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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과 휘장 가운데로 길을 여심(질문, 대답, 설명) 03/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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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2-02-26 02:15 조회5,86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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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과 휘장 가운데로 길을 여심

(3월 5일 안식일 / 일몰: 오후 6시 29분)

 

연구 범위: 히 9:24, 출 19:3, 4, 히 12:18~21, 레 16:1, 2, 히 10:19~22, 골 3:1

기억절: “그리스도께서는 참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바로 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히 9:24).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신 후 제자들이 감람산에서 돌아왔을 때, 그들의 마음은 기쁨과 환희로 가득했다. 그들의 주인이요 친구 되시는 예수님께서는 세상을 다스리는 자리로 올라가셨으며,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에 분명히 응답하시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그분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나오라고 초청하셨다(요 14:13, 14). 비록 그들은 여전히 이 땅에 있었으며, 악한 권세가 그들을 공격했지만, 그들의 소망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그들이 있을 곳을 예비하기 위해 하늘로 올라가신 것을 알고 있었다(요 14:1~3). 그들은 예수님께서 구원의 대장이시며 그분의 피로 하늘 본향으로 향하는 길을 열어 주신 것을 알고 있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것은 히브리서 신학의 중심이다. 그것은 예수님의 통치의 시작을 알릴 뿐 아니라 우리를 위한 그분의 대제사장 사역의 시작을 나타낸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승천은 믿음으로 담대하게 하나님 앞으로 나올 수 있도록 하는 새 언약이 언제 시작되었는지 알려 준다는 사실이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과 그분의 의의 공로를 통해 담대히 하나님 앞으로 나갈 수 있는 특권을 갖고 있다.

 

*학습 목표

- 깨닫기

예수님께서 승천하셔서 하나님 앞에 서 계심으로 우리에게 새로운 살길이 열렸음을 깨닫는다.

- 느끼기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며 구원의 확실한 소망 가운데서 살 수 있게 됨을 감사한다.

- 행하기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초청에 적극적으로 반응하여 담대히 하나님 앞으로 나아간다. 

 

2. 예수님께서 승천하셔서 하나님 앞에 나타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히 9:24)

※ 우리를 위하여 나타나셨다. 그분 안에서 우리도 하나님 앞에 나타나게 되었다.

3. 하나님 앞으로 나오라는 하나님의 초청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반응했습니까?(히 12:18~21)

※ 두려움으로 반응했다. 

4.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들 사이에 존재했던 휘장의 목적은 무엇이었습니까?(레 16:1, 2)

※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가르쳐주신다.

5. 예수님께서 승천하셔서 하나님 앞에 서 계신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주는 희망은 무엇입니까?(히 10:19~22)

※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이미 하나님 앞에 있다는 확신과 소망을 확실하게 한다.

6. 우리가 하나님의 도성, 하늘 예루살렘에 이르렀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요?(히 12:22~24)

※ 우리가 예수님 안에 있다는 뜻이고 성경에 약속한 모든 허락이 진실임을 확증해주는 것이다.

 

결론

예수님의 승천은 모든 믿는 자들에게 허락된 하나님의 약속이 참된 것임을 확증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새로운 살길을 열어 주었습니다. 이 사실을 확실히 믿는다면 우리는 이 땅에서부터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서 사는 행복을 맛볼 수 있습니다.

 

2월 27일(일) 아버지 앞에 계신 예수님

 

 히브리서 9:24을 읽어 보라.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목적은 무엇이었는가?

[히9:24]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바로 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답: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려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그들 가운데 있는 남자들은 “여호와를 뵈옵기” 위해 예물을 가지고 매년 세 번씩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야 한다고 지시하셨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도록 지정된 때는 유월절(무교절)과 칠칠절(오순절)과 초막절이었다(출 23:14~17, 신 16:16). 유월절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부터 구원함을 받은 것을 기념하는 날이었다. 오순절은 밀의 추수를 기념하는 날이었는데, 신약에 이르러서는 이날이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은 것과 연관되었다. 초막절은 그들이 광야에서 거할 때 하나님께서 돌보신 것을 기념하는 날이었다. 구약의 모든 절기에는 예언적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히브리서 9:24은 예수님께서 하나님 앞으로 승천하신 모습을 묘사한다. 예수님께서는 더 좋은 제물, 곧 자신의 피로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기” 위해 “참것”인 하늘 성소에 도착하셨다(히 9:23, 24).

