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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과 꿈꾸는 자 요셉(질문, 대답, 설명) 06/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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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2-06-04 01:17 조회5,480회 댓글0건

본문

제11과 꿈꾸는 자 요셉 

(6월 11일 안식일 / 일몰: 오후 7시 53분)

 

연구 범위: 창 37, 마 20:26, 27, 행 7:9, 창 38, 창 39, 창 40:1~41:36

 

기억절: “서로 이르되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창 37:19).

 

 가나안에서의 첫 번째 꿈(창 37:1~11)에서부터 애굽에서의 죽음(창 50:26)까지를 다루는 요셉의 이야기(창 37~50장)는 창세기의 마지막 부분을 장식한다. 창세기에서 요셉의 이야기는 다른 어떤 부조에 관한 기록보다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비록 요셉은 야곱의 여러 아들 중 하나이지만, 그는 창세기에서 아브라함, 이삭, 그리고 야곱과 같은 위대한 부조 중 한 사람으로 소개된다.

 앞으로 살펴 보겠지만, 요셉의 삶은 두 가지 중요한 신학적 진리를 나타내 보여준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약속을 이루신다는 것이고, 둘째는 하나님께서 악을 선으로 바꾸실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주 공부에서 우리는 요셉의 유년 시절을 살펴볼 것이다. 그는 야곱이 가장 사랑하는 아들로서 “꿈꾸는 자”(창 37:19)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이 별명은 ‘꿈의 달인’으로 직역할 수 있는데, 이는 요셉이 꿈에 관한 한 ‘전문가’였다는 뜻이다. 요셉은 꿈을 꾸고, 이해하고 예언적 꿈들을 해석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의 통해 그 꿈들을 성취하기 때문에, 그 별명이 매우 잘 어울린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이번 주의 본문을 통해 사람의 악한 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섭리가 함께하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될 것이다.     

 

*학습 목표

- 깨닫기

 우여곡절 많았던 요셉의 삶 속에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셨는지 확인한다.

- 느끼기

 하나님께 끝까지 충성한 자들을 결코 버리지 않으시는 신실하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 행하기

 눈 앞의 현실에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담대하게 살아 간다.

 

TMI 위로

2. 요셉이 형들로부터 미움을 받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창 37:1~11)

※ 아버지의 편애와 형들의 허물을 아버지께 고한 것과 꿈 이야기한 것등.

3. 요셉을 향한 형들의 증오가 어떤 악한 행동을 통해 나타났습니까?(창 37:12~36)

※ 요셉을 죽이려고 하다가 대상들에게 팔았다. 

4. 유다와 다말 사이에 일어난 부도덕한 사건 속에서 어떤 영적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까?(창 38장)

※ 하나님께서 악을 선으로 바꾸어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신다는 영적 교훈.

5. 애굽에 노예로 팔려간 요셉이 형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창 39:1~6)

※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생활했기 때문이다. 

6. 요셉은 왕의 꿈을 해석하며 그 해석이 어디서부터 왔다고 이야기 했습니까?(창 41:25, 28)

※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고 했다. 

 

결론

 아버지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던 요셉은 형들의 질투와 미움으로 인해 애굽에 노예로 팔려 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했고, 하나님의 함께 하심으로 인해 형통한 자가 되었습니다. 비록 눈앞의 현실이 고달프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끝까지 믿는다면 역전의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도 역사하실 것입니다.

 

6월 5일(일) 가족 내의 갈등

 

 마침내 야곱은 가나안 땅에 정착했다. 이삭은 그 땅에서 이방인이었지만, 야곱은 그 땅에 “거주하였”다(창 37:1). 그러나 야곱이 가족 내부로부터의 문제에 봉착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그때, 곧 땅에 정착했을 때였다. 이번에 생긴 문제는 땅의 소유나 우물을 사용하는 것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영적인 문제였다.

 

창세기 37:1~11을 읽어 보라. 가족의 어떤 특징이 형들로 하여금 요셉을 그렇게 미워하게 했는가?

