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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과 예수,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분(질문, 대답, 설명)03/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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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2-03-05 02:13 조회5,55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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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과 예수,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분

(3월 12일 안식일 / 일몰: 오후 6시 36분)

 

연구 범위: 히 10:35~39, 롬 1:17, 히 11, 여 2:9~11, 히 12:1~3

기억절: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2:2).

 

 아마도 히브리서 11장과 12장은 히브리서에서 독자들로부터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장들일 것이다. 이 두 장에서는 그리스도인 삶을 우리 모두가 지금 참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끝까지 충성한 모든 자들에게 상급이 약속된 경주로 묘사한다. 또한, 구속의 드라마를, 과거 믿음의 백성들이 여러 고난에도 불구하고 인내로써 감당했으나, 아직 그 상급을 받지 못한 경주로도 묘사한다.

 구속의 드라마를 이와 같이 설명하는 이유는 그 이야기가 단지 그들의 이야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까지 이어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경주에 마지막 주자로 참여해 달리고 있다. 이 드라마는 예수님께서 결승지점에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다는 데서 절정을 이룬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믿는 자들을 응원하시며 그 경주를 어떻게 마쳐야 하는지 본을 보여 주신다. 예수님은 약속된 상급의 참됨에 대한 증인이시며, 우리에게 길을 열어 주시기 위해 앞서가신 분이시다(히 6:19, 20, 10:19~23).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이란 비록 약속의 성취를 아직 볼 수 없을지라도, 하나님의 약속에 확신을 갖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번 주 우리는 앞서간 믿음의 영웅들, 특별히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히 12:2) 예수님의 모본을 통해, 믿음이란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는지 공부할 것이다.       

       

*학습 목표

- 깨닫기

히브리서 11장에 기록된 믿음의 영웅들이 가졌던 믿음의 특징들을 이해한다.

- 느끼기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며 이 땅에서도 하늘 백성으로 살았던 인물들의 삶을 묵상한다.

- 행하기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분이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끝까지 믿음의 경주를 한다.

 

2.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꼭 필요한 덕목은 무엇일까요?(히 10:35~39)

※ 담대함과 인내.

3.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아들을 제물로 바친 아브라함의 믿음이 놀라운 이유는 무엇입니까?(히 11:17~19) 

※ 보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한 부활의 생명을 믿음으로 드러내었다.

4. 모세가 애굽의 모든 보화를 버리고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하기로 선택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무엇입니까?(히 11:24~26)

※ 보이지 않는 자를 보는 것 같이 하고 상 주심을 바라본 것이다. 

5. 이방인 기생 라합의 어떤 행동이 그녀를 믿음의 영웅 중 한 사람이 되게 했을까요?(히 11:31)

※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부터 광야를 거치는 동안 행하신 모든 것을 보지 못하고 들었으나 확신하고 행동한 것이다. 

6. 우리 앞에 놓인 믿음의 경주를 완주하기 위해 그리스도인들에게 필요한 삶의 모습은 무엇입니까?(히 12:1~3)

※ 인내로 예수님을 바라보겨 그분의 참으심과 고난을 깊이 생각하고 따라가는 것이다. 

 

결론

히브리서 11장에 등장하는 믿음의 영웅들은 비록 이 땅에 살고 있지만,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분명한 약속에 온전한 신뢰를 보이며 살아간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 또한 당신의 삶을 통해 완전한 믿음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우리 앞에 놓인 믿음의 경주를 완주해야 합니다.

 

 

3월 6일(일)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히브리서 10:35~39을 읽어 보라. 하나님께서는 이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계시는가?

[히10:35~39]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 36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37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38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39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답: 담대함을 버리지 말고 인내로서 재림이 아주 가까우니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지키라고 하신다.

 

 인내는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특징이다. 인내 없이는 허락된 약속을 받을 수 없다(계 13:10, 14:12). 그런데 믿음의 백성들이 인내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믿음을 “굳게 잡아야” 한다(히 10:23, 4:14). 바울은 광야 세대가 믿음이 부족했기 때문에 약속을 받지 못했음을 상기시킨다(히 3:19). 또한, 히브리서는 믿는 자들에게 허락된 약속의 성취가 문턱에 와 있으며(히 9:28, 10:25, 36~38), 그 약속을 받고 싶다면 믿음을 실천하라고 격려한다(히 10:39).

