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과 홍수(질문, 대답, 설명) 04/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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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2-04-16 03:32 조회5,147회 댓글0건본문
제4과 홍수
(4월 23일 안식일 / 일몰: 오후 7시 14분)
연구 범위: 창 6:13~7:10, 벧후 2:5~9, 창 7, 롬 6:1~6, 시 106:4, 창 8, 창 9:1~17
기억절: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마 24:37).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창 6:5). “보시고”라는 동사는 독자들의 관심을 하나님께서 처음 모든 것을 창조하시던 때로 향하게 한다. 그러나 지금 하나님의 눈에 보이는 것들은 “좋았더라”(tov)라고 말씀하셨던 그때와 달리 악한 것(ra‘)들 뿐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악(ra‘)으로 가득한 이 세상을 보시며 세상을 창조하신 것을 후회하고 계신 듯하다(창 6:6, 7).
그러나 하나님의 후회에는 구원의 약속이 포함되어 있다. ‘위로하다’라는 뜻의 히브리어 나함(nakham)이 ‘위안’(창 5:29)이라는 뜻을 가진 노아(Noakh)의 이름에 나타난다. 즉, 악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은 두 가지로 나타난다. 하나님께서는 누군가를 멸망으로 이끄는 정의의 판결을 내림과 동시에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구원으로 이끄는 위로와 자비의 약속을 허락하신다.
이와 같은 ‘두 가지 음성’을 가인과 아벨/셋은 이미 들었으며 그 음성은 셋(하나님의 아들들)과 가인의 계보(사람의 아들들)의 대비를 통해 반복되었다. 우리는 이제 노아와 나머지 인간들을 구분하여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통해 이 음성을 다시 듣게 된다.
*학습 목표
- 깨닫기
하나님께서 홍수를 통해 지구를 깨끗하게 하셔야만 했던 이유를 깨닫는다.
- 느끼기
어떤 위기 속에서도 당신의 사랑하는 백성들을 기억하고 돌보시는 하나님께 감사한다.
- 행하기
죄악 가운데서도 끝까지 하나님께 순종하며 믿음을 지켰던 노아처럼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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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무엇이라고 명령하셨으며 노아는 어떻게 응답하였습니까?(창 6:13~7:5)
※ 방주를 지으라고 명하셨고 노아는 순종으로 응답했다.
3. 창세기 7장을 통해 보게 되는 홍수와 창조의 유사성은 무엇입니까?
※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들을 다 보존하셨고 새로운 세상을 만드시겠다는 것을 나타내셨다. 새롭게 창조하신다는 것이 유사성이다.
4. 하나님께서 노아를 “기억하셨다”라는 말의 뜻은 무엇일까요?(창 8:1)
※ 그와 그의 후손을 구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자비를 나타낸 것이다.
5. 방주에서 나온 노아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무엇이었으며 그렇게 한 이유는 무엇입니까?(창 8:20)
※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경배한 것이다.
6. 홍수 후에 주신 무지개의 의미는 무엇이며 무지개와 안식일 사이의 연관성은 무엇입니까?(창 9:8~17)
※ 사람을 구원하시겠다는 의미이며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반드시 이행하시겠다는 보증의 표이다. 안식일도 생명과 존재를 보증하시는 증명의 날이다.
