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과 히브리서의 기별(질문, 답변, 추가설명 2022.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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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2-01-01 01:48 조회5,940회 댓글0건본문
제2과 히브리서의 기별
(1월 8일 안식일 / 일몰: 오후 5시 30분)
연구 범위: 히 1:5~14, 눅 1:30~33, 시 132:1~5, 히 2:14~16, 히 5:1~4, 벧전 2:9, 히 8:8~12
기억절: “지금 우리가 하는 말의 요점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라 그는 하늘에서 지극히 크신 이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히 8:1).
히브리서가 기록된 지 수십 년이 지난 A.D. 100년에 기록된 유대인 문서에는 다음과 같은 기도문이 수록되어 있다. “주님, 당신께서 우리를 위해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말씀하셨기에 당신 앞에 이 모든 것을 아뢰었습니다.…주님, 이제 우리를 압제하고 집어삼키는 이 나라들을 보시옵소서. 당신께서 당신의 장자라고 부르신 하나뿐인 자녀, 당신을 향한 열정으로 가득 찬, 당신에게 가장 사랑스러운 백성 된 우리가 그들의 손에 넘겨졌나이다”(The Old Testament Pseudepigrapha, vol. 1, Hendrickson Publishers,1983, 536).
히브리서의 독자들 또한 이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만일 그들이 정말 하나님의 자녀라면 왜 이와 같은 고난을 겪어야 하는 것인가?
그래서 바울은 시련 가운데 있는 신자들의 믿음을 굳세게 하기 위해 히브리서를 기록했다. 그는 고난 가운데 있는 신자들에게(그리고 우리에게) 아버지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며, 우리를 곧 집으로 데리고 가실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약속들이 성취될 것임을 상기시켜 주었다. 그날이 이르기까지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중보하셔서 우리가 아버지의 축복으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인도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끝까지 우리의 믿음을 굳건히 붙들어야 한다.
*학습 목표
- 깨닫기
우리의 구원을 위해 예수님께서 감당하신 다양한 사역들을 이해한다.
- 느끼기
여러 가지 역할과 모습으로 우리의 구원을 위해 일하시는 예수님께 감사한다.
- 행하기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 되시는 예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간다.
TMI 위로
2. 히브리서 1:5~14에 묘사된 모습은 무엇을 설명하고 있는 것일까요?
※ 창조주, 왕, 제사장이 되심을 설명하고 있다.
3.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한 축복의 중보자가 되실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 창조주시며 제사장이시기 때문이다.
4. 히브리서 2:14~16은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묘사하고 있습니까?
※ 사람이 되셔서 사망으로 사망의 세력을 잡은 마귀를 멸하시고 사망에 매인 사람들을 사망에서 해방시키신 분으로 묘사한다.
5. 제사장은 어떤 기능들을 감당하는 직분이었습니까?(히 5:1~4)
※ 백성을 위하여 속죄하는 직무인데 하나님께서 임명하시는 직분이다.
6.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한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가 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히 8:1~13)
※ 그분이 새 언약을 성취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결론
히브리서는 예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 취하신 여러 가지 모습들을 보여 줍니다. 예수님은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왕이시며 신실하신 중재자이실 뿐 아니라 원수의 공격으로부터 우리를 지키시는 옹호자이시며 우리를 위해 섬기는 대제사장이십니다. 우리를 위한 예수님의 다양한 사역은 우리로 하여금 구원의 확신을 갖게 합니다.
1월 2일(일) 우리의 왕이신 예수님
히브리서의 요점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 통치자라는 것이다(히 8:1). 예수님은 하나님이신 분으로서 항상 온 우주의 통치자이셨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었을 때, 사탄이 이 세상의 통치자가 되어 버렸다(요 12:31, 14:30, 16:11). 하지만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사탄의 권세를 물리치심으로 누구든지 그분을 구주로 영접하는 자들을 다스릴 권리를 되찾으셨다(골 2:13~15). 히브리서의 첫 두 장은 왕의 자리에 오르시는 예수님의 즉위식에 집중한다.
히브리서 1:5~14을 읽어 보라.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히1:5~14]하나님께서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 하셨으며 또 다시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라 하셨느냐 6 또 그가 맏아들을 이끌어 세상에 다시 들어오게 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든 천사들은 그에게 경배할지어다 말씀하시며 7 또 천사들에 관하여는 그는 그의 천사들을 바람으로, 그의 사역자들을 불꽃으로 삼으시느니라 하셨으되 8 아들에 관하여는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는 영영하며 주의 나라의 규는 공평한 규이니이다 9 주께서 의를 사랑하시고 불법을 미워하셨으니 그러므로 하나님 곧 주의 하나님이 즐거움의 기름을 주께 부어 주를 동류들보다 뛰어나게 하셨도다 하였고 10 또 주여 태초에 주께서 땅의 기초를 두셨으며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 바라 11 그것들은 멸망할 것이나 오직 주는 영존할 것이요 그것들은 다 옷과 같이 낡아지리니 12 의복처럼 갈아입을 것이요 그것들은 옷과 같이 변할 것이나 주는 여전하여 연대가 다함이 없으리라 하였으나 13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느냐 14 모든 천사들은 섬기는 영으로서 구원 받을 상속자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냐.
