은 맞다. 그러나 ‘우리와 같이’라는 표현은 주의해야 한다. 그분은 동정녀에게서 나신 분이고 우리는 결혼한 여자가 남자에게서 정자를 받아서 임신하고 태어난 사람이다. 여자에게서 났으나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 점에 오해하지 않도록 여기 이렇게 사족을 단다. 그분은 성령으로 잉태하신 분이고 우리는 남자로 인하여 어머니가 잉태한 존재이다. 근본이 전혀 다르다. 우리는 생명을 사람 아버지로부터 받았고 예수님은 당신 자신이 생명자체이시기 때문에 당신의 생명이 씨가 되어 성령으로 동정녀에게 잉태하신 것이다. 이점은 성경과 구원을 깨닫는데 대단히 중요하다. 그래서 성경은 그분을 ‘여자의 씨(후손)’라고 표현한 것이다. 아멘.
<교훈>
하나님께서는 표적과 기사를 통해 초대 교회에 복음에 대한 확신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심으로 구원의 기쁜 소식이 널리 전파되도록 하셨다.
12월 27일(월) 고난
신자들이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고백하고 교회에 입교했을 때, 그들은 믿지 않는 자들과 자신들을 구분하는 표시를 만들었다. 그런데 이런 일은 불행하게도 은연중에 그들이 속한 공동체와 공동체가 가진 가치에 대해 부정적인 판단을 표현하는 것으로 여겨져 갈등의 원인이 되었다.
히브리서 10:32~34과 13:3을 읽어 보라. 히브리서의 독자들이 회심한 후, 그들은 어떤 경험을 했는가?
[히10:32~34]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을 견디어 낸 것을 생각하라 33 혹은 비방과 환난으로써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혹은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과 사귀는 자가 되었으니 34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소유를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소유가 있는 줄 앎이라.
[히13:3] 너희도 함께 갇힌 것 같이 갇힌 자를 생각하고 너희도 몸을 가졌은즉 학대 받는 자를 생각하라.
답: 환난과 핍박을 경험했다. 산업도 빼앗기고 옥에도 갇히는 고난이었고 육체적 학대도 경험했다.
히브리서의 독자들은 그들을 반대하는 자들이 선동한 군중들에 의해 말로 그리고 육체적으로 고통받았음이 분명하다(행 16:19~22, 17:1~9). 그들은 감옥에 갇히기도 했으며 그곳에서 매질을 당하기도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당시 관리들은 증거를 수집하는 동안 합법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도 형벌을 승인하고 투옥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기 때문이다(행 16:22, 23).
히브리서 11:24~26과 베드로전서 4:14, 16을 읽어 보라. 모세와 베드로전서의 독자들의 경험은 우리로 하여금 기독교 신자들이 왜 박해를 당했는지 이해하는 데 어떤 도움을 주는가?
[히11:24~26]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25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벧전4:14,16]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16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답: 그들의 생각과 생활방식이 세상과 같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치욕을 진다’는 것은, 자신을 그리스도와 동일시하며 그로 인해 겪게 되는 수치와 고난을 견디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공개적인 적대감은 그들이 가진, 구별되는 종교적인 신념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이해할 수 없는 종교적 관습들 또는 자신들을 죄책감에 빠지게 하며 부끄럽게 만드는 생활 방식이나 도덕적 가치로 인해 불쾌감을 느끼곤 한다.
1세기 중엽, 로마의 역사학자 타키투스는 그리스도인들을 “인류에 대한 증오감”을 조장한 죄인들로 간주했다. 이와 같은 비난의 정확한 이유가 무엇이었든지 간에, 바울의 편지를 받았던 사람들을 포함한 초대 교회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믿음으로 인해 고난을 받고 있었다.
<묵상>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받는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경험하는 고난 중에 그리스도를 위해 받는 고난은 얼마나 될까요?
답: 신자들이 이 세상에 처하여 있으면서 전혀 이 세상적이지 않는 삶을 살기 때문이다. 죄는 의를 까닭없이 미워한다.
