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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 창세기 5. 모든 민족과 바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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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광진 작성일22-04-26 07:07 조회2,86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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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범위 9:18~11:9, 10:1, 1:1~17, 1:26~33, 139:7~12, 1:28, 9:1 

 

기억절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니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11:9)

 

핵심 하나님은 저주받은 가나안에게도 구원의 기회를 주시고, 바벨탑 건설자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신 것도 사람을 세상에 충만케 하시려는 그 분의 뜻을 이루기 위함이었다.

*핵심어 : 혼잡

 

토의 및 탐구를 위한 질문

 

도입 : 벌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복이었음을 알게 된 경우가 있다면?

 

.1. 함이 노아의 하체를 봄으로 저주를 받은 것이 정당한가(9:18~27)?

2. 그러나 가나안에 대한 저주에는 어떤 희망이 포함되었는가?(9:25~27)

 

.1. 노아 후손의 족보를 기록한 이유는 무엇일까(10, 5:32)?

2. 성경의 족보는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1. 홍수 이후의 세대들에게 또다시 어떤 위기가 발생했는가(11:1~4)?

2. 나는 어떻게 하나님을 대적하거나 교만에 빠질 수 있는가?

 

.1. 바벨탑을 건설하는 일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은 무엇인가(11:5)?

2. 내가 잘못된 길에 있을 때 하나님이 가까이 다가오신 경험이 있는가?

 

.1. 하나님이 바벨탑 건설을 중단시킨 이유는 무엇일까(11:7~9, 1:28)?

2. 나의 삶에서 중단해야 할 바벨탑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적용, 결심

 

이번 주 교과를 통해서 결심한 것이 있다면?

 

답을 위한 도움

 

.1. 부모를 업신여기는 정신이 저주받은 것

 

노아가 포도주를 마시고 벌거벗은 것은 큰 실수였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고 벌거벗음으로 수치를 느꼈던 경우와 같이, 성경은 여러 곳에서 벌거벗은 것을 수치와 관련시키고 있다(3:7, 삼상 20:30, 삼하 6:20, 3:5, 3:17).

함은 아버지의 수치를 보고 조롱거리로 삼아 형제들에게도 말했다. 이는 아버지를 공경하지 않고 업신여기는 태도로 매우 비열한 정신의 발로인 것이다. 이를 알게 된 노아는 함의 자손 가나안이 저주를 받을 것임을 예언적으로 선언했다.

 

2. 셈의 후손으로 말미암는 축복에 참여할 수 있음

 

가나안 족속이 셈과 야벳 족속의 종이 될 것이라는 저주는, 셈과 야벳으로부터 분리되어 독자적인 세계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그들도 셈과 야벳의 장막에 거함으로 셈의 후손 메시야를 통해 주시는 복의 부스러기라도 받을 수 있다(15:27)는 의미다.

 

함에게 내려진 저주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구원을 받아들이는 함과 가나안의 후손을 포함하여 모든 민족에게 축복이 될 것이다.

 

.1. 성경의 사실성을 보여줌

 

10장에 나오는 노아의 후손들의 족보는 창 5:32의 아담 후손의 족보와 연결된다. 하나님이 지으신 아담으로부터 시작된 족보는 신약에서 예수님에게까지 이어진다. 이 족보들은 유대인들이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성경의 족보는 성경이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 그대로를 기록한 책임을 보여주며, 그것이 오늘날 나에게도 매우 실제적인 의미가 있음을 말한다.

 

성경에 기록된 족보는 세 가지 기능을 가지고 있다. 첫째, 그것은 성경에 기록된 사건들의 역사성을 강조한다. 성경에 기록된 사건들은 수명이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으며 분명히 존재했던 실제 사람들과 연관되어 있다. 둘째, 그것은 고대에서부터 저자가 살던 시대까지의 연속성을 보여줌으로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연결을 확고히 한다. 셋째, 그것은 인간의 연약함과 죄로 인한 저주의 비극적인 효과, 그리고 그 저주가 뒤이어 등장한 세대들에게 끼친 치명적인 결과를 기억하게 한다.

 

.1. 하나님을 대적함

 

하나님은 홍수 이후에 다시는 물로 세상을 멸망시키지 않겠다는 약속의 징표로 무지개를 보여주셨다. 무지개가 여전히 나타나는데도 노아의 후손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불신하고 앞으로는 어떠한 홍수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구원의 길을 스스로 고안하여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을 만큼의 바벨탑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자신들의 명성을 후대에까지 널리 전하고자 했다. 이것은 루스벨이 품었던 교만의 정신과 다를 바 없었다. 그대로 두면 그들은 스스로 멸망에 빠질 것이었다.

 

요약하자면, 바벨탑의 건축자들은 창조주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잘못된 야망을 품었다. 누가 이런 생각을 불어 넣었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14:14)... 하늘에 닿아 하나님의 자리를 빼앗으려고 했던 그들의 노력이 바벨론의 정신의 특징이다.

 

하나님께 불평했던 바벨탑 건설자들 - “바벨탑 건설자들은... 아담에게 베푸신 그분의 긍휼과 노아와 맺으신 그분의 은혜로운 언약을 기억하면서 감사하기는커녕 그들은 최초의 부부를 에덴에서 추방하시고 세계를 홍수로 멸망시킨 하나님의 가혹하심에 대하여 불평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을 가혹하며 독단적이라고 불평하는 한편 그들은 폭군 중에도 가장 잔인한 폭군의 통치를 받아들이고 있었다”(부조와 선지자, 120).

 

2. 내가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는 고귀한 존재임을 확신할 수 있다.

 

.1. 강림

 

하나님은 세상에 내려와서 봐야만 제대로 알 수 있는 분이 아니다. 그러나 그 분은 또한 하늘에서 보고 심판만 하시는 전제 군주가 아니다. 그 분은 죄인들에게 가까이 다가오셔서 실상을 보고 구원의 길을 보여주시는 친밀하신 아버지시다.

 

역설적으로, 사람들은 위로 올라가려 했으나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로 내려오셨다. 하나님의 내려오심은 그분의 높으심을 확증한다. 하나님은 언제나 사람의 손이 닿을 수 없는 곳에 계신다. 스스로의 노력으로 하나님이 계신 곳까지 올라가 그분을 만나려고 하는 어떠한 노력도 무의미하며 어리석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를 살리기 위해 예수님께서 내려오신 것이다. 그것이 우리를 살리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었다.

 

.1. 세상에 충만케 하려고

 

하나님은 인류가 온 세상에 흩어져 충만케 되기를 원하셨다. 그러나 바벨탑 건설자들은 흩어짐을 면하기 위해 연합하여 제국을 이루고 그들의 지혜로 하나님의 권세에 대항하려고 했다.

그들은 하나의 언어를 사용하였으나 하나님이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심으로 역사는 중단되었고 서로 소통이 되지 않음으로 인하여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그렇게 하나님의 원래의 계획이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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