  예수님께서는 순례 여행 절기들의 예언적 의미를 놀라운 정확성으로 성취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유월절을 준비하는 날 제 구시에 돌아가셨는데 바로 유월절 어린양들을 바치던 때였다(요 19:14, 마 27:45~50). 예수님께서는 삼 일째 되는 날 부활하셔서 당신의 희생이 가납되었음을 확증하시기 위해 승천하셨는데(요 20:17, 고전 15:20), 그때는 제사장이 익은 밀의 단을 첫 열매로 흔들어야 하는 때였다(레 23:10~12).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 오순절에 새 언약을 개시하시기 위해 40일 후에 승천하셨다(행 1, 2장).

 고대 이스라엘에서 순례 여행의 목적은 “하나님의 얼굴을 뵈”옵기(시 42:2) 위함이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다는 의미였다(시 17:15). 마찬가지로 히브리어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한다”라는 표현은 하나님께 도움을 구한다는 뜻이다(대하 7:14, 시 27:8, 시 105:4). 

 히브리서에서도 예수님의 승천은 마찬가지 의미를 갖는다. 예수님께서는 온전한 제물로서 하나님께로 올라가셨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보다 앞서가신 분으로서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셨다(히 6:19, 20). 그분께서는 “본향을 찾”는 여행길에서 “더 나은 본향”을 바라며,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라는 모든 믿는 자들에게 허락된 약속을 실현해 주셨다(히 11:10, 13~16).

 

<묵상>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일뿐만 아니라 지금 하늘에서 행하고 계신 일이 우리에게 구원의 확신을 주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답: 그분이 이미 하늘에 가셨는데 그것은 우리가 하늘에 간다는 보증이다. 동시에 날마나 우리를 정결하게 하시는 일을 하심으로 우리를 항상 정결하게 하시는 확신을 할 수 있다.

 

<부가설명> 야곱은 외삼촌 집으로 가는 길에 루스 마을 들판에서 야영을 했다. 그때 사다리가 하늘까지 닿았고 천사들이 오르내리는 꿈을 꾸었다. 그 사다리가 예수님이라고 나다나엘에게 말씀하셨다(요1:51). 그것은 예수께서 하늘 가는 길이 되신다는 것을 계시하신 것이다. 그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승천하시므로 성도들도 부활하여 하늘로 가는 길을 여신 것이다. 6장에 “우리가 이 소망이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가나니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가셨느니라”(19, 20). 우리를 위하여 들어가셨다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길이시다. 그분이 먼저 가셔서 닦아놓은 그 길은 그분의 백성들이 마음놓고 들어올 수 있는 길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그 길을 걸어가면 당당히 하늘에 들어갈 수 있다(엡3:12). 예수님이 승천하신 것은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승천한다는 확실한 보증이다. 할렐루야!

 

<교훈>

예수님께서는 더 좋은 제물로 승천하셔서 우리를 위해 하나님 앞에 나타나심으로 모든 믿는 자에게 허락된 약속을 확증해 주셨다. 

 

 

2월 28일(월) 하나님의 초청

 

 히브리서 12:18~21을 읽어 보라. 시내산에서 이스라엘은 어떤 경험을 했는가?

[히12:18~21] 너희는 만질 수 있고 불이 붙는 산과 침침함과 흑암과 폭풍과 19 나팔 소리와 말하는 소리가 있는 곳에 이른 것이 아니라 그 소리를 듣는 자들은 더 말씀하지 아니하시기를 구하였으니 20 이는 짐승이라도 그 산에 들어가면 돌로 침을 당하리라 하신 명령을 그들이 견디지 못함이라 21 그 보이는 바가 이렇듯 무섭기로 모세도 이르되 내가 심히 두렵고 떨린다 하였느니라.

