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과 홍수(洪水)- (핵심 Q&A) > 교과토의 자료

본문 바로가기

운영진
x


교과토의 자료 보기

교과토의 자료

제4과 홍수(洪水)- (핵심 Q&A)

페이지 정보

작성자 이봉주 작성일22-04-19 15:54 조회3,041회 댓글0건

첨부파일

본문

                 제4과 홍수(洪水)                 

                                               (4월23일(안)/일몰:19시14분)


(04월17일 (日) <홍수(洪水)를 위(爲)한 준비(準備)> 


(Q)~(창세기 6:13~7:5)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무엇이라고 명령(命令)하셨으며 노아는 어떻게 응답(應答)하였습니까?


(A)~⑴.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방주(方舟)를 지으라. 명(命)하셨고 노아는 믿음으로 순종(順從)하여 방주(方舟)를 120년 동안 지었다. 노아에게 이르시되. 후일(後日) 아브라함에게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審判)을 알려 주시는 것처럼(18:17) 

하나님이 노아에게 장차(將次) 있을 대홍수(大洪水)심판(審判)을 미리 알려주시는 부분(部分)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자신(自身)을 경외(敬畏)하는 자들에게 자신의 계획(計劃)과 비밀(秘密)을 계시(啓示)하여 주시는데(시 25:14) 이는

 (1) 환란(患亂)가운데서 그를 구원(救援)하시기 위(爲)함일 뿐 아니라(요 17:12) 

 (2) 그로 하여금 세상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되게 하여 악인(惡人)이라도 그 경고(警告)를 듣고서 돌이켜 회개(悔改)하고 살기를 원(願)하시기 때문이다(겔 33:11).


⑵.<노아는 믿음으로 다 준행(遵行)하였고.(창6:22) 순종(順從)한 그 믿음으로 구원(救援)을 받았다.>

120년에 걸친 노아의 인내(忍耐)와 믿음과 소망(所望)이 응축(凝縮)되어 있는 구절(句節)이다. 전력(全力)을 기울여 방주(方舟)를 짓는 그 오랜 기간 동안 노아는 당대(當代) 사람들에게 온갖 조롱(嘲弄)과 희롱(戱弄)을 당하고 또한 미치광이 취급(取扱)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노아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명(命)하신 것을 다 준행(遵行)하여(약 2:17), 그 결과(結果) 자신과 가족(家族), 짐승들을 구(求)하였는데 이는 오늘날 각종(各種) 불법(不法)과 불경건(不敬虔)이 난무(亂舞)하는 현시대(現時代)를 살아가고 있는 성도(聖徒)들에게도 역시(亦是) 절실하게 요구(要求)되는 자세(姿勢)이다(눅 21:19, 약 5:7).(창 6:13~22, 만나주석)


⑶.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방주(方舟)를 지으라." 고 지시(指示)하셨다(창6:14-16). 

이 방주(方舟)는 해상(海上)의 항해(航海)하기에는 적합(適合)지 아니한 낡은 배와 같은 것이었다(항해(航海)하여 다다를 육지(陸地)가 없으니 그럴 필요(必要)가 없었다). 물위에 떠 있으면서 물이 줄어들기만을 기다릴 뿐이었다. 오직 하나님께서는 노아가 그 스스로 염려(念慮)하고 수고(受苦)하고 어려움을 격지 아니하고도 천사(天使)를 시켜 그를 구(求)하실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노아가 자신을 보존(保存)하는 방편(方便)이 될 방주(方舟)를 짓게 하는 길을 택(擇)하셨다. 이는 그의 믿음과 순종(順從)을 시험(試驗)하기 위(爲)함뿐만 아니라, 우리들로 하여금 어는 누구도 자기 자신의 구원(救援)을 애써 이루는 자가 아니고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救援)받을 자가 없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爲)함이었다. 하나님이 없이는 우리가 구원(救援)을 행할 수가 없으며, 우리들이 없이는(우리의 행동(行動)) 그가 하려 하지 아니하신다. 하나님의 심리(心理)와 그 은혜(恩惠)는 순종(順從)과 근면(勤勉)의 수고(受苦)를 인정(認定)해 주시고 영예(榮譽)롭게 해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이 방주(方舟)를 건립(建立)하는 데 관(關)하여 지극(至極)히 세밀(細密)한 지시(指示)를 하시었다. 창조주(創造主)의 무한(無限)한 지혜(智慧)가 바로 그 설계자(設計者)가 되셨으니, 그 목적(目的)에 놀랍게 합당(合當)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창 6:13~22, 매튜헨리)


