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과 새장(질문, 대답, 설명) 07/16/22 > 교과토의 자료

본문 바로가기

운영진
x


교과토의 자료 보기

교과토의 자료

제3과 새장(질문, 대답, 설명) 07/16/22

페이지 정보

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2-07-08 17:06 조회6,250회 댓글0건

본문

제3과 새장

(7월 16일 안식일 / 일몰: 오후 7시 53분)

 

연구 범위: 출 14, 출 15:22~27, 출 17:1~7, 눅 4:1~13, 벧전 1:6~9, 잠 3.

 

기억절: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벧전 1:6).

 

“밝은 대낮에 다른 노래 소리가 들려오는 동안에 새장 안에 있는 새는 조련사가 가르치려는 노래를 부르지 않을 것이다. 그 노래의 여기저기를 조금씩 따라하거나 흉내는 낼지라도 완전한 곡조를 배우지는 못한다. 그러나 조련사가 새장을 어두운 천으로 덮고 그 새가 부를 단 하나의 노래만을 들을 수 있는 곳에 놓아두면, 그 새는 어둠 속에서 그 노래를 배울 때까지 계속 반복하다가 마침내 완전한 곡을 노래하게 된다. 그런 다음에 그 새를 밝은 곳에 내어 놓으면, 그때부터는 항상 그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을 이와 같이 다루신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배우기를 원하시는 노래를 가지고 계신다. 우리가 그것을 고난의 그늘 아래서 배우게 되면 그 후로는 언제든지 그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된다”(엘렌 G. 화잇, 치료봉사, 472).

새장을 어둠 속으로 가져가는 이가 조련사 자신이라는 사실을 주목해 보라. 사탄이 우리에게 고통을 가져다준다는 사실을 이해하기는 쉽지만,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를 고통스러운 시련의 도가니로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 이번 주 학습 포인트: 어떤 경험이 고통을 수반할 것을 알면서도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특정한 상황으로 인도하시는 경우를 성경에서 발견할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 그들로 하여금 부르게 하고자 했던 새 노래는 무엇이었는가?

 

*학습 목표

- 깨닫기

하나님께서 때로 우리를 예상치 못한 길로 이끄시기도 하지만 그 경험을 통해 성장할 수 있음을 깨닫는다. 

- 느끼기

온갖 역경에 둘러싸여 있을 때도 하나님께서 여전히 우리 삶을 인도하고 계심에 감사한다.

- 행하기

하나님께서 여러 환경을 통해 우리에게 가르치시고자 하는 교훈들을 배우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한다.

 

TMI 위로

2. 하나님께서 이제 막 애굽에서부터 벗어난 이스라엘 백성들을 홍해로 인도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출 14장) 

※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고 절대적으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도록 하기 위하여.

3.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라와 르비딤에서 어떤 교훈을 배우기 원하셨습니까?(출 15:22~27, 17:1~7)

※ 그들의 모든 행로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은 필요를 반드시 해결해주시는 분이심을 깨닫기를 원하셨다. 

4. 사탄이 가져오는 죄의 유혹에 굴복하지 않고 시험에 이기기 위한 비결은 무엇입니까?(눅 4:1~13)

※ 말씀의 사람이 되어 오직 말씀으로 대처하는 것이다. 

5. 베드로는 시련 중에 있는 성도들에게 어떤 확신과 소망을 주었습니까?(벧전 1:6~9)

※ 믿음의 시련은 금보다 귀하여 영원한 영광을 맛보게 한다.

6.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의심하게 만드는 상황 속에 있는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성경의 약속은 무엇입니까?(렘 29:13, 롬 8:28, 고후 12:9) 

※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을 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며 족한 은혜를 경험하게 된다. 

 

결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서 항상 평안하고 성공된 길이 보장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유익을 위해 때로 예상치 않는 길로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 길이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그 길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목적을 발견하며 잘 참고 견디면 우리를 위해 약속된 영원한 상급을 분명 받게 될 것입니다.  

 

7월 10일(일) 막다른 길을 지나 약속의 땅으로

 

“바로가 가까이 올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 본즉 애굽 사람들이 자기들 뒤에 이른 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출 14:10).