 

답: 무서운 경험이었다. 모세도 ‘내가 심히 두렵고 떨린다’하였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불러내셨을 때, 하나님의 계획은 그들과 개인적이고 친밀한 관계를 맺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다(출 19:3, 4).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이 그분을 만날 준비를 할 수 있도록 모세를 통해 필요한 설명을 주셨다. 백성들은 먼저 자기 자신들을 성결케 해야 했다(출 19:10~15). 준비 없이 산에 올라가는 자들은 죽게 될 것이었다. 백성들은 이틀 동안 준비를 마치고 셋째 날에 “나팔을 길게 불거든 산 앞에 이를 것이니라”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출 19:13).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백성의 지도자들이 산에 올라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하나님을 뵙고, 먹고 마시는” 경험을 백성들 또한 하게 되기를 원하셨다(출 24:9~11). 훗날 백성들은 그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으며 하나님께서 “사람과 말씀하시되 그 사람이 생존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나(신 5:24) 정작 그 순간이 다가왔을 때, 그들은 믿음이 부족했다. 모세는 나중에 이렇게 설명했다. “너희가 불을 두려워하여 산에 오르지 못하”였노라(신 5:5). 대신, 그들은 모세에게 그들의 중재자가 되어 달라고 요청했다(신 5:25~27, 비교, 출 20:18~21).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당신의 거룩함을 나타내신 것은, 백성들에게 그분을 “경외” 하는 것, 또는 존경하는 것을 가르치시기 위함이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생명과 지혜와 영예를 가져다줄 뿐만 아니라(신 4:10, 비교, 시 111:10, 잠 1:7, 9:10, 10:27), 하나님이 얼마나 자비롭고 은혜가 많으신 분인지 가르쳐 준다(출 34:4~8).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당신께 나오기를 원하셨지만, 백성들은 두려워하며 모세에게 그들의 중재자가 되어 달라고 요청했다. 

 시내산에서 일어난 사건들에 대한 히브리서의 기록은 주로 백성들의 믿음의 부족과 금송아지로 인해 일어난 반역, 그리고 그들의 죄 때문에 자신이 하나님 만나기를 얼마나 두려워했는지에 대한 모세의 기억을 인용한다(신 9:19). 백성들의 그런 반응은 그들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 아니었다. 그 모든 일들은 그들이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묵상>

거룩하신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가 되시는 예수님을 묵상해 보십시오. 하나님 가까이로 나아가기 위해 우리가 할 일은 무엇입니까? 

 

답: 오직 예수님 안에 있는 것이다.

 

<부가설명> 하나님께서 시내산에 나타나신 것은 그들을 두렵게 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이 하나님을 올바르게 경외하도록 가르치시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백성들은 애굽에서 권력이 공포로 나타나는 것을 경험했기에 불꽃 중에 나타나신 하나님의 위엄을 보고 그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바울은 우리에게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준엄하심이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으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롬11:22). 많은 신자들이 하나님의 엄위만 본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의 인자를 보라고 권한다. 그렇게 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인자를 맛볼 것이고 엄위를 보는 사람들은 준엄함이 그들에게 임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준엄하심’이 개역에는 ‘엄위’로 번역되었다. 헬라어로는 ‘아포토미아’인데, ‘엄격, 준엄’이라는 뜻이다. 같은 의미이다. 하나님의 엄위 쪽을 보는 사람들에게 두려움이 있다. 인자하심을 보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기쁨과 즐거움이있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준엄함 쪽을 보았다. 그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하나님의 사랑을 보지 못한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요일4:16,18). 하나님의 사랑의 초청을 두려움을 거리를 두지 않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 사랑 안에서 감사와 기쁨으로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녀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교훈>

하나님께서는 시내산에서 당신의 거룩함을 나타내심으로 백성들에게 하나님 경외하는 법을 가르치시려고 했으나 그들의 믿음 없음으로 인해 실패하였다.