 바울은 하박국 2:2~4을 인용해 믿음을 설명한다. 하박국은 하나님께서 왜 악인이 의인을 압제하는 것을 그냥 두고 보시는 것이냐고 하나님께 질문했다(합 1:12~17). 선지자와 그의 백성들은 악인들로부터 고통당하고 있었고 하나님께서 개입해 주시기를 원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허락된 약속이 성취되기 위해 정해진 때가 있으며, 그들은 그때가 이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답하셨다(합 2:2~4). 하박국과 그의 백성들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약속과 그 약속의 성취 사이에 살고 있었다. 히브리서에서 하나님의 기별은 이어진다.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히 10:37, 참조, 합 2:3).

 이 기별은 예수님을 가리킨다. 그분은 의로우신 분이시며, 믿음의 실체이시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분이시고, 생명을 제공하는 분이시다(히 10:5~10).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지체”하실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분은 결코 지체하지 않으실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우리를 위해 돌아가시기 위해 오셨고(히 9:15~26), 정해진 때에 분명히 다시 오실 것이다(히 9:27, 28, 10:25).

 하나님의 기별은 이어진다.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히 10:38). 바울은 똑같은 말을 로마서 1:17과 갈라디아서 3:11에서도 반복한다. 하나님의 의가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한다고 기록된 로마서 1:16, 17은 큰 깨우침을 준다.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그분의 약속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먼저 있으며, 그 결과 그분의 신실하심이 우리의 믿음과 충성을 낳는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약속에 신실하시다는 사실이야말로(딤후 2:13) 의인이 충성된 삶을 살게 되는 이유이다.

 

<묵상>

우리의 믿음이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왜 중요할까요? 어떻게 하면 우리와 우리에게 허락하신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을 더 배우고 더 신뢰할 수 있을까요?

 

답: 하나님은 식언하지 않으신다(민23:19). 하나님의 말씀은 바드시 성취된다(사55:10,11).

 

<부가설명> 의인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예수님 안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의를 받은 사람이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율법 외에 나타난 하나님의 한 의이다(롬3:21). 구약성경은 이것을 처음부터 예언했고 예언으로 약속하신 대로 예수께서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사망을 처리하시고 부활하여 하나님의 생명을 드러내셔서 사람들이 알게 하셨다. 그것은 오직 예수님을 믿을 때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이유는 아담의 자손들은 생명이 없는 사람들이다(시78:39, 고전15:22, 마8:21,22). 생명이 없는 사망의 존재들이라서 사망의 부패하는 대로 행하다가(엡4:22) 마침내 존재를 상실한다. 그래서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한 것이라고 말한다(히9:27).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이 사망을 사망하게 하셨다. 그리고 부활하여서 죽을 수 없는 생명, 곧 하나님의 생명을 드러내셨다(딤후1:10).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고 이 부활의 생명인 하나님의 생명을 얻으면 생명의 존재가 된다(요일5:11,12). 하나님의 의가 된다(고후5:21). 그래서 의인은 믿음으로 사는 것이다. 예수님의 생명으로 산다는 말이다. 자주 하는 말이지만, 이런 의인은 예수님이 그 속에서 사시기 때문에 예수님이 하시는 것을 하지 않을 수 없고, 예수님이 하지 않으시는 것은 할 수가 없다. 이것은 믿음으로 산다는 말의 뜻이다.

 

<교훈>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반응하여 우리 또한 믿음을 굳게 잡고 인내로써 하나님께 충성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3월 7일(월)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히브리서는 믿음을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정의한다(히 11:1). 그런 후에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믿음이 무엇인지를 삶을 통해 보여 준 신실한 사람들의 목록을 제시한다. 

 

 히브리서 11:1~19을 읽어 보라. 이곳에 등장하는 믿음의 영웅들은 어떤 일을 통해 그들의 믿음을 나타내 보여 주었는가? 그들의 행동은 아직 보이지 않는 소망과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가? 

[히11:1~19]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2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3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4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5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7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 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9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10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 11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으나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음이라 12 이러므로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이 생육하였느니라 13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14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15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16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17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18 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19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답: 아벨은 가인보다 나은 제사드렸고, 에녹은 죽지 않고 하늘로 옮겨졌고, 노아는 방주 예비했고, 아브라함은 갈바를 알지 못했어도 말씀대로 갔고, 사라는 이삭을 낳았고, 아브라함은 독생자 이삭을 제물로 드렸다.