 

누군가가 파 놓은 함정에 빠지거나 궁지에 몰린 적이 있는가? 간혹 예상치 못했던 ‘깜짝 생일 파티’를 열어주는 친구들이 있는 방으로 인도될 때는 기분이 좋을지 모르겠지만 학교나 직장에서 일어나는 모함이나 괴롭힘은 매우 불쾌하고 고통스러운 일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떠나던 날부터 약속의 땅에 이르던 날까지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을 그들에게 비추사 낮이나 밤이나 진행하게 하”셨다(출 13:21).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의 모든 여정을 인도하셨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가장 먼저 그들을 인도하신 곳은 어디였는가? 그들 앞에는 바다가 펼쳐져 있었고, 양 옆에는 산이 있었으며, 뒤에는 바로의 군사들이 추격해 오고 있었다.

 

출애굽기 14장을 읽어보라. 이스라엘 백성이 두려워할 줄 아시면서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런 곳으로 인도하신 이유는 무엇인가?

 

답: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능력을 더 확신하고 바로와 그 군대를 취급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모세의 말을 잘 듣도록 하시려는 뜻이 있었다.

 

‘불기둥과 구름기둥’이 우리를 언제나 행복에서 행복으로만 이끌어 준다는 보장은 없다. 그것은 때로 힘든 경험일 수도 있는데, 이는 의로 “만물보다 거짓된”(렘 17:9) 우리 마음을 훈련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 훈련을 거쳐 우리는 마침내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확신을 배우게 될 것이다. 그 확신은 시련과 고통이 사라지는 순간에 홀연히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분의 인도하심에 마음을 열고 우리의 생각과 뜻을 그분께 전적으로 복종시킬 때 비로소 깨닫는 것이다.

 

<묵상>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를 건너는 경험을 통해 무엇을 배웠습니까?(출 14:31)

 

답: 그들을 인도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경배하고 모세의 지시를 따라야 한다는 교훈을 배웠다.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행하신 그 큰 능력을 보았으므로 백성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와 그의 종 모세를 믿었더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최악의 상황에서 그들을 인도해 내신 하나님을 경험한 후에 비로소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종을 믿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거룩한 목적을 가지고 허락하시는 고난을 통해 우리는 분명 영적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고난이 낭비되는 시간이 아니라 성장의 시간이 되도록 날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겠습니다. 

 

<부가설명> 성경적 신앙의 길을 이 세상에서는 막다른 길일는지 모른다. 막다른 길은 더 이상 나아갈 길이 없는 골목에 들어선 길이다. 그때는 하늘로 오르든지 땅으로 꺼지든지 다른 방법이 없다. 땅으로 꺼지는 것은 죽는 것이다. 그러나 하늘로 오르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는 것이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은 막다른 골목에서 하나님께 부르짖고 모세를 원망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자기의 일을 하셨다. 출애굽기 7장에서 하나님은 모세가 바로 왕에게는 신이 되게 하신다고 말씀하셨다(7:1). 출애굽기 32장의 금송아지 사건에서 보는대로 이스라엘 군중들은 모세를 신처럼 여겼던으로 보인다. 그들은 홍해 앞에서 모세를 한나님의 대리자로 깊이 느꼈을 것이다. 인간의 불가능이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기회가 되었다. 성도들은 날마다 이 경험을 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스도인은 항상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분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생활을 해야 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사망의 세상이고 그 세력을 잡은 자 마귀는 항상 공격하기 때문이다. 우리 스스로는 하나님의 주신 영의 생명을 온전히 지킬 수 없다. 아직도 죄의 몸, 사망의 몸인 육신에 머물기 때문이다. 그 나라에 도착할 때까지 항상 시련을 겪는 것이 정상이다. 그래서 우리는 위엣 것을 바라보고 땅의 것을 보지 않아야 한다(골3:1~4).

 

<교훈>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에 이르기 위해서는 피할 수 없는 궁지를 거쳐야 했다. 우리도 약속의 땅에 이르기까지 시련 당하는 것을 이상히 여기지 말아야 한다.

 

7월 11일(월) 쓴 물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신 광야에서 떠나 그 노정대로 행하여 르비딤에 장막을 쳤으나 백성이 마실 물이 없는지라”(출 17:1).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을 다 주지는 않으실 것이다. 단,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실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있지 않겠는가? 우리 생각에 필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우리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들 말이다.

