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과-신성의 증거들 -(핵심Q&A)
페이지 정보
작성자 이봉주 작성일24-10-08 07:58 조회1,011회 댓글0건첨부파일
- 제2과-신성의 증거들-이봉주 장로.hwp (107.0K) 33회 다운로드 DATE : 2024-10-08 07:58:30
본문
제2과 신성(神性)의 증거(證據)들
10월 12일 (안) / 일몰: 오후 5시 59분)
<기억절(記憶節)>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요 11:25, 26).
<서언(緖言)>
(요한복음 7가지 표적(表迹))
①.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신 표적(요 2장)
②.왕의 신하의 아들을 살리신 표적(요 4장)
③.38년 된 병자를 고치신 표적(요 5장)
④.5천 명을 먹이시고 물 위를 걸으신 표적(요 6장)
⑤.바다 위를 걸어오심(요 6장),
⑥.날 때부터 소경된 자를 고치신 표적(요 9장)
⑦.나사로를 살리신 표적(요 11장). ※ 물고기 153마리를 잡게 하심(요 21장).
◈. 성경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생명의 구주(救主) 믿어야 하는 많은 말씀들이 기록되어 있다.
성경 기록은 믿을만하지 못한 어떤 것을 믿으라고 강요하는 미신적(迷信的)이거나 불합리(不合理)한 교훈(敎訓)이 아니다. 기독교(基督敎)는 하나님께서 주신 믿을 만한 증거(證據)들을 보고 믿으라고 말하는 복된 소식이다. 에수님께서는 죽은 지 나흘이나 된 나사로를 살리셨다. 그것은 그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시며 우리의 생명을 다시 일으키시(부활(復活))는 신적(神的) 구주(救主)이심을 증명(證明)한다. 이번 주 (제2과)를 통하여 예수님에 대한 신적(神的) 증거와 확신을 갖자.
(10월 06일) (일) <오천 명을 먹이심>
(Q)~예수님과 모세 사이에 어떤 유사점(類似點)을 찾을 수 있으며, 예수께서 여기서 행하신 일은 사람들에게 모세의 사역(使役)을 통해 조상(祖上)들이 받은 구원(救援)을 상기(想起)시키는 것이었을까요? (요한복음 6:1~14)
(A)~요한은 예수님께서 단순히 표적(表迹)과 기사(奇事)를 행하시는 것이 아니라 유대 민족이 가진 맥락(脈絡)에서 특별한 의미(意味)가 있는 표적(表迹)과 기사(奇事)를 행하시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 본질(本質)은 예수께서 사람들을 향(向)해 자신의 신성(神性)을 가리키고 계신 것이다. 즉 유월절이 가까울 무렵 행하신 5,000명을 먹이신 표적은 모세의 경험과 평행구조를 이루며 유대 민족에게 특별한 표적을 통해 예수님의 신성(神性)을 말씀하는 것이다.
⑴.이 이야기의 수(數)많은 세부사항은 예수님을 출애굽기의 모세와 평행구조(平行構造)를 놓습니다.
⑵.유월절(踰越節)(요한복음 6:4)은 애굽에서의 위대한 구원(救援)을 가리킵니다.
⑶.모세가 시내산으로 올라갔을 때 예수님께서 산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요한복음 6:3).
⑷.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시험을 받은 것처럼 예수님께서 빌립을 시험하셨다. (요한복음 6:5, 6).
⑸.오병이어(五餠二魚)의 기적(奇蹟)은 (요한복음 6:11)은 만나를 연상(聯想)시킨다.
⑹.남은 음식을 모으는 일(요한복음 6:12)은 이스라엘 백성이 만나를 모으는 일을 떠올리게 한다.
⑺.남은 음식이 담긴 열두 광주리를 주워 모았다, (요한복음 6:13). 이는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支派)와 같은 수(數) 자다.
⑻.사람들은 예수님이 세상에 오는 선지자(先知者)라고 말합니다. (요한복음 6:14). 이는 (신명기 18:15)에 예언된 "모세와 같은 선지자(先知者)"와 같다
⑼.이 모든 것은 예수님이 그의 백성을 구원(救援)하기 위해 온 새로운 모세를 가리킨다.
