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과 가인과 그의 유산(질문, 대답, 설명) 04/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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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2-04-09 05:40 조회5,098회 댓글0건본문
제3과 가인과 그의 유산
(4월 16일 안식일 / 일몰: 오후 7시 8분)
연구 범위: 창 4, 히 11:4, 미 6:7, 사 1:11, 고전 10:13, 요일 3:12, 창 5, 창 6:1~5
기억절: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창 4:7).
창세기에서 인간의 타락과 아담과 하와의 에덴동산에서의 추방에 연이어 등장하는 내용은 주로 앞 장에서 하나님께서 하신 예언의 성취로써 나타난 탄생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창세기 3장과 4장은 유사성을 가지고 있는 장으로서 공통된 주제들과 단어들을 많이 포함하고 있다. 죄에 대한 묘사(창 3:6~8, 비교, 창4:8), 땅에 대한 저주(창 3:17, 비교, 창4:11), 그리고 추방(창 3:24, 비교, 창 4:12, 16)에 관한 내용이 바로 그것이다.
이와 같은 유사성은 아담과 하와의 타락 이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예언의 성취를 강조하여 나타내기 위함이다.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쫓겨난 후 가장 먼저 일어난 사건이었던 첫 번째 아들의 탄생은 소망으로 가득했다. 하와는 그 아들의 탄생을 메시아 예언을 통해 들었던 약속의 성취로 여겼다(창 3:15). 하와는 그 아이가 약속된 메시아가 될 것으로 생각했다.
이어진 사건들, 곧 가인의 죄, 라멕의 죄, 수명의 감소, 그리고 죄악의 증가는, 창세기 3장에서 언급된 저주의 성취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희망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학습 목표
- 깨닫기
하나님의 능력에 힘입어 죄를 다스리지 못하며 사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깨닫는다.
- 느끼기
인류를 갈수록 더 심각한 죄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는 죄에 대하여 진심으로 슬퍼한다.
- 행하기
아무리 사소한 죄라 할지라도 날마다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깨끗한 마음으로 살기 위해 노력한다.
TMI 위로
2. 가인과 아벨의 이름의 뜻은 무엇이며 그 이름에 담긴 아담과 하와의 소망은 무엇이었습니까?(창 4:1, 2)
※ 가인=메시아를 얻었다. 아벨=허무, 메시아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과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나는 아벨이 생명 있는 자라는 뜻으로 보기를 좋아함).
3.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물은 받으시고 가인의 제물은 거절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창 4:1~5, 히 11:4)
※ 아벨은 대속을 믿었고 가인은 인간의 공로를 주장했기 때문이다.
4. 하나님께서는 분노해 있는 가인을 찾아 오셔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으며 그 의미는 무엇이었습니까?(창 4:6, 7)
※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자기 상태를 확인할 기회를 주신 것이다.
5. 동생을 죽인 가인에게 하나님께서 찾아 오셔서 던지신 질문의 중요성은 무엇일까요?(창 4:9~16)
※ 가인을 회개할 기회를 주신 하나님의 자비이다.
6. 가인의 유산은 무엇이었으며 가인의 범죄가 인류에게 끼친 영향은 어떤 것이었을까요?(창 4:17~24)
※ 죄를 세상에 가득하게 하는 것이다.
결론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아담과 하와는 큰아들 가인을 통해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마음의 죄를 다스리지 못한 가인은 동생을 죽이는 큰 죄를 범했고 그 영향은 그의 후손들에게까지 이어졌습니다. 우리에게서 이런 악순환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죄를 다스리며 살아야 합니다.
4월 10일(일) 가인과 아벨
창세기 4:1, 2을 읽어 보라. 이 말씀은 두 사람의 탄생에 관하여 무엇을 말하는가?
[창4:1,2] 아담이 그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잉태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2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이었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이었더라.