답: 예수님의 신분에 관하여 장엄하게 묘사하였다. 그분은 창조자시며 피조물의 관리자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하나님이시고 장차 재림하실 분이시며(1:6) 천사들의 경배를 받으시는 분이라고 선언하였다.
이 본문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각각의 부분은 아들의 즉위식의 한 면을 보여 준다. 첫째,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왕의 아들로 취임시키신다(히 1:5). 둘째, 하나님께서 아들을 하나님께 경배하는 이들로 가득한 하늘 궁정에 소개하시며(히 1:6, 8) 아들의 영원한 창조주 되심과 통치권을 선포하신다(히 1:8~12). 셋째,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좌에 앉히시는데 이는, 그에게 지구를 다스릴 권한을 공식적으로 수여하는 것이다(히 1:13, 14).
신약에 나타나는 가장 중요한 믿음 중의 하나는 바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그가 다윗에게 허락하신 약속들을 성취하셨다는 것이다(참조, 삼하 7:8~16, 눅 1:30~33). 예수님께서는 다윗의 동네에서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나셨다(마 1:1~16, 눅 2:10, 11). 그분의 사역 기간 동안 사람들은 그분을 “다윗의 아들”이라 불렀다. 그분은 자신을 가리켜 “유대인의 왕”(마 27:37)이라고 주장했다는 이유로 처형당하셨다. 베드로와 바울은 예수님께서 다윗에게 허락된 약속의 성취로 죽음에서 살아나셨다고 설교했다(행 2:22~36, 13:22~37). 그리고 요한은 예수님을 가리켜 “유대 지파의 사자”라고 이야기했다(계 5:5).
물론 히브리서 또한 이와 같은 주장을 확인한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 안에서 다윗에게 주신 약속을 이루셨다. 하나님께서 그분에게 위대한 “이름”(히 1:4)을 주셨고, 그분을 자신의 아들로 즉위시키셨으며(히 1:5), 그분을 창조자요 주라고 확증하셨으며(히 1:8~12), 그분을 자신의 “우편”에 앉히셨다(히 1:13, 14). 그뿐만 아니라, 히브리서 4장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하나님의 안식으로 이끄시며, 우리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집을 지은 분이심을 기억하게 된다(히 3:3, 4). 그러므로 예수님은 강탈자 사탄과의 싸움 중에 있는 이 지구의 정당한 통치자이시다.
<묵상>
예수님께서 온 우주의 통치자 되심을 아는 것이 시련 가운데서 우리에게 어떻게 위로가 되나요?
답: 그 모든 시련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다스리시는 분이 우리의 구주이시기 때문에 승리가 보증된 것을 확신할 수 있다.
<부가설명> 히브리서 1장은 구약 시대의 끝에 세상에 오신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소개한다. 성경은 그분이 창조주시며 모든 피조물을 관리하시며 하나님의 아들로 임명되시고 왕으로 즉위하신 분이시다(시2:6,7의 성취). 그분은 사람이 되셨기 때문에 이 지구 모든 구원받은 사람들의 맏아들의 자리를 차지하셨다. 원래는 아담이었으나 그가 사탄에게 굴복하므로 그 지위를 잃었다. 그래서 마지막 아담으로 오신 예수님이 그 자리를 회복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그분을 이끌어 세상에 다시 오실 것이다. 곧 재림하실 것이다. 그때 모든 천사가 경배한다. 그분은 영원한 보좌에 앉으시고 지구만이 아니라 온 우주를 통치하신다. 그리고 천사들은 그분의 통치를 받는 구원받은 사람들을 섬기는 일을 수행할 것이다. 지금도 천사들은 그 일을 하고 있다. 여호와의 사자들이 주를 경외하는 자들을 둘러 진 치고 건지신다(시34:7). 히브리서의 서론은 요한복음 1장 서론부(요1:1~18)만큼이나 장엄하다. 그분이 구원받은 모든 사람의 맏형님이시다. 그래서 그분은 우리를 형제라고 부르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신다(히2:11,12). 우리는 이런 계시와 약속에 의하여 용기를 가지고 이 악한 세상에서 주님의 일꾼으로 충성할 수 있다. 감사가 충만하면 충성이 분명하게 나타난다. 세상에서도 보스에게 은혜를 많이 입은 부하들은 보스가 불의한 짓을 했을 때 그것을 불기보다는 죽음을 택하는 것을 오늘도 보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하믈며 우리를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도록 하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그 고귀한 몸을 희생하시고 부활하신 주님께 충성하지 못하겠는가? 우리는 평소에 얼마나 감사하며 찬양하며 생활하는가? 생각하지 참 부끄럽기 그지없다. 주님 용서해주소서.
