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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기 제2과 지도력의 위기 - (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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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봉주 작성일21-01-05 21:43 조회1,84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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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과 지도력의 위기
   (2021/01/09 (안) 일몰17시31분)

 

<서언(序言)>
○. 제2과는 (이사야 6장)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공부함.
○. 이사야 6장의 중요한 두 인물로 ①.웃시야 왕 ②. 이사야 선지자이다

 

Ⅰ<웃시야 왕>
⑴.16세에 유다의 왕이 되어 52년 동안 통치함.
⑵.통치기간이 길고 성공적(成功的)이였으나 번영(繁榮)하자 그의 마음이 교만(驕慢)해졌다.
  “그가 강성(强盛)하여 지매 그에 마음이 교만(驕慢)하여 악(惡)을 행하여 하나님께 범죄(犯罪)하되 곧 하나님의 성전(聖殿)에 들어가 분향(焚香)하려했다.(대하 26:16)
   (성전 분향(焚香)은 아론의 자손으로 제사장(祭司長)들만 하는 직무이다)
⑶. 제사장이 분향(焚香)을 제지(制止)하자 웃시야 왕은 분노(忿怒)했다.(대하 26:18~19)
⑷. 제사장(祭司長)이 제지(制止)하였으나 웃시야 왕은 교만(驕慢)하여져서 제사장(祭司長)의 직분(職分)을 월권(越權)하려다가 문둥병에 걸리고 평생(平生)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죽었다.
그 당시 병(病)든 유다나라의 상징(象徵)이며 나라가 죄로 병(病)든 상태(常態)였다. (대하26:20∼23)

 

Ⅱ. <이사야> 웃시야 왕과 현격(懸隔)한 대조(對照)를 이룸
○. 이사야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그에게 미쳤을 때
   겸손(謙遜)하게 자신의 허물과 연약(軟弱)함을 인정하고 도덕적(道德的)인 성결(聖潔)을 갈망(渴望)     했으며 마침내 성결함을 얻었다.(사 6:5~7)

 

Ⅲ.<교훈(敎訓)>
①.웃시야 왕의 치세 때 유다는 전성기(全盛期)로 국력(國力)을 회복(回復)할 수 있었으며(대하 26장) 백성들은 태평성대(太平聖代)를 향유(享有)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외적(外的)인 번영(繁榮)의 이면(裏面)에는 종교적 부패(宗敎的腐敗)의 상처(傷處)가 점차(漸次) 그 도를 더해 가고 있었다.
정규적(正規的)인 제사(祭祀)는 있었으나 이미 그 마음 속에 하나님에 대한 열심(熱心)은 식어갔으며 향락(享樂)과 사치풍조(奢侈風潮)가 더욱 번져갔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關係)에 있어서 중대(重大)한 변화(變化)를 야기(惹起)시켰다.


②.하나님의 백성의 지도력(指導力)에 중대(重大)한 위기(危機)를 의미(意味)합니다. 


③.이사야 선지자(先知者)는 입술이 부정(不淨)한 사람이요. 선지자는 자신의 죄 가운데 특별히 부정(不淨)한 입술을 지목(指目)해서 말한다. 이는 첫째로 정결(淨潔)한 입술로 여호와를 찬양(讚揚)하는 스랍들의 모습과 자신의 모습을 대조(對照)할 때 충격(衝擊)을 받았기 때문이요, 둘째는 마음으로 범죄(犯罪)한 것이 입으로 표출(表出)된다는 점에서(마 15:11) 부정(不淨)한 입술이 모든 죄악(罪惡)을 총체적(總體的)으로 나타내기 때문이었다(약 3:2 참조).


④.이처럼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하나님과의 교통(交通)의 길을 열어 놓으셨다.


⑤.이사야는 하나님께 대해 경외(敬畏)감을 지니게 하여 그의 봉사(奉仕)를 부지런히 그리고 꾸준히 행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다른 사람에게 하나님의 지식(知識)을 가르쳐야 할 자들은 자신이 먼저 하나님을 잘 알아야 한다.


⑥. 하나님께서 우리와 같은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에게 전(傳)하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할 수 없는 은총(恩寵)이다. 우리와 같은 사람들은 우리를 두렵게 하지 않을 것이며, 그들 자신도 그들이 가져온 그 메시지 속에 관계되고 있다.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들은 우리와 같은 죄인들이며 우리와 함께 고난(苦難)을 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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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과  지도력(Leadership)의 위기(危機)>

 

(1/3 일) <죽은 왕과 영원한 왕(王)>
(Q)~죽은 왕(王)과 영원(永遠)한 왕에 대한 설명(說明)과 교훈(敎訓)은?