 

 

3월 1일(화) 휘장의 필요성

 

 휘장은 이중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 히브리서에서 휘장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한 단어(katepetasma)는 뜰의 가림막(출 38:18), 성소의 바깥쪽 칸의 입구를 가리는 가림막(출 36:37), 또는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는 휘장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출 26:31~35). 이 세 휘장들은 입구인 동시에 정해진 사람들만 들어갈 수 있는 경계를 표시하는 것이었다.

 

 레위기 16:1, 2, 10:1~3을 읽어 보라. 이 말씀들은 무엇에 대한 경고를 하고 있는가?

[레16:1,2] 아론의 두 아들이 여호와 앞에 나아가다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니라 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형 아론에게 이르라 성소의 휘장 안 법궤 위 속죄소 앞에 아무 때나 들어오지 말라 그리하여 죽지 않도록 하라 이는 내가 구름 가운데에서 속죄소 위에 나타남이니라.

[레10:1~3]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께서 명령하시지 아니하신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 2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은지라 3 모세가 아론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라 이르시기를 나는 나를 가까이 하는 자 중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겠고 온 백성 앞에서 내 영광을 나타내리라 하셨느니라 아론이 잠잠하니,

 

답: 속죄소 앞에 아무 때다 들어가면 안 된다는 것을 경고한다.

 

 휘장은 제사장들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봉사하는 동안 그들을 보호하는 것이었다. 금송아지를 만드는 죄를 범한 후에,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이르게 하려니와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아니하리니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인즉 내가 길에서 너희를 진멸할까 염려함이니라”(출 33:3). 그래서 모세는 회막을 옮겨 진 밖에 쳐서 진과 멀리 떨어지게 했다(출 33:7). 모세가 백성들을 위해 중재한 후에, 하나님께서는 그들 가운데 거하시며 그들과 함께 가시기로 동의하셨다(출 33:12~20).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그들 가운데 거하시는 동안 백성들을 보호하시기 위해 몇 가지 조치를 취하셨다.

 예를 들면, 이스라엘은 그들의 진영 가운데 사각형의 공간이 나오도록 정확한 규정에 따라 진을 쳤고 그 공간에 성막을 설치했다. 뿐만 아니라, 레위인들은 낯선 이들의 침범으로부터 성소와 그 기구들을 보호하기 위해 성막 사면에 진을 쳤다(민 1:51, 3:10).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호하기 위한 인간 휘장 같은 것이었다. “레위인은 증거의 성막 사방에 진을 쳐서 이스라엘 자손의 회중에게 진노가 임하지 않게 할 것이라 레위인은 증거의 성막에 대한 책임을 지킬지니라 하셨음이라”(민 1:53).

 예수님 또한 우리의 제사장으로서 우리의 휘장이 되어 주셨다. 그분의 성육신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장막을 우리 가운데 치시고 우리가 그분의 영광을 바라볼 수 있게 하셨다(요 1:14~18). 예수님께서는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불완전한 사람들 가운데 함께 계실 수 있게 하셨다.

 

<묵상>

우주 만물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도망한 노예들에 불과했던 백성들 가운데 거하신다는 것이 어떤 의미였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이 사실이 하나님께서 우리와 얼마나 가까이 계실 수 있는지에 대해 무엇을 가르쳐 주나요? 

 

답: 하나님께서는 우리을 정결하게 하셔서 함께 거할 수 있도록 자격을 주시고 함께 거하시는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이시다. 