결론
이 땅에 죄악이 가득함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물로 세상을 재창조하시고 택하신 종 노아를 통해 의인의 계보를 이어 가셨습니다. 노아는 믿음으로 방주를 만들고 그 속에 들어감으로 구원함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노아와 같은 믿음을 통해 마지막 때를 위한 하나님의 기별을 전하며 세상을 향한 축복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4월 17일(일) 홍수를 위한 준비
창세기 6:13~7:10을 읽어 보라. 인류 역사 초기에 있었던 이 놀라운 사건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창6:13~7:10]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14 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 15 네가 만들 방주는 이러하니 그 길이는 삼백 규빗, 너비는 오십 규빗, 높이는 삼십 규빗이라 16 거기에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 중 하 삼층으로 할지니라 17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운이 있는 모든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것들이 다 죽으리라 18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며느리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 19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너는 각기 암수 한 쌍씩 방주로 이끌어들여 너와 함께 생명을 보존하게 하되 20 새가 그 종류대로, 가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각기 둘씩 네게로 나아오리니 그 생명을 보존하게 하라 21 너는 먹을 모든 양식을 네게로 가져다가 저축하라 이것이 너와 그들의 먹을 것이 되리라 22 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7:1 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이 세대에서 네가 내 앞에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 2 너는 모든 정결한 짐승은 암수 일곱씩, 부정한 것은 암수 둘씩을 네게로 데려오며 3 공중의 새도 암수 일곱씩을 데려와 그 씨를 온 지면에 유전하게 하라 4 지금부터 칠 일이면 내가 사십 주야를 땅에 비를 내려 내가 지은 모든 생물을 지면에서 쓸어버리리라 5 노아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6 홍수가 땅에 있을 때에 노아가 육백 세라 7 노아는 아들들과 아내와 며느리들과 함께 홍수를 피하여 방주에 들어갔고 8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과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은 9 하나님이 노아에게 명하신 대로 암수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으며 10 칠 일 후에 홍수가 땅에 덮이니,
답: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을 위하여 예비하는 것과 그 말씀 대로 준행하는 복을 배울 수 있다.
다니엘과 마찬가지로, 노아는 세상의 끝을 예견하는 선지자였다. 히브리어로 ‘방주’를 뜻하는 테바(tevah)라는(창 6:14) 단어는 이집트에서 유래한 흔치 않은 외래어로서, 이집트에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 보존된 모세를 감추기 위해 사용되었던 “갈대 상자”와 같은 것이다(출 2:3).
또한, 어떤 이들은 방주의 전반적인 구조가 성막에 있던 궤와 유사하다는 사실에 주목하기도 한다(출 25:10). 홍수 때의 방주가 인류의 생존을 가능케 했던 것처럼, 백성들 가운데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는(출 25:22) 당신의 백성들을 위한 하나님의 구원의 사역을 가리킨다.
“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창 6:22)라는 말씀은 준비 단계를 마무리한다. 노아의 행동을 나타내는 “하였더라”라는 동사는 방주를 짓기 시작할 때 주셨던 하나님의 “만들라”라는 명령에 대한 반응을 나타낸다. 두 단어는 히브리어로 아사(‘asah)라는 동일한 동사인데, 이 단어는 창세기 6:14~16에서 다섯 번 반복된다.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노아의 반응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하라고(‘asah) 명령하신 일에 대한 노아의 완전한 순종을 나타낸다. 같은 표현(‘asah)이 언약궤를 만드는 것을 설명할 때에도 사용된 점은 매우 흥미롭다(출 39:32, 42, 출 40:16).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방주의 정확한 치수와 건축에 관하여 세부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확실한 지시를 주셨다. 인간의 지혜로는 그렇게 강력하고 내구성 있는 큰 건축물을 고안해 낼 수 없었다. 하나님은 설계자이시고 노아는 건축가였다”(부조와 선지자, 92).
노아와 모세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두 상자(tevah)의 유사성은 그것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던 구속의 기능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준다. 그렇기 때문에 노아의 순종은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의 일부로 묘사된다. 노아는 하나님께서 하라고 명령하신 일을 행할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구원을 받았다(참조, 히 11:7). 그는 순종을 통해 나타나는 믿음에 대한 좋은 예가 되었는데(약 2:20) 그와 같은 믿음이 바로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믿음이다.
<묵상>
벧후 2:5~9을 읽어 보십시오. 노아의 가족만이 구원을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다가오는 심판에 대하여 세상에 경고하도록 부름 받은 우리의 역할에 관하여 노아의 이야기를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벧후2:5~9] 옛 세상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으며 6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하지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 7 무법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로 말미암아 고통 당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8 (이는 이 의인이 그들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이 상함이라) 9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실 줄 아시고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에 두어 심판 날까지 지키시며,
답: 의를 전파하는 믿음으로 구들이 구원받았다. 우리도 우리에게 맡긴 구원의 바른 복음을 노아처럼 성실히 전파해야 할 것이다.
