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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과 예수, 신실하신 제사장(질문, 대답, 설명) 02/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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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2-01-29 01:43 조회5,41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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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과 예수, 신실하신 제사장

(2월 5일 안식일 / 일몰: 오후 6시 00분 )

 

연구 범위: 히 5:1~10, 창 14:18~20, 벧전 2:9, 히 7:1~3, 히 7:11~16, 22, 26

기억절: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이라”(히 7:26).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존재했던 넓은 간격은 죄로 인해 생겨난 것이었다. 게다가 죄가 우리 본성을 타락시켰기 때문에 문제는 더 심각해졌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죄는 하나님과 함께 공존할 수 없다. 마치 자석의 같은 극이 서로를 밀어내듯이 우리의 타락한 본성은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분리시켰다. 뿐만 아니라, 타락한 본성은 인간이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어 버렸다. 또한, 죄는 오해를 불러온다.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에 눈을 감아 버리고, 그분을 무섭고 계속해서 힘든 것을 요구하는 분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이번 주 우리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그 넓은 간격을 메우기 위해 아버지와 아들께서 행하신 놀라운 일들에 관해 공부할 것이다. 히브리서 5~7장은 예수님의 제사장 직분에 관한 주의 깊은 분석과 정보를 제공한다. 저자는 예수님의 제사장 직분의 기원과 목적에(히 5:1~10) 관해 설명한 후 독자들에게 그것을 무시하지 말고(히 5:11~6:8) 오히려 그것이 제공하는 소망의 확신을 굳게 붙잡으라고 권면한다(히 6:9~20). 바울은 예수님의 제사장 직분에 대한 핵심적인 설명에 이어(히 7:1~10), 그 이해를 하나님과 믿는 자들 사이의 관계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히 7:11~28). 이번 주 우리는 히브리서 5:1~10과 7:1~28을 집중적으로 살펴볼 것이다.          

  

TMI Time

*학습 목표

- 깨닫기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제사장이 되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한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심을 깨닫는다. 

- 느끼기

우리를 위해 하나님 앞에서 중보하고 계시는 예수님 덕분에 우리가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있음에 감사한다.

- 행하기

항상 살아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는 예수님께 우리의 삶을 온전히 맡기고 살아간다.

 

TMI 위로 

2. 구약에 나타난 제사장의 역할은 무엇이며 예수님께서 그것을 어떻게 성취하셨습니까?(히 5:1~10)

※ 하나님께 속한 일에 사람을 위하여 예물과 속죄하는 제사를 드린다. 예수님은 자신을 제물로 드리시고 부활하여 승천하셔서 제사장으로 하늘에서 우리를 위하여 속죄봉사를 하신다. 

3. 멜기세덱은 누구이며 그가 어떻게 예수님을 예표했습니까?(히 7:1~3)

※ 살렘 왕이며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다. 예수님이 왕과 제사장이시미을 예표한다.

4. 예수님의 사역과 희생이 율법의 어떤 부분에 변화를 가져왔습니까?(히 7:11~16, 10:18)

※ 제사장 제도와 제물과 제사드리는 것에 관한 율법을 폐하셨다. 

5. 예수님께서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히 7:22~25)

※ 영원히 살아서 우리를 위하여 중보하시기 때문이다. 

6. 우리를 위한 대제사장이 되신 예수님의 다섯 가지 특징은 무엇입니까?(히 7:26)

※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으심.

 

결론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제사장이 되신 예수님께서는 항상 살아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므로 우리가 구원의 확신 가운데 살 수 있도록 하십니다. 이처럼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신 예수님께서는 하늘을 향해 달려가는 믿음의 경주에서 우리가 바라보고 따라가야 할 모본이 되십니다.

 

 

1월 30일(일) 인간을 대표하는 제사장

 

 히브리서 5:1~10을 읽어 보라. 제사장 직분의 역할은 무엇이며, 이 본문에 의하면 예수님께서는 그 역할을 어떻게 성취하셨는가?

