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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과 신약에 나타난 소망(질문, 대답, 설명) 11/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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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 작성일22-11-11 09:04 조회6,13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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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과 신약에 나타난 소망

(11월 19일 안식일 / 일몰: 오후 5시 19분)

 

연구 범위: 고전 15:12~19, 요 14:1~3, 요 6:26~51, 살전 4:13~18, 고전 15:51~55

 

기억절: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일 5:11, 12).

 

신약은 헬라어로 기록되었지만, 누가를 제외한 모든 저자들은 유대인이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인간의 본질을 그리스의 이교적 관점이 아니라 히브리의 전인적인 관점에서 이해하고 기록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사도들에게 있어서 기독교가 제시하는 소망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이미 부조와 선지자들에 의해 가르침 받았던 고대의 소망을 다시 펼치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그리스도께서는 아브라함이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 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다고 말씀하셨다(요 8:56). 유다는 에녹이 재림에 관해 예언했다고 말했다(유 14, 15). 그리고 히브리서는 믿음의 영웅들이 하늘의 상급을 기대했는데 그것은 우리가 받기 전까지는 그들 또한 받지 못할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다(히 11:39, 40).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만 영생이 있음을 강조함으로(요일 5:11, 12) 요한은 영혼 불멸에 관한 이론이 틀렸음을 입증한다. 그리스도와 맺고 있는 구원의 관계가 없이는 그 누구도 영생을 얻을 수 없다. 그러므로 신약에 나타난 소망은 그리스도 중심의 소망이며,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 영원히 살 수 있게 되는 유일한 소망은 오직 그리스도에게만 있다.

 

*학습 목표

- 깨닫기

신약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의 재림과 성도의 부활에 관한 소망의 약속을 확인한다.

- 느끼기

모든 믿는 자들에게 예수님 안에서 영생이 보장되어 있음을 인해 감사한다. 

- 행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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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우리의 부활과 예수님의 부활의 연관성에 대해 사도 바울은 무엇이라고 이야기합니까?(고전 15:12~19)

※ 예수님의 부활은 그분을 믿는 성도들의 부활의 보증이라고 한다.

3. 예수님의 재림에 관한 약속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여전히 의미가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요 14:1~3)

※ 그때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다 부활하고 변화하여 영원한 생명으로 예수님과 함께 살 것이기 때문이다. 

4. 예수님께서는 영생의 선물을 의인들의 최종적인 부활과 어떻게 연결시키셨습니까?(요 6:26~51)

※ 예수께서 마지막 날에 그분을 믿은 모든 사람을 살릴 것이라고 하셨다.

5.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영생에 관한 오해를 어떻게 수정해 주었습니까?(살전 4:13~18)

※ 예수님 재림하실 때 부활하여 공중으로 끌어올려 예수님을 만나고 그분과 함께 영원토록 살 것이라고 가르쳤다. 

6. 고린도전서 15:51~55에서 바울이 설명하고 있는 “비밀”은 무엇입니까?

※ 예수님 재림하실 때 모든 성도들이 부활한다는 진리이다. 

 

결론

우리는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중심으로 한 수많은 소망의 약속들을 발견합니다. 예수님 자신이 그 소망에 대하여 말씀하시고 증명하셨을 뿐만 아니라 여러 사도들 또한 그 진리를 강조하여 설명했습니다. 비록 현재의 삶이 우리를 힘들게 할지라도 모든 믿는 자들에게는 영생의 축복이 보장되어 있음을 기억하며 신실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11월 13일(일) 이 삶 너머의 소망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BC 5세기)는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일정 기간 애도의 시간을 갖는 어느 부족에 관하여 기록했다. 그들이 그렇게 하는 이유는 그 아이가 성인이 되기까지 살면서 겪을 고통을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의식(儀式)이 우리에게 낯설게 느껴지지만, 그들의 행동에는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하나님 그리고 영원한 소망을 믿으며 살아갈지라도 인생이 매우 고달플 수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렇다면 짧고, 문제 가득한 이 땅에서의 삶 외에 아무런 소망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인생이 얼마나 더 힘들겠는가? 세상의 작가들은 죽을 운명에 처해 있을 뿐만 아니라 언젠가 죽게 되리라는 사실을 인지하면서 살아가는 인간 존재의 허무함에 대해 기록했다. 어느 사상가는 인간은 “분해될 뼛조각에 붙어있는 썩어가는 살덩어리”에 불과하다고 이야기했다. 섬뜩한 이야기이지만, 반박할 수 없는 말이기도 하다.