<부가설명> 노아는 믿음의 사람이었다고 히브리서 11장에서 설명한다. 그는 비가 전혀 내리지 않았던 천연계 환경에서도 창조주께서 비를 내리겠다고 하신 그 말씀을 전적으로 믿고 준비하라는 방주를 잘 지었다. 그가 방주를 지을 동안 의를 전파하였다. 아마도 방주 짓는 일을 노아 가족만이 하지 않았을 것이다. 많은 일꾼들이 삯을 받고 일했을 것이다. 노아는 그들에게 열심히 비가 올 것을 전했을 것이고 많은 사람들이 구경하러 왔을 것이다. 비라는 것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노아를 비웃었을 것이고 조롱했을 것이다. 그래도 그는 하나님의 명을 성실하게 준행했고 믿음의 후사를 세상에 생육하는 창조 때의 명령을 수행하여 여덟 식구 외에 살아남은 자가 없는 세상을 이렇게 충만하게 하는 사명을 감당했다. 오늘날 재림기별을 맡은 남은 자손도 이 사명을 잘 수행해야 할 것이다. 오직 믿음으로 이 일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교훈>
노아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방주를 지었고 하나님의 명령에 온전히 순종한 그 믿음으로 인해 구원을 받았다.
4월 18일(월) 홍수가 일어남
노아의 행동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된 히브리어 동사 아사(‘asah)는 ‘만들다’라는 뜻인데, 이 단어는 창세기 1장에 등장하는 창조 사건의 핵심 단어이다(창 1:7, 16, 25, 26, 31, 창 2:2). 하나님께 순종한 노아의 행동이 하나님의 창조하시는 일을 닮았다는 뜻이다. 이와 같은 연관성을 통해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것은, 홍수가 단지 하나님께서 인간을 벌하시는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리시기 위한 일이라는 것이다.
창세기 7장을 읽어 보라. 홍수에 관한 묘사가 우리에게 창조 사건을 기억나게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두 사건의 유사성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답: 창조하실 때 사용한 단어들을 많이 사용했다. 그리고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노아에게 명한 것은 창세기 1:28과 같은 말씀이다. 이런 것은 홍수로 죄가 차고 넘치는 세상을 멸하고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실 것을 예표적으로 나타내었다.
홍수에 관해 기록해 놓은 성경 말씀을 유심히 살펴보면, 창조 이야기 때 사용된 것과 공통된 단어들과 표현들이 많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일곱”(창 7:2, 3, 4, 10, 비교, 창 2:1~3), “남자와 여자/암수”(창 7:2, 3, 9, 16, 비교, 창 1:27), “그 종류대로”(창 7:14, 비교, 창 1:11, 12, 21, 24, 25), “들짐승,” “새,” “기는 것들,”(창 7:8, 14, 21, 23, 비교, 창 1:24, 25), 그리고 “생명의 기운”(창 7:15, 22, 비교, 창 2:7).
이런 관점으로 보면 홍수 이야기는 창조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홍수 이야기 속에 나타난 창조의 흔적은 창조하시는 하나님과 멸망시키시는 하나님이 같은 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신 32:39). 하지만 이와 같은 유사성은 희망의 기별을 전달하기도 한다. 홍수는 새로운 창조가 되도록 계획되었으며, 이를 통해 세상은 새롭게 존재하게 될 것이었다.
창세기 7장에 나타난 물의 움직임은 홍수를 통한 재창조가 창세기 1장에 기록된 창조의 행위를 정반대로 뒤집는 것임을 보여 준다.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한 창세기 1장과 달리(창 1:7), 홍수는 경계를 넘어 터진 물들이 다시 합쳐지게 했다(창 7:11).
이와 같은 과정은 역설적인 기별을 전해 준다. 하나님께서는 앞으로 일어날 새 창조를 위해 전에 있던 것을 파괴하셔야 한다. 새로운 지구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옛 것이 파괴되어야 한다. 홍수 사건은 인류 역사 끝에 다가올 세상의 구원을 예표한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계 21:1, 비교, 사 65:17).