답: 아담 부부는 맏아들을 메시아로 믿었고. 둘째 아들은 별 기대가 없다고 생각한 것 같다고 책 저자가 말한다.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후 성경 기자가 기록한 첫 번째 사건은 바로 탄생이다. 히브리어 성경에서 창세기 4:1에 등장하는 “여호와”(YHWH)라는 단어는 “남자”라는 단어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 문장을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내가 득남하였도다. 이는 여호와시라.” 국제 표준 번역(International Standard Version)은 “내가 남자 아이를 낳았으니 이는 여호와라”라고 기록한다.
이 문장을 직역한 것에 따르면, 하와가 창세기 3:15의 메시아 예언을 기억했으며 자신이 낳은 아이가 구주, 곧 여호와라고 믿었음을 보여 준다. “구주의 강림은 에덴에서 예언되었다. 아담과 하와는 이 약속을 처음 듣고 이 약속이 속히 성취되기를 고대하였다. 그들은 그들의 맏아들이 구주이기를 바라면서 그 아들을 기쁨으로 환영하였다”(시대의 소망, 31).
가인은 창세기 4장에 기록된 이야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는 부모가 거의 ‘숭배’했던 맏아들이었다. 성경에 기록된 내용에 의하면 하와는 가인의 탄생에 대해서는 기대감이 가득한 어조로 말하는 반면, 아벨의 탄생에 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는다. 아벨에 관해서는 서술자가 그저 “또...낳았다”라고 기록할 뿐이다(창 4:2).
가인의 이름은 ‘얻다’라는 의미를 가진 히브리어 동사 카나(qanah)에서 왔으며 이는 무언가 귀하고 능력 있는 것을 소유하게 되었음을 나타낸다. 반면, 영어로 아벨이라고 표기된 히브리어 헤벨(Hebel)은 “입김”(시 62:9), 또는 “숨”(시 144:4)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허무함, 공허함, 실체가 없음을 나타낸다. 전도서에서는 ‘헛됨’을 나타내기 위해 헤벨(hebel)이라는 단어가 반복적으로 사용된다. 물론 성경에 기록된 것 이상의 것을 추측할 필요는 없지만, 아담과 하와는 그들의 소망을 오직 가인에게 두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그들은 아벨이 아니라 가인이 약속된 메시아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묵상>
실제로는 헛되고 무의미한 것이지만 우리가 귀하게 여기며 살아가는 것은 무엇입니까? 정말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점을 아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답: 정말 중요하고 귀한 것은 생명이다. 그 외의 것은 다 헛된 것인데, 아직도 목숨이 붙어있으니 헛된 것을 귀한 것으로 여기고 산다. 특히 돈이다.
세상의 부귀영화를 경험했던 전도자는 전도서 1:2에서 자신의 경험을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지금 이 순간 너무나 귀하게 보이는 것들이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깨닫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담과 하와도 자신들의 창피한 과거를 돌아보며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반하여 하나님 없이 세워진 모든 것들은 결국 다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영원히 시들지 않고 사라지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를 기업으로 받기 위해 오늘 가장 지혜로운 선택을 하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며 살아야겠습니다.
<부가설명> 가인은 얻었다는 뜻이다. 또 학자들은 아벨을 허무라는 뜻이라고 설명하면서 가인이 메시아라는 믿음이 있었는데 살아보니 아니라는 것을 느끼고 그렇아들을 낳아도 메시아 소망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다는 생각으로 허무라는 이름을 지은 것 같다고 말한다. 학자들의 생각이니까 맞지 않겠는가? 1절을 직역하면 가인을 얻었는 ‘내가 득남하였도다. 이는 여호와시라.’라는 것이라고 한다. 학자의 말이니까 히브리어를 모르는 나는 그런가 보다 하는 생각이다. 이 구절의 히브리어는 ‘카니티 이쉬 에트 여호와’이다. ‘카니티’는 ‘얻었다’는 말이다. ‘이쉬’는 ‘남자’, ‘에트’를 전치사로 보는가, 아니면 여호와의 직접목적어로 보는가에 따라서 번역이 달라지는 것 같다. 전치사로 보면 ‘여호와로 말미암아(인하여) 남자를 얻었다’가 된다. 그러나 직접목적어로 보면 ‘내가 남자를 얻었는데 여호와다’가 된다. 저자는 목적어로 보았고 성경의 번역은 전치사로 보아 번역한 것 같다. 하와의 열망으로 보면 목적어로 번역하는 것이 맞는 것다. 그가 여자의 후손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그런데 성장하면서 별다른 일이 없다. 그래서 둘째 아들은 허무라고 이름을 지었다.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런에 ‘아벨’은 ‘호흡’이라는 뜻도 있다. 그렇게 보면 ‘산 자’라는 의미를 생각할 수도 있다. 가인이 메시아가 아닌데도 둘째 산 자로 출생했다는 소망의 이름이 아닌가 하고 생각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해본다. 독자들도 생각해보기 바란다.