이와 반대로 우리에게는 예수님 안에 있는 영생에 대한 성경의 약속이 있다. 핵심은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 안에” 소망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 말고 우리에게 다른 어떤 소망이 있겠는가?

 

고린도전서 15:12~19을 읽어 보라. 바울은 우리 자신의 부활에 대한 소망과 그리스도의 부활이 얼마나 밀접히 연결되어 있는지에 대해 무엇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가?

[고전15:12~19]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13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14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15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하셨으리라 16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17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18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답: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부활의 보증이 된다고 설명했다.

 

바울은 우리의 부활과 그리스도의 부활이 뗄 수 없는 관계 속에 연결되어 있다고 분명히 이야기한다. 만일 우리가 다시 살아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지 않으셨다는 뜻이며,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고전 15:17). 다시 말해 우리가 죽게 되면 그것으로 끝이기 때문에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5:32에서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라고 이야기한다.

 만일 유한한 인간의 몸을 가지고 운 좋게 70여 년의 인생을 사는 것이 전부라면 우리에게 어떤 소망이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엘렌 G. 화잇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하늘은 우리에게 가장 가치 있는 것이다. 하늘을 잃는 것은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하나님의 아들과 딸들, 349).

 

<묵상>

우리의 소망과 믿음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은혜에 힘입어 우리의 소망과 믿음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답: 이 소망이 없으면 인생은 참으로 비참한 존재가 된다. 그러므로 이 믿음을 잃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지켜야 한다.

 

<부가설명> 진화론으로 인생을 설명한다면 목적 없이 존재하게 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성경은 창조주께서 자기 형상대로 창조하시고 함께 영원히 살도록 하셨다. 사는 것 자체가 즐거움이요 행복이요 사랑이도록 계획하시고 그 목적을 따라 살 수 있게 하신 것이다. 그것이 창조주의 영광이 되도록 하셨다.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사43:7). 이런 창조주의 목적은 사람들의 의식에도 오롯이 전해주셨다. 사람들은 무엇을 계획하고 성취할 때 즐거움을 느끼고 그것을 보고 주위가 칭찬하고 찬탄하면 만족과 즐거움을 느낀다. 이것은 창조주께서 창조하실 때 말씀하신 그것을 인생의 차원에서 누리는 것이다. 인생은 그런 것을 자기의 영광으로 여긴다. 뉴튼이 살아 있을 동안 만유인력에 관하여 사람들이 말하면 즐거움과 자랑스러움이 있었을 것이다. 모든 뛰어나고 유용한 발명품이나 발견을 했을 때도 그 사람의 이름을 그것에 붙인다든가 상을 내린다면 영광을 받는 것이다. 만일 세종대왕이 지금 살아 있다면 한글 창제로 온 세상 언어학자들의 칭송을 들을 때 얼마나 영광을 받는 것이겠는가! 우리는 참으로 창조주께 영광을 돌리도록 창조되었으니 그렇게 해야 하고 그것이 또한 피조물의 행복이며 영광이 된다. 목적이 있는 창조 얼마나 영광스러운 것이가? 주님 재림하시는 날 이것이 성취된다.

 

<교훈>

죄로 인해 타락해 버린 우리 인간들에게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하는 소망 외에 그 어떤 것도 영원한 소망의 근거가 될 수 없다. 

 

11월 14일(월) “내가 다시 오리라”

 

요한복음 14:1~3을 읽어 보라.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하신 지 2,000년이 다 되어 간다. 비록 긴 시간이 지났지만,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이 약속이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의미가 있음을 보여 줄 수 있는가? 

