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과 모세의 부활(질문, 대답, 설명) 12/2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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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1-12-17 17:15 조회5,692회 댓글0건본문
제13과 모세의 부활
(12월 25일 안식일 / 일몰: 오후 5시 19분)
연구 범위: 민 20:1~13, 신 31:2, 신 34:4, 신 34:1~12, 유 9, 고전 15:13~22
기억절: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에 관하여 마귀와 다투어 변론할 때에 감히 비방하는 판결을 내리지 못하고 다만 말하되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 하였거늘”(유 9).
이번 기 교과를 통해 살펴본 것과 같이 모세는 신명기의 핵심 인물이다. 그의 생애와 성품, 그리고 그의 기별이 책 전체를 가득 채우고 있다. 신명기가 하나님,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그분의 사랑에 대한 기록인 것도 사실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자주 모세를 사용하여 그 사랑을 나타내셨으며, 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셨다.
이제 이번 기의 끝, 곧 신명기 연구의 끝에 다다르면서, 우리는 모세의 이 땅에서의 삶의 끝 또한 마주하게 된다.
엘렌 G. 화잇은 이렇게 기록했다. “모세는 자기가 홀로 죽어야 함을 알고 있었으며 세상의 어떤 친구도 그의 임종 시간에 그를 도와주도록 허락되지 않았다. 그의 앞에 놓인 장면은 신비하고 장엄하였으며 그 장면은 그의 마음을 위축시켰다. 가장 쓰라린 시련은 그가 보호하고 사랑하던 백성-그의 관심과 생명이 그처럼 오랫동안 연합되었던 백성에게서 떠나는 일이었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을 배웠으므로 의심 없이 믿음으로 자기 자신과 그의 백성을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에 의탁하였다”(부조와 선지자, 470, 471).
모세의 생애와 사역이 하나님의 품성을 우리에게 보여 준 것 같이, 그의 죽음과 부활 또한 하나님의 품성을 드러낸다.
*학습 목표
- 깨닫기
죄 많은 우리들이 구원받고 부활할 수 있는 이유는 십자가 은혜 때문임을 깨닫는다.
- 느끼기
세상 모든 어려움 가운데서도 부활의 소망을 인해 기뻐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 행하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자들에게 약속된 부활의 기쁜 소식을 세상에 전하며 살아간다.
TMI 위로
2. 모세가 분노를 조절하지 못함으로 저지른 잘못은 무엇이었습니까?(민 20:10)
※ 자기를 하나님의 자리에 둔 것이다.
3.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반석 앞에서 무엇을 하라고 명령하셨으며 모세는 어떤 잘못을 저질렀습니까?(신 20:8~11)
※ 반석에 명령하라고 하셨는데 모세는 두 번이나 반석을 쳤다.
4.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앞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차지하게 될 모든 땅을 보여 주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신 34:1~3)
※ 그가 한 일이 헛되지 않다는 것과 영원한 나라를 확인하게 하셨다.
5. 실수하고 죄지었던 모세가 부활할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유 9)
※ 미가엘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었기 때문이다.
6. 모든 믿는 자들에게 허락된 가장 큰 소망은 무엇이며 그 소망에 대한 보증은 무엇입니까?(고전 15:13~22)
※ 죽은 자의 부활이며 예수님의 부활이 보증이다.
결론
모세는 이스라엘을 약속의 땅 앞까지 인도한 위대한 지도자였지만 여전히 실수 많은 죄인이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인류를 위해 짊어지실 예수님의 십자가를 근거로 부활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의지할 때 부활의 소망 가운데서 행복한 그리스도인으로 살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12월 19일(일) 모세의 죄 – 1
이스라엘 백성들이 반역하고 광야에서 방황하는 동안에도,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기적적인 방법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필요를 채우셨다. 그들의 자격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셨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 또한 받을 자격이 없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며 살고 있다. 만약 우리가 받을 자격이 있어서 받는 것이라면 그것은 은혜가 아니지 않겠는가?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그들에게 기적적으로 제공해 주신 풍족한 음식 외에도, 그분의 은혜를 보여 준 또 다른 것이 바로 물이었다. 물이 없이는 건조하고 뜨겁고 황량한 사막에서 그들은 금세 멸망했을 것이다. 그 경험에 관해 바울은 이렇게 기록했다.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고전 10:4). 여기에 덧붙여 엘렌 G. 화잇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그들의 여행 중 물이 필요한 때에는 언제든지 진영 부근에 있는 바위틈에서 물이 흘러 나왔다”(부조와 선지자, 411).