[히5:1~10] 대제사장마다 사람 가운데서 택한 자이므로 하나님께 속한 일에 사람을 위하여 예물과 속죄하는 제사를 드리게 하나니 2 그가 무식하고 미혹된 자를 능히 용납할 수 있는 것은 자기도 연약에 휩싸여 있음이라 3 그러므로 백성을 위하여 속죄제를 드림과 같이 또한 자신을 위하여도 드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4 이 존귀는 아무도 스스로 취하지 못하고 오직 아론과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라야 할 것이니라 5 또한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 되심도 스스로 영광을 취하심이 아니요 오직 말씀하신 이가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니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6 또한 이와 같이 다른 데서 말씀하시되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 하셨으니 7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8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9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10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으셨느니라.

 

답: 하나님께 속한 일에 사람을 위하여 예물과 속죄하는 제사를 드린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낳았다’하심으로 그를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이 되게 하셨다. 

 

 레위 제사장 직분의 기본적인 목적은 죄인과 하나님 사이에서 중재하는 것이었다. 제사장들은 인간을 위해 봉사하도록 하나님으로부터 임명받았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비로우며 인간의 연약함에 대해 잘 이해해야만 했다.

 히브리서 5:5~10에서 바울은 예수님께서 그 목적들을 완벽하게 성취하셨음을 보여 준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임명하셨으며(히 5:5, 6), 예수님 또한 고난을 당하셨기 때문에 그분께서는 우리를 이해하신다(히 5:7, 8).

 하지만 중요한 차이점들도 있다. 예수님은 “사람 가운데서 택한 자”(히 5:1)가 아니셨다. 대신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제사장으로 봉사하시기 위해 인성을 취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죄 없으신 분이시기 때문에(히 4:15, 7:26~28) 자신의 죄를 위해 제물을 드리지 않으시고(히 5:3) 오직 우리의 죄를 위해서만 그렇게 하셨다.

 히브리서는 예수님께서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기도하셨고 “들으심을 얻었다”(히 5:7)고 이야기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부활시키심으로 살려 내신 두 번째 사망에 관해 언급하고 있는 것이었다(히 13:20). 히브리서는 또한 예수님께서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우셨다”(히 5:8)라고 이야기한다. 불순종하셨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셨기 때문에 순종은 예수님께 새로운 것이었다. 모든 만물의 통치자로서 예수님은 그 누구에게도 순종할 필요가 없으셨다. 대신 다른 모든 피조물들이 그분께 순종했다.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 위에서의 죽음은 그분의 제사장 사역을 위해 필수적인 것이다. 예수께서는 더 도덕적이거나 더 윤리적일 필요가 있어서 고난받으신 것이 아니다. 고난이 그분을 한결 더 자비롭게 만든 것도 아니다. 예수님은 항상 자비로우셨기 때문에 이 땅에 오셨으며, 그 자비로우심으로 우리에게 동정심을 갖고 계신다(히 2:17). 

 히브리서가 의미하는 것은 고난을 통하여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 그분의 참된 인성, 그리고 인류의 대표자로서 아버지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심의 실체가 분명히 표현되고 나타났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고난이 그분께 우리의 대제사장이 될 자격을 부여했다는 관점에서 예수님께서는 “온전하게” 되셨다. 우리의 제사장으로서 예수께서 아버지께 드린 희생 제물은 바로 당신의 완전한 순종의 생애와 십자가 위에서의 죽음이었다.

 

<묵상>

베드로전서 2:9은 우리를 “왕 같은 제사장들”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와 같은 귀한 역할을 맡고 있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관해 예수님의 삶은 그대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답: 그리스도인은 사람들을 예수님께 인도하여 하나님의 백성이 되도록 드리는 역할로 제사장의 임무를 수행한다(롬 15:16),

 

<부가설명> 오늘 공부한 구절들에서 사람들이 의구심을 가질 수 말이 ‘자기를 죽음에서 구원하실 이에게’라는 표현이다. 어떤 사람이 이 말을 ‘예수님도 구원이 필요했다’라고 사용하는 것을 들었다. 우리가 구원받는 것은 죄에서 구원받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은 예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돌아가실지라도 부활하실 것에 대하여 한 말씀인데, 예수님은 스스로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기 때문에 다시 얻을 능력이 없어서 구한 것이 아니다. 예수님이 아담을 대신하여 아담의 죽음을 대신하는데, 그 죽음은 둘째 사망이다. 둘째 사망은 존재를 완전히 상실하는 것이다. 이 사실을 지적하면서 예수님이 이 죽음을 당하시고 스스로 얻은 권세로 부활하실지라도 대속이 되도록 기도하신 것이다. 이것이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간구한 것인데 겟세마네에서 피땀 흘리는 기도를 가리키는 말씀이다. 또 ‘온전하게 되셨다’는 말씀도 고난을 받기 전에는 온전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다. 그는 항상 흠도, 티도 없이 온전하신 분이시다. 이 말은 고난을 받으시는 것으로 온전한 속죄를 이루시게 되었다는 뜻이다. 그래서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이라고 한 것이다. 오해하지 않아야 할 말씀을 오해하여 걸려넘어지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교훈>