<교훈>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후 하나님의 예언에 따라 아이를 낳게 되었는데 그 중에서 맏아들이었던 가인이 약속된 메시아가 될 것이라고 믿었다.
4월 11일(월) 두 종류의 제물
가인과 아벨의 차이점은 그들의 성격에만 국한되지 않고 직업에서도 나타났다. 가인은 육체적인 노동을 요구하는 “농사하는 자”(창 4:2)였고, 아벨은 세심함과 동정심을 필요로 하는 “양 치는 자”(창 4:2)였다.
가인은 땅에서 나는 열매를 수확하는 자였고, 아벨은 양을 돌보는 자였다. 이들의 직업은 그들이 하나님께 드린 제물(가인은 땅의 소산을 드렸고 아벨은 양을 드렸음)의 성격을 설명할 뿐 아니라, 두 제물과 연관된 심리적 태도와 정신을 나타내 보여 준다. 가인은 땅의 소산을 ‘얻기’ 위해 일했고, 아벨은 그가 받은 양들을 ‘보살폈다.’
창세기 4:1~5과 히브리서 11:4을 읽어 보라.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물은 받으시고 가인의 제물은 거절하신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는 여기서 일어난 일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창4:1~5] 아담이 그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잉태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2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이었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이었더라 3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4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5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히11:4]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
답: 가인은 믿음으로 제사하지 않았고 아벨은 믿음으로 제사했다.
“피흘림이 없이는 죄사함이 있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들(가인과 아벨)은 가축의 초태생을 희생 제물로 바침으로, 약속된 속죄인 그리스도의 피에 대한 그들의 믿음을 나타내야 할 것이었다. 이것들 외에 땅의 처음 익은 열매를 감사 제물로 주 앞에 바쳐야 할 것이었다”(부조와 선지자, 71).
아벨이 하나님의 가르침에 순종하여 동물로 된 제물에 더해 채소로 된 제물을 드린 반면, 가인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희생 제물로 바칠 동물을 가져오지 않고 오직 “땅의 소산”만을 제물로 드렸다. 이것은 그의 동생의 태도와 대조되는 공개적인 불순종이었다. 이 이야기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아벨과 그가 피로 드린 제물)과 행함으로 말미암는 구원(가인과 그가 드린 땅의 소산)의 대표적인 예로 여겨진다.
물론 이 제물들이 가지고 있던 영적 중요성이 있지만, 그 제물 자체에 어떤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들은 죄인들의 물리적인 필요를 채우시는 것은 물론 구원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을 나타내는 상징과 이미지에 불과했다.
<묵상>
미가 6:7과 이사야 1:11을 읽어 보십시오. 어떻게 하면 이 성경절들에 나타난 원칙을 우리들의 삶과 예배에 적용할 수 있을까요?
[미6:7] 여호와께서 천천의 수양이나 만만의 강수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를 인하여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사1:11]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수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답: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6:8).