민수기 20:1~13을 읽어 보라. 어떤 일이 벌어졌으며 모세가 한 일로 인해 하나님께서 그에게 내리신 벌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하는가?
[민20:1~13] 첫째 달에 이스라엘 자손 곧 온 회중이 신 광야에 이르러 백성이 가데스에 머물더니 미리암이 거기서 죽으매 거기에 장사되니라 2 회중이 물이 없으므로 모세와 아론에게로 모여드니라 3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말하여 이르되 우리 형제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을 때에 우리도 죽었더라면 좋을 뻔하였도다 4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회중을 이 광야로 인도하여 우리와 우리 짐승이 다 여기서 죽게 하느냐 5 너희가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여 이 나쁜 곳으로 인도하였느냐 이 곳에는 파종할 곳이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도다 6 모세와 아론이 회중 앞을 떠나 회막 문에 이르러 엎드리매 여호와의 영광이 그들에게 나타나며 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8 지팡이를 가지고 네 형 아론과 함께 회중을 모으고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는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 하라 네가 그 반석이 물을 내게 하여 회중과 그들의 짐승에게 마시게 할지니라 9 모세가 그 명령대로 여호와 앞에서 지팡이를 잡으니라 10 모세와 아론이 회중을 그 반석 앞에 모으고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반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고 11 모세가 그의 손을 들어 그의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니 물이 많이 솟아나오므로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마시니라 12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13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와 다투었으므로 이를 므리바 물이라 하니라 여호와께서 그들 중에서 그 거룩함을 나타내셨더라.
답: 하나님께서 반석에 명령하여 물을 내라고 하셨는데 모세는 반석을 두 번 쳤다.
모세의 분노를 이해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행하신 모든 놀라운 일들과 기적적인 구원을 목격한 후에 그들은 마침내 약속의 땅 경계에 서 있었다. 그때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갑자기 물이 부족하게 되자 그들은 모세와 아론에게 불평하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그들에게 물을 공급해 줄 수 있으셨던 하나님께서 이제는 그렇게 할 수 없게 되신 것이었을까? 물론 아니었다. 하나님께는 그렇게 하실 능력이 있으셨고 다시 그렇게 하실 것이었다.
하지만 모세가 반석을 두 번이나 치면서 했던 말을 살펴보라. “반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고”(민 20:10). 모세가 그들을 향해 반역자들이라고 한 것을 보면 그가 얼마나 화가 났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문제는 모세가 보인 분노 자체에 있지 않았다. 비록 그의 분노는 옳지 않은 행동이기는 했지만 이해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가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라고 말함으로 마치 그 또는 다른 인간이 반석에서부터 물을 낼 수 있는 것처럼 이야기한 것이었다. 그 순간 모세는 그의 분노로 인해 오직 하나님의 능력만이 그와 같은 기적을 일으킬 수 있음을 잊은 듯했다. 다른 누구보다 물이 어떻게 공급되는지 잘 알고 있었을 텐데 말이다.
<묵상>
우리 안의 분노를 제어하지 못할 때 어떤 문제가 발생합니까?
답: 흥분해서 바른 이해와 판단할 지혜를 잊어버리게 된다.
<부가설명> 모세가 반석을 두 번 친 일을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민20:12)라고 지적하셨다. 그들이 하나님을 불신하는 정신을 나타낸 것이다. 모세의 자아가 나타난 것이다. 아주 기막히는 기회에 사탄이 그를 사로잡은 것 같다. 반석에서 물을 내는 것을 자신이 하는 능력인 것처럼 표현한 것이다. 교과 저자는 이것을 모세가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한 것과 같은 것으로 표현한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어느 순간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하나님의 위치에 둘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아주 중요한 사건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함을 가로막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과 같은 과오에 빠진다. 루시퍼의 정신을 드러내는 것이다. 예수께서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않으신 그 정신을 반드시 닮아야 한다. 하늘 보좌를 두시고 종의 형체를 취하여 사람이 되어 죽기까지 복종하실 때 자기를 비우신 것이다. 우리는 자아를 비우는 정신을 날마다 실천해야 한다. 바울은 날마다 죽는다고 고백했다(고전15:31). 우리도 날마다 순간마다 주님으로 인하여 죽자.
