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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과 -휘장 가운데로 길을 여심 -(핵심 Q&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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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봉주 작성일22-03-01 23:56 조회2,98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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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0과-휘장(揮帳) 가운데로 길을 여심>

                                                 (2022년03월05일(안)18시29분)


(02월27일(日) <아버지 앞에 계신 예수님>


(Q)~예수님께서 승천(昇天)하셔서 하나님 앞에 나타나신 이유(理由)가 무엇입니까? (히9:24)


(A)~⑴.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模型)인 지상(地上)에 있는 것들은 피(血)로써 정결(淨潔)하게 되었다 할지라도 이는 외형적(外形的) 정결(淨潔)에 불과(不過)하였다.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것들은 “더 좋은 제물(祭物)”인 "예수님"께서는 더 좋은 제물(祭物)로 승천(昇天)하셔서 우리를 위(爲)해 하나님 앞에 나타나심으로 예수를 믿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영생(永生)의 약속(約束)을 확증(確證)해 주시기 위(爲)함이다. 


⑵.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오직 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피를 통해 들어가신 곳은 지상의 성소가 아니다. 지상의 성소는 단지 외형적(外形的)인 것만을 속죄하는 불완전한 것으로 하늘의 실체를 보여주는 그림자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리스도는 지상 성소의 실체인 하늘이 성소에 들어가셨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 거하는 성소인 참 하늘에 들어가신 것은 (Hofius) 이미 십자가상에서 자신을 제물로 하나님께 드렸기 때문에, 지상의 성소에 들어가는 대제사장들처럼 희생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들어가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죄인인 우리들을 위해 중보하시기 위함이었다(Hewitt, Morris, Bruce). (히 9:24, 만나주석)


⑶.유일(唯一)하게 ‘셰키나’의 영광(榮光)(창 3:24 참조) 가운데서 신성(神性)의 현현(顯現)이 있는 곳에 나타나되, 그것도 1년에 단 한 번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지상성소(地上聖所)의 대제사장(大祭司長)과는 대조적(對照的)으로 하나님 앞에 나타나신 것입니다. (히 9:24, 재림교주석)


⑷.예수는 우리를 위(爲)하여 하나님의 존전(尊前)에 나타나기 위하여 지금 지성소(至聖所)에 계신다. 거기에서 그분은 순간(瞬間)마다, 그의 백성(百姓)을 그분 안에서 계속(繼續) 완전(完全)한 자(者)로 하나님께 내어 놓으신다. 그러나 그분이 하나님 앞에서 이런 식으로 우리를 대표(代表)하고 있기 때문에 그의 자비(慈悲)를 악용(惡用)하고, 부주의(不注意)하고, 무관심(無關心)하고, 방종(放縱)해도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生覺)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는 죄(罪)를 섬기시는 분이 아니시다. 우리가 믿음으로 그분 안에 거(居)할 때만 그분 안에서 완전(完全)하고, 사랑하시는 자(者) 안에서 가납(嘉納)함을 받는다.(사인즈 1892. 7. 4).


(02월28일(月) <하나님의 초청(招請)>


(Q)~하나님 앞으로 나오라는 하나님의 초청(招請)에 이스라엘 백성(百姓)들은 어떻게 반응(反應)했습니까? (하 12:18~21)


(A)~⑴.하나님께서 시내 산(山)에서 현현(顯現)하실 때 나타났던 징조(徵兆)에 대해 본문(本文)은 일곱 가지(만질 만한, 불붙는 산, 흑운(黑雲), 흑암(黑暗), 폭풍(暴風), 나팔(喇叭)소리, 말하는 소리)로 제시(提示)하고 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의 초청(招請)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나타내심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경외(敬畏)하는 법(法)을 가르치시려 하였으나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의 부족(不足)으로 거룩함에 이르지 못하므로 새 언약(言約)으로 은혜(恩惠)의 왕국(王國)에 거(居)하도록 하나님의 초청(招請)이 있는 것이다.


⑵.그리스도는 새 계약(契約)의 중보자(仲保者)이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인간(人間)의 중간(中間)에 위치(位置)한 중개자(仲介者)이시다. 그는 새 계약(契約)의 장소(場所)로 양편(兩便)을 다 오게 하신다. 그리고 인간편(人間便)의 죄(罪) 있음과 이 죄(罪)로 인(因)한 하나님의 인간(人間)에 대한 노(怒)여음에도 불구하고 그 양편(兩便)을 함께 거(居)하게 하신다. 그러면서 그는 하나님께 우리의 기도(祈禱)를 드리시며, 하나님의 은총(恩寵)을 우리에게 내려 주신다. 또한 그는 우리편에 서서 하나님께 변론(辯論)하고 반면에 하나님 편(便)에 서서 우리들을 향(向)해 설득(說得)하신다. 그리고 드디어 하늘나라에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들을 함께 모으시고 그들 사이에 영원(永遠)한 합(合)일을 이루시고 그 중보자(仲保者)가 되신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의 은총(恩寵)을 누리게 되며,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의 백성들에게 축복(祝福)을 내리시게 될 것이다.


