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과 - 신약속의 신명기 -(핵심 요약 G &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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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봉주 작성일21-12-15 01:52 조회2,789회 댓글0건첨부파일
- 제12과- 신약속의 신명기- 이봉주 장로.hwp (99.0K) 21회 다운로드 DATE : 2021-12-15 15:38:07
본문
<제12과 - 신약(新約)속의 신명기(申命記)>
(2021-12-18 (안)17:16)
(12월12일) (일) <기록(記錄)되었으되>
(Q)~구약(舊約)뿐 아니라 신약(新約)에서도 신명기(申命記)의 말씀을 많은 곳에서 인용(引用)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특별히 예수님께서 인용(引用)하신 말씀과 대응(對應)에 대한 중요한 교훈(敎訓)은 무엇일까?
(A)~(마태복음4장1-11절)에서 예수님께서 광야(廣野)에서 마귀에게 시험 받으실 때 사탄과 말다툼이나 논쟁(論爭)으로 대하지 않으시고 다만 기록된 성경말씀(신명기 8장3절, 6장16절, 6장13절)을 인용하셔서 말씀의 권위(權威)로 마귀(魔鬼)사탄 원수(怨讐)를 대적(對敵)하심으로 물리치셨다.
⑴.(마태복음 4:3)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사단 마귀의 시험>
이 요구를 통해 마귀가 예수의 신성(神性)을 의심하는 듯 한 질문을 하게 된 음흉한 저의(底意)가 드러났다. 즉 마귀는 예수로 하여금 당신이 지닌 메시아적 권능을 메시아직의 수행을 위해 사용하기보다 당신이 당면한 개인적 문제(허기)를 해결하는대 먼저 사용하라는 유혹을 한 것이다.
이때 만에 하나라도(사실은 아니지만) 그리스도께서 돌들로 떡을 만들어 잡수셨다거나 십자가(十字架)에서 떠나버리셨다면 그분의 사명과 하나님의 뜻에 함축되어 있는 성육신을 통한 자기 비하(卑下)를 부인하는 것이 된다. 이스라엘은 먹을 것과 필요만을 요구하며 허기진 배만 채운 자들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고 말았다.
그러나 예수는 먹을 것을 거부하고 마귀의 유혹을 물리치심으로써 의(義)를 유지하였고 인류에게 영원한 생명의 떡이 되실 수 있었다.
⑵.(마태복음 4:4) 사람이 … 말씀으로 살 것이라. <예수님의 대적(對敵) 기법(技法)>
(신명기 8:3)을 인용한 것으로서 본래 이스라엘에게 적용되던 내용이다.
그런데 그 이스라엘은 본문에서 하나님의 종, 인자, 그리고 오실 자(에르코메노스)에 적용되었다.
한편 본문에 언급된 ‘말씀’이 사람의 생명을 유지시키는 양식과 관련되면서 예수 자신에게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도 적용된다.
즉 예수는 ‘떡’만을 강조하는 사탄에게 땅의 양식과 하늘의 양식을 대조하여 ‘사람’(호 안드로포스)의 존재 양식(存在樣式), 즉 사람의 생명은 창조주 하나님을 떠나서는 지탱할 수 없다는 진리를 들어 공박(攻駁)하신 것이다.
물론 예수께서는 떡으로 ‘만’(우크 모노)이라는 제한적 용법을 사용하심으로써 육체적 한계에 갇혀 있는 인간에게 ‘떡’도 필요하다는 사실을 간접 인정하셨다.
그러나 그것보다 인간에게 더 필요한 것은 생명의 근원인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이다.
이로써 풍요한 땅 에덴에서 성공했던 사탄의 시험이 불모의 광야에서는 실패했다.
우리는 성경에서와 창조 후 인류 역사 속에서 일시적인 ‘떡’ 문제에 정신이 팔려 ‘영원한 생명’을 잃어버린 수많은 사람들을 보아 왔다.
그러므로 성도된 자들은 응당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신뢰하여 물질생활의 헛점을 파고드는 사탄의 교활한 시험을 처음부터 근절(根絶)시켜야 한다.