 

<부가설명> 성소를 만들고 세우게 하실 때 삼중 막이 있었다. 성소 밖 지역과 구별하는 휘장(揮帳), 성소 뜰과 성소를 구분하는 휘장,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는 휘장이었다. 교과 저자의 설명을 보면 아마도 이 셋을 다 ‘카타페타스마’라고 부른 것 같다. 이 휘장들은 구분하는 기능으로서 자연인의 상태로 이 휘장을 함부로 넘을 수 없었다. 휘장 안은 거룩하게 구분된 공간이었다. 이 공간에는 하나님께서 허락한 사람만이 드나들 수 있었다. 제사장과 레위인들이다. 그리고 제사를 드리러온 사람들이 허락을 받고 들어갈 수 있는 장소였다. 그런데 예수님이 휘장이라고 히브리서는 말한다(히10:20). 예수께서 하늘을 여시고 먼저 하늘로 들어가셨는데, 그분이 십자가에서 그 몸을 찢으셔서 유리가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여신 것이다(히6:19,20). 우리 스스로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다. 그러나 예수님을 통하여 지금도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 십자가를 지실 때, ‘다 이루었다.’라고 하실 때 성전 휘장이 찢어진 것은 하나님의 보좌에 예수님을 통하여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는 진리를 나타내었다. 우리는 지금도 예수님 이름으로 성령님 안에서 기도할 때 아버지 하나님 앞에 바로 나가는 경험을 하는 것이다. 이 경험이 날마다의 경험이 되어 거룩한 삶을 살아가도록 은혜로 이끄신다. 말씀이 육신이 되심으로 그분은 우리 중에 거하시는 하나님이 되셨고 그분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며 은혜를 누리게 된 것이다. 

 

<교훈>

예수님께서 성육신하셔서 우리를 위한 휘장이 되어 주심으로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장막을 우리 가운데 치시고 우리가 그분의 영광을 바라볼 수 있게 하셨다.

 

<적용>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 거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그대 삶의 현장과 마음 가까운 곳에 모시기 위해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3월 2일(수)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길

 

 히브리서 10:19~22을 읽어 보라. 이 말씀에서 우리는 어떤 초청을 받고 있는가?

[히10:19~22]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21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답: 성소에 들어갈 수 있다는 초청이다. 

 

 히브리서는 예수님께서 하늘 성소에 들어가셨으며 우리 또한 그분의 인도를 따르도록 초청하신다고 이야기한다. 이와 같은 가르침은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예수님이 모든 믿는 자들의 “대장”이시며 “앞서가신”분이라는 개념과 일치한다(히 2:10, 6:19, 20, 12:2). “새로운 살길”이란 예수님께서 그분의 희생과 승천을 통해 개시하신 새 언약이다. “새롭고 살아 있는”이라는 표현은 옛 언약을 “낡아지고 쇠하는”(히 8:13) 것으로 묘사한 것과 대조를 이룬다. 새 언약은 죄를 용서받을 수 있게 하고, 하나님의 법을 우리 마음에 기록하며, 담대히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도록 우리를 초청한다. 그것은 결코 우리 자신이나 우리가 행한 일 때문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께서 모든 언약의 의무를 성취하심으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 덕분이다.

 히브리서는 옛 언약이 개시되었을 때 성소를 세우고 제사장을 성별(聖別)하는 일도 함께 시작되었다고 이야기한다(히 9:18~21, 비교, 출 40장, 레 8, 9장). 언약의 목적은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들 사이에 밀접한 관계를 만드는 것이었다(출 19:4~6).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관계를 받아들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 가운데 거하시기 위하여 즉시 성소를 짓게 하셨다. 성소의 개시와 당신의 백성들 가운데 거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언약이 완성되었음을 나타내는 표시였다. 

 새 언약 또한 마찬가지이다. 새 언약 역시 우리를 위한 예수님의 제사장 사역이 시작되었음을 의미한다(히 5:1~10, 7:1~8:13).

 예수님께서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신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렸다. 스가랴 3장은 사탄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적하기 위해 하나님 앞에 서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그 순간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표하고 있었다. 

 이 고소자는 하나님을 향한 욥의 충성심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했던 자와 같은 존재이다(욥 1, 2장). 그러나 예수님의 희생으로 인해 사탄은 하늘에서부터 쫓겨나게 되었다(계 12:7~12, 비교, 요 12:31, 16:11). 이제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는 분은 예수님이시며 그분은 당신의 희생과 신실하심을 통해 우리의 구원을 주장하신다!