(03월01일(火) <휘장(揮帳)의 필요성(必要性)>


(Q)~하나님과 그분의 백성(百姓)들 사이에 존재(存在)했던 휘장(揮帳)의 목적(目的)은 무엇 이였습니까? (레16:1~2)


(A)~⑴.성막(聖幕)에서 뜰의 입구(入口)나 성소(聖所)의 입구(入口)나 성소(聖所)와 지성소(至聖所)사이에 휘장(揮帳)이 필요(必要)한 이유(理由)로는 휘장(揮帳)은 가림 막의 기능(機能)과 보호막(保護幕)의 기능(機能)으로써 성육신(聖肉身)하신 예수께서 죄인(罪人)을 위(爲)한 선(善)과 악(惡)을 구별(區別)하며 그리고 영생(永生)과 영멸(永滅)의 역할(役割)로 휘장(揮帳)의 기능(機能)을 증명(證明)하신다.


⑵.성막(聖幕) 뜰에 둘러 친 세마포(細麻布)는 휘장(揮帳)을 말한다(출 27:9). 이는 거룩하신 하나님과 죄(罪)인된 인간(人間)사이의 뚜렷한 간격(間隔)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간격(間隔)은 후일(後日)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원(永遠)한 대속제물(代贖祭物)이 되심으로써 완전(完全)히 좁혀졌다. 뜰의 휘장(揮帳) 문(門)은 성막(聖幕) 외부(外部)에서 성막(聖幕)의 뜰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통과(通過) 하는 문(門)을 말한다(출 27:16). 성소(聖所) 출입(出入)은 오직 이 문(門)을 통(通)해서만 가능(可能)했는데, 이는 하나님과 교제(交際)할 수 있는 유일(唯一)한 길은 ‘양(羊)의 문(門)’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요 10:9, 14:6)뿐이라는 사실(事實)을 예표(豫表)한다.


(03월02일(水) <휘장(揮帳)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길>


(Q)~예수님께서 승천(昇天)하셔서 하나님 앞에 서 계신다는 사실(事實)이 우리에게 주는 희망(希望)은 무엇입니까? (히10:19~22)


(A)~⑴.(히10: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揮帳)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그리스도께서 자신(自身)의 몸을 희생(犧牲)시켜 이루신 구속사역(救贖使役)을 통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도록 하신 길은 두 가지 특성(特性)을 지닌다.(Lane). 

   ㉮. “새로운 길”이다. 

   이 ‘새로운 길’은 두 가지 차원(次元) 즉 시간(時間)상으로 전(前)에 존재(存在)하지 않았던 길이 그리스도의 희생(犧牲)의 결과(結果)로 그리스도인 공동체(共同體)에게 현재(現在) 주어진 것임을 나타내며, 질적(質的)으로 옛 언약(言約)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 새 언약(言約)에서는 변(變)할 수 없는 영원(永遠)한 것임을 시사(時事)한다. 

   ㉯. “산 길”이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길이 하나님 앞에 자유(自由)롭게 나아갈 수 있도록 하여 생명(生命)으로 인도(引導)하는 길임을 시사(時事)한다. 또한 이 길은 ‘휘장(揮帳)’ 가운데 열어놓은 길이다. ‘휘장(揮帳)’은 성소(聖所)와 지성소(至聖所)를 분리(分離)하는 것으로서(Bruce, Hewitt) 유대인들에게는 하나님께 자유(自由)롭게 나아갈 수 없게 하는 장애물(障碍物)로 인식(認識)되었다(Hofius). 이렇게 장애물(障碍物)로 인식(認識)되었던 휘장(揮帳)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十字架上)에서 돌아가실 때 찢어졌으며(마 27:51, 막 15:38, 눅 23:45) 그 결과(結果)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로 인해 열려진 길을 통하여 하나님 앞에 담대(膽大)하게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히 10:19~22, 만나주석)


