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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기 제2과-타락(墮落) (The Fall)-(핵심 Q&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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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봉주 작성일22-04-05 10:12 조회3,10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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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과 타락(墮落) (The Fall)

                                         (4월 9일 (안) / 日沒: 19시02분)

 

(04월 03일(일)  <뱀>(the Serpent) 


(Q)~(창세기 3:1, 계 12:7~9, 요 8:44) 가장 간교(奸巧)하다고 한 뱀의 정체(正體)는 무엇이며 그가 가진 특징(特徵)은 무엇입니까?

 

(A)~⑴.뱀은 인류(人類)를 죄악(罪惡)의 길로 유혹(誘惑)하고 타락(墮落)의 길로 빠트린 매우 교활(狡猾)하고 기만적(欺瞞的)인 존재(存在)로써 하늘에서 반역(叛逆)한 하나님의 원수(怨讐)인 사탄으로 땅으로 내어 쫓김을 당한 존재(存在)로 뱀을 매개(媒介)로 하여 하와를 유혹(誘惑)하여 죄인(罪人)이 되게 한 실체(實體)로 사탄이라고 하며 악(惡)의 세력(勢力)을 상징(象徵)한 표현(表現)이다.

 

⑵.<뱀은 다른 동물(動物)들보다 더 간교(奸巧)한 피조물(被造物)로 소개(紹介)된다>

 “간교(奸巧)하다”는 단어(單語), 아룸(‘arum)은 성경(聖經)에서 바람직하지 못한 품성(稟性)의 경향(傾向)을 나타내기 위하여 몇 차례 사용(使用)되는데(욥 5:12; 15:5), “영리하다” 또는 “교활(狡猾)하다”는 의미(意味)를 내포하고 있으나 대개는 “신중(愼重)하다”는 호의(好意)적인 의미(意味)로 사용된다(참조 잠 12:16, 23; 13:16; 14:8, 15, 18; 22:3; 27:12). 여기서는 후자(後者)의 호의적(好意的)인 의미(意味)가 더 어울리는 것 같다. 왜냐하면 뱀은 하나님이 “좋았더라!, 심지어(甚至於)는 “심히 좋았더라!(1:25, 31)고 선언(宣言)하였던 피조물(被造物)들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이다. 오늘날 뱀의 악(惡)한 특성(特性)은 타락(墮落)과 그에 뒤이은 저주(詛呪)의 결과(結果)이지, 그것이 창조(創造)되었을 당시 그 동물(動物)의 특성(特性)은 아니다.

 

뱀은 실재(實在)한 동물(動物)이 아니라 초자연적(超自然的)인 존재(存在)였다는 반대(反對) 주장(主張)은 그것이 진정(眞正)으로 동물(動物)이었다는 명백(明白)한 진술(陳述)에 비추어 볼 때 심각(深刻)하게 반박(反駁)할 필요(必要)가 거의 없다. 그러나 온 성경(聖經)은 뱀 자체(自體)가 인간(人間)의 타락(墮落)에 책임(責任)이 있지 않고, 오히려 사단에게 책임(責任)이 있다는 것을 매우 명백(明白)히 한다(참조 요 8:44; 고후 11:3, 14; 롬 16:20).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단은 인간을 속이기 위한 시도(試圖)에서 뱀을 매개체(媒介體)로 사용(使用)하였기 때문에 때때로 비유적(比喩的)인 의미(意味)에서 뱀으로 불린다(참조 계 12:9; 20:2). (창 3:1, 재림교주석)

 

⑶. 뱀. [히, 나하쉬] 본래 이 단어(單語)는 파충류(爬蟲類)를 가리키는 포괄적(包括的)인 낱말이나 성경(聖經)에서는 모두 ‘뱀’으로 번역(飜譯)된다.(사 27:1, 렘 8:17, 미 7:17). 한편 뱀을 가리키는 히브리어는 사나움을 강조(强調)하는 ‘사라프’(민 21:8, 사 30:6)와 ‘용’(욥 7:12, 시 74:13, 사 27:1, 렘 51:34)으로도 번역(飜譯)되며 특히 큰 뱀을 가리키는 ‘탄닌’(출 7:9, 신 32:33) 등이 있으나, 여기서 사용된 ‘나하쉬’는 사람을 꾀며 미혹(迷惑)하는 능력(能力)을 지닌 뱀의 교활(狡猾)함을 특히 강조(强調)하는 명칭(名稱)이다.