<부가설명> 천로역정에는 기독도와 진충(眞忠)이 허화시(虛華市=허영의 도시)를 지나가는 데 그 도시 사람들이 기독도와 진충의 말이 다르고 의복이 다르다는 이유로 핍박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번연은 그런 도시에서 진충이 순교당한다고 묘사했다. 까닭없이 미워하는 이유는 예수님을 증오하는 사탄의 정신을 가졌기 때문이다. 현재의 이 세상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살지 못하기에 꼭 알맞은 세상이다. 기런 세상에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의 복음을 전하면서 그 생명으로 생활하는 모습을 드러내어야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 목적이다. 그래서 허영의 도시 같은 세상 사람들 중에 이 생활을 그리워하고 사모하는 사람들을 찾아내어 함께 하늘까지 가는 것이 우리 주님의 뜻이다. 그래서 핍박을 받으면서도, 순교하면서도 이 사명을 감당해온 것이다. 성령께서 그렇게 이끌어주시기 때문에 가능한 삶이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딤후3:12). 지금은 그래도 옛날 갖지 않은 것 같지만 사탄의 증오심은 결단코 없어지지 않는다. 말세에는 핍박현상이 교묘한 방법으로 실현될 것이다. 하루하루를 주님 안에서 이기는 경험으로 살아야 할 것이다.
<교훈>
초대 교회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믿게 된 후, 세상과 구별되는 삶의 방식을 선택함으로 많은 고난을 받았다.
12월 28일(화) 계속되는 어려움
히브리서의 독자들은 계속해서 이어지는 반대와 박해 가운데서도 자신들의 믿음을 지키며 그리스도께 끝까지 헌신하는 일에 성공하였다. 하지만 그와 같은 갈등이 큰 피해를 초래한 것도 사실이었다. 그들은 선한 싸움을 싸웠고 승리하였지만, 많이 지쳐 있었다.
히브리서 2:18, 3:12, 13, 4:15, 10:25, 12:3, 12, 13, 13:1~9, 13을 읽어 보라. 신자들이 맞닥뜨리게 된 도전들에는 무엇이 있었는가?
[히2:18]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히3:12,13] 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 13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
[히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히10: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히12:3,12,13]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12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13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히13:1~9]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2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3 너희도 함께 갇힌 것 같이 갇힌 자를 생각하고 너희도 몸을 가졌은즉 학대 받는 자를 생각하라 4 모든 사람은 결혼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 5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6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말하되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 7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일러 주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그들의 행실의 결말을 주의하여 보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라 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9 여러 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 함이 아름답고 음식으로써 할 것이 아니니 음식으로 말미암아 행한 자는 유익을 얻지 못하였느니라.
답: 시험이 이어지며 낙심하려는 생각을 들게하고 교회 집회를 불참하는 정신이 생기게 하고 심신을 피곤하게 하며 경제적인 어려움이 닥치는 등, 일상생활의 불편이 이어졌다. 그러나 우리 주님이 이 모든 것을 이기신 것을 생각하고 주님 안에 굳게 있으라고 권고한다.
히브리서는 독자들이 계속해서 어려움을 경험했다고 이야기한다. 언어적인 공격뿐만 아니라 그들의 명예를 짓밟는 다른 종류의 공격들이 이어졌다(히 13:13). 일부 신자들은 여전히 감옥에 갇혀 있었는데(히 13:3) 이는 교회를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들게 하는 일이었다. 그들은 지쳐 있었고(히 12:12, 13) “낙심”할 위기에 처해 있었다(히 12:3).
개인이나 공동체 가운데서 승리의 감격이 지나간 후, 심리적으로 또는 정신적으로 긴장이 풀렸을 때, 그런 순간 다가오는 적의 역습에 사람들은 더 취약하다. 연이어 다가오는 위협을 감당해 낼 힘을 계속해서 다잡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열왕기상 19:1~4을 읽어 보라. 엘리야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가?
[왕상19:1~4] 아합이 엘리야가 행한 모든 일과 그가 어떻게 모든 선지자를 칼로 죽였는지를 이세벨에게 말하니 2 이세벨이 사신을 엘리야에게 보내어 이르되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반드시 네 생명을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과 같게 하리라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한지라 3 그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자기의 생명을 위해 도망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자기의 사환을 그 곳에 머물게 하고 4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답: 바알 선지자들에게 승리한 후 이세벨이 그를 죽이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낙심하여 광야로 도망했다.
