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과 - 예수, 온전한 제물 - (핵심 Q&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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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봉주 작성일22-02-22 10:26 조회3,251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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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과 예수, 온전(穩全)한 제물(祭物)
(02월 26일 안식일 / 일몰: 오후 6:22)
(02월20일(日) <제물(祭物)이 필요(必要)했던 이유(理由)는 무엇인가?>
(Q)~예수님께서 우리의 구원(救援)을 이루시기 위해 예수님 자신을 제물(祭物)로 바치셔야 했던 이유(理由)는 무엇입니까? (히9:15, 22)
(A)~⑴.이 말씀이 기록(記錄)될 당시의 고대(古代) 근동(近東)지방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나 국가 간(國家間)의 언약(言約)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기에 그러한 언약에서 “맹세(盟勢)”를 통해 약속(約束)을 맺었다. 이러한 약속(約束)을 깨트린다는 것은 곧 죽음을 뜻하는 의미(意味)로 동물(動物)을 제물(祭物)로 바쳤는데 그 동물을 반(半)으로 쪼게 그 갈라진 사이를 지나가는 예식(禮式)을 통해 언약(言約)의 파기(破棄)는 곳 죽음을 뜻한다는 그러한 예식(禮式)에서의 의미(意味)로 행하여졌다.
⑵.(창세기15:1~21)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람과 언약관계(言約關係)를 맺으셨다. 그리고 (예레미야 34:8~22)의 말씀은 “해방(解放)시킨 사람을 다시 노예(奴隸)로 삼는 유다의 배신(背信)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바 아브람과 하나님의 언약관계(言約關係)에서 짐승을 잡아 둘로 쪼개 그 위를 함께 지나가므로 언약(言約)은 피차(彼此) 지켜져야 한다는 의미(意味)로 언약(言約)을 깨뜨린 자를 위해 다시 언약(言約)하고자 온전(穩全)한 흠(欠)없는 제물(祭物)이 필요(必要)하게 된다.
⑶.그리스도는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는 보혈(寶血)을 흘려 새 언약의 중보자(仲保者)가되셨으며 그 결과 우리에게 영원(永遠)한 기업(基業)의 약속(約束)이 주어지게 되었다. 예수님의 대속(代贖) 사역에는 복합적(複合的)인 개념(槪念)이어서 그 안에는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교제회복(交際回復)인 화해(和解)(고후 5:19),로 하나님의 공의(公義)를 만족(滿足)시키는 화목(和睦)(로마서 3:25)에 기록(記錄)하고 있는 것처럼 마귀(魔鬼)의 결박(結縛)에서 값은 주고 사는 구속(救贖)(골로새서 1:13~14)등의 뜻이 들어있다. 한편 이스라엘은 옛 언약(言約)의 불완전(不完全)함 때문에 가나안땅에서의 완전(完全)한 안식(安息)을 누리지 못했다.
⑷.재물(財物)이필요한 이유는 언약(言約)을 깨뜨린 자는 죽음을 요구(要求)하는바 우리 인간이 죄를 지음으로 그 죄의 대속(代贖)으로 재물(財物)이 요구(要求)된다. 그러므로 우리의 죄에 대한 대속(代贖)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를 구원(救援)하시기 위한 재물(財物)로 자신을 바치신 것이다.
(02월21일)(月) <다양(多樣)한 종류(種類)의 제사(祭祀)들 >
(Q)~(레위기 1장~7장)의 다섯 가지 제사(祭祀)는 무엇을 의미하며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까?
(A)~⑴.이스라엘의 희생제도(犧牲制度) 제사(祭祀)에는 다섯 가지(번제(燔祭), 소제(素祭), 화목제(和睦祭), 속죄제(贖罪祭), 속건제(贖愆祭))가 있는데 이 각기(各其)다른 제사(祭祀)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十字架)의 희생(犧牲)의 의미(意味)를 더욱 풍성(豊盛)히 하기위해 꼭 필요(必要)했다.