광야를 지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꼭 필요한 것은 바로 물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로 하여금 구름 가운데 홍해를 건너게 하신 후에, 사흘 동안 물이 없는 뜨거운 사막을 통과하게 하셨다. 물을 발견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 사막에서 그들이 얼마나 간절했을지 이해할 만하다. 그들은 그토록 갈망하던 물을 언제 얻게 될 것이었는가?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어디로 인도하셨는가? 구름 기둥은 마침내 그들을 물이 있는 마라로 인도했다. 그들은 분명 흥분했을 것이다. 하지만 물을 맛본 순간, 너무 써서 즉시 내뱉고 말았다. “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출 15:24).

그런 일이 있은 지 며칠 후에 하나님께서는 다시 한 번 같은 상황으로 그들을 이끄셨다. 하지만 이번에는 전혀 물이 없는 곳에 멈추게 하셨다(출 17:1).

 

출애굽기 15:22~27과 17:1~7을 읽어보라. 하나님께서는 마라와 르비딤에서 당신 자신에 관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무엇을 나타내 보이셨는가? 그들은 어떤 교훈을 배웠어야 했는가?

[출15:22~27]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길을 걸었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23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24 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25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26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27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에 물 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

[출17:1~17]1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신 광야에서 떠나 그 노정대로 행하여 르비딤에 장막을 쳤으나 백성이 마실 물이 없는지라 2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이르되 우리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 다투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느냐 3 거기서 백성이 목이 말라 물을 찾으매 그들이 모세에게 대하여 원망하여 이르되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가축이 목말라 죽게 하느냐 4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내가 이 백성에게 어떻게 하리이까 그들이 조금 있으면 내게 돌을 던지겠나이다 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백성 앞을 지나서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나일 강을 치던 네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라 6 내가 호렙 산에 있는 그 반석 위 거기서 네 앞에 서리니 너는 그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오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의 목전에서 그대로 행하니라 7 그가 그 곳 이름을 맛사 또는 므리바라 불렀으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다투었음이요 또는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 하였음이더라 8 그 때에 아말렉이 와서 이스라엘과 르비딤에서 싸우니라 9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 꼭대기에 서리라 10 여호수아가 모세의 말대로 행하여 아말렉과 싸우고 모세와 아론과 훌은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11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 12 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아 그가 그 위에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이 한 사람은 이쪽에서, 한 사람은 저쪽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 13 여호수아가 칼날로 아말렉과 그 백성을 쳐서 무찌르니라 1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 내가 아말렉을 없이하여 천하에서 기억도 못 하게 하리라 15 모세가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하고 16 이르되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과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

 

답: 그들의 필요를 언제나 공급하시는 능력의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셨다. 그들은 원망하지 않고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을 순종하며 따르는 것을 배워야 했다.

 

<묵상>

출애굽기 17:7을 읽어보십시오. 르비딤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떤 질문을 했습니까? 그대 또한 같은 질문을 했던 적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대가 필요로 하는 것을 허락하신 후에 어떻게 느꼈으며 어떤 교훈을 얻었습니까?

 

답: 하나님이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 라고 질문했다. 두 번째 질문은 각각 대답해보자.

 

“그가 그 곳 이름을 맛사 또는 므리바라 불렀으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다투었음이요 또는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 하였음이더라”(출 17:7).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에게 필요한 것이 눈앞에 보이지 않자 그들 가운데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필요를 채우시기 위해 이미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을 주시기 위해 준비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실 줄로 믿고 구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을 앞서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부가설명> 출애굽한 이스라엘을 인도하신 길은 우리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길이 아니다. 홍해길이 아니고 육지로 가나안에 이르는 길이 있었다. 출애굽기 13장에는 그길로 인도하지 않은 이유를 전쟁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출13:17). 바울은 고전 10장 1~4절에서 그들이 홍해를 건는 것은 침례를 받은 것이라고 했다. 신약성경의 이런 해석을 읽으면 출애굽의 길은 사람들이 걸어야 할 구원의 길을 상징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스도인이 하늘까지 가는 행로에는 이런 장애와 고난과 전쟁이 있다는 것을 배워야 하고 모든 길에 하나님께서 동행하시며 여행에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신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 처음부터 종말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길이 가장 안전하고 평안하며 생명의 길이라는 것을 배우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15장 25,26절에 기록한 대로 하나님께서 세우신 율례와 법도를 순종하고 자기의 욕망과 당장 눈에 보이는 대로 판단하고 원망하는 것을 버려야 한다. 

 

<교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마라와 르비딤으로 인도하신 것은 그들로 하여금 전적으로 그분을 신뢰하는 법을 배우게 하고자 하심이었다.

 

7월 12일(화) 광야에서의 대쟁투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강에서 돌아 오사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눅 4:1, 2).

