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과 가인과 그의 유산 - (핵심 Q&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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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봉주 작성일22-04-12 02:41 조회3,768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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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과 가인과 그의 유산(遺産)
2022년 (04월16일 (안)/일몰: 19시08분)
(04월10일(日) <가인과 아벨>
(Q)~.(창세기 4:1~2절) 가인과 아벨의 이름의 뜻은 무엇이며 그 이름에 담긴 아담과 하와의 소망(所望)은 무엇이었습니까?
(A)~⑴. <가인> ㉮."소유(所有)" 라고 하는 뜻이다.
이는 하와가 그를 낳고 기쁨과 감사와 벅찬 기대를 가지고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도다." 고 말했기 때문이다. (창 4:1~2, 매튜헨리)
.㉯.히브리어 ‘카인’은 ‘얻다, 소유(所有)하다’라는 뜻의 동사 ‘카나’에서 유래(由來)한 단어(單語)로서 아담과 하와가 아들을 ‘얻은’ 기쁨이 얼마나 컸는지를 짐작케 하는 이름이다. 하지만 가인은 인류역사(人類歷史)의 첫 살인자(殺人者)가 되었고, 그것도 친동생(親同生)을 살해(殺害)한 무도(無道)한 범죄(犯罪)의 장본인(張本人)이 되었다. 죄의 세상에서 사람이 얻는 것이 얼마나 허무(虛無)하고 무익(無益)하고 비참(悲慘)한 결과(結果)를 초래(招來)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실물교훈(實物敎訓)이라 할 수 있다.
가인은= 대장장이, 획득(獲得), 소유(所有), 얻었다는 의미(意味)이며,
아벨은= 생기(生氣), 숨, 호흡(呼吸), 공허(空虛), 증기(蒸氣)라는 의미(意味)이다
⑵. <아벨> ㉮."공허(空虛)" 란 뜻이다.
‘아벨’은 히브리어로 ‘헤벨’이고, 그 뜻은 ‘호흡(呼吸), 안개, 헛됨, 허무(虛無)’이다. 전도자(傳導者)가 외친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 1:2)라는 말에서 ‘헛되다’라는 단어(單語)는 모두 히브리어로 ‘헤벨’이다. ‘아벨’이라는 이름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들은 별 느낌이 없겠지만, 히브리인들이 ‘헤벨’이라는 이름을 부르거나 일컬을 때는 그 단어(單語)의 의미(意味)와 아벨의 ‘허무(虛無)한’ 삶 또는 ‘안개’ 같이 사라져 버린 꿈이 함께 겹쳐서 떠오를 것이다.(창 4:1~2, 만나주석)
⑶. <이름에 담긴 아담과 하와의 소망(所望)은?>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得男)하였다)
히브리어를 문자적(文字的)으로 읽으면 “내가 남자(男子), 곧 여호와를 얻었다”이다. 하와가 자신(自身)의 첫 아기를 팔에 안았을 때, 분명(分明) (창3:15)의 하나님의 약속(約束)을 기억(記憶)하고, 그가 약속(約束)된 구원자(救援者)일 것이라는 희망(希望)을 마음에 품고 그의 이름을 “얻었다”는 뜻인 카인(Qayin)이라고 지었다(소망, 31). 얼마나 절망적(絶望的)인 희망(希望)인가! 복음(福音)의 약속(約束)의 신속(迅速)한 성취(成就)에 대한 그녀의 열렬(熱烈)한 갈망(渴望)은 가장 쓰라린 실망(失望)을 당할 운명(運命)에 처(處)해 있었다. 그녀는 바로 이 아이가 세상(世上)의 최초(最初)의 살인자(殺人者)가 되리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창 4:1~2, 재림교주석)
<日 요약>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아담과 하와는 고달픈 삶 가운데서 하나님의 약속(約束)의 성취(成就)를 고대(苦待)하면서 하나님의 예언(豫言)에 따라 아들의 소망(所望)을 두고 약속(約束) 된 첫 아들인 가인이 메시아가 될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결과(結果)는 첫 아들 가인은 살인자(殺人者)가 되었다. 하나님의 듯에 반하여 하나님 없이 세워지거나 만들어진 모든 것들은 결국(結局)에 다 사라질 것이다.