⑵.레위기는 수직적(垂直的)으로는 제사(祭祀)를 통하여 하나님과의 생명의 교제를 나누는 방법에 대하여, 수평적(水平的)으로는 타락한 세상 속에서 어떤 방법으로 하나님의 백성된 자로서의 거룩함을 지킬 것인가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다. ‘거룩’은 레위기의 대 주제이자 오늘날 영적 제사장으로 살아가는 성도들의 삶의 영원한 모토이기도 하다.(레 1:1~3, 매튜헨리)
⑶.자신의 몸을 하나님께 바친 그리스도의 제사(祭祀)는 "향기(香氣)로운 제물(祭物)" 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며(엡 5:2), 그리스도인들의 영적(靈的) 제사(祭祀)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제사(祭祀)라고 했다(벧전 2:5). (레 1:1~3, 매튜헨리)
⑷.어린양, 수소, 숫양, 숫염소, 집비둘기, 산비둘기의 죽음을 통해서, 번제단과 향단 위, 휘장을 향해 혹은 법궤 위에 피를 뿌림으로 그리고 제사장의 교육과 중보를 통해서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법을 배웠다. 그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의 정죄에 직면했을 때에도 절망 가운데 버려지지 않았다. 피할 길이 있었다. 하나님의 어린양이 그들을 대신해 죽을 것이었다. 그분의 피를 믿는 믿음으로 그들은 하나님과의 교제로 들어갈 수 있었다. 제사장들의 중보를 통해서 상상으로 그들은 성소에 들어가, 마치 대제사장이 된 것처럼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알현실(謁見室)에 나타날 수 있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신실한 자들에게 하나님의 백성들이 담대하게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히 10:19)을 때를 예표(豫表)했다. (레 1:1~3, 재림교주석)
1. <번제(燔祭)(레1:1~17)>
번제는 희생 제물을 불에 태워 그 냄새를 하나님께 피워 올리는 제사다. 번제물은 흠이 없어야하며, 반드시 수컷을 골라 제단 위에서 가죽을 제외한 전체를 태워서 드린다. 제물을 태워서 드리는 제사는 번제만이 아니지만 '완전히' 태워야하는 제사는 번제뿐이다. 번제는 온전히 헌신한다는 의미가 있다.
2. <소제(素祭)(레2:1~16)>
소제는 하나님 은혜에 감사해 자발적으로 드리는 제사로, 번제(9:17)나 화목제(7:11~13)와 함께 드렸다. 소제에 소용되는 제물은 기본적으로 '고운 가루'다.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흔들다'란뜻이 있는데, 이는 고운가루를 골라내기 위해 빵은 가루를 흔든 것에서 기인한듯하다. 이렇게고운가루로소제를 드리는 것은 백성 자신의 죄성을잘게 부수어순결한 심령으로 하나님을 섬겨야함을 상징한다. 고운가루에는 정결과 하는소금'을 더해야 하며, 발효를 일으킬 수 있는누룩과 떨의 사용은금지된다.
3. <화목제(和睦祭)(레3:1~17)>
화목제는 하나님께 짐승의 기름과 콩팥을 불살라 향기로운 냄새를 드림으로써 하나님과 평화(平和)의 관계(關係)가 이루어졌음을 감사하는 제사다. 화목제는 다른 제사의 절차와 비슷하게 진행된다. 차이점은 제물중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께 드리고, 제사(祭祀)를 집례(集禮)한 제사장(祭司長)이 나머지를 아웃과 함께 나누어 먹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는 물론 이웃과의 관계에서 교제(交際)와 화평(和平)이 중요(重要)함을 상징(象徵)한다.
4. <속죄제(贖罪祭)와 (4:1~35)>
속죄제(贖罪祭)는 부지중(不知中)에 실수(失手)로 범한 좌를 해결하기 위해 드리는 제사다. 앞서 다룬 번제·소제·화목제가 모두 자발적으로 하나님께드리는 것이라면 속죄제는 의무적인 성격을 띤다. 속죄재는 드리는 사람의 신분에 따라 제물의 종류가 다르다. 제사장은 수송아지를 제물로 드리고, 족장은 숫염소, 평민(平民)은 암염소나 암양을 제물로 드린다. 이마저도 드리기 어려운 형편이면 산바들기나 집비둘기를 드릴 수 있다. 더 가난(家難)한 사람은 고운 가루를 드리는 것이 허용(許容)된다. 이러한 차등(差等)은 모든 사람이 속죄(贖罪)받는 자리에 나아올 수 있도록 하신 하나님의 배려(配慮)다.