“그러나 높은 신앙과 영광스러운 성공에 흔히 뒤따라오는 그런 반작용이 엘리야에게 몰려들고 있었다. 그는 갈멜산 위에서 시작된 개혁이 중단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로 의기소침하였다. 그는 비스가산 꼭대기까지 높임을 받았으나 이제 그는 골짜기에 떨어져 있었다. 그가 전능하신 하나님의 영감을 받고 있을 때에는 가장 혹독한 신앙의 시련을 견딜 수 있었으나 그의 귀에 울리는 이세벨의 위협과 이 악한 여인의 음모를 통하여 나타나는 사탄의 계속적인 영향력으로 인해 실망한 이때에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데 실패하였다. 그는 엄청나게 높임을 받았으며 그 반작용도 대단하였다. 엘리야는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계속 도망하여 마침내 아무도 없는 쓸쓸한 광야에 오게 되었다”(선지자와 왕, 161, 162).
<묵상>
베드로후서 3장 1~13절을 묵상해 보십시오. 재림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어떤 기별을 주고 있습니까?
[벧후3:1~13]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이제 이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 이 두 편지로 너희의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나게 하여 2 곧 거룩한 선지자들이 예언한 말씀과 주 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려 하노라 3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롱하여 4 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5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그들이 일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6 이로 말미암아 그 때에 세상은 물이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7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보호하신 바 되어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8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11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답: 말세에 기록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핍박할 것이지만, 재림의 소망 중에서 참고 믿음을 잘 지키라고 권고한다.
히브리서의 수신자들과 마찬가지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도 계속해서 지연되며 도무지 이루어질 것 같지 않은 재림의 약속으로 인해 낙심하거나 우리가 붙들어야 할 가장 큰 소망을 놓칠 위험에 처해 있지는 않은지요? 하지만 거짓 없으신 하나님의 약속은 너무도 분명하며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그분의 약속은 분명히 이루어질 것입니다.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재림 성도로서 눈앞의 현실을 뛰어넘어 하나님의 확실한 약속을 바라볼 수 있는 믿음을 소유하기 위해 날마다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며 살아야겠습니다.
<부가설명> 이 세상에서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은 늘 환난과 핍박에 노출되어 있다. 요즘도 코로나 19를 핑계로 교회가 하는 일을 표적삼아 제재하는 것 같은 인상을 주고 있다. 이것은 약과이다. 계13장 예언이 역사의 현장에 나타날 때에는 정말로 어려운 시기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이기신 예수님 안에 깊이 숨어있어야 한다.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라고 하셨다. 계시록의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는 끝 부분에 ‘이기는 자는’이라는 말씀이 빠짐없이 다 있다. 사람들은 이 말씀을 신앙의 투쟁에서 스스로 승리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인 것 같다. 그러나 이기신 분은 예수님이시다. 우리가 그분 안에 있으면 우리도 이긴 자가 된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 안에 거하라’라고 강조해서 말씀하셨다. 이런 기별을 전제로 너희가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나 이미 내가 이겼다고 선언하신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 있기만 하면 이미 이긴 자들이 된다. 예수님 안에 있는 것은 그분의 말씀 안에 있는 것이다.
<교훈>
초대 교회 신자들은 거센 반대 가운데서도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웠으나 계속해서 이어지는 원수의 공격으로 인해 지쳐 가고 있었다.
12월 29일(수) 함께 노력함
히브리서의 수신자들을 향해 사도는 무엇이라고 조언하였는가? 히브리서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엘리야가 그의 좌절에서부터 다시 회복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어떻게 도우셨는지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열왕기상 19:5~18을 읽어 보라. 당신의 종 엘리야의 믿음을 회복시키시기 위해 하나님은 어떤 일을 하셨는가?
[왕상19:5~18] 로뎀 나무 아래에 누워 자더니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6 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더라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 7 여호와의 천사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 먹으라 네가 갈 길을 다 가지 못할까 하노라 하는지라
8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음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 주 사십 야를 가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 9 엘리야가 그 곳 굴에 들어가 거기서 머물더니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10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11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가서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서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에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12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13 엘리야가 듣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나가 굴 어귀에 서매 소리가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14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15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길을 돌이켜 광야를 통하여 다메섹에 가서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의 왕이 되게 하고 16 너는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고 또 아벨므홀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 17 하사엘의 칼을 피하는 자를 예후가 죽일 것이요 예후의 칼을 피하는 자를 엘리사가 죽이리라 18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답: 음식물을 주셔서 몸의 기력을 유지하게 하시고 그가 가야할 곳으로 인도하시며 산에서 그를 만나셔서 권능을 느끼게 하셨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조용한 중에 세미한 음성으로 들려주시고 그가 하는 개혁을 도울 조력자들을 보여주셨다.