 

 아브라함은 11장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11장에 기록된 아브라함의 믿음의 행동은 참된 믿음의 본질을 잘 보여 준다.

 히브리서는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하신 하나님의 명령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과 상충되는 것처럼 보인다고 이야기한다(히 11:17). 이삭은 아브라함의 유일한 아들이 아니었다. 이스마엘이 아브라함의 장자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내 사라가 요청하는 대로 이스마엘과 그의 어머니를 쫓아내도 된다고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돌보실 것이기 때문이었다. 또한, 아브라함의 후손은 이삭을 통해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었다(창 21:12, 13). 그런데 바로 다음 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명령하신다. 창세기 22장에서 주신 하나님의 명령은 창세기 12~21장에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약속과 완전히 상충되는 것처럼 보인다.

 히브리서는 아브라함이 만일 자신이 이삭을 하나님께 바치면 하나님께서 이삭을 부활시켜 주실 것이라고 믿는 놀라운 방법으로 난제를 해결했다고 결론짓는다. 그런데 이 믿음이 놀라운 것은 그때까지 그 누구도 부활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이미 경험했던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고 그런 결론에 도달했던 것이었다. 히브리서 11:12은 이삭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에게서 잉태되었다고 이야기한다. 

 바울 또한 아브라함은 죽은 자 같았고 사라의 태는 전혀 잉태할 수 없을 것 같았지만,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많은 민족의 조상이” 될 것임을 믿었다고 이야기한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께서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심을 믿었기 때문이다(롬 4:17~20).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이미 한번 죽은 자에게서 이삭에게 생명을 주셨다면, 하나님께서 그와 같은 일을 다시 한번 하실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과거를 인도하셨던 하나님을 통해 그분께서 미래에 어떤 일을 하실 수 있는지 바라보았다.

 

<묵상>

지금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신뢰를 유지하기 위해 과거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어떻게 인도하셨는지 기억하는 것이 왜 그리도 중요할까요?

 

답: 과거에 형통하도록 인도하셨다면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미래도 확실히 그렇게 인도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부가설명> 성경은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말한다. 히브리서 11장을 보면 아벨이 첫째로 언급되는 믿음의 사람이다. 다음으로 에녹, 노아가 있다. 그런데도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였다. 왜 그럴까? 이유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자손을 통하여 모든 민족이 복을 받으리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이런 약속은 아브라함에게 처음 하신 것이기 때문인 것 같다. 바울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했을 때 ‘자손’이라는 말이 ‘단수’인 것을 지적하면서 그 한 자손이 바로 예수님이라고 설명한다(갈3:16).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칭해진다(갈3:29).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말은 예수님께 소속된 자라는 뜻이다. 우리가 예수님께 소속되었으면 예수님의 일을 해야 한다. 예수님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의 일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요8:39). 그것은 바로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을 뜻한다.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의를 받아 그 생명으로 생활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도록 살아가자.

 

<교훈>

아브라함은 과거에 인도하셨던 하나님을 통해 그분께서 미래에 어떤 일을 하실 수 있는지 바라보며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믿음의 행동을 했다.

 

 

3월 8일(화) 모세: 보이지 않는 것을 믿음

 

 히브리서 11:20~28을 읽어 보라. 이곳에 등장하는 믿음의 사람들은 어떤 일을 했는가? 그들의 행동이 아직 보이지 않는 소망과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가? 

[히11:20~28] 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있을 일에 대하여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으며 21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고 그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하였으며 22 믿음으로 요셉은 임종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떠날 것을 말하고 또 자기 뼈를 위하여 명하였으며 23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아니하였으며 24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25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27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왕의 노함을 무서워하지 아니하고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 같이 하여 참았으며 28 믿음으로 유월절과 피 뿌리는 예식을 정하였으니 이는 장자를 멸하는 자로 그들을 건드리지 않게 하려 한 것이며,

 

답: 여기 열거한 믿음의 사람들, 이삭, 야곱, 모세의 부모, 모세 등은 앞으로 있을 일들을 믿음으로 기대하면서 믿음을 나타낸 사람들이다. 