<교훈>
모세는 분노로 인해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을 마치 자신이 백성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적용>
우리가 얼마나 자주 홧김에 하지 말아야 할 말이나 행동을 하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어떻게 하면 옳지 않은 말과 행동을 하는 대신 잠시 멈춰 기도하며 하나님의 능력을 구할 수 있을까요?
[시141:3] 여호와여 내 입 앞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
12월 20일(월) 모세의 죄 – 2
민수기 20:12, 13을 다시 한번 읽어 보라.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그가 저지른 일로 인해 약속의 땅으로 들어갈 수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어떤 구체적인 이유를 주셨는가?(참조, 신 31:2, 34:4)
[민20:12,13]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13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와 다투었으므로 이를 므리바 물이라 하니라 여호와께서 그들 중에서 그 거룩함을 나타내셨더라.
[신31:2] 그들에게 이르되 이제 내 나이 백이십 세라 내가 더 이상 출입하지 못하겠고 여호와께서도 내게 이르시기를 너는 이 요단을 건너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신34:4]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이는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그의 후손에게 주리라 한 땅이라 내가 네 눈으로 보게 하였거니와 너는 그리로 건너가지 못하리라 하시매,
답: 여호와 하나님을 불신하고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거룩함)을 나타내지 않았다고 가르쳐주셨다.
이 말씀에 의하면 모세가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했던 것 외에도 다른 죄가 더 있었다. 모세는 그와 같은 사람이 결코 보여서는 안 될 믿음의 부족을 보였다. 모세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불타는 떨기나무에서부터 시작하여(출 3:2~16) 지금까지 계속해서 하나님과 함께하는 특별한 경험을 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가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였다. 이 말은 모세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에 대해 온전한 믿음을 보이지 못했다는 뜻이었다. 그 결과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못했다. 다시 말해, 만일 모세가 백성들이 반역을 일으키는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신뢰를 보이는 올바른 선택을 했다면, 그는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참된 믿음과 순종이 무엇인지를 보여 줄 수 있었을 것이었다.
모세가 하나님께서 그에게 하라고 구체적으로 일러 주신 일을 어떻게 불순종했는지 살펴보라.
민수기 20:8을 읽어 보라.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무엇을 하라고 말씀하셨으며 모세는 그 대신 어떻게 행동했는가(민 20:9~11)?
[민20:8~11] 지팡이를 가지고 네 형 아론과 함께 회중을 모으고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는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 하라 네가 그 반석이 물을 내게 하여 회중과 그들의 짐승에게 마시게 할지니라 9 모세가 그 명령대로 여호와 앞에서 지팡이를 잡으니라 10 모세와 아론이 회중을 그 반석 앞에 모으고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반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고 11 모세가 그의 손을 들어 그의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니 물이 많이 솟아나오므로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마시니라.
답: 하나님께서는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고 하셨는데 모세는 반석을 두 번 쳤다.
9절에서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지팡이를 잡았다. 여기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10절을 보면,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의 표현으로서 물이 흘러나오도록 반석을 향해 명령하는 대신, 모세는 그 반석을 두 번이나 쳤다. 물론 반석을 쳐서 물이 나오게 하는 것도 기적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그 반석을 향해 명령함으로 물을 얻는 것만큼 기적적이지는 않았다.
겉으로 보기에 모세에게 내려진 하나님의 심판이 과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지금껏 그렇게 고생하며 백성들을 인도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모세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도록 허락되지 않을 것이었다. 이 이야기가 전해진 모든 세월 동안 사람들은 그가 저지른 한 번의 경솔한 행동 때문에 그가 그토록 오랫동안 갈망했던 일을 이루지 못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너무 가혹한 것 아닌가 하고 의아해 했다.
<묵상>
모세에게 일어난 일을 보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떤 교훈을 배워야 했을까요?