[창37:1~11] 야곱이 가나안 땅 곧 그의 아버지가 거류하던 땅에 거주하였으니 2 야곱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요셉이 십칠 세의 소년으로서 그의 형들과 함께 양을 칠 때에 그의 아버지의 아내들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과 더불어 함께 있었더니 그가 그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말하더라 3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므로 그를 위하여 채색옷을 지었더니 4 그의 형들이 아버지가 형들보다 그를 더 사랑함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편안하게 말할 수 없었더라 5 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말하매 그들이 그를 더욱 미워하였더라 6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가 꾼 꿈을 들으시오 7 우리가 밭에서 곡식 단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8 그의 형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 하고 그의 꿈과 그의 말로 말미암아 그를 더욱 미워하더니 9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10 그가 그의 꿈을 아버지와 형들에게 말하매 아버지가 그를 꾸짖고 그에게 이르되 네가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어머니와 네 형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 11 그의 형들은 시기하되 그의 아버지는 그 말을 간직해 두었더라.

 

답: 야곱이 요셉을 편애했기 때문이다.

 

 야곱이 노년에 얻은 아들(창 37:3) 요셉은, “형들보다 그를 더 사랑”했던(창 37:4) 아버지로부터 특별한 관심과 사랑을 받았다. 야곱은 요셉에게 왕자의 옷(삼하 13:18)이었던 “채색옷”(창 37:3)을 만들어 주기까지 했다. 야곱의 이런 행동은 그가, 라헬의 첫 번째 아들이었던 요셉을 장자의 자리에 앉히고자 했음을 보여준다. 

 요셉이 결국 장자의 권리를 받게 되는 것(대상 5:2)을 통해 야곱의 소망이 마침내 이루어질 것이었다. 형들이 요셉을 미워하고 그와 편안하게 말조차 하지 않은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창 37:4). 게다가 요셉은 형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일러바치기까지 했다(창 37:2). 고자질쟁이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므로, 요셉이 하나님께서 자신을 형들보다 더 높은 자리로 올리셔서 형들이 그에게 절하게 될 것이라는 꿈을 이야기해 주었을 때, 형들은 요셉을 더 미워하게 되었다. 그 꿈의 예언적 성격은 그와 같은 꿈이 반복되었다는 사실을 통해 확인되었다(참조, 창 41:32). 비록 야곱이 그의 아들을 공개적으로 꾸짖었지만(창 37:10), 야곱은 그 사건을 마음 속 깊이 간직하고, 의미를 되새기며 그 꿈이 이루어질 때를 기다렸다(창 37:11). 야곱은 이 꿈속에 뭔가 특별한 의미가 있음을 알아차렸다. 비록 그가 당시에는 자세히 알지 못했지만,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묵상>

 마태복음 20:26, 27을 읽어 보십시오. 이 곳에 어떤 중요한 원칙이 나타나 있으며, 그것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을 우리 삶에서 어떻게 나타내 보일 수 있겠습니까?

[마20:26,27]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27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답: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는 성도의 원칙을 따라 사는 것이다. 예수님은 섬기는 자로 사셨다.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마 20:26, 27). 겸손이야 말로 삶에 가장 필요한 미덕입니다. 아직 철이 들지 않았던 어린 요셉은 자신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을 마냥 좋게만 여기고 형들에게 자랑했던 것 같습니다. 비록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요셉의 그와 같은 행동은 형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맺고 살아가는 관계 속에서 예수님께서 보여 주셨던 겸손의 모습을 실천할 때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습니다.