 

(04월 04일(월)  <금지(禁止)된 열매>

 

(Q)~(창 3:1~6) 뱀이 하와에게 했던 말의 핵심(核心)을 요약(要約)해 보십시오.

 

(A)~⑴.뱀(사단)의 두 가지 유혹(誘惑)과 질문(質問)으로 

㉮.<죽음> → 죽지 않는 것 

㉯.<선악(善惡)에 관(關)한 지식(知識)> → 하나님과 같아지는 것으로, 이는 고대(古代) 종교(宗敎)가 가지고 있는 특징(特徵)으로 불멸(不滅)이라는 개념(槪念)의 뿌리의 근본(根本)으로 영혼불멸(靈魂不滅)의 탄생(誕生)이라 할 수 있다.

 

⑵.<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뱀을 자기의 매개체(媒介體)로 사용(使用)한 사단은 여자(女子)에게 단독(單獨)으로 말할 수 있을 때를 찾았다. 한 개인(個人)이 자신(自身)을 보호(保護)해 주는 환경(環境)으로부터 떠나 있을 때, 나쁜 일을 저지르도록 그를 설득(說得)하기가 항상(恒常) 더 쉽다. 하와가 남편(男便)곁에 머물러있었다면, 남편의 존재(存在)는 그녀에게 보호막(保護幕)이 되었을 것이며, 그 이야기는 의심(疑心)할 바 없이 다른 결말(結末)을 맺게 되었을 것이다.

 

⑶.<하나님이 참으로…하시더냐?>

 사단은 순진(順進)해 보이지만 매우 교묘(巧妙)한 질문(質問)을 그녀에게 했다.  그 질문(質問)은 

㉮. “너희들이 먹지 말아야 할 실과(實果) 나무들이 동산에 있느냐?”라는 뜻에서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實果)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로 번역(飜譯)해야 할지 혹(或)은

 

㉯. “동산(東山)의 어떤 나무의 실과(實果)도 먹어서는 안 된다”로 번역(飜譯)해야 할지 논란(論難)이 되어 왔다. 히브리어는 두 번역(飜譯)이 다 가능(可能)하므로, 다소 모호(謀互)한 점이 있다. 사단은 자신의 말이 불명확(不明確)하고 모호(謀互)하도록 의도(意圖)하였다. 그의 목적(目的)은 명백(明白)하였다. 그는 여자의 마음에 하나님의 명령(命令)의 진정(眞正)한 어법(語法)과 정확(正確)한 의미(意味)에 관해서, 특히 그러한 명령(命令)의 타당성(妥當性)과 공정성(公正性)에 관해서 의심(疑心)의 씨를 뿌리기 원(願)했다. (창 3:1, 재림교주석)

 

⑷.<유혹(誘惑) 그 자체(自體)와 그 유혹(誘惑)의 수단(手段)은 다음과 같다>

성경(聖經)은 우리를 엄습(掩襲)해 오는 사탄의 유혹(誘惑), 즉 그 "궤계(詭計)" (고후 2:11). 그의 "깊은 것" (계 2:24). 그리고 그의 간계(奸計)(엡 6:11)에 대해서 말해 준다. 이러한 예(例)를 우리는 이 곳과 또 마태복음 4장에 나오는 두 사람의 아담을 유혹(誘惑)하는 장면(場面)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여기서는 마귀(魔鬼)가 성공(成功)하였지만 자중(自重)의 경우(境遇)에는 마귀(魔鬼)가 실패(失敗)하였다. 외부(外部)에서부터 말하는 것을 가지고는 사람들을 무너뜨리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아는 사탄은 우리 자신들의 속이는 마음과 그들의 육체적(肉體的)인 이론(理論)들을 가지고 우리 속에서부터 말한다. 이것은 매우 분간(分揀)하기 곤란(困難)한 공격(攻擊)이지만 동시(同時)에 매우 위험(危險)한 공격(攻擊)이다. 마귀(魔鬼)는 하와로 하여금 금단(禁斷)의 열매를 따먹도록 설복(說服)하고자 시도(試圖)하였다. 이 방법(方法)을 마귀(魔鬼)는 계속(繼續) 오늘날까지도 사용(使用)한다. 마귀(魔鬼)는 죄(罪)가 되느냐, 혹(或)은 아니냐고 물었다(1절). 마귀(魔鬼)는 거기에 아무런 위험(危險)이 없다고 하였다(4절). 그는 오히려 많은 이득(利得)이 있다는 것을 넌지시 일러 주었다(5절). 이런 것들이 흔히 마귀가 사용하는 화술(話術)이다. (창 3:1, 매튜헨리)