 

누가복음 4:1~13을 읽어보라.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죄에 굴복하지 않고 시험에 이기기 위한 어떤 비결을 배울 수 있는가?

[눅4:1~13]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 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2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 이 모든 날에 아무 것도 잡수시지 아니하시니 날 수가 다하매 주리신지라 3 마귀가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이 되게 하라 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기록된 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였느니라 5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 만국을 보이며 6 이르되 이 모든 권위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7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 8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된 바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9 또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여기서 뛰어내리라 10 기록되었으되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너를 지키게 하시리라 하였고 11 또한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네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시리라 하였느니라 1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13 마귀가 모든 시험을 다 한 후에 얼마 동안 떠나니라.

 

답: 오직 기록된 성경말씀으로 시험을 이길 수 있다. 그 말씀을 온전히 신뢰하고  순종하는 믿음으로 예수님의 승리에 참여하게 된다.

 

시험이 견디기 힘든 까닭은 그것이 우리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들을 미끼로 사용하고, 또 언제나 우리가 가장 연약한 순간에 찾아오기 때문이다. 

누가복음 4장은 예수께서 사단에게 시험받으시는 이야기로 시작되는데, 우리는 그 이야기에서 좀 어려운 문제들을 마주하게 된다. 얼핏 보기에 성령께서 예수님을 시험받도록 인도하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무도 시험(tempt)하지 않으신다(약 1:13). 하지만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것처럼 그분께서는 우리를 시험(test)의 도가니로 이끄신다. 누가복음 4장에서 놀라운 것은 성령께서 우리를 사단의 맹렬한 유혹(temptation)에 노출되는 것을 포함하는 시험(testing)의 시간으로 이끄실 수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이러한 시험을 강하게 느낄 때는 우리가 하나님을 옳게 따르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오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꼭 그렇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견디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면 때때로 우리는 하나님의 영이 과연 우리를 인도해 오셨는지 의심하게 된다. 그러나 예수님을 광야로 인도하여 사단에게 시험을 받게 하신 것은 곧 성령의 인도하심이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시련에 들어가게 하실 때는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이루실 목적을 갖고 계신다. 예수께서는 자발적으로 시험에 들어가지 않으셨으며, 하나님의 약속을 앞뒤 생각 없이 믿거나 시험이 닥쳐왔을 때 낙심에 빠지지도 않으셨다.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한다”(시대의 소망, 126, 129).

 시련의 도가니에 빠지게 되면 우리는 종종 정결하게 되기보다는 좌절하고 낙담한다. 그러나 시험이 우리를 짓누를 때, 우리는 예수께서 변함 없이 굳게 서 계심을 믿고 다시 소망을 가질 수 있다. 우리를 위한 좋은 소식이 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셨고, 우리가 시험을 견디도록 모든 실패의 대가를 지불하셨으며, 우리가 당하는 어떤 시련보다도 더 가혹한 시련을 통과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결코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죄인 중에 “괴수”인 사람에게도(딤전 1:15) 여전히 희망이 있다.

 

<묵상> 

삶에서 마주하는 시련 가운데 우리가 소망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답: 예수께서 이미 모든 시련을 통과하시고 승리하셨기에 그분 안에서 우리도 이미 이긴 자로 여겨주시기 때문이다. 

 

<부가설명> 우리는 시련의 자리로 이끌림을 받는 것이 아니라 시련의 세상이라는 환경에 출생한다. 출애굽하는 이스라엘은 그들이 원하든, 않든 애굽이라는 나라에 노예로 출생하였다. 이스라엘 사람은 갓태어난 아기나 성장한 사람이나 그 신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 신분에서 벗어나는 것은 출애굽하는 것과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없다. 광야는 노예의 신분에서는 벗어났으나 가나안까지 도착하는 노정의 고난은 면제되지 않았다. 아직도 원수들이 노리는 환경이었고 또 생활환경은 사람이 살지 못하기에 꼭 알맞았다. “그들이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광야 곧 사막과 구덩이 땅, 건조하고 사망의 그늘진 땅, 사람이 그 곳으로 다니지 아니하고 그 곳에 사람이 거주하지 아니하는 땅을 우리가 통과하게 하시던 여호와께서 어디 계시냐 하고 말하지 아니하였도다”(렘2:6). 그런 환경에서 그들이 신뢰하고 의지해야 할 분은 그들을 이끌어내신 하나님뿐이었다. 예수님이 나가신 광야는 이스라엘이 통과한 광야를 상징한다. 예수님은 광야같은 세상에 출생하셨고 광야에서 구원을 이루셔야 했다. 성령께서 광야로 이끄신 것은 우리를 위한 것이었고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까지 생활하신 곳은 바로 사탄이 자기에게 넘겨준 것이라고 주장한 그 세상이었다. 이런 세상에 성령으로 잉태하여 탄생하신 것이다. 성령에 이끌리시며 시험을 받으셨다는 것은 이런 근본적인 사실이 포함된 말씀이다. 