예수님께서는 완전한 순종과 십자가의 죽음으로 우리의 제사장이 될 자격을 갖추셨으며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대표하신다. 

 

 

1월 31일(월)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창세기 14:18~20과 히브리서 7:1~3을 읽어 보라. 멜기세덱은 누구이며 그는 어떻게 예수님을 예표했는가?

[창14:18~20]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19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20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히7:1~3]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여러 왕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 자라 2 아브라함이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누어 주니라 그 이름을 해석하면 먼저는 의의 왕이요 그 다음은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3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답: 멜기세덱은 살렘 왕인데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다. 그의 이름과 직무는 의의 왕, 평강의 왕으로 두 뜻을 가지고 있다. 그는 성경에 시작한 날이 기록되어 있지 않고 부모도 기록되어 있지 않다. 이렇게 한 것은 시작한 날이 없는 예수님을 표상하기 위한 섭리요 또 제사장도 그렇다.

 

 멜기세덱은 왕이었으며 동시에 제사장이었다. 아브라함이 그에게 십일조를 바친 것을 볼 때, 그는 아브라함보다 더 높은 자였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왕이시며 제사장이시다(히 1:3). 하지만 멜기세덱과 달리 예수님은 죄가 없으셨다(히 7:26~28).

 히브리서 7:15은 예수님께서 “멜기세덱과 같은 제사장”이셨다고 설명한다. 이것이 바로 앞서 기록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히 5:6)이라는 말씀의 의미이다. 예수님이 멜기세덱의 후계자라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제사장 직분이 그의 것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바울은 멜기세덱이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다고 이야기한다. 어떤 이들은 멜기세덱이 아브라함 시대의 성육신하신 예수님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와 같은 생각은 히브리서의 주장과 맞지 않는다. 멜기세덱은 예수님을 “닮았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그가 예수님은 아니었음을 암시한다(히 7:3).

 멜기세덱이 천상의 존재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와 같은 주장은 히브리서의 가르침과 조화되지 않는다. 만일 멜기세덱이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다면 그는 하나님 자신일 것이다. 하지만 이는 문제를 일으킨다. 멜기세덱의 하늘에서의 제사장 직분이 예수님의 사역을 앞서게 되기 때문이다. 만약 이것이 사실일 경우 히브리서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어찌하여…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었겠는가(히 7:11)?

 대신 히브리서에서 바울은 멜기세덱의 출생과 죽음과 족보에 대한 성경의 침묵을 예수님의 제사장 사역을 설명하기 위한 표상 또는 상징으로 사용해(창 14:18~20) 예수님의 영원성을 나타낸다. 요약하자면, 멜기세덱은 예수님을 표상하는 가나안의 왕이요 제사장이었다.

 

<묵상>

히브리서 7장을 깊이 묵상하며 멜기세덱과 예수님의 사역을 비교해 보세요.

 

답: 멜기세덱은 아담 후손인 사람일 뿐이다. 그가 하나님께 헌신했기 때문에 그가 살렘왕으로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 되어 그 시대에 하나님께 제시를 드렸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인 멜기세덱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은 그리스도였다. 멜기세덱은 그리스도가 아니었으며 세상에 있는 하나님의 음성이었고 하늘 아버지의 대리자였다. 그리스도께서는 과거 모든 세대를 통하여 말씀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인도하셨고 세상의 빛이 되어 오셨다”(가려 뽑은 기별 1권, 409).