<묵상>
홍수 사건을 통해 마지막 때에 일어날 일에 관하여 깨닫게 되는 새로운 사실은 무엇입니까?
<부가설명> 창조주께서는 죄, 곧 사망이 없는 세상을 심히 좋게 창조하셨다.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생명을 불어넣어서 아담 부부가 가진 생명은 신적인 생명, 곧 하나님의 생명이었다(엡4:18 창고). 그가 하나님과 언약을 어김으로 이 생명을 선악과를 먹은 당일에 잃어버렸다. 그가 벌거벗은 것을 알았는데 그것은 선악과를 먹은 결과였다(창3:11). 선악과를 먹었을 때 하나님의 생명이 없어진 것이다. 그 생명은 빛의 옷으로 나타났던 옷이다(요1:4, 시104:2 참고). 그가 입었던 빛의 옷이 사라진 것은 그에게 주신 하나님의 생명이 없어졌다는 증명이었다. 그때부터 그는 육체뿐인 사람이 되었다(시78:39). 이런 존재로 땅에 충만하게 되었을 때 세상은 죄가 관영(차고넘침)하게 된 것이다. 이런 세상은 창조주께서 계획하신 세상이 아니다. 그분은 처음 계획을 이루셔야 하셨다. 그래서 이 죄의 세상을 심판하시고 노아를 통하여 다시 구원을 이루시는 계획을 수행하려 하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다 아는 대로 그 이후 예수님 오셔서 구원의 일을 이루시고 재림하셔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실 때까지 죄의 잔은 가득하게 될 것이다. 그때까지 믿음으로 의롭게 된 사람들이 충만하게 되어야 할 것인데, 그 일이 남은 자에게 위탁되었다.
<교훈>
홍수 사건은 단순히 세상을 물로 멸망시키는 사건이 아니라 세상을 재창조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셨으며 이와 같은 일은 세상 끝에도 있을 것이다.
4월 19일(화) 홍수의 끝
창세기 7:22~24은 “지면의 모든 생물을 쓸어버”렸을(7:23) 뿐만 아니라 “백오십일을 땅에 넘쳤”던(창 7:24) 물이 초래한 압도적인 절망을 묘사한다. 그런데,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 기억하셨다. “하나님이...기억하사”(창 8:1)라는 구절은 홍수 이야기의 정중앙에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이 개념이 홍수 이야기의 핵심 기별임을 보여 준다.
창세기 8:1을 읽어 보라. 하나님께서 노아를 “기억하셨다”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창8:1]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가축을 기억하사 하나님이 바람을 땅 위에 불게 하시매 물이 줄어들었고,
답: 하나님의 백성과 지구의 사정을 잘 알고 그들을 구원하실 것이라는 은혜의 마음을 나타낸 것이다.
‘기억하다’라는 뜻을 가진 자카르(zakhar)라는 동사는 하나님께서 잊지 않으셨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것은 단순히 머릿속으로만 기억하셨다는 뜻이 아니다. 성경에서 ‘기억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를 의미하며 자주 구원을 가리킨다(참조, 창 19:29). 홍수의 문맥 속에서 “하나님이...기억하사”라는 말은 비가 그쳤음을 의미하며(창 8:2), 노아가 곧 방주에서 나올 수 있을 것임을 나타낸다(창 8:16).
아직 방주를 떠나라는 직접적인 명령이 주어지지는 않았지만, 노아는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먼저 까마귀를 날려 보내고 다음으로 비둘기를 날려 보낸다. 마침내 비둘기가 돌아오지 않자 그는 땅 위에서 물이 걷힌 것을 알게 되었고 방주 뚜껑을 열고 살펴보았다(창 8:13).