[요14:1~3]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답: 예언과 그 성취에 관한 사실들을 잘 설명하면서 그처럼 예수님 재림의 예언 약속도 분명히 성취될 것이라고 증언할 수 있다. 예수님은 아직 재림하시지 않았기 때문에 재림하시기까지는 어느 때라도 의미가 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계시록에서 네 번이나 “내가 속히 오리라”라고 말씀하셨다(계 3:11, 22:7, 12, 20). 예수님의 임박한 재림에 대한 기대는 사도시대 교회가 사명을 완수하도록 하는 동력이었으며, 지난 수 세기 동안 고난 가운데 있던 그리스도인들의 삶 속에 소망을 불어넣어 주었다. 하지만 재림을 기다리던 여러 세대가 죽었고, 약속하신 사건은 아직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질문한다. 우리는 얼마나 더 “예수님께서 속히 오실 것입니다”라고 설교해야 하는가? 예수님의 약속이 비현실적인 기대를 일으켰는가?(참조, 벧후 3:4)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긴 “지연”으로 인해 불평했다(비교, 마 25:5). 하지만 과연 정말 긴 “지연”이었던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기에 “적합한” 때는 언제였겠는가? 50년 전, 아니 150년, 500년 전이었다면 적합했겠는가? 정말로 중요한 것은 다음과 같은 성경의 약속이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 3:9).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지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분의 다시 오심에 대한 약속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왜냐하면, 우리가 가진 것이라곤 무덤 속의 무의식 상태의 쉼으로 이어지는(전 9:5, 10) 우리 자신의 짧은 인생(시 90:10)뿐이기 때문이다. 그 후에는 더 이상 정해진 운명을 바꿀 기회가 없는 최후의 부활이 있다(히 9:27). 모든 죽은 자들은 무의식 상태에서 잠들어 있기 때문에, 죽은 자의 입장에서 보면 그리스도의 재림은 그들이 죽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일어나는 일일 뿐이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누구에게나 죽음 후에 얼마 지나지 않아 일어나는 일에 불과한 것이다.

 매일 같이 지나는 하루는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의 영광스러운 재림으로 하루 더 가까이 데리고 간다. 비록 우리가 예수님께서 언제 오실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분께서 분명히 오실 것이라는 사실은 믿을 수 있다. 그 사실이 중요한 것이다.

 

<묵상>

요한복음 14:1~3의 말씀을 암송하면서 다시 한 번 재림의 소망을 마음에 되새겨 보세요.

 

답: 하나님의 약속은 하나님이 아시는 그 때에 하나님의 방식대로 반드시 이루어진다. 그것을 사람의 방식에 맞추어서 해석하거나 이상하게 의심하지 않아야 한다.

 

<부가설명> 예수님은 예언한 대로 때가 되었을 때 여자의 후손으로 세상에 오셨다. 또 다니엘 9:24~27에 예언한 대로 때가 되었을 때 십자가에 달리셨고 예언대로 3일만에 부활하셨다. 예언대로 승천하셨고 예언대로 하늘에서 대제사장으로 취임하셔서 은혜의 왕국 하늘 성소에서 중보로 속죄 봉사를 하신다. 이제 약속하신 대로 재림하실 것이다. 이미 이루어진 예언에 근거하여 앞으로 있을 사건도 예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그런데 성경은 분명하게 예수께서 재림하실 날과 시간은 아버지만 아신다고 계시하였다.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 속한 것이기 때문에 너희가 알 바가 아니라고 하셨다(행1:7). 그러므로 재림하실 날을 계산하고 찾으려는 것은 하나님의 권한을 침해하는 것이다. 루시퍼의 죄에 빠지는 것이다. 교과에 있는 말 대로 재림하실 때을 알려고 하지 말고 재림하신다는 사실이 확실히 이루어질 것을 믿고 하루하루를 주님 뜻대로 생활하는 것이 중요하다. 깊이 생각해보면 사람은 오늘이라는 하루만 산다. 잘 때는 생명 호흡이 있어도 생활 활동을 하지 않는다. 성경은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히3:13)라고 하였다. 사람은 ‘오늘’이라는 ‘매일’을 산다. 그리고 밤에는 잔다. 아침에 일어난다. 이것은 죽음을 연습하고 부활을 훈련하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오늘 주님 맞을 것을 기대하며 주님 뜻대로 살명 된다. 오늘이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은 오늘 죽음의 잠에 빠진다. 죽음의 잠을 자는 사람에게는 시간이 없다. 세월이 없다. 주님 오셔서 깨우시는 아침까지 하룻밤일 뿐이다. 그들이 부활하는 아침에 ‘한잠 잘 잤다’하고 일어날 것이다. 바로 죽은 그 다음날 예수님의 재림을 맞을 것이다. 오늘을 믿음으로 산 사람들은 반드시 그렇다. 예수님은 내일 아침에 재림하시고 우리는 내일 아침에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맞을 것이다. 아멘.