<교훈>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해 죄로 인해 사탄에게 빼앗겨 버린 지구에 대한 통치권을 되찾으신 왕으로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
1월 3일(월) 우리의 중보자이신 예수님
구약 신학의 흥미로운 개념은 약속된 다윗 혈통의 왕이 하나님 앞에서 그분의 백성들을 대표한다는 것이다.
출애굽기 4:22, 23을 사무엘하 7:12~14과, 신명기 12:8~10을 사무엘하 7:9~11과, 신명기 12:13, 14을 시편 132:1~5, 11~14과 비교해 보라. 약속된 다윗 혈통의 왕을 통해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어떤 약속이 성취될 것이었는가?
[출4:22,23] 너는 바로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 23 내가 네게 이르기를 내 아들을 보내 주어 나를 섬기게 하라 하여도 네가 보내 주기를 거절하니 내가 네 아들 네 장자를 죽이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니라.
[삼하7:12~14]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13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14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신12:8~10] 우리가 오늘 여기에서는 각기 소견대로 하였거니와 너희가 거기에서는 그렇게 하지 말지니라 9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시는 안식과 기업에 아직은 이르지 못하였거니와 10 너희가 요단을 건너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에 거주하게 될 때 또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너희 주위의 모든 대적을 이기게 하시고 너희에게 안식을 주사 너희를 평안히 거주하게 하실 때에,
[삼하7:9~11] 네가 가는 모든 곳에서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원수를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땅에서 위대한 자들의 이름 같이 네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어 주리라 10 내가 또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한 곳을 정하여 그를 심고 그를 거주하게 하고 다시 옮기지 못하게 하며 악한 종류로 전과 같이 그들을 해하지 못하게 하여 11 전에 내가 사사에게 명령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때와 같지 아니하게 하고 너를 모든 원수에게서 벗어나 편히 쉬게 하리라 여호와가 또 네게 이르노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짓고,
[신12:13,14] 너는 삼가서 네게 보이는 아무 곳에서나 번제를 드리지 말고 14 오직 너희의 한 지파 중에 여호와께서 택하실 그 곳에서 번제를 드리고 또 내가 네게 명령하는 모든 것을 거기서 행할지니라.
[시132:1~5, 11~14] 여호와여 다윗을 위하여 그의 모든 겸손을 기억하소서 2 그가 여호와께 맹세하며 야곱의 전능자에게 서원하기를 3 내가 내 장막 집에 들어가지 아니하며 내 침상에 오르지 아니하고 4 내 눈으로 잠들게 하지 아니하며 내 눈꺼풀로 졸게 하지 아니하기를 5 여호와의 처소 곧 야곱의 전능자의 성막을 발견하기까지 하리라 하였나이다/ 11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성실히 맹세하셨으니 변하지 아니하실지라 이르시기를 네 몸의 소생을 네 왕위에 둘지라 12 네 자손이 내 언약과 그들에게 교훈하는 내 증거를 지킬진대 그들의 후손도 영원히 네 왕위에 앉으리라 하셨도다 13 여호와께서 시온을 택하시고 자기 거처를 삼고자 하여 이르시기를 14 이는 내가 영원히 쉴 곳이라 내가 여기 거주할 것은 이를 원하였음이로다.
답: 다윗 혈통의 왕을 통하여 구약에 약속이 성취되고 그 나라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실 것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아들이었으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적들로부터 쉼을 얻을 수 있는 곳을 주실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 가운데 당신의 이름이 머물 수 있는 한 장소를 선택하실 것이었다. 이스라엘을 위한 이 약속들은 약속된 다윗 혈통의 왕을 통해 성취될 것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로 받아들여질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적들로부터의 쉼을 주실 것이었다. 또한, 그는 하나님을 위해 시온에 성전을 지음으로 하나님의 이름이 거하도록 할 것이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다윗 혈통의 왕을 통해 이스라엘에게 주신 약속을 성취하실 것이라는 뜻이었다. 다윗 혈통의 왕은 하나님 앞에서 이스라엘을 대표할 것이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백성을 대표하는 한 분이 존재함을 통해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언약 관계가 영원히 지속될 수 있게 되었다. 모세 언약은 하나님의 보호와 축복을 받기 위해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의 충성을 요구했다.(수 7:1~13). 그러나 다윗 언약은 한 사람, 곧 다윗 혈통의 왕의 충성을 통해 이스라엘을 위한 하나님의 언약적 축복을 보증했다.