노아의 행동은 실제적인 교훈들로 가득하다. 그의 행동은 하나님께서 직접적으로 말씀하지 않으실지라도 끝까지 그분을 신뢰해야 함을 가르쳐 준다. 다른 한편으로는, 믿음이 스스로 생각하고 시험해 보는 것의 가치를 부인하지 않음을 또한 가르쳐 준다. 믿음은 생각하고 찾고 우리가 배운 것이 옳은지 확인하는 것에 대한 책임을 배제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아는 하나님께서 최종적으로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시고 난 후에야 비로소 밖으로 나간다(창 8:15~19). 방주 밖으로 나가도 안전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노아는 여전히 하나님을 의지했으며 밖으로 나가라는 하나님의 신호를 기다린다. 그는 방주 안에서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그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방주에 들어간 것같이 떠나라는 특별한 지시가 내리기를 기다렸다.…마침내 한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와, 육중한 문을 열고 족장(族長)과 그의 가족들에게 모든 생물들을 데리고 땅으로 내려가라고 명하였다”(부조와 선지자, 105).
<묵상>
창세기 8:1, 19:29, 그리고 시편 106:4을 읽어 보십시오. “하나님이 기억하사”라는 표현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그대를 기억하고 계심을 어떻게 보여 주셨습니까?
[창8:1]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가축을 기억하사 하나님이 바람을 땅 위에 불게 하시매 물이 줄어들었고,
[창19:29] 하나님이 그 지역의 성을 멸하실 때 곧 롯이 거주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내셨더라.
[시106:4] 여호와여 주의 백성에게 베푸시는 은혜로 나를 기억하시며 주의 구원으로 나를 돌보사,
답: 우리의 사정을 다 아시고 언제든지 필요할 때 도우실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부가설명> 온 지구를 뒤덮은 홍수의 물결을 그냥 두면 언제 마를는지 알 수 없다. 창조주시며 심판주께서는 이런 사정을 잘 아신다. 이런 사실을 잊지 않고 돌보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셨다. 생각하셨다.’라는 말로 표현하셨다. 창19:29의 ‘생각하사’라는 말은 8:1의 ‘기억하사’라는 말과 같은 ‘자카르’이다. 창조주께서는 당신의 피조물의 곤고함을 잘 아신다. 방주 안에 있는 노아의 식구들과 짐승들을 생각하셔서 바람을 불어 물을 마르게 하신다. 내 생각으로는 이때 온 지구를 덮은 물을 모아 무더기로 쌓아 얼게 하신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그것이 남극과 북극의 얼음들이다. 그때 홍수 후에 추위와 더위가 생겼다고 창8:22에 말씀하셨다. 더위와 추위는 얼음을 얼게 하는 기본 요소이다. 공중에 습도가 있을 때 눈이 내리고 내린 눈이 얼음이 된다. 그래서 지구라는 큰 덩어리에 오직 8명만 있을 때 하나님은 그들과 그들의 자손들이 살 수 있도록 물을 한 곳을 모아 쌓으시고 바로 빠지게도 하셔서 지구 정지작업을 하신 것이다. 노아는 철저히 하나님의 말씀대로 움직였다. 비가 그쳤고 물이 줄어든 것을 알았으나 하나님께서 나가라고 하기까지 지루한 시간을 방주 안에서 기다렸다. 이 모든 것이 노아가 하나님을 철저히 신뢰하고 그의 말씀대로 움직였다는 것을 드러내는 삶의 모습이다. 우리는 어떤가?
<교훈>
모든 것이 물로 파괴된 완전한 절망 가운데서 하나님께서는 노아를 기억하시고 그와 그의 가족을 구원해 내셨으며 노아는 그런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했다.
4월 20일(수) 언약 – 1
마침내 약속된 언약이 이루어질 때가 왔다.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며느리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창 6:18). 멸망시키겠다는 말씀(창 6:17)과 대조적으로, 이 언약은 생명의 약속이었다.
창세기 8:20을 읽어 보라. 노아가 방주에서 나와 처음으로 한 일은 무엇이었으며 왜 그렇게 했는가?
[창8:20] 노아가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제물을 취하여 번제로 제단에 드렸더니,
답: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번제를 드렸다.