한편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out) 모든 말씀은 성경 저자들의 귀에 들어가(in) 영감(inspiration)으로 기록된 것으로서 단순히 문자화된 경전(經典)을 뜻하지 않는다.
이는 하나님의 원(元) 목적에 따라 인간의 삶을 주장하는 생명력 있고 창조적인 ‘하나님의 말씀’(레마 데우) 그 자체인 것이다. 이 말씀이야말로 인간에게 영원한 생명을 유지케 한다(Trench).
⑶.예수께서는 ‘기록된’ 말씀 외에 자신의 말씀은 한마디도 덧붙이지 않으셨으나 사탄의 시험이 하나님의 권위에까지 침범해 오자 거룩한 분노를 터뜨리셨다.
분명한 것은 사탄은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단은 교묘(巧妙)하게 유혹의 덫으로 유혹하며 유인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아예 무식(無識)하면 사탄은 유혹하지 않지만 조금 안다는 사람이나 교만한 자들을 유혹한다는 사실이다.
말씀 위에 굳게 서지 못하면 언제든지 넘어가고 넘어지게 된다.
(12월13일) (월) <차별(差別)하지 말라>
(Q)~신약(新約)의 (사도행전 10:34, 로마서 2:11, 갈라디아서 2:6, 에베소 6:9, 골로새서 3:25, 베드로전서 1:17,)등에서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보지(취하지) 아니하신다.는 말씀을 “신명기”의 어디에서 인용하셨으며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어떻게 대하시는지를 알 수 있을까요?
(A)~⑴.(신명기 10장17절)에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外貌)로 보지 아니하신다.는 말씀을 인용(引用)하시면서 하나님께서는 공평(公平)하시며 차별(差別)이 없으심의 모본(模本)된 행동(行動)을 하도록 말씀하시고 있다.
⑵.<사람을 외모(外貌)로 보지 아니하시며…>
문자적(文字的)으로는 “얼굴들을 들어 올리지 아니하시고 뇌물(賂物)도 받지 아니하시니.”
여호와께서는 얼굴을 들어 편파적으로 아는 척을 하지 않으시며 모든 일을 항상(恒常) 공정(公正) 하게 처리하신다.
제사(祭祀)나 선물(膳物) 때문에 그분이 고의적(故意的)인 범죄(犯罪)를 너그럽게 봐주시는 일은 없다. (참조 출 23:8; 레 19:15).
(12월14일) (화) <나무 위에서 저주(詛呪)받음>
(Q)~(신명기 21:23)에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詛呪)받은 자니라” 라고 하신 말씀을 사도 바울은 어떻게 (신명기)를 인용(引用)하고 설명하고 있는가.?
(A)~⑴.성경에는 나무에 달린 자에 대하여(창세기 40:22, 여호수아 10:26,삼하 21:6, 에스더 7:10,13, ) 등에 기록하고 있다.
⑵.그러나 사도 바울은 (신명기27:26)과 (신명기 21:22~23)을 인용(引用)하여 (갈라디아 3:13)에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주 예수님께서는 죄가 없으신 분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죄와 사망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 나무에서 우리 죄를 대신 담당하셨습니다. (갈 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저주(詛呪)가 되사 율법(律法)의 저주(詛呪)에서 우리를 구속(救贖)하셨으니 기록(記錄)된바, 나무에 달리는 모든 자는 저주(詛呪) 받았느니라. 하였느니라.
또한 “베드로”도 (벧전 2:24) 친히 나무에 달려 자신의 몸으로 우리의 죄(罪)들을 지셨으니 이것은 죄(罪)들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살아서 의에 이르게 하려 하심이라. 그분께서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고침을 받았나니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죄를 대속(代贖)하신 구원자(救援者)이심을 믿고 받아들이면, 모든 죄를 용서(容恕)받고 죄의 저주(詛呪)와 형벌(刑罰)로부터 구원(救援)을 받습니다.
⑶.율법(律法)의 행위(行爲)로 구원(救援)받은 것이 아니고 믿음으로 구원(救援)을 받는 것임을 증명(證明)코자 구속(救贖)의 언약(言約)을 성취(成就)하신 예수의 대속적(代贖的) 죽음을 강조(强調)하므로 구원(救援)의 길을 열어 복음(福音)을 소개(紹介)함을 뜻함의 신명기(申命記)를 인용(引用)하고 있다.