답: 모세처럼 실수하지 않는 믿음을 배워야 했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부가설명> 모세의 시 실수를 시편은 모세가 말을 망령되게 했다고 지적했다. “저희가 또 므리바 물에서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였으므로 저희로 인하여 얼이 모세에게 미쳤나니 이는 저희가 그 심령을 거역함을 인하여 모세가 그 입술로 망령되이 말하였음이로다”(시106:32,33). 모세가 말로 불신을 나타낸 것이다. 우리의 일상 언어생활에서 이런 불신을 드러내는 일이 얼마나 많을까? 성경은 언어생활에 관하여 많이 교훈하고 있다. 온유하고 은혜롭게 말하라고 가르친다. 덕을 세우도록 말하라고 가르친다. 남의 허물을 드러내지 말라고 경계한다.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벧전4:11)라고 가르친다. 온유함이 비길 데가 없었던 모세(민12:3)도 화가 났을 때 말로 하나님께 망령되게 말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우리 생각과 입술을 성령께서 지키시도록 간구하면서 불신을 나타내는 일이 없는 ‘말의 실수가 없으면 온전한 자라’(약3:2)라고 한 말씀이 언어생활에 이루어지는 복을 누리도록 간구하자. 또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여행하는 동안 반석에서 물을 내게 한 사건이 두 번 기록되었다. 출 17장과 민 20장이다. 우리 성경에는 두곳 다 ‘신 광야’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각각 다른 장소이다. 출애굽기는 ‘신(Sin) 광야’가 맞다. 그러나 민수기는 ‘진(Zin) 광야’이다. 원어는 엄연히 다른다. 영어는 올바르게 번역했다. 우리말로 된 성경을 읽으면 같은 장소로 생각하기 쉽다. 그리고 두 곳 다 반석에서 물을 내게 한 사건이다. 이때 솟아난 물은 강이 되어 흘렀다(시78:15,16, 105:41). 그런데 두 곳에 ‘반석’이라고 번역된 원어가 다른다. 출애굽기는 ‘추르’고, 민수기는 ‘셀라’다. 추르는 땅에 박힌 반석이고, 셀라는 높이 있는 반석이다. 이 두 사건은 반석 되시는 예수님의 두 상태를 표상한다. 추르는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상징한다. 모세에 반석을 치라고 한 것은 예수님이 못 박히실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나 민수기에서 명령하라고 한 것은 승천하셔서 하늘에서 봉사하시는 예수님을 상징한다. 하늘에서 우리의 간구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것을 표상하는 것이다. 그런데 모세는 셀라를 친 것이다. 즉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을 친 꼴이 된 것이다. 예수님을 두 번째 십자가에 못 박는 것과 같은 일이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하늘에 계시면서 우리의 기도를 언제나 응답하시는 사실을 상징하려고 하신 것이 모세의 실수로 올바르게 표상이 되지 못하게 되었다. 구속사의 입장에서 모세의 이 허물은 단순한 것이 아니다. 대단히 잘못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영원한 나라에 못 들어가게 하신 것은 아니다. 그리고 예언의 신의 증언대로 이스라엘 백성이 진치는 곳마다 돌에서 물이 솟아나게 하셨다. “저가 반석을 변하여 못이 되게 하시며 차돌로 샘물이 되게 하셨도다”(시114:8). 이 구절에 근거하여 선지자는 진치는 곳마다 돌에서 물을 내셨다고 설명했다. 얼마나 놀라운 은혜인가. 지금도 당신의 백성에게 그렇게 은혜를 베푸신다. 아멘.
<교훈>
모세는 반역하는 백성들 앞에서 믿음의 부족을 보임으로 그들에게 참된 믿음과 순종이 무엇인지를 보여 줄 기회를 놓쳐 버렸다.
12월 21일(화) 모세의 죽음
불쌍한 모세! 수많은 어려움을 뚫고, 수 세기 전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창 12:7)라고 하신 그 땅의 경계에까지 도착했지만, 그는 그 약속이 성취되는 현장에 함께 할 수 없었다.
신명기 34:1~12을 읽어 보라. 모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으며, 하나님께서는 그가 얼마나 특별한 사람이었는지를 보여 주는 어떤 말씀을 하셨는가?