불행히도 대부분의 다윗 혈통의 왕들은 하나님께 충성하지 않았으며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분께서 원하시는 만큼 이스라엘을 축복할 수 없으셨다. 구약은 하나님께 불충성한 왕들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그러나 좋은 소식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다윗의 아들로 태어나게 하셨고, 그분은 하나님께 완벽히 충성하셨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분을 통해 당신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허락하신 약속들을 성취하실 수 있다. 하나님께서 그 왕을 축복하시면 그의 모든 백성들이 축복을 나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축복의 중보자가 되시는 이유이다. 그분은 하나님의 축복이 흘러가는 통로이시기 때문에 우리를 위한 중보자이시다. 구원에 대한 우리의 궁극적인 소망은 오직 예수님과 그분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 가운데서만 찾을 수 있다.
<묵상>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한 축복의 중보자가 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답: 그분이 구약에 약속하신 다윗의 자손으로 오셔서 모든 예언을 성취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이다.
<부가설명> 다윗의 혈통으로 오시는 왕이 하나님과 당신의 백성을 연합하게 하는 중보자로서의 임무를 수행할 것을 예언하고 있는데, 히브리서는 이 사실을 조리있게 설명하고 있다. 만일 예수께서 오시지 않았으면 구약의 모든 예언과 약속은 거짓이 된다. 이스라엘과 시내산 아래서 맺은 언약은 그들이 어겼을 하나님 편에서도 그들과 맺은 언약을 파기하신다는 것을 언약의 돌비를 깨뜨리는 것으로 확증하였다. 그리고 모세에게 깨뜨린 것과 같은 돌비를 다듬어 똑 같은 언약의 말씀을 쓰시고 모세의 얼굴에 광채가 나게 하시는 것으로 그 언약이 성취될 것을 보증하셨다. 그 언약은 이스라엘 민족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취되었다. 출19:5,6의 약속은 계1:5,6과 5:9,10에서 예수님이 이루시는 것으로 계시하셨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신 약속은 예수님 안에서 성취되었다. 예수께서 애굽에 피난 다녀오신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불러내신 사실을 영적 성취라고 성경은 해석하였다(마2:14,15). 그처럼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장자라고 하신 것은 예수님이 맏아들 되심의 상징이 되었고 다윗은 예수님이 영원한 왕으로 통치하시는 사실의 상징이 되었다. 그 왕은 친히 백성을 통치하시니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는 이보다 더 적격자가 어디 있겠는가!
<교훈>
다윗의 혈통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 완전히 충성하심으로 언약의 요구를 충족시키시고 당신의 백성들을 위한 중보자가 되셨다.
1월 4일(화) 우리의 옹호자이신 예수님
사무엘상 8:19, 20과 히브리서 2:14~16을 비교해 보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왕의 조건으로 무엇을 바랐으며 그 소원들이 예수님 안에서 어떻게 성취되었는가?
[삼상8:19,20] 백성이 사무엘의 말 듣기를 거절하여 이르되 아니로소이다 우리도 우리 왕이 있어야 하리니 20 우리도 다른 나라들 같이 되어 우리의 왕이 우리를 다스리며 우리 앞에 나가서 우리의 싸움을 싸워야 할 것이니이다 하는지라.
[히2:14~16]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15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16 이는 확실히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
답: 우리 앞에 나가서 우리의 싸움을 싸울 왕으로서 예수님이 사탄을 정복하시고 사람들을 죽음의 공포에서 건지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왕 되심을 잊어버렸기 때문에 왕이 그들의 재판관이 되며 전쟁터에서 지도자가 되어 주기를 원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통치하시는 것의 완전한 회복은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졌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왕으로서 원수와의 싸움에서 우리를 인도해 주신다.
히브리서 2:14~16은 예수님을 연약한 인간들을 옹호해 주시는 분으로 묘사한다. 그리스도께서는 홀로 마귀와 싸우셔서 승리하심으로 우리를 그 속박에서 벗어나게 해 주신다. 이와 같은 묘사는 다윗과 골리앗의 전투를 떠올리게 한다. 왕으로 기름 부음 받은 후에(삼상 16장), 다윗은 골리앗을 물리치고 자기 민족을 구했다. 전쟁의 승자가 패한 백성을 종으로 삼는 것이 싸움의 조건이었다(삼상 17:8~10). 다윗은 이스라엘을 지키는 옹호자의 역할을 감당했다. 그가 이스라엘을 대표한 것이었다.
이사야 42:13과 59:15~20을 읽어 보라. 하나님께서는 여기에서 자신을 어떻게 묘사하고 계시는가?
[사42:13] 여호와께서 용사 같이 나가시며 전사 같이 분발하여 외쳐 크게 부르시며 그 대적을 크게 치시리로다.