아담과 하와가 육일간의 창조를 마치고 난 직후 맞이한 안식일에 하나님께 예배했던 것처럼, 노아는 그 자체로 또 다른 창조 사건이었던 홍수가 끝나자마자 하나님께 예배했다. 하지만 그 두 예배 사이에는 차이점이 있다. 하나님께 직접 예배 했던 아담과 하와와 달리, 노아는 제사에 의지해야 했다. 이곳은 성경에서 제단이 처음으로 언급된 곳이다. 이 제사는 가장 오래되었을 뿐만 아니라 가장 많이 드려졌던 제사인 “번제”(‘olah)였다. 노아에게 있어 이 제사는 그를 살려 주신 창조주에게 감사를 표현하는 감사의 제물이었다(비교, 민 15:1~11).
창세기 9:2~4을 읽어 보라. 홍수가 인간의 식습관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창9:2~4]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바다의 모든 물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하리니 이것들은 너희의 손에 붙였음이니라 3 모든 산 동물은 너희의 먹을 것이 될지라 채소 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 4 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째 먹지 말 것이니라.
답: 육식이 허락되었다.
홍수의 영향으로 인해 예전처럼 식물로 된 음식을 구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육식을 허락하셨다. 이와 같은 식습관의 변화는 본래의 창조 때와 비교하여 사람과 동물들 사이의 관계에 변화를 가져왔다. 창조 이야기 속에서는 사람과 동물 모두 식물로 된 음식을 먹었기 때문에 서로에게 위협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홍수 후에는 음식으로 사용하기 위해 동물을 죽여야 했음으로 둘 사이에 무서움과 두려움의 관계가 형성되었다(창 9:2). 사람과 동물이 서로를 잡아먹게 되었을 때, 에덴에서 누리던 것과는 다른 관계를 형성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허용에는 두 가지 제한이 있었다. 첫째, 모든 동물이 음식으로 적합한 것은 아니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첫 번째 제한은 “정하고 부정한” 동물을 구분하는 데서 분명히 나타난다(참조, 창 8:19, 20). 두 번째 제한은 핏속에 생명이 있으므로 피는 절대로 먹지 말라는 것이었는데(창 9:4), 이것은 분명하고도 새로운 명령이었다.
<묵상>
홍수 후에 하나님께서 육식을 허락하시면서 주셨던 제한에는 어떤 원칙이 담겨 있었습니까?
답: 정결한 짐승의 고기를 먹을 수 있고, 피는 절대로 먹을 수 없었다.
<부가설명> 성경에는 먹고 마신다는 말이 여러 번 나타난다. 계시록에는 문밖에서 두드리시는 예수께서 문을 열고 영접하면 함께 먹고 마시겠다고 하셨다. 먹고 마시는 것은 육체가 된 사람들이(창6:3) 생존을 위하여 절대로 필요한 것이다. 에덴동산에 먹기에 좋고 보기에 아름다운 과실나무가 많이 나게 하셨다고 기록했는데 그때도 먹어야 생존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창조하신 사람들의 즐거운 삶을 위하여 주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죽지 않는 영생의 생명, 하나님의 생명을 받았기 때문에 음식물과 생존이 관계없었다(눅20:35,36 참고). 안 먹어도 영생하는 생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망의 존재가 된 후에는 먹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수명을 누릴 동안 건강하고 맑은 정신으로 생활해야 하기 때문에 건강에 좋은 음식을 먹도록 한 것이다. 세상에 어떤 경전에 식생활에 관한 교훈이 이렇게 자세히 기록되었는가? 불교는 건강이 문제가 아니라 윤회 사상 때문에 육식을 금한 것일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건강을 위한 하나님의 배려이다. 음식에 관한 것을 분명히 지시하셨고 그것을 마땅한 때에 먹으라고 권고하셨다(전10:17). 성경에 지시한 식생활을 하여 하나님 백성의 건강을 누리고 건강으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식생활 자체가 예배가 되는 삶이면 얼마나 좋을까?
<교훈>
방주에서 나온 노아는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렸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홍수로 인해 먹을 식물이 없던 사람들에게 제한된 범위 안에서 육식을 허용하셨다.
4월 21일(목) 언약 - 2
창세기 8:21~9:1을 읽어보라. 생명을 보존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의 중요성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축복은 그 약속을 어떻게 성취하는가?