 

<핵심(核心)>

참으로 좋으신 하나님께선 인간(人間)에게 자유의지(自由意志)의 선택(選擇)을 주셨다. 그러므로 선택(選擇)은 매우 중요(重要)하다.

선택(選擇)은 책임(責任)과 결과(結果)가 따른다는 사실(事實)을 반드시 주지(周知)하여야 한다. 잘못된 선택은 모든 인류(人類)를 절망 속으로 빠뜨리는 비극(悲劇)의 시작(始作)이 되었다. 

 

(04월 05일(화)  <하나님의 낯을 피(避)하여 숨은지라>

 

(Q)~(창 3:7~13) 아담과 하와가 죄(罪)를 지은 후(後) 일어난 변화(變化)들은 무엇이었습니까?

 

(A)~⑴.<벗은 줄을 알고>

타락(墮落) 전(前)과는 달리 수치심(羞恥心)을 느낀 까닭은 창조시(創造時) 하나님께로부터 부여(附與) 받았던 순수(純粹)하고 고귀(高貴)한 영적(靈的) 순결(純潔)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이 치마를 사용(使用)해 몸을 가릴 수는 있을지언정 하나님 앞에서의 영적(靈的) 수치(羞恥)는 가릴 수 없었다. 또한 (창3:7) 무화과(無花果) 나무 잎사귀가 죄(罪)를 가리우지는 못한다는 사실(事實)을 기억(記憶)하라.

 

⑵.그들의 지성(知性)의 눈이 열렸으나 그들은 자신(自身)들이 더 이상(以上) 무구(無垢)(더러움이 없는)하지 않음을 알았다. 또한 그들의 육체적(肉體的)인 눈이 열렸으며 그들은 자신(自身)들이 벌거벗은 줄을 알게 되었다.

 

⑶.<(창3:13) 뱀이 나를 꾀므로>

 여자(女子)도 자신(自身)을 속인 일에 대하여 뱀을 비난(非難)하면서 한 대답(對答)을 준비(準備)하고 있었다. 

아담도, 그의 아내도 사실(事實)을 부인(否認)하지는 않았으나, 다른 누군가에게 죄(罪)를 뒤집어씌움으로 비난(非難)을 피(避)하려고 하였다. 어느 쪽도 회개(悔改)의 증거(證據)를 보여 주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의 고백(告白) 가운데는 한 가지 주목(注目)할만 한 차이점(差異點)이 있다. 

여자(女子)는 자신이 속았다고 항의(抗議)하였으나, 

아담은 자신(自身)의 행위(行爲)가 그 결과(結果)를 충분(充分)히 아는 가운데 행(行)해진 의도적(意圖的)인 것이었음을 넌지시 인정(認定)하였다.” (창 3:7~13, 재림교주석)

 

<핵심(核心)>

 죄(罪)에 빠진 아담과 하와는 여호와의 낯을 피(避)하여 숨은 이유(理由)는 두려움과 죄를 깨달음으로 지성(知性)의 눈이 열리고 육체(肉體)의 눈은 열렸지만 자신(自身)들의 잘못을 인정(認定)하는 대신 회개(悔改)가 아닌 죄의 전가(轉嫁)로 비극(悲劇)의 시작(始作)이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질문(質問)을 통해 그들의 잘못을 깨닫고 구원(救援)의 자리로 인도(引導)하시고자 하셨다. 