5.<속건제(贖愆祭) (레5:1~6:7)>
속건제(贖愆祭)는 하나님께 바치는 제물(祭物)이나 성물(聖物)에 대해 잘 알지 못해서 실수(失手)하는 죄를 저질렀을 때, 또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 맹세(盟勢)를 했을 때 드리는 제사다. 죄를 용서받기 위해 드리는 제사라는 점에서 속죄제와 유사하지만, 피해(被害)를 배상(賠償)한다는 점이 다르다. 이 배상은 반드시 하나님과 사람, 두 대상모두에게 이루어져야 한다. 사람에게만 배상하고 하나님께 회개하지 않거나 하나님께만 용서를 구하고 피해자에게 배상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 뜻이 아니다. 배상(賠償)의 성격(性格)을 지닌 특수(特殊)한 제사가에 짐승이나 곡식이 아닌 금전(金錢)으로도 드릴 수 있다. 배상할 때는 피해액의 5분의 1을 더해 들려주어야 한다. 과도하지 않은 수준에서 배상 하도록 한 것은, 좌를 뉘우친 사람이 일상으로 돌아가서 생활할 때 무리(無理)가 없게하신 하나님의 배려(配慮)다.
(02월 22일) (火) <예수님의 온전(穩全)한 희생(犧牲)>
(Q)~"예수님"의 제사장(祭司長)직분(職分)이 레위계통의 제사장(祭司長)들보다 더 위대한 이유(理由)는 무엇일까요? (히7:27; 10:10)
(A)~⑴.대제사장(大祭司長)들이 먼저 자기 죄(罪)를 위(爲)하고 다음에 백성(百姓)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祭祀)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必要)가 없으니. 레위 계통(系統)의 대제사장들은 속죄일(贖罪日)에 다른 사람들의 죄를 위해 속죄제사(贖罪祭祀)를 드리기에 앞서 항상(恒常) 자기 죄를 위한 속죄제사(贖罪祭祀)를 드린다(히5:3, 레 4, 3-12, 16:6-10). 왜냐하면 레위 계통의 대제사장도 역시 불안전(不安全)한 인간으로 죄를 범(犯)할 수밖에 없는 존재(存在)였기 때문이다.
⑵.자신(自身)도 대제사장(大祭司長)이 일 년(一年)에 한 번 속죄일(贖罪日)에 희생제사(犧牲祭祀)를 드린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不久)하고 ‘날마다’ 드리는 것으로 표현(表現)한 이유는(히 9:7,25, 10, 1) 대제사장이 제사(祭祀)를 매일(每日) 드렸다는 의미(意味)보다는 그가 부주의(不注意)로 죄를 범했을 때 매일 속죄(贖罪)의 제사(祭祀)를 드려야 할 필요가 있었음을 지적(指摘)하는 것이다(Bruce). 그러나 예수께서는 죄가 없으신 분이시므로 자신의 죄를 위하여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으실 뿐만 아니라(히4:15)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도 반복적(反復的)으로 제사를 드리실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그가 드린 한 번의 제사는 하나님의 독생자(獨生子) 되신 자신의 몸을 제물(祭物)로 바친 완전(完全)한 제사(祭祀)였기 때문이다.
⑶.대속죄일(大贖罪日)에 대제사장(大祭司長)은 자신의 죄를 위해 먼저 제물(祭物)을 드리고 그 다음에 백성들의 죄를 위해 제물을 드렸다(레 16:11, 15). 이것은 반드시 필요(必要)했다. 그는 죄(罪)된 자였기 때문에, 자신을 위하여 제물을 드리지 않는 한 그리고 제물을 드리기까지는 지성소(至聖所)의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이 일을 할 필요(必要)가 없었다. 그는 죄(罪)가 없기 때문이다.