[사59:15~20] 성실이 없어지므로 악을 떠나는 자가 탈취를 당하는도다 여호와께서 이를 살피시고 그 정의가 없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시고 16 사람이 없음을 보시며 중재자가 없음을 이상히 여기셨으므로 자기 팔로 스스로 구원을 베푸시며 자기의 공의를 스스로 의지하사 17 공의를 갑옷으로 삼으시며 구원을 자기의 머리에 써서 투구로 삼으시며 보복을 속옷으로 삼으시며 열심을 입어 겉옷으로 삼으시고 18 그들의 행위대로 갚으시되 그 원수에게 분노하시며 그 원수에게 보응하시며 섬들에게 보복하실 것이라 19 서쪽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두려워하겠고 해 돋는 쪽에서 그의 영광을 두려워할 것은 여호와께서 그 기운에 몰려 급히 흐르는 강물 같이 오실 것임이로다 20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구속자가 시온에 임하며 야곱의 자손 가운데에서 죄과를 떠나는 자에게 임하리라.
답: 무장한 용사로 나타내셨다.
히브리서 2:14~16은 하나님께서 홀로 이스라엘을 구해 내실 것임을 암시한다. 이사야에 기록된 이 말씀을 보라.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용사의 포로도 빼앗을 것이요 두려운 자의 빼앗은 것도 건져낼 것이니 이는 내가 너를 대적하는 자를 대적하고 네 자녀를 내가 구원할 것임이라”(사 49:25).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종종 사탄과의 싸움에 홀로 서 있다고 생각한다. 에베소서 6:10~18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는 분명 마귀와 싸우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의 옹호자이시며 우리보다 앞서 싸우기 위해 나가신다. 우리는 그분의 군대의 일원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의 전신 갑주를 입어야 한다. 또한 우리는 결코 홀로 싸우지 않음을 기억해야 한다. 에베소서 6장의 “너(너희)”는 복수형이다. 우리는 한 교회의 일원으로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고 우리의 옹호자 되시는 하나님 뒤에서 함께 싸우는 것이다.
<묵상>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는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다시 말해, 우리의 매일의 삶 가운데서 경험하는 여러 시험들 가운데서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힘에 의지하여 충성스럽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답: 하나님의 말씀으로 중무장하는 삶이다. 그리고 성령의 전적인 주장을 받도록 자아가 완전히 굴복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부가설명> 하나님이 우리의 옹호자(영어교과는 Champion)라고 성경이 계시한다. 예수님은 이미 승리하신 분이시다. 그래서 챔피언이시다. 우리는 그분 뒤에서 모두 승리자가 되어있다. 우리가 이기려고 바득바득 애쓸 일이 없다. 우리가 할 일은 예수께서 이기셔서 승리자가 되게 하신 그것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지키는 일이다. 사탄은 이 승리를 지키지 못하도록 사면팔방으로 공격한다. 성경은 사망은 쏘는 자라고 계시한다(고전15:55). 사탄은 승리자인 그리스도인을 향하여 불화살로 쏜다(엡6:16). 우리는 믿음의 방패로 그것을 잘 막아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고 명하신다(엡6:11). 이것은 빛의 갑옷이다(롬13:12). 이긴 자인 성도들은 빛의 갑옷이며 하나님의 전신 갑주인 갑옷을 입고 얻은 챔피언 자리를 지켜야 한다. 우리만 두지 않으시고 성령께서 함께하셔서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항상 이기도록 주장하신다. 그래서 우리는 호흡마다 순간마다 성령께 자아를 굴복해야 한다. 이렇게 지키는 것도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항상 긴장한다. 사탄이 어느 방향에서 어떤 것을 가지고 공격하는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설마 그것이 사탄의 공격이겠느냐고 생각했던 그것이 나중에 보면 사탄의 공격인 것을 알게 되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우리는 그것을 내가 죄를 지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과는 내가 죄를 지었지만, 그것은 내가 지은 것이기보다는 사탄의 공격에 내가 넘어지고 상처 입고 때를 뭍인 것이다. 일곱 번까지 그럴 수 있지만, 의인은 다시 일어난다(잠24:16). 또다시 전열을 가다듬고 갑옷을 고쳐입고 방어전에 임하게 된다. 내가 넘어진 순간에도 예수님은 여전히 챔피언이시고 성령께서는 여전히 나를 위하여 일하시기 때문이다.
<교훈>
계속해서 이어지는 원수 마귀와의 싸움에서 예수님은 우리를 대표해 싸우시는 옹호자가 되시며 그 예수님 뒤에서 함께 싸울 때 승리할 수 있다.
1월 5일(수)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님
히브리서 5~7장은 예수님의 두 번째 역할을 소개한다. 그분은 우리의 대제사장이시다. 저자는, 이 사실이 약속된 다윗 혈통의 왕인 그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시 110:4, 히 5:5, 6에 인용된 대로)이 될 것이라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한다고 설명한다.
레위기 1:1~9, 10:8~11, 말라기 2:7, 민수기 6:22~26, 그리고 히브리서 5:1~4을 읽어 보라. 제사장은 어떤 기능을 감당했는가?
