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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과 - 예수, 언약의 중보자 -(핵심 Q&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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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봉주 작성일22-02-15 02:44 조회1,43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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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8과 - 예수, 새 언약(言約)의 중보자(仲保者)

                                                               (2020-02-19(안)18:15)

 

(02월13일 (일) <새 언약(言約)의 필요성(必要性)>

 

(Q)~옛 언약(言約)의 역할(役割)은 무엇이며 옛 언약(言約)이 가진 한계(限界)는 무엇 이였습니까? 그러므로 (히브리서 7:11~19)에서 말씀하시는 핵심(核心)은 무엇일까요?

 

(A)~⑴.<옛 언약(言約)>

첫 언약은 처음에 아브라함과 맺어졌습니다.(창 12:1-7).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1) 큰 민족을 이루어 주실 것, (2) 그의 이름을 창대케 하실 것, (3) 그에게 땅을 주실 것, (4) 이 땅의 모든 족속이 그의 후손으로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라는 약속을 하셨음을 배우셨습니다. 이 언약의 표로서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들에게 할례 받을 것을 요구하셨습니다(창 17:1-14).

 

모세의 율법에서는 아브라함에게 말씀으로 이루어진 언약을 재확인했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이 순종해야하는 규칙들을 덧붙였습니다. 그것은 (1) 돌 판에 기록한 십계명(출 20:1-17, 30:27-28)과 (2) 언약서(言約書)(출 24:7)라 불리는 율법의 기타 부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모세의 율법은 오직 유대인에게만 준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까지만 존속하였습니다. 이것은 영적으로 맺어진 법이라기보다는 문자적으로 맺어진 법입니다. 유대인들은 규칙적으로 하나님께 동물의 피를 드려 그것으로 그 언약을 세운 것이었습니다(히 9:18-21).

 

⑵.<새 언약(言約)>

둘째 언약이라고 하는 새 언약은 말할 것도 없이 옛 언약보다 훨씬 중요합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렘 31:31-34). 이미 오래 전에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과 새 언약을 맺으실 것이라고 예언하였습니다. 이 예언은 그리스도가 십자가 위에서 피를 흘리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새 언약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의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겠다고 하신 약속을 성취하신 것입니다(창 22:18). 예수는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오셔서 이 세상 모든 족속들을 죄에서 구원하여 주시는 복을 주셨습니다.

옛 언약과 새 언약의 큰 차이점을 든다면 첫 언약이 유대 민족과만 맺어진 것인데 비해 새 언약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순종하는 모든 사람들과 맺은 것입니다. 

이와 같은 새 언약의 우주적인 특성이 갈라디아서 3장 26-29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⑶.<옛 언약의 한계(限界)>

레위 계통의 제사장 직분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를 맺게 하는 데 실패하였다(Moffatt). 왜냐하면 레위 제사장들의 제사 행위로는 근본적으로 인간의 죄악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9:9, 10:1) 사람들이 그들에게서 받은 율법은 자신들의 죄를 깨닫게 해줄 뿐 그것을 완전히 준수해서 의롭다 함을 얻게 해주지는 못하기 때문이다(롬5:20). 그래서 아론을 좇는 레위 계통의 제사장 대신에 멜기세덱을 좇는 별다른 제사장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즉 옛 언약은 장차미래(將次未來)에 오실 구세주(救世主) 예수그리스도를 그림자로서 역할(役割)임으로 실체(實體)를 가리켜 주는 것일 뿐 속죄(贖罪)와 구원(救援)의 능력이 없는 예표(豫表)로써만의 역할(役割)이기에 한계(限界)가 있다.

 

⑷.<정리>

 역사(歷史)를 통해 줄곧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제안(提案)하신 언약(言約)은 동일(同一)하게 영원(永遠)한 언약(言約)이었다. 언약(言約)과 관련(關聯)하여 ‘옛’과 ‘새’라는 말은 하나님의 구원(救援)의 계획(計劃)의 서로 다른 방식(方式)들이 아니라 백성(百姓)들의 반응(反應)과 경험(經驗)을 가리킨다. 예레미야(렘 31:31-34)는 개인(個人)이 새 언약(言約)의 경험(經驗)으로 산다면 하나님의 율법(律法)이 마음에 새겨진다고 강조(强調)한다. 

율법(律法)은 더 이상(以上) 외부(外部)에 있는 돌비(석비(石碑)에 기록(記錄)된 것이 아니다. 

각자(各者)는 하나님의 언약(言約)을 개인적(個人的)으로 경험(經驗)하고 그것을 마음과 성품(性稟)에 내면화(內面化)시켜야 하는데, 그럴 때 그 언약(言約)은 새롭게 된 개인(個人) 및 세대(世代)와 더불어 새로운 것이 된다.

