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과 부활하신 주님(질문, 대답, 설명) 09/2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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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4-09-20 04:30 조회2,281회 댓글0건본문
제13과 부활하신 주님
(9월 28일 안식일 / 일몰: 오후 6시 19분)
연구 범위: 막 15:42~47, 막 16:, 골 2:10~12, 고전 15:1~8, 단 9:24~27, 요 20:11~18
기억절: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막 16:6).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은 제자들의 희망과 믿음을 무너뜨렸다. 제자들은 스승의 죽음만 아니라 자신의 생사도 알 수 없어 두려워하며 씨름하는 암울한 주말을 보냈다(요 20:19).
마가복음의 마지막 장인 16장에서 우리는 그분의 죽음 이후 일어난 일을 살펴볼 것이다.
첫째 예수께서 부활하신 때, 그리고 그 일요일 아침에 여인들이 무덤에 간 이유가 무엇인지 살펴볼 것이다. 재림교인들은 부활의 아침이 일요일의 신성성을 지지하기 위해 오용되어 왔기 때문에 그것을 꺼려하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부활과 연결된 잘못된 신학이 생겨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부활의 아침을 어떻게 기뻐할 수 있는지 살펴볼 것이다.
둘째, 월요일과 화요일 교과를 통해 마가복음 16장의 첫 구절을 설명하면서 이 단어들을 마가복음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와 연결할 것이다.
셋째, 수요일과 목요일에는 마가복음 16장의 나머지 부분을 살펴보고 우리 앞에 제시된 사명을 생각해 볼 것이다. 이 연구를 통해 마가복음의 독자들이 전 세계를 향해 복음을 들고 나아가는 도전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학습 목표
깨닫기: 역사적 사실인 예수의 부활은 우리에게 죽음을 이기는 승리를 보증한다.
느끼기: 예수의 빈 무덤과 여러 증거는 그분의 부활을 강력하게 증거하고 있다.
행하기: 감출 수 없는 부활의 기쁜 소식과 복음의 놀라운 능력을 온 세상에 전한다.
TMI 위로
2. 부활의 진리를 가장 잘 담고 있는 것이 일요일입니까? 아니면 다른 것이 있습니까?
*답: 예수님의 빈 무덤과 제자들이 용기있게 부활을 전한 것과 침례예식이다.
3. 주님의 부활이 실제적이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막 16:11)
*답: 제자들이 부활을 믿지 않는 것을 예수님께서 꾸중하신 사실까지 기록한 것이다.
4. 제자들은 예수님이 누구시며 그분이 하시는 일이 무엇인지를 어떻게 증거하였습니까?(막 16:20)
*답: 나아가서 그들을 따르는 표적으로 예수님의 부활 복음을 증거했다.
5. 마리아가 첫째 증인이라는 사실은 부활의 진실성을 어떻게 지지해 주고 있습니까?(막 16:9)
*답: 유대 사회는 여자들의 증언을 신뢰하지 않는데 여자가 목격자가 되어 증인이 된 것은 그 사실이 진실하다는 증거가 된다.
6. 십자가와 부활의 증인인 제자의 사역에서 표적은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는 것이 합당합니까?(막 16:18)
*답: 그들의 증거가 확실하다는 증명으로 표적을 나타내셨다. 이것이 합당하다.
7. 우리가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사는 것은 무엇을 믿기 때문입니까?(요 8:51)
*답: 부활과 영생을 믿기 때문이다.
결론: 일요일 예배에 대한 잘못된 신학과 별개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뻐한다.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고 승리하심으로 우리에게 승리를 보증하셨다. 빈 무덤과 여러 증거는 예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충분히 증거하고 있으며 기쁜 소식은 더 이상 감추어질 수 없다. 주님은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시며 온 세상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위대한 사명을 주신다.
9월 22일(일) 부활을 기뻐함
마가복음 15:42~16:6을 읽어 보라. 이 구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며, 이 이야기가 부활 이야기와 깊은 관련이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막15:42~16:6] 이 날은 준비일 곧 안식일 전날이므로 저물었을 때에 43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 사람은 존경 받는 공회원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44 빌라도는 예수께서 벌써 죽었을까 하고 이상히 여겨 백부장을 불러 죽은 지가 오래냐 묻고 45 백부장에게 알아 본 후에 요셉에게 시체를 내주는지라 46 요셉이 세마포를 사서 예수를 내려다가 그것으로 싸서 바위 속에 판 무덤에 넣어 두고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으매 47 막달라 마리아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 둔 곳을 보더라/ 16:1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2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을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 3 서로 말하되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 하더니 4 눈을 들어본즉 벌써 돌이 굴려져 있는데 그 돌이 심히 크더라 5 무덤에 들어가서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우편에 앉은 것을 보고 놀라매 6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답: 빌라도는 예수께서 확실히 죽었는지 확인하고 시신을 요셉에게 내주었다. 그리고 요셉이 자기를 위하여 마련한 빈 무덤에 장사했고 여자들은 확이하고 안식일 다음날 무덤에 가서 부활을 확인했다.
모든 복음서 기자들은 예수님이 '예비일'에 돌아가셨다고 기록한다(마 27:62, 막 15:42, 눅 23:54, 요 19:14, 31, 42). 대부분의 성경학자들은 이를 목요일 일몰부터 금요일 일몰까지로 이해한다. 예수님은 금요일 오후 늦게 돌아가셨고 해가 지기 전에 급히 장사되셨다.
안식일 동안 주님은 무덤에서 쉬셨고 예수님의 모든 제자도 그랬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마음속에 네 번째 계명을 지켜야 할 의무를 거두셨다면 "계명을 따라 안식일에 쉬"(눅 23:56)었다고 한 제자들의 행동을 설명하기 어려울 것이다.
여인들은 토요일 밤에 향료를 샀고 일요일 아침에는 보통의 절차대로 매장을 마무리하기를 바라며 무덤으로 갔다. 물론 예수님은 거기 계시지 않았다!
2세기 초가 되어서야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이 일요일에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주목하기 시작했고 이것이 일요일을 신성하게 여기는 생각의 기초가 되었다. 하지만 이것이 정말 신약성경이 가르치는 것인가?
골로새서 2:10~12을 읽어 보라. 신약성경은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것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골2:10~12]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통치자와 권세의 머리시라 11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의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12 너희가 침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답: 침례로 부활을 기념하도록 했다.
성경 어디에도 부활을 기념하는 일요일의 신성함을 암시하지 않는다. 부활의 기념은 침례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롬 6:4).
일요일 예배에 관한 거짓 신학과 관계없이 재림교인으로서 우리는 예수께서 부활하셨음을 기뻐한다.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고 승리하셨고, 그분의 부활은 우리에게 주실 승리의 보증이다.
<교훈> 예수께서 일요일에 부활하신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것이 일요일을 신성하게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침례 속에 더 충분한 부활의 의미가 담겨 있다.
<부가설명> 예수님은 성경에 제정하신 일곱 절기 중에 첫째 절기인 유월절에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셨다. 유월절은 아빕월(니산월) 14일이다. 다음 절기가 무교절인데 니산월 15일~21일까지다. 그중에 시작하는 날인 15일이 무교절 첫날 절기 안식일이다.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제칠일 안식일은 정기 공휴일이다. 이것은 제칠일인 요일이 공휴일이다. 절기 안식일은 날짜가 공휴일이다. 예를 들어 말하면 국정 공휴일이다. 이것은 요일과 상관없이 그 날짜가 공휴일이다. 1월 1일, 3월 1일, 8월 15일 등등, 이것은 그 날짜가 어느요일에 해당되든지 공휴일이다. 그러나 정기공휴일은 항상 그 요일이 공휴일이다. 세상적으로 말하면 일요일이다. 그러나 성경적으로는 제칠일이 안식일이다. 그런데 무교절 첫날인 니산월 15일이 바로 날짜에 해당되는 안식일이다. 우리는 이런 안식일을 절기 안식일이라고 한다. 예수님은 바로 그 유월절에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다. 유월절 양으로 죽으신 것이다(고전5:7). 예수님 당시 부활하신 날이 일요일이라면 유월절은 금요일이다. 예수께서는 금요일이 시작하는 저녁에 만찬을 잡수신 것이다. 시작은 목요일 해질때부터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유월절 은 금요일 해지려고 할 때 시작하지만 예수님은 유월절 양잡는 시간에 십자가에 달려 죽으셔야 하기 때문에 금요일 시작하는 시간에 유월절 만찬을 잡수신 것이다. 그리고 금요일 새벽에 잡히시고 그날 십자가에 달리셨고 죽으시고 급히 장사되었다. 그리고 무교절 첫날 안식일인 니산월 15일과 제칠일 안식일이 겹치는 날 무덤에 쉬셨다. 이 안식일을 큰 날이라고 한 것은 겹친 안식일이기 때문이기도 하다(요19:31). 16일 초실요제일에 부활하셨다. 초실요제일은 니산월 16일인데 무교절 7일 중에 포함된 날이다. 이 날에는 밀밭에서 처음 익은 이삭을 뽑아 묶은 단을 여호와 앞에 흔들어드리는 날이다. 이것은 예수께서 부활의 첫열매되시는 것을 예표하는 절기다(고전15:20~23). 그래서 예언된 바로 그날 부활하셔서 예언을 성취하셨다. 부활을 기념하려면 유대인의 요제일 날짜에 기념하면 된다. 일년에 하루 기념하면 된다. 그들이 부활을 기념한다고 일요일을 지키는 것은 예수께서 예언대로 다 이루신 초실요제일을 찾아 지키는 것이 된다. 그야말로 예수께서 이루어 폐하신 그 율법을 들추어 지키는 것이다. 참 묘한 일이 아닌가? 사탄은 참으로 묘하게 사람을 속인다.
9월 23일(월) 돌이 굴려져 있는데
마가복음 16:1~8과 고린도전서 15:1~8을 읽어 보라. 이 구절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막16:1~8]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2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을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 3 서로 말하되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 하더니 4 눈을 들어본즉 벌써 돌이 굴려져 있는데 그 돌이 심히 크더라 5 무덤에 들어가서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우편에 앉은 것을 보고 놀라매 6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7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 8 여자들이 몹시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라.
[고전15:1~8]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2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4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5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6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7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8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답: 예수께서 죽으시고, 장사되시고, 부활하시고 보이셨다는 것이다.
부활 이야기는 모든 복음서에 등장한다. 복음서 저자들은 서로 다른 관점에서 이야기를 제시하지만, 모두 고린도전서 15:1~8에 기록된 핵심 개념을 포함하고 있다.
죽으시고, 묻히고, 살아나시고, 보이심이라는 네 가지 개념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마가복음에서 죽으시고, 묻히심은 15장에 나타난다, 16장은 살아나시고, 보이심을 나타내며 특별한 기록을 더한다. 마가복음 16:7은 갈릴리에서의 회합에 대해 말하며, 그곳에서 그분을 보게 될 것이라고 한다(요 21장 참조).
어떤 사람들은 기독교인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믿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여긴다. 그러나 주님의 부활에 대한 증거는 실제적이며 합리적이다.
우선, 하나님을 창조주로 믿기만 한다면 부활과 기적에 대한 생각은 합리적인 것이 된다. 우주를 만드시고 지구상의 모든 생명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원하신다면 예수님을 부활시킬 수 있는 능력도 분명히 가지고 계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창조의 주인이시기에 부활의 주인이기도 하시다.
다음으로, 무덤은 분명 비어 있었다. 무신론자 역사가들조차도 그 사실을 인정한다. 그분의 시신이 그곳에 있었다면 부활에 대한 모든 주장을 무너뜨리기 때문에 그것은 처음부터 성립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제자들이 시체를 훔쳤다는 주장 또한 개연성이 없다. 제자들은 경비병들을 통과할 수 없었을 것이다. 혹시 경비병을 통과해서 시신을 훔쳤다고 한다면 왜 아무도 시체를 훔친 혐의로 체포되지 않았는가. 그것은 종교 지도자들도 제자들이 그런 일을 하지 않은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보았다고 증언했다. 제자들을 포함한 많은 사람이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 매우 강력한 원수였던 바울 또한 부활하신 주님을 보았다고 주장했을 뿐만 아니라 그 경험이 바울의 삶의 전 궤도를 완전하게 뒤집어 놓았다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다른 이유가 더 많이 있지만 그 무엇보다 강력한 논거는 바로 부활하신 주님을 보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세운 기독교 교회의 발흥이다. 부활이 거짓이라면 초기교회의 많은 사람들이 왜 이를 알면서도 기꺼이 죽음을 선택했는가? 주님이 돌아가신 직후(행 3:15), 그리고 수년 후(벧전 1:3)에도 일관된 그들의 증언은 주님의 부활에 대한 강력한 증거를 제공한다.
<교훈> 그분은 죽으시고 묻히시고 살아나시고 보이셨다. 예수께서 무덤을 열고 부활하신 모든 일은 부활이 분명한 사실임을 믿을 수 있는 충분한 증거를 제공한다.
<부가설명> 예수님의 부활이 없으면 성경은 거짓말이다. 예수께서 부활하지 않았으면 예수를 믿을 이유가 없다. 성경은 역사적 진실을 기록했다. 세상은 예수님을 성인이라고 추앙하는데 예수께소 공중 생애는 겨우 3년 반이었다. 성인으로 추앙받는 다른 사람들, 석가모니는 80세까지, 공자는 73세까지 살아서 활동했다. 그들과 예수님의 봉사기간을 비교할 수 있겠는가? 다른 사람들은 다 추앙받으면 죽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수로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 그런데 어떻게 성인축에 낀다는 말인가? 그분의 부활은 그분이 구주, 곧 사망을 정복하신 구주라는 것을 증명하는 사건이다. 인간은 사망을 피할 수 없다. 반드시 죽는다(창2:16,17, 3:17~19). 창조주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셨을 때 약속하신 것은 영생이다.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요일2:25). 이 영생을 잃어버렸으므로 하나님은 창조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그들을 다시 사망에서 영생으로 옮겨야 하셨다. 말씀 하나님이신 예수께서는 사람되어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사망을 폐하셨다(딤후1:10). 이것이 예수께서 이루신 구원사업이다. 부활은 사망을 폐하셨다는 증명이다. 이것을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증거라고 성경은 가르친다.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행17:31). 베드로는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거듭날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의 부활 때문이라고 분명히 증거했다(벧전1:3). 아멘.
9월 24일(화) 무덤을 찾은 여인들
“그리스도의 십자가 곁에 서 있던 여인들은 안식일이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안식 후 첫날 미명에 그들은 구주의 몸에 바를 귀중한 향료를 가지고 무덤으로 향했다. 그들은 예수님이 죽음에서 부활하실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희망의 태양은 지고 어둠이 저희 마음에 깃들었다. 그들은 걸어가면서 그리스도의 자비로운 행적과 위로의 말씀들을 떠올렸다. 그러나 그들은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요 16:22)라 하신 그분의 말씀은 기억하지 못했다”(시대의 소망, 788).
마가복음 16:1~8을 읽어 보라. 어떤 일이 일어났으며 여자들은 처음에 어떻게 반응했는가?
[막16:1~8]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2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을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 3 서로 말하되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 하더니 4 눈을 들어본즉 벌써 돌이 굴려져 있는데 그 돌이 심히 크더라 5 무덤에 들어가서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우편에 앉은 것을 보고 놀라매 6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7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 8 여자들이 몹시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라.
*답: 무덤 막은 돌은 굴러갔고 천사를 만났으며 부활하신 소식과 그것은 제자들에게 전하라는 말을 듣고 여자들은 몹시 놀라 도망하고 아무에게도 말 못했다.
복음서의 시작부터 독자들은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복음서에서 귀신 들리지 않은 사람 중에 처음으로 예수님을 메시아라고 선포한 사람은 베드로이다(막 8:29). 책의 중간에 이르기 전까지는 이런 고백이 나타나지 않는다.
마가복음 전체에서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자신이 누구인지 또는 자신이 그들을 위해 행한 치유에 대해 조용히 하라고 말씀하셨다. 마가복음 1:44에서 예수님은 문둥병자에게 그가 나은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마가복음 5:43에서는 야이로와 그의 아내에게도 딸을 살려주신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마가복음 7:36에서 예수님은 무리에게 귀먹고 벙어리 된 사람을 고치신 일을 사람들에게 말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제자들에게도 자신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말하지 말라고 명령하신다(막 8:30, 막 9:9).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침묵하라고 말씀하신 주된 이유는 다니엘 9:24~27의 예언의 때를 따라 당신의 봉사를 성취하실 시간을 갖기 위해서였다.
여인들은 이 장면에서 예수님이 살아나셨다는 소식을 듣고도 두려음과 놀라움에 무덤에서 도망쳤고, 적어도 처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침묵은 오래가지 않았다. 마가복음의 마지막 부분은 이렇게 기록한다. "그들이 나아가서 모든 곳에서 복음을 선포하매 주께서 그들과 함께 일하시며 따르는 표적들로 말씀을 확증해 주시니라"(막 16:20, 흠정역).
이에 예수님과 그분이 누구시며 그분이 하시는 일에 대한 비밀의 주제는 끝난다. 그들은 나가서 "모든 곳에서" 복음을 선포한다.
<교훈> 무덤을 찾았던 여인들은 놀라움에 도망치며 아무 말 하지 않았지만 이내 그들이 모든 곳에서 복음을 전하면서 마가복음 전반의 비밀의 주제는 끝이 난다.
<부가설명> 여자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실인데 흰옷입은 청년을 만나서 예수님 부활하신 사실을 듣고 놀랐다. 세상에서 그런 경험이 없었다. 구약성경에 죽은 자가 살아난 사건이 있고 예수께서 봉사하실 때 여러 사람을 살리신 사실도 안다. 그러나 죽은 당사자가 살아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한 사건이었다. 아마도 처음에는 귀신을 보지 않았나 하는 무서운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들이 경험한 것은 진실이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예수께서 하신 교훈들이 생각났을 것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신대로 그들은 갈릴리로 갔을 것이다. 거기서 예수님을 만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생명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예수께서 부활하지 않았으면 이 세상은 그냥 사망 뿐이다. 모든 것이 종신하게 되어 있다. 생명이신 창조주께서 자기 형상대로 창조한 사람을 그냥 두실 수 없었다. 사람이 비록 언약을 어겼지만(호6:7) 깨진 언약을 예수님 안에서 회복하시고(창3:15) 그분이 사망으로 사망의 세력잡은 마귀를 없이하게(히2:14) 하시고 부활하셔서 생명이 사망을 이긴 증명을 하셨다(고전15:54, 고후5:4). 그래서 그분 안에서 믿음으로 언약은 회복되고 처음에 하신 약속(요일2:25)을 성취하셨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한다(요3:16).
9월 25일(수) 마리아와 다른 이들에게 보이심
마가복음 16:9~20을 읽어 보라. 이 구절은 부활 이야기에 무엇을 더하는가?
[막16:9~20] [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 10 마리아가 가서 예수와 함께 하던 사람들이 슬퍼하며 울고 있는 중에 이 일을 알리매 11 그들은 예수께서 살아나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 12 그 후에 그들 중 두 사람이 걸어서 시골로 갈 때에 예수께서 다른 모양으로 그들에게 나타나시니 13 두 사람이 가서 남은 제자들에게 알리었으되 역시 믿지 아니하니라 14 그 후에 열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사 그들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가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 15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16 믿고 침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18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19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려지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 20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시니라]
*답: 예수께서 마리아와 다른 여자들에게 보이신 것과 제자들의 불신과 예수님이 그들을 만나서 책망하신 사실과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두루 전파했다.
마가복음 16:9~20의 거의 모든 구절은 신약의 다른 구절들에서도 발견된다.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서 예수를 만나고(마 28:1, 9, 10; 요 20:11~18, 눅 8:2), 두 제자가 예수님을 뵙고(눅 24:13~35), 11명의 제자가 사명을 받는다(마 28:16~20, 눅 24:36~49, 요 20:19~23).
예수님이 살아 계신 것을 제일 먼저 본 사람은 막달라 마리아였다(요 20:11~18). 다른 여인들도 그분을 보았다(마 28:8~10). 부활하신 주님을 처음 본 사람들이 여성이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고대 세계에서 여성은 증인으로서 위치가 높지 않았기 때문에 이 이야기가 조작된 것이었다면 첫째 증인으로 남성을 제시했을 가능성이 훨씬 더 높았을 것이다. 그러나 남자도 아니고 열한 제자도 아닌 여성이 첫 번째 증인이다. 그녀는 제자들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러 갔지만, 당연히 제자들은 그녀의 증언을 믿지 않는다. 그들은 그녀가 환상을 본 것으로 생각했고 또 불행히도 소식을 전한 마리아가 여자였기 때문이었다.
예수의 부활 이야기를 변증하는 사람들은 예수를 처음 본 사람이 여성이라는 사실을 이야기의 진실성에 대한 강력한 증거로 사용했다.
마가복음 16:14에서 있었던 일을 조작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어떤 부분이 이해되지 않는가?
[막16:14] 그 후에 열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사 그들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가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
*답: 제자들이 완악한 마음으로 부활을 믿지 않아서 꾸지람을 들었다. 기록하는 제자가 이런 말을 기록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만약 이것이 제자들이 지어낸 이야기라면 그들은 왜 자신을 그렇게 나쁘게 만들었는가? 예수님은 그들의 "마음의 완악함"을 꾸짖으셔야 했다. 예수님이 체포된 때부터 부활 후 보이실 때까지 복음서의 기록은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을 도망치고, 부인하고, 불신하는 등 매우 부정적인 모습으로 묘사하고 있다. 만약 이 이야기가 지어낸 이야기라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대조적으로, 이후에 부활하신 그리스도에 대한 그들의 담대하고 확고한 선포와 그것이 모든 사람에게 주는 소망은 그들의 주장이 진실하다는 것을 강력히 입증한다.
<교훈> 여성이 부활을 제일 먼저 증거한 것은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당시 그들의 낮은 위상으로 증인으로 세우지 않았을 것이기에 부활은 꾸며진 이야기가 아니다.
<부가설명> 아담 이후로 세상은 사망이 지배한다. 선지자들을 통하여 죽은 자를 살리는 사건이 있었으나 그들까지도 다시 죽었다. 그러니 세상에는 죽음을 이길 사람이 없다. 사람은 본질적으로 사망의 존재다. 창조주께서 아담에세 종신할 때까지 수고해야 한다는 말씀하셨을 때 ‘정녕 죽으리라’고 하신 말씀이 현실적으로 어떻게 성취되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나 창3:15의 약속으로 사망이 사망할 것을 드러내셨다.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할 것이다. 이것은 히브리2:14에서 설명됐다.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개역한글)라고 하여 예수께서 사망하시는 것으로 마귀를 없이하셨다. 즉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마귀가 죽은 것과 같다는 말씀이다. 뱀의 머리가 상한 것이다. 사망이 사망한 것이다. 딤후에는 사망을 폐했다고 계시했다(딤후1:10). 이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사망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어졌다. 그들은 죽어도 사는 영생의 생명을 얻었기 때문이다.
9월 26일(목) 가라 온 세상을 향해
마가복음 16:14~20절을 읽어 보라.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 그들에게 무엇을 말씀하셨는가? 이 말씀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막16:14~20] 그 후에 열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사 그들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가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 15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16 믿고 침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18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19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려지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 20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시니라.
*답: 첫째는 불신을 책망하신 것이고 다음은 사명을 주신 것이다. “14~18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16 믿고 침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18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도 복음을 전파해야 한다. 이 일을 할 때 위험이 따를지라도 주님이 항상 함께하신다는 보증도 주셨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첫 번째 말씀은 마가복음 16:14에 들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으로만 기록되어 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불신앙과 완악한 마음을 책망하신다. 불신앙은 오늘날의 우리만 경험하는 문제가 아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예수님의 초기 제자들은 육신으로 오신 예수님과 함께하며 거듭해서 기적을 보았음에도 예수님의 부활을 단번에 믿지 못했다(마 28:17, 요 20:24~29).
그럼에도 예수님은 여러 가지 증거를 통해 그들에게 당신의 부활의 실체를 보여주셨다. 그리하여 그들의 증언은 월요일 교과에서 살펴본 증거와 결합하여 믿음의 확고한 기초를 형성했다.
그다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세상에 복음을 전하라는 사명을 주신다. 그분의 명령은 광범위하다. 제자들은 온 세상에 가서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예수께서는 믿는 자는 구원을 받고, 믿지 않는 자는 정죄를 받게 되는 복과 화로 그들의 사역의 결과를 설명하신다.
예수님은 또한 귀신을 쫓아내고, 새로운 언어를 말하며, 위험으로부터의 보호와 병자를 고치는 등 제자들의 사역에 나타날 표적에 대해서도 설명하신다. 어떤 사람들은 기독교인들이 독사를 집어 올리는 것으로 믿음을 확증해야 한다고 마가복음 16:18을 잘못 해석하기도 한다. 이 말씀은 그러한 맹신을 승인한 것이 아니다. 예수께서는 선교 활동 중 만나게 되는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 바울이 사도행전 28:3~6에서 경험한 것은 그런 예 중 하나다.
그리고 성경은 기독교인이 모든 위험에서 항상 보호받을 것이라고 가르치지도 않는다. 때때로 하나님은 복음 사업을 전진시키기 위해 기적을 행하시는 것이 적합하다고 여기실 때가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증거 때문에 고난을 받기도 한다. 그런 상황에서 그들의 견고한 인내는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믿음의 능력을 보여주는 또 다른 표징이다.
모든 악의 세력을 물리치신 예수는 “하늘로 올려지사” 최고의 권능의 자리인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막 16:19)셨다.
오늘 본문의 마지막 구절을 주목하라. 제자들은 모든 곳으로 다니며 복음을 전했지만 결코 혼자 간 것이 아니었다.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막 16:20)셨다. 주님은 그때도 그들과 함께하셨고, 그 사명을 이어서 충성하는 우리와 지금도 함께하신다.
<교훈> 주님은 제자들에게 부활을 확인하시며 믿음을 든든히 한 후에, 함께 하실 것이라 약속하시고 온 세상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광대한 사명을 주신다.
<부가설명>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상식적으로 그럴 수 있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안다. 그것은 다 이 세상의 이치들이다. 학문과 경험으로 알게 된다. 그리고 상식은 일반적 사람들이 믿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나는 상식이 깨어져버리는 것이 사고라는 생각을 한다. 가장 보편적인 상식은 사람은 죽는다는 것이다. 죽으면 끝이다.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난다는 것은 상식이 아니다. 사람들이 이런 것을 보면 기적이라고 말한다. 제자들은 그당시 유대 사회의 상식 속에 살아왔다. 예수님의 부활은 그들의 상식에 속하는 것도 아니고 상식적으로 이해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까 부활을 본 여자들의 말을 믿지 않았다. “사도들은 저희 말이 허탄한 듯이 뵈어 믿지 아니하나”(눅24:11)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들의 상식 세계 밖이었기 때문이었다. 성경에 계시된 구원 사건은 이 세상의 지식이나 상식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상식이다. 하늘처럼 높은 하나님의 생각(사55:8,9)을 세상의 상식으로 어떻게 가늠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믿음으로 이것을 안다. 우리는 믿음으로 우리도 부활할 것을 안다. 지금도 우리는 믿음으로 부활의 그 생명력으로 매일을 주님의 영광이 되도록 살아가자. 부활의 주님께서 세상 끝날까지 항상 함께 하신다는 약속이 얼마나 든든한가!
9월 27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하여
시대의 소망 81장 “주께서 살아나시고,” 86장 “가서 모든 족속을 가르치라”를 읽어 보라.
“그리스도는 믿는 자에게 부활과 생명이시다. 우리 구주 안에서 죄로 인해 잃어버린 생명이 회복된다. 이는 예수께서 당신이 원하는 자들에게 줄 수 있는 생명을 그분 안에 가지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분은 불멸을 주실 권리를 부여받으셨다. 그분이 인성을 입으시고 버리셨던 그 생명을 다시 취하셔서 인류에게 주신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라’(요 10:10; 4:14; 6:54). 믿는 자들에게 죽음은 사소한 문제에 불과하다. 그리스도께서는 그것을 마치 순간의 일처럼 말씀하셨다.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보지 아니하리라,’ ‘죽음을 영원히 맛보지 아니하리라.’ 그리스도인에게는 죽음이란 잠자는 것이며 한 순간의 침묵과 어두움일 뿐이다.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 있으며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요 8:51, 52; 골 3:4)날 것이다”(시대의 소망, 786).
무신론 역사가들조차도 예수님이 죽임 당하셨고, 죽으신 후에 많은 사람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보았다고 주장했으며, 결과로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 주장을 설명하기 위해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에게 쌍둥이 형제가 있었다거나 초기 제자들이 환각을 경험하면서 예수님을 본 것처럼 착각했다고 하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은 예수님이 실제로 죽은 것이 아니라 기절했다가 나중에 회복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사람은 외계인이 내려와 시신을 가져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분이 부활하셨고 지금도 우리와 함께하시는 것을 안다.
함께하는 토의를 위하여
1.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거짓말할 필요가 있었는가? 부활을 이야기하면 증오와 소외, 박해를 당할 수밖에 없었는데, 무엇을 위하여 그런 이야기를 지어내겠는가?
*답: 거짓말 할 수 없다. 너무나 명백한 사건이었고 사실이었다
2. 부활의 어떤 증거가 가장 설득력이 있는지 나누어 보라.
*답: 기록된 말씀과 침례와 우리의 믿음이다.
3. 부활이 우리에게 주는 위대한 소망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 보라. 고린도전서 15장을 읽어 보라. 바울은 예수님의 부활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했는가?
*답: 부활이 없으면 예수 믿어도 여전히 죄 가운데 있고 가장 불쌍한 사람이라고 고백했다(고전15: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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