(04월11일(月) <두 종류(種類)의 제물(祭物)>
(Q)~(창세기4:1~5, 히브리서11:4)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물(祭物)은 받으시고 가인의 제물(祭物)은 거절(拒絶)하신 이유(理由)는 무엇입니까?
(A)~⑴.<헌물(獻物)이면 마땅히 피를 뿌려야 함>
하나님께 드리는 모든 헌물(獻物)에서 우리는 한 크신 선물(膳物)을 인정(認定)해야 한다.
그것만이 우리의 봉사(奉仕)를 그분이 받으실만한 봉사(奉仕)가 되게 한다. 아벨이 그의 양떼의 첫 새끼를 드릴 때 하나님을 그의 현세적(現世的) 축복(祝福)을 주시는 분으로만 아니라 구주(救主)를 주신 분으로 인정(認定)하였다. 아벨의 헌물(獻物)은 그의 최선(最善)의 것을 선별(選別)한 것이었다.
그러나 가인은 땅의 소산(所産)만을 가져 왔었고, 주께서는 그것을 받지 않으셨다.
그 헌물(獻物)에는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이 표현(表現)되어 있지 않았다.
우리의 모든 헌물(獻物)들에는 마땅히 속죄(贖罪)의 피가 뿌려져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 값을 주고 사신 그의 소유물(所有物)로서 우리 자신을 그분께 드려야 한다. (리뷰 1896. 11. 24).
⑵.희생제사(犧牲祭祀) 제도(制度)는 인간이 동산(東山)에서 추방(追放)되었을 때에 하나님이 소개(紹介)하였다(부조와 선지자, 68 71).
연속(連續)되는 구절(句節)들에는 가인이 하나님께 드린 그런 종류(種類)의 예물(禮物)을 가져옴으로 자신이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음이 분명(分明)히 나타난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의 피가 그의 죄를 속(贖)할 것이라는 가르침을 받았다. 그의 죄를 위해 어린양을 희생(犧牲)시키는, 하나님이 정한 규칙(規則)을 따름으로 그는 희생제도(犧牲制度)를 제정(制定)한 하나님에게 충성(忠誠)을 나타내 보이며 구속(救贖)의 계획(計劃)에 대한 믿음(히 11:4)을 표현(表現)할 것이었다. 희생제사(犧牲祭祀)가 고대(古代) 백성들 가운데 전반적(全般的)으로 유행(流行)한 것은 그것들의 기원(起源)이 인간의 고안(考案)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법도(法道)에 있음을 지적(指摘)해 준다(참조 시대의 소망, 28).
⑶.무엇 때문에 가인의 예물(禮物)은 하나님에게 가납(嘉納)될 수 없었는가?
그는 자신에게 부과(賦課)된 하나님의 요구(要求)를 부분적(部分的)으로 마지못해 인정(認定)하였다.
그러나 분개(憤慨)와 반역(叛逆)의 은밀(隱密)한 정신(精神)이 하나님이 정한 계획(計劃)을 정확(正確)하게 따르기보다는 그 자신이 선택(選擇)한 방법(方法)으로 하나님의 요구(要求)를 충족(充足)시키도록 자극(刺戟)하였다.
표면(表面)상 응(應)하기는 했으나, 그의 응낙(應諾) 태도(態度)는 도전적(挑戰的)인 정신(精神)을 나타냈다. 가인은 자신의 행위(行爲)에 의하여 그 자신을 정당화(正當化)시키려고, 곧 자신의 공로(功勞)로 말미암아 구원(救援)을 얻으려고 시도(試圖)하였다. 자신은 구주(救主)가 필요한 죄인(罪人)임을 인정(認定)하기를 거부(拒否)함으로써, 그는 죄에 대해 아무런 회개(悔改)도 표현(表現)되지 않은 선물(膳物), 곧 피가 없는 예물(禮物)을 드렸다. “피 흘림이 없은즉 사(赦)함이 없느니라.(히 9:22; 레 17:11; 부조와 선지자, 71 72).