 

<부가설명> 예수님은 하나님이신데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로 사람이 되어 오셔서 죽도록 섬기는 삶을 사셨다. 섬기는 사람은 섬김을 받는 사람보다 실력이 있어야 한다. 약한 자는 섬길 힘이 없다. 그러므로 강한 자가 섬겨야 한다.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찌니라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 기록된바 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함과 같으니라”(롬15:1~3, 개역). 세상은 그렇지 않으나 예수님은 그렇게 하셨다. 제자들도 예수님이 사신 방법대로 살아야 한다고 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세상의 상태를 잘 알고 오셨다. 세상의 인류는 다 아담 안에서 사망이 되었기 때문에 섬길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예수님만이 생명으로 오셨다. 그래서 그분은 자신의 생명으로 사망의 세상에 생명을 주려고 오셨다. 섬길 수밖에 없었다. 우리도 이 생명 봉사를 해야 한다. 요셉의 꿈은 생명 봉사할 것을 나타내는 꿈이었고 그가 애굽 총리가 되었을 때 그 꿈은 이루어졌다.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창45:5). 남은 자손으로 재림 성도들이 이 봉사를 실천해야 할 것이다. 

 

<교훈>

 요셉은 그가 꾼 꿈으로 인해 형들에게 더 큰 미움을 받게 되었지만, 그 꿈은 앞으로 요셉의 삶에서 일어날 중요한 사건을 보여주는 예언적 꿈이었다.

 

6월 6일(월) 요셉을 향한 공격

 

 인간의 생각과 행동은 미워하는 대상이 물리적으로 가까운 곳에 있거나, 심지어 혈연으로 연결되어 한집에 살고 있다면 언젠가 분명히 문제를 일으키게 마련이다.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났다.

 

창세기 37:12~36을 읽어 보라. 회개하지 않는 마음이 얼마나 위험하고 악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얼마나 끔찍한 일을 저지르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해 무엇을 가르쳐 주는가?

[창37:12~36]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미디안 대상들에게 팔아버리는 내용이다. 

 

답: 아담 안에서 사망의 존재가 된 인간성의 악하고 비열한 것을 가르쳐준다. 

 

 형들은 요셉을 향한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 때문에(행 7:9) 요셉을 미워했다. 우리는 앞으로 일어날 사건들 속에서 이 특별한 은혜를 확인하게 된다. 요셉이 길을 잃었을 때, 어떤 사람이 그를 발견하고 길을 가르쳐 준다(창 37:15). 요셉의 형들이 그를 죽이기 위해 계획했을 때, 르우벤이 나서서 그를 죽이는 대신 구덩이에 던지자고 제안한다(창 37:20~22).

 여기에 표현된 증오가 얼마나 심각한 것이었는지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심지어 한집에 살던 식구였는데 말이다. 이 젊은이들이 어떻게 그런 잔인한 일을 저질렀단 말인가! 이 사건이 그들의 아버지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잠깐이라도 생각하지 않았단 말인가? 요셉을 편애했던 아버지를 향해 어떤 분노를 가지고 있었든지 간에, 아버지의 자녀 중 한 명에게 이런 일을 저지르는 것은 정말로 비열한 짓이었다. 이는 인간이 얼마나 악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그들 중 몇 사람들은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들은 복수를 통해 기대했던 만족감을 느끼지 못했다. 얼마 후 한 떼의 여행자들이 가까이 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무리는 향료와 다른 상품들을 가지고 요단 저편에서부터 애굽으로 가는 이스마엘 족속의 대상(隊商)이었다. 그 때에 유다는 아우를 죽게 내버려 두지 말고 그대신 그를 이방 상인들에게 팔자고 제의하였다. 그렇게 한다면 그를 효과적으로 제거할 수 있는 동시에 그들은 그의 피를 흘리는 죄에서 결백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부조와 선지자, 211)

 나중에 죽이려고 요셉을 구덩이에 던져두고 난 후, 상인들이 지나가는 것이 보였고, 유다는 요셉을 죽이는 대신에 그 상인들에게 팔자고 제안했다(창 37:26, 27). 요셉이 미디안 상인들에게 팔리고 난 후(창 37:28), 미디안 상인들은 그를 애굽에 있는 사람에게 되팔았다(창 37:36). 이는 다가올 영광을 위한 시작이었다.

 

<묵상>

요셉을 구덩이에 던진 형들은 요셉을 죽이는 대신 어떻게 하기로 결정하였습니까?

 

답: 돈도 벌고 미운 사람 제거도 하는 일거 양득의 방법을 택했다. 