[신34:1~12] 모세가 모압 평지에서 느보 산에 올라가 여리고 맞은편 비스가 산꼭대기에 이르매 여호와께서 길르앗 온 땅을 단까지 보이시고 2 또 온 납달리와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땅과 서해까지의 유다 온 땅과 3 네겝과 종려나무의 성읍 여리고 골짜기 평지를 소알까지 보이시고 4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이는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그의 후손에게 주리라 한 땅이라 내가 네 눈으로 보게 하였거니와 너는 그리로 건너가지 못하리라 하시매 5 이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모압 땅에서 죽어 6 벳브올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골짜기에 장사되었고 오늘까지 그의 묻힌 곳을 아는 자가 없느니라 7 모세가 죽을 때 나이 백이십 세였으나 그의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 8 이스라엘 자손이 모압 평지에서 모세를 위하여 애곡하는 기간이 끝나도록 모세를 위하여 삼십 일을 애곡하니라 9 모세가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였으므로 그에게 지혜의 영이 충만하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여호수아의 말을 순종하였더라 10 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 11 여호와께서 그를 애굽 땅에 보내사 바로와 그의 모든 신하와 그의 온 땅에 모든 이적과 기사와 12 모든 큰 권능과 위엄을 행하게 하시매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그것을 행한 자이더라.
답: 모세가 죽은 사실과 그의 묘를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기록하고 모세 후에는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난 일이 없고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안 사람이고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이끌어낸 사람이라고 기록했다.
“모세는 홀로 외로이 그가 궁전의 영광과 장차 애굽 왕국을 차지할 지위에서 돌아서서 하나님의 선민으로 더불어 자기의 운명을 함께하기로 선택한 이후의 파란 곡절과 어려움이 많았던 생애를 회고하였다.…모세는 선민을 위하여 베푸신 하나님의 능력의 큰 이적들과 그들이 유랑하고 반역하던 세월 동안의 하나님의 오래 참으셨던 자비를 바라보았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또 자신의 기도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애굽을 떠난 대군 가운데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있는 충실함을 인정받은 성인은 오직 두 사람뿐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모세가 자기의 노력의 결과를 회상하여 볼 때에 그의 시련과 희생의 생애는 거의 헛된 것처럼 보였다”(부조와 선지자, 471, 472).
신명기 34:4은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를 한다. “이는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그의 후손에게 주리라 한 땅이라.” 하나님께서 이 땅을 후손들에게 주시겠다고 부조들과 그들의 자녀들에게 되풀이해서 하셨던 그 말씀을 모세에게 그대로 하고 계셨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내가 네 눈으로 보게 하였거니와 너는 그리로 건너가지 못하리라”(신 34:4)라고 말씀하셨다. 보통의 시력으로는 당시 모세가 서 있던 곳에서 하나님께서 가리켜 보여 주신 모든 땅, 곧 모압에서부터 단, 납달리 그리고 그 너머에 있는 곳까지 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엘렌 G. 화잇이 이야기한 것처럼 그것은 분명 초자연적인 계시였다. 모세는 현재 그 땅의 모습만을 본 것이 아니라 그들이 그 땅을 차지한 뒤에 그 땅이 어떤 모습으로 변할지도 보았다.
어떻게 보면 하나님께서 그 땅에 들어갈 수 없는 모세를 약 올리고 계신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저지른 실수를 포함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행한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당신께서 그들의 조상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허락하신 언약적 약속에 충실하실 것임을 모세에게 보여 주신 것이었다. 앞으로 우리가 살펴보겠지만 하나님께서는 결함 있는 당신의 충성된 종을 위해 더 좋은 것을 준비하고 계셨다.
<묵상>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인 계시를 통해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없던 모세에게 앞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차지하게 될 모든 땅을 보여 주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답: 영원한 나라를 확신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땅에서 가나안 같은 땅을 차지하지 못해도 영원한 나라를 유업으로 받는다는 것을 알게 하신 것이다.