⑷.가인은 하나님의 존재(存在)와 세상적(世上的)인 복(福)을 줄 수도 있고 거둘 수도 있는 그분의 능력(能力)을 인정(認定)하였다.
하나님과 좋은 관계(關係)를 유지(維持)하며 사는 것이 유익(有益)하다고 느낀 가인은, 비록 마지못해 바칠지라도 예물(禮物)로써 하나님의 진노(震怒)를 가라앉히거나 돌리는 것이 편리(便利)하다고 여겼다.
참된 순종(順從)과 마음의 회개(悔改)의 대용(代用)으로서, 하나님의 명백(明白)한 요구(要求)에 대한 부분적(部分的)이고 형식적(形式的)인 응낙(應諾)은 그분의 은총(恩寵)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그는 깨닫지 못했다. 오늘날 우리는 가인처럼 하나님께 드린 예물(禮物)이 가치(價値) 없고 가납(嘉納)될 수 없는 것이 되지 않도록 자신의 마음을 잘 살펴야 한다. (창 4:3~5, 재림교주석)
⑸.<아벨의 양(羊)의 첫 새끼.>
“첫 새끼”라는 말은 아벨이 그의 양 중에서 처음 난 것을 가져 왔음을 가리킨다(참조 출 13:12). 모세가 발표한 희생(犧牲) 의식(儀式)은 초태생(初胎生)의 짐승의 피를 제단(祭壇) 위에 뿌리고 그 기름을 불에 태울 것을 요구(要求)하였다(민 18:17). 아벨의 제물(祭物)은 믿음의 표현(表現)이었다(히 11:4). 대조적(對照的)으로 가인의 제물(祭物)은 행위(行爲)로 말미암아 구원(救援)을 얻으려는 시도(試圖)였다.
아벨의 경우(境遇)처럼, 구원(救援)의 계획(計劃)과 그리스도의 속죄(贖罪)의 희생(犧牲)을 믿는 믿음은 의심(疑心)하지 않는 순종(順從)을 통해 그 자체(自體)를 드러낸다.
⑹.하나님이 아벨의 제물(祭物)을 가납(嘉納)한 것이 그의 인격(人格)을 가납(嘉納)한 증거(證據)라는 사실은 주목(注目)할만 한 가치(價値)가 있다. 실제(實際)로 이야기 중에서도 아벨 자신을 가납(嘉納)한 사실이 그의 제물(祭物)을 가납한 사실에 앞서 언급(言及)된다. 이것은 하나님이 제물(祭物)보다는 그것을 가져온 사람에게 더 관심(關心)이 있었음을 나타내는 암시이다. (창 4:3~5, 재림교주석)
⑺. <첫 새끼. 두 가지 복합적(複合的) 의미(意味)를 지닌다.>
(1) 아벨이 거둔 첫 소산(所産)이란 점에서, 가장 귀(貴)한 것을 구별(區別)하여 하나님께 바쳤다는 의미(意味)를 지닌다(출 13:2).
(2) 희생제물(犧牲祭物)이란 점에서, 인간(人間)을 구속(救贖)하시기 위하여 산 제물(祭物)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豫表)한다.
<(月) 요약>
.<가인과 아벨의 차이(差異)>
가인과 아벨의 차이(差異)는 제물(祭物)의 차이(差異)가 아닌 믿음의 차이(差異)로,
아벨은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態度)나 마음의 차이(差異)(가르침에 순종(順從)하여 동물(動物)의 피를 제물(祭物)로)드렸으며
가인은 자기의 노력(努力)으로 얻은 땅의 소산(所産)만을 제물(祭物)로 바침으로 공개적(公開的)인 불순종(不順從)의 제물(祭物)을 삼아 제사(祭祀)를 드렸다(창 4:3-4).
(04월12일(火) <범죄(犯罪)>
(Q)~(창세기4:6~7절). 하나님께서는 분노(忿怒)해 있는 가인을 찾아 오셔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으며 그 의미(意味)는 무엇이었습니까?