 

<교훈>

예수님의 재림이 비록 지연되는 듯 보이지만 분명히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하신 예수님께서는 구원의 시간표에 따라 정하신 때에 꼭 다시 오실 것이다. 

 

11월 15일(화) “내가 그를 일으켜 세우리라”

 

예수님께서 행하셨던 기적 가운데 적은 양의 떡과 물고기를 가지고 5천 명을 먹이신 사건이 있다(요 6:1~14). 군중들이 자신을 왕으로 추대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눈치채신 예수님께서는(요 6:15),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 호수 반대편으로 이동하셨다. 그러나 다음 날 군중들은 예수님을 따라 그곳으로 왔고, 예수님께서는 그곳에서 영생에 관한 특별한 강조가 담긴 생명의 떡에 관한 능력 있는 설교를 하셨다(요 6:22~59).

 

요한복음 6:26~51을 읽어 보라. 예수님께서는 영생의 선물을 의인들의 최종적인 부활과 어떻게 연결시키셨는가?

[요6:26~51] 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4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서로 수군거리지 말라 44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45 선지자의 글에 그들이 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리라 기록되었은즉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 46 이는 아버지를 본 자가 있다는 것이 아니니라 오직 하나님에게서 온 자만 아버지를 보았느니라 47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48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49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50 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답: 예수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셔서 생명이 있는 사람들을 마지막 날에 살리실 것이라고 확언하셨다.

 

예수님께서는 그분의 설교에서 영생과 관련된 세 가지 중요한 개념을 강조하여 설명하셨다. 첫째,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떡이라고(요 6:33, 58) 설명하셨다. “나는(egō eimi) 생명의 떡”(요 6:35, 48)이라고 말씀하심으로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구약의 위대한 “스스로 있는 자(I AM)”로 나타내셨다. 둘째, 예수님께서는 그분 안에서 영생이 보장된다고 설명하셨다. “내게 오는 자” 그리고“나를 믿는 자”는 영생의 축복을 누리게 될 것이었다(요 6:35). 마지막으로, 예수님께서는 청중들에게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라고 세 번이나 확인시켜 주시며 불멸의 선물을 최종적인 부활과 연결시키셨다(요 6:40, 44, 54).

또한,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놀라운 약속을 허락하셨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요 6:47). 그러므로 영생의 선물은 모든 믿는 자들에게 이미 허락된 현실이다. 하지만 이 말은 믿는 자들이 절대 죽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다시 살리리라”(요 6:40)라는 표현 자체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을 나타내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없이는 그 누구도 영생을 얻을 수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고 영생의 확신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우리는 당분간 계속해서 죽을 수 밖에 없는 유한한 존재로 남아 있게 된다. 재림의 날, 예수님께서 우리를 부활시키시고 그 자리에서 이미 우리 것이라고 선언된 불멸을 선물로 주실 것이다. 영생의 선물은 영혼 불멸을 통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통해 우리에게 허락된 예수님의 의로 인해 확증된 것이다.

 

<묵상>

나를 믿으면 영생을 가졌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묵상해 보십시오. 이 놀라운 약속이 현재 우리 모두가 겪을 수밖에 없는 죽음이라는 고통스러운 현실을 대하는 데 있어 우리에게 어떤 도움을 줍니까? 

 

답: 믿는 사람들은 이미 영생을 가졌기에 죽어도 다시 사는 존재들이 되었다. 이 확실한 소망으로 그날을 바라보며 인내하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특권이 있다.