갈멜산 사건 이후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어떻게 대하셨는지를 살피는 것은 매우 감동적이다. 왜냐하면, 좌절에 빠져 스스로의 힘으로는 믿음을 회복하지 못하는 곤란한 처지에 빠진 한 사람을 대하시는 하나님의 부드러운 돌보심과 지혜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위해 몇 가지 일을 행하셨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의 육체적인 필요를 채우셨다. 그에게 음식을 주시고 쉬게 하셨다. 그러고 나서 동굴 안에서 부드러운 음성으로 엘리야를 책망하셨다.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왕상 19:9). 그리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하시며, 어떻게 그분의 목적을 이루시는지를 그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하나님은 바람이나 지진이나 불 가운데 계시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세미한 소리로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할 일을 주셨고 당신께서 함께하시리라는 확신을 주셨다.
히브리서 2:1, 3:12~14, 5:11~6:3, 10:19~25을 읽어 보라. 바울은 신자들에게 무엇을 해야 한다고 제안했는가?
[히2:1]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
[히3:12~14] 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 13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 14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
[히5:11~6:3]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가 듣는 것이 둔하므로 설명하기 어려우니라 12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13 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14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6:1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2 침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 3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가 이것을 하리라.
[히10:19~25]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21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23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24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답: 받은 구원을 떠내려가지 않도록 조심하고 낙심하지 않도록 가다듬으며 의의 도를 경험하고 더 완전한데 나아가도록 하라고 격려한다.
히브리서 전체에 걸쳐 우리는 독자들이 본래 가지고 있던 힘과 믿음을 회복할 수 있도록 바울이 그들에게 준 몇 가지 가르침을 발견할 수 있다. 바울이 강조하는 한 가지는 동료 신자들의 실질적인 필요를 돌아보라는 것이었다. 바울은 그들에게 감옥에 갇혀 있는 자를 방문하여 돌보라고 제안하는데 이것은 동료 신자들의 필요를 채워 주라는 뜻이었다. 사도는 독자들에게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지 않으실 것임을 기억하고 후하게 대접하라고 이야기한다(히 13:1~6).
바울은 그들을 책망하기도 하고 격려하기도 한다. 바울은 그들에게 “떠내려”가는 상황에 처하지 말라고 경고했고(히 2:1),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갖지 말라고 이야기했으며(히 3:12), 믿음을 이해하는 일에 성장하라고 격려했다(히 5:11~6:3). 바울은 또한 교회 모임에 꾸준히 참석하는 일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했다(히 10:25). 요약하자면, 바울은 그들이 함께 노력하고, 서로 격려하고, 사랑과 선한 일에 힘쓰라고 권면했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과 그분께서 하늘 성소에서 그들을 위해 행하고 계신 일들에 관해서도 강조하여 이야기했다(히 8:1, 2, 12:1~4).
<묵상> 바울이 초대 교회 믿음의 공동체에게 주었던 권면의 말씀들 가운데 오늘 우리 또한 실천해야 하는 것들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답: 서로 격려하여 용기와 믿음을 북돋우고 모이기를 더욱 힘쓰며 진리의 말씀을 경험하는 것을 실천해야 할 것이다.
<부가설명> 하나님께서 엘리야가 용기를 가지고 일하도록 격려하신 것처럼 주님께서 성령님의 역사로 히브리교인들을 도우실 것이기 때문에 교인들이 서로 격려하여 함께 믿음에 굳게 서도록 협력하도록 강권한다. 평안할 때나 어려울 때나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된 유기체이다. 서로 격려하여 함께 힘을 얻고 하늘까지 낙심하지 않고 걸어가는 것은 당연하다. 한 몸이요 한 가족이다. 하나님은 엘리야가 모르는 7,000명의 신실한 하나님의 백성을 지켜주셨다. 그들이 가까이서 서로 격려했는지는 모르지만 서로가 알았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우리도 서로 허는 것보다는 격려해야 하지 않겠는가? 말씀과 다른 주장을 그럴듯하게 하고 진리를 허는 경우는 조심해야 하겠지만, 그렇지 않고 약해지고 낙심하는 모습은 기도와 격려로 돕고 힘을 더해줘야 한다. 서로 짐을 나눠질 수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합당하다. 그러나 기록된 말씀 밖으로 사람을 끌어내려고 하면 단연히 경계해야 하고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딛3:10)라고 한 성경의 경고대로 멀리하는 것이 옳다. 그렇지 않으면 사랑의 도움과 격려와 권고가 성도들이 할 일앋,
<교훈>
바울은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회복시키셨을 때 하셨던 것과 같이 지친 초대 교회 성도들을 회복시키기 위하여 사랑으로 권면하고 용기를 주었다.