(A)~⑴. “네가 분(憤)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顔色)이 변(變)함은 어찜이뇨 네가 선(善)을 행(行)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⑵.<가인은 하나님에게 화(禍)낼 아무런 이유(理由)가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시험(試驗) 단계(段階)에 알맞은 정부(政府)의 법(法), 곧 불변(不變)하는 고정(固定)된 법에 따라 판결(判決)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 앞에 생명과 사망(死亡), 축복(祝福)과 저주(詛呪)를 두시고, 인간의 행동에 따라 차별(差別)하시며, 그들의 운명(運命)도 달라진다. 이 규례(規例)들은 공의(公義)로운 것이며, 하나님의 길은 이러한 법칙(法則)을 따라 공평(公平)함이 분명(分明)하며, 다음과 같이 말씀하실 때 그는 정당(正當)하신 것이다. (창 4:1, 재림교주석)
⑶.<네가 분(憤)하여 함은 어찜이며>
하나님이 사람을 에덴동산에서 추방(追放)한 때에라도 그들과 개인적(個人的)으로 접촉(接觸)하기를 그치지 않았다는 사실이 (창4:14절)과 (16절)에서처럼 여기서도 명백(明白)해진다.
가인의 제물(祭物)을 거절(拒絶)한 것은 반드시 가인 자체(自體)를 거절(拒絶)한 것을 의미(意味)하지는 않는다. 자비(慈悲)와 인내(忍耐)로 하나님은 그에게 다른 기회(機會)를 주려고 준비(準備)하고 있었다. 제물(祭物)을 거절(拒絶)함으로써 불쾌(不快)함을 분명(分明)히 표현(表現)했지만, 하나님은 그 죄인(罪人)에게 나타났으며 그릇된 길에서 그를 돌이키고 그의 분노(忿怒)의 부당(不當)함을 설득(說得)하기 위한 시도(試圖)로 그와 의논(議論)하였다. 가인의 마음문 앞에 야수(野獸)처럼 웅크리고 있던 것을 밖으로 끌어내기 위해 하나님은 고집(固執)스런 아이에게 하듯 가인에게 말했다. 이 질문(質問)은 가인이 분노(忿怒)할 근거(根據)가 없음을 스스로 인정(認定)하도록 하기 위하여 의도(意圖)되었다. 그의 제물(祭物)을 거절(拒絶)한 데에는 분명(分明) 타당(妥當)한 이유(理由)가 있었으므로, 그는 그것을 찾아내 제거(除去)해야 하였다. (창 4:6, 재림교주석)
⑷.<하나님은 모든 행동(行動)을 주목(注目)하고 계심>
주께서는 가인이 분(憤)내는 것과 안색(顔色)이 변(變)하는 것을 보셨다. 주께서는 모든 행동(行動)을 주목(注目)해 보고 계시며 모든 의도(意圖)와 목적(目的)과 심지어(甚至於) 얼굴 표정(表情)까지도 면밀(綿密)히 보고 계신다는 것이 여기에 나타나 있다. 우리가 우리 자신(自身)의 반역적(叛逆的)인 마음의 충동(衝動)을 따를 수가 없고 우리의 의(義)롭지 못하고 성화(聖化)되지 못한 뜻을 행(行)하지 못하도록 제어(制御)함을 받을 때에 다음과 같은 주의 질문(質問)을 자신에게 해 보아야 한다. “네가 분(憤)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顔色)이 변함은 어찜이뇨”(원고 77, 1897).
<(火) 요약>
하나님께서는 분노(忿怒)한 가인을 찾아오셔서 “네가 분(憤)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顔色)이 변(變)함은 어찜이뇨 네가 선(善)을 행(行)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라는 말씀하심의 의미(意味)는 “죄(罪)를 피하기 위해 선(善)을 행할 뿐만 아니라 자제력(自制力)을 가지고 죄를 다스리라”는 의미(意味)로 말씀하셨는데 반해 가인은 사단의 지배(支配)아래에서 사단의 노예(奴隸)가 되었다. 사단은 불신(不信)과 불평(不平)과 반역(叛逆)의 조상(祖上)이다. 가인의 마음에 광기(狂氣)와 의심(疑心)을 가득 채워서 그의 죄 없는 동생(同生)과 하나님을 대적(對敵)케 하였다. 왜냐하면 그의 헌물(獻物)은 거절(拒絶)되고 아벨의 제물(祭物)은 가납(嘉納)되었기 때문이다(리뷰 1874. 3. 3).