 

<부가설명> 성경에 기록된 인물들 중에 신비에 싸여있는 사람들이 많다. 욥도 그렇고 욥의 세 친구, 엘리후, 갑자기 이름이 드러났다가 다른 기록없이 이름이 사라진 사람들이 많다. 그러데 멜기세덱에 관하여 사람들이 많은 말을 하는 것은 그에 관한 히브리서의 기록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부모도 생일도 사망일도 족보도 없다고 했기 때문이다. 욥도 이런 기록이 없다. 그런데 멜기세덱은 하나님의 아들과 방불하다고 했기에 사람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된 것이 아닌가 한다. 고레스도 예수님을 표상하는 인물이 되었다. 그는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았다고 했다. 그러나 그가 유대인을 해방시키는 역할을 한 것이, 사람을 죄에서 해방시키신 예수님의 일을 표상하는 것이다. 그가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았다고 해서 예수님이 메시아 되심과 같은 메시아는 아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의 복음을 깨닫는 도구로 사용하기 위하여 누구든지 사용하실 수 있다. 그러므로 멜기세덱에 관하여 기록한 말씀 이상의 해석을 할 이유도 필요도 없다. 어떤 사람들은 노아라고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예수께서 일찍 나타나신 상태라는 사람도 있다. 이런 것은 다 성경과 아무 상관없는 인간의 상상으로 만든 이야기일 뿐이다. 무엇이든지 성경으로 증명도지 않으면 받아들이지 않아야 한다. 

 

<교훈>

멜기세덱은 가나안의 왕이요 제사장으로서 우리를 위한 예수님의 제사장 사역을 설명하기 위한 표상적 인물이었다.

 

 

2월 1일(화) 온전한 제사장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 (백성이 그 아래에서 율법을 받았으니) 어찌하여 아론의 반차를 따르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냐”(히 7:11).

 제사장들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재자들이다. 하지만 히브리서는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온전하고 확실한 길을 제공할 수 없었다고 이야기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완전함을 제공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히 7:11, 18, 19). 그들 자신 또한 완전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완전함을 부여할 수 있겠는가?

 동물로 드려진 희생 제물들도 죄인의 양심을 깨끗하게 할 수 없었다. 그것들의 목적은 죄로부터 정결하게 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제공하는 예수님의 사역과 희생을 바라보게 하는 것이었다(히 9:14, 10:1~3, 10~14). 레위 계통의 제사장과 그들이 드린 제사의 기능은 일시적이었으며 상징적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사역을 통해 사람들의 믿음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요 1:29) 되시는 예수님의 다가올 사역에 두기를 원하셨다.

 

 히브리서 7:11~16을 읽어 보라. 율법을 바꿔야 할 필요가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히7:11~16]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 (백성이 그 아래에서 율법을 받았으니) 어찌하여 아론의 반차를 따르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냐 12 제사 직분이 바꾸어졌은즉 율법도 반드시 바꾸어지리니 13 이것은 한 사람도 제단 일을 받들지 않는 다른 지파에 속한 자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 14 우리 주께서는 유다로부터 나신 것이 분명하도다 이 지파에는 모세가 제사장들에 관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없고 15 멜기세덱과 같은 별다른 한 제사장이 일어난 것을 보니 더욱 분명하도다 16 그는 육신에 속한 한 계명의 법을 따르지 아니하고 오직 불멸의 생명의 능력을 따라 되었으니,

 

답: 레위 계통의 제사장 직무를 행하지 않으시고 유다 지파 출신의 제사장을 세우실 것이기 때문이다. 

 

 히브리서 7:12은 제사 직분의 변경이 관련된 율법도 변경하게 했다고 설명한다. 왜 그런가? 당시에는 아론의 반차를 따르는 레위 족속에서 나지 않은 자가 제사장 직분을 수행할 수 없도록 하는 매우 엄격한 법이 있었기 때문이다(민 3:10, 16:39, 40). 히브리서 7:13, 14에서, 예수님은 유다로부터 나셨기 때문에 이 법이 예수님께서 레위 계통의 제사장이 되는 것을 금지했다고 설명한다. 그러므로 바울은 예수님을 제사장으로 임명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제사장직에 관한 율법을 변경하신 것이라고 주장한다.