<부가설명> 우리가 가인과 아벨에 관하여 말할 때에 대부분 제물을 어떻게 드렸느냐 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그래서 가인의 제물은 열납하지 않았고 아벨의 제물은 열납하셨다고 말한다. 사실이다. 그러나 성경 본문을 자세히 읽으면 하나님께서는 아벨과 그의 제물을 열납하셨고 가인과 그의 제물은 열납하지 않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 중요한 글자 하나는 ‘과’이다. 아벨‘과’ 그의 제물, 가인‘과’ 그의 제물. 여호와 하나님께서 받으시기 원하는 것은 제물 자체가 아니다. 아벨, 가인이라는 사람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은 우리 자신을 받으시기 원하신다. 그런데 제물은 우리를 받으시게 하는 방법이다. 방법이 매우 중요한 것은 바른 방법으로 드릴 때 우리를 받으시기 때문이다. 가인은 이것을 무시한 것이다. 요한은 그 이유를 가인이 악한 자에게 속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가인 같이 하지 말라 저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찐 연고로 죽였느뇨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니라”(요일3:12). 가인이 아벨을 죽이기 전에 이미 그는 악한 자에게 속해 있었다. 가인은 요즘 흔히 말하는 진영논리를 따라서 자기 농사한 곡식으로 제사했다. 즉 피를 무시한 것이다. 그것은 대속하시는 구주를 거부하고 자기 행위를 내놓은 것이다. 가인은 아담의 아들로 아담 안에서 죽은 자이기 때문에 그가 하는 어떤 행위도 다 썩어져가는 구습이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받으실 수 없었다. 그는 죽은 자이고 죽은 자의 감사제는 없는 것이다. 아벨은 대속을 믿었다. 그래서 양의 첫 새끼의 피와 기름으로 제사했다. 즉 여자의 후손으로 계시한 구주의 대속을 믿은 것이다. 그분의 보혈을 믿는 믿음을 양을 잡아 제사하므로 고백한 것이다. 그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 것이고 그의 제물이 열납되면서 아벨도 받으신 것이다. 우리가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교훈>
아벨은 하나님의 가르침에 순종하여 동물의 피를 제물로 드린 반면, 가인은 자기의 노력으로 얻은 땅의 소산만을 제물로 바침으로 공개적인 불순종을 나타냈다.
4월 12일(화) 범죄
창세기 4:3~8을 읽어 보라. 가인이 동생을 죽이게 되기까지의 과정은 어떠한가? 요한일서 3:12 또한 살펴보라.
[창4:3~8]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4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5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6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8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요일3:12] 가인 같이 하지 말라 그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떤 이유로 죽였느냐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의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라.
답: 곡식으로 제물 드리고, 받지 않으시니 낯빛이 변하도록 분하게 여겼고, 하나님의 질문과 권고에도 따르지 않았고 아벨을 죽였다.
가인의 반응은 두 부분으로 기록되어 있다.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창 4:5). 가인의 분노는 하나님과 아벨을 향했다. 가인이 하나님께 분노한 이유는 자신이 불공정함의 피해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으며, 아벨에게 분노한 이유는 자신의 형제를 질투했기 때문이다. 무엇이 그렇게도 샘이 났을까? 단순히 제물 때문이었을까? 성경의 짧은 기록에 드러나지 않은 무언가가 그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정확한 문제가 무엇이었건 간에 가인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제물을 받아주지 않으셨기 때문에 낙담했다.
창세기 4:6에 기록된 하나님의 두 질문은 가인의 두 상태와 연관되어 있었다. 하나님께서 가인을 비난하고 계시지 않음에 주의해 보라. 아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질문을 하셨는데 그렇게 하신 이유는 하나님께서 답을 모르셨기 때문이 아니라 가인으로 하여금 자신을 돌아보면서 자신이 처한 상태를 깨닫게 되기를 원하셨기 때문이다. 항상 그러셨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타락한 백성들을 구원하고자 하신다. 공개적으로 하나님을 실망하게 했을지라도 말이다. 이와 같은 질문을 던지신 후에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말씀하신다.
먼저, 하나님께서는 가인에게 ‘선을 행하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회개하고 마음의 변화를 경험하라는 부르심이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그를 ‘받아주시고’ 용서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 다만 가인은 자신의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을 따라야 했다.
하나님께서는 네가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창 4:7)라고도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죄의 근원이 가인 자신 안에 있음을 드러내 보여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다시 한 번 가인이 어느 길로 가야 하는지 인도하려 하셨다.