⑷.<(창세기 6:17) 홍수(洪水)>

  “홍수(洪水)”(flood)에 해당(該當)하는 단어(單語) 맙불(mabbul)은 구약(舊約)을 통해 오직 노아의 홍수(洪水)만을 가리키기 위해 사용되었는데, (시 29:10)만은 예외(例外)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맙불은 앗수르어의 “멸망(滅亡)시키다”라는 뜻을 가진 단어(單語)의 어근(語根)에서 유래(由來)된 것으로 보인다. 

“물들의 범람(氾濫)”(flood of waters; 개역한글판에는 이것이 한 단어(單語) “홍수(洪水)”로 되어 있음-역자(譯者) 주)이라는 구절(句節)은 히브리어 구조(構造)상 “파멸(破滅), 곧 물들”이라고 번역(飜譯)할 수 있다. 이 구절(句節)은 파멸(破滅)에 이용(利用)될 수단(手段)에 관한 최초(最初)의 암시(暗示)이다.


(04월18일 (月) <홍수(洪水)가 일어남 >


(Q)~창세기 7장의 노아 홍수사건(洪水事件)의 의미(意味)를 통해 보게 되는 홍수(洪水)와 창조(創造)의 유사성(類似性)은 무엇입니까?


(A)~⑴.창세기 7장의 노아 홍수사건(洪水事件)의 의미(意味)는 단순(單純)히 세상을 물로 심판(審判)하여 멸망(滅亡)시킨 사건(事件)이 아니라 타락(墮落)한 이 세상을 깨끗이 청소(淸掃)하고 재창조(再創造)하시는 의미(意味)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앞으로 일어날 새 창조(創造)를 위해 새 하늘과 새 땅이 도래(到來)하는 세상 끝에도 이와 같은 역사(歷史)의 끝에 다가올 구원(救援)의 예표(豫表)임을 교훈(敎訓)하여 종말적(終末的) 심판(審判)을 통한 재창조(再創造)의 에덴의 회복(回復)을 상징(象徵)하여 그리스도인 모두는 준비(準備)토록 해야 할 사랑의 복음(福音)인 것이다.


⑵.보잘 것 없이 가련한 죄인들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마련하여 주신 구원(救援)의 길로 인도(引導)하는 복음(福音)의 부름에 순종(順從)하는 것이 그리스도에 대한 산 믿음으로써 우리들의 중대(重大)한 의무(義務)이다. 노아가 방주(方舟) 안으로 들어왔을 때에는 자신의 집과 땅도 버렸다. 우리도 우리의 독선(獨善)과 세상의 재물(財物)이 그리스도와 대등(對等)한 위치(位置)에 있으면 언제나 그것들을 버려야 한다. 노아는 잠시 동안이나마 세 세상을 위해서 살아남으려고 방주(方舟)에서의 위폐된 생활과 불편(不便)을 달게 받아야 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救援)받고자 그에게로 들어오는 자들을 고난(苦難)이나 섬기는 일에 있어서 자기 자신을 부인(否認)해야 마땅하다.


⑶.<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보호(保護)받음>

   성난 파도(波濤)와 격랑(激浪)속에서도 방주(方舟)를 안전(安全)하게 지켜주신 분은 그리스도이시었다. 방주(方舟) 속에 있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능력(能力)이 그들을 안보(安保)해 주실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리뷰 1901. 3. 12).(창 7:3~24, 화잇주석)


⑷.이 땅에서는 가장 선(善)한 사회(社會) 속에도 선(善)과 악(惡)의 섞여 있다. 이것을 우리는 기이(奇異)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 노아의 가정(家庭)에는 함 같은 존재(存在)가 있었고, 그리스도의 권속(眷屬) 중에는 유다가 있었다. 즉 인간 세계(世界)는 완전(完全)한 순결(純潔)이란 존재(存在)하지 아니한다는 것을 암시(暗示)해 준다.