[레1:1~9] 여호와께서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려거든 가축 중에서 소나 양으로 예물을 드릴지니라 3 그 예물이 소의 번제이면 흠 없는 수컷으로 회막 문에서 여호와 앞에 기쁘게 받으시도록 드릴지니라 4 그는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지니 그를 위하여 기쁘게 받으심이 되어 그를 위하여 속죄가 될 것이라 5 그는 여호와 앞에서 그 수송아지를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피를 가져다가 회막 문 앞 제단 사방에 뿌릴 것이며 6 그는 또 그 번제물의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뜰 것이요 7 제사장 아론의 자손들은 제단 위에 불을 붙이고 불 위에 나무를 벌여 놓고 8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뜬 각과 머리와 기름을 제단 위의 불 위에 있는 나무에 벌여 놓을 것이며 9 그 내장과 정강이를 물로 씻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전부를 제단 위에서 불살라 번제를 드릴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레10:8~11] 여호와께서 아론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9 너와 네 자손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는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라 그리하여 너희 죽음을 면하라 이는 너희 대대로 지킬 영영한 규례라 10 그리하여야 너희가 거룩하고 속된 것을 분별하며 부정하고 정한 것을 분별하고 11 또 나 여호와가 모세를 통하여 모든 규례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르치리라.
[말2:7] 제사장의 입술은 지식을 지켜야 하겠고 사람들은 그의 입에서 율법을 구하게 되어야 할 것이니 제사장은 만군의 여호와의 사자가 됨이거늘,
[민6:22~26]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3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되 24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25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26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히5:1~4] 대제사장마다 사람 가운데서 택한 자이므로 하나님께 속한 일에 사람을 위하여 예물과 속죄하는 제사를 드리게 하나니 2 그가 무식하고 미혹된 자를 능히 용납할 수 있는 것은 자기도 연약에 휩싸여 있음이라 3 그러므로 백성을 위하여 속죄제를 드림과 같이 또한 자신을 위하여도 드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4 이 존귀는 아무도 스스로 취하지 못하고 오직 아론과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라야 할 것이니라.
답: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재, 하나님께 사람들을 대신하여 제사 드림, 율법을 가르쳐야 함. 백성들에게 여호와의 이름으로 축복함.
제사장들은 하나님 앞에서 사람들을 대표하고 사람들과 하나님과의 관계와 하나님께 속한 모든 것들을 중재하기 위해 임명되었다. 제사장은 중보자였다. 이것은 유대, 그리스, 로마를 막론하고 어떤 제사장 제도에서나 마찬가지였다. 제사장은 우리가 하나님께 연결될 수 있도록 도와주며, 그가 하는 모든 일의 목적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보호하고 증진하기 위한 것이었다.
제사장은 사람들을 대신해 제물을 바친다.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직접 제물들을 가지고 올 수 없다. 제사장은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합당한 제물을 드릴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그것을 통해 정결함을 입고 용서를 받을 수 있는지 알고 있다.
제사장들의 또 다른 역할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율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에 대한 전문가였으며 그것들을 설명하고 적용하는 일을 맡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제사장들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축복할 책임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통해 당신께서 사람을 얼마나 사랑하고 도우시는지 전달하셨다.
그런데 우리는 베드로전서 2:9절에서 우리를 향한 특별한 말씀을 보게 된다. 이 말씀은 우리 믿는 자들을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 역할은 엄청난 특권을 암시한다. 제사장들은 성소에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오늘날 우리는 기도로써 담대하게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히 4:14~16, 10:19~23).
제사장 직분에는 엄중한 책임도 함께 부여된다. 우리는 세상을 구원하는 일에 하나님과 협력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율법과 법도를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설명해 주기를 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찬양과 선행의 제사를 바치기를 원하신다. 이 얼마나 큰 특권이며 책임인가!
<묵상>
우리가 “왕 같은 제사장”임을 진심으로 받아들인다면 우리 삶에 어떤 변화가 생길까요? 우리의 삶은 어떻게 얼마나 달라질까요?
답: 사람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도고(禱告, 중보기도)하고, 말씀의 선생노릇하며, 예수님께 허물을 사해주시도록 간구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복을 빌어주는 일을 감당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이 볼 때 그렇게 할 만하다는 인정을 받도록 생활해야 할 것이다.