하나님의 두 번째 말씀은 문 앞에 엎드려 가인을 집어 삼키려 하는 죄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제력을 가지라고 말씀하신다. “죄를 다스릴지니라.” 같은 원칙이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약 1:14)라고 기록된 야고보서에서도 나타난다. 복음은 죄의 용서에 대한 약속뿐만 아니라 죄의 극복에 대한 약속도 제공한다(참조, 고전 10:13). 결국 가인은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하여 그 누구에게도 핑계할 수 없었다. 이 사실은 우리 모두에게도 마찬가지이다.
<묵상>
창세기 4장에 기록된 불행한 이야기가 우리에게 자유 의지에 대하여,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강제하지 않으심에 대하여 무엇을 가르쳐 주고 있는가?
답: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바른 길을 가도록 권하시고 그 길을 제시하신다. 사람이 하나님이 제시한 바른 길을 가든지 거절하든지는 그들의 선택에 맡기셨다.
<부가설명> 가인이 곡식으로 제사를 드린 행위나 아벨을 죽였으므로 죄인이 된 것이 아니다. 그는 악한 자에게 속해있었다. 요일3:12이 이것을 계시하였다. 그는 악한 사탄에게 소속되었기에 사탄의 일을 하게 된 것이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8:44에서 이 사실을 잘 지적해주셨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마귀에게서 났으므로 아비 마귀 욕심대로 행한 것이다. 우리는 가인이 곡식을 제물을 들여서 하나님의 지시대로 제사하지 않았기 때문에 죄를 지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또 아벨을 죽였끼 때문에 악인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성경은 가인이 악한 자에게 속했기 때문에 악을 행했다고 한다. 성경은 우리의 나타난 행동보다 그 이전 상태를 중심으로 본다는 것을 가르친다. 그러므로 신자는 자기가 진정으로 누구에게 소속되어 있는지 정직하고 살펴야 한다. 예수님께 속해 있는지 아니면 사탄에게 속해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만일 예수님께 속해 있지 않으면 도덕적으로 선을 행해도 그것이 하나님께 선이 되지 않는다. 마귀에세 속하여 도덕적 선을 많이 행할수록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된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 선이 자신을 구원하는 것으로 착각해서 소속을 예수님께로 옮기지 않기 때문이다. 이 말을 잘 생각해어 진정으로 자기 소속을 확인하자.
<교훈>
하나님께서는 분노한 가인을 찾아오셔서 죄를 피하기 위해 선을 행할 뿐만 아니라 자제력을 가지고 죄를 다스리라고 말씀하셨다.
4월 13일(수) 가인에게 내려진 형벌
창세기 4:9~16을 읽어 보라. 하나님께서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라고 물으신 이유는 무엇인가? 가인의 죄와 그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창 4:12) 된 것이 어떤 관련이 있는가?
[창4:9~16]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이르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10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11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12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13 가인이 여호와께 아뢰되 내 죄벌이 지기가 너무 무거우니이다 14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 15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아니하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 16 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나서 에덴 동쪽 놋 땅에 거주하더니,
답: 가인이 자기의 허물을 회개할 기회를 주신 하나님의 자비이다. 그는 죄가 그를 따라다닐 것이기 때문에 피하고 도망하려는 상태가 그의 심리 상태임을 지적한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하신 질문 속에서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하셨던 질문이 메아리친다. “네가 어디 있느냐?” 이 메아리는 에덴에서의 죄와 지금 가인이 지은 죄 사이에 깊은 연관이 있음을 나타내 보여 준다. 후에 일어난 죄(가인의 죄)는 앞서 일어난 죄(아담의 죄)의 결과였다.
가인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죄를 부인한다. 아담은 자신의 잘못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려고는 했지만 자신의 잘못을 부인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가인은 찾아 오셔서 그의 죄를 나타내 보여 주시는 하나님께 공공연히 반항한다.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라고 세 번째 질문하신 하나님께서는 가인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창 4:10)라고 말씀하시며 그분이 이미 모든 것을 알고 계심을 확인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저지른 살인에 대해 알고 계셨고 그에 합당한 행동을 하실 것이었다. 인간의 타락 후에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일어나리라고 한 그 일이 아벨에게 일어났다. 아벨은 땅 속에 있었다(창 3:19).