 

<교훈>

때때로 성령께서 우리를 시련의 장소로 이끄시는 데는 분명한 목적이 있다. 우리는 시련 당할 때 예수님이 함께 계심을 믿고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 

 

7월 13일(수) 불멸의 유산

 

베드로전서 1:6, 7에서 베드로는 무엇이라고 이야기하는가?

[벧전1:6,7]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7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답: 시험을 당해도 크게 기뻐하라 시련으로 연단된 믿음은 금보다 귀하여 예수님 재림하실 때 칭잔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한다.

 

베드로는 역경과 싸우면서 혼자라고 느끼고 있는 사람들에게 편지하고 있다. 이 편지는 하나님으로부터 택하심을 받은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들(벧전 1:1)에게 보낸 것이다. 이곳은 오늘날 터키의 서부 지역으로 알려진 곳이다. 베드로는 몇 절 뒤에서 그들이 경험하고 있는 “여러 가지 시험으로 인한 근심”을 안다(벧전 1:6)고 말한다.

 

베드로가 말한 “흩어진 나그네’”란 무슨 뜻인가? 이와 같은 현실이 시련 중에 있는 그들을 어떻게 더 힘들게 했는가?

 

답: 여러 지역에 흩어져 살고 있는 성도들을 뜻하는데, 핍박으로 한 지역에 함께 살 수 없게 된 사실을 전제로 하는 말이다. 

  이들은 뭉친 힘으로 서로 격려하면서 난관의 대책을 세우기가 더 어려웠다.

 

그 시기에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일반적인 선택이 아니었기에, 신자들은 여러 지역에 흩어진 적은 무리로서, 소수가 겪어야 했던 편견과 박해를 피할 수 없었다. 그러나 베드로는 이러한 시련이 이유 없이 닥치는 혼란스러운 일이 아님을 확인시켜 주었다(벧전 1:6, 7). “여러 가지 시험”을 참고 견디는 자들의 목표는 참된 믿음을 갖는 것이었다.

 

베드로전서 1:6~9을 읽어보라. 베드로는 시련 중에 있는 이들에게 어떤 확신을 주고자 했는가? 그 소망은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벧전1:6~9]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7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8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답: 믿음의 시련은 금보다 귀하여 재림의 때에 칭찬 영광 존귀를 얻을 뿐만 아니라 믿음의 결국 영혼의 구원을 받게 된다. 

 

그들의 시련이 무엇이었든 간에, 그들이 겪은 고난이 어떠하였든 간에,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받을 영원한 상급과 비교할 수 없다. 우리가 어떤 상황을 마주하고 있는지와 상관없이, 베드로가 그들에게 한 말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비록 우리가 많은 시련으로 인해 고통을 당한다고 할지라도, 고난과 아픔과 죽음이 없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누릴 영원한 생명에 우리의 시선을 고정시켜야 한다.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 보장된 이 약속을 힘입어 우리는 시련 중에서도 믿음을 잃지 말고 믿음의 길을 가로막는 모든 것들을 제거해 주시도록 주님께 간구하여야 한다.

 

<묵상> 

우리가 믿음으로 인해 이 땅에서 시련을 당할 때 끝까지 바라보아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답: 예수님이다. 