⑷. “나무 위에서 저주(詛呪)받음”에 대하여 바울은 “신명기(申命記)의 말씀을 인용(引用)하여 예수님께서는 ”나무 위” 십자가(十字架)의 죽음으로 우리의 죄(罪)를 대속(代贖)의 저주(詛呪)를 대신 받으시고 우리 죄인들에게 구원(救援)의 길을 마련해 주신 그리스도 예수님의 죽음이었음을 설명하고 있다. 즉 율법의 저주인 사망에서 우리를 구원하셨다.
(12월15일) (수) <모세와 같은 선지자(先知者)>
(Q)~베드로와 스데반은 신명기의 모세의 어떤 말씀을 인용(引用)하고 그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고 가르쳤는가?
(A)~⑴.(사도행전 7:37)에 <선지자(先知者)를 세우리라 하던 자가 곧 이 모세라>.
이는 (신 18:15)에 언급된 말씀이다. A. D. 1세기의 유대인들은 예수를 거부하고 메시아를 기대하면서 이스라엘이 회복될 때를 기다렸다. 그들은 메시아가 ‘모세와 같은’모습으로 오실 것을 기대했다. 사마리아인들은 ‘모세 같은 구속자’라고 말하였는데 그들은 쿰란 공동체와 마찬가지로 이 같은 개념을 뒷받침하기 위해 (신 18:15, 18)을 사용하였다. 그리고 후기 랍비 자료들에서는 (신 18:15-18)을 ‘사무엘’에게 적용시키는가 하면 혹은 ‘예레미야’에게 또는 예언자들의 전체에 적용시키기도 하여 기독교적 해석을 반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탈무드의 많은 구절들에서는 이스라엘의 첫 번째 구속자(救贖者) 모세와 그와 같은 모습으로 오실 메시아를 평행적(平行的)으로 언급하며 (신 18:15, 18)을 메시아에 대한 예언으로 해석했다. 따라서 (신 18:15, 18)의 예언에 근거를 둔 스데반의 주장은 당시 일반적으로 유대교의 종말론적 소망과 일치한다.” (행 7:37, 만나주석)
.
⑵.베드로처럼 스데반도 (신 18:15~18)에 나오는 선지자(先知者)를 가리킨다. 베드로처럼 그는 그것이 예수 안에서 성취(成就)된 것을 본다. 스데반은 그들이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라는 인물 안에 나타나신 이 선지자와 함께 산헤드린과 맞서려고 이제 굳게 결심하고 있다.” (행 7:37, 재림교주석)
⑶.(사도행전 3:22과 7:37)에서 “베드로”와 “스데반”이 (신명기 18:15~19)의 말씀을 인용(引用)하여 예수님이 약속(約束)된 선지자(先知者)이시며 그 분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고 가르치며 적용(適用)하고 있다
(12월16일) (목) <두려운 일>
(Q)~바울은 (히브리서 10:28~31)에서 (신명기(申命記))의 어느 말씀을 어떻게 인용하고 있습니까?
(A)~⑴. (히브리서 10:28~29)에서 바울은(신명기 17:6)의 말씀을 인용(引用)하여 두세 증인(證人)으로 유죄판결(有罪判決)을 내리고, (히브리서 10:30~31)에서 ‘원수(怨讐) 갚는 것“에 대하여 (신명기 32:35)의 말씀을 인용(引用)하고 있다.
(2) 모세를 통해 주신 율법을 범한자는 증인 2-3 사람만 있으면 죽었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는 그들이 받았던 것보다 더 큰 형벌을 받게 된다.
(3) 사도 바울은 유대인 신자(信者)들에게 하나님께 끝까지 충성(忠誠)하라고 권면(勸勉)하기 위해 그들 앞의 선조(先祖)들이 살았던 유대인들에게 똑같은 권면을 주셨던 “신명기(申命記)”의 말씀을 인용(引用)하면서 하나님께로 부터 절대로 떨어져 나가지 말라고 권면하였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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