12월 30일(목) 모든 날 마지막에
히브리서 1:2, 9:26~28, 10:25, 36~38, 12:25~28을 읽어 보라. 바울은 여기에서 특별히 때에 관련하여 어떤 내용을 강조하여 설명하고 있는가?
[히1:2]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히9:26~28]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한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28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히10:25,36~38]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36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37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38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히12:25~28] 너희는 삼가 말씀하신 이를 거역하지 말라 땅에서 경고하신 이를 거역한 그들이 피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하늘로부터 경고하신 이를 배반하는 우리일까보냐 26 그 때에는 그 소리가 땅을 진동하였거니와 이제는 약속하여 이르시되 내가 또 한 번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리라 하셨느니라 27 이 또 한 번이라 하심은 진동하지 아니하는 것을 영존하게 하기 위하여 진동할 것들 곧 만드신 것들이 변동될 것을 나타내심이라 28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또는 감사하자.
답: 예수께서는 구약성경에 예언한 대로 구약적인 마지막 때에 오셔서 예언을 성취하셨다. 그처럼 역사의 마지막 때가 가까워 올수록 더욱 믿음에 굳게 서서 신실한 믿음으로 하늘 가나안에 들어가도록 경성하라고 권고한다.
사도가 전한 권면의 말씀에 긴박성을 더하기 위해 그가 강조하고 있는 매우 중요한 요소가 한 가지 있다. 그것은 바로 독자들이 마지막 때에 살고 있으며(히 1:2) 하나님의 약속들은 곧 성취될 것이라는 사실이다(히 10:36~38). 앞으로 계속 살펴보게 되겠지만, 바울은 히브리서 전체에 걸쳐 그의 독자들과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위해 가나안 땅 경계 바로 앞에 서 있던 광야 세대를 비교한다. 바울은 그들에게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히 10:37)라고 상기시킨 후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히 10:39)라고 격려한다. 이 마지막 권면은 당시의 독자들과 우리에게 역사적으로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기 직전에 당신의 백성들이 경험했던 위험들을 상기시켜 준다.
민수기는 바로 이 문제에 대하여 언급한다. 성경의 기록에 의하면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직전,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 번이나 결정적인 실패를 경험한다. 첫 번째 실패가 기록된 민수기 13, 14장에서는 몇몇 지도자들이 온 회중에게 의심의 정신을 퍼뜨림으로 이스라엘의 믿음이 좌절되게 한 것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 결과 온 회중은 가나안 땅 입성을 눈앞에 둔 바로 그때, 새로운 지도자를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고자 하였다.
두 번째 실패는 바알브올에서 음란과 거짓 우상 숭배에 빠진 사건이다(민 24, 25장). 발람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저주를 가지고 올 수 없었지만, 사탄은 성적인 유혹을 통해 이스라엘을 거짓 우상 숭배에 빠뜨림으로 죄를 짓게 하여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진노를 경험하게 했다.
바울은 히브리서의 독자들에게 이 두 가지 위험들에 대하여 경고한다. 첫째, 바울은 그들이 했던 믿음의 고백을 끝까지 붙들며 언제나 예수님을 바라보라고 권면한다(히 4:14, 10:23, 12:1~4). 둘째, 바울은 그들에게 부도덕과 탐심을 멀리하라고 권면한다(히 13:4~6). 마지막으로, 바울은 그들의 지도자들에게 순종하라고 권면한다(히 13:7, 17).
<묵상>
우리는 죽은 자들이 다시 눈을 뜨게 되는 순간은 바로 재림의 순간이라고 믿습니다. 죽은 자의 상태에 대한 그런 이해에 비추어 볼 때, 모든 사람이 마지막 때를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답: 사람은 자기의 호흡이 끊어질 때를 모른다. 그러므로 호흡이 있는 동안은 항상 개인적 마지막 때라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언제 말세에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에 합당한 신앙생활을 해야 할 것이다.