<부가설명> 모세는 120년을 파란만장한 생애를 살았다. 하나님의 섭리에 의하여 그는 나일강에 던져지지 않고 공주에게 발견되어 아들이 없던 하트셉수트 공주의 아들이 되었고 왕자로서 왕궁에서 교육받으며 성장했다. 그는 당시 최고의 엘리트였다. 그러나 자신이 이스라엘 사람이라는 것을 잊어버리지 않았다. 어머니의 품에서 자라는 동안 어머니가 그에게 교육시킨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가 40세가 되었을 때 이스라엘 사람을 자기의 동족으로 확신한 사실을 살인사건으로 분명히 드러내었다. “나이 사십이 되매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을 돌아볼 생각이 나더니 한 사람의 원통한 일 당함을 보고 보호하여 압제받는 자를 위하여 원수를 갚아 애굽 사람을 쳐죽이니라 저는 그 형제들이 하나님께서 자기의 손을 빌어 구원하여 주시는 것을 깨달으리라고 생각하였으나 저희가 깨닫지 못하였더라 이튿날 이스라엘 사람이 싸울 때에 모세가 와서 화목시키려 하여 가로되 너희는 형제라 어찌 서로 해하느냐 하니 그 동무를 해하는 사람이 모세를 밀뜨려 가로되 누가 너를 관원과 재판장으로 우리 위에 세웠느냐 네가 어제 애굽 사람을 죽임과 같이 또 나를 죽이려느냐 하니 모세가 이 말을 인하여 도주하여 미디안 땅에서 나그네 되어 거기서 아들 둘을 낳으니라”(행7:23~29)라고 기록하였다. 이렇게 하여 그는 미디안에서 목자로 40년을 지내면서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게 되었고 마침내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임금의 노함을 무서워 아니하고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같이 하여 참았으며”(히11:24~27)라고 증언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장렬한 최후를 마치고 하나님의 품에 잠든 것이다. 그는 믿음의 사람이고 순종의 사람이었다. 그의 생애를 연구하며 본받을 만하지 않은가?
<교훈>
하나님께서는 죽음을 눈앞에 둔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들어가게 될 땅을 보여 주심으로 끝까지 당신의 언약에 충실할 것임을 보여 주셨다.
12월 22일(수) 모세의 부활
“이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모압 땅에서 죽어 벳브올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골짜기에 장사되었고 오늘까지 그의 묻힌 곳을 아는 자가 없느니라”(신 34:5, 6). 이 짧은 성경절을 뒤로하고 이스라엘 역사의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글을 통하여 오늘날까지도 수많은 교회와 회당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모세는 죽었다.
모세는 죽어서 장사되었고 백성들은 그를 위해 애곡했다. 안타깝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말씀의 원리가 여기에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계 14:13).
하지만 모세의 죽음은 그의 인생에 관한 이야기의 끝이 아니었다.
유다서 9절을 읽어 보라. 여기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으며, 이 말씀이 신약에서 모세가 다시 등장하는 것을 설명하는 데 어떤 도움을 주는가?
[유 9]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에 관하여 마귀와 다투어 변론할 때에 감히 비방하는 판결을 내리지 못하고 다만 말하되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 하였거늘,
답: 모세의 시체를 천사장 미가엘이 가지고 간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 그를 부활시켜 하늘로 데려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비록 짧게 설명되어 있지만, 이곳에는 놀라운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스도이신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에 관하여 마귀와 다투어 변론하셨다. 모세가 죄인이었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사실 하나님께 속한 영광을 자신이 취하려고 했던 장면에서 드러난 모세의 마지막 죄는,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사 14:14)라고 생각한 루시퍼를 하늘에서 쫓겨나게 한 그 죄와 같은 것이었다. 모세의 시체를 두고 벌어진 다툼은 그리스도께서 모세를 위해 약속된 부활을 주장하신 것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그분의 법을 어긴 죄인 모세를 위해 그렇게 할 수 있으셨는가? 그에 대한 답은 오직 십자가뿐이다. 동물의 희생이 그리스도의 죽음을 상징했던 것처럼, 십자가의 죽음을 내다보신 예수님께서는 모세를 부활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셨다.
<묵상>
십자가가 있기 전이었음에도 불멸의 몸으로 부활한 모세의 이야기가 구원의 계획의 깊이를 이해하는 데 어떤 도움을 주고 있습니까?
답: 창세함으로부터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께서(계13:8, 구역) 그 죽음으로 전제로 그것을 믿은 모세를 사유하시고 구원하여 부활하게 하셨다.
“모세는 죄의 결과로 사탄의 권세하에 빠졌다. 그 자신의 행위대로라면 그는 당연히 죽음의 포로였다. 그러나 그는 구주의 이름을 의지함으로 부활하여 영생을 얻었다. 모세는 영광스럽게도 무덤에서 나와 당신의 구원자와 함께 하나님의 도성으로 승천하였다”(부조와 선지자, 479).