 

<부가설명> 예수님의 부활은 그분을 믿는 모든 사람이 죽어도 다시 살 수 있는 생명을 가진 사람이 되게 하셨다. 그러므로 신자는 호흡이 끊어져도 죽는 사람이 아니고 잠자는 사람이 되었다. 잠 자는 것은 죽은 것이 아니라 생명 활동이 잠시 쉬는 기간이다. 이런 사람은 죽은 사람이 아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눈에 살아 있는 사람이고 예수님의 말씀에는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요8:51)라고 보증하셨다. 이 말씀을 문자대로 받아들이면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은 불사의 생명을 받은 것이다. 이 생명이 육체의 호흡이 멈출 때 잠시 활동을 쉰다. 쉴 동안 이 생명은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서(골3:3) 아무도 해치지 못하는 생명 안전 은행에 보관된다. 결코 죽은 것이 아니고 소망 중에 쉬는 기간일 뿐이다. 이것이 성경이 거듭난 신자들에게 확약하는 약속이다. 그래서 죄와 사망의 세상이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고 사회 문화가 신앙으로 살아가기에 나빠도 소망을 인내하며 사랑을 실천하는 생활을 할 수 있다. 예수께서 그렇게 핍박하는 사람들의 사회에서 사랑을 봉사하신 것은 생명의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능력을 우리에 주셨다. 교회에게 주셨다. 그래서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요14:12)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 그 역할을 감당하고 신자들의 그 몸의 건강한 지체로 기능을 다한다면 예수님의 약속은 현실이 될 것이다. 

 

<교훈>

모든 믿는 자들에게는 예수님 안에서 영생이 보장되어 있으며,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 이미 허락된 영생의 축복이 우리에게 주어질 것이다.

 

11월 16일(수) 하나님의 나팔 소리

 

데살로니가 사람들은 영생이 재림의 때까지 살아 있는 자들에게만 허락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들은 그들이 죽지 않도록 그리하여 저희 주께서 오실 때에 받으리라고 고대하던 축복을 잃지 아니하려고 저희 친구들의 생명을 주의 깊이 보호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하는 이들이 차례차례 그들을 떠나갔으므로 데살로니가 사람들은 괴로움 속에 그 죽은 자들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바라보았으며 감히 그들을 살아서 다시 만나리라는 희망을 갖지 못하였다”(사도행적, 258).

 

데살로니가전서 4:13~18을 읽어 보라. 바울은 그들의 오해를 어떻게 수정해 주었는가?

[살전4:13~18]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4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15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18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

 

답: 주 안에서 죽은 사람은 부활하여 살아있는 사람과 함께 공중으로 끌어올려져서 공중에서 재림하신 주님은 만난다고 가르쳤다.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살전 4:14)는 말씀을 본문이 이야기하는 것 이상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영혼 불멸을 믿는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이미 하늘에 올라가 있던 의로운 죽은 자들의 영혼을 함께 데리고 오실 것이며, 그때 그 영혼들이 각자의 몸과 재결합할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와 같은 해석은 이 주제에 관한 바울의 전반적인 가르침과 조화를 이루지 않는다. 

비재림교인 신학자가 이 성경 절의 참된 의미에 관해 설명한 것을 읽어 보라. “데살로니가의 성도들이 그들 가운데 죽은 자들을 위해 슬퍼할 때 소망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데리고 오’실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죽은 자들을 부활시키셔서 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재림의 현장에 있게 하심으로 그들이 ‘그와 함께’ 있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 믿음 안에서 죽은 자들이 어떤 형태로든 불리한 상황에 놓이지 않고 ‘그와 함께’ 있음으로, 살아 있는 믿는 자들과 동등하게 재림의 영광스러운 자리에 함께하게 될 것임을 보여 준다”(Jeffrey A. D. Weima, 데살로니가전후서, 베이커 신약주석, 319). 

 만일 죽은 의인들의 영혼이 이미 주님과 함께 하늘에 있었다면, 바울은 최종적인 부활을 기독교의 소망으로 언급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저 의인들이 주님과 함께 이미 하늘에 있다고 설명하면 될 것이었다. 하지만 바울은 그렇게 하는 대신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살전 4:14)이 최후의 순간 죽음에서 부활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최종적인 부활에 관한 소망은 슬픔 중에 있던 데살로니가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었다. 죽음이 우리에게서부터 사랑하는 사람들을 빼앗아갈 때, 같은 소망이 우리로 하여금 가슴 아픈 순간들을 차분하게 마주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묵상>