 

(04월 06일(수)  <뱀의 운명(運命)>

 

(Q)~(창 3:15) 절망(絶望) 가운데 빠진 아담과 하와에게 하나님께서 허락(許諾)하신 소망(所望)은 무엇입니까?

 

(A)~⑴.하나님은 얼마나 친절(親切)하신가! 하나님의 공의(公義)는 죄가 그 형벌(刑罰)을 치를 것을 요구(要求)하였으나, 하나님의 자비(慈悲)는 이미 타락(墮落)한 인류(人類)를 구속(救贖)할 길, 곧 하나님의 아들의 자발적(自發的)인 희생(犧牲)에 의한 길(벧전 1:20; 엡 3:11; 딤후 1:9; 계 13:8)을 발견(發見)하였다. 

 

⑵.하나님은 사람이 자신(自身)의 죄를 속(贖)하기 위하여 지불(支拂)해야 할 대가(代價)를 이해(理解)하도록, 시각교재(視覺敎材)를 제공(提供)해 주기 위한 방편(方便)으로 제사의식(祭祀儀式)을 제정(制定)하였다. 무죄(無罪)한 어린양은 인간의 생명(生命)을 위하여 생명의 피를 흘려야 했으며, 죄인의 벌거벗음을 가려주기 위하여 그의 가죽을 주어야 했다. 그리하여 인간이 항상(恒常) 하나님의 아들을 상징적(象徵的)으로 상기(想起)할 수 있도록 하였는데, 그는 인간의 범죄(犯罪)를 속(贖)하기 위하여 그의 생명을 내놓아야 할 것이었으며 그의 의(義)만이 인간을 덮어주기에 충분(充分)할 것이었다. 우리는 아담이 구속(救贖)의 계획(計劃)을 얼마나 분명(分明)하게 이해(理解)하였는지 모르나, 죄가 영원(永遠)히 계속(繼續)되지는 않을 것이며 구속주(救贖主)가 여인(女人)의 후손(後孫)으로 태어날 것이고 잃어버린 통치권(統治權)을 다시 얻으며 에덴의 행복이 회복(回復)될 것이라는 사실이 충분(充分)히 계시되어 그에게 보증(保證)이 되었으리라는 것을 확신(確信)할 수 있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구원(救援)의 복음(福音)은 성경(聖經)의 중심주제(中心主題)이다. (창 3:15, 재림교주석)

 

⑶.<네 머리를 상(傷)하게 할 것이요>

머리’(히, 로쉬)는 신체(身體)상의 ‘머리’ 뿐 아니라(48:14, 신 21:12) 지위(地位)나 장소(場所)에 있어 ‘최고(最高) 높은 것’(대하 13:12, 애 1:5)을 뜻하는 말이다. 또한 ‘머리’는 이어서 나오는 ‘발꿈치’와 대조(對照)되는 개념(槪念)으로 지적(知的)이고 영적(靈的)이며 고유(固有)의 생명(生命)을 가진 전인(全人)으로서의 ‘영혼(靈魂)’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상(傷)하게 하다”(히, 슈프)이다. 이 말은 ‘분쇄(粉碎)하다’라는 뜻이 있다. 따라서 뱀의 머리를 상(傷)하게 한다는 것은 그의 전 존재(存在)를 회복불가능(回復不可能)하게 멸망(滅亡)시킨다는 뜻이다.

 

⑷.<발꿈치를 상(傷)하게 할 것이니라>

‘발꿈치’(히, 아케브)는 ‘끝부분’으로 신체(身體) 기능(機能)면에서든지, 지위(地位)면에서든지 크게 중요(重要)하지 않은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것은 머리를 상(傷)하게 하는 것과는 다르게 회복가능(回復可能)한 상처(傷處)이다. 이것은 또한 ‘머리’와는 대조(對照)되는 개념(槪念)으로 ‘육신(肉身)’을 가리킨다. 이것을 상(傷)하게 한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十字架)에서 죽임을 당하실 것을 상징(象徵)한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그 상처(傷處)에서 회복(回復)되었다. 무덤에서 일어나신 것이다. 사탄은 십자가(十字架) 형벌(刑罰)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죽일 수는 있었지만 그의 영혼(靈魂)을 죽일 수는 없었다. 성경은 “몸은 죽여도 영혼(靈魂)은 능(能)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靈魂)을 능히 지옥(地獄)에 멸(滅)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마 10:28)고 말한다.