⑸.하나님께서는 악(惡)한 때와 장소(場所)에서도 선(善)할 수 있는 자(者)들을 특별(特別)히 기뻐하신다. 그러므로 현저(顯著)하게 의(義)로웠으니 이는 그같이 사악(邪惡)하고 타락(墮落)한 세대(世代) 속에서도 의(義)로웠기 때문이다.


⑹.옛 세상을 물로써 멸망(滅亡)케 하신 이 사건(事件)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이 불로 최후(最後)의 심판(審判)을 받으리라는 전조(前兆)를 보이셨다. 우리는 사도(使徒) 베드로가 이 두 가지를 서로 대조(對照)한 것을 볼 수가 있다(벧후 3:6-7). 땅 속에는 물이 있듯이, 에트나(Aetna), 베수비우스(Vesuvius) 및 다른 화산(火山)들은 땅 밑에는 불도 있다는 것을 세상에 나타내 보이는 것이다. 때로는 불이 하늘에서 떨어져서 벼락으로 많은 폐허(廢墟)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따라서 예정(豫定)하신 때가 되면, 이 두 가지 불 사이에 있는 땅과 그 위의 모든 업적(業績)이 불타 버리리라. 그것은 큰 깊음의 샘들과 하늘의 창들을 통하여 옛 세상에 대홍수(大洪水)가 임(臨)했음과 같다.


(04월19일 (火) <홍수(洪水)의 끝> 


(Q)~ 하나님께서 노아를 “기억(記憶)하셨다”라는 말의 뜻은 무엇일까요?(창 8:1)


(A)~⑴.<(창세기8:1) 기억(記憶)하사. 라는 말씀은>

[히, 자카르] ‘기억(記憶)하다’, ‘새기다’의 뜻(창세기9:15, 욥 14:13). 

이는 평상시(平常時)에는 잊고 있다가 갑자기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恒常) 마음 속 깊이 새기고 있는 상태(常態)를 의미(意味)한다(느 5:19, 시 25:7). 즉(卽) 하나님께서는 홍수(洪水)가 계속(繼續)되는 동안에도 방주(方舟) 안의 생명(生命)들을 늘 잊지 않으시고 보호(保護)하셨다는 뜻이다. 또한 이는 이들을 위(爲)해 행(行)하실 다음 단계(段階)의 일까지 미리 생각(生覺)하고 계셨음을 뜻한다.


⑵.하나님이 노아를 기억(記憶)하셨다 함은 무엇인가? 그것은 그가 노아를 구원(救援)하셨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기억(記憶)하시는 자(者)들은 사실(事實)상 영원(永遠)히 기억(記憶)함을 입는다. 그가 우리를 구원(救援)하시기 위하여 우리를 기억(記憶)하시니, 우리들은 그를 섬기기 위하여 그를 기억(記憶)하도록 하기 위(爲)함임을 알아야 겠다.


⑶.<하나님의 은혜(恩惠)의 행위(行爲)이시다>. 

하나님이 노아와 그 모든 생물(生物)을 기억(記憶)하셨다. 이것은 인간적(人間的)인 표현(表現) 방식(方式)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피조물(被造物) 가운데 그 어느 것 하나라도(눅 12:6). 더욱이 그 백성 중의 어느 한 사람도 하나님께는 잊힐 수 없게 때문이다(사 49:15, 16).


⑷.하나님께서는 노아와 더불어 그 모든 생물(生物)을 기억(記憶)하시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특히 인간의 자손(子孫)들을 기뻐하시지만, 하나님의 모든 작품(作品)들(피조물(被造物))을 기뻐하시며, 자신이 지으신 것은 아무것도 미워하시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 백성(百姓)들 개개인(箇箇人)뿐만 아니라 그들의 소유물(所有物)에 대해서도 특별(特別)하신 배려(配慮)를 해 주신다. 그들과 그들에게 속(屬)한 모든 것을 돌보신다는 말이다. 그 분은 니느웨이 있는 육축(六畜)까지도 생각(生覺)하시고 있었다(욘 4:11).


⑸.하나님께서 노아를 기억(記憶)하여 그 가족(家族)을 구원(救援)하셨으며 그 가족(家族)의 구원(救援)을 노아는 그러하신 사랑의 하나님을 전적(全的)으로 믿고 신뢰(信賴)하였다.