<부가설명> 옛날 제사장은 백성과 하나님 사이에서 중보자 역할을 했다. 죄인들에게 보이는 중보자였다. 그러나 그때도 실제는 말씀 하나님께서 그 일을 담당하신다는 상징일뿐이었다. 만일 말씀 하나님이 사람으로 세상에 오시지 않았다면 옛 제사장의 중보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다. 그것이 진정으로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은 예수께서 세상에 오시고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으로 하늘에서 대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하시기 때문이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은 왕같은 제사장이다. 그러나 속죄를 담당하는 제사장은 아니다. 속죄는 예수께서 담당하신 것이다. 제사장으 고귀한 직무를 받은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생명없는 사람들을 이끌어 생명이신 주님께 드려서 생명을 얻게 하는 그런 중재자가 되어야 하고 성경진리를 잘 가르치는 진리의 증인과 선생의 직무를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바울은 이 제사장 직무에 관하여 이렇게 말했다.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그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심직하게 하려 하심이라”(롬15:16). 이방인 곧 불신자를 신자되게 인도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일을 수행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전도는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하는 거룩한 봉사이다.
<교훈>
예수님께서는 대제사장으로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중보자 역할을 하고 계신다. 모든 믿는 자들 또한 세상에서 이와 같은 제사장의 역할을 감당하라고 부름받았다.
1월 6일(목)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 되시는 예수님
히브리서 8~10장은 새 언약의 중보자로서의 예수님의 사역에 초점을 맞춘다. 옛 언약은 단순히 앞으로 다가올 좋은 것의 예표일 뿐이었다. 옛 언약의 제도들은 예수님께서 미래에 행하실 일들을 예표하고 설명하기 위해 주어졌다. 제사장들은 예수님을 예표했으나 그들 개개인은 우리와 다름없이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죄인들이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하신 것과 같은 완전함을 제공할 수 없었다. 그들은 하늘 성소의 “모형과 그림자”(히 8:5)에 불과했던 지상 성소에서 봉사했다.
예수님께서는 참된 성소에서 봉사하고 계시며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도록 하신다. 동물을 제물로 바치는 것은 우리를 위해 제물이 되신 예수님의 죽음을 예표했으나 동물의 피는 양심을 깨끗게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예수님의 피는 우리의 양심을 깨끗하게 하며 그분을 통해, 그분을 믿는 것을 통해, 그리고 우리를 위한 그분의 중보 사역을 받아들임으로 우리는 담대히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히 10:19~22).
히브리서 8:8~12을 읽어 보라. 하나님께서 새 언약 속에서 우리에게 무엇을 약속하셨는가?
[히8:8~12]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여 말씀하시되 주께서 이르시되 볼지어다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과 더불어 새 언약을 맺으리라 9 또 주께서 이르시기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그들과 맺은 언약과 같지 아니하도다 그들은 내 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므로 내가 그들을 돌보지 아니하였노라 10 또 주께서 이르시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것이니 내 법을 그들의 생각에 두고 그들의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게 백성이 되리라 11 또 각각 자기 나라 사람과 각각 자기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주를 알라 하지 아니할 것은 그들이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라 12 내가 그들의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그들의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답: 하나님의 법을 우리 마음과 생각에 새기고 우리 하나님이 되시고 우리는 그분의 백성이 되며 우리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않으시고 모든 자가 다 하나님을 아는 자가 되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우리의 대제사장으로 임명하심으로 옛 언약이 고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을 이루어 줄 새 언약을 개시하셨다. 새 언약은 완전하고, 영원하며, 신·인(神·人) 제사장에게만 가능한 일의 성취를 약속한다. 이 대제사장은 하나님의 율법을 설명할 뿐만 아니라 그 율법을 우리의 마음에 심는다. 이 제사장은 용서를 가져오는 제물을 바친다. 이 제사장은 우리를 깨끗하게 하며 새롭게 한다. 그는 우리의 돌같이 굳은 마음을 부드러운 마음으로 변화시킨다(겔 36:26). 그는 참으로 우리를 새롭게 창조한다(고후 5:17). 이 제사장은 아버지 자신의 임재 속으로 우리를 인도함으로 가장 놀라운 방법으로 우리를 축복한다.
하나님께서는 미래에 예수님이 하실 일을 가리키기 위해 옛 언약을 주셨다. 그것은 그 자체의 모습과 목적대로 아름다웠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것의 목적을 잘못 이해했다. 상징과 그림자를 버리고 그 상징이 가리키는 진리를 받아들이기를 거절함으로 그들은 예수님의 사역이 제공하는 놀라운 유익들을 놓쳐 버렸다.
“그리스도께서는 성전의 기초요 생명이셨다. 성전의 봉사는 하나님의 아들의 희생을 표상했다. 제사장직은 그리스도의 중보의 성격과 그의 사업을 나타내기 위해 세워졌다. 희생 제도의 전체적인 계획은 세상을 구속하시기 위해 구주께서 죽으실 것을 예표하였다. 여러 세대 동안 가리켜 왔던 큰 사건이 완성되는 때에 이 제사들의 효험은 없어지게 될 것이었다”(시대의 소망, 165).
<묵상>
구약 시대의 성소 제도를 살펴보면서 그곳에 포함된 모든 봉사와 의식들이 어떻게 예수님의 사역을 예표하는지 묵상해 보십시오.