 예수님의 오심은 제사법의 변경 또한 가져왔다. 전에는 죄인들이 죄 사함을 얻기 위해 각기 다른 종류의 제물들을 가지고 와야 했지만(레 1~7장) 예수님께서 오셔서 완전한 제물이 되심으로 동물로 드리는 제물에 관한 법이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히 10:17, 18).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제물로 바치심으로 새 언약을 주시고 구원의 계획에 대한 더 완전한 계시를 보여 주셨다.

 

<묵상> 

오랜 세월 동안 예수님을 가리키는 제물로 드려졌던 수많은 동물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하지만 그 무엇도 우리의 죄를 위한 충분한 값이 될 수 없었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죽음만이 우리의 죗값을 치를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답: 우리의 죽음이 아담 안에서 생긴 것이기 때문이다. 아담은 사람이다. 그러므로 사람, 죄가 전혀 없는 사람이 대신하여 대속할 수밖에 없다.

 

<부가설명> 개신교의 많은 사람들이 히브리서 7:12과 19절을 인용하며 율법이 폐했기 때문에 안식일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정직한 마음으로 히브리서 7장을 읽으면 그 구절들이 십계명에 관한 것이 아닌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것은 제자장과 제사법에 관한 것이 영원한 제사장과 완전한 제물 되시는 예수님이 오셨기 때문에 필요 없게 되었다는 것을 설명한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주제를 말하는 확실한 구절을 그 구절이 말하지 않는 주제를 설명하는 데 인용하는 것을 성경을 연구하는 바른 자세는 아닐 것이다. 아론의 후손들은 영원한 대제사장 예수님의 제사장 직무를 상징하는 것 외에 죄를 사하는 진정한 속죄를 위한 제물을 드릴 수 없다. 왜냐하면, 제물 자체가 이미 불완전한 동물이다. 그것이 완전한 제물이신 예수님을 표상하는 것이다. 그러니 그것을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도 제물처럼 불완전하다. 완전한 제사장이신 예수님을 표상하는 역할밖에 할 수 없다. 모든 날 마지막에 예수님이 오셔서 이 불완전한 것을 완전한 것으로 대치하셨고 속죄도 완전히 성취하셨다. 그러므로 불완전한 제사제도와 제사장에 관한 율법이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이 사실을 바르게 이해하면 히브리서의 기록들을 오해하지 않을 것이다. 

 

<교훈>

죄인을 위한 완전한 제사장과 제물 되시는 예수님의 오심은 지금껏 존재했던 제사장 제도와 희생 제물에 대한 율법을 변경시켰다.

 

 

2월 2일(수) 영원한 제사장

 

 히브리서 7:16을 읽어 보라. 예수님께서는 무엇을 근거로 제사장이 되셨는가?

[히7:16] 그는 육신에 속한 한 계명의 법을 따르지 아니하고 오직 불멸의 생명의 능력을 따라 되었으니,

 

답: 불멸의 생명의 능력을 따 제사장이 되셨다. 

 

 예수님께서는 그분이 소유하신 불멸의 생명과 영원히 갈리지 않는 완전한 봉사를 근거로 제사장 직분을 받으셨다. 이 같은 사실이 선언하는 바는 매우 놀랍다. 이것은 그 무엇도 예수님의 사역을 능가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께서는 완전하고, 영원하며, “온전하게”(히 7:25) 구원하신다. 예수님께서 제공하시는 구원은 완전하고 최종적이다. 그것은 인간 본성의 가장 깊은 곳에까지 영향을 미친다(히 4:12, 9:14, 10:1~4). 하나님 앞에서의 예수님의 중보는 새 언약 아래 허락된 모든 혜택들을 포함한다.

 또한, 예수님의 제사장 사역은 죄의 용서 이상의 것을 포함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법을 우리의 마음속에 넣어 주심으로 우리를 새롭게 하시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온 세상에 복음을 나타내게 된다(히 8:10~12). 하나님과 하나이시며 또한 인간들과 하나이신 분으로서,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앞에서 우리를 대표하신다. 자신의 생명을 희생 제물로 바치신 분으로서,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서 변함없는 호의를 얻으신다.

 

 히브리서 7:22을 읽어 보라. 새 언약과 관련되어 예수님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가?