(04월20일 (水) <언약(言約) – 1>


(Q)~(창세기 8:20) 방주(方舟)에서 나온 노아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무엇이었으며 그렇게 한 이유(理由)는 무엇이며, (창세기 9:2~4)에서 홍수(洪水)가 인간(人間)의 식습관(食習慣)에 어떤 영향(影響)을 끼쳤는가?


(A)~⑴.방주(方舟)에서 나온 노아는 제일(第一) 먼저 제단(祭壇)을 쌓고 하나님께 감사(感謝)의 제사(祭祀)를 드렸다. 

 노아는 "단(壇)을 쌓았다." 지금까지 그는 하나님의 특별(特別) 지시(指示)나 명령(命令)없이는 아무런 일도 행(行)하지 않았었다. 그는 방주(方舟) 안으로 들어갈 때도 특별(特別)한 부르심을 받았고, 그 곳에서 나올 때도 부르심을 받았다. 그러나 제단(祭壇)과 제사(祭祀)라고 하는 것은 이미 신앙(信仰)의 예배(禮拜)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제도(制度)이기 때문에 별다른 명령(命令)을 기다리지 아니하고도 그는 감사(感謝)함을 표현했다. 하나님의 긍휼(矜恤)함을 입은 자들은 자진(自進)해서 감사(感謝)함을 돌려야 한다. 그것도 싫은 것을 억지(抑止)로 하는 것이 아니라, 기쁜 마음으로 해야만 하겠다. 하나님께서는 자유의지(自由意志)에 따른 제사(祭祀)를 기쁘게 여기시며, 하나님을 기다리는 자를 칭찬(稱讚) 하신다. 노아는 이제 냉랭하고도 황폐(荒廢)한 세상으로 내보냄을 받았다. 그러한 곳에서의 제일(第一) 관심사(關心事)는 먼저 자신을 위해서 집을 세우는 일이라고 우리는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노아를 보라. 그는 하나님을 위해서 제단(祭壇)을 쌓는 것을 먼저 시작(始作)하고 있다. 하나님이 첫째이니 무엇보다도 먼저 그를 섬겨야 한다. 하나님과 함께 시작(始作)하는 자가 시작(始作)을 잘하는 자(者)이다.


⑵.<노아의 감사(感謝)제사(祭祀)를 하나님께서 은혜(恩惠)롭게 받으셨다>

"네가 잘했다면, 받아들이심을 입지 않겠느냐?" 하는 것이 족장(族長) 시대(時代)의 정(定)해진 규례(規例)였다. 

 노아가 바로 그러하였다. 그 이유(理由)는 다음과 같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행실(行實)을 매우 기뻐하시었다(21절). 여호와께서는 "그 향기(香氣)를", 또는 히브리어에 있듯이 거기에서 "안식(安息)의 향기(香氣)를 흠향(歆饗)하셨다." 최초(最初)에 이 세상(世上)을 창조(創造)하시고 일곱째 날에는 안식(安息)을 취(取)하시고 원기(元氣)를 회복(回復)하셨던 것과 같이 이제는 세상을 새롭게 만드시나 7분의 1을 드리는 희생(犧牲)의 제물(祭物) 가운데서 안식(安息)을 취(取)하신 것이다. 인간(人間)이 향기(香氣)롭고 기분 좋은 냄새를 즐거워하듯이, 하나님은 노아의 경건(敬虔)한 열심(熱心)을 매우 기뻐하셨다. 비록 그가 드린 것이 지극(至極)히 작은 것이기는 하였으나 그것은 그의 능력(能力)에 따른 것이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그것을 받아들이셨다. 그의 노여움을 죄인(罪人)들의 세계(世界)에 두셨던 이가. 이제는 이렇게 적은 수(數)의 남은 신앙인(信仰人)들에게 그의 사랑을 두셨다.