[창8:21~9:1]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받으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다시 멸하지 아니하리니 22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 9:1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답: 앞으로는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않으시겠다고 하시고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하셨다.
생명을 보존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소산이다. 인간의 공로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인간의 악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지구에 생명을 보존하시기로 결심하셨다(창 8:21). “땅이 있을 동안에는”(창 8:22)이라고 기록된 이 말은, 현재의 지구가 유지되는 동안에는 계절이 바뀌고 생명이 계속될 것이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창조하신 것들을 포기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의 축복에 대해 말하며 이어지는 말씀은, 우리에게 본래의 창조 때 하나님께서 주셨던 축복을 기억하게 한다(창 1:22, 28, 창 2:3).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새롭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던 것이다.
창세기 9:8~17을 읽어 보라. 무지개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언약의 증거”(창 9:13)는 또 다른 언약의 증거인 안식일과 어떤 연관이 있는가?
[창9:8~17]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한 아들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9 내가 내 언약을 너희와 너희 후손과 10 너희와 함께 한 모든 생물 곧 너희와 함께 한 새와 가축과 땅의 모든 생물에게 세우리니 방주에서 나온 모든 것 곧 땅의 모든 짐승에게니라 11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멸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12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나와 너희와 및 너희와 함께 하는 모든 생물 사이에 대대로 영원히 세우는 언약의 증거는 이것이니라 13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와 세상 사이의 언약의 증거니라 14 내가 구름으로 땅을 덮을 때에 무지개가 구름 속에 나타나면 15 내가 나와 너희와 및 육체를 가진 모든 생물 사이의 내 언약을 기억하리니 다시는 물이 모든 육체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아니할지라 16 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있으리니 내가 보고 나 하나님과 모든 육체를 가진 땅의 모든 생물 사이의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리라 17 하나님이 노아에게 또 이르시되 내가 나와 땅에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세운 언약의 증거가 이것이라 하셨더라.
답: 창조와 보존의 연관이 있다.
“언약을 세우리니”라는 표현이 세 번 반복되는데(창 9:9, 11, 17), 이는 하나님께서 앞서 주셨던 약속을 반드시 지키신다는 것을 강조해서 드러낸다(창 6:18). 육일간의 창조 이야기와 평행을 이루는 앞부분의 내용에 이어, 이 부분은 창조 이야기 가운데 일곱 번째 날, 안식일을 다루는 부분과 평행을 이룬다. 본문에서 “언약”이라는 단어가 일곱 번 반복되는 것은 안식일을 떠오르게 한다. 안식일과 마찬가지로 무지개는 언약의 증거이다(창 9:13, 14, 16, 비교, 출 31:12~17). 안식일과 마찬가지로 무지개는 우주적 범위를 가지고 있고 온 세상에 그 영향을 미친다. 창조의 표징으로 주어진 안식일이 모든 곳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한 날인 것처럼, 다시는 물로 세상을 멸망하지 않으시겠다는 약속 또한 모든 곳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다.
<묵상>
언젠가 무지개를 보게 되면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을 떠올려 보십시오. 우리가 그 약속을 신뢰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이며, 무지개가 그 약속을 신뢰할 수 있음을 어떻게 보여 주나요?
답: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반드시 이행하시는 분이심을 기억하게 한다.
야고보서 1:17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변함없으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기 원하시며 그렇게 하시기 위해 지금도 일하고 계십니다. 무지개는 그러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상징입니다. 비록 현재 우리의 삶이 힘들고 어려울지 모르지만, 무지개 너머에서 우리를 위해 가장 좋은 것을 준비하고 계신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야겠습니다.