[히7:22]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

 

답: 더 좋은 언약, 곧 새 언약의 보증이 되셨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이 “영원히”(히 7:21) 제사장이 되실 것이라고 맹세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은 새 언약의 보증인이시다. 이 맹세의 중요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않고 넘어가기가 쉽다. 바울은 이미 하나님께서 광야 세대와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맹세에 대해 언급하였다(히 3:7~11, 6:13~15). 그 맹세들과 하나님께서 아들에게 하신 맹세의 차이점은 그 맹세들은 유한한 인간들에게 주어진 것이었다는 사실이다. 맹세는 그 맹세의 수혜자들이 살아있는 동안 그 효력을 발휘한다. 하나님께서 광야 세대와 아브라함에게 하신 맹세는 광야 세대가 살아있고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남아 있는 동안에만 효력이 있었다(참조, 갈 3:29).

 하지만 “불멸의 생명”을 가진 아들의 경우, 하나님께서 그와 맺은 언약은 영원히 효력을 발휘할 것이다. 다른 사람의 보증인으로 서 있던 사람은, 죽음을 포함하여 자신이 보증하는 사람에게 부여된 것과 똑같은 형벌을 감당할 법적인 책임을 진다. 아버지께서는 예수님을 우리를 위한 보증인으로 세우셔서 그분께서 당신의 약속을 꼭 지키실 것임을 확증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주어진 구원을 확신할 수 있다.

 

<묵상>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주어진 구원에 대하여 확신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답: 불멸의 생명을 가지신 예수님이 보증이 되셨기 때문이다. 

 

<부가설명> 예수님은 영원한 제사장이시다. 이유는 그분은 불멸이시기 때문이다. 보증인이 죽으면 보증을 선 그 일에 보증이 될 수 없다. 그런데 사람의 구원을 위하여 보증을 서신 예수님은 불멸의 존재이시기 때문에 보증을 선 구원이 성취되지 않을 수 없다. 그분은 영원한 제사장이시다. 제사장은 백성들을 하나님 앞에 온전하게 세우는 중보의 직무를 행한다. 그 제사장이신 예수님이 구원을 보증하셨다. 이것을 중보하신다고 말한다. 우리가 중보자 없이 환난 날에 하나님 앞에 서야 한다는 대쟁투의 기록 때문에 걱정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그러나 예수님이 영원한 제사장이시라면 영원한 중보자가 되신다. 대쟁투의 말은 성소에서 속죄를 위한 중보가 없다는 말인데, 이유는 속죄할 일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롭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불의한 자는 그대로 불의하도록 판결이 끝났기 때문에 중보할 일이 없어서 중보자가 성소에서 나가신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예수님 안에 있고 예수께서 구원받은 모든 사람을 자신 안에 두시는 존재에 관한 중보는 영원하다. 예수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어떻게 예수님 없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겠는가? 야곱의 환난 때에도 역시 그리스도인이라면 예수님 안에 있다. 이 예수님 안에 성도를 두시는 중보는 끊어짐이 없다. 영원한 제사장이시기 때문이다. 아멘. 할렐루야.

 

<교훈>

예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한 영원한 보증인이 되시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주어진 구원에 대해 확신을 가질 수 있다.

 

 

2월 3일(목) 죄 없는 제사장

 

 히브리서 7:26을 읽어 보라. 이 본문에 나타난 예수님의 다섯 가지 특징은 무엇인가?

[히7:26]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이라.

 

답: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으심.

 

 예수님은 “거룩”하셨다. 이 말은 예수님께서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 아무런 잘못이 없으셨다는 뜻이다(히 2:18, 4:15, 5:7, 8). 구약성경의 오래된 헬라어 번역본은 같은 단어를 하나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언약적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데에도 사용했다.

 예수님은 “악이 없으셨다.” 그분께서는 “모든 면”(히 4:15, 2:18)에서 시험을 받으셨음에도 불구하고 죄에 의해 더럽혀지지 않고 순결하셨다. 예수님의 완전한 죄 없으심은 그분의 제사장 직분을 위해 중요하다. 옛 언약은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것이 되기 위해 모든 희생 제물들이 “흠 없는” 것이어야 한다고 규정했다(레 1:3, 10). 지상 생애 동안 보여 주신 예수님의 완전한 순종은 자신을 하나님께서 받으시기에 합당한 제물로 바칠 수 있도록 했다(히 9:14).