 

<부가설명>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위하여 하시는 일을 당사자인 하나님의 백성도 잘 모른다. 요셉을 꿈을 꾸었으나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는지 전혀 짐작도 할 수 없었다. 야곱도 그 꿈이 의미있는 계시적 꿈이라는 것을 짐작했으나 다른 것은 생각할 수 없었다. 그가 어머니 리브가에게 하나님께서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길 것이라고 한 예언이 어떻게 이루어질는지 전혀 몰랐던 것과 같다. 그 예언을 이루려고 모자가 합작해서 남편과 아버지를 속이지 않았는가? 이제 귀한 아들 요셉이 꾼 꿈이 그런 과정을 겪을 것인지는 짐작할 수 없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전3:11). 고난이나 형통이나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는다면 인도하시는 대로 맡기고 따라가는 것이 가장 합당한 삶이다. 요셉의 꿈이 이루어지는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일이 형들이 그를 미디안 대상에게 팔아버리는 것으로 시작될 줄 누가 짐작했겠는가? 그 고난의 길이 꿈이 이루어지는 출발이었다. 형들의 수작은 정말 육체뿐인 인간 누구에게서나 나타날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하나님 편에 선 사람들에게 요셉이 당한 일이 언제든지 생길 수 있다. 영원한 나라를 얻는 길도 그렇게 시작되었다. 예수님의 성육신과 고난과 죽음이 먼저 있었다. 우리는 예수님 덕에 너무 편하게 그 나라의 길에 들어섰는데 가는 길은 좁고 험하다. 믿고 참으며 충성하는 마음으로 걸어가자.

   

<교훈>

형들의 미움을 받고 미디안 상인들에게 팔린 요셉은 다시 그 상인들에 의해 애굽에 팔리게 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영광스러운 미래의 시작이었다. 

 

6월 7일(화) 유다와 다말

 

 여기 기록된 다말의 이야기는 잘못 배치된 것이 아니다. 이 사건은 요셉이 애굽으로 팔려간 이 후에 일어난 것이고 (창 38:1), 유다가 형제들의 무리를 떠났음을, 즉, 유다가 혼자 다른 의견을 갖고 있었음을 나타낸다. 뿐만 아니라, 본문은 앞선 장에서 사용된 것과 같은 단어들과 주제들을 사용하면서 공통된 교훈을 준다. 악한 행동들이 구원과 연결되어 긍정적인 사건으로 변하게 된다는 것이다. 

 

창세기 38장을 읽어 보라. 유다의 행동을 가나안 여인 다말의 행동과 비교해 보라. 둘 중에 누가 더 의롭다고 생각하며,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답: 창세기 38장은 유다 가정의 사건을 기록했는데, 그 아들들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 일과 유다가 며느리에게 약속을 지키니 않은 일과 며느리 다말이 불륜으로 자기 의무를 이행하는 사건이 기록되었다.

  유다도 부도덕했고, 다말도 부도덕했다. 그러나 다말은 며느리가 되어 가문의 생명을 이어야 한다는 책임을 이행한 것이다. 그 방법이 부도덕한 방법이었다.

 

 유다는 가나안 여인을 아내로 맞아(창 38:2) 세 아들(엘, 오난, 셀라)을 낳는다. 유다는 가문의 계보를 잇기 위해 가나안 여인 다말을 장자 엘에게 아내로 주었다. 그들의 악함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엘과 오난을 죽이셨을 때, 유다는 다말에게 막내 아들 셀라를 주기로 약속한다.

 시간이 흘러 유다가 자신이 했던 약속을 잊은 듯 보였을 때, 다말은 유다로 하여금 자신이 했던 약속을 지키게 하려고 창녀처럼 위장하여 그에게 접근한다. 유다는 그 창녀에게 지불 할 돈이 없었으므로, 후에 그녀에게 자신의 떼에서 염소를 주기로 약속한다.