 

A)~죽은 왕은 웃시야을 말하며 유대나라의 통치(統治)는 성공적으로 번영(繁榮)했고 강(强)해지자 교만(驕慢)과 자만(自慢)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성전(聖殿)에서의 분향(焚香)은 제사장(祭司長)의 직무(職務)임에도 불구(不久)하고 향단(香壇)에 분향(焚香)하려는 것을 제사장(祭司長)이 이를 막자 도리어 분노(忿怒)하매 하나님이 즉시(卽時) 그를 쳐서 나병(癩病 환자(患者)가 되어 별궁(別宮)에서 살다 죽었다. 그러나 인간(人間) 왕(王)이던 웃시야가 죽던 그해에 분향(焚香)과 찬송(讚頌)과 제사(祭祀)를 받으시는 분은 영원(永遠)한 왕이시며 만유(萬有)의 왕이신 거룩하신 하나님이시다.

 

(1/4 월)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Q)~(이사야 6:3)에서 세 번씩이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의 의미(意味)는 무엇일까?

 

(A)~하나님의 보좌주변(寶座周邊)에 있는 천사(天使)들은 그분의 놀라운 속성(屬性), 곧 그분의 완전(完全)한 거룩성에 깊은 감명(感銘)을 받는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의 마음에 당신의 거룩성에 대한 개념(槪念)을 심어 주길 원하셨다. 이는 그 선지자(先知者)가 그분의 백성 앞에서 하나님의 품성(稟性)의 이 속성(屬性)을 지속적(持續的)으로 드러내고, 또한 그로 인해 그들이 자신들의 죄를 버리고 거룩하게 되고자 하는 열망(熱望)을 갖도록 하기 위함으로 인간적인 관점에서 세상을 보면 무질서(無秩序)와 혼돈(混沌)에 빠져 있지만 하나님의 관점(觀點)에서 보면 세상은 거룩함과 완전한 조화(調和)속에 계신 하나님의 통치(統治)하에 있다는 것을 의미(意味)한다.
웃시야는 죽었지만 여전히 여호와 하나님께서 세상을 통치하시는 왕이신 것을 나타내 보이신 것이다. 유대인은 회개(悔改)하고 악(惡)한 길에서 돌아서고 믿음으로 순종(順從)하며 참된 예배(禮拜)를 회복(回復)해야 했다.

 

(1/5 화) <새로운 인격체(人格體)>
(Q)~이사야는 대제사장(大祭司長)도 아니었고 타오르는 향(香)불도 없었으나 하나님을 뵈었다.
     어떻게 된 일인가 설명(說明)이 필요(必要)된다.

 

(A)~<이사야에게 보여주신 것은 ‘쉐키나’ 영광(榮光)>이었다. 즉 하나님께서는 성소(聖所)의 주인(主人)이시다. 그분이 성소(聖所)를 떠나실 때에 그 영광(榮光)도 함께 떠난다. 그 영광은 대제사장(大祭司長)이 일 년에 한 번 밖에 들어갈 수 없었던 지성소(至聖所)의 시은좌(施恩座) 위에 머물러 있던 영광(榮光)이다. 이것이 여호와의 눈에 보이는 장막(pavilion), 곧 ‘쉐키나’였다. 이사야가 본 것은 이 영광(榮光)이었다. (원고 71, 1897). (EG주석, 사 6:1-8)
앗수르의 정복(征服)의 시기(時期)에 하나님이 이사야를 그분의 백성에게로 보내신 것은 결코 우연(偶然)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기별(寄別)을 전(傳)하기 위하여 보냄을 받는 이사야는 스랍을 시켜 하나님의 숯불로 입술을 정결(淨潔)해지는 경험을 통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경험을 해야 했다.
오직 정결(淨潔)해진 입으로 하나님의 말씀만 전(傳)하는 입술이 되게 하셨다.
우리도 말의 실수(失手)가 없는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8(1/6 수) <왕의 위임장(委任狀)>
(Q)~하나님의 백성이 구원(救援)을 받고 사역(使役)으로 부름을 받을 수 있는 즉 왕(王)의 위임장(委任狀)을 받을 수 있는 근거(根據)는 어디에 있는가?

 

(A)~하나님의 백성이 구원(救援)을 받고 사역(使役)으로 부름을 받을 수 있는 근거(根據)는 우리의 희생제물(犧牲祭物)로 십자가(十字架)에 죽임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께 있다. (히브리서 4:16), (요한복음12:32)

 

(1/7 목) <섬뜩한 호소(呼訴)>
(Q)~하나님께서 이사야에게 사명(使命)을 위임(委任)하시면서 왜 이처럼 섬뜩한 기별(寄別)을 (이사야 6:9~10)을 백성(百姓)에게 전(傳)하게 하셨는가?

 

(A)~하나님께서는 모세,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등등의 선지자(先知者)를 통하여 기별(寄別)을 전(傳)하였지만 그들은 그 기별(寄別)을 거절(拒絶)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무도 멸망(滅亡)치 않기를 바라십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선지자(先知者)들을 보내셔서 멸망(滅亡)의 길에서 건져 내시기 위하여 그들에게 공평(公平)한 선택(選擇)의 기회(機會)를 주지만 누군가가 마음이 완악해졌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지속적(持續的)으로 거부(拒否)한 결과(結果)라는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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