 

<부가설명> 여러 번 말했지만 그리스도인이 현재 살고 있는 곳은 새 하늘과 새 땅이 아니다. 비유적으로 말하면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지나가는 광야다. 광야는 사람이 살지 못하기에 꼭 알맞은 땅이다(렘2:6). 그런 세상에서 새사람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환난과 핍박과 고난은 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새사람이 되었어도 우리 몸이 새 몸이 된 것이 아니다. 죄의 몸, 사망의 몸이다. 그런 몸이 새 생명으로 살아간다. 당장 몸 자체가 새 생명의 활동력을 제대로 작용하기에 어렵게 한다. 질병도 만나고 일하면 힘이 들고 환경에 따라 감당하기 어렵도록 고되기도 하다. 음식을 먹어야 힘을 얻고 활동할 수 있다. 음식은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다 직업을 가져야 하고 많은 사람들과 경쟁해야 한다. 이런 과정에서 옛사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술수를 사용하기도 하고 가능한 수단 방법을 동원하여 자기의 이익을 챙긴다. 그런데 믿음과 정직으로 일을 수행하려고 할 때에 본의 아닌 손해를 겪어야 하기도 하고 … 그래서 성령님의 손길을 따라서 끝날의 상급을 소망으로 바라보며 손해를 이익으로 생각하는 사고방식으로 극복하며 살아가야 한다. 결코 쉽지 않다. 그리스도인이 되어 산다는 것은 이런 시험과 시련을 당하며 주님 안에서 약속한 승리를 믿음으로 바라보며 살기로 한 것이다. 

 

<교훈>

우리가 세상에서 잠시 당하는 시련은 장차 받게 될 영원한 상급과 비교할 수 없다. 주님의 변함없는 약속은 우리로 하여금 시련을 견디게 해 준다.

 

7월 14일(목) 불 시험

 

알렉스(Alex)라는 청년이 있었다. 그는 매우 문제가 많은 청년기를 보냈다. 폭력과 마약에 연루되기도 하고 한동안은 교도소에 수감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물건을 훔쳤던 어떤 친절한 교인을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그의 마음을 예수님께 바쳤다. 그가 비록 여전히 남아 있는 과거의 습관들로 인해 힘들어하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그는 예수님 안에서 새 사람이 되었다. 그는 하나님을 사랑했으며, 그분의 명령에 순종함으로써 그 사랑을 표현하기를 원했다(요일 5:1, 2). 어느 순간 알렉스는 목회자가 되어야겠다는 강렬한 끌림을 받았다. 모든 상황이 그 방향을 가리켰다. 그는 아무런 의심 없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였다.

처음에 신학교 생활은 잘 되어 가는 듯이 보였다. 그런데 일이 하나씩 꼬이기 시작했고 그의 삶은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재정이 바닥나기 시작했다. 가까운 친구도 등을 돌렸고, 억울한 누명까지 쓰게 되어 알렉스의 평판은 점점 나빠져만 갔다. 게다가 건강까지 나빠졌는데 이유조차 알 수 없었다. 그로 인해 학업에 지장이 초래되었고 마침내 학교를 완전히 그만둬야 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싸이게 되었다. 무엇보다 그는 마약에 손을 대고 싶은 강렬한 유혹과 투쟁하고 있었는데, 마음만 먹는다면 인근에서 얼마든지 손쉽게 마약을 구할 수가 있었다. 마약의 유혹은 너무나 강력한 것이었다. 알렉스는 왜 이런 일들이 자기에게 일어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특별히 그는 주님의 인도를 따라 신학교에 왔다고 확신하고 있지 않았던가! 그가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인가? 그렇다면 그가 하나님과 가졌던 모든 경험은 커다란 실수였는가? 근본적인 믿음의 회의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하나님을 따른다고 고백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의심하게 되는 위기를 경험하게 된다. 그러한 순간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지금까지 나를 인도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기억하며 믿음과 인내를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실 것이다.

 

이러한 위기 가운데 있는 알렉스가 그대를 찾아와 조언을 구한다면, 무슨 말을 해 주겠는가? 알렉스 같은 사람에게 도움이 될 만한 경험을 한 적이 있는가? 어떤 성경절이 적절하겠는가? (잠 3장, 렘 29:13, 롬 8:28, 고후 12:9, 히 13:5)

[잠3:1~35] 각각 찾아서 읽어보자. 여호와를 의지하고 자기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렘29:13]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롬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고후12: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히13:5]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답: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갈바를 알지 못했으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움직였다. 결과는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길을 가고 있는 것을 알았다. 우리의 시련도 그런 결과에 이를 것이다. 요셉의 경우도 그렇다.

 

<묵상>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버리도록 공격하는 사탄의 유혹에 굴복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답: 하나님께 눈을 고정하고 자기를 완전히 맡기고 현실을 대하는 것이다. 