<부가설명> 무지개는 홍수 후에 나타내셨는데 하나님께서는 무지개를 ‘내 무지개’라고 하셨는데, 요한이 계시를 볼 때 계시록 4:3에 보면 하나님의 보좌를 두르고 있는 무지개를 보았다. 그것을 홍수 후에 지구에 언약의 증거로 나타내실 때 빛과 빗방울의 작용으로 드러나도록 제정하신 것이다. 무지개는 하나님의 보좌 구성의 한 부분을 지구 사람들에게 보여주신 것이다. 우리가 무지개를 바라볼 때 하나님의 보좌의 한 부분을 보는 감격을 느끼게 된다. 이사야는 이것은 구원하시는 증거라고 표현했다(사54:8~10). 환난의 때에 하나님께서 성도들과 함께 하신다는 증표이기도 하다. 오늘날 사탄은 이것을 동성애자들의 휘장(徽章)으로 사용하도록 모독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는 동성애 공화국이 구역이 있다. 그들의 국기가 바로 무지개다. 사탄은 못된 일들을 골라하고 있다. 할로윈데이가 10월 31일이다. 이날은 루터 종교개혁 기념일이다. 그것을 할로위데이로 만들었다. 내가 느끼는 대로는 한마디로 하면 귀신의 날이다. 세상이 문화라는 이름으로 사조(思潮)를 이끌 때 성경과 반대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사상을 대적하는 사상을 홍수처럼 토해낸다(계12:15 참고). 우리는 세상 문화사조에 떠내려가지 않도록 말씀에 굳게 선 믿음으로 복음을 지키고 전진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항상 함께 하신다.
<교훈>
하나님께서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이 땅에 생명을 보존하시기로 결심하셨으며, 그에 대한 증거로 모두에게 적용되는 무지개를 통한 언약을 허락하셨다.
4월 22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홍수 전 시대의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오늘날 살아가는 사람들의 것들과 비교해 보는 것은 매우 의미있다. 인간의 사악함은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그들이 살던 시대와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유사성을 살펴보라.
“홍수 전 세계에 멸망을 불러들인 죄들은 오늘날에도 존재한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생각이 사람들의 마음에서 사라지고, 그분의 율법은 무관심과 멸시를 받고 있다. 지금 이 세대는 노아 시대만큼이나 크게 세속화 되었다.…하나님께서는 먹고 마신 것으로 홍수 전 사람들을 정죄하지는 않으셨다.…그들의 죄는 주신 분께 감사 드림 없이 이 선물들을 취한 것과 식욕을 자제하지 못하고 방종함으로 말미암아 자신들을 타락시킨 데 있었다. 결혼하는 것은 그들에게 합법적이었다. 결혼은 하나님의 질서 가운데 있었고 그것은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최초의 제도들 가운데 하나였다. 그분은 결혼 제도에 대한 특별한 지시를 주셨으며 이것을 거룩함과 아름다움으로 옷 입히셨다. 그러나 이 지시는 잊혀 졌고, 결혼은 왜곡되어 정욕을 채우는 수단으로 전락되어 버렸다. 현재의 상황도 이와 비슷하다. 그 자체로는 합법적인 것이 지나치게 남용되고 있으며…사기와 뇌물 수수와 도둑질은 높은 곳에서나 낮은 곳에서나 정죄 받지 않고 활개를 치고 있다. 신문 지상에는 살인에 대한 기사로 가득하다.…무정부주의 정신이 각국에 퍼지고 있으며, 세계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폭동들은 일단 통제를 벗어나면 세상을 재난과 황폐로 채우게 될, 갇혀 있는 정욕과 무법의 불의 징후에 지나지 않는다. 현 사회는 성경에 기록된 홍수 전 세계의 상황으로 신속히 빠져 들어가고 있다”(부조와 선지자, 101, 102).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홍수 전 시대의 특징과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이와 같은 공통점이 여전히 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 노력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관하여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는가?
※ 마음의 생각이 항상 악한 것이 같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시며 예수 안에서 구원받기를 기대하신다. 우리는 이것을 증명하고 전파해야 할 것이다.
2. 어떤 사람들은 노아 홍수가 지역적인 사건이었다고 주장한다. 그와 같은 주장이 가진 문제점은 무엇인가?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지역적인 홍수가 일어날 때마다 하나님께서 거짓말쟁이가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 만일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가 아니다. 홍수로 온 세상을 덮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이 사실인 것을 증명하는 것이 지역적 홍수다. 노아의 홍수가 지역적이라면 무지개 언약은 거짓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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