⑵.히브리서 저자(著者)는 우리에게 그리스도인이 이러한 특권을 누리는 방법과 길을 말한다. 그리고 이 특권(特權)은 "그리스도의 보혈(寶血)"에 의하여 즉 그가 하나님께 속죄제물(贖罪祭物)로 드린 그의 피(血)의 공로(功勞)에 의해 주어지는 것임을 선언(宣言)한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를 믿는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대가(代價)를 지불(支拂)해 주심으로 그들로 하여금 이 땅에서는 하나님의 은혜(恩惠)에 그리고 저 세상(世上)에서는 그의 영광(榮光)에 참여(參與)하게 하셨다. 이 파가 우리의 양심(良心)에 뿌려짐으로 우리에게 노예(奴隸)의 두려움은 사라질 것이고 믿는 자들은 그들이 하나님이 계신 곳에 거(居)하게 될 것이며 또 환영(歡迎)받을 것임을 확신(確信)하게 될 것이다. 이제 히브리서 저자(著者)은 우리가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원칙(原則)에 입각하여 설명(說明)한 후에, 더 나아가서 그 길을 구체적(具體的)으로 설명(說明)하였다(히10:20절).


⑶.그런데 이 휘장(揮帳)은 곧 그분의 육체(肉體)시다. 성소(聖所)와 장막(帳幕) 안에 있었던 휘장(揮帳)은 그리스도의 몸을 상징(象徵)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운명(殞命)하셨을 때 성소(聖所)의 휘장(揮帳)이 찢어졌던 것이다. 그리고 휘장(揮帳)이 찢어지는 일은 저녁 제사(祭祀)를 드리는 시각(時刻)에 일어났다. 그러므로 제사(祭祀)를 드리고자 참석(參席)한 사람들은 그들이 전(前)에는 결코 보지 못했던 지성소(至聖所)를 볼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가 하늘나라로 갈 수 있는 길은 못 박히신 구세주(救世主)를 통해서만 가능(可能)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죽음은 우리에게는 생명(生命)의 길이 된다. 이 사실(事實)을 믿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는 귀중(貴重)한 분이 되실 것이다.


⑷.㉮.그 길은 “오직 한 길” 뿐이다. 

   이 길 이외(以外)에는 다른 길이 없다. 생명(生命)의 나무로 이르는 첫 번째 길은 오랫동안 폐쇄(閉鎖)되어 있었다(창 3:22).


㉯ 그 길은 “새로운 길”이다. 

  그것은 인간의 선행(善行)을 전체(全體)로 하는 계약(契約) 즉 구약(舊約)의 낡은 섭리(攝理)와는 상반(相反)되는 길이다. 그것은 Via nouissima(즉 최후의 길, 인간에게 알려질 수 있는 마지막 길이다.) 이 길로 가지 않는 자는 영원(永遠)히 그의 나라에 제외(除外)되어 버릴 것이다. 그러나 이 길로 가는 자(者)에게는 언제나 구원(救援)의 효력(效力)이 임(臨)할 것이다.


㉰.그 길은 “사는 길”이다. 

   행위(行爲)의 계약(契約)에 의거(依據)하여 하나님께로 이르고자 시도(試圖)하는 자는 죽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 길을 통하여 하나님께로 간다면 생명(生命)을 얻을 것이다. 그 길은 죽임을 당하셨으나 살아나신 산 구세주(救世主)를 통해 이루어진 일이다. 또한 그 길은 그곳으로 들어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생명(生命)을 주고 산 소망(所望)을 주는 길인 것이다.


㉱.그 길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휘장(揮帳)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길이다.  

  (히 10:19~22)


(03월03일(木) <그들이 하나님의 얼굴을 보게 됨>


(Q)~우리가 하나님의 도성(都城), 하늘 예루살렘에 이르렀다는 말의 의미(意味)는 무엇일까요? (히12:22~24)


(A)~⑴.우리가 하늘 도성(都城)즉 하나님의 임재(臨在)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장차(將次)미래(未來)에 일어날 일일뿐만 아니라 우리의 대표자(代表者)되시는 예수님을 통(通)하여 이미 이루어진 일인 것을 말씀 하고 있는바. 믿는 자들이 믿음을 통해 하늘 예루살렘에 있는 시온산에“이르렀다는 설명(說明)이다. 하늘 예루살렘은 ”바라는 것“그리고 ”보이지 않“으나 믿음을 통해 우리에게 확증(確證)된 곳의 영역을 말한다.(히 11:1) 


<결심(決心)과 적용(適用)>

(Q)~ 예수님께서 열어주신 새로운 살길을 통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방해(妨害)하는 것은 무엇이며, 그것들을 어떻게 극복(克服)할 수 있을까요?


(A)~각자(各者)에게 적용(適用)하여 결심(決心)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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