㉯.여기에서, 하나님은 두 번 다시 세상(世上)을 물에 잠기게 하지 않겠다는 결심(決心)을 하셨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노아의 제사(祭祀)보다는 자신을 드린 그리스도의 제사(祭祀)를 염두(念頭)에 두신 것이었다. 노아의 제사(祭祀)는 그리스도의 제사(祭祀)의 모형(模型)이요 상징(象徵)이다. 그리스도의 제사(祭祀)는 참으로 "향기(香氣)로운 번제물(燔祭物)" 이었다(엡 5:2). 여기에 우리가 의지(意志)할 수 있는 완전(完全)한 보증(保證)이 주어진 것이다. 곧 다음과 같다.

㉰.이 같은 심판(審判)이 결코 반복(反覆)되지 않으리라는 사실(事實).

○ "내가 다시는 땅을 저주(詛呪)하지 아니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죄악(罪惡)의 최초(最初)로 세상(世上)에 들어왔을 때 땅을 저주(詛呪)하셨고(13:17). 또한 땅을 물에 잠기게 하셨을 때에는 저주(詛呪)를 더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 이상 저주(詛呪)를 더하지 아니하겠다고 결심(決心)하신 것이다.


○ "내가 모든 생물(生物)을 더 이상(以上) 멸(滅)하지는 아니하리라." 

이는 곧 하나님께서 어느 특정(特定)한 개인(個人)이나 가정(家庭) 또는 국가(國家)에 대해서는 파멸(破滅)을 주더라도, 역사(歷史)가 끝나는 그 날이 이르기까지는 다시는 세상(世上) 전체(全體)를 멸망(滅亡)시키지는 않기로 정(定)했다는 뜻이다. 


㉱.자연(自然)의 진행(進行) 과정(過程)이 멈추는 일은 결코 없다(창8:22절).

 "땅이 있고 그 위에 인간(人間)이 있는 동안에는, 여름과 겨울과(지난 1년이 그랬듯이 내게 겨울만이 아니라) 낮과 밤이 있으리라." 아마 비가 내리는 동안에도 내내 밤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창 8:20, 매튜헨리)


⑶.홍수(洪水)로 인(因)해 먹을 것이 없던 사람들에게 제한(制限)된 범위(範圍) 안에서 육식(肉食)을 허용(許容)하셨다.

<두 가지 제한(制限)>

⑴.정(淨)하고 부정(不淨)한 동물(動物)을 구별(區別) 할 것 

⑵.피(血)는 절대(絶對)로 먹지 말 것.(창9:4)


(04월21일 (木) <언약(言約) - 2>


(Q)~(창 9:8~17)  홍수후(洪水後)에 주신 무지개의 의미(意味)는 무엇이며 무지개와 안식일(安息日) 사이의 연관성(聯關性)은 무엇입니까?


(A)~⑴. “무지가”나 “안식일(安息日)”이나 동일(同一)한 하나님의 약속(約束)이시며 목적(目的)은 구원(救援)의 보증(保證)이 되는 언약(言約)의 표징(表徵)이라는 것이다.


⑵.<(창9:13) 무지개>

   이것이 이전(以前)까지는 없었으나 노아와의 언약후(言約後) 비로소 생겨났는지 그 이전부터 있었는지는 분명(分明)치 않다. 그러나 

  ㉮.하나님의 천지창조(天地創造) 사역(事役)의 성격(性格)과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언약(言約)을 맺으실 때에도 기존(旣存)의 별을 두고 맹세(盟勢)하신 것(창15:5)에 근거할 때 무지개는 기존(旣存)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Calvin, Kalisch, Lange).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천지만물(天地萬物)은 자신의 언약시(言約時) 증표(證票)로 삼으시거나(신 4:26, 3:28, 시 19:1) 신령(神靈)한 진리(眞理)를 보여 주는 도구(道具)로 삼으시곤 하신다(마 6:26-30). 아마 그 이유(理由)는 하나님 자신(自身)이 친(親)히 창조(創造)하신 천지만물(天地萬物)은 하나님 자신의 실천적(實踐的) 행위(行爲)가 반영(反映)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⑶.<언약(言約)의 증거(證據)>