 

 모세는 믿음의 장에 등장하는 두 번째 주요 인물이다. 모세의 삶은 왕에 대한 두 가지 저항의 이야기로 시작되고 마무리된다. 모세의 부모는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모세가 태어났을 때 그를 숨겼다(히 11:23). 또한, 모세는 “왕의 노함을 무서워하지 아니하”고 애굽을 떠났다(히 11:27). 그 가운데 모세의 가장 중요한 행동은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받기를 거절”한 것이었다(히 11:24). 모세를 입양한 어머니를 가리켜 “바로의 공주”라고 언급한 것은, 그가 바로의 후계자가 되기로 예정되었음을 시사한다. 하지만 모세는 난민이나 다를 바 없는 이제 갓 해방된 노예들의 지도자가 되기 위해 당대의 가장 강력했던 국가의 통치자가 되는 길을 기꺼이 버렸다.

 

 히브리서 11:24~27과 10:32~35을 비교해 보라. 히브리서의 본래 수신자들의 상황과 모세의 경험 사이에는 어떤 유사점들이 있었는가?

[히11:24~27]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25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27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왕의 노함을 무서워하지 아니하고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 같이 하여 참았으며,

[히10:32~35]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을 견디어 낸 것을 생각하라 33 혹은 비방과 환난으로써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혹은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과 사귀는 자가 되었으니 34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소유를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소유가 있는 줄 앎이라 35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

 

답: 모세가 애굽의 왕좌를 버리고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받기로 선택한 것과, 히브리인 신자들이 안일하게 살다가 복음을 받고 구경거리가 되고 비방과 환난을 당한 것이다. 모세나 히브리인 신자들이 다 상주심을 바라보았다. 큰 상을 얻을 것이다.

 

 모세의 위대함은 그가 애굽 왕이 제시하는 것들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약속을 볼 수 있었다는 데 있었다. 히브리서는 모세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를 그의 시선이 애굽의 모든 보화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상”에 고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 “상”은 히브리서 10:35에 언급된 하나님께서 그분을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약속해 주신 바로 그것이다.

 바울이 말한 모세의 결정은 히브리서의 독자들의 마음에 큰 울림을 주었을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인해 당하는 비난과 모욕을 견뎌 내고 있었다. 그들은 핍박을 받아 재산을 잃기도 했다(히 10:32~34). 어떤 이들은 감옥에 갇혀 있었다(히 13:3). 마찬가지로 모세 역시 애굽이 주는 어떤 것보다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상을 더 큰 것으로 여기고, 애굽의 모든 보화 대신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고난받기를 선택했다.

 

<묵상>

그대가 가진 믿음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던 일들이 있습니까? 비록 지금은 볼 수 없을지라도 약속된 상이 가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답: 장래의 소망을 확실하게 하기 때문에 인내로 그날을 기대할 수 있게 한다.

 

 죄악이 가득한 세상에서 신실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힘겨운 삶 가운데 손에 잡히지 않는 듯 보이는 하나님의 약속으로 인해 마음에 의심이 들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분명히 이야기합니다.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롬 8:18).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약속하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분명히 이루실 것입니다. 그때까지 약속된 상급을 바라보며 믿음과 인내로 우리 앞에 놓인 경주를 해야겠습니다. 

 

<부가설명> 바울은 보이는 소망은 소망이 아니라고 했다.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롬8:24,25). 모세도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 같이 하여 참았다. 지금 우리의 미래가 밝게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믿음으로 그것을 보는 신령한 눈을 구하고 안약을 발라서 밝게 보면서 소망 중에 즐거워하고 인내해야 한다. 믿음에는 역사(役事)가 있고, 사랑에는 수고가 있으면 소망에는 인내가 있다(살전1:3). 구주를 약속하신 세월이 사천년이 지나서 성취되었다. 그 긴 세월을 믿음의 선조들을 참음으로 기다렸다. 우리도 그처럼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린다. 약속을 들었던 선조들이 다 죽은 후에 후손들이 소망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믿는데 성공하지 못했다. 은혜로 남은 자 된 사람들만이 믿었다. 그들이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었고 영생의 생명을 확인했다. 그러나 약속을 믿고 인내로 살다가 비록 잠이 들었어도 그들은 우리와 같이 생명의 부활로 일어날 때에 소망의 성취를 함께 보고 감사하고 찬양할 것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기록된 말씀을 깨달아 믿고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를 맞이하는 성도들이 되도록 다 인내로 승리하자.