⑷.○.<옛 언약(율법(律法))>
직무수행자(職務遂行者):육체적 혈통(레위 자손)에 근거한 제사장 직분 (히 7:16)
장소(場所):하늘 성소의 모형과 그림자인 장막(帳幕) (히9:24)
제물(祭物):염소와 송아지의 피(血) 대리적(代理的)피(血)(히9:12~13)
횟수(回數):수많은 제사 (히9:25)
결과(結果):불완전(不完全)한 정결(淨潔)의식(儀式)이므로 반복(反覆)이 요청(要請)됨. (히9:13)
○.<새 언약(복음(福音))>
직무수행자(職務遂行者):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는 그리스도.(히 7:26)
장소(場所):사람의 손으로 짓지아니한 완전한 하늘의 성소(聖所)(히9:11, 24)
제물(祭物):그리스도 자신의 피(血). (히912)
횟수(回數):단번(單番)의 제사(祭祀). (히926, 28)
결과(結果):완전한 구속(救贖)의 성취(成就). (히9:26)
(02월23일)(水) <십자가(十字架)와 용서(容恕)의 댓가(代價)>
(Q)~죄(罪)의 용서(容恕)를 위해 꼭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히9:22~28)
(A)~⑴.죄의 값은 사망(死亡)이므로(롬6:23) 대속(代贖)하기위해서는 피 흘림의 속죄(贖罪)가 필요했다. 피는 곧 생명(生命)을 뜻하므로 피 흘림은 죽음을 의미(意味)하였다. 따라서 죄인(罪人)된 우리를 속량(贖良)하기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친히 십자가(十字架)에서 대속(代贖)의 보혈(寶血)을 흘리심으로 우리를 죄(罪)에서 구원(救援)하셨다.(막10:45)
⑵.성소(聖所)란 무엇인가?
"구속(救贖)의 경륜(經綸)은 아담이 타락(墮落)한 후(後)에 안(案)을 세운 사후적(事後的) 고안(考案)이 아니었다. 이 경륜(經綸)은 '영세전(永世前) 부터 감추었던 ...그 비밀(秘密)'(롬 16:25)의 계시(啓示)었다. 이것은 영세전(永世前)부터 하나님의 보좌(寶座)의 기초(基礎)가 되어온 원칙(原則)을 공개(公開)한 것이었다." (시대의 소망, I권 17P)
"유대인 성막(聖幕)은 그리스도 교회(敎會)의 하나의 표상(表象)이었다. 그것은 외부(外部)와 내부(內部)의 두 부분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훌륭한 구조(構造)였으며, 한쪽은 제사장(祭司長)들의 봉사(奉仕)를 위한 곳이었고 , 다른 한쪽은 그리스도를 예표(豫表) 했던 대제사장(大祭司長)에게만 공개(公開)되던 곳 이었다. 하나님께 신실(信實)하고 충성(忠誠)된 사람들로 구성(構成)된 지상교회(地上敎會)는 구주(救主)께서 친히 봉사자(奉仕者)로 수고 하시는 '참 장막(帳幕)'이다.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장막(帳幕)을 높고도 두드러진 대위(代位)에 베푸셨다. 이 장막(帳幕)은 그리스도의 몸이고, 북쪽, 남쪽, 동쪽, 서쪽으로 부터 그분께서는 그 장막을 구성(構成)하는데 도움이 될 사람들을 모으신다." (signs, FEB.14,1900)
⑶.성소(聖所)는 두 단계(段階)로 이루어졌다.
<첫 단계>는 한 해 동안 회개(悔改)하는 죄인(罪人)들은 자신들의 죄를 깨끗하게 하며 동시(同時)에 그들의 죄를 성소(聖所), 곧 하나님 자신에게로 옮기는 희생제물(犧牲祭物)을 성소(聖所)로 가지고 오는 것이며
<두 번째 단계>는 심판(審判)의 날로서 한 해의 끝에 있는 대속죄일(大贖罪日)에 하나님께서 성소(聖所)에 가져온 죄(罪)들을 사탄을 상징(象徵)하는 ‘아사셀’ 염소에게 옮기어서 그 분의 법적(法的) 책임(責任)을 없이 하심으로 성소(聖所)를 깨끗하게 하시는 것이다.(레16:15~22)
이상(以上)에서 보는 바와 같이 성소제도(聖所制度)에서의 상징(象徵)은 속죄제도(贖罪制度)를 상징(象徵)하는 것으로 죄인들에게 하나님의 자비(慈悲)와 공의(公義)를 동시에 나타낼 수 있도록 한 것인데 이는 성소(聖所)의 희생제도(犧牲制度)는 십자가(十字架)를 표상(表象)한 것으로 죄의 용서(容恕)를 위해 꼭 필요한 하나님의 사랑의 대가(代價)인 것이다.