 예수님께서 승천하셨을 때 그분은 “죄인에게서 떠나 계셨다.” 여기서 사용된 헬라어의 동사 시제는 이것이 어느 구체적인 시점에 시작된 예수님의 현재 상태임을 암시한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사시는 동안 죄인들의 적대감을 견디셨다. 그분은 승리하셨으며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게 되셨다(히 12:2, 3). 예수님은 완전히 죄가 없으셨다는 측면에서 “죄인에게서 떠나 계신다”(히 4:15).

 예수님은 “하늘보다 높이 되신” 분이시다. 이 말은 예수님께서 존재하는 모든 것들보다 높이 올려지셨다는 뜻이며 그러므로 그분은 하나님과 하나이시다. 시편은 하나님을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신”(시 57:5, 11, 108:5) 분으로 찬양한다.

 예수님은 온전히 인간이셨지만 우리와 같은 죄 된 존재는 아니셨다(히 2:14~16, 히 4:15). 예수님이 완전하신 이유는 단순히 그분이 죄를 짓지 않으셨기 때문이 아니라 그분이 우리처럼 죄로 인해 더럽혀지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한편 예수님은 온전히 인간이셨기 때문에 우리의 모본이 되신다. 그분은 우리에게 인생의 경주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보여 주신다(히 12:1~4). 그분은 우리가 반드시 따라야 할 우리의 모본이시다(벧전 2:21~23). 그분은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기”(히 7:26) 때문에 우리의 구원자이시며 우리 또한 그분의 성품을 반사할 수 있다.

 

<묵상>

우리와 같은 인성을 쓰신 예수님께서 그분의 삶을 통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답: 우리도 예수님 안에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면 예수님처럼 살 수 있게 된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부가설명> 예수님의 인성문제는 우리교회에서 뜨거운 감자다. 화잇 여사는 400여회를 예수님의 인성(human nature)은 죄있는 인성(sinful nature), 또는 타락한 인성(fallen nature)이라고 표현했다. 사람들은 이 말을 인용하여 예수님의 인성은 죄성이 있는 인성, 타락한 인성이라고 주장한다. 앤드리어슨(M. L. Andreasen) 같은 사람은 예수님의 인성에 죄성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신신학자’라고 매도했고, 죄성이 있다고 하는 사람을 마지막 세대 사람이라고 구별했다. 오늘날 재림교회 안에서 완전주의를 표방하는 사람들은 앤드리어슨의 추종자들로 보인다. 그런데 화잇 여사는 자신이 말한 죄있는 인성, 또는 타락한 인성이라는 표현은 예수님의 인성 자체에 죄성이 있다는 뜻으로 쓴 것이 아니라고 스스로 설명했다. “타락한 상태의 인성을(man's nature in its fallen condition) 자신에게 취하셨으나 그리스도는 죄에 조금도 관여하지 않으셨다. 그는 사람이 지니고 있는 연약함이나 취약함에 놓였으며,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러라.” 그는 우리의 연약함을 느끼셨으며, 모든 면에 있어서 우리와 같이 시험을 받으셨다. 그렇지만 그분은 “죄를 모르셨다.” 그는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이셨다. …… 우리는 그리스도의 인성에 완전히 죄 없는 것에 대하여 의심을 품어서는 안 된다.(We should have no misgivings in regard to the perfect sinlessness of the human nature of Christ.)”(The SDA Bible Commentary, vol. 5, p. 1131. <ST. 1898. 6.9>).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하여 그대가 어떠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지 주의하고 극도로 주의하라. 사람들 앞에 그리스도가 죄의 성향들(propensities)이 있는 사람으로 제시하지 말라. 그분은 두 번째 아담이시다. 첫 아담은 죄의 티 없이 순결하고 죄 없는 존재로 창조되었다. 그는 하나님의 형상이었다. 그는 타락할 수 있었고, 범죄함으로 타락했다. 죄 때문에 그의 후손이 유전적으로 불순종의 성향을 갖고 태어났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독생자이셨다. 그는 인성을 취하였고, 인성이 시험 받는 모든 면에서 시험 받으셨다. 그분은 죄를 범할 수 있었고, 타락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 순간도 그분 안에는 악한 성향이 없었다. 그분은 아담이 에덴에서 시험으로 공격당한 것처럼 광야에서 시험으로 공격당하였다.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하여 오해될 수 있는 모든 질문을 피하라. 진리가 추측의 노선에 가깝게 놓여 있다. 그리스도의 인성을 취급하면서 그대의 말이 의미하는 것 이상의 뜻으로 받아들여져서, 그대가 신성과 합쳐진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한 분명한 개념을 잃거나 모호하게 하지 않도록 모든 주장에 적극적으로 주의하라. 그분의 출생은 하나님의 이적이다.”(SDABC, 5:1128. 6). 우리는 성경에 계시한 대로 믿고 순복하면 된다. 예수님은 우리와 같이 사람이 되셨으나 그분은 성령으로 나셨다. 그분은 육이 아니고 영이시다(요3;5,6). 우리도 물과 성령으로 나면 육신에 있지 않고 영에 있다(롬8:9). 예수님은 죄인의 모본이 아니시고 영이 된 사람들의 모본이시다. 도움이 되었기를 바란다. 