 

<교훈>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약속을 볼 수 있었던 모세는 이제 갓 해방된 노예들의 지도자가 되기 위해 당대의 가장 강력했던 국가의 통치자가 되는 것을 포기했다.

 

 

3월 9일(수) 믿음으로 라합과 나머지 사람들은...

 

 히브리서 11:31과 여호수아 2:9~11을 읽어 보라. 이방인 기생 라합이 믿음의 영웅들이 기록된 히브리서 11장에 포함된 이유는 무엇인가?

[히11“31]

[수2:9~11]

 

 라합은 우리가 히브리서 11장에서 발견하는 가장 예상 밖의 인물일 것이다. 그녀는 목록에서 열 번째로 등장하는데, 앞서 등장하는 인물들은 이스라엘의 조상들과 부조들로서, 모두 의로운 자로 여겨진 자들이었다. 그런데 라합은 여자일 뿐 아니라 이방인 기생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라합이 히브리서 11장의 주제의 중심에, 그리고 11장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절정부에 등장한다는 점이다. 11장에 등장하는 각 인물들은 “믿음으로 누구누구가 이러이러한 일을 했다”거나 “믿음으로 누구누구에게 이러이러한 일이 일어났다”라는 반복되는 유형의 문장으로 소개된다. 그래서 독자들은 “믿음으로 여호수아가 백성들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여 들어갔더라”라는 구절을 자연스럽게 기대하게 된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기록하지 않는다. 여호수아가 등장하는 대신 기생이 그의 자리를 차지한다. 라합에 대해 언급한 후에 그동안 반복되어 오던 패턴은 “내가 무슨 말을 더하리요”(히 11:32)라는 말과 함께 갑자기 막을 내린다. 그리고 바울은 서둘러 자세히 설명되지 않은 몇몇 이름들과 사건들을 언급한다.

 라합이 보인 믿음의 행동은 그녀가 보지 못했음에도 듣고, 믿고, 순종했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애굽에 내린 열 재앙이나, 홍해를 건너는 사건이나, 반석에서 물이 나오는 것이나,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을 본 적이 없다. 하지만 그녀는 믿었다. 라합은 예수님의 설교를 직접 들어 보거나 그분의 기적을 본 적이 없던 히브리서의 독자들, 그리고 마찬가지 상황인 우리들에게 좋은 예가 된다.

 “라합은 여리고 성벽에 살았던 기생이었다. 그녀는 그 도시의 방어 상태를 정탐하기 위해 온 두명의 이스라엘 정탐꾼들을 숨겨 주었다. 그들에게 베푼 그녀의 친절과, 하나님께 대한 믿음의 고백으로 인해, 정탐꾼들은 여리고 성이 공격당할 때 라합과 그녀의 가족들의 목숨을 살려 주겠다고 약속했다”(하나님의 딸들, 35).

 바울은 그 후로 많은 이들이 경험했던 고난을 언급한다(히 11:35~38).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라는 표현을 통해 그들에게 고난을 피할 방법이 있었으나 그렇게 하지 않기로 선택했음을 헤아리게 된다. 그들의 시선은 하나님께서 주실 상에 고정되어 있었다.

 

<묵상>

비록 우리가 이런 일들이(6일간의 창조, 출애굽, 그리스도의 십자가) 일어나는 것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그 일들이 실제로 일어났다고 믿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답: 기록된 말씀이 역사적으로 증명된 것을 믿음으로 안다. 바울은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안다고 했다(히11:3).

 

<부가설명>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보지 못한 상태에서 사실이라고 알고 있는가? 역사가 그렇다. 한국 사람들은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만들고 13척 배로 300척 적선을 격파했다는 것을 믿는다. 아무도 증명해 보일 수 없는 이야기이다. 그런 사건을 기록한 그 기록을 믿는다. 그런 것 중에는 사실인지 아닌지 분명하지 않은 것도 있다. 그런데도 의심해 보지 않고 믿는다. 신기하지 않은가? 그런데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성경의 기록은 믿지 못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그러나 아메바가 진화해서 고등생물이 되고 마침내 사람이 되었다는 진화론을 믿는 사람은 부지기수이다. 신기한 사실이 아닌가? 창조주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일이고, 무생물에서 생물이 생겼는데 아메바 같은 것이 생겼으면 그것은 생명을 유지하면서 진화했다는 것은 믿을 수 있는 일이라고 하니 인간 지성이 어떻게 이렇게 비뚤어질 수 있다는 말인가? 오늘날 사람이 안다고 생각하는 대부분의 지식은 믿는 것들이다. 그렇거든 창조주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구원하시고 예수께서 재림하셔서 새 하늘 해 땅으로 회보해서 예수 믿는 사람들을 그 나라로 인도하여 영원히 함께 사시겠다는 성경의 약속은 왜 못 믿을까?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이것은 말이 안 된다. 진화론을 믿는 것과 비교해서 생각해 보라. 다만 믿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기 때문이다(롬1:28). 우리는 믿었으니 감사하고 믿게 하신 성령님의 은혜를 인하여 찬양해야 할 것이다. 