⑽.그러나 유대인들은 표상(表象)은 중시(重視)했지만, 의미(意味)는 무시했다.
(10월 07일) (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先知者)라”>
(Q)~사람들은 예수님의 기적(奇蹟)에 어떻게 반응(反應)했고, 예수님은 이 기적(奇蹟)을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 어떻게 가르치려고 하셨는가? (요한복음 6:14~15, 26~36)
(A)~예수님께서 보여주시고자 했던 것과 그들이 보고 싶어 한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예수님의 오병이어(五餠二魚)의 기적(奇蹟)으로 군중을 먹인 일을 통해 예수님은 자신이 하늘에서 온 생명의 떡이라는 영적진리(靈的眞理)를 가르치려 하셨으나 사람들은 그 대신 눈에 보이는 이익(利益)을 찾고 있었다.
⑴.예수님을 믿을 때 영생(永生)을 얻는다는 것을 깨닫기를 바랐으나 사람들은 현실적욕망(現實的欲望)에 눈이 막혀 깨닫지 못했다.
⑵.사람들은 예수님을 모세가 말한 그 선지자(先知者)라고 생각해서 왕으로 추대하려고 했다.
⑶.만나는 모세가 준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는 말씀으로 예수님의 신성(神性)을 드러내셨으나 그들은 알아듣지 못했다.
⑷.유대인들은 로마 제국의 압제(壓制)에서 자신들을 구원(救援)해 줄 이 땅의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다
⑸.예수님은 기적(奇蹟)을 통해서 먹는 것을 비롯하여 여러 상황에서 모든 것이 가능하신 것을 보여주셨다.
⑹.기적(奇蹟)과 표적(表迹) 등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理由)나 목적(目的)이 아니었고, 기적(奇蹟)을 행하신 목적도 아니었다.
⑺.오병이어(五餠二魚)의 기적(奇蹟)은 예수님께서 생명의 떡이신 것을 보여줄 기회였다. 예수께서는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요 6:35)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⑻.이 말씀은 요한복음에 기록된 “나는(I AM)”으로 시작하는 일곱 개(“생명의 떡,” 요 6:35; “세상의 빛,” 요 8:12; “문,” 요 10:7, 9; “선한 목자,” 요 10:11, 14; “부활과 생명,” 요 11:25; “길이요 진리요 생명,” 요 14:6; “참 포도나무,” 요 15:1, 5)의 말씀 중 첫 번째 말씀이다.
⑼.이 기록은 각각 예수님에 대한 중요한 진리를 드러낸다. “나는”이라는 표현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자신을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나타내신 (출애굽기 3장)을 생각하게 한다. (요 8:58, 비교).
⑽.예수님이 바로 그 위대(偉大)한 '나는(I AM)'이시다. 그러나 백성들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했다.
(10월 08일) (화) <눈먼 자를 치유(治癒)하심 –1>
(Q)~제자들은 이 사람이 보지 못하는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했으며,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잘못된 믿음을 어떻게 바로잡으셨습니까? (요한복음 9:1~16)
(A)~(요한복음 9:1~16)의 이야기는 자기 자신의 신조(信條)와 전통(傳統)에 눈이 멀어 바로 눈앞에서 제시되는 중요한 진리조차 보지 못하는 위험에 대해 시각장애인은 예수님을 보기 시작했지만 정작 보던 이들은 그 실체를 보지 못한다는 교훈(敎訓)을 준다.
⑴.제자들은 질병(疾病)을 죄와 연관(聯關)된 것으로 생각했다.
⑵.구약성경(舊約聖經)의 어떤 구절(句節)은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들 여지가 있지만(출 20:5, 왕하 5:15-27, 왕하 15:5, 대하 26:16-21 참조)
⑶.욥의 이야기를 통해 질병(疾病)이 꼭 죄 때문인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⑷.예수께서는 죄와 고통(苦痛) 사이의 연관성(聯關性)을 부인(否認)하지 않으셨지만, 이 경우에 그의 치유(治癒)를 통해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실 것이라는 더 높은 목적을 제시(提示)하시면서 문제를 바로잡으셨다.