 

<부가설명> 요셉은 형들의 시기로 대상들에게 팔렸을 때 어땠을까?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우상에게 절하지 않았기 때문에 풀무불 속에 던져넣으려고 그들을 결박했을 때 어땠을까? 다니엘이 사자굴 속에 던짐을 받을 때 어땠을까? 초기교회 시대에는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을 견디어 낸 것을 생각하라 혹은 비방과 환난으로써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혹은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과 사귀는 자가 되었으니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소유를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소유가 있는 줄 앎이라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히10:32~36). 이런 형편이었다. 그래서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자고 권고하였다(히12:2). 여기 ‘바라보자’라는 헬라어는 ‘아포라오’인데 보는 그것만 보도록 주위의 모든 보이는 것은 없는 것처럼 여기는 주목이다. 예수님을 그렇게 바라보며 주의 시련이나 유혹이나 세상에서 제공하는 모든 좋은 것도 예수님을 떠나게 하는 것은 전혀 없는 것으로 여기는 상태를 나타낸다. 이런 믿음으로 굳게 서도록 성령께서 도우시기를 기도하자. 

 

<교훈>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당신의 자녀들에게 시험을 통과하도록 허락하시는데, 이는 맡기실 과업에 합당한 품성의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서이다.

 

7월 15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부조와 선지자> 281~290 ‘출애굽’, 291~302 ‘홍해에서 시내산까지’, <시대의 소망> 114~123 ‘시험’을 읽어보라.

 

“구약 시대에 여호와께서 당신의 백성을 르비딤으로 이끄셨던 것처럼 그분께서는 오늘날 우리를 그러한 곳으로 이끄셔서 우리의 충성심을 시험하실 것이다. 그분은 언제나 우리를 유쾌한 곳으로만 데려가지 않으신다. 만약 그렇게 하신다면 우리는 자만하여 그분이 우리의 조력자이심을 잊어버릴 것이다. 그분은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나타내기를 원하시며 우리의 필요를 풍성히 공급해 주기를 원하신다. 그분께서 우리에게 시련과 실망이 닥치도록 허락하시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무력함을 깨닫고 그분께 도움 구하기를 배우게 하고자 하심이다. 그분은 단단한 바위에서 시원한 시냇물이 흘러나오게 하실 수 있으시다. 우리가 얼굴을 대면하여 그분을 볼 때까지는 그분께서 우리를 위해 얼마나 많은 짐을 대신 지셨는지 알지 못할 것이며, 우리가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으로 그분께 그 짐을 가져가기만 하면 그분께서 우리의 짐을 대신 지시기를 얼마나 기뻐하셨는지를 알지 못할 것이다”(엘렌 G. 화잇, ‘르비딤,’ 리뷰 앤드 헤럴드, 1903년 4월 7일자).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우리는 종종 시험을 개인적인 문제로 이야기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신앙 공동체인 교회 전체에 닥치는 시험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우리가 함께 힘을 모아 경계해야 할 시험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 이단적 가르침이 교회를 침범할 때나, 교회 사업을 추진할 때 반대에 부딪힐 때 등등. 성도들은 기도와 믿음을 행사할 바로 그때에 기도와 믿음을 던져두고 인간적 감정으로 대하게 되는 때가 참으로 어렵다. 

 

2. 여러분이 속해 있는 교과반에서 원치 않는 시련을 경험했던 성도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십시오. 그와 같은 경험이 고통스럽게만 느껴졌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만일 그런 경험을 다시 해야만 한다면 시련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요?

※ 어떤 경우든지 말씀에 입각해서 예수님 중심으로 생각하는 믿음을 기르자.

 

3. 하나님께서 우리를 정결케 하시기 위해 시험을 허락하신다는 사실은 이해하지만, 갑작스럽게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것과 같은, 허망해 보이는 시련의 상황에 대해서는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 죄와 사망의 세상에서는 언제나 그런 위험이 있다. 그때도 주님을 믿는 믿음으로 극복해야 한다.

 

4. 교인들 가운데 시련 중에 있는 사람들을 알고 있습니까? 그들을 도와 줄 수 있는 가장 실제적인 방법은 무엇일까요?

※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다. 가능하다면 만나서 위로하고 함께 기도하자.

 

5. 삶에서 경험하는 시련들을 잘 감당하게 해달라고 서로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 아멘.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대총회 북아태지회 한국연합회 성경통신학교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한국연합회 선교부 | 고유번호증번호: 204-82-62040 | 대표자: 강순기 | 부서장: 신광철
Copyright © 2014 안식일학교·선교부 All rights reserved.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