 

<묵상>

 사탄이 그대를 정죄하려는 목적으로 할 수 있는 한 얼마나 많은 거짓말을 하나님 앞에서 만들어 낼지 생각해 보십시오. 그 상황 속에서 그대의 유일한 희망은 무엇일까요?

 

답: 예수 그리스도 안에 숨어 있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부가설명> 성소 휘장이 예수님의 육체를 상징한다고 히브리서 10:20은 계시한다. 성소로 우리에게 계시한 진리를 이것만이 아니다. 성소 자체가 바로 예수님을 상징한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할 성소를 지으라’(출25:8)라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사람들과 함께 거하신다는 말이 ‘임마누엘’이다(마1:23). 예수님의 칭호 중에 하나가 바로 임마누엘이다. 성소에 배치된 모든 기구는 물론 성소 구조도 예수께서 행하실 구원사업의 부분들을 상징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성소 연구를 하는 것이다. 성소 구조와 기구와 봉사를 정확하게 하는 것은 예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어떤 봉사를 하시는지 자세히 알게 하는 비유 실물교훈이다. 성소는 비유라고 하였다(히9:9). 성소 진리를 바르게 깨달으면서 재림교회가 성립되었다. 예수님으 재림교인들이 성소 진리를 자세히 설명할 수 있도록 성소 진리 공부를 부지런히 하고 확실히 알며 또 자세히 확신을 가지고 설명할 수 있는 교사들이 되기를 기대하시지 않을까?

 

<교훈>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온전한 희생과 승천을 통해 새 언약을 개시하심으로 모든 믿는 자들을 위한 새로운 살길을 열어 주셨다.

 

 

3월 3일(목) 그들이 하나님의 얼굴을 보게 됨

 

 히브리서 12:22~24을 읽어 보라. 우리는 하늘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임재 안에 도착했는가? 어떤 의미에서 그러한가?

[히12:22~24]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 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23 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모임과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하게 된 의인의 영들과 24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것을 말하는 뿌린 피니라.

 

답: 예수님 안에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뿌린 피가 그를 믿는 사람들을 예수님 안에 있도록 하며 그분 안에서 보좌 앞에 함께 있다.

 

 오늘의 본문은 믿는 자들이 믿음을 통해 하늘 예루살렘에 있는 시온산에 “이르렀다”고 설명한다. 이런 의미에서 그들의 경험은 미래를 바라본다. 하늘 예루살렘은 “바라는 것” 그리고 “보이지 않”으나 믿음을 통해 우리에게 확증된 곳의 영역에 속한다(히 11:1).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것이 본문이 말하려고 하는 의미의 전부는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대표자 되시는 예수님을 통해 시온산에 있는 하나님의 임재 안에 이미 도착했기 때문이다(엡 2:5, 6, 골 3:1). 예수님의 승천은 믿음의 문제가 아니라 사실 그 자체이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셨다는 역사적 사실이야말로 히브리서가 우리에게 우리의 믿는 도리를 굳게 잡으라고 권면하는 강력한 이유이다(히 4:14, 10:23). 바울은 이야기한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 4:14, 16)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대표자를 통해 하나님의 임재 안에 이미 도착했으며, 따라서 그에 합당하게 행동해야 한다. 그분을 통해 우리는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았다(히 6:4, 5). 예수님의 승천과 하늘 성소 봉사의 실제는 튼튼하고 견고한 영혼의 닻(히 6:19)이며, 약속들이 실체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확신할 만한 가치가 있음에 대한 보증이다(히 7:22). 우리에게 있어 믿음은 역사적 사건을 근거로 하는 생생한 사실인 것이다.

 하나님의 목적은 예수님을 통해서 뿐만 아니라 우리를 통해서도 성취될 것이다. 