⑸.(요한복음 9:6)에서 예수님이 눈먼 사람에게 태어날 때 빠졌던 것을 진흙을 이겨 바르심으로 채워 주는 듯한 모습은 하나님께서 첫 사람을 흙으로 만드신 창조의 이야기(창 2:7)를 떠올리게 한다.
⑹.요한복음 9장에서 전개(展開)되는 논의(論議)는 죄가 하는 일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그리고 보지 못함과 보는 것이라는 두 개의 서로 얽혀 있는 대조적인 개념(槪念)의 중심으로 전개(展開)된다.
⑺.(요한복음은 9:14 절)까지 예수께서 이 치유(治癒)하신 날이 안식일인 것을 독자(讀者)에게 말하지 않는다. 또한, 성경도 그렇게 말하지 않지만,
⑻.유대인들의 전통(傳統)으로는 안식일(安息日)에 병자(病者)를 고치신 것이 안식일을 위반(違反)한 것이기에 바리새인들은 그분이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다고 비난(非難)했다.
⑼.눈먼 사람은 예수가 어떤 분인지 점점 더 분명하게 이해하지만, 종교 지도자(宗敎指導者)들은 그분의 진짜 정체성(正體性)에 대해 점점 더 혼란스러워하거나 보지 못하고 있다.
⑽.이 이야기는 자기 자신의 신조(信條)와 전통(傳統)에 눈이 멀어 바로 눈앞에서 제시(提示)되는 중요한 진리(眞理)조차 보지 못하는 위험(危險)에 대해 교훈해주신다.
(10월 09일) (수) <눈먼 자를 치유(治癒)하심 –2>
(Q)~예수님에 대한 바리새인들의 모습과 눈멀었던 사람과 어떻게 대조(對照)됩니까? (요한복음 9:17~34)
(A)~종교 지도자들의 영적 실명은 무섭습니다. 한때 눈먼 거지가 "세상이 시작된 이래로 눈먼 사람의 눈을 뜨게 한 사람이 한 번도 없었다. 이 사람이 하나님에게서 오지 않았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라고 선언할 수 있습니다(요한복음 9:32, 33). 그런데도 종교 지도자들, 국가의 영적 지도자, 예수님을 가장 먼저 알아보고 메시아로 받아들여야 할 사람들이 모든 강력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볼 수 없거나, 보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우리를 속일 수 있다는 강력한 경고입니다!
⑴.눈멀었던 사람은 예수님을 바로 보았으나 바리새인들은 자기들 생각과 고정관념(固定觀念) 때문에 예수님을 바르게 보지 못했다.
⑵.고침. 받은 소경의 사건에 있어서 믿으려는 마음으로 질문(質問)하지 않고, 어쨌든지 믿지 않으려는 악(惡)한 마음으로 거듭거듭 질문한다.
⑶.신자(信者)들은 믿으려는 목적으로 사실과 진리(眞理)를 찾으나, 사단과 불신자(不信者)들은 어쨌든지 믿지 않으려는 결심(決心)으로 끝까지 진리와 사실을 피(避)하며 또 힐난(詰難)한다..
⑷.바리새인들은, 고침. 받은 소경의 부모에게서 저희의 불신앙(不信仰)을 지지하는 좋은 재료(材料)가 나타날까 하여 저렇게 질문(質問)하였던 것이다.
⑸.그 부모는 정직(正直)하게 그를 저희 아들이라고 증거(證據)하였다. 그러나 그가 어떻게 눈을 뜨게 되었는지에 대하여는 대답을 회피(回避)하였다.
⑹.이것은, 받은바 은혜(恩惠)에 감사할 줄 모르는 그들의 어두운 태도(態度)인 동시에, 진리 증거(眞理證據)를 회피(回避)하는 겁약(怯弱)인 것이다
⑺.진리(眞理)와 경건(敬虔)을 떠나서 인간의 고집(固執)을 세우기 위한 법(法)은 실상 두려운 것이 아니다. 그들이 저렇게 두려워하였으니, 그들의 심령(心靈)의 어두움과 생활의 부패(腐敗)가 이로써 추측(推測)된다.