 다말은 그 약속을 지키겠다는 담보물로 유다의 도장과 끈과 지팡이를 요구한다. 다말은 이 만남을 통해 임신을 하게 된다. 시간이 흘러 유다가 다말이 임신한 것을 보고 그녀가 행음한 것으로 알고 벌하려 했을 때, 다말은 자기를 벌하려던 유다에게 그의 도장과 끈과 지팡이를 보여 주었다. 유다는 상황을 파악하고 다말에게 사과한다.

 이 부도덕한 이야기는 ‘터뜨림’이라는 뜻을 가진 베레스의 탄생으로 이어진다. 그는 야곱과 마찬가지로 둘째였지만 첫째가 되었으며, 구원의 역사 속에 다윗의 조상으로 이름을 남겼다(룻 4:18~22).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예수님의 조상이 되었다(마 1:3). 다말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마 1:16)에 앞서 족보에 등장하는 네 여인- 라합과 룻 그리고 우리야의 아내(마 1:5, 6) -중에 첫 번째 여인이 되었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통해 한 가지 교훈을 배울 수 있다. 하나님께서 악을 선으로 바꾸셔서 은혜로 다말을 구원해 주신 것 같이, 우리 또한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구원해 주실 것이라는 사실이다. 요셉의 경우, 하나님께서는 요셉의 고난을 야곱과 그의 아들들의 구원으로 바꾸실 것이었다.

 

<묵상>

창세가 38장에 기록된 부도덕한 이야기를 통해 배우게 되는 중요한 영적 교훈은 무엇입니까?

 

답: 하나님은 사람의 부도덕한 일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로 사용하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부도덕한 것을 잘한 것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부가설명> 학자들 사이에는 38장 사건이 37장 사건보다 먼저 있었는지 다음인지 의견이 분분하지만, 교과 저자는 37장 다음이라는 것을 분명히 했다. 37장에 요셉 사건이 39장에 연결되는데 중간에 왜 유다 가정사가 들어갔는가 하는 의문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38장은 유다의 지도자적 역할에 관한 내용을 기록하면서 가정사를 함께 기록한 것이다. 요셉이 애굽에 가게 된 동기를 만든 사람이 유다다. 다음 장에 유다의 가정사를 쓰고 39장 이후 애곱 가족이 함께 애굽에 내려가는 사건이 기록되었다. 이 과정에서 지도자로 일한 사람이 유다이다. 그래서 38장은 37장, 39장 이하의 사건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하는 장이다.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에 기록된 사건이다. 유다가 살고 있을 때는 형사취수(兄死娶嫂) 법이 성경에 기록되기 전이다. 그러나 이미 그때 그런 법이 시행되고 있었다. 훗날 모세를 통하여 그것을 율법에 기록했다. 그것은 기업 물어주는 법이다. 기업 물어주는 것은 성경에 네 가지 사실이 있는데, 여기 다 쓸 수 없다. 그중 두 가지는 토지를 물어주는 것과 생명을 이어주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이 생명을 이어주는 것이다. 다말은 그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잡혀 있었다. 그는 그 의무를 이행하도록 기회를 주지 않은 시아버지를 속여 그 의무를 수행하였다. 그래서 유다가 다말의 일이 자기보다 의롭다고 한 것이다. 그 하룻밤 사건이 임신하게 되고 쌍둥이 아들을 낳게 하였다. 하나님은 인간의 악을 구속을 이루는 선으로 바꾸신 것이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은 사람이 알 수 없고 탓할 권리도 없다. 순응하는 것이 가장 좋은 길이다. 

 

<교훈>

 유다와 다말의 경우에서 보는 것과 같이 죄로 가득한 인간은 아무런 희망이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악을 선으로 바꾸셔서 구원의 능력을 나타내실 수 있다. 

 

6월 8일(수) 애굽에서 종이 된 요셉

 

 우리는 이제 다말 사건으로 인해 잠시 끊어졌던 요셉의 이야기를 다시 이어갈 것이다. 요셉은 왕실 관리들을 수용하는 감옥을 책임지고 있는 “친위대장”의 집에서 노예로 일하게 되었다(창 40:3, 4, 41:10~12).