 

<교훈>

라합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직접 보지 못했음에도 듣고, 믿고, 순종했기 때문에 구원받았을 뿐만 아니라 믿음의 사람으로 기록되었다. 

 

 

3월 10일(목) 예수,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분

 

 히브리서 12:1~3을 읽어 보라. 이 말씀이 우리에게 무엇을 하라고 이야기하는가?

[히12:1~3]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3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답: 무거운 것,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고 인내로 경주마며 믿음의 주, 온전하게 하시는 분이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그분의 고난과 인내를 기억하고 경주하라고 한다.

 

 믿음에 관한 설명의 절정은 히브리서 12장에 등장하는 예수님이시다. “오실 이”, “지체하지 아니하”시는 예수님을 소개하면서 히브리서를 시작한 바울은(히 10:37) 이제 “온전하게 하시는” 분으로 그분을 설명하며 이 편지를 결론짓는다(히 12:2). 예수님은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분이시다. 이 말은 예수님이야말로 믿음을 가능케 하는 분이시며, 믿음의 삶이 어떤 것인지를 온전히 나타내 보여 주시는 분이라는 뜻이다. 예수님을 통해 믿음의 온전한 모습이 드러나게 되었다. 

 예수님은 적어도 세 가지 면에서 우리 믿음의 창시자가 되신다(히 12:2). 

 첫째, 그분은 경주를 온전히 마친 유일한 분이시다. 우리가 11장에서 살펴본 인물들은 그들의 목표 지점에 아직 도착하지 못하였다(히 11:39, 40).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셨으며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다. 우리는 다른 믿음의 백성들과 더불어 예수님과 함께 하늘에서 통치하게 될 것이다(계 20:4).

 둘째, 예수님의 완전한 삶이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그들 앞에 놓인 경주를 가능하게 한다(히 10:5~14). 만약 예수님께서 오지 않으셨다면 모든 사람의 경주는 헛된 것이 될 뿐이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이야말로 우리가 믿음을 갖는 이유이다. 하나님으로서, 그분께서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나타내 보여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하기 위한 그분의 노력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셨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포기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마침내 상급을 받게 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인내로써 경주를 하셨으며, 우리가 믿음 없이 행할 때에도 끝까지 신실하셨다(딤후 2:13). 우리의 믿음은 그분의 신실하심에 대한 반응일 뿐이다.

 믿음의 경주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온전히 보여 주신 예수님이야말로 우리 믿음을 “온전하게” 하시는 분이시다. 그분은 어떻게 달리셨는가? 

 예수님께서는 모든 특권을 내려놓으시고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리셨다(빌 2:5~8). 그분은 단 한 번도 죄를 짓지 않으셨다. 예수님께서는 그분의 시선을 자신 앞에 놓인 기쁨, 곧 그분의 은혜로 인류가 구원을 받게 되는 가장 큰 상에 두셨다. 예수님께서는 오해와 학대를 견디셨다. 그분께서는 십자가의 수치를 감당하셨다(히 12:2, 3).

 이제 우리가 그 경주를 할 차례이다. 비록 우리 스스로의 노력으로 예수님께서 이루신 것을 결코 이룰 수 없겠지만, 그분은 우리의 온전하신 모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에 대한 믿음으로, 그분을 바라보면서, 큰 상을 주시겠다고 하신 그분의 약속을 신뢰하면서, 믿음으로 이 경주를 마쳐야 한다.

 

<묵상>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님의 삶을 깊이 묵상하며 예수님의 모본을 따르기로 결심해 보세요.