 

(02월14일 (월) <새 언약(言約)의 특징(特徵)>

 

(Q)~옛 언약과 새 언약(言約)의 본질(本質)은 무엇인가?

 

(A)~⑴.하나님은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율법(律法)을 돌판(신 4:13)과 책(신 31:24, 26)에 기록했다. 

하나님은 이 율법이 백성(百姓)의 마음에도 기록되기를 원(願)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 율례(律例)들을 단지 외형적(外形的)인 법전(法典)으로 여기고 이에 대한 준수(遵守)를 외적(外的)인 순응(順應)의 문제로 간주(看做)하는 데 만족(滿足)했다. 하나님의 계획(計劃)은 율법(律法)이 그렇게 간주되는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새 마음을 경험(經驗)하도록 했으나(참조 겔 36:26), 그들은 외형적 종교(宗敎)에 만족(滿足)했다. 새 언약 아래서는 마음과 생각이 변화(變化)된다(참조 롬 12:2; 고후 5:17). 사람이 스스로의 힘으로 선(善)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그 마음에 거(居)하여 신자(信者) 안에 그리스도의 삶을 사는 것이다(참조 갈 2:20). 사람들은 성령(聖靈)으로 거듭나 성령(聖靈)의 열매를 맺는다(갈 5:22, 23). 그 변화(變化)는 오직 하나님의 능력(能力)으로만 이루어질 수 있다. 오직 하나님만이, 물론 사람의 동의(同意)와 협력(協力) 없이는 안 될지라도, 신자(信者)의 마음속에 그의 율법(律法)을 “두실” 수 있다(계 22:17; 참조 산상보훈, 142). 

 

⑵.새 언약의 첫 번째 우월성(優越性)은 하나님의 언약(言約)이 내면적(內面的)으로 심비(心碑)에 기록된다는 점이다. 이것은 ①.새 언약이 우리 영혼의 깊숙이 새겨지며 (렘31:33) ②.하나님을 떠나지 않도록 마음속에 경외심(敬畏心)을 심어주며 (렘37:40) ③.마음속에 하나님의 영(靈)을 두며 (겔 37:14) ④.마음을 깨끗하게 (겔 37:23) 한다는 복합적(複合的)인 의미를 갖는다. 그러므로 마음에 새겨진 성도들은 자발적(自發的)인 율법의 순종(順從)의 의무(義務)가 있음을 깨닫게 된다.

 

⑶.(예레미야 31:31~34)에서 새 언약은 옛 언약의 ‘갱신(更新)’과 ‘완전히 새로운’이라는 두 가지 뜻을 모두 의미(意味)하는 것으로 옛 언약이 사람들에게 문제(問題)가 있어 깨어진 것을 새로이 갱신(更新)하는 의미(意味)를 배제(排除)하지 않지만, 오히려 구주(救主)예수님에 의해 새로 이루실 일에 대한 약속(約束)도 포함(包含)되어있다는 것이다.

 

(02월15일 (화) <새 언약(言約)에 있는 더 좋은 중보자(仲保者)>

 

(Q)~예수님께서 모든 믿는 자들을 위(爲)한 더 좋은 언약(言約)의 중보자(仲保者)가 되시는 이유(理由)는 무엇입니까?

 

(A)~⑴.이는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大祭司長職)이 레위 계통(系統)의 대제사장직 직분(職分)보다 월등(越等)하게 탁월(卓越)하다는 의미다. 실제로 인류의 죄를 완전히 속량(贖良)하신 그리스도의 제사장직(祭司長職)과 인간의 죄 문제를 완전히 해결(解決)하지 못하여 반복(反復)해서 속죄(贖罪) 제사를 드려야 했던 레위 계통의 제사장직은 그 탁월성(卓越性)에 있어서 비교(比較)가 되지 못한다(7:26-28).

 

⑵.외적(外的)인 아름다움이 아닌 직능(職能)의 탁월성(卓越性)을 의미(意味)한다.

이는 그리스도가 레위 계통(系統)의 대제사장직(大祭司長職)보다 월등(越等)하게 탁월(卓越)하다는 의미(意味)다. 실제로 인류의 죄를 완전히 속량(贖良)하신 그리스도의 제사장직(祭司長職)과 인간의 죄 문제를 완전히 해결(解決)하지 못하여 반복(反復)해서 속죄제사(贖罪祭祀)를 드려야 했던 레위 계통(系統)의 제사장직(祭司長職)은 그 탁월성(卓越性)에 있어서 비교(比較)가 되지 못한다(히 7:26-28).