창세기 4:14을 읽어 보라.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라고 한 가인의 말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창4:14]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
답: 하나님과 관계없는 상태에 빠졌다는 것을 표현한 말이다. 그것은 자기 목숨이 언제 없어지게 될 것인지 모르는 두려움의 고백이기도 하다.
아벨의 피가 땅에 부어졌기 때문에 땅이 다시 한 번 저주받게 되었다(창 4:12). 그 결과 가인은 하나님 멀리에서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는 선고를 받았다. 가인은 하나님의 선고를 들은 후에야 비로소 하나님의 임재의 중요성을 인정하게 된다. 하나님의 임재 없이는 자신의 목숨을 잃을까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자기 동생을 죽인 가인의 냉혈한 살인과 하나님께 대한 직접적인 반항 이후에도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여전히 자비를 베푸셨다. 비록 “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나”(창 4:16) 살게 되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그를 위한 보호 장치를 마련해 주셨다. 그 “표”(창 4:15)가 정확히 무엇이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그것이 무엇이었든지 간에 그것은 그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것이었다.
<묵상>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창 4:14). 얼마나 비극적인 상황입니까? 죄인으로서 우리가 이와 같은 상황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무엇입니까?
답: 진정으로 회개하고 하나님께 굴복하는 길이다.
<부가설명> 하나님은 가인을 당장 벌하지 않으셨다. 아담 부부에게 기회를 주신 것처럼 가인에게도 기회를 주셨다. 그런데 가인은 자기 행위를 부인하고 하나님을 원망했다. 이런 것이 바로 자기가 악한 자에게 속했다는 증거가 된다. 가인은 하나님의 얼굴을 뵙지 못할 것이라고 둘러댔지만 그것이 진정 하나님을 뵙고 싶어서 그렇게 한 것인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자비하신 하나님은 그를 사람들의 손에서 죽임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증을 주셨다. 그 표가 무엇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가 사람에게는 죽임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이 7배나 될 것이라고 선언했으니 두려워 감히 그를 죽이지 못할 것이다. 그때 인구는 기록상으로는 겨우 아담 부부와 가인과 그 아내가 있었는데, 아마도 아담의 딸들이 있었을 수 있다. 그래서 만나는 사람이 없을 것인데 가인이 쓸데없는 걱정을 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가인은 그때 당장 누군가를 만나서 죽임을 당할 걱정을 한 것은 아니다. 자기의 수명을 생각하며 천수를 하기 전에 죽임을 당할 걱정을 하고 미래를 준비한 것이다. 어차피 죽을 것인데 아벨을 죽이고 죽는 것이 어떤 현상인지 확인한 가인은 그 죽음이 두려웠을 것이다. 아벨의 죽음이 사람 죽는 것에 대한 첫 경험이 아닌가? 짐승이 죽는 것을 봤기에 죽음이 무엇인지 짐작했겠지만, 사람이 죽은 현상을 봤을 때 느낌과 달랐을 것이다. 죽음은 존재를 상실하고 의식을 상실하고 하나의 무생물이 되어버리는 현상이다. 우리가 어린양의 대속을 믿을 때만 이 죽음을 이기는 생명을 얻을 수 있다.
<교훈>
가인은 자기의 죄 때문에 하나님에게서 멀리 떨어져 땅에서 유리하는 자가 되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자비를 베푸셔서 그를 보호하는 표를 허락하셨다.
4월 14일(목) 사람의 악함
창세기 4:17~24을 읽어 보라. 가인의 유산은 무엇이었으며 가인의 범죄는 인류의 악함이 증가하는데 어떤 역할을 하였는가?