 우리는 이미 예수님의 승천이 연중 첫 두 순례 여행 절기인 유월절과 오순절의 표상을 성취했음을 살펴보았다. 히브리서와 요한계시록에 따르면, 마지막 순례 여행 절기인 초막절은 아직 성취되지 않았다. 우리는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히 11:10, 참조, 13~16)에 들어가서 예수님과 함께 그날을 기념할 것이다. 우리는 장막을 짓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장막이 하늘로부터 내려올 것이고 우리는 그분과 함께 영원히 살 것이기 때문이다(계 7:15~17, 21:1~4, 22:1~5, 민 6:24~26).

 

<묵상>

하나님께 끝까지 충성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경험하게 될 영광스러운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요?

 

답: 성경의 설명 외에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없다. 기록된 말씀 밖으로 나가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계시록 마지막 두 장을 읽어보고 이사야 22장 35장 등을 잘 읽어보자.

 

<부가설명> 이스라엘이라는 말에는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사람’이라는 뜻이 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사람들이 되어 있다. 그래서 영적 이스라엘이다. 교과에서 말한 대로 성경은 히브리서뿐만 아니라 에베소서에도 우리가 이미 예수님 안에서 하늘에 가 있다고 과거형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니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하늘 하나님 앞에 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몸이 이 죄의 세상에 있다. 그래서 바울은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롬8:23)라고 말한다. 양자가 되는 날, 곧 우리 몸의 속량을 받는 날까지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살아야 한다. 그날이 되면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빌3:21). 이것은 양자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으로 예수님 안에서 거듭났다면 이미 하나님의 보좌 앞에 가 있다는 것을 감사하며 찬양하고 충성하는 믿음으로 살아야 할 것이다. 

 

<교훈>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미래에 일어날 일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대표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미 이루어진 일이기도 하다.

 

 

3월 4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그리스도의 승천은 그의 제자들이 약속된 축복을 받게 되리라는 신호였다. 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그들은 이것을 기다려야 하였다. 하늘 문으로 들어가신 그리스도는 천사들의 경배를 받으시며 보좌에 오르셨다. 이 예식이 마쳐지자마자 성령은 풍성하게 제자들에게 쏟아져 내렸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과연 영원부터 아버지와 함께 가지셨던 모든 영광으로 영화롭게 되셨다. 오순절 성령 강림은 구주의 취임식이 끝났다는 하늘의 통고였다. 그분은 당신의 약속에 따라 하늘로부터 성령을 그의 제자들에게 보내셨는데 이것은 왕으로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은 분이요, 따라서 그의 백성을 위해 기름 부음을 받은 분이시라는 증거였다.…

 그들은 확신을 가지고 예수의 이름을 부를 수 있었는데, 이는 그가 그들의 친구요 맏형이셨기 때문이 아니었겠는가? 그들은 그리스도와 친밀한 교통을 하면서 그와 함께 하늘에 앉아 있었다. 그리스도를 증거할 때에 그들은 얼마나 열렬한 말로 그들의 사상을 표현하였던가!”(사도행적, 38, 46).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시편 기자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시 42:2). 어떻게 하면 우리도 이처럼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갈급함을 가질 수 있겠는가? 지금 하나님을 경배하며 그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기뻐하지 못하면서 미래에는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겠는가? 무엇이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기쁘게 하는가?

※ 예수님 안에서 얻은 영원한 생명을 확신하고 확인하면 감사와 기쁨이 있을 수밖에 없다.

 

2. 어떻게 하면 광야에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중재자를 요청한 이스라엘의 실수를 범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우리는 다른 사람이 우리를 대신해서 성경을 공부하고 그 속에서 진리의 보화를 발견해 주기를 기대하곤 한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직접 기도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이 자신을 위해 드리는 중보 기도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위험에 빠지기도 한다. 우리가 이와 같은 영적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예수님으로 인해 우리가 다른 사람을 통하지 않고 직접 하나님 앞으로 나갈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 이미 예수께서 하나님의 보좌 앞에 계시기 때문에 그분 안에서 우리는 당당히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엡3:12).

 

3. 히브리서는 구원의 확신에 관한 책이다. 그렇지만 추측을 확신이라고 착각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조심해야 하는가?

※ 성경을 깊이 공부하고 말씀이 인격과 생활이 되도록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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