(04월13일(水) <가인에게 내려진 형벌(刑罰)>
(Q)~(창세기 4:9~16) 동생(同生)을 죽인 가인에게 하나님께서 찾아 오셔서 던지신 질문(質問)의 중요성(重要性)은 무엇일까요?
(A)~⑴. <가인에게 내려진 선고(宣告). "네가 땅에서 저주(詛呪)를 받으리라"> (창4:11절).
㉮. 그는 저주(詛呪)를 받아 홀로 분리(分離)되어 모든 악(惡)에 속해졌고, 하나님의 진노(震怒) 아래 있게 되었다.
이는 마치 경건(敬虔)치 못하고 불의(不義)한 모든 인간(人間)에게 하늘로부터 내려진 진노(震怒)와 같다(롬 1:18). 하나님의 저주(詛呪)가 그 얼마나 멀리까지 미치는지, 그 얼마나 깊이 꿰뚫을 것인지, 그 범위(範圍)와 무게를 누가 알랴?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저주(詛呪)를 선포(宣布)하시면, 그 사람은 그대로 된다. 이는 하나님께서 저주(詛呪)하시는 자마다 참으로 저주(詛呪)를 받기 때문이다. 아담의 불순종(不順從)에 대한 저주(詛呪)는,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으리라" 는 것으로 한정(限定)되었지만, 가인의 반역(叛逆)에 대한 저주(詛呪)는 즉각적(卽刻的)으로 그 자신에게 임(臨)하여, "네가 저주(詛呪)를 받으리라" 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는 긍휼(矜恤)의 여유(餘裕)를 두셨지만, 가인에게는 아무것도 두지 않으신 것이다. 우리는 모두 이 같은 저주(詛呪)를 받아 마땅하지만, 신자(信者)들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그 저주(詛呪)에게 구원(救援)을 얻고 축복(祝福)을 이어받게 되는 것이다(갈 3:10, 13).
㉯. <그는 땅에서 저주(詛呪)를 받게 된다.
땅으로부터 아벨의 피가 하나님께 호소(呼訴)하였으니, 가인이 땅에서 저주(詛呪)를 받게 된 것이다. 하나님은 이때 천사(天使)의 칼이나 벼락으로 즉결(卽決)하지 않고 이 땅 위에 머물게 하는 길을 선택(選擇)하신다. 땅 역시(亦是) 그에게 저주(詛呪)가 되게 하신 것이다. 땅은 언제나 우리 가까이에 있다. 우리는 그 곳을 떠날 수 없다. 그러므로 땅을 하나님의 진노(震怒)의 집행(執行)자로 삼으셨다면, 우리들이 심판(審判)을 피할 길이 없는 것이다. 즉 그것은 죄의 벌(罰)이 문 앞에 엎드려 있는 것이다. 가인은 자기의 분깃으로 삼고 마음에 둔 곳에서 벌(罰)을 받게 됐다. 이 저주(詛呪) 때문에 가인은 땅에서 바랄 수 있는 두 가지, 즉 먹을 것과 거(居)할 곳을 모두 박탈(剝奪)당했다.
<水 요약>
가인이 받은 형벌(刑罰)은 ①.그의 생존(生存)의 기본(基本) 토대였던 땅에서 추방(追放)당한 것과 ②.땅 자체(自體)가 생산능력(生産能力)을 더 이상 풍성(豊盛)하게 베풀지 않는 다는 것이다. 이것은 가인에 대한 형벌(刑罰) 집행권(執行權)을 땅에 전가(轉嫁)시킨 경우(境遇)인데 그 이유(理由)는 땅이 억지(抑止)로 무죄(無罪)한 자의 피를 삼켰으므로 그 살인자(殺人者)에게 열매 내주기를 거절(拒絶)했다는 뜻이요, 자기에게서 그 살인자(殺人者)를 토(吐)해내겠다는 뜻이다. 대지(大地)를 인간(人間)의 고향(故鄕)이요 어머니의 품과 같은 곳으로 생각했던 고대인(古代人)의 사상(思想)에 비추어 볼 때 인간(人間)과 대지(大地)의 유대(紐帶)성이 완전히 파괴(破壞)된 이 형벌(刑罰)은 (창3:17절) 이하(以下)에 기록(記錄)된 아담의 형벌(刑罰)보다 훨씬 더 무거운 형벌(刑罰)이다.