사랑하는 사람을 잃게 되는 슬픔의 순간 우리의 모습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과 다를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답: 부활의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부가설명> 예수님은 공중에 재림하셔서 자는 성도들을 깨우신다. 재림하실 때 그분의 발이 지상에 내려오지 않는다. 그리고 잠에서 깨어난 성도들과 잠들지 않은 성도들을 함께 공중으로 끌어올려서 거기서 재림하신 예수님을 맞이한다. 땅에 발을 딛고 다니면서 자기가 재림 주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다 사기꾼이다. 세상의 모든 사기 중에 가장 악랄한 사기가 신앙사기이다. 왜냐하면, 금세와 내세를 다 망치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발이 땅에 닿는 때는 천년기 후에 세상에 내려오실 때이다. 그때는 그 발이 동편 감람산에 닿으신다. 그래서 그 산 중안이 갈라져서 동서로 멀리 이동하고 새 예루살렘이 거기 내려 앉을 것이다(슥14:4). 이때 계시록 21장의 새 예루살렘이 땅에 내려온다고 한 말씀이 성취된다. 변화하고 부활한 의인들을 공중으로 끌어올려져서 예수님과 함께 하늘 예루살렘으로 들어갈 것이다. 거기서 예수님과 함께 1,000년동안 왕노릇하며 제사장으로서 악인들과 악한 천사들을 심판하는 권세를 수행한다(계20:4, 고전6:2,3). 그리고 1,000년기가 차면 예수님과 함께 지상으로 내려온다. 이것은 환상 소설이 아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이 맹세하고 확약한 소망이다. 

 

<교훈>

죽음과 동시에 하늘로 먼저 올라가는 영혼은 없다. 땅속에 잠들어 있던 의로운 자들은 재림의 때 부활하여 살아 있는 의인들과 함께 예수님을 만나게 될 것이다.

 

11월 17일(목) 영원한 만남

 

고린도전서 15:51~55을 읽어 보라. 바울은 어떤 “비밀”(고전 15:51)을 설명하고 있는가?

[고전15:51~55]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53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54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55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답: 예수님 재림하실 때 잠든 성도들이 다 부활한다는 사실을 설명한다.

 

잘 알려진 설교자들 중에는 여기서 언급된 “비밀”(고전 15:51)이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재림이 있기 칠 년 전에 있을 ‘비밀 휴거’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 갑자기, 조용히, 비밀스럽게 하늘로 올려지고, 다른 사람들은 이 땅에 남아 그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인지 궁금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예컨대, 여러 사람이 타고 있는 자동차에서 갑자기 운전자 한 사람만 하늘로 올려지고, 그가 입고 있던 옷만 남아 있게 된다는 식이다. 4편의 영화로 제작된 16권짜리 베스트셀러 “레프트 비하인드(Left Behind)”는 비밀 휴거에 관한 잘못된 가르침을 수많은 사람에게 노출시켰다.

물론 성경 어디에도 이와 같은 휴거와 재림 사이의 인위적인 구분을 지지하는 구절은 존재하지 않는다. 바울이 언급한 “비밀”은 재림의 때, 살아 있는 의인들이 부활한 의인들과 연합하기 위해 변화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것이 바로 “휴거”다. 예수님의 재림은 살아 있는 모든 사람의 눈에 보일 것이기 때문에 “비밀 휴거”는 없다(계 1:7). 죽은 자의 부활과 살아 있는 자들의 변화는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나팔 소리와 함께 일어날 것이다(고전 15: 51, 52).

그리스도의 재림은 인류 역사상 가장 놀라운 만남을 가져올 것이다. 살아 있는 의인들은 “순식간에 홀연히”(고전 15:51) 변할 것이다. 하나님의 음성에 따라 영화롭게 되어 불멸의 몸을 갖게 된 살아 있는 의인들은, 부활한 성도들과 함께 주님을 만나기 위해 공중으로 올리울 것이다. 천사들은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을 것이다(마 24:31).

 “천사들이 어머니들의 품에 아이들을 데려다 준다. 사망으로 오랫동안 헤어졌던 친구들이 다시 만나 다시는 헤어지지 않게 되며 그들은 함께 즐거운 노래를 부르면서 하나님의 도성으로 올라간다”(각 시대의 대쟁투, 645). 

이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정말로 놀라운 약속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 사실을 온전히 이해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우주의 광활함과 이 땅 위에 존재하는 생명체들의 복잡성을 생각해 보라. 창조 세계는 우리에게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나타내 보여 준다.

 

<묵상>

예수님의 재림의 때 살아 있는 자들을 변화시키시며 죽은 자들을 다시 살려내실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 창조 세계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줍니까?

 

답: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신 하나님께서(롬4:17) 이미 있는 죽어 잠든 자들을 깨우는 것은 아주 쉬운 것임을 가르쳐준다.

 

<부가설명> 이별은 사망의 속성이다. 사망이 없으면 이별이 없다. 태초에 창조된 아담 부부는 생령(生靈)이었다. 영적 존재였다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는데 하나님은 영이시다(요4:24). 그렇다면 그분의 형상대로 창조한 사람도 당연히 영(靈)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생령이라고 분명히 계시하였다. 영은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타락한 세상의 물질적 질서에 매이지 않는다. 부활하는 사람은 천사와 동등이라고 하셨다(눅20:36). 천사는 영적 존재이다. 그들은 이 타락으로 변질된 천연계의 질서를 초월하여 있다. 이것이 진정한 하나님의 생명을 받은 성도들에게 주어질 생명의 속성이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이별이 없다. 부활하면 이별이 있을 수 없는 새 하늘과 새 땅에 살것이기에 결코 이별이 없다. 예수께서 부활하셔서 문이 닫힌 방에 문을 열지 않고 드나들 듯이 시공을 초월한 영적 존재로 함께 살 것이기 때문에 이별이 없다. 오늘날 이해하는 공간적인 먼 거리에 있다해도 원하기만 하면 바로 옆에서, 앞에서 만나기 때문이다. 영원은 시간이 아니다. 그러므로 시간적 간격도 없다. 결코 이별이 없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래서 즐거움과 기쁨과 감사와 찬양이 끊일 수 없는 것이다. 아멘. 

 

<교훈>

성경 어디에도 비밀 휴거를 지지하는 말씀은 없다. 살아 있는 의인들과 죽어 잠들어 있는 의인들 모두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11월 18일(금)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사도행적> 255~268,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낸 편지들,’ 319~321, ‘높은 표준에 도달하도록 부르심’을 읽어 보라.

 

로마인들은 그리스도인들의 부활에 대한 믿음을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 그 믿음을 짓밟고 조롱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다. 심지어 그들을 사형시킨 후 땅에 묻지 않고 시체가 썩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불에 태워 강에 뿌리기까지 했다. 하지만 예수님을 죽음에서부터 다시 살려내신 능력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몸이 어떤 상태에 있든지 상관없이 우리를 다시 살려낼 수 있으시다. 만일 하나님께서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붙드시고 계신다면, 그분께서는 분명 살아 있는 자들을 변화시키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죽은 자들 또한 살려내실 것이다.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고 바울은 기록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이 성경절을 자는 자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서 올 것이라고 해석하나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 자는 성도들을 그들의 무덤에서 불러내어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로 데려가시리라는 것을 의미하였다. 이것은 데살로니가 교회뿐 아니라 어느 곳에 있든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얼마나 귀한 위안이며 영광스러운 희망인가!”(사도행적, 259)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누군가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죽음은 당신을 완전히 파괴해 버린다.…흔적도 없이 파괴된다는 것은 삶의 의미를 상실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허무한 삶 가운데 우리에게 남겨진 소망은 무엇인가?

※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드러낸 생명이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정말 허무하다. 

 

2. 온전함에 이르기까지 자라야 한다는 사실과(빌 3:12~16) 우리가 예수님의 재림의 때에야 비로소 썩지 않을 무죄한 본성을 받게 될 수 있다는 사실을(고전 15:50~55)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는가?

※ 엡4:22~24에는 지금 예수님을 믿음으로 썩지 않을 새 생명을 얻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이 된다고 기록했다. 지금은 거듭난 영적 생명이 그렇게 되는 사실을 기록한 것이다.

 

3. 고린도전서 15:12~19을 읽어 보라. 이 말씀에서 죽은 자가 예수님과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잠들어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어떤 강력한 증거를 찾을 수 있는가? 만일 죽은 의인들이 지금 예수님과 하늘에 있다면 이 말씀을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고전15:12~19]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13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14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15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하셨으리라 16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17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18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 부활이 없으면 우리 믿음이 헛것이고 주 안에서 죽은 자들도 망했다는 말씀은, 영혼이 하늘에서 행복을 누린다는 주장이 전혀 성경적이지 않은 것을 확인한다. 그들의 주장은 성경과 전혀 일치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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