[창4:17~24]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임신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가인이 성을 쌓고 그의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니라 18 에녹이 이랏을 낳고 이랏은 므후야엘을 낳고 므후야엘은 므드사엘을 낳고 므드사엘은 라멕을 낳았더라 19 라멕이 두 아내를 맞이하였으니 하나의 이름은 아다요 하나의 이름은 씰라였더라 20 아다는 야발을 낳았으니 그는 장막에 거주하며 가축을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고 21 그의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22 씰라는 두발가인을 낳았으니 그는 구리와 쇠로 여러 가지 기구를 만드는 자요 두발가인의 누이는 나아마였더라 23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24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 하였더라.
답: 인류 죄악 증가의 기폭제가 되었다. 가인의 후손 라멕에 이르러 그 물줄기는 상당히 거세고 넓어졌다.
가인의 5대손 라멕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가인의 범죄를 언급한다. 가인의 범죄와 라멕의 범죄의 비교는 우리에게 중요한 가르침을 준다. 가인은 자신이 저지른 범죄에 대하여 침묵하는 반면 라멕은 노래를 통해 자랑하듯이 자신의 범죄를 드러낸다(창 4:23, 24). 가인은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지만, 라멕은 그렇게 한 기록이 없다. 가인은 하나님에 의해 칠 배나 벌을 받았지만, 라멕은 칠십칠 배나 벌을 받을 것으로 믿는다(창 4:24). 이와 같은 사실은 그가 자신의 죄를 알고 있었음을 나타낸다.
가인은 일부일처였으나(창 4:17) 라멕은 일부다처를 시작했다. 성경은 그가 “두 아내를 맞이하였으니”(창 4:19)라고 구체적으로 말한다. 이처럼 악이 심화되고 증가한 것은 분명 가인 족속의 다음 세대들에게 영향을 끼칠 것이었다.
가인 족속의 죄에 관한 이야기에 이어 곧바로 등장하는 성경 말씀은 가인 족속 가운데서 일어났던 일들과 반대되는 새로운 사건을 “아담이 다시 자기 아내와 동침하매”(창 4:25)라고 기록한다. 이 결과 셋이 태어나게 되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께서 아벨을 대신하기 위해 “다른 씨”를 주셨다는 사실을 나타내기 위해 하와가 지은 이름이었다.
사실 셋이라는 이름의 역사는 아벨을 앞선다. 셋이라는 이름은 “내가 둘 것이다”(창 3:15)라는 뜻의 히브리어 동사 아쉬트(’ashit)에서 파생됐는데 이는 메시아 예언을 소개하는 곳에서 나타난다. 셋 족속의 계보를 통해 메시아가 탄생할 자손이 이어질 것이었다. 성경은 셋으로부터(창 5:3) 시작하여 메시아의 계보를 기록한다. 그 속에는 에녹과(창 5:21) 므두셀라도 포함되어 있으며 노아로 끝을 맺는다(창 6:8).
“하나님의 아들들”(창 6:2)이라는 표현은 셋의 후손들을 가리키는데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형상을 보존하기 위해 구별되었기 때문이다(창 5:1, 4). 이와는 반대로, “사람의 딸들”(창 6:2)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후손들과 사람의 형상을 가진 후손들을 대비하여 나타내기 위한 부정적인 표현인 것으로 보인다. “사람의 딸들”의 영향 가운데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았는데(창 6:2), 이것은 인류가 잘못된 방향으로 향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묵상>
창세기 6:1~5을 읽어 보십시오. 죄가 가져오는 타락의 참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에 힘입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해 우리 안에서 죄를 뿌리 뽑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창6:1~5]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2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3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4 당시에 땅에는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게로 들어와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은 용사라 고대에 명성이 있는 사람들이었더라 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답: 하나님의 자녀들의 배반과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들이 강해지는 것을 기록했다. 우리는 힘써 하나님께 굴복하여 자아를 포기하는 경험으로 나아가야 한다.