답: 성소 제도는 임마누엘이신 예수님을 예표적으로 보여주는 역할을 했다. 이 제도를 구체적으로 깨닫는 만큼 예수님을 더 구체적으로 깨닫게 될 것이다.
<부가설명> 언약은 피차 관계를 맺는 방법이다. 옛 언약이나 새 언약이나 다 하나님과 사람들이 관계를 맺는 방법으로 제시된 것이다. 옛 언약으로 관계를 맺은 이스라엘은 그 관계를 파기했다. 언야 안에 머물러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언약은 예수님이 오셔서 하나님이 그분 안에 거하시는 임마누엘이 되시므로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지으라고 하신 그 목적을 이루셨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 안에서 이 언약을 성취한 사람들이 되기 때문에 새 언약의 백성들이 되었고 그들은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이 그들 안에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법이 그들 속에 있고 빠짐없이 하나님을 아는 자들이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들 안에 거하시기 때문이다. 날마다 우리는 우리 안에 거하시는 예수님, 그분의 생명이 생활하는 대로 살아가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바울이 갈라디아서 2:20에 고백한 것이 바로 이것을 고백한 것이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자기기 산 것이 아니요 그 안에 거하시는 예수께서 나를 살아주시는 그 삶을 사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하시는 것은 할 수밖에 없고, 예수님이 하지 않는 것은 하지 않을 수밖에 없는 성전이 되는 것이다. 아멘. 이 경험이 이 한해 모든 성도들의 경험이 되도록 복주시기를 기도한다.
<교훈>
하나님께서는 더 나은 언약의 중보자 되시는 예수님을 통해 옛 언약이 이룰 수 없었던 것들을 우리를 위해 이루셨다.
1월 7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히브리서에는 긍정적이고 소망에 찬 진리들과 함께 10~12장에서 절정을 이루는 일련의 경고도 기록되어 있다. 이 부분들에는 적어도 두 가지의 공통된 요소들이 있다. 첫째, 그 말씀은 광야 세대와 히브리서 독자들을 비교한다. 둘째, 그 말씀은 우리에게 믿음을 가지라고 권면한다.
광야 세대들은 그들을 애굽에서 구해 내시면서 보여 주신 표적과 기사를 통해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목격한 자들이었다. 그들은 시내산에서 하나님께서 직접 십계명을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 그들은 밤이면 불기둥을 보았고 낮에는 그들을 보호하는 구름 기둥을 보았다. 그들은 하늘에서 내려온 만나를 먹었다. 또한, 그들은 그들이 진을 치는 곳마다 반석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마셨다. 그러나 그들은 약속의 땅 경계에 도착했을 때,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의 핵심이 되는 믿음이 부족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히 11:6).
바울은 우리 또한 광야 세대와 마찬가지로 약속의 땅 경계에 서 있다고 말한다(히 10:37~39). 하지만 우리의 특권과 책임은 더 크다. 우리는 시내산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는 못했지만, 성경 말씀을 통해 더 위대한 하나님의 계시를 보았다. 바로 인간의 몸으로 오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히 12:18~24)를 본 것이다. 이제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믿음을 가질 것인가?” 바울은 우리에게 예수님에게서 절정을 이루는 위대한 믿음의 선조들의 모본을 따르라고 격려한다.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우리는 예수님께서 마귀와의 싸움에서 우리보다 앞서 나가시는 우리의 옹호자가 되신다고 배웠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하나로 연합하여 우리의 옹호자 되시는 예수님 뒤에서 함께 싸울 수 있겠는가? 이와 같은 연합을 방해하는 것들에는 무엇이 있는가? 사탄이 우리로 하여금 연합하지 못하도록 사용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 예수님 안에 거해야 한다. 그것은 말씀이 우리를 주장하는 상태에 있는 것이다. 자아가 살아나면 연합하지 못한다. 주 안에서 자아가 죽어야 한다.
2. 믿는 자들로서 우리는 하나님의 지도 아래 있는 제사장 공동체이다. 우리 교회들이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찬양과 선행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릴 수 있겠는가?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방안을 토의해 보라.
※ 서로 토의해 보시기 바란다. 무엇이든지 말씀이 기초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삶이 그리스도인 다워야 할 것이다.
3. 약속의 땅을 목전에 두었던 광야 세대와 오늘의 우리는 어떤 면에서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는가?이 사실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배울 수 있는가?
※ 옛 이스라엘은 긴 광야를 투쟁으로 걸어왔고, 오늘은 긴 역사가 진행되면서 교회가 투쟁하는 교회로 유지되었다. 지금도 사탄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법을 유린하는 것이 합당한 것이라고 속삭이고 주위 세력을 동원하여 공격하고 있다. 긴 세월에 지친 모습도 비슷한 상황일 수 있다. 우리는 시편의 권면대로 믿음에 굳게 서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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