 

<교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예수님은 우리의 완전한 모본이시다. 

 

 

2월 4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그리스도는 주시하고 계신다. 그는 우리의 모든 무거운 짐들, 우리의 위험들, 우리의 어려움들을 아신다. 그는 우리의 사정을 변명할 말을 그 입에 채우시고 그분이 베드로를 위해서 하신 것같이 각 영혼의 필요를 따라 적합한 중보를 하신다. 우리의 대언자께서는 시험을 받고 시련을 당하는 사람들이 사탄의 시험을 굳세게 저항하도록 하기 위하여 그들을 가르칠 말씀들을 갖고 계신다. 그분은 원수의 움직임 하나 하나의 의미를 분석하고 계신다”(화잇 주석, 히 7:25).

 

 “하나님과 사람을 영원히 분리시키려는 것이 사탄의 목적이었다. 그러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결코 타락하지 아니하였던 것보다 더욱 밀접하게 하나님과 연합된 것이다. 구주께서는 우리 인성을 취하심으로 결단코 끊어지지 않을 줄로 자신을 인간에게 붙들어 매셨다.…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이 인성을 취하게 하시고 그 인성을 취하신 아들을 가장 높은 하늘로 옮기셨다. 우주의 보좌에 함께 앉으시는 분은 ‘인자’이시다. 그 이름이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고 불리실 분은 바로 ‘인자’(사 9:6)이시다. 스스로 있는 자(I AM)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Daysman)가 되셔서 양측 사이에 그의 손을 얹으실 분이시다.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히 7:26, 2:11)는 그는 우리를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신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 땅의 가족과 하늘의 가족이 연결되었다. 영화롭게 되신 그리스도는 우리의 형제이시다. 하늘은 인성 속에 모셔지고 인성은 무한한 사랑의 하나님의 품안에 안기었다”(시대의 소망, 25, 26).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위의 첫 번째 인용문에서는 “그는 우리의 사정을 변명할 말을 그 입에 채우시고”라고 이야기한다. 이 약속이 그대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가?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 관하여 무엇을 가르쳐 주는지 생각해 보라. 이와 같은 개념이 우리에게 용기가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에게 우리를 대신해서 말해 줄 누군가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사정에 관하여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믿는 그 믿음을 받으신 것으로 우리를 무죄하고 하나님의 의를 받은 자라고 하신다. 우리 대로는 그냥 사망의 존재일 뿐이기 때문이다. 

 

2. 위의 두 번째 인용문에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결코 타락하지 아니하였던 것보다 더욱 밀접하게 하나님과 연합된 것이다”라고 이야기한다. 이것이 무슨 뜻인가? 우리가 어떻게 하면 그와 같은 밀접함을 경험할 수 있으며 그 경험을 통해 어떤 위로를 받을 수 있는가? 이와 같은 밀접함이 어떤 의미이며 어떻게 하면 그것을 경험할 수 있을지 토의해 보라. 

※ 예수님이 사람이 되신 그 몸이 변화한 몸으로 부활하셨다. 우리도 예수님 재림하실 때 그와 같은 몸으로 부활한다(빌3:21). 신령한 몸이 된다(고전15:44). 그래서 예수님과 구원받은 성도는 한 몸이 된 것이다. 이것을 표현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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