<부가설명> 결과적으로 가인의 후손을 노아 홍수 때 방주에 들어가지 않아서 다 죽었다. 그러나 사탄은 죽지 않았다. 홍수가 날 때까지 가인 자손들이 세상에 끼친 사망의 감화는 홍수의 심판을 면할 수 없도록 증가하였다. 노아의 아들들도 며느리들도 노아 부부도 그들의 악을 보고 경험했다. 그들 중에 함은 가인 후손들의 방자한 모습이 부럽게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그가 노아가 술에 취하여 벗은 몸으로 누워 잠든 것을 봤을 때 형제들에게 나가서 아버지 나신에 관하여 흉을 본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가인의 후손들이 만들어 놓은 사회 문화 조류에 휩쓸렸기 때문일 것이다. 사회 문화는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리스도인은 이 문화사조에 역류하는 능력을 성령님께 얻어야 한다. 문화 조류에 떠내려가면 성경 사상과 멀어지게 마련이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엡4:13,14). 그리스도인은 예수 문화. 성경문화를 따라 악한 세대에 생명의 길을 드러내는 빛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 일을 맡은 사람들이 셋의 후손들이었고, 그들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그들이 가인 후손들이 만든 죄의 조류 사회 문화사조에 휩쓸려 떠내려감으로 홍수 심판을 막을 수 없게 되었다.
<교훈>
가인의 후손들은 가인이 저질렀던 죄보다 더 큰 죄를 지으면서도 양심에 가책을 느끼지 않았으며 그들의 죄악은 갈수록 더 깊고 심각해졌다.
4월 15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반복되어 기록된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창 5:22, 24)라는 표현은 그가 하나님과 매우 밀접한 매일의 교제를 나누었음을 의미한다. 에녹이 하나님과 나누었던 개인적인 관계는 너무나 특별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셨다(창 5:24).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셨다는 표현은 아담의 계보 가운데서 매우 특별한 것으로서, 하나님과 동행하며 사는 모든 사람이 죽는 즉시 하늘로 올라가서 하나님과 낙원에서 살게 되리라는 것을 지지하지 않는다. 노아 역시 하나님과 동행했지만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 땅에서 죽었다. 아담과 므두셀라도 마찬가지이다.
“에녹은 의의 전도자가 되어 하나님께서 그에게 계시하신 바를 백성들에게 알렸다. 주를 두려워한 자들은 이 거룩한 사람을 찾아와 그의 교훈을 받고 그와 함께 기도하였다. 그는 또한 공적으로도 일하며, 경고의 말씀을 듣고자 하는 모든 자에게 하나님의 기별을 전하였다. 그의 사업은 셋 족속에게 국한되지 않았다. 가인이 하나님 낯을 피하여 도망하려고 했던 그 지방에서 하나님의 예언자는 그가 이상 가운데 본 놀라운 광경을 알렸다. 그는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이는 뭇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치 않은 자의 경건치 않게 행한 모든 경건치 않은 일…을 인하여 저희를 정죄하려 하심이라’(유 14, 15)고 선언하였다”(부조와 선지자, 86).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가인이 그의 동생을 죽인 이유는 무엇인가? 엘리 위셀(Elie Wiesel)이 한 다음과 같은 말을 읽어 보라. “그는 왜 그렇게 했는가? 아마 그는 자기의 부모가 죽은 후에 유일한 사람으로 홀로 남고 싶었는지 모른다. 마치 하나님처럼 홀로 남아 하나님의 자리에 있고 싶었는지 모른다.…가인은 하나님이 되기 위해 살인을 저질렀다. 누구든지 자신을 하나님의 자리에 두려고 하는 사람은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Messengers of God: Biblical Prtraits and Legends, 58). 우리가 비록 실제로는 살인을 저지르지 않더라도 가인과 같은 태도를 나타내지 않기 위해 어떻게 조심해야 하는가?
※ 가인 같이 하지 않으려면 성령의 역사로 말씀대로 전적인 굴복해야 한다.
2. 홍수 전 사람들(창 5)의 수명과 부조들의 수명을 비교해 보라. 인간의 수명이 감소하게 된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이와 같은 퇴화는 현대 다윈주의의 주장을 어떻게 반박하는가?
※ 반드시 죽으리라고 한 말씀이 현실이 된 상태를 역사를 따라 드러나는 것이다. 다윈주의는 전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하신 하나님의 섭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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