<부가설명> 개신교에서는 모세가 부활했다는 우리교회의 주장을 이단의 주장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모세는 변화산에 엘리야와 함께 나타나서 예수님을 만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의논하였다(눅9:30,31). 그들은 모세의 영혼이 나타났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영혼불멸설을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은 영혼불멸설을 계시하지 않았다.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무덤 속에 있는 자들이 그분의 음성을 듣는다고 분명히 계시하였다(요5:28,29).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영혼이 재림하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무덤으로 내려와서 부활한다는 주장이 되는데 이치로도 맞지 않다. 부활할 때까지 무덤 속에 있다고 기록한 성경 말씀을 그대로 믿는 것이 합당한 것이다. 또 엘리야는 죽지 않고 승천했기 때문에 변화산에 나타난 엘리야는 변화하여 하늘로 올라간 것이 확실하다. 그는 변화한 몸으로 변화산에 나타났는데, 모세는 몸이 없는 영혼으로 나타났다는 것은 그 상황에서 맞지 않는 주장이다. 그러므로 유다서의 기록과 변화산 사건을 통하여 성경적으로 이해할 때 예수님이 모세를 부활시켜 하늘로 데려간 것이 확실하다. 엘리야는 예수님 재림 하실 때 죽지 않고 살아서 변화하여 재림을 맞이하는 사람들의(살전4:17) 대표자로 나타났고 모세는 죽었다가 부활하여 재림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대표로 나타났다. 변화산의 이 광경은 예수님 재림 광격의 축소판이다(벧후1:16~18). 성경의 이 여러 기록으로 모세가 부활하여 하늘에 간 것이 확실한 것을 믿을 수 있다. 아멘.
<교훈>
예수님께서는 인류를 위해 자신이 짊어질 십자가를 내다보시고 그것을 근거로 마귀와의 변론에서 모세의 부활을 주장하셨고 그를 부활시키셨다.
12월 23일(목) 우리 모두의 부활
신약에서 추가적으로 주어진 설명을 통해 보건대, 모세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한 것은 결코 형벌이 아니었다. 모세는 훗날 지상의 예루살렘이 된, 전쟁, 정복, 고통의 땅인 가나안 대신 “하늘의 예루살렘”(히 12:22)에 지금까지도 살고 있다. 그곳이 훨씬 더 아름다운 곳이 아닌가?
모세는 죽은 자의 부활에 관한 실례로서 성경에 나타난 첫 번째 인물이었다. 에녹과 엘리야는 죽음을 경험하지 않은 채로 하늘로 데려감을 받았지만(창 5:24, 왕하 2:11), 모세는 죽었다가 영원한 생명으로 부활한 첫 번째 사람이었다.
모세가 땅속에 얼마나 오랫동안 묻혀 있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그것이 모세에게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죽어서 눈을 감고 있는 그에게는 그것이 세 시간이든 삼백 년이든 결국 같은 것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인류 역사 가운데 죽음을 경험한 모든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적어도 죽음에 관해서는 누구의 경험이라 할지라도 모세가 경험한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죽어서 눈을 감게 된 후에 그다음으로 마주하게 될 것은 예수님의 재림 또는 마지막 심판이 될 것이다(참조, 계 20:7~15).
고린도전서 15:13~22을 읽어 보라. 이곳에서 어떤 위대한 약속을 발견하게 되는가? 또한, 죽은 자들이 부활의 때까지 그리스도 안에서 잠들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만 바울의 말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고전15:13~22]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14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15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하셨으리라 16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17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18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21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답: 모든 신자가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하게 될 것이다. 그때까지 모든 사람들은 무덤에서 잠을 자고 있다.
부활에 대한 소망이 없다면 우리에게는 아무런 소망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 또한 그렇게 될 수 있음에 대한 보증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희생양으로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우리의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히 1:3)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셨다. 그리고 그분의 부활하심으로 인해 우리는 우리의 부활에 대해서도 확신을 가질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 행하실 일에 근거하여 모세는 부활하게 되었으며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일 때문에 우리 또한 부활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세를 통해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에 대한 실례를 발견할 수 있다. 비록 마지막에 실수가 있긴 했지만, 그의 믿음은 하나님을 향한 충성과 신뢰의 삶을 통해 나타났다. 우리는 신명기 전체에 걸쳐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그들에게 허락된 하나님의 은혜에 충성으로 반응하라고 호소하는 모세의 모습을 보게 된다. 이는 약속의 땅 접경에 서 있는 우리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말씀이다.
<묵상>
이번 4기에 공부한 신명기의 기별을 다시 한번 떠올려 보십시오. 하나님의 어떤 음성이 가슴에 메아리치고 있습니까?