 

<부가설명> 믿음은 믿는 사람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믿음에 긍정적인 반응하는 것에 불과하다. 예수님의 믿음은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첫째는 아버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신 것이고, 다음은 그분이 하실 구원사업이 반드시 성취된다는 것이다. 결과 아담 후손들 중에 충만한 수가(창1:28) 구원에 들어올 것이라는 확신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사람이 되셔서 아담과 그 후손을 대신하여 사망이 되어 십자가에서 사망을 폐하시고 또 부활하셔서 생명과 썩지 않을 것을 드러내셨다(딤후1:10). 이런 사실에 근거하여 예수님을 믿으라고 권고하신다. 그분을 믿고 그분께 나아가면 그분이 우리의 믿음을 온전하게 하신다. 그분은 믿음의 창시자시고 주인이시기 때문이다. ‘믿음의 주’라고 번역한 말은 ‘아르케고스’인데, ‘창시자, 우두머리, 통치자, 인도자’ 등의 뜻이다. 옛 번역은 ‘믿음을 주장하사 온전케 하시는 분’이라고 했다. 우리는 우리 믿음을 예수님 손에 맡겨야 한다. 그분께 나를 전부 맡기면 그분이 우리를 당신 안에 품으시고 하늘까지 걸어가신다. 이 경험이 날마다 우리 경험이 되도록 순간마다 호흡마다 굴복하자.

 

<교훈>

모든 믿는 자들은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분이신 예수님을 본받아 우리 앞에 놓인 믿음의 경주를 끝까지 마쳐야 한다. 

 

 

3월 11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것이 되는 동시에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자라날 것이다. 즉 바치고, 받음으로 자라날 것이다. 그대들은 모든 것-마음과 의지와 봉사-을 바칠 것이니 그의 모든 요구를 응하기 위하여 그대 자신을 그에게 바칠 것이다. 그리고 모든 것-그대의 마음 안에 계셔서 그대의 힘과 그대의 의와 그대의 영원한 돕는 자가 되시는 온갖 축복이 충만한 그리스도-을 받아들여서 하나님을 순종할 힘을 얻을 것이다”(정로의 계단, 70).

 

 “하나님께서는 결코 우리의 믿음의 기초가 될 만한 충분한 증거도 주시지 아니하고 우리에게 믿으라고 요구하시지 않는다. 그의 존재, 그의 품성, 그의 말씀의 진실성들은 모두 우리 이성에 호소하는 수많은 증거가 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의혹될 만한 점을 없이하여 버리지 않으셨다. 우리의 믿음은 증거 위에 세울 것이요 실증 위에 세울 것이 아니다. 의심하고자 하는 자들은 그리할 조건이 있을 것이나 참으로 진리를 알고자 갈망하는 자들은 저희의 믿음을 세울 만한 증거를 많이 찾게 될 것이다. 

 생각이 유한한 인간으로는 무한하신 자 하나님의 품성과 그의 하시는 일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아무리 명민한 지능을 가진 자나 아무리 최고의 교육을 받은 자라도 그들에게는 언제나 거룩하신 자는 신비에 싸여 있는 것이다”(정로의 계단, 105).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히브리서 11:3은 “믿음으로...아나니”라고 이야기한다. 믿음과 이해는 어떤 관계인가? 종종 믿음이 이해보다 앞서 오는 이유는 무엇인가? 다시 말해, 가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에 먼저 믿음으로 다가가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그렇게 했을 때 더 깊은 이해가 따라오는 이유는 무엇인가?

※ 믿지 않으면 지식이 자기것이 되지 않는다. 이해하는 것도 믿기 때문에 이해하게 된다. 지구가 돈다는 것은 우리의 믿음이다. 그래서 지구가 회전한다는 것을 안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2. 피스티스(pistis)라는 헬라어는 ‘믿음’ 또는 ‘신실함’이라는 두 가지 뜻을 가지고 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제대로 깨닫기 위해 이 단어가 가진 두 가지 의미 모두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히브리서 11장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그들의 믿음의 실체를 어떻게 보여 주었는가? 어떻게 하면 우리도 그와 같이 할 수 있는가?

※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자기가 믿는 것을 생활의 신실함으로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그들은 생활로 그들이 믿음을 드러내었다. 그래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었다고 가르친다.

 

3.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다(롬 12:3). 단, 그 선물을 받고 유지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인가?  

※ 선물을 받기 위하여 주시는 분에게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잘 간직하고 보관하고 관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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