 

창세기 39장을 읽어 보라. 보디발의 집에서 모든 것의 책임을 맡은 총무로 일하게 된 요셉의 모습을 볼 때, 요셉이 그렇게 성공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답: 전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당하도록 살았기 때문이다.  ㄴ

 

 보디발의 집에서 일하게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요셉은 형통한 사람으로 인정받았다(창 39:2, 3). 그가 모든 일에 뛰어났음으로 보디발은 그를 무척 신뢰했고, 그래서 “자기의 소유를 다 그의 손에 위탁”했을뿐만 아니라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았다(창 39:4).

 하지만 요셉의 성공은 그를 타락시키지 않았다.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에게 눈짓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했을 때, 요셉은 망설이지 않고 거절했다. 그는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보다(창 39:9), 차라리 그의 자리와 안정적인 삶의 환경을 잃는 편을 선택했다. 요셉의 거절로 굴욕을 당한 보디발의 아내는, 그녀의 종들과 남편에게 요셉이 억지로 자신을 범하려고 했다는 거짓말을 했다. 그 결과, 요셉은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요셉은 여기서 우리가 모두 경험해 본 일을 경험한다.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버려졌다고 느끼는 것 말이다. 하지만 그의 느낌과 상관없이, 힘든 그 순간에도 하나님께서는 “요셉과 함께”하고 계셨다(창 39:21).

 마침내 하나님께서 역사하셨고, 하나님의 역사하심은 요셉과 간수장의 관계에 영향을 미친다. 주인의 집에서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감옥에서도 요셉을 축복하신다. 요셉은 참으로 재능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는 그가 처한 최악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모든 일에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그의 재능이 얼마나 뛰어 났었든지와 상관없이, 그가 성공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 덕분이었음을 성경은 분명히 이야기한다.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 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창 39:23). 많은 재능을 가진 사람들과 성공한 사람들이 이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묵상>

 창세기 39:7~12을 읽어 보십시오.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어떻게 이겨냈습니까? 요셉이 그녀의 요청대로 하는 것이 하나님께 죄짓는 것이라고 구체적으로 이야기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요셉은 죄와 죄의 본질에 대하여 어떤 이해를 가지고 있었습니까? 

 

답: 요셉은 하나님이 옳다고 인정하는 생활을 했다. 죄는 하나님과 관계를 끊는 것이라고 이해했다. 

 

<부가설명> 요셉의 일생은 사랑을 입은 아들에서 고난의 길을 거치면 마침내 야곱 가족에에 생명을 주는 사람으로 서게 된 여정이다. 예수님의 생애를 암시하는 표상적 사건이다. 은 20에 팔린 것은 예수께서 은 30에 팔린 것을 표상한다. 당시 노예 한 사람 값이 은 30 세겔이었는데, 미디안 대상이 20 세겔을 준 것은 그들이 애굽에 가서 요셉을 팔 때 남길 이문을 생각하고 20을 준 것이다. 요셉은 팔리기 전에 사랑을 입은 아들이었다. 예수께서 세상에 오시기 전에 하늘에서의 입지를 표상하는 것이다. 사랑은 입은 아들이 노예로 팔렸고 모함을 받아 감옥에 갔으나 하나님의 섭리로 애굽의 총리가 되어 가족의 생명을 보존하는(창45:5) 사업을 이루었다. 예수님은 종의 형체를 가지고 세상에 오셔서 고난과 죽음으로 아담 가족에게 생명을 주셨다. 모든 과정이 정확하게 일치되는 것은 아니지만 요셉의 일생은 예수님을 표상하는 것이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살리기 위하여 보좌에 함께 앉아 우주를 통치하시던 말씀 하나님을 사람이 되게 하시고 종의 형체를 가지게(빌2:6,7) 하셔서 세상에 보내셨다. 그분은 종의 값인 은 30에 팔려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그러나 그분은 사망을 정복하시고 부활하셔서 은혜의 보좌에 즉위하시고 아인류를 생명으로 이끄셨다. 그 은혜로 우리는 생명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 수 있게 되었다. 할렐루야!.