 

⑸.구속(救贖)의 경륜(經綸)[계획]과 메시아 예언(豫言). 

기독교(基督敎) 해석(解釋)사의 수세기(數世紀) 동안, (창 3:15)은 문자적(文字的)인 해석(解釋)에서 상징적(象徵的)인 해석(解釋)에 이르기까지 다양(多樣)하게 이해(理解)되어 왔다. 어떤 이들은 단순(單純)히 인간과 뱀의 투쟁(鬪爭)을 묘사(描寫)하는 것이라고 해석(解釋)하고, 다른 이들은 왜 인간이 뱀을 두려워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왜 뱀이 기어 다니며 흙을 먹게 되었는지를 설명(說明)해 주는 허구적(虛構的)인 이야기라고 주장(主張)한다. 가톨릭교회의 해석자(解釋者)들은 이 본문(本文)에서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처녀(處女) 탄생(誕生)의 개념(槪念)을 읽어내, 그녀가 다른 인간 존재(存在)들보다 우월(優越)하다고 주장(主張)한다. 한편 마르틴 루터는 처음으로 (창3:15)을 ‘프로테방겔리움’(Protevangelium) 곧 “최초(最初)의 복음(福音)”이라고 불렀다(Ojewole, Afolarim Olutunde, ”The Seed in Genesis 3:15, An Exegetical and Intertextual Study” (Ph.D. dissertation, Andrews University, 2002)).

 

⑹.집단적(集團的) 복수에서 개인적(個人的) 단수로. 집단적(集團的) 복수로서의 씨(제라)에서 대표적 단수로서의 씨로 좁혀져 가는 것은 메시아 본문(本文)의 지표(指標)이다. (창 22:17-18, 24:60, 민 23-24장, 삼하 7:12-15) 등은 집단적(集團的) 복수에서 개인적(個人的) 단수로의 유사(類似)한 이동(移動)을 나타내 보여 준다. 이것은 메시아 본문에 나타나는 주요(主要) 특징(特徵)이다. 따라서 신약(新約)은 집단적(集團的) 씨(롬 16:20, 갈 3:29, 계 12:17)를 언급(言及)하고, 그것이 결국(結局) 예수의 인격(人格) 안에서 특정(特定)한 단수 개인으로서의 ‘씨’로 좁혀지며(갈 3:16, 19), 그가 마침내는 구체적(具體的)으로 사탄 곧 마귀(魔鬼)로 밝혀진 뱀을 이긴다(계 12:9).

 

⑺.(창 3:15절)에서 이러한 좁혀짐은 서로 원수관계(怨讐關係)에 있는 뱀(단수)과 여자(단수) 양편(兩便)에 다 나타난다(창 3:15b). 적대감(敵對感)이 증가(增加)하여 뱀의 모든 씨[집단적(集團的)]와 여자의 씨[집단적]로 번져간다(15c). 그런 후 드라마는 좁혀져서 뱀(단수)과 여자의 대표적 씨(단수)의 투쟁에서 절정(絶頂)을 이룬다(15d, 15e). 그러므로 (창 3:15)의 ‘제라’(씨)는 단수만도 아니고 복수만도 아니다. (창 3:15)는 다음과 같이 번역(飜譯)되고 그 단계(段階)가 나눠질 수 있다.

 

15a “그리고 내(하나님)가 원수(怨讐)가 되게 할 것이다(하나님의 개입)”

15b “너(뱀, 사탄, 단수)와 여자(하와, 단수) 사이에”

15c 그리고 “너의 씨(집단적 복수, 사탄의 모든 추종자(追從者)들)와 여자의 씨(집단적 복수, 그리스도의 모든 추종자(追從者)들) 사이에” 

15d “그(대표 단수로서의 여자의 씨, 그리스도)가 네(단수, 사탄) 머리를 상(傷)하게 할 것이요”

15e “그리고 너(단수, 사탄)는 그(단수, 그리스도)의 발끔치를 상(傷)하게 할 것이다”

마지막 구절(15e)의 첫 낱말인 접속사(接續詞) ‘그리고’는 뱀(주어)의 집단적(集團的) 씨로부터 단수인 뱀(주어)으로의 전환(轉換)을 보여준다.