답: 하나님은 창세적에 삼위일명 사이에 의논한 언약에 의하여 예수 믿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신다는 사랑이 가슴에 가득히 찬다. 감사합니다.
<부가설명> 죽은 자의 부활은 성경 종교의 핵심이다. 성경은 사람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기 위한 구속의 긴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 구원은 사람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도록 한 것이다(요3:16,17, 5:24,25 참고). 생명으로 옮긴 확증이 예수님의 부활이다.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다면 바울이 설파한 대로 예수님이 부활하시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성경의 종교는 아무런 희망이 없다. 도덕적 수양으로 세상에서 죽기 전까지 육체의 생명이 사는 동안 도덕적으로 선하게 살아라는 것 외에 아무런 할 일이 없다. 그렇다면 마음대로 살다가 죽는 것이 가장 잘 사는 길이 아니겠는가? “죽은 자가 다시 살지 못할 것이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고전15:32). 만일 죽은 후에 영혼이 있어 그것이 천국에 간다면 ‘내일 죽을 것이니 먹고 마시자’라고 할 수 있겠는가? 영혼이라도 하늘나라 가기 위하여 예수를 열심히 믿으며 선하게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영혼불멸설은 성경의 가르침과 아무 상관없는 옛뱀 루시퍼의 거짓 주장일 뿐이다. 그것이 오늘날 기독교의 핵심교리로 자리 잡고 있으니 사탄이 대단히 성공한 작품이다. 그러나 그것은 거짓 중의 상거짓이다. 여기서 속히 벗어나서 예수님의 부활을 따라 부활하여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맞이하고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히 삼위일명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살 것이다. 거기 가자. 신명기는 끝에 가서 이 사실을 모세의 부활로 확실하게 결론지었다. 아멘.
<교훈>
죽었다가 영원한 생명으로 부활했던 모세의 경험은 우리의 경험이 될 것이며, 예수님의 부활은 그렇게 될 것임에 대한 확실한 보증이다.
12월 24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고 부르짖었을 때에 마치 그들은 그 능력이 인간의 약점과 정욕을 소유한 자신들에게 놓여 있는 것처럼 그들 자신을 하나님의 자리에 두었던 것이다. 모세는 백성들의 끊임없는 불평과 반역에 지쳐서 마침내 자기를 돕고 계시는 전능하신 분을 보지 못했다. 그는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지 아니하고 인간의 약점을 나타냄으로 인하여 그의 경력에 오점을 남겼다. 그의 사업이 끝날 때까지 순결하고 확고부동하고 무아의 경지를 지속했어야 할 사람이 마침내 패배를 당하고 말았다. 하나님께서는 찬양과 높임을 받으셨어야 할 때에 이스라엘의 회중 앞에서 모욕을 당하셨다”(부조와 선지자, 418).
“모세는 승천한 엘리야와 함께 변화산에 나타났다. 그들은 아버지께서 당신의 아들에게 보내는 빛과 영광의 전달자로서 보내신 바 되었다. 그리하여 여러 세기 전에 드린 모세의 기도는 마침내 성취되었다. 모세는 그의 백성의 기업에 포함되어 있는 ‘아름다운 산’에 서서 이스라엘의 모든 약속들이 집중되어 있는 그리스도를 증거하였다. 이것이 바로 하늘에서 크게 존경을 받는 그 사람의 역사 중에서 인간의 안목에 나타난 마지막 장면이었다”(부조와 선지자, 479).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모세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부활하여 하늘로 올라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모세는 이 땅에서 일어나는 모든 나쁜 일들을 전부 지켜봐야 했다. 재림을 통해 이 땅에서 일어나는 모든 힘든 일들이 다 지나간 후에 우리가 부활하게 된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인가! 그렇다면 이와 같은 사실이 어떤 면에서 모세가 경험한 것보다 더 큰 축복이 되는가?
※ 우리는 세상이 얼마나 더 악해지는지 알지 못하고 부활의 영광을 누릴 것이다. 지금 모세는 점점 더 악해지는 세상과 그와 연합하는 교회를 보면서 옛 이스라엘의 경험이 반복되는 것을 볼 때 마음이 편할까?
2. 자신의 화를 이기지 못해 반석을 친 사건을 포함하여 모세의 생애가 우리에게 믿음으로 사는 것뿐만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보여 주는 좋은 예가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 자기의 의로운 행위&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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