⑻.바리새인들은, 그들의 불신앙(不信仰)을 고집(固執)하기 위하여 이때까지 이론(理論)하여 왔으나 성과(成果)를 거두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두 번째 그 소경 되었던 사람을 불렀다.
⑼.한때 눈먼 자였던 거지가 “창세 이후로 맹인(盲人)으로 난 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 함을 듣지 못하였으니 이 사람이 하나님에게서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다”. (요 9:32~ 33)'이라고 선언(宣言)할 수 있었다.
⑽.(요한복음 9장)은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에 대해 설명한다. 어떤 이들은 이에 대해 믿음으로 반응하지만, 어떤 지도자(指導者)들은 이를 거부(拒否)하는 영적(靈的) 어두움 가운데 있다.
(10월 10일) (목) <나사로의 부활(復活)>
(Q)~예수님은 왜 도움을 요청(要請)하는 나사로의 집으로 속(速)히 가지 않으시고 지체(遲滯)하셨으며 나사로의 부활사건(復活事件) 통해 우리들에게 주시는 중요한 기별(奇別)은 무엇인가? (요한복음 11:38~44)
(A)~예수님께서 죽은 자를 살리신 사건은 모두 세 가지였습니다. 야이로의 딸(마가복음 5:22~43)과 나인성과부의 아들(누가복음 7:11~17)과 나사로(요한복음 11:1~44)였습니다.
그러나 야이로의 딸과 나인 성 과부의 아들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간에 발생한 사건으로 일부 부인(否認) 세력들로부터 기절상태였다는 견해가 있었지만, 나사로의 경우는 무덤에 있은 지 이미 4일이 경과한 것(요한복음 11:17)으로 이미 그 시체가 부패하고 있는 과정에 있었기 때문에 부활에 대한 경이적인 확신을 준 사건이었습니다.
이 놀랄만한 사건으로 인하여 예수님을 불신(不信)하였던 많은 유대인들 가운데 상당수가 예수께 회복하여 믿음을 고백하는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요한복음 12:11)
⑴.나사로 누이들과 모인 사람들에게 생명이신 예수님을 확실히 알게 하여 생명의 주님을 믿도록 하기 위함이다.
⑵.전체 이야기에서 나사로의 영혼이 죽는 순간 몸에서 빠져나와 하늘로 올라갔다는 아무런 암시가 없다. 만일 그런 일이 있었다면 예수는 생명이 없는 몸이 아니라 의식이 있는 영혼을 향해 말했을 것이다.
⑶.나사로는 지난 나흘 동안 망각과 무의식 상태에 있었다(참조 시 146:4).
⑷.하나님으로서, 생명을 창조하신 분으로서 예수님은 사망(死亡)을 다스리는 권세를 가지고 계셨다.
⑸.예수님은 나사로의 죽음이라는 계기(契機)를 통해 예수님에 대한 중요한 진리를 드러내셨다.
⑹.죄(罪) 때문에 죽는 것과 하나님의 영광(榮光)을 위한 죽음이 있다.
⑺.예수님은 나사로의 죽음이라는 계기를 통해 하나님에 대한 중요한 진리를 드러내셨다. 성도(聖徒)의 죽음은 잠자는 것이다.
⑻.예수님은 하나님으로서, 생명을 창조하신 분으로서 예수님은 사망을 다스리는 권세를 가지고 계셨다. 예수께서 부활과 생명이시다.
⑼.우리는 예수께서 죽은 지 나흘 된 나사로를 살리신 일을 통해 그가 하나님의 아들, 참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한다.
⑽.예수님은 나사로의 죽음과 부활(復活)이라는 계기(契機)를 통해 예수님이 부활(復活)이요 생명이라는 중요한 진리(眞理)를 드러내셨다. <아멘> 감사합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