 

⑻.뱀과 여자간(女子間)의 원수관계(怨讐關係)는 수세대(數世代)를 통하여 그의 씨(후손(後孫))들을 통하여 계속(繼續)된다. 그러므로 (창 3:15)은 예언적(豫言的)이며 종말론적(終末論的)이다. 이 원수(怨讐)관계(關係)는 사탄과 그리스도의 간(間)의 운명적(運命的)인 격돌(激突)에서 절정(絶頂)에 이르는데, 거기서 사탄과 그의 군대(軍隊)는 결정적(決定的)으로 패배(敗北)한다. 여자(女子)의 특별(特別)한 씨인 그리스도는 자신(自身)에 대한 사탄의 치명적(致命的)인 공격(攻擊)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생명(生命)을 제물(祭物)로 드렸기 때문에 그는 종과 같은 구속주(救贖主)요, 은혜(恩惠)로운 구주(救主)요, 대제사장(大祭司長)이시다. 이는 대속적(代贖的)인 견지(見地)에서 그리스도께서 뱀의 머리를 맨발로 밟으신 것과 같다. 이것이 구속(救贖)의 경륜[계획]이요 메시아에 대한 예언(豫言)이다.” (창 3:15, 만나주석)

 

<핵심(核心)>

하나님의 창조(創造)는 생명(生命)과 아름다움을 감격(感激)과 축복(祝福)을 가져 오셨지만, 사단은 심판(審判)으로 죽음과 악(惡)과 저주(詛呪)를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류(人類)를 위한 구원(救援)과 소망(所望)으로 사단의 패배(敗北)에 대한 약속(約束)이 (창3:15절)에서 약속(約束)과 보장(保障)으로 이미 예언(豫言)되었으며 절망(絶望) 가운데 빠진 인류(人類)를 위한 구원(救援)의 계획(計劃)이 여자의 후손(後孫)을 통하여 공개(公開)되어 지구(地球)에 죄가 시작(始作)된 그 첫 순간(瞬間)부터 사탄의 패배(敗北)는 선언(宣言)되어 있답니다.

 

(04월 07일(목) <인간(人間)의 운명(運命)>

 

(Q)~(창세기 3:15~24) 타락(墮落)의 결과(結果)로 아담과 하와에게 일어난 일들을 정리(定理)해 보십시오.

 

(A)~⑴.죄는 인간에게 죽음과 동산(東山)으로부터의 추방(追放) 곧 하나님과의 단절(斷切)을 가져왔다. 진정(眞正)한 삶이란 생명(生命)의 근원(根源)이신 하나님과의 교제(交際)안에 있으며 죽음은 그 교제(交際)가 끊어진 분리(分離)의 상태(常態)를 뜻합니다. “따먹고 영생(永生)할까 하노라” 저주(詛呪) 받은 상태(常態)에서의 영원(永遠)한 삶은 오히려 또 하나의 저주(詛呪)와 형벌(刑罰)이 되기 때문에 낙원(樂園)에서의 추방(追放)은 구속(救贖)사역(使役)을 위한 하나님의 섭리(攝理)의 시작(始作)이자 인간 사랑의 또 다른 측면(側面)이 되는 것입니다.

 

<핵심(核心)>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不順從)의 죄는 모든 죄의 시초(始初)가 됩니다. 그러나 뱀에게 내려진 하나님의 심판(審判)은 저주(詛呪)로 내려 졌지만 이와는 달리 남자와 여자에게는 하나님께서 다른 계획(計劃)을 가지고 계셨음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즉 심판(審判)은 구원(救援)이라는 긍정적(肯定的)인 관점(觀點)에서 소망(所望)을 주시므로 죽음이라는 절망적(絶望的)인 선고(宣告)를 받은 후에 절망(絶望)중에 희망(希望)으로 여자의 해산(解産)을 통해 생명의 희망(希望)을 발견(發見)하게 된다는 사실(事實)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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