 

<교훈>

 요셉은 절망적인 상황 가운데 놓이게 되었지만, 주변의 상황에 상관없이 매사에 성실하게 행동했고 그 결과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심으로 형통한 자가 되었다.

 

6월 9일(목) 바로의 꿈

 

창세기 40:1~41:36을 읽어 보라. 바로의 꿈과 관원들의 꿈 사이에는 어떤 연관성이 있는가? 이와 같은 유사성의 중요성은 무엇인가?

 

답: 성경 본문은 직접 찾아보기 바란다. 상징적 예언이라는 연관성이 있다. 하나님께서 주신 꿈이고 해석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계속되는 사건들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가 이어진다. 시간이 지나, 요셉은 감옥에 갇힌 모든 사람을 관리하는 책임자가 되었는데, 그 중 두 사람은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로서 바로 왕을 섬기던 자들이었다(창 41:9~11). 두 사람은 모두 이해할 수 없는 꿈으로 인해 근심하고 있었다. 아무도 그들의 꿈을 “해석할 자가 없”었다(창 40:8). 그때, 요셉이 그들 각자의 꿈을 해석해 주었다. 

 두 관원의 꿈과 마찬가지로, 바로 역시 누구도 해석할 수 없는 두 개의 꿈을 꾸었다(창 41:1~8). 바로 그 순간,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술 맡은 관원이 요셉을 기억하고 그를 바로에게 추천했다(창 41:9~13).

 꿈을 꿨던 두 관원과 마찬가지로, 근심하던 바로는 그 꿈을 요셉에게 말하고(창 41:14~24), 요셉은 그 꿈을 해석해 준다. 두 관원의 꿈처럼 바로의 꿈은 상징적인 것이었다. 일곱 암소에 관한 두 꿈(살찐 소와 야윈 소)과 일곱 이삭에 관한 두 꿈(충실한 이삭과 마른 이삭)은 모두 이어질 14년의 기간에 관한 것이었는데, 둘 중 하나는 좋은 것이었고 하나는 나쁜 것이었다. 일곱 암소와 일곱 이삭은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꿈으로서, 요셉의 꿈과 마찬가지로 그것들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꿈이라는 증거였다(창 41:32, 비교 창 37:9).

 비록 요셉이 바로의 꿈을 해석하긴 했지만, 요셉은 그 꿈을 해석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했다. 하나님께서는 그 분께서 행하실 일을 꿈으로 보여 주신 것이었다(창 41:25, 28). 바로가 그 땅을 다스릴 사람을 임명할 때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 것을 보면 바로도 이 사실을 제대로 이해한 것 같다. “요셉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가 없도다 너는 내 집을 다스리라 내 백성이 다 네 명령에 복종하리니 내가 너보다 높은 것은 내 왕좌뿐이니라”(창 41:39, 40).

 요셉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보디발 집의 총무에서 감옥의 책임자가 되었고, 감옥의 책임자에서 애굽의 총리가 되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이것은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얼마든지 역사하실 수 있음을 보여 주는 놀라운 이야기이다.

 

<묵상> 

 형들에게 버림받고 애굽으로 팔려와 마침내 총리의 자리에 오른 요셉의 삶을 다시 한 번 묵상해 보십시오. 힘들고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 요셉의 삶을 통해 어떤 희망을 발견할 수 있을까요?  

 

답: 전적으로 하나님께 자신을 맡길 때 하나님의 손길에 의하여 형통환 결과를 보게 될 것이다.

 