하나님께서 인간(人間)들에게 주신 모든 언약(言約)은 그 본질(本質)에 있어 영원불변(永遠不變)하다(창6:18). 그러나 그것이 주어지는 형식(形式)과 증거(證據)는 시대(時代)를 따라 형태(形態)를 달리한다. 아담의 타락(墮落)으로 인(因)해 생명(生命)이 단절(斷切)되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여자(女子)의 후손(後孫)이란 약속(約束)을 주셨고(창3:15) 모세시대에는 모세 같은 선지자(先知者)의 약속(約束)을 주셨다(신 18:15). 그리고 왕국시대(王國時代)에는 다윗의 위(位)를 이을 영원(永遠)한 왕에 대한 약속(約束)을(삼하 7:12), 이사야 시대(時代)에는 고난(苦難) 받는 종의 약속(約束)을 주셨다(사 42, 53장). 그런데 여기서는 무지개 언약(言約)을 주심으로 물 심판(審判)으로부터의 보호(保護)를 약속(約束)하고 계시니 결국(結局) 이 모든 언약(言約)의 증표(證票)는 하나님의 사랑의 표징(表徵)이자 기독교(基督敎) 언약(言約)의 그림자인 것을 알 수 있다. (창 9:13~17, 만나주석)


⑷."대대(代代)로" 곧 모든 세대(世代)가 "영원(永遠)한 계약(契約)으로" 이 날을 지켜야 한다고 했다(출31:16절). 이 날을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간(百姓間)에 맺은 계약(契約)의 증거물(證據物) 중에서도 가장 영속적(永續的) 증거물(證據物)의 하나로 삼으라고 하셨다.

⑸.<표징(表徵)>

  [히, 오트] ‘신호(信號)’라는 뜻이며 ‘기념비(記念碑)’, ‘증거(證據)’ 등의 의미(意味)도 있는데 대부분(大部分)의 영어(英語) 성경(聖經)은 이를 ‘sign’으로 번역(飜譯)했다. 이스라엘에게 최초(最初)의 언약(言約)의 ‘표징(表徵)’은 ‘할례(割禮)’로 나타났는데(창 17:10, 11), 여기서 다시 ‘안식일(安息日) 준수(遵守)’가 첨가(添加)되었다. 그러므로 이것들은 하나님과 이스라엘과의 관계(關係)를 계속적(繼續的)으로 상기(想起)시키는 ‘기념(紀念)’ 혹은 ‘증거(證據)’가 되었고, 또 한 편(偏)으로는 이스라엘을 다른 나라들과 뚜렷하게 구별(區別) 짓는 중요(重要)한 표(sign)이 되었다.


⑹.<출31:13) 나의 안식일(安息日)>

출애굽기를 마치는 장들의 두드러진 특징(特徵)들 중의 하나는 제7일 안식일(安息日)의 거룩하게 준수(遵守)할 것에 대한 반복적(反復的)인 훈계(訓戒)이다(참조 16:22~30; 20:8~11; 23:12; 34:21; 35:2, 3). 십계명(十誡命) 중의 다른 어떤 계명(誡命)도 이렇게 언급(言及)된 적이 없으므로 이는 안식일(安息日)이 지극(至極)히 중요(重要)함을 입증(立證)한다. 안식일(安息日) 준수(遵守)에 대한 이곳의 언급(言及)은 단지 비슷한 주의 사항의 반복이 아니다. 그것은 안식일(安息日)을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百姓) 사이의 “표징(表徵)”으로 소개(紹介)하고 있으며, 안식일(安息日)을 범(凡)하는 것에 대한 형벌(刑罰)은 “죽음”임을 경고(警告)하고 있다.


⑺.<표징(表徵)>

 하나님은 이미 할례(割禮)를 그들과 그분의 “언약(言約)” 관계(關係)에 대하여 그들의 육체(肉體)에 지니는 “표징(表徵)”으로 이스라엘 백성(百姓)들에게 주었다(창 17:9~14; 행 7:8). 이제 안식일(安息日)은 육체(肉體)가 아니라 마음에 지니는, 이 언약관계(言約關係)의 부가적(附加的)인 “표징”이 될 것이었다(출 31:12, 13, 16, 17; 렘 31:31~33; 겔 20:12, 20; 고후 3:3). <아멘>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대총회 북아태지회 한국연합회 성경통신학교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한국연합회 선교부 | 고유번호증번호: 204-82-62040 | 대표자: 강순기 | 부서장: 신광철
Copyright © 2014 안식일학교·선교부 All rights reserved.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