비록 가인은 죄로 인하여 하나님에게서 분리(分離)된 자가 되었지만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자비(慈悲)와 은총(恩寵)으로 가인을 보호(保護)하는 보증(保證)의 표(表)를 허락(許諾)하셨다.
(04월14일(木) <사람의 악(惡)함>
(Q)~(창세기 4:17~24). 가인의 유산(遺産)은 무엇이었으며 가인의 범죄(犯罪)가 인류(人類)에게 끼친 영향(影響)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A)~⑴.세속적(世俗的)인 것들은 육욕적(肉慾的)이고도 악(惡)한 사람들이 마음을 쏟고 창안(創案)해 내며 부지런히 경영(經營)하는 유일(唯一)한 것들이다. 저주(詛呪)받은 가인의 신앙(信仰) 없는 자손(子孫)들이 그러했다. 여기에 양(羊)치는 자의 조상(祖上)이 있고 음악가(音樂家)의 조상(祖上)이 있었기는 하지만, 충성(忠誠)스러운 믿음의 조상(祖上)은 없었던 것이다. 동(銅)과 철(鐵)에 대해서 가르칠 사람은 있었으나 여호와의 선(善)한 지식(知識)을 가르칠 자는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또한 부귀(富貴)해지고 강대(强大)하여지며, 유쾌(愉快)해지는 책략(策略)은 있어도 하나님에 관한 것과 또한 그를 두려워하고 섬기는 지혜(智慧)는 그들에게는 전혀 없었던 것이다. 현세적(現世的)인 것이 대부분(大部分)의 사람들의 머리에 가득 차 있다.(창 4:17~24, 재림교주석)
⑵.<가인의 자손(子孫)들>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후 7-8세기(世紀)가 흐르는 동안 타락(墮落)한 가인의 자손(子孫)들이 나름대로의 죄악(罪惡)된 문화(文化)를 발전(發展)시키면서 급속(急速)히 불어나는 과정(過程)을 볼 수 있다. 본문(本文)에 나타난 가인의 자손(子孫)들의 죄(罪)된 문화(文化)는
①.그들의 이름을 통해서 알 수 있다. 라멕(힘센 자), 아다(꾸민 자), 씰라(딸랑거리는 자), 등의 이름은 당시대(當時代)의 폭력(暴力)상과 세속적(世俗的) 미(美)를 추구(追求)하는 타락(墮落)상을 대변(代辨)하는 이름들이다.
②.글들이 한 일을 통해 알 수 있다.: 성(城)을 쌓고, 강철(鋼鐵) 무기(武器)와 악기(樂器)를 만드는 행위(行爲)는 정복(征服)과 압제(壓制) 그리고 향락적 생활(享樂的生活)을 가리키는 말들이다.
③.그들의 제도(制度)를 통해 알 수 있다.:본문(本文)은 근친결혼(近親結婚)과 일부다처(一夫多妻)제도(制度)가 성행(盛行)했다는 사실들은 죄악(罪惡)을 세상에 가득하게 하는 것들을. 보여준다.
<木 요약>
⑴.하나님의 교회(敎會)와 그 계율(戒律)을 떠나는 자들은 스스로 온갖 유혹(誘惑)에 빠지게 된다.
⑵.나쁜 습성(習性)이 악(惡)한 자들에게서 시작(始作)되면, 때로는 선량(善良)한 자들도 방심(放心)으로 악(惡)한 자들을 따르게 된다. 후(後)에 야곱이나 다윗, 그리고 그 외(外)의 많은 사람들도, 그런 일이 없었더라면 선(善)한 사람들이었을 것이나, 라멕이 먼저 빠졌던 이 죄의 함정(陷穽)에 빠지고 말았다. 이러한 죄악(罪惡)들 가운데에서도 양심(良心)의 가책(呵責)을 느끼지 않았으며 그들의 죄악(罪惡)을 갈수록 더 깊고 심각(深刻)해저 갔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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