<부가설명> 하나님의 섭리는 사람이 가늠할 수 없다. 요셉에게 예언적 꿈을 주시고 그 꿈이 요셉에게 이루어지도록 이끄시는 하나님의 손길은 사람이 전혀 예측할 수 없다. 요셉이 시위 대장 집에 팔린 것도 섭리의 손길이고 그가 그집에 있는 정부 고관 범죄자의 감옥에 들어간 것도 섭리의 손길이다. 요셉은 그곳에서 애굽 정부의 상태를 공부하게 되었다. 죄수들이 정부에 관하여 이야기했을 것은 당연했을 것이다. 그들의 대화 속에 나오는 애굽 정부와 왕실에 관한 내용을 유의했을 것이다. 그래서 요셉이 장차 애굽 총리로서 나라를 다스릴 훈련을 하게 하신 것이다. 요셉이 바로의 꿈을 해석하고 총리가 되었을 때 애굽을 잘 다스릴 수 있는 훈련은 시위 대장 집과 감옥에서 다 공부했다. 요셉은 총리가 된 후에 하나님의 섭리 손길이 신묘 막측한 것을 깨닫고 감탄 했을 것이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롬11:33). 그가 형들을 만났을 때 나를 애굽을 보낸 것은 하나님이시라고 말한 것은 다 체험한 사실을 바탕으로 고백한 신앙고백이라 할 수 있다. 이 세상 지날 때 요셉의 경험 같은 일이 매일 매일 생긴다해도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을 믿고 붙들고 있으면 가장 행복한 결말을 누리게 될 것이다. 아멘.

 

<교훈>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어 다가올 흉년을 대비하게 되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역사하셔서 선을 이룰 수 있으시다. 

 

6월 10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부조와 선지자>, 213~223, “애굽에서의 요셉”을 읽어 보라.

 

 “요셉과 다니엘은 청소년 시절에 가정을 떠나 포로로 이교국으로 끌려갔다. 특히 요셉은 그의 운명에 큰 변화를 가져다 준 많은 시련을 당했다. 자기 아버지의 집에서 오로지 따뜻한 사랑 속에서만 자라던 소년이 보디발의 집에서는 노예가 되었다. 그러나, 후에 신임을 받아 그의 친구가 되면서 학문과, 관찰에 의한 경험과, 사람들과의 접촉을 통해 견문을 넓혀 청지기의 직분에까지 올랐다. 그러던 중에 부당하게 유죄 판결을 받고, 누명을 벗을 희망도, 풀려날 가망성도 없이 국가의 죄인으로 바로의 옥에 갇히게 되었다. 그러다가 다시 큰 위기에서 국가의 지도자로 부름을 받았다. 이 모든 과정을 거치는 동안 요셉으로 하여금 그처럼 일관된 성실성을 갖도록 한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요셉은 소년 시절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두려워하는 법을 배웠다. 때때로, 그는 별이 총총한 시리아의 하늘 아래 장막에서, 그의 아버지 야곱이 벧엘에서 꾸었던 꿈-하늘에서 땅에 닿은 사다리, 그리고 그 위를 오르내리는 천사들, 또한 하늘 보좌에서 내려와 자신을 나타내 보이신 하나님의 이야기를 들었다.…

 양 치는 소년으로 아버지의 양 무리를 지키던 요셉의 순결하고 단순한 생활은 그의 체력과 지능을 발달케 하였다. 천연계를 통하여 하나님과 더불어 교제하고, 거룩한 위탁물로써 대대로 전해 내려온 귀한 진리들을 배움으로, 그는 견실한 정신과 확고한 원칙을 체득하였다.

 요셉은 그의 생애의 위기에서, 곧 자기의 어린 시절을 보낸 가나안 본집으로부터 노예의 운명이 기다리고 있는 애굽으로 가는 두려운 나그네 길 가운데서 혈육들의 천막이 있는 산들을 마지막으로 바라볼 때에, 야곱의 하나님을 기억하였다. 소년 시절의 교훈을 생각할 때 그의 마음은 감동으로 떨렸다. 그는 진실한 사람이 되어 어떠한 때에라도 하늘 임금의 백성으로서 합당한 행동을 취하기로 결심했다”(교육, 51, 52).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요셉과 다니엘 그리고 예수님을 비교해 보라. 그들 사이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요셉과 다니엘의 삶의 어떤 모습이 예수님의 모습을 나타내 보여 주는가?

※ 다 외국으로 갔으며 고난의 길을 걸었다는 것과 민족을 구원하는 역할을 한 것이다. 

2. 우리가 기대한 대로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라도, 어떻게 하면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을까요? 

※ 인내하고 날마다 말씀과 기도로 확신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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