<부가설명> 바울은 구약 시대의 마지막을 히브리 1:2절에서 지적하였다. 그와 동시에 히브리서 10장 이후에는 역사적 종말 때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특히 3:13에는 개인의 종말을 깨닫도록 강하게 말하였다. 사람은 오늘이라는 하루만 사는 존재이다. 내일은 나의 날이 아니다. 자고 깨면, 어제 내일이라고 한 날이 오늘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앞에 전개된다. 그러며 그는 또 오늘만 산다. 그러므로 오늘이라는 매일이 사람들에게는 마지막 날이다. 이 사실을 깨닫고 성도들은 재림을 맞을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역사적 종말과 관련한 징조들만 바라보며 그것이 종말의 표징이라고 주장하면서 재림 맞을 준비를 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은 그리 현명한 주장은 아니다. 실제로 우리는 역사적 종말의 기간을 정확하게 모른다. 그런데 역사적 종말의 징조가 눈앞에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깨어있어야 한다는 주장은 자칫 사람을 역사적 종말이 멀리 있다면 준비를 다잡을 이유가 없다는 생각을 일으킬 위험이 있다. 사람은 호흡하는 매일이 자기의 마지막 날이라는 것을 자각가호 오늘이라고 말하는 하루하루를 재림 맞을 준비 안에서 믿음의 삶을 살아야 한다.
<교훈>
바울은 히브리서의 독자들과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위해 가나안 경계에 서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비교하며 마지막 때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 권면한다.
12월 31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데이비드 드실바(David A. deSilva)는 초기 기독교인들이 왜 박해를 받았는지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기독교인들은 반사회적이며 체제 전복적이라고까지 여겨질 수 있는 생활 방식을 받아들였다. 제사와 같은 거룩한 종교 의식에 참여하여 신들에게 충성을 다하는 것은 정부와 권력자들과 친구와 가족에 대한 충성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신들에게 예배하는 것은, 사회를 안정적이고 풍요롭게 유지해 주는 신들과의 관계에 대한 헌신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에 참여하지 않으므로 기독교인들은 유대인과 마찬가지로 제국 내에서 범법자들 그리고 체제 전복적인 요소를 갖춘 수상한 자들로 여겨지게 되었다(Perseverance in Gratitude, Eerdmans Publishing Company, 2000, 12).
“낙심한 자들을 위한 확실한 치료제가 있다. 그것은 신앙과 기도와 사업이다. 신앙과 활동은 자신감과 만족을 줄 것이며 그것들은 날마다 증가하게 될 것이다. 그대는 불안한 예감이나 심한 절망적인 감정에 빠지고 싶은 시험을 당해 본 일이 있는가? 가장 암담한 날, 형세가 가장 험악한 것처럼 보일 때에도 무서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믿으라. 하나님께서는 그대의 필요를 아신다. 그분은 전능하신 분이시다. 그분의 무한하신 사랑과 동정심은 결코 지치지 아니한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약속을 성취하는 데 실패하지나 않을까 하고 염려하지 말라. 하나님은 영원한 진리이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충실한 종들에게 그들의 필요를 채울 정도의 능력을 내려 주실 것이다”(선지자와 왕, 164).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우리가 가진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결심으로 인해 남들과 ‘다른’ 삶을 살면서도 다른 사람들로부터 ‘분리’됐다거나 그들을 ‘무시’한다는 오해를 받지 않을 수 있는가?
※ 이웃에 사랑을 실천하여 재림 신자들이 반드시 필요한 이웃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끼치는 삶이 아닐까?
2. 성경에서 사용된 ‘권면’이라는 단어는 견책 또는 격려의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낙심하고 있는 사람을 권면할 때 조심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 견책하는 어조나 태도를 나타내지 않고 사랑과 온유로 도움의 손길임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3. 히브리서의 독자들과 요한계시록 3:14~22에 등장하는 라오디게아교회 사이에 어떤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는가? 이천 년이 지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경험과 그들의 경험 사이의 유사점은 무엇이며 그것으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 미지근하고 말씀을 경험적으로 깨닫지 못하고 모이기를 폐하는 등 유사점이 아주 많다. 정신 차려야 할 것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