(02월24일)(木) <심판(審判)과 하나님의 품성(稟性)>
(Q)~"예수님"의 재림 전(再臨前) 심판(審判)의 참된 목적(目的)은 무엇이며 그 심판(審判)이 진행(進行)되는 동안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A)~⑴.재림전(再臨前)심판(審判)의 목적(目的)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용서(容恕)하시는데 있어 하나님의 공의(公義)를 나타내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재림전(再臨前) 심판(審判)을 통해 온 우주에 하나님의 백성들을 용서(容恕)하시고 구원(救援)하시는 데에 대한 합당(合當)한 이유(理由)가 있음을 온 우주(宇宙)앞에 보여주심으로 하나님의 공의(公義)를 나타내신다.
⑵.<조사(調査)(재림 전(再臨前)) 심판(審判)의 성경적(聖經的) 근거(根據)와 이해(理解)>
[I]. 심판(審判)의 신학적(神學的)/도덕적(道德的) 의미(意味)
1. 그리스도와 사단 사이의 대 쟁투(大爭鬪)에서 그리스도의 궁극적(窮極的)인 승리(勝利)를 나타낸다. 죄 문제는 한 개인(個人)의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우주적(宇宙的) 존재(存在)들이 죄 문제(問題) 해결책(解決策)을 주목(注目)하고 있어서 공개적(公開的)이고 공정(公正)한 심리(審理)가 진행(進行)되어야 한다.
2. 그리스도께서 하늘 성소봉사(聖所奉仕)를 마치시는 일을 하신다.
3. 하나님의 의(義)(공의(公義))로우심을 우주적(宇宙的)으로 입증(立證)한다.
“밤에 내 영혼(靈魂)이 주를 사모(思慕)하였사온즉 내 중심(中心)이 주(主)를 간절(懇切)히 구(求)하오 리니 이는 주께서 땅에서 심판(審判)하시는 때에 세계(世界)의 거민(居民)이 의(義)를 배움이니이다”(사 26:9). “불의(不義)를 행(行)하는 자는 불의(不義)의 보응(報應)을 받으리니 주(主)는 외모(外貌)로 사람을 취(取)하심이 없느니라.”(골 3:25). 조사심판(調査審判)은 당사자(當事者)에게 죄(罪)와 악(惡)을 깨닫게 하신다.
4. 인간(人間)의 선택(選擇)과 행위(行爲)에 있어서 자유(自由)와 책임성(責任性)을 각성(覺醒)시킨다.
5. 구속(救贖)/구원(救援)을 완성(完成)시킨다.
6. 우주(宇宙)와 인간(人間) 역사(歷史)는 하나님의 뜻과 목적(目的)을 향(向)하여 진전(進展)한다.
7. 용서(容恕)의 필요성(必要性)을 상기(想起)시킨다. 보수(補修)하는 일은 하나님의 권한(權限)에 속한다. 보복을 하나님께 맡기고 그리스도를 본 받아 용서하는 자가 되게 한다. (롬 12:19; 벧전 2:22-23)
8. 의(義)로운 삶을 위(爲)한 동기(動機)를 제공(提供)한다.
9. 복음 선교(福音宣敎)의 동인(動因)을 제공(提供)한다. (겔 33:11; 벧후 3:9)
10. 재림(再臨) 전(前) 심판(審判)은 복음적(福音的)이다.
갈보리의 그리스도께서는 재림(再臨) 전(前) 심판기간(審判期間) 중에 우리를 위(爲)하여 간구(懇求)하신다. 이것이야 말로 심판(審判) 날에 있는 복(福)된 소식(消息)이다. 십자가(十字架)에 달리신 분이 재림(再臨) 전(前) 심판시(審判時) 중보자(仲保者)가 되신다는 소식(消息)은 복음이다. <출처: 안금영교수님의 [순례자의 여로에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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