 

⑶.여기서 ‘더 좋은 약속(約束)’과 ‘더 좋은 언약(言約)’은 같은 말로 (히 8:8-12절)에 언급(言及)되어 있는 하나님의 ‘새 언약’을 가리킨다. 한편, ‘중보(中保)’에 해당하는 헬라어 ‘메시테스’는 ‘중보자(仲保者)’, ‘중재자(仲裁者)’라는 뜻이다. 구약(舊約)의 대제사장(大祭司長)들은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 사이에서 백성들의 죄를 속(贖)하기 위한 중보자(仲保者) 역할(役割)을 수행(遂行)했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모든 백성들의 죄를 속하기 위한 구속(救贖) 사역(使役)을 성취(成就)하신 분으로서 하나님과 성도(聖徒)들 사이에서 성도를 위해 하나님께 친히 간구(懇求)하는 중보자가 되신다(7:22). 예수 그리스도는 ‘더 좋은 약속을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仲保者)’시다. 오늘도 하나님 보좌(寶座) 우편(右便)에서 우리를 위해 중보(中保)하시는 주님을 찬양(讚揚)한다.

 

(02월16일 (수) <새 언약(言約)에 있는 더 좋은 약속(約束)>

 

(Q)~(히브리서 8:6)에 더 좋은 약속(約束)의 의미(意味)는 ?

 

(A)~⑴. ‘중보(中保)’의 헬라어 ‘메시테스’은 본서(本書)에서 언제나 ‘더 좋은 언약(言約)’ 혹은 언약이 새 중재자(仲裁者)를 요구(要求)하기 때문이다. 한편 ‘더 좋은 약속(約束)으로’에 해당(該當)하는 헬라어 ‘에피 크레이트토신에팡겔리아이스’에서 ‘에피’는 ‘ … 의 근거 위에’라는 의미이다(Robertson). 이것은 아론 계통(系統)의 대제사장(大祭司長)들과 맺은 언약(言約)보다 ‘더 좋은 언약(言約)’이 더 좋은 약속(約束)을 근거(根據)로 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이 ‘약속(約束)’의 내용은 (히 8:10-12절)에서 인용(引用)되고 있는 (렘 31:31-34)이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완전(完全)한 순종(順從)의 삶과 죽음을 통해서 (렘 31:31-34)에 예언(豫言)된 새로운 언약(言約)의 시대(時代)를 여셨다(Lane). 새 언약은 과거(過去)에 맺었던 옛 언약과는 비교될 수 없는 새로운 차원(次元)의 언약으로 예수께서 지상(地上)에서 십자가(十字架)를 통해 이루신 구원(救援) 사역(使役)에 의해서 성취(成就)되었다.” (히 8:6, 만나주석)

 

⑵.구약시대(舊約時代)의 토지(土地)나 자식(子息)과 같은 세상적(世上的) 약속(約束)에 비해 신약시대(新約時代)의 예수님의 순종(順從)은 하나님의 언약적(言約的) 약속(約束)이 성취(成就)될 것임을 보증(保證)해주며 예수님 안에 있는 모든 자(者)들은 주님과 함께 그 약속(約束)들을 누리게 될 것이며 또한 신령한 축복(祝福)의 영적(靈的) 약속(約束)도 포함된다. 

 

(02월17일 (목) <새 언약(言約)이 마음의 문제(問題)를 해결(解決)함>

 

(Q)~(예레미야 31:33절)과 에스겔 36:26~27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새 언약(言約)의 약속(約束)에 대하여 어떻게 적용(適用)하는 것이 정답(正答)일까요?

 

(A)~⑴.첫 번째 언약(言約)의 문서(文書)는 하나님께서 친히 돌판(석비(石碑))에 기록(記錄)하셨고 백성(百姓)들과 맺으신 언약(言約)의 증거(證據)로 언약궤(言約櫃)에 보관(保管)되었다( 출 31:18, 신 10:1~4) 그런데 문제는 돌판에 새겨진 언약(言約)은 깨질 수도 있으며 찢겨지거나 불태워지거나 도난(盜難)이나 분실(紛失)을 당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⑵.그러나 새 언약(言約)에서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법(法)을 사람들 마음 판(심비(心碑))에 새기실 것이다.(렘 17:1) 즉 마음은 기억(記憶)과 이해(理解)를 관장(管掌)하는 곳으로(렘3:15, 신29:4) 특히 의식적(意識的)인 결정(決定)을 내리는 곳을 지칭(指稱)한다.(렘 3:10, 29:13)

그러므로 참된 순종(順從)은 사랑의 표현으로서 마음에서부터 시작(始作)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성령(聖靈)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부어주시며(롬 5:5) 성령(聖靈)의 임재(臨在)는 사랑으로 표현(表現)이 되므로 (갈 5:22) 새 언약(言約)이 우리들의 마음의 문제(問題)를 해결(解決)해 주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랑의 울타리인 율법(律法)에 순종(順從)하므로 하나님을 향(向)한 우리의 사